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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국립현대] '아스거 욘' 제3의 시각언어 제시

[대안적 언어_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MMCA(서울관) 5전시실과 서울박스에서, 2019년 4월 12일-9월 8일까지' -문화민주주의자 '아스거 욘' 그는 대안적 제3의 시각언어를 제시' <수정중>

인사말 하는 국립현대미술관 윤범모 관장

이번 전시는 1950~70년대 ‘코브라(CoBrA)’,‘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등 사회 참여적 예술운동 주도,덴마크의 대표작가 아스거 욘(1914-1973)의 아시아 최초 개인전이다. **덴마크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과 협력하여 회화, 조각, 드로잉, 사진, 출판물, 도자, 직조, 아카이브 등 90여 점 소개한다.

[덴마크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 (Museum Jorn, Silkeborg)] 1965년 덴마크 실케보르그에 설립된 미술관. 아스거 욘이 자신의 모든 작품을 기증한 미술관으로, 욘과 동시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 특히 아스거 욘과 함께 ‘코브라’ 그룹을 조직한 작가들과 그에게 영감을 준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프란시스 피카비아(Francis Picabia), 페르낭 레제 (Fernand Léger), 만 레이(Man Ray) 등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번 전시를 맡은 '박주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명 ‘대안적 언어’는 서유럽 중심 미술사에서 벗어난 대안적 미술사 쓰기를 제안한다는 의미다.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 야곱 테이(Jacob Thage) 관장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서술된 미술사는 아스거 욘의 회화적 표현에만 집중해왔다. 그러나 작가가 일생 ‘대안적 언어’로서 추구한 예술적 실험, 정치적 참여 그리고 사회운동가로서의 면모는 주류미술사에서 제대로 조명이 안 되다. 

아스거 욘 작가

아스거 욘 (Asger Jorn, 1914-1973) 덴마크 출신 작가 아스거 욘은 혁명적 행보를 걸은 예술가이다. 그는 1940년대 결성된 코브라(CoBrA) 그룹의 창립 회원으로 활약했다. 코브라는 20세기 중반 중요한 추상화가 그룹을 배출한 유럽의 도시, 즉 코펜하겐, 브뤼셀, 그리고 암스테르담의 첫 글자를 따 명명된 미술 그룹이었다.

대안적 언어_아스거 욘, 사회운동가로서의 예술가

코브라 그룹과 연을 맺은 작가들은 자발성 혹은 충동성과 같이 어린 아이 같은 본능을 강조하는 작품을 그리는 데 관심을 가졌다. 또한 아스거 욘은 예술이 나이, 지위, 인종, 지식과 무관하게 대중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했다.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급진적 정치 혁명을 일으킨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을 결성했다. 이후 북유럽 전통 예술을 연구하여 미국과 소련이 양립하는 세계 논리에 제3의 대안적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아스거 욘은 뉴욕 구겐하임에서 주는 대상(Award)도 확고하게 거부할 정도로 자신의 예술적 주장이 강했다

아스거 욘은 1964년 뉴욕 구겐하임 아트 어워드 수상자로 지명되었지만 욘은 이 상에 대해서 아주 강력하게 반발했다고 한다. <지옥에나 가라> 저주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내 작품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구겐하임 미술관이 아니라 바로 일반 관객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고 한다. 구겐하임 아트 어워드는 나중에 구겐하임 페로우십으로 그 명칭이 바꿨단다.

지금 현재 덴마크에서는 북유럽미술을 대표하는 2인전이 열리고 있다. 바로 <에드바르 뭉크와 아스거 욘>전이다. 욘은 영어로 존이죠. 그는 미술의 엘리트주의를 반대하면서 북유럽미술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보여준 사람이다.

<인간과 짐승을 동급으로 보다>

아스거 욘 I '황금 돼지: 전쟁의 환상' 캔버스에 유채, 50×100cm, 1950. 욘 미술관 소장

정치에서도 제3의 길이라는 게 있지만 그는 미술에서도 제3의 대안적 시각언어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한 사람이다. 독재는 일방적이고 민주주의는 쌍방적이지만 그런데 멀티-문화주의(multi culturalism)는 그것으로 부족하고 적어도 제3의 관점의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길을 개척한 사람이 바로 욘이다.

