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MMCA 서울 3-4-8 전시실에서 2018. 8. 4~12. 16까지 작품 40여점, 드로잉 40여점, 아카이브 100여점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가 드높은 하늘의 별빛 그 찬란한 세계를 그렸다면 윤형근은 드넓은 땅의 흙빛 그 숭고한 세계를 그렸다 김환기와 윤형근이 있어 한국화는 하늘과 땅이 제대로 만나게 된 것이다 김환기가 그의 장인이고 윤형근이 김환기의 사위라니 흥미롭다 Whanki Kim painted the brilliant world of starlight in the sky, while Yun Hyung Keun painted the noble world of earthy soil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전시 베니스 간다! MMCA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윤형근>전의 이탈리아 베니스 순회가 확정되었다.🎉🎉🎉내년 2019년 5-11월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중에 베니스의 유력 시립미술관인 포르투니 미술관과 협약을 체결 *<윤형근> 포르투니 미술관 전시일정 2019.5.11.-11.24.(2019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과 동일하나 개막일은 현지 상황에 따라 하루 이틀 변동될 수 있다.)
여기서부터는 '천지문 (天地門) 시리즈(하늘색과 땅의 색을 뒤섞다)' -“진실로 서러움은 진실로 아름다움 하고 통한다.”- 윤형근, 1988년 8월 17일 일기 중에서
윤형근 작가(오른쪽에서 2번째), 김환기 선생의 사위였죠 김환기 선생 따님은 김환기 똑 같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김환기 따님에게 아버지와 남편의 작품 중 어느 것이 더 훌륭하냐고 물으면 100번 다 남편을 응원했다고 하는군요
제 2부에서는 1973년 반공법 위반 협의로 서대문형무소를 갔다 온 이후 뚜렷한 직업 없이 요시찰인물로 등록된 채 오로지 작업에만 매진하던 10여년의 시기 제작된 작품을 보여준다. 이 시기 작품에 대해서 작가는 스스로 “천지문(天地門)”이라고 명명한 바 있다. 하늘의 색인 블루(Blue)와 땅의 색인 엄버(Umber)를 섞어 검정에 가까운 색채가 탄생하는데, 거기에 오일을 타서 면포나 마포에 내려 그으면‘문(門)’과 같은 형태의 작품이 나오게 된다.
이 시리즈는 검정색의 우뚝 선 구조들 사이로 무언가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형태도 작업과정도 매우 단순한 이 작품들은 서툰 듯하면서도 수수하고 듬직한 멋을 지닌다. 1980년 광주항쟁의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쓰러지는 인간 군상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작품을 남기기도 했는데, 그러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작품들이 전시장을 가득 메운다
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 전시 한국 단색화의 거목(巨木)《윤형근》전시 오디오 가이드를 8월 6일(월)부터 제공한다.평소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배우 지진희는 이번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윤형근(1928~2007) 작가의 극적인 삶과 작품의 궤적을 부드러우면서 울림이 깊은 목소리로 관람객에게 전달하게 된다.
《윤형근》전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참혹했던 역사적 시기에 청년기를 보내며 총 3번의 복역과 1번의 죽음의 고비를 넘겼던 작가의 극적인 삶과 예술세계를 조망한다. 관람객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전할 지진희의 오디오 가이드는 국립현대미술관 모바일 앱(App)을 통해 누구나 들을 수 있다.
