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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그의 리서치 기행, 뉴욕과 캐나다 Stratford

<2015 캐나다 Stratford> 뉴욕 백남준 리서치 가는 길에 캐나다 1주일 머물다
*2015-05-29부터 2015-07-01까지

독일에 뮌스터라는 도시가 있다면, 캐나다에는 스트랫퍼드(Stratford)라는 도시가 있다. 뭔스터는 독일의 미술을 대표하는 도시라면 스트랫퍼는 캐나다 연극을 대표하는 도시다. 이 도시는 영국이민자들이 개척한 도시로 셰익스피어의 고향명을 딸 정도로 연극의 메카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1년에 한번씩 큰 연극제가 열린다. 그리고 일년 대재 적지 않은 연극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미국관광객 등 세계 연극인이 찾아오는 곳으로 유명하다 뮌슽와 스트랫퍼드의 공통점은 작은 도시라는 것이다. 여기서 큰형집에 머물렀다. 2015년 사진이네요 자연친화적이다. <수정중> 

호수와 공원과 산책로가 잘 어울리는 조용한 청정 도시죠 여기 공원벤치는 개인의 기부금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드디어 저택이 보이네요 캐나다는 국방예산을 적게 쓰기 때문에 의료와 교육에 투자를 많이 한다. 그리고 환경과 인권문제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관심이 높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도 캐나다 공원에 못지 않는 멋진 공원이 많이 생겼다. 여기에 있다고 뉴욕을 갔는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도시니까 그렇죠. 문제가 많은 도시에서 새로운 미술이 탄생하죠. 여기서는 현대미술이 나오기 힘들죠.

주말에는 이곳 지역 화가들이 직접 공원에 나와 작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예술가는 어디나 가난하죠.

<캐나다 Stratford 북미에서 유명한 연극도시>

캐나다 스트랫퍼드(Stratford) 대형극장(연극용) 앞에 북 라이브러리가 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많네요. 앞에 무대가 보이고 연극애호가들 들뜬 분위기가 느껴지네요. 

근데 여기서 좀 놀란 것은 바로 화장실 격과 그 수준이 높다는 것이다. 궁전같이 만들었네요 역시 문화공간을 다르군요.

이 극장 앞에서 자원 봉사하는 캐나다 아줌마를 만났는데 참 미소가 맑죠. 근데 내가 놀란 것은 그의 남편이 의사라고 소개하면서 자신만 아니라 남편도 여기에서 자원봉사를 종종 한다고 하니 우리와는 사고방식이나 라이프스타일에서 많이 다르군요. 직업에 대한 우리와 같은 편견은 없는 것 같다. 여유가 있으면 우리도 그렇게 되겠죠. 인구가 적고 노동시간이 우리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태도가 아주 일상화되어 있다고 봐야죠. 물론 이곳 이민자들은 이런 여유가 없겠지만 전반적으로 사회가 여유가 있어 보이네요. 그런데 맵고 짭짤한 맛이 없어 보이고 좀 싱겁고 심심할 것 같죠.

캐나다 스트랫퍼드(Stratford) 는 소도시인데도 시립미술관이 있군요 아래는 공공미술을 소개하는 야외전시장이죠. 2번째 작품이 Douglas Benton 작품 미술관 옆에서 한컷

Douglas Benton Prairieduster

<2015년 캐나다 Stratford 에서 뉴욕으로 백남준 리서치 취재위해 기행>

처음 뉴욕 도착 2015년 1달 간 백남준 리서치 취재 기간 중 미국 작가의 집에 보름 간 머물다. 그 은혜를 제대로 갚지 못하고 미국 화가 Brad Darcy와 Dickson 예술가 부부가 보이네요 나중에 큰 불운이 닥쳐 가슴이 아팠죠 Dickson은 한국 김수자 작가와 아는 사이죠. 예술가의 삶이란 어디나 궁핍하죠. 그럼에도 일상 속에서 작은 향연이 날마다 넘친다. 이 이야기하려고 한 게 아니고 백남준 작업실 사진을 찾다가 엉뚱한 곳으로 갔네요

뉴욕 지하철은 악몽이죠. 뉴욕 기자가 서울에 와서 지하철 보고 극찬을 보낸 것은 당연한 일이다. 

