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갈라놓은 것들을 연출한 임흥순 감독와 인터뷰 -할머니의 말 "혼은 죽지 않는다">
Q.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와 과정?
2016년 말 시작된 촛불집회와 태극기집회를 보면서 떠올린 제목이다. 집이 부암동이라 시위가 있는 날에는 서울역에서 집까지 또는 시청에서 집까지 걸어 갈수 밖에 없었다. 자연스럽게 두 집회를 보고 접하면서 생각하게 되었다. 2017년 1월 MMCA 현대차 시리즈 전시를 준비하면서 분단 전후 시대가 궁금해졌다.
그러다 나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인 <비념>(2012)을 제작하고 배급을 준비하는 과정에 선물로 받았던 <자유를 찾아서: 김동일의 억새와 해바라기의 세월>(김창후 저), <장강일기>(정정화 저) 두 권의 책이 생각났다. 이후 2017년 2월 독일에서 진행된 한 그룹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다. 북한이주여성과 함께 만든 <북한산>이라는 작품을 전시했는데 참여작가 중 한 분이 자신의 어머니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으로 활동을 하셨다고 했다. 귀국 후 찾아 뵙게 되었고 그때 받은 책이 <강물이 내게 말을 걸어 올 때> 였다. 세 분의 이야기를 하나로 연결해 보고 싶었다.
Q. 들으면 궁금해지는 제목이다. 전시 때 나왔던 ‘우리를 갈라놓는 것들’의 키워드들에 대한 의미가 궁금하다. 믿음, 신념, 사랑, 배신, 증오, 공포, 유령 등
일제시대부터 해방과 분단 한국전쟁을 지나 오늘날까지를 7가지 키워드로 정해본 것이다. 시기별로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니나 대략적으로 일제시대는 ‘믿음’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었던 해방에 대한 믿음이 생각났다. 해방이 된 1945년부터 1948년까지의 해방공간은 ‘신념’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정치적, 이념적으로 가장 복잡했던, 각자의 신념이 부딪히고 충돌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1948년 8월과 9월 남과 북에 각각 단독정부가 수립된 시기를 ‘사랑’으로 봤다. ‘배신’은 제주 4·3항쟁과 한국전쟁 시기를, ‘증오’는 전쟁 이후 맞이한 이승만 독재시대를 ‘공포’는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부독재시대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기나긴 시간을 거치면서 생긴 억울한 죽음, 남겨진 상처, 기억, 망각, 기념 등을 ‘유령’이라는 키워드로 생각했다.
Q. 2017년에 전시를 먼저 진행하고, 영화를 완성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영화에 대한 구상이 어느 정도 된 후에 전시도 진행했는지?
초반에 전반적인 기획의 방향을 생각하나 구체적으로 정해놓지는 않는다. 인물, 풍경, 공간의 상황이 어제와 오늘이 많이 다르고 극영화와 다르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이 자연스럽게 장편 영화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시 과정 중에는 장편영화에 대한 구상은 따로 생각하지 않고 진행했다. 이번 장편의 경우 미술관에서 전시된 작품이 완성된 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세분의 역할을 한 재연배우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 배우에게 의미를 설명하고 제안해서 방향을 잡아갔다.
Q. 다큐멘터리임에도 극영화 같은 재연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형식을 가져오게 된 이유는?
실제인물이 주는 힘은 세다. 계획되지 않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오묘한 상황들이 주는 매력이 크다. 그러나 표현 불가능한 상황, 심리, 감정을 보여주고자 할 때는 인공적인 연출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그럴 때 재연 또는 퍼포먼스 이미지들을 사용한다. 그리고 단순히 과거를 재연하는 것을 보여주기보다는 과거를 재연하는 당사자들의 감정이 궁금하고 그 과정을 담고 싶은 마음이 있다. 그 과정은 기억하고 치유하고 또 애도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내가 주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의 삶이 각자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삶으로 빗겨나갔지만 그 삶을 극복하고 정직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다. 이러한 다양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선 다큐와 극이 섞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삶과 영화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Q. 재연을 맡은 세 배우들과는 어떻게 함께 하게 되었는지.
일반 배우보다는 좀더 의미 있는 인물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남한출신, 북한출신, 일본에 살고 있는 재일조선인과 함께 하려고 했다. 남과 북 그리고 일본, 과거와 현재, 할머니들과 현재 젊은 세대를 연결하고 이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여러가지 사정상 재일조선인 출신 배우와 함께 할 수 없어 북한이주여성 두 분과 함께 하게 되었다. 이 두 분은 제작사 반달 스태프와 지인을 통해 소개받았다 남한출신 배우는 조감독이 인터넷을 통해 리서치하고 섭외했다.
Q. 제주에서 진행했던 굿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관련하여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김동일 1주기 추모 굿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큰 아드님 존재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작은 아드님과 두 번째 만남이 이루어졌고 굿에도 함께 참여해주셨다. 일주일 뒤에 큰 아드님 인터뷰도 진행할 수 있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인터뷰이였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끝이 아니라 뭔가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알면 알수록 복잡하고 어렵다는 생각, 동시에 한국의 근현대사는 하나의 사건으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로 연결되어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Q. 실제 촬영 장면과 재연 장면이 같이 담아낸 것이 특별한 것 같다. 연출하는데 가장 신경 썼던 부분이 있다면?
재연된 모습보다 재연하는 인물과 과정에 대한 관심이 크고 흥미롭다. 그러다 보니 항상 재연하는 과정 자체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전 작품들에서 종종 그러한 장면들이 일부분 연출되기도 했다. 이번 영화 또한 B컷을 촬영해 두면 이후 편집할 때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 배우 중 한 명이라도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아마 영화의 방향은 바뀌었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 했듯 인물, 공간, 날씨 등에 따라, 나의 의지보다는 나 이외의 움직임에 의해 연출방향이 정해지기도 한다.
Q. 최근 여성 서사가 많은 관객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예전부터 꾸준히 소외된 계층뿐만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를 다뤄왔는데, 어떤 주제이든 그 부분을 놓치지 않은 철학과 의지가 궁금하다.
철학과 의지라기 보다 현실이다. 당장 내 주변을 돌아봐도 영화를 만들고 함께 해주는 사람들 대부분이 여성이다. 나만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 주변을 둘러봐라 일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성일 것이다. 과거에도 많은 여성들이 그렇게 쉬지 않고 일해왔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현실에서의 대우, 지위는 정반대이다. 그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대하는 태도, 시선, 생각, 행동들이 경이롭다. 나도 모르게 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을 닮아가고 있다. 존경과 배움의 대상이다.
Q. 관객들이 이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길 원하는지, 관객에게 어떤 반응을 기대하는지 궁금하다.
무거운 역사를 다루고 미술적인 표현방식으로 인해 조금은 어렵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모르면 모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감상해 주셨으면 좋겠다. 잘 모르는 게 이상하지 않다. 관심을 덜 가질 수 밖에 없는 것도 당연하다. 저나 함께 해준 스태프들 또한 처음부터 알고 만든 것은 아니다.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 자랑스러운 마음을 느끼고 담아가며 완성하게 되었다. 또한 영화를 제작하면서 ‘우리 할머니는 어떤 삶을 사셨을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두 권의 책을 받고 한참을 지나서야 보게 된 것처럼 이 영화 또한 당장은 필요하지 않을 수 있으나 언젠가 각자의 기억 속에서 꺼내 넘겨볼 수 있는 그런 영화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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