윤형근 전에 앞서 인사말 하는 마리 관장 기자들에게 많이 더우시지요 한국어로 인사말을 하자 한국기자들이 박수를 보내다 올해 국립현대미술관 정말 좋은 전시가 많았다 이번 달만 해도 지난 번 박이소 이번에 윤형근 한국미술사에서 가장 중요한 작가 2명이 소개되었고 다음 주에는 르코르뷔지에 제자인 건축가 김중업 등 전시가 이어진다
윤형근의 아들 윤성렬 그는 아버지와 대화를 많이 나누었다면 아버지에 대해서 뭐든지 물어보라고 기자들에게 인사말을 한다. 그는 아버지기가 반공법 등으로 여러 번이 경찰에 끌려가는 모습을 어린 시절에 봐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국립현대미술관 윤형근 전시 홍대대사 배우 지진희
"나는 언제부터인가 흙빛깔이 좋아졌는지 잘 기억은 안 난다 포도나무빛깔도 그렇다 또 돌의 빛깔도 그렇다 자연경치의 빛깔도 겨울의 자연빛깔이 좋다 이 모두가 인조가 아닌 자연의 빛깔이 그중에서도 좋은 자연의 빛깔이 좋다 퇴색한 것 같은 탈색한 것은 같은 그런 빛깔 말이다" -윤형근 1977 [평] 그는 부드러운 향긋한 흙의 자연스러운 빛깔을 좋아한 것 같다
한국관객dl 윤형근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윤형근의 천재성은 맨 처음 알아본 사람을 미국의 유명한 미니멀리즘 작가 도널드 저드였다. 두 사람은 절친이었다 윤형근은 박서보 등보다 4-5년 위 세대로 단색화 개념도 없는 시대에 단색화를 연사람이다 The level of Korean spectator's view is still not enough deep to understand Yun Hyung Keun The first person to know Yun Hyung Keun's genius was Donald Judd, a famous American minimalist artist The two were close friends.
이번 윤형근 전 기획자 김인혜 학예연구사(가운데)
윤형근은 419세대다 그는 천재시인 '신동문'과 동기였다 그의 3인방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20년에 만에 다시 1980년 광주학살을 보면서 너무나 마음이 아팠겠죠 그 분노를 주체할 길이 없어 이런 격한 추상화를 그리게 되는데 그림에 직사각형 모양의 막대기는 사람이고 그 물감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고 있는데 이것은 당시 광주시민이 군대의 총을 맞고 피를 흘리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Yun Hyong-keun at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MMCAKOREA #MMCAKorea #YunHyongkeun http://ow.ly/2jC930lcI9T
Born in 1928 in Cheongju, Yun Hyong-keun lived through one of the most traumatic periods of Korean history, suffering great misfortune related to Japanese colonial rule, the Korean War, and the postwar dictatorship. Yun was incarcerated four times, and once faced with near-certain death. Only after surviving harrowing incidents did Yun fully commit himself to making art, in 1973 when he was 45 years old.
From the moment he dedicated himself to painting, Yun clearly established his own distinct artistic world, which he called the “gate of heaven and earth.” In the quintessential series of works, Yun used a wide brush to apply thick blocks of black paint to canvasses of plain cotton or linen. To be precise, the paint was not actually black, but slightly variant mixtures of the same two colors: blue (representing “heaven”) and umber (representing “earth”).
From their production method to their final appearance, these paintings are simple, genuine, and organic. With these seemingly offhand works, Yun succeeded in translating the humble, comfortable, and solid values of Korean traditional aesthetics into the lexicon of international contemporary art.
11 years after his death, this exhibition explores Yun’s life and art with unprecedented range and depth, introducing many details and perspectives that have not yet received adequate attention. Most notably, the displays feature a wealth of personal materials including early drawings, a large archive of photos, and strikingly honest excerpts from Yun’s private journals. Through diverse materials and works, this exhibition comprehensively explores the life and art of Yun Hyong-keun, who has thus far been known primarily within the context of the Dansaekhwa movement in Korea. For more information, visit the website of the National Museum of Modern and Contemporary Art, Korea.
윤형근 말년의 인생에 대한 태도에서 담담하지만 여운을 주는 모습이네요 모든 시공간을 넘어서다
[작가소개]1928 년 청주에서 태어난 윤형근은 일본 식민지 통치, 한국 전쟁 및 전후 독재와 관련하여 커다란 불행을 겪은 한국 역사의 가장 충격적인 시기 중 하나를 경험했다. 윤은 4 번 감옥에 갇혔고 한때 거의 죽음에 직면했다. 1973 년 45 세의 나이에 생존 한 엄청난 사건을 겪은 후에야 윤은 자신을 예술 창작에 전념했다.
