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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전몽각] 딸에 대한 아빠의 애틋함을 앵글에 담다

딸에 대한 아빠(전몽각 사진가)의 애틋한 사랑을 카메라라는 미디어를 통해서 표현하다. 어려서 사진과 중고시절 사진 그렇게 딸 시집가진 전까지 사랑을 찍다 사진 속으로 딸에 대한 아빠의 마음이 이사를 가다. 감정이입이 되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 전몽각

"카메라가 할 일은 무엇인가? 카메라는 기가 막힌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다. 육안마저 놓쳐버릴 돌연한 자연의 사실을 거짓없이 정확하게 묘사한다. 제 아무리 유능한 화가나 문인이라도 이런 표정은 카메라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 브루스 다운즈 사진 평론가

전몽각  I '윤미네 집'  ⓒ 전몽각

내 마음이 상대의 마음 속으로 이사를 가다. 이것이 바로 감정이입이 아닌가. 소통의 작은 통로이고 모든 예술의 시발점이 아닌가

[전몽각전] 딸에 대한 아빠의 애틋한 정 담긴 사진일기, 뭉클 아니 쿨하다

- 딸의 태어나서 결혼하기 직전까지 딸의 모습

한미사진미술관(송파구 방이동) www.photomuseum.or.kr 2010.12.12-2011.02.19까지

한미사진미술관(송파구 방이동)입구

큰딸이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 모습을 담은 화제의 사진집, <윤미네 집>32년 만에 전시장을 찾아 들어왔다. 어찌 보면 평범한 사진인데 평범하게 보이지 않고 특별한 것은 우리가 바로 평범한 행복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생활의 수준은 높아졌고 문명의 이기는 IT기술로 편리해졌지만 말이다.

이번 전시는 '전몽각'이라는 인물이 촬영한 사진에서 세 가지 풍경을 발굴하여, 그 풍경을 한데 엮어 1960-80년대 시대풍경화를 보여주는데 그 의미가 있다. 6070년대 아빠의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그의 26년간 사진일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신자유주의시대, 가족이 해체된 이 시대에 이런 사진을 더욱 감동적이다. 딸과 아내에 대한 남편과 아빠로서의 부성애 가족애가가 뭉클하다. 아니 쿨(cool)하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갈현동 집에서 전몽각

'윤미네 집'은 전몽각 선생이 큰딸 윤미가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1964-89) 찍은 사진을 담은 책으로 1990년 첫 발간 때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후 20년 만인 2010년 재발간 된 '윤미네 집'은 현재 4쇄 판매에 들어갈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 사진에는 가족애가 넘쳐 감동의 드라마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믿기지 않는다. 가족애가 해체된 지금에 보면 보물 같다. 인간의 행복이란 물질과는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전몽각(1931-2006) 선생은 토목공학자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으며 성균관대 부총장을 역임한 인물로, 일반인에게는 '윤미네 집'의 부정(父情)이 가득한 윤미 아빠로 더 알려져 있다.

'윤미네 집' 갈현동 집에서 전몽각아내에 대한 사랑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소중한 딸을 낳아준 아빠에게는 최고의 모델이자 연인 같은 낳아준 분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 여기서 딸에 대한 사랑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딸도 사랑하는 것이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에 사진 곳곳에 묻어있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전몽각

너무 꾸미지 않고 담담하고 삶의 현장성과 리얼리티를 살렸다. 참으로 우리에게 시시 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그때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과연 더 행복해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몽각 사진전:: 전몽각 그리고 윤미네 집- 사진으로 보는 세 가지 풍경 -

사진 140여점 관람시간 : 평일 10:00~19:00 / 주말 11:00~18:30

성인 5,000, 학생 4,000, 10인 이상 단체 2,000원 할인 도슨트 설명(매일 오후 4)

전시문의: 이계영 이진우 큐레이터 TEL. 02-418-1315

전몽각 I '윤미네 집' 전몽각

'윤미네' 가족의 풍경은 한 가족만의 이야기를 넘어서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자 '가족'을 통해 바라본 소소한 일상사의 장면들이다. 우리네 가족 풍경을 정겹고 포근하게 담아낸 윤미네 집은 따스한 가족애와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971년과 1978년에 이어 32년 만에 세 번째로 약 100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전몽각

그는 경부고속도로 작업에도 참여했고 그가 남긴 사진을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은 그 속에 사랑이 넘치기에 아빠는 딸은 연인처럼 그렇게 찍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고 나면 더 이상 삶의 만족감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 행복을 추구하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시민단체나 자원봉사 등 사회적 연대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행복의 공식 중 한 구절]

전몽각 I '윤미네 집' 숭인동 집에서 전몽각

이렇게 아빠의 사랑을 받은 딸이 이 세상에 많아지면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다고 그 딸은 또 아빠 같은 남자를 사랑하고 그래서 또 그런 사랑은 이어지고 사회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전몽각

사진에 작가의 철학과 개념 생각과 주장이 들어가면 예술이 된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그리고 보기 좋은 사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와중에 살아남는 사진은 어찌 보면 드물다.

