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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성속 넘어서는 화엄세계와 에로스

<[백남준의 화엄(융복합 혹은 원융합일)세계 성속이 없고 시공이 없고 음악과 미술의 경계가 없고 등등등] 生死涅槃相共和 : 생사와 열반이 서로 서로 함께 했고 理事冥然無分別 : 이와 사가 그윽히 조화하여 분별할 것 없으니 -화엄경>

미륵불이자 관음보살인 백남준이 펼치는 성속을 벗어나는 화엄세계 같은 전자 굿, 그의 단면 fragment, 에로스)를 엿보다 
결국 모든 철학은 에로스에 대한 공부(연구)이다. 플라톤의 <향연>이라는 책은 바로 에로스에 대한 논의를 집대성한 것이다. 뒤샹의 모든 예술은 에로스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초기부터 말기까지 일관되게 그랬다.

그런데 백남준의 에로스는 이런 서구적 경계를 넘어서고 있다. 그것을 바로 인간 외 자연(우주만물) 기계 TV 피아노 등을 다 포함한다. 이런 점에 대해서 서구의 가장 탁월한 해석가는 프랑스 철학자 알랭 바디우다. 사랑의 종말과 에로스의 재탄생(르네상스) 언급(르네상스) 에로스는 무소유주의자인 맑시스트가 가장 뜨겁게 논할 수 있다. 그걸 정말 실천한 사람이 바로 <엘자의 눈동자(여성찬가)>를 노래한 시인 루이 아라공이다

"지난 수십 년간 문학에서 거의 일어난 일이 없다. 책은 홍수처럼 출간되지만 정신은 정지상태다. 문제는 소통(Communication)의 위기다. 새로운 소통수단을 경이롭지만 그것은 엄청난 소음을 만들어낸다" -누보로망 소설가 미셸 뷔토르.

걷잡을 수 없이 증식하는 정보의 더미 이러한 긍정성의 과잉은 소음만 표출한다 정보사회, 피곤사회는 소음 수위가 높은 사회다. 하지만 부정성이 없다면 남는 것은 동일자뿐이다. 정신이란 본래 불안을 의미한다. 정신(Geist)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부정성에서 나오다. -한병철

"인간과 우주에 값하는 유일한 예술 그런 것을 별보다 더 멀리 이끌어줄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은 에로티시즘이다" -앙드레 브르통. 뒤샹도 그랬지만 초현실주의자에게 에로스는 언어와 현실의 시적 혁명을 위한 매개체이다.

롤랑 바르트가 좋아한 소설가 카프카의 말이다 "사람들은 사물에 대한 의미를 몰아내기 위해 사진을 찍는다. 나의 이야기는 일종의 눈감기이다" 무슨 의미이지 잘 모르겠지만 노예와 주인의 차이는 바로 에로스(에너지)를 창조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은 사랑 아니 에로스의 재발명을 위해서 투쟁을 해야 하는 시대다. Now is the time for us to struggle for the reinvention of love. Not love but Eros.

타자에 대한 환상을 철폐한 시대에 이제 사랑이라는 말은 죽었다. 그 대신 에로스라는 말을 써야 한다. 에로스에 대해서 가장 정확하게 말한 사람은 바타이유이다. 그는 에로스에 대해서 죽음도 능가하는 삶에 대한 깊은 애무(열정)이다. 라고(열정)이다. 했는데 멋진 말이다 에로스의 반대는 포르노그래피인가 꼭 그렇지 않을 수도

In era of abolition of the illusion of the other, the word love is dead. Instead we should use the word Eros. The most accurate spoken person of Eros is Georges Bataille. He said of Eros: It is a deep passion for life that surpasses death. Nice expression. So is Eros's opposite the pornography? I can't say like th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