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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론미술사

[홍가이평론가가 본 윤형근] 단색화보다 담색화

홍가이평론가, 윤형근화백은  단색화보다 담색화다

홍가이는 평생 백남준을 비판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는 확실히 매력이 있다. 참으로 특이한 분이다. 물리학을 하다가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다. 공부는 잘 했기에 MIT교수도 했겠죠. 그런데 그가 한 말 중에 마음에 드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담(potential force)'의 미학이다. 다시 말해 '담백'의 미학 '담담함'의 미학을 한국미의 원형으로 본다. 참으로 흥미롭다.

윤형근은 단색화가 아니고 담색화이다. 그는 말한다 "*1973년부터 내 그림이 확 달라졌다. 서대문 교도소에서 나와 홧김에 한것이 계기였다. 그전에는 색을 썼는데 화려한 것이 싫어 그림이 검어진 것이다. 욕을 하면서 독기를 뿜어낸 것이다. 그림에 내 삶이 담담하게 배인 것이다"

내 생각에 서구에서 말하는 숭고미(sublime)는 윤형근이 보여준 담담함의 미(fadeur)보다 훨씬 낮은 단계의 것으로 숭고미는 사실 너무 정신적 나약함과 우울함과 절망감의 뉘앙스를 풍긴다. 우리가 숭고미를 더 높이 평가하는 것은 서구에 대한 사대주의적이고 식민지적인 발상일 뿐이다. -홍가이

'담(淡)'이라는 한자어에는 물(삼수변)이 한 개 들어 있고 불(火)이 두 개 들어 있다 그러니까 물처럼 차분한 마음이지만 그 속에 불처럼 뜨거운 마음이 또한 두 배로 들어 있기에 사실은 차분한 마음 그 이상의 다이나믹한 마음을 말한다.

한국을 흔히 고요한 아침의 나라(morning calm)라고 한다 여기에 한국민의 원류가 되는 담(calm)단어가 들어가 있다 그런데 한국인의 담은 그냥 담이 아니라 역동적인 담이다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은 오해하게 된다. 내면의 격정과 고민과 고통을 최고로 승화시킨 아주 높은 단계의 우주적인 담인 것이다.

담이란 단색화의 정신의 원류인데 이것은 평온(serenity)과 고요(calmness)를 말하고 긍극적으로 우주와의 합일을 의미한다 천지인의 하나(oneness with the universe)라는 말이다 내몸과 우주의 질서 자연의 몸과 하나(oneness)가 될 때 그때 진정한 합일과 융합과 소통과 통섭이 가능한 것이다. 바로 인류공동체 백남준이 말하는 TV코민의 새로운 장이 열리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인터넷이 등장했다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윤형근의 색채는 천지만물 즉 하늘[blue]의 색과 땅의 색[umber]을 융합해서 만든 신비한 우주를 품은 검은 색이다. 거기에 한국인의 특이한 무심한 듯 향기로운 흙의 정서도 담겨 있다.> 윤형근의 색채를 남다르다. 그는 캔버스가 아닌 면포나 마포 그대로의 표면 위에 하늘을 뜻하는 청색(Blue)과 땅의 색인 암갈색(Umber)을 섞어 만든 ‘오묘한 검정색’을 큰 붓으로 푹 찍어 내려 그은 것이다.

 

제작 방법에서부터 그 결과까지 지극히 단순하고 소박한 이 작품들은 오랜 시간 세파를 견뎌낸 고목(古木), 한국 전통 가옥의 서까래,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흙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그는 이렇게 ‘무심(無心)한’ 작품을 통해 한국 전통 미학이 추구했던 수수하고 겸손하고 푸근하고 듬직한 ‘미덕’을 세계적으로 통용될만한 현대적 회화 언어로 풀어내는 데에 성공했다.


"윤형근의 회화세계는 침묵의 시보다는 대지의 노래이자 우주의 음악이다" - 홍가이. 홍가이는 윤형근의 담담함의 세계를 프랑스어로는 'fadeur(의연함, 담담함, 초연함)'와 유사하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의 화폭이라는 대지에는 우주의 기운이 충만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해석이 틀리지 않는다면 머지 않아 미래에 윤형근은 20세기 후반의 세계적인 대가로 평가되어야 마땅한 사람이다. 마치 세잔이 사후에 더 유명해진 것처럼 말이다.

프랑스 철학자 '프랑수아 줄리앙(François Julien)'은 서구인들에게 그 사고방식의 전환을 촉구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서구인들로서는 서구가 겪고있는 제반 현상에 대해 총체적인 이해를 놓치기가 쉽다. 중국문명으로 우회함으로써 얻어지는 첫 효과는 서구인들로 하여금 서구 제반 현상의 윤곽과 그 전체성을 파악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 홍가이 책(현대예술은 사기다)에서

 

<담담담하다> 담을 한번 쓰면 그냥 담담하다는 뜻이고 담담을 두번 쓰면 더 담담하다는 뜻이고 담담담을 세번 쓰면 가장 담담하다는 뜻이 된다 이런 식의 표현은 히브리어적 표현이다. / 히브리언어는 비교급과 최상급이 없다. 그래서 2번 쓰면 비교급 3번 쓰면 최상급이 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거룩하시다> 3번을 쓰면 가장 거룩하시다라는 최상급이 된다. 야훼 신에게 붙이는 말이다.

 

그러면 요한의 묵시문서(계시록)에 나오는 <666>은 뭔가? 이것도 최상급의 표현이다. 6은 나쁜 것이라는 뜻이다. 666은 가장 나쁜 것(놈)이라는 뜻이 된다. 그렇다면 이건 뭘 말하는가? 당시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한 네로황제를 암호로 쓴 말이다. 로마 황제인 네로를 대놓고 비판할 수 없었다. 당시 초대기독교인들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박해를 받았고 그래서 모두가 지하교회로 숨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서양은 자연(nature)과 문화(culture)를 구별한다 동양은 자연과 문화 혹은 인간을 하나로 본다. 인간은 포괄적인 자연이다. 봄이 되면 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도 꽃이 핀다. 처녀의 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서양은 이것을 분열시키고 2분법화 전쟁을 붙이다. 그러면서 인간이 자연을 정복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론을 펼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환경파괴의 시작이다.

그런데 루소는 특이하게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여기서 자연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의 본성으로 돌아가자 그러면 본성은 뭔가 그것은 바로 인간은 자연의 한 유산물이라는 것이다 동양의 물아일체가 그렇게 나온 것이다. 이제는 분열된 이원론에서 통합된 일원론으로 돌아가야 지구상에 다시 평화와 공존과 형제애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작가소개]**1973년 유형근 숙명여고 미술교사였는데 당시 박정희의 총애를 받는 정보부장 딸을 숙명여고에 부정입학시켰는데 윤형근이 사정회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비판하자 학교에서 해고되고 <반공법 위반>으로 감옥까지 가게 된 사건 /  윤형근이 수업(홍대대학원)을 할 때 두 문장을 사용했다고 한다 "우선 사람이 되어라" 그리고 "내 그림은 추사의 쓰기(서예)에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