[작가소개] 1931 평북 용천태생 1959 서울대 공대 토목공학과 졸업 1966-1967 네덜란드 Delft공대 수공학과정졸업 1959-1968 국립건설연구소근무 1968-1972경부고속도로건설사무소 근무 1970-72 한국도로공사근무 1972-96 성대 토목공학과교수 1995-96 성대부총장 1996 정년퇴직 후 명예교수 전시 1971 '윤미네집' 신세계백화 1978 '윤미네집' 출판문화회관 1999 '개인전(1996-1999)' 예술의전당 2010 '전몽각 그리고 윤미네집' 한미사진미술관

[전몽각선생 네덜란드 단기유학기에 찍은 사진들 1966-1967]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전몽각

그는 사진으로 추상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추상화가 나온 것도 사진 때문인데 사진을 추상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그런데 그의 작품에서는 추상적 사진예술을 암시를 준다. 추상의 이미지의 보다 근원적 세계인지 모른다. 벽화에서 보는 것 같은 그런 그림말이다. 울산에 암석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잡지연감을 아무리 뒤져보다 우리가 좋다고 열중하는 조형이나 추상적인 작품은 드물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도 신통해 보이지 않는 작품으로 꽉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류 속에 끼지 못하고 방류소에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 작가의 말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전몽각

어디나 사춘기청소년은 같다. 버릇이 없다. 기존의 틀을 깬다. 사회의 낡은 옷을 벗긴다. 그러나 너무나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좋다고 깨닫지는 못한다. 언제나 세월이 지나야 그런 것을 알게 된다. 인생에는 그래서 회한의 정이 따라오는 것인가. 민주주의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독재정권이 들어서는 그것을 깨닫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전몽각

구애기 참으로 아름다운 시기죠. 그런데 젊어서는 정열은 넘치는 경험이 없고 늙어서는 경험은 많은데 정열이 없죠. 이 모순을 어떻게 다스려나갈 방법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여행과 독서만이 이런 점을 조금이라도 보안해 주는 장치가 아닐까싶다. 여행은 1년은 일상 10년을 산다고 할까 그만큼 얻는 것이 많다. 여행은 인생을 무한대로 오래 살게 해준다. 제일 부자는 여행을 많이 한 사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닐까싶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전몽각

유럽은 노령사회고 늙은 나라임을 읽을 수 있지만 이제 우리도 유럽처럼 고령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전몽각작가가 유럽에 갔을 때 받은 충격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사회의 일면이 아닐까 싶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전몽각

공원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한 장의 사진의 잘 담을 수 있을까 아이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이 사진에 생명감을 불어넣어준다. 바로 이런 음양의 조화가 바로 이 지상에서 천국을 이루는 것이리라.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전몽각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바다보다 낮은 나라라 자전거천국이다. 이런 사진은 그 시대의 길과 골목과 가옥을 고스란히 잘 기록하고 있다는 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전몽각

네덜란드는 물과 싸워서 이긴 나라다. 그들은 매우 실리에 밝게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한 나라다. 영국에 세계해상권을 잡기 직전에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의 나라다. 렘브란트는 바로 17세기 말 전성기에 인물이다. 그는 역시 네덜란드출신 고흐와 함께 자화상을 많이 그려 유명하다.

[미술관에서 영상으로 만든 사진자료]

아이들의 웃음 속에는 천국이 들어있다.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사진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일인가. 여기서는 언어가 필요 없다. 다만 인간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교감이 필요할 뿐이다.

삶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시가 좋다고 하는데 사진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장면은 우리가 어려서 흔히 봐왔지만 사진에 담겨 이렇게 기록으로 남은 것을 별로 없다. 이 장면을 바라보고 셔터를 누리는 주인공인 작가의 마음이 순간 전율을 맛보았을 모른다.

이런 순간의 표정을 잡아낼 때의 쾌감이 크기에 사진가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참고 인고하는 것이다. 이런 사진이 나올 때 그 동안의 모든 고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여기에는 아이와 엄마의 거의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런 것은 청춘남녀가 키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기알에 불이 들어오듯이 그런 순간 가장 완벽한 소통을 이루어지고 일체감을 맛본다. 그것이 바로 삶의 찰나에서 체감하는 절대적 희열의 순간이다. 작가가 이런 순간을 놓친다면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