욘은 북구를 비롯 전 세계 민속사진(그린란드의 민속미술과 12세기 스카니아 석상) 등을 수집해 그걸 사진찍었다

욘의 생각은 민속을 알아야 현대미술이 나오고 현대미술을 알아야 민속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전 세계를 두루 돌아다니면 많은 곳을 여행했고, 동시에 나라마다 민속예술에 대해서 많은 자료와 사진을 찍고 그것을 책자로 만들어냈다. 오른쪽, 욘이 찍은 여러 나라 민속 사진이다.

아스거 욘의 화풍은 서구에서도 제3의 시각언어에 속한다

한편 이번 전시에는 관객 참여형 작품 <삼면축구>를 선보인다. <삼면축구>는 아스거 욘이 고안한 경기 방식으로, 세 팀이 동시에 경기를 진행하여 실점을 가장 적게 한 팀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골 득실에 따라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일대일의 경기와 달리, <삼면축구>는 세 팀의 공격과 수비가 균형을 이뤄야 승리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아스거 욘이 냉전시대 미·소 양국의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예술을 통해 찾고자 한 대안적 세계관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아스거 욘, <삼면축구>, 국립현대미술관 설치 전경
수비를 잘 해야 이기는 방식의 게임 룰를 가지고 있다
아스거 욘, <삼면축구>에 대해서 설명하는 '박주원' 학예사

'아스거 욘'은 3팀이 경기하는 축구와 같은 <강강약 이론>은 제3의 관점, 새로운 대안이다.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2개의 강대국 사이에서 제3의 중재자 혹은 피스메이커(peace maker)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그래야 해결책이 나온다. 바로 그런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3팀이 하는 축구에서는 골을 많이 넣는 공격을 잘하는 팀보다 수비를 잘하는 팀이 이긴다.

첫 번째 주제에서는 고전적 미술 언어의 틀을 깨는 아스거 욘의 초기 작업(1930~40년대)을 살펴본다. 욘은 예술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욘은 피카소나 미로 등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한 ‘전환’을 시도하며 다양한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아래 작품이 그런 화풍이다.

아스거 욘, <무제(미완의 형태 파괴)>, 캔버스에 유채, 122×97cm,, 1962.  성상을 해체하는 제3의 방식

두 번째 주제에서는 아스거 욘의 사회적,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는 그룹 활동‘코브라(CoBrA)’,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SI)’ 등을 소개한다. 1948년 결성된 코브라는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앞 글자에서 따온 명칭으로, 여기서 욘은 공동체 활동과 연대, 창의성에 바탕을 둔 대안적 문화를 실험하고자 했다. 1957년 결성된 SI는 예술의 상품화를 지양하고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며 예술적 창의력을 일상생활에 접목시키고자 했다.

세 번째 주제에서는 북유럽 전통으로부터 대안적 이미지를 탐구한 아스거 욘의 연구를 살펴본다. 욘은 SI를 떠나 1961년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the Scandinavian Institute for Comparative Vandalism, SICV)을 설립했다. SICV는 스칸디나비아 중세 예술 연구를 통해 북유럽 문화가 예술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대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아스거 욘 I 독수리의 몫(The Eagle's share II) Museum Jorn collection 74.5*60cm 1951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 축구의 룰 경기 전에 새롭게 정할 수가 있다. 세계평화가 오려면 한반도에 남북이 공존과 남북철도사업이 제3의 매치메이커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세계 미국(일본) 대 소련(중국) 중심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백남준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서구와 경쟁에서 잘 풀리지 않으면 새로운 룰을 만들면 된다" 욘의 발상은 바로 그것과 유사하다.

바우하우스는 회화, 공예, 디자인, 건축 등을 동급으로 봤는데 아스커 욘은 바로 이런 바우하우스와 견해를 같이했다.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보다 개방적이고 관대하고 협동적인 예술공동체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하다. 다시 말해서 예술의 엘리트주의를 반대하고 예술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전문가가 아니가 바로 관객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코브라 전위미술그룹에 대하여]

아스거 욘 I 새로운 물결의 거품(The foam of the New Wave) oil, gold, leaf on canvas Museum Jorn collection 138*200cm 1963-1970

<코브라(CoBrA 1948~1951)>그룹은 코펜하겐(Co), 브뤼셀(Br) 그리고 암스테르담(A)에서 온 합성어이다. 이 그룹은 1948년 11월 8일 시작되었다. 회원들은 "명분(의견)이 일치되었다(La cause était entendue)"라는 프랑스어로 된 제목의 결의안을 선언하고 파리 센 강변 생-미셸에 위치한 노트르담 카페모임의 근거지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들은 미술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신념을 알리고자 했다. 이들은 파리지식인층에 반기를 들고 이론적 교조주의에서 탈피된 진정한 실험정신을 가지고 유기적인 협동체이기를 바랐다.

