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에 대한 식민지적 관점과 프레임에서 벗어나게 하다>
오쿠이 엔위저, 미에 대한 우리들 식민지적 관점에서 간신히 벗어나게 한 장본인
우리 시대의 미술의 지리적 지평을 넓힌 천리안을 가진 가장 탁월한 큐레이터, 고인이 되다
Okwui Enwezor, artistic director of the 56th Venice Biennale, with Venice Biennale President Paolo Baratta (March 6, 2015). | Photo courtesy Venice Biennale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미술판을 확 바꾼 혁명가였다. 임흥순 작가가 베니스비엔날레 은사자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관점에 기인한 것이다. 세계미술계에 처음으로 최초의 식민지 경험을 전달한, 그리고 지금까지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목소리롤 탄원한 그런 경험을 시각화 예술화하다.
“The present political moment is a reminder of why art cannot be isolated from the everyday experience.”
오쿠이 엔위저(1963년)는 나이지리아 출신 큐레이터 이자 미술평론가, 작가, 시인, 미술사가, 교육자이다. 미국 뉴욕 시와 독일 뮌헨에 거주한다. 2014년 《아트리뷰》가 선정한 '미술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목록에서 24위에 올랐다
최근 <르몽드지>는 기사 제목과 부제에서 그를 이렇게 평가했다. "최근 4년간 암투병을 하다 3월 15일 55세로 사망한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 큐레이터를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미술인으로 남을 거다"
Okwui Enwezor (1963-2019). | Photo: Venice Biennale 독일신문 보도 Okwui Enwezor는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현대 미술세계의 지리적 범위를 넓히다. http://www.artnews.com/2019/03/15/okwui-enwezor-dead-55/1963/
금요일에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고 존경받는 큐레이터 엔위저는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카셀 도쿠멘타에서 최초의 식민지 경험을 전달한, 그리고 다양한 목소리롤 탄원한 큐레이터 엔위저 멋진 박물관 방에서 우아하게 옷을 입은 남자. 작년 6 월 건강상 뮌헨 미술관 관장직을 사임하다.
엔위저는 나이지리아의 1963 년에 태어나 1982 년 뉴욕으로 옮겨 정치학을 공부했다. 요하네스 버그 비엔날레 총감독에 이어 11회 카셀 도큐멘타의 총감독으로 임명 56 번째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주요 전시를 기획했다.
맑스의 "Capital" 읽기가 주제였다. 3년 전에 그는 뮌헨 쿤스트의 관장에 임명 건강이 악화되어 사임하다.
추신 광주비엔날레 총감독도 했었죠. 그의 활기찬 모습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본 기억이 난다 임흥순 작가가 베니스 은사자장 받은 것도 그의 새로운 관점 때문이다. 그의 소외된 제3세계에 대한 미술의 발굴하려는 노력의 한 결과물일 것이다.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도쿠멘타 카셀 총감독이 되었을 때 모습 Foto: Frank Leonhardt dpa
21세기 들어서면서 세계미술판을 확 바꾼 혁명가였다 카셀 도쿠멘타에서 바로 그런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다. 세계미술계에 처음으로 식민지 경험과 그에 대한 탄원을 시각화하고 예술화하다.
유작처럼 마지막으로 기획한 전시 : 엘 아나츄이(El Anatsui) 전시장 작품 엔위저 큐레이터가 유작으로 기획한 전시다. 지난 주 전시를 연 엔위저가 공동 큐레이터 참여한 아프리카 가나 예술가 <El Anatsui 회고전> 이제 그의 유산이 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한 미술인인데 일찍 귀천하다. 그가 시인이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그가 좋은 큐레이터가 된 것은 바로 정치감각과 시인감각(political and poetical mind) 때문일 것이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본 그의 인상은 스마트했다 유엔 (좋은) 사무총장처럼 [물론 반기문처럼 나쁜 사무총장도 있다] 세계 미술계 좋은 사무총장 같은 역할을 하다 그는 나름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하다.
Special stylist Okwui Enwezor
<1> Okwui Enwezor] <To cap it all, Okwui not only cooks up great ideas… but also great fish.> Okwui Enwezor suddenly appeared in my life in 1994 at a Polish café in East Village, New York. I had never heard of him before. I was a reporter for Flash Art magazine in New York, and he was the chief editor of NKA Journal of Contemporary African Art, which he had established the previous year. I was hypnotized by the eloquence of this extremely elegant man. The art world was at the dawn of globalization and Okwui seemed like the natural candidate to guide contemporary art towards the new frontiers of multiculturalism.
<2> Seated at the table of the café, I would have never imagined that in just four years, this person – who seemed right out of the book The Invisible Man by Afro-American author Ralph Ellison – would have zoomed straight to art heaven to become the first non-European and the first African director of Documenta, the extremely prestigious German exhibit. Documenta is the Vatican of the art world, and Okwui was proclaimed “Pope” at just thirty-five years of age. "It was an exhilarating experience. When I was nominated, my first reaction was one of terror and incredulity".