그는 자신을 그림에 헌정 한 순간부터 윤곽의 문양이라고 불리는 자신의 고유 한 예술 세계를 분명히 확립했다. 윤의 일련의 작품에서 윤은 검은 색 페인트의 두꺼운 블록을 적용하기 위해 넓은 브러시를 사용했다. 일반 목화 또는 린넨 캔버스. 정확히 말하면 페인트는 실제로 검은 색이 아니고 파란색 ( "천국")과 umber ( "지구"를 나타내는) 같은 두 가지 색상의 약간 변형 된 혼합물이었습니다.
그들의 생산 방법에서 최종 모습에 이르기까지,이 그림들은 단순하고, 진짜이며, 유기적입니다.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작품들을 통해 윤은 한국 전통 미학의 겸손하고 편안하며 견고한 가치를 국제 현대 미술의 어휘로 번역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죽음 이후 11 년이 지난 이번 전시는 유례 없는 범위와 깊이로 윤의 삶과 예술을 탐구하고 적절한 관심을 받지 못한 많은 세부 사항과 시각을 소개한다. 가장 주목할만한 점은 초기 드로잉, 사진 보관소, 윤의 개인 저널에서 발췌 한 정직한 발췌 등 다양한 개인 자료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소재와 작품을 통해 이 전시는 주로 한국의 단색화 운동의 맥락에서 널리 알려진 윤형근의 삶과 예술을 포괄적으로 탐구한다.
<심간 (深簡) : 깊고 간결한 아름다움>
제 3부에서는 1980년대 후반 이후 제작된 윤형근의 후기 작품으로 구성된다. 이 시기 그의 작품은 한마디로 말해 한층 더 간결해진다. 색채는 검은색의 미묘한 변주가 사라진 채 ‘순수한 검정’에 더욱 가깝고, 물감과 함께 섞었던 오일의 비율도 줄어들면서 화면은 한층 건조해진다. 형태와 색채, 과정과 결과가 더욱 엄격해지고 간결해지지만, 그 거대하고 순수한 검정색 앞에 서면 관객은 왠지 모를 ‘심연(深淵)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후기 작업은 어떤 ‘확신에 찬 통찰’을 보여주며, 존재와 존재 간의 ‘관계’, 그리고 ‘고독’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땅 위의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시간의 문제이다. 나와 나의 그림도 그와 같이 될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된다.” - 윤형근, 1990년 우에다 갤러리 개인전 작가노트 중에서
윤형근이 요셉 보이스를 좋아한 이유: "요셉 보이스의 작품에는 죽음이 선뜻 지나간다 그래서 새로운 차원이 열린다" [평] 윤형근은 거의 죽음의 근처까지 가는 섬찟함을 경험한 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시각 언어를 깨닫게 된 것인지 모른다
윤형근은 초기 수많은 드로잉 작업을 통해, 그가 이후 줄곧 관심을 가졌던 다양한 조형적 실험들을 이미 하고 있었다. 이 작품에서도 ‘한지’의 특수한 재질감과 번짐의 효과가 실험되고 있다. 마치 한국 전통의 ‘먹’으로 글씨를 쓸 때와 같이, 물감의 농담에 따라 그것이 종이에 흡수되는 강도와 번짐의 정도는 미묘한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러한 작업은 후에 그가 마포 위에다 오일로 농담을 조절해가며 검은 물감을 내리긋는 작업과 일맥상통한다. 다만, 이때는 아직 원색을 포함한 다양한 밝은 색채를 사용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가 1973년 ‘반공법 위반’의 누명을 쓰고 서대문형무소를 다녀온 후 색채를 잃게 된다
박현주 미술전문기자의 빨간색 티와 윤형근 화백의 초기 빨간색 색채 드로잉 작품 이 시기는 작가가 인생역경을 거치면서 색채와 형태, 작업과정과 결과가 모두 단순해지고 순수해지는 과정을 보인다.