이번 서울전에 동행한 실케보르그 욘 미술관 야곱 테이 관장

북유럽에서 파리로 이들은 전통으로 굳어진 파리화단을 대항하여 북구적 특징을 근간으로 하여 접근하다. 이들은 신화, 민속화, 아동화, 서예, 원시미술에서 주제와 구상을 끌어냈다. 강력한 색채와 물감을 흘릴 때 발생하는 효과를 사용하여 기존의 미적 가치를 무시하고 거친 작업 방식과 자생적인 실험정신을 기반으로 했으며, 특히 어린이 그림, 원시예술 형식, 파울 클레(Paul Klee)과 호안 미로(Joan Miró)작업에서 영감을 받았다. 

욘은 회화를 비롯해 조각, 드로잉, 사진, 출판물, 도자, 직조, 아카이브 등을 선보인다.  

첫 번째 주제에서는 고전적 미술 언어의 틀을 깨는 아스거 욘의 초기 작업(1930~40년대)을 살펴본다. 욘은 예술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이를 위해 욘은 피카소나 미로 등의 작품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한 ‘전환’을 시도하며 다양한 회화 작품을 선보인다.

이 석판화가이기도 한 아스거 욘(Asger Jorn) 고유한 스타일의 전형이며 자생적이고 오리지널하다. 녹색, 검정, 파랑 및 흰색의 제한된 팔레트을 사용한다. 욘은 프랑스 작가 '앙드레 마송(Andre Masson)'의 자동기술법과 전통 민속 예술에 대한 오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그런 영향을 받았다.

아스거 욘 I '해변의 사제(The Priest at the Beach)'

 왜 아시아에서 욘전이 처음 열렸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욘은 미국과 서구유럽의 유명작가나 전문가에게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었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그는 나의 예술의 영감을 주는 원천이라고" 하지만 비전문가에게는 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때가 차서 그에 대한 관심이 아주 대중화되었다. 작년에 욘을 책을 내고 이것을 덴마크 초등학생들에게 보급하고 있는데 아주 반응이 좋습니다

<지금 유럽과 미국 등 4곳에서 동시에 '아스거 욘' 전이 열리고 있다>

덴마크 욘 미술관 관장 '코페이야' 인사말에서 과연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덴마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인 욘의 미술세계를 어떻게 한국인들이 받아들일지 궁금하다고 하다며 관장은 한국에서 욘 전시에 열리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지금 미국과 유럽 4곳에서 동시적으로 욘의 전시가 열리고 있는데 이런 면에서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욘이 가장 중시하는 건 2가지인데 [1]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 [2]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한 예술을 강조하다.

왜 아거스 욘 전시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게되었나 https://www.youtube.com/watch?v=mTy1sjPYZfg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시 때 인터뷰 장면

주류미술사에서 벗어난 제3의 관점에서 보는 미술전시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 국립현대에서는 그런 작품의 예를 들면
[1] 2017년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2]《크지스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요나스 메카스: 찰나, 힐긋, 돌아보다》 [3] 2018년 《아크람 자타리: 사진에 저항하다》다. 이 시리즈 전시를 맡고 있는 '박주원'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다.

《예술이 자유가 될 때: 이집트 초현실주의자들(1938-1965)》 전시때 소개된 카밀 알텔미사니 앉아있는 누드

이번 전시는 바로 이런 전시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구 주류미술사 편중에서 벗어나 대안적 전시이다. 현대미술에서 보는 보다 다양한 시점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한 전시라고 할 수 있다.

68혁명의 구호 포스터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은 68혁명에 영향 주다.

소비자본주의를 비판하는 2명의 작가 중 우선 '기 드보라'가 있고 그의 저서인 '스펙타클의 사회'는 너무나 유명하다.

이번 전시의 2번째 주제에서는 아스거 욘의 사회적, 정치적 행보를 보여주는 그룹 활동‘코브라(CoBrA)’, ‘상황주의 인터내셔널(Situationist International, SI)’ 등을 소개한다. 1948년 결성된 코브라는 코펜하겐, 브뤼셀, 암스테르담의 앞글자에서 따온 명칭으로, 여기서 욘은 공동체 활동과 연대, 창의성에 바탕을 둔 대안적 문화를 실험하고자 했다. 1957년 결성된 SI는 예술의 상품화를 지양하고 소비 자본주의를 비판했으며 예술적 창의력을 일상생활에 접목시키고자 했다.

