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에서 백남준은 서양의 첼로연주와 한국의 승무를 동급으로 취급했다>
<사운드가 색(color)이 되면서 비디오가 되고 또한 섹스얼리티가 된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백남준 글로벌 그루브(1973년 작품 지구촌 최고의 축제와 향연) 처음부터 끝까지 이번에 처음 보다. 백남준이 왜 비디오아트의 아버지인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최고의 작품이다. 그의 비디오아트에 압도당하다. 이 작품은 진짜 엔터네이터 작품이다.
아! 이런 것이 엔터터이너(연애 프로그램)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을 보면 가짜 엔테네이너(연애)이 들통이 나게 하고 완벽하게 그런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우리나라의 전통 굿에서 맘판 놀이굿이라는 형식이 있는데 그것과 유사하다 다만 여기에는 글로벌하다는 것이 다르다 . 글로벌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구촌 축제 춤과 노래를 소개하는데 서양만 아니라 동양 유럽이나 미국만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까지 소개가 된다.
여기서 또한 핵심은 바로 반반이다. 무슨 말인가 하니, 서양 만 동양 만 콘텐츠를 골고루 소개한다는 점이다. 물론 미국의 엔터테이너 화면이 좀 많기는 하다. 특히 존 케이지(혈액이 순환하는 소리를 가지고 음악으로 작곡)와 샬럿 무어먼 연주(타이스의 명상곡을 몸을 악기처럼 연주한다)가 하이라이트로 선보인다. 정말 환상적이다. 카랴안과 완전히 다른 노이에 뮤직(Neue Musik)과 액션뮤직(Action Music)의 본질을 보여준다.
<지금도 대형TV방송은 나를 두려워 한다 -백남준 1970년> <예술가란 교란자(구조적 이분법의 해체주의자)이다 -백남준> <백남준은 독을 품고 있는 방송 신문 등 미디어에서 독을 빼내는 해독제였다> 백남준은 예를 들면 1970년 경에 미국의 대규모 방송인 CNN이나 한국의 공영방송인 KBS 등을 망가뜨리는 (혹은 대형TV방송통제를 불가능하게 하는) 바이러스였다. 백남준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방송국 시스템에 구멍을 내고 다녔다. 그런 방송은 고비용에 저능률이고 전 세계적으로 사건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참여를 방해했기 때문. 그래서 백남준은 1970년 'TV 코뮌' 발표하고 1973년에는 그 대안으로 '1인미디어 시대' (Someday, everyone will have their own TV channel -N.J. Paik 1973) 선언하다
<백남준은 쓰레기가 될 수 있는 TV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것도 미디어 생태계를 살리는 일 중 하나이다(그리고 백남준 촉각적인 비디오 모르포시스(video morphosis) 세계를 초대하다> 미디어 생태계가 오염되는 과정에서 인류세(Anthropocene)가 등장한다. 이것이 과연 뭔가? 토론에 한 부분을 차지하다 백남준에게 예술이란 때로 "질문을 도발하는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분이 골드스미스 '조안나 질린스카' 교수 이분이 상당히 현실적이고 명쾌한 답안을 내놓았다
"사이버네틱스 예술도 매우 중요하지만, 사이버네이티드된 삶을 위한 예술이 더 중요하다. 그리고 후자는 사이버네이티드될 필요가 없다."(315쪽) -백남준 여기서 보면 백남준은 예술보다 삶을 더 중시했다. 삶을 가장 충만하게 하는 것은 바로 유혹이다 유혹은 21세기의 키워드다 왜 그런가 유혹이란 바로 삶에 참여라게 하는 최선의 동기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강조하는 참여와 소통을 이루게 하는 최고의 통로는 바로 유혹의 기술이다. 인간은 유혹에 빠져야 열정적으로 뭔가 참여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마주침의 정치(정동 affection)도 필요하게 된다.
백남준=보들레르는 쌍둥이다. 백남준은 보들레르의 상징적 자연을 비디오 아트로 바꾸다. Nam June Paik und Baudelaire, sie sind Zwillinge. Nam June Paik verwandelt die Symbolik von Baudelaire in Die Kunst des elektronischen Videos / Nam June Paik et Baudelaire, ils sont des jumeaux. Nam June Paik transforme la nature symbolique de Baudelaire en l'art de vidéo électronique / Nam June Paik and Baudelaire, they are twins. Nam June Paik transforms the symbolic nature of Baudelaire into the art of electronic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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