[윤형근의 미의식은 고가구의 미니멀리즘과 추사 김정희에서 나온 것이다] “골동은 돈이 아니다. 조상의 얼이요 세월을 담은 기물이다. 골동을 보고 있노라면 옛 어른을 보는 것 같다. 점잖고 넉넉한 그 옛 어른을 보는 것 같다. 어리숙하고 인정어린 옛 어른을 보는 것 같다.”- 윤형근, 1990년 7월 5일 일기 중에서
[저드의 미니멀리즘은 한국고가구에서 1000년전부터 시작] 윤형근의 거실 공간을 옮겨온 것이다. 전통 목가구, 도자기, 토기, 고서 등이 작가 자신의 작품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그가 일관되게 추구했던 과제는 한국 전통 공예품의 ‘멋’을 현대적 언어로 변환하는 일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의 공예품은 흙과 나무 같은 자연 재료에서 출발하여, 그 소박한 성질을 해치지 않은 채 인간의 손길을 최소화함으로써, ‘쓸모’의 본질을 살려낸 것들이다. ‘자연을 따라’, ‘자연과 함께’, 무심(無心)한 듯 생겨난 작품들이 오래 두고 보아도 질리지 않는 미감을 가진 것이다
윤형근은 앞으로 10년 안에 김환기 급 작가가 될 것이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다 윤형근 작가의 부인은 김영숙 여사 김환기의 딸이다. 그런데 김영숙 여사에게 아버지 김환기와 남편 윤형근 작품 중 어느 작품이 더 좋으냐고 물으면 100% 남편인 윤형근이 아버지보다 더 훌륭한 작가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단다
[1978년 9월 동경화랑 개인전에서 조셉 러브와 함께] 윤형근 은 한국보다는 일본 프랑스 미국 등 전문가나 컬렉터로부터 더 많은 러브콜을 받았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미국의 미니멀리즘의 대가인 도널드 저드의 그에 대한 높은 평가에서 엿볼 수 있다.
윤형근과 미국의 미니멀리즘의 창시자인 도널드 저드 같이 찍은 사진(1993.11.14) 두 사람은 첫눈에 서로 큰 교감이 일어난것인가 예술가로 통했겠죠 불행하게도 저드가 다음해 죽은 바람에 저드가 미국에 윤형근 작가의 홍보대사를 제대로 못하게 되었다 윤형근의 천재성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의 도널드 저드였다
윤형근 그의 거의 초기 작품을 김환기의 영향이 보인다 이런 작품 디카에 담기에 너무나 벅차고 힘들다 '제목 미상', 1966년경, 캔버스에 유채, 62x51.5cm
윤형근은 숙명여고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1966년, 첫 개인전을 서울 신문회관 화랑에서 열었다. 당시 출품작은 거의 남아 있지 않지만, 사진 자료를 통해 볼 때 이와 매우 유사한 작품들이 전시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그의 작품에는 대부분 <섬 풍경>, <호수>, <매화와 달> 등 자연을 소재로 한 서정적인 제목이 붙여졌으나, 이 작품의 경우에는 제목이 확인되지 않고 있다.
전반적으로 푸른색이 지배적인 화면에 다양한 색채의 점들이 보석처럼 빛나며 그들의 존재를 알린다. 매우 서정적이고 풍부한 감성을 지닌 이 작품은 그의 스승이자 장인인 수화 김환기(1913-1974)의 영향을 깊이 반영하고 있다
윤형근 6남 2년 중 차남으로 아버지는 윤용한씨는 파평윤씨 대종손으로 경기고보(지금의 경기고등학교) 출신의 지식인이었다. 일제강점기 낙향하여 해강 김규진으로 사사한 적이 있고 특히 서예와 사군자에 능했다고 한다.