68혁명 때 파리에서 사람들에게 나누어준 혁명 포스터 들의 표어를 보면 그 내용이 이렇게 적혀 있다. 맨 오른쪽을 보자 "Vive  la Revolution Passioné de Inteligence Creative" [1] 창조적 지성의 열정적인 저항정신이여 영원하라(만세) 영어로 다시 고치면 "Long Live the Passionate Revolution of Creative Intelligence" 그밖에 [2] 강력한 이미지 없이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다. [3] 이미지를 억압하는 뚝을 무너뜨리자 [4] 자유롭게 공부하고 배워야 할 학생들을 지지한다. 등등

상황주의자 '욘'과 '드보르'가 국제적 활동을 통해 저술한 책 '기억들'

그렇다면 아스거 욘과 그와 같이 활동을 했는데 뭐가 다른가 할때 '기 드보르'는 예술이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면에서 역부족으로 봤다. 왜냐하면 미술이 여전히 자본시장에 완전히 벗어날 수 없기에 그러나 욘은 예술이 진정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차이점으로 인해 욘은 나중에 상황주의에서 탈퇴하게 되고 그러나 그 연대활동은 여전히 지속되었다. 이런 운동은 나중에 68혁명에까지 영감과 영향을 주게 된다.

<전시구성> 1. 실험정신 2. 정치적 헌신 3. 북유럽 전통에 근거한 대안 

'호안 미로' 작품, 아스거 욘 그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다

[1] <실험정신, 새로운 물질과 형태> : 아스거 욘이 작가로서의 경험을 쌓아가던 1930-1940년대 덴마크는 초현실주의와 바실리 칸딘스키, 파울 클레, 호안 미로 등 유럽의 젊고 진보적인 예술가들에 주목하였고, 스칸디나비아 민속예술, 국가적 전통이 혼합된 추상적 표현주의 예술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젊은 시절부터 커뮤미니스로 활동하였던 욘은 예술도 공동체 경험으로 간주하여 개인 창작품 역시 그 본질은 특정한 사회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에 그의 예술은 하나로 정의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였다. 이러한 접근방법 중 하나로 욘은 작품의 구성 방식에서 ‘전환’을 시도하는데, 이는 고전주의적 장면에 대한 도전인 동시에 새로운 자신의 시각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초기 작업에서 찾아볼 수 있듯 욘은 피카소나 호안 미로 등 다른 작가들의 표현양식을 자신의 목적대로 전환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틀 깨기’는 이후 그의 작업 안에서 더 급진적이고 독창적으로 나타난다.

아스거 욘 I 이번 전시가 지난한 과정을 통해서 성사되었음을 보여주는 설치미술

[2] <정치적 헌신, 구조에 대한 도전> : 아스거 욘의 사회, 정치적 헌신은 그의 작품 전체에 걸쳐 나타나는 하나의 특징이다. 이러한 비판적 메시지는 미술 잡지「지옥의 말」, 코브라, 이미지주의 바우하우스 운동 그리고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 등 아스거 욘이 설립, 주도하였던 예술이다. 그룹 활동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다. 예술을 통해 사회적 변화를 이루고자 노력했던 이 단체들 안에서 욘은 대중의 통념과 사회 구조에 도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3] <대안적 세계관, 북유럽 전통>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을 떠난 아스거 욘은 1961년 가을,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SICV)를 설립하였다. 이 연구소의 설립 취지는 스칸디나비아 전통 연구에 중점을 둔 도서 시리즈「북유럽 민속예술의 1만 년」32권을 출판, 관리하며 “현대 사회에서 예술적 사색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상황주의자 인터내셔널에 대한 해설

당시 욘이 스칸디나비아 비교 반달리즘 연구소를 통해 출판했던 책들은 대부분 선사시대부터 중세까지 스칸디나비아 예술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욘은 그동안 남유럽 전통이 북유럽 문화를 한정적이고 지역적인 민속예술로 평가절하하였다고 주장하였다.

더불어 만년의 역사가 축적된 북유럽 문화는 기독교 성경을 기반으로 한 문자 중심의 남유럽 문화와 달리, 야만적이고 행동 지향적이며 이미지를 중심으로 한 고유 문화라고 보았다. 또한 욘은 이러한 북유럽 전통 연구를 통해 기존의 지배적인 고전 문화를 해체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과 이해를 제안할 수 있다고 믿었다.

