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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1991년 황필호 철학자와 인터뷰

1991년 황필호 철학자와 백남준의 인터뷰, "난 언제나 극단적인 가치(extreme values)에 흥미가 있어요. 예술이란 본능을 따르는 행위입니다" -백남준. 요컨대 한국은 훌륭한 과학자가 필요해요. 그런데 천 명의 훌륭한 과학자가 나오려면 십만 명의 일반 과학도가 있어야 해요. 그 십만 명이 '사이언티픽 아메리컨'을 읽어야 해요. 그런데 이 사이언티픽 어메리컨은 절대로 순 한글로 번역할 수 없어요. <백남준은 쓰레기통에 버려진 맑스의 사상을 주워 재활용하다>
만국 노동자여 총파업으로 단결하라 -맑스 '무력방식'
만국 네티즌이여 인터넷으로 연결된 집단지성으로 단결하라 -백남준 '평화방식'
백남준은 '빅부라더(감시와 처벌사회)'를 막아낼 수 있다고 낙관적으로 내다보다

맑시즘에 대한 백남준의 솔직한 견해 "난 종교는 없어요. 맑시스트입니다." -백남준

<인터뷰> http://seulsong.egloos.com/4157824?fbclid=IwAR2T4TNaug8nsgbrqbpeNaELboANA_9zFI0izXEvgCLnUb9t7XTX0xMDJhA

 

백남준 VS 철학자 황필호 인터뷰(객석 1991년 신년특집 1월호)

나도 이 인터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VS 철학자 황필호 (객석 1991년 1월호에서 Clipping 한 내용입니다.)사진 연합뉴스 박인영기자황 : 우선 바쁘신 데 이렇게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한국에서는 조금 유명한 편입니다만, 선생님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입니다. 선생님이야말로 '무관의 제왕'이라 해도 결코 틀린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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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 제가 알기로는 지난여름이 선생님의 세 번째 공식적인 귀국이라고 생각되는데요, 34년만에 1984년에 오셨고, 88올림픽때 오셨으면 그때가 세 번째 아닙니까?

백 : 그래도 일년에 한두 번쯤은 와요.

황 : 한국에 올 때마다 특별히 느끼신 점은?

백 : 잘 살게 되면 문화도 높아지지요.

황 : 선생님이 계속 한국에 계셨다면 예술활동을 하셨을까요?

백 : 했겠지요. 미디어 아트나 작곡 같은 것을 했겠지요. 성공했을는지는 모르지만, 또 성공할 필요도 없고요. 요컨대 진정으로 하고 싶으면 하게 됩니다.

황 : 선생님은 한국인입니까? 미국인입니까? 세계인입니까?

백 : 뭐 그런 거 생각 안해요. 좌우간 우린 매달매달 예술을 해서 일년에 한번쯤은 신문에 나야 되고, 그걸 위해서는 절대적 책략이 있어야지요. 그렇게만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뭐 자신을 유태인이라고 생각했겠소? 독일인이라고 생각했겠소? 자기 진리만 있으면 되지요.

황 : 얘기를 들으니까 선생님이야말로 예술을 위해 국경을 초월한 분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백 : 그래도 국경을 지날 때는 항상 남들이 '째리니까' 할 수 없지요(웃음).

"인연이란 참 오묘한 거지요"

황 : 지난번의 퍼포먼스에는 '백남준+굿+요셉 보이스 추모제'란 긴 제목이 붙었더군요. 왜 하필 '우랄 알타이의 꿈'이라고 붙이셨습니까?

백 : 이 꿈은 차츰차츰 시작된 거예요. 인연이라고 할 수 있지요. 불교의 '인연'을 산스크리트어로 뭐라고 합니까?

황 : 네, '헤투 프라타야'(hetu-pratyaya)라고 합니다만...

백 : 어떤 사람은 '카르마'라고 하던데요.

황 : 카르마는 보통 '업(業)'이라고 번역합니다.