작가소개
[신동문과 윤형근] 419세대 한 사람은 시인 한 사람은 화가, 두 사람은 고향(충북 청주)도 같고 나이도 같다. 둘은 절친이다. 신동문의 419 시 <아! 신화같이 다비데 군(群)들_419 한낮에(1960)> 은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면 다 알 것이다. 두 사람의 연결시키니 묘하게 뭔가 통하는 것 같다 아래는 신동문의 시다
서울도 / 해 솟는 곳 / 동쪽에서부터 / 이어서서 남북 / 거리마다 길마다 / 손아귀에 / 돌 벽돌알 부릅쥔 채 / 떼지어 나온 젊은 대열 / 아! 신화같이 / 나타난 다비데 군들 // 혼자서만 / 야망 태우는 / 목동이 아니었다. / 열씩 / 백씩 / 천씩 만씩 / 어깨 맞잡고 / 팔짱 맞끼고 / 공동의 희망을 /태양처럼 불태우는 / 아! 새로운 신화 같은 / 젊은 다비데 군들 // 고리아테 아닌 / 거인 / 살인전제(殺人專制) 바리케이트 / 그 간악한 조직의 교두보 / 무차별 총구 앞에 / 빈 몸에 맨주먹 / 돌알로써 대결하는 / 아! 신화 같이 / 기이한 다비데 군들 // 빗살 치는 / 총알 총알 / 총알 총알 총알 앞에 / 돌 돌 / 돌 돌 돌 / 주먹 맨주먹 주먹으로 / 피비린 정오의 / 포도(鋪道)에 포복하며 / 아! 신화같이 / 육박하는 다비데 군들 //
신동문 시인 그리고 김수영 시인
저마다의 / 가슴 / 젊은 염통을 / 전체의 방패 삼아 / 관혁(貫革)으로 내밀며 / 쓰러지고 / 쌓이면서 / 한 발씩 다가가는 / 아! 신화같이 / 용맹한 다비데 군들 // b충천하는 / 아우성 / 혀를 깨문 / 안간힘의 / 요동치는 근육 / 뒤틀리는 사지 / 요동하는 육체 / 조형의 극치를 이루며 / 아! 신화같이 / 사우는 다비데 군들// b마지막 발악하는 / 총구의 몸부림 / 광무(狂舞)하는 칼날에도 / 일사불란 / 해일처럼 해일처럼 / 밀고 가는 스크럼 / 승리의 기를 꽂을 / 악의 심장 급소를 향하여 / 아! 신화같이 / 전진하는 다비데 군들 // 내흔드는 / 깃발은 / 쓰러진 전우의 / 피묻은 옷자락 / 허영도 멋도 아닌 / 목숨의 대가를 / 절규로 / 내흔들며 / 아! 신화같이 / 승리할 다비데 군들 // 멍든 가슴을 풀라 / 피맺힌 마음을 풀라 / 막혔던 숨통을 풀라 / 짓눌린 몸뚱일 풀라 / 포박된 정신을 풀라고 / 싸우라 / 싸우라 / 싸우라고 / 이기라 / 이기라 / 이기라고 // 아! 다비데여 다비데들이여 / 승리하는 다비데여 / 싸우는 다비데여 / 쓰러진 다비데여 / 느가 우는가 / 너희들을 너희들을 / 누가 우는가 / 눈물 아닌 핏방울로 / 누가 우는가 / 역사가 우는가 / 세계가 우는가 / 신이 우는가 / 우리도 / 아! 신화같이 / 우리도 / 운다. <아! 신화같이 다비데 군(群)들 ㅡ 4.19의 한낮에>(사상 1960. 6) 전문
[박이소: 기록과 기억]MMCA 과천 1전시실에서 2018.7.26~12.16까지회화, 드로잉, 아카이브, 영상, 설치 등 약 50여 점의 작품 및 도큐먼트, 드로잉, 비디오 등 아카이브 200여 점 전시담당자 임대근 학예연구관 [MMCA 전시토크: 큐레이터와의 만남] 전시기간 중 1회[오마이뉴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