예술이란 결국 고뇌를 기쁨으로, 허무(바니타스)를 환희로 바꾸는 연금술이다. 아래는 보들레르의 시 제목 Le Goût du néant(The Taste for Nothingness), Alchimie de la douleur(The Alchemy of Grief) (1861) Delight:(something or someone that gives) great pleasure, satisfaction, or happiness: I read your letter with great delight.
<보들레르, 뭉크 통한다. 작품 '그날 이후(The day after 1895)' 뭉크는 아무리 대단한 미인이라도 마치 해골처럼 그린다. 모든 그림에 죽음의 공포가 서려있다> 보들레르는 서구 현대시를 연 시조로 인정받는다. 왜 그런가? 그는 기존에 제외된 악(MAL)을 포함한 문학세계를 열었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선과 악의 경계를 허물다. 기존의 도덕적, 윤리적, 종교적 영역을 확대 시켜 사악하고 불온한(혹은 엽기적인) 것, 우울과 폐륜과 데카당스까지도 문학에 다 포함시켰다. 백남준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영역인 비디오 아트를 통해 시각예술에서 미술과 음악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그런 면에서 두 예술가는 많이 닮았다. 보들레르는 이런 말을 남겼다 "고뇌를 불순에 대한 지상의 영약(靈藥)으로 주신 나의 신이여..."
백남준(동서문화의 비빔밥 TV와 부처)과 원효(원융합일) 다 총제적이고 통합적 관점 (Integral and total view)이다, 양혜규(보이지만 보이지 않는다 blind 시리즈)와 서경덕(비어 있지만 비어있지 않다 태허론) 서로 코드가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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