백 : '인연'이란 말이 참 재미있는 표현이거든요. 인은 중심이고, 연은 가장자리지요. 그러니까 우연과 필연이 결부된 관계입니다. 알다시피 선불교는 바로 인연을 체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불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그것을 영어로 번역 하려면 문제가 생기지요.

황 : 영어로는 보통 인과법칙이란 뜻으로 'Principle of Causation'이나 'Principle of Cause and Effect'라고 말하고, 인연에 의하여 생긴 삼라만상을 'Causally Conditioned Phenomena'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특별히 좋아하며 - 또한 많은 학자들이 사용하는 - 용어로는 'Dependent Co-origination'이나 'Dependent Co-arising'이라는 번역입니다. 서로 독불장군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모든 존재가 서로서로 의존해서 생겨났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다"는 연기의 개념을 잘 전달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연기를 보면 바로 깨달은 사람이 된다고 불교는 가르칩니다.

백 : 그렇죠. '일즉다(一卽多)' '다즉일(多卽一)' 이지요. 그런데 'Dependent Co-origination이라는 말은 누가 만든 영어에요?

황 : 그건 제가 확실히 모릅니다만, 어쨌든 영어권에서는 대개 그렇게 공식화하고 잇습니다.

백: 그래요? 좌우간 좋은 말을 들었습니다. 여기에 적어 놓겠습니다.

황 : 저도 좋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인간이란 혼자 왔다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서로 의존해서 상생(相生)한다는 뜻이니까요.

백 : 그러니까 일종은 'Causal and Casual Interrelationship'이지요.

황 : 인과적 및 비인과적 상호관계네요.

백 :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Causal'과 'Casual'이 모두 '카'라는 발음으로 시작합니다만, 나는 산스크리트어를 전혀 모르지만, '카'라는 것은 '집'리란 뜻도 있고 '자비'란 뜻도 있잖아요? 산스크리트에서 '카'란 무슨 뜻입니까? 'Causal'과 'Casual'은 아주 비슷하면서도 정반대의 뜻이거든요.

황 :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는 진정한 우정이나 순수한 친애를 가리키는 '자'(慈, maittri)와 동정이나 연민을 가리키는 '비'(悲, Karuna)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니까 자비라는 표현에도 '카'라는 발음이 있습니다. 하여간 자비란 다른 사람의 고통에 스스로 참여함으로써 동고동락하는 마음으로 슬퍼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를 직접 도와주려는 우정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갑자기 인연 얘기를 하십니까?

백 : 보이스에 대한 추모제가 어떻게 발전했는냐고 물어서, 인연이 차츰차츰 발전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마치 밥을 먹다가 식용이 나면 더 먹듯이 말입니다. 왜 '우랄 알타이의 꿈'이냐? 그것도 다 인연 아닙니까?

황 : 네, 그렇군요.

"요셉 보이스는 시골사람입니다"

황 :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던 요셉 보이스는 어떤 사람입니까?

백 : 보이스는 물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요. 그는 생명력이 강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그는 시골사람입니다. 시골사람이라는 게 중요해요. 난 비교적 시골사람을 좋아해요. 보이스는 네덜란드와 독일의 국경에서 태어난 시골사람이에요. 사실은 화란인 이지만 독일 국적을 가지고 있어서 1940년에 독일공군에 자원을 했어요. 왜 자원을 했는냐고 물었더니, 고등학교 클래스메이트들이 전부 전장에 나가서 죽어서 그들과 같이 죽으려고 나갔다고 하더군요. 하여간 그가 침략전쟁에 참여한 것은 약점이지요. 그건 그렇고, 이 사람이 비행사고로 전쟁에 나가서 '돈오'를 했어요. 영어로는 'Enlightenment'라고 하는데 순수한 우리말로는 뭐라고 합니까?

황 : '깨달음'이라고 합니다.

백 : 그리고 체념을 우리 말로 뭐라고 해요?

황 : 그냥 '체념'이라고 합니다.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