<3> Born in Calabar, Nigeria, in 1963 and a member of the Igbo ethnic group, Okwui was sent to study in a boarding school in England. "I still remember when they taught us to cut the hedges in the style of British aristocratic gardens", he says with an ironic smile and an expression of disgust for the arrogance of British colonialism. Before he turned twenty, he decided to continue his studies in the United States. "I was excited when I boarded that Pan Am flight in 1982. When I arrived, I never thought that contemporary art would have become my field".
Okwui Enwezor in seinem Antrittsjahr 2011 http://Okwui Enwezor in seinem Antrittsjahr 2011 bei einer Pressekonferenz im Haus der Kunst Foto: Frank Leonhardt dpa https://www.youtube.com/watch?v=7evvf1CLHv4 <인터뷰>
<4> In fact, Okwui graduated in Political Sciences from New Jersey University and he was also a poet. Today, as one of the most powerful authorities on contemporary art, his point of view is still a combination of poetry and international diplomacy. "I’m not interested in art per se, but in art as a political instrument: a system for understanding the changes taking place in the world, not simply the changes in aesthetic languages». His first big chance to make a name for himself in his field occurred when he was nominated director of the second Johannesburg Biennial in South Africa in 1996. The elite of the art world rushed to see the work of this young visionary. He passed with flying colors and for him, the sky was the limit. His exhibits became milestones in the history of contemporary art and a point of reference for many other curators.
<5> Today Okwui is the director of the Haus der Kunst museum in Munich, Germany. The museum is in a building that was constructed in 1937 and is a symbol of Nazism. I ask him what it feels like directing an institution that is burdened with that memory. "Buildings are never guilty. This museum, which is almost 80 years old, was run by the Nazis for less than 10 years. We don’t want to deny its history, but we also don’t want to allow a brief episode to still influence our plans".
<6> The exhibits organized by Okwui Enwezor are always fantastic exercises where art blends with myriad subjects, from literature and architect to journalism, politics, and quite often photography. "An exhibit is always a story about something complex that cannot be limited to the language of visual arts". Despite his international profile, Okwui Enwezor’s reflections always focus on Africa, especially that part of Africa that has escaped from colonization with its wounds and trauma.
<7> I ask him: "What is contemporary Africa?". The subtle orator that he is, he answers me with another question. "Contemporary Africa? You first have to ask yourself if Africa has ever been modern or it if has skipped this phase to enter a moment in history that is much too complicated to define with the simple word ‘contemporary". You can’t help but discuss the Arab Spring with a man who could one day become the Secretary General of the United Nations. "The Arab Spring started out with a big failing by only focusing on the Arab world and not including Sub-Saharan Africa. They’re not looking at the changes happening below them: by only concentrating on the revolutions occurring in Northern Africa and the Middle East, they risk isolating themselves. Think of what is happening in Mali: even though it is not as spectacular on a media level as the events in Libya, Egypt and Syria, it can still have huge consequences on the equilibrium of the African continent".
베니스비엔날레 총감독을 취임한 엔위저 큐레이터
<8> And what about Nigeria? Will you ever move back to live there permanently? "My entire intellectual position is based on my origins. You don’t have to live in a place to be a part of it". With this concise phrase, we say goodbye on Skype and plan to see each other soon in his beautiful home in Brooklyn, possibly for lunch. To cap it all, Okwui not only cooks up great ideas… but also great fish.
<추신>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현대 미술 큐레이터 중 한 명인 오쿠니 엔위저가 지난 주 암과의 긴 전투 끝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는 세계 미술계의 위대한 영혼을 잃었다. When Okwui Enwezor, one of the world’s most influential curators of contemporary art, died last week after a long battle with cancer, the world lost one of art’s great minds. During his decades-long career, Enwezor organized numerous acclaimed exhibitions, including the 2015 Venice Biennale and documenta 11 in 2002, and served as artistic director at Munich’s Haus der Kunst for seven years (before his tumultuous departure last year). He promoted a global view of art that forever changed the way art history is written. We reached out to a handful of artists, curators, and others to reflect on his life and legacy. Here are their tributes.
폐쇄적이고 갇히지 않고 편협하지 않은 보다 보편적 지구적 포괄적인 세계미술사를 여는데 영감을 주다 Enwezor inspired a global, inclusive view of art history
<"과거와 현재를 보지 않고서는 미래를 볼 수 없다" -엔위저. 미술사를 열심해 공부해야 하는 이유다> [뉴욕타임스] 작고한 엔위저 전시기획자가 디자인한 그의 마지막 전시가 2021 년 중동에서 열린다 [평] 엔위저 르몽드로부터 우리 시대 가장 위대한 미술계 영웅이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는데, 그가 생존에 기획한 전시인 모양이군요
엔위저는 전시기획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만 아니라 생선 요리도 훌륭하다 – 엔위저에 대한 추억담인가요. 글을 맛깔스럽게 쓰다 그는 35살에 미술계의 바티칸인 독일 도쿠멘타의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그것도 단박에 이뤄졌다.