철공소 같은 굉음이 난다. 얼마나 시끄러우면 귀를 막을까

지하철을 잘 못 내려 전시장에서 전에 우연히 한번 본 대학생인지 졸업생인지를 다시 만나 지금 자기가 사진 전시에 가는 중인데 같이 가자고 권해 따라가다.

그녀는 플랫 미대에서 회화 건축 디자인을 공부했다고 하더군요. 따라가 보니 별 전시도 아닌데 뉴욕커들 신나게 잘 놀더라고요.

3번째 사진은 뉴욕 브루클린 에 있는 플랫(Pratt) 미술대학 캠퍼스

드디어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찾다. 아래 사진에 '그린 가(Greene Street)'와 '브룸 가(Broome Street)'가 보인다. 여기가 백남준 작업실 3개 중 2개가 있는 곳이다. 그리고 자택도 역시 작업실로 사용한다. 총 4개가 되겠죠. 1) 그린 가(Greene Street) ) 2) 브룸 가(Broome Street) 3) 그랜드 가(Grand Street) 4) 자택 소호 지역 머서 가(Mercer street )

<백남준 선물> 뉴욕 도서관

내 마음에 드는 뉴욕건물

<백남준 선물> 캐나다에서 뉴욕으로 가면 그 분위기 완전히 180도로 달라지죠 뉴욕에 온 지 며칠 안 되어 뉴욕 맨해튼 중심가 한국 식당(돈의보감 17 East 32nd street)을 방문 기회가 생겼다 뉴욕은 한 마디로 캐나다에 비하면 개판. 첫번째 사진 가운데 분은 하와이비엔날레 총감독이었고 왼쪽은 유엔기구 국제교류민간분야 책임자였다. 오른쪽은 뉴욕에서 활발하게 전시기획을 하는 Naomi Campbell. 처음 만났는데 참 친절하게 나를 대해줘 고마웠다. 그날 나를 모마(MoMA)로까지 안내해줘 그날 즐겁게 최고급 현대미술을 즐길 수 있었다,

<백남준 선물> 처음 본 캠벨(Naomi Campbell) 안내로 MoMA에 도착 

영어 별로 못하는 무료입장을 위해 전화 친절까지 베풀고

<2017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취재기행>

Klaus Bußmann(1941년생)이라는 분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처음 창안한 사람으로 백남준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처음에 이 도시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저항과 반대와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끈기 있게 시민들을 설득했다(아래 2번째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맘 안 드는 전시야 안 가면 되지만, 길거리 조각은 안 볼 수도 없고…”

그렇게 그는 이 프로젝트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고 결국은 세계 3대 미술행사로 위상을 높인 전설적인 미술인이다. 지금은 뮌스터 시민들이 이 프로젝트에 대한 호응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재정적 지원이나 자발적 헌신과 참여와 서비스에서도 적극적이 되었단다. 

초기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고 백남준이 1997년에 출품작(5번째 사진)이 큰 방향을 불러일으키면서 그때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이 작품은 산업시대에서 정보시대의 전환을 야외 공공미술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자동차 같은 20세기 하드웨어시대의 종말을 선언하고 인터넷 SNS 등 21세기 소프트웨어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1989년 뮌스터(대학 도서관) 처음 갔을 때 사진이다.

 201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기자 간담회 사진

전 세계에서 온 미술기자들

뮌스터 공원에는 역대 유명 작가들 공공미술을 볼 수 있다 

가운데 여자가 뮌스터 조작 프로젝트 큐레이터 Marianne Wagner

뮌스터는 참 예쁜 도시다. 신구종교 간 평화협정을 맺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