[진중권의 현대미술 이야기] 상황주의 인터내셔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210262038215

아스거 욘 I  뒤에 보이는 노란색과 검은색 작품은 '무제 데콜라주' 상자에 부착된 찢어진 포스터 64*49cm 1964

상황주의 전략들  -진중권 [1] ‘표류’(de+'+rive)의 전략: 드보르는 이렇게 정의한다. “몇 미터의 공간 안에서 거리 환경의 급격한 변화. 상이한 심리적 분위기를 갖는 지대들로 도시를 명확히 분할하는 것. 자동적으로 가장 저항이 덜한 길을 택해 정처 없이 걷는 것.” 가령 보들레르의 만보객(flaneur)처럼 할 일 없이 도시를 방황할 때, 우리는 평소에 물리적으로만 접하던 도시를 새로이 심리적 환경으로 체험하게 된다. 여기에는 뭔가 전복적인 측면이 있다

[2]‘심리지리’(psychogeography): 드보르는 심리지리를 “의식적으로 조직된 것이든 아니든, 지리적 환경이 개인의 감정과 행동에 끼치는 특수한 효과에 관한 연구”로 규정한다. 평소에 다니던 것과는 다른 경로를 취할 때, 도시는 우리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다. 심리지리는 이렇게 “도시를 탐험하기 위한 재미있고 창의적인 전략”을 연구한다. 드보르의 ‘벌거벗은 도시’(1957)는 파리의19구역을 연결해 그런 심리지리적 배회의 가능한 경로를 가설적으로 제시한다. 

아스거 욘 I 새로운 물결의 거품(The foam of the New Wave) oil, gold, leaf on canvas Museum Jorn collection 138*200cm 1963-1970

[3] ‘통합적 도시주의’(unitary urbanism): [1] ‘표류와 [2]‘심리지리’(psychogeography)를 합친 것이다 이것은는 ‘예술과 기술의 통합’을 추구한 바우하우스에게 더 친근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콩스탕의 ‘바빌론’(1958)은 유목적 이동과 대중적 유희를 가능하게 하는 통합적 도시주의 기획의 구체적 예를 보여준다. 

[4] ‘변환’(de++tournement): ‘스펙터클’이라는 매스미디어 문화에 대항하는 카운터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일찍이 브레히트는 자본주의적 대중문화의 요소를 혁명적 실천의 도구로 전환하는 ‘기능 전환’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변환은 자본주의의 상업적 광고와 정치적 구호를 뒤집어, 자본주의 체제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욘은 문자를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중심으로 둔다. "태초에 이미지가 있었다"라는 말도 나오는데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절 패러디한 것이다. 즉 이미지가 문자보다 훨씬 더 일반 대중에서 빠른 소통과 원활한 전달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욘은 '문자(text)'보다 '이미지(image)'를 중시하다

진중권 미학자 상황주의 인터내셔널에 대해서 상세하게 그리고 전문적인 학식을 가지고 시대 배경과 함께 문자주의와 이미지주의 차이점을 설명하네요 당연히 아스거 욘은 이미지주의에 속하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아스거 욘 I '무제' 유채 69*86cm 1946

포괄적으로 보면 표현주의 계열에 들어갈 수 있지만 독일과는 뭔가 다른 점이 있어 보이네요. 색채가 독일보다는 유쾌하고 그러나 독일보다는 더 단순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 같다

그리다가 만 것 같은 천진난만한 유아적 성향도 보이고 원시미술적인 요소가 많다. 그야말로 잘 그리는 것을 배격하는 그러나 인간의 감정의 찌꺼기를 시원하게 씻어주는 그리고 일반 관객도 접급하는데 장애가 없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색채의 황홀함으로 사람의 영혼을 맑게 해주는 그런 요소가 다분한 것 같다

욘은 관객이 전시의 주인임을 강조하다 

아주 흥미로운 작품이 있는데 동물과 사람을 동급으로 그렸다. 2차대전을 보면서 인간의 급은 낮추고 동물을 급은 높인 것인가 하여간 그렇다. 아시아에서는 천지인 사상이 있기에 이것이 매우 자연스럽다. 인간 자연 우주 동급이죠 그런데 백남준은 사람과 기계와 우주, 동물과 식물 이것을 또한 거의 동급으로 본다. 그가 로봇을 대하는 태도는 사람과 거의 같게 보고 있는데 그런 면에서 유사한 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