[1] 엔위저는 1994년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폴란드 카페에서 갑자기 나타났다. 내 인생을 거기서 그를 처음 만났다. 전에는 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뉴욕에서 <플래시 아트> 잡지의 기자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새로 창간한 <현대 아프리카 미술 저널>의 편집장이었다. 나는 이 매우 우아한 남자의 웅변에 최면이 걸렸다. 당시 미술계는 세계화의 여명기에 있었고, 그는 현대미술을 다문화주의의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 적임자처럼 보였다.
[2] 그를 카페 테이블에 봤을 때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랄프 엘리슨의 소설 '투명인간'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이 사람이 불과 4년 만에 예술계 최고 권위자로 직행했다. 독일의 권위 있는 전시 도큐멘타의 첫 번째 비유럽인이자 첫 번째 아프리카계 출신 총감독이 되었다 당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도큐멘타는 미술계의 바티칸이라 불리는 곳이다. 그는 불과 서른다섯 살에 '교황'으로 추대되었다. 그는 말했다. "그건 짜릿한 경험이었다. 교황으로 지명되었을 때의 첫 반응은 공포였고 믿기지 않는다"
[3] 1963년 나이지리아 칼라바르에서 태어나 그는 이그보족의 일원이었다. 고향에서 떠나 영국의 기숙사 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그는 "영국 귀족 정원 스타일로 울타리를 치고 배웠을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러니한 미소와 함께 영국 식민주의의 오만함에 대한 혐오감을 드러냈다. 19살이 된 그는 미국에서 공부를 계속하기로 했다. "1982년 팬암 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갈 때 많이 설렜다. 도착했을 때만 해도 현대미술이 제 분야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라고." 말했다.
[4] 엔위저는 미국 뉴저지 대학교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시인이기도 했다. 정치학을 하다 보니 맑스 책 필독서였다. 오늘날 현대 미술의 가장 강력한 권위자 중 한 명인 그의 관점은 여전히 시정신과 국제 외교를 결합한 것이다. "저는 예술 그 자체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도구로서의 예술, 즉 단순히 미적 언어의 변화가 아니라 세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이해하기 위한 시스템에 관심이 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199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의 감독으로 지명되면서 자신의 분야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알릴 좋은 기회를 얻었다. 미술계의 엘리트들이 이 젊은 선구자의 기획전을 보기 위해 몰려들었다. 그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어떤 한계를 넘어섰다. 그의 전시회는 현대 미술사의 이정표가 되었고 다른 많은 큐레이터가 참고할 만한 전시회가 되었다.
[5] 오쿠이는 현재 독일 뮌헨에 있는 하우스 데어 쿤스트 박물관의 관장이다. 이 박물관은 1937년에 지어진 나치즘의 상징인 건물에 있다. 그에게 그 기억을 안고 있는 기관을 지휘하는 기분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건물은 결코 죄가 없어요. 80년 가까이 된 이 박물관이 나치에 의해 운영된 기간은 10년도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그 역사를 부정하고 싶지 않지만, 짧은 에피소드가 여전히 우리의 계획에 영향을 미치도록 허용하고 싶지 않다."
[6] 그가 기획하는 전시는 문학, 건축, 저널리즘, 정치, 그리고 종종 사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주제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작업이었다. "전시는 항상 시각 예술의 언어로만 한정할 수 없는 복잡한 뭔가에 관한 이야기다."라고 그는 말했다. 국제적인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그의 전시에는 항상 아프리카, 특히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상처와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아프리카의 일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7] 나는 그에게 "현대 아프리카란 뭔가?" 물었다. 미묘한 웅변가인 그는 또 다른 질문으로 나에게 던졌다. "현대 아프리카? 먼저 아프리카가 현대적이었는지, 아니면 이 단계를 건너뛰고 '현대'라는 단순한 단어로 정의하기에는 너무 복잡한 역사의 한순간에 접어들었는지 자문해봐야 하다"라고.
언젠가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는 한 이 남자와 아랍의 봄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랍의 봄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를 포함하지 않고 아랍 세계에만 초점을 맞추면서 큰 실패를 안고 시작되었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일어나는 혁명에만 집중하다 보니 그 아래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보지 못하고 스스로 고립될 위험이 있다. 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생각해 보라.. 리비아, 이집트, 시리아에서 일어난 사건만큼 언론의 주목을 끌지는 못했지만, 아프리카 대륙의 균형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8] 나이지리아는 어떤가요? 나이지리아로 돌아가 영구적으로 거주할 의향이 있나요? "내 모든 지적 입장은 내 출신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 일부가 되기 위해 꼭 그곳에 살 필요는 없죠." 이 간결한 문구로 스카이프로 작별 인사를 나누고 곧 브루클린에 있는 그의 아름다운 집에서 점심을 먹으며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는 전시에서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질 뿐만 아니라 생선 요리도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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