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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1995] 백남준-김훈 인터뷰 일부 내용 소개

[1] 백남준은 왜 그토록 삼국유사에 미쳤는가? 백남준은 장자도 무시무시하지만 삼국유사가 더 무시무시하다고 했다 왜인가?] 김훈: <삼국유사>에 대한 당신의 애착은, 그 역사서 안에 아방가르드적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까? 원문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98635&fbclid=IwAR3RureCuRNr03rhA4IROxys3m15hAsDHcXtO4InWpbLQxJto8N0dEYJ2Mg

백남준: 그렇습니다. <삼국유사>는 역사가 아닌 것을 역사화하고 있습니다. 역사와 삶의 혼합이라고나 할까요. 인간의 판타지도 역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지요. 초현실주의의 맥락으로 <삼국유사>를 읽습니다. 민속·신화·민화 들이 다 그렇습니다. 

김훈: 당신의 작품들은 공간성 안에 시간성을 끌어들이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공간 안에 시간을 끌어들일 때 얻는 효과는 무엇입니까? 

백남준: 저는 비디오 예술을 통해서 시간과 공간을 한 군데로 비벼서 엮어내려는 것입니다. 비디오라는 미디엄을 통하면 이것이 가능해집니다. 시간과 공간의 구획을 허물고 그 두 가지 범주를 엮어 놓을 때 새로운 자유의 마당이 열리는 것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계와 기계적 장치들은 인간 쪽으로 가까워져서 인간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2] 백남준 경기중 다닐 때 한문선생 천관우에게 노장을 배우고 거기에 반하다>

김훈: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에 대한 주된 논의는 미디어의 권력화, 권력화한 미디어에 의한 인간의 소외와 메시지의 왜곡 같은 문제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이며, 메시지가 곧 미디어라는 당신의 말은 그야말로 선불교(禪佛敎)적인 잠언으로 들리는군요. 

백남준서양 아방가르드의 정신적 핵심부에는 공()의 사상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플럭서스 운동은 노자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요노자의 자유를 예술을 통해 구현해 보려는 열정이 있었습니다노자의 한 줄은 장자의 백 페이지에 해당하지요저는 학생 때 천관우 선생님한테 노자를 배웠는데그분의 명 강의에 넋이 나갔었지요플럭서스 운동의 예술가들도 노자를 읽고 토론을 많이 했습니다.

*60
년대 초 그룹으로 조직되어 뉴욕을 중심으로 유럽 각지에서 활동한 극단적인 반예술 전위 운동이다그 구성원은 백남준요셉 보이스조지 브레이크오노 요코 등 60년대 전위 예술의 중요 음악가·화가·시인·무용가·영화작가 등 전 예술 분야에 걸쳐 있으며기존 예술 문화 및 그것이 만들어낸 모든 기구를 불신하는 반예술적·반문화적 전위를 지향한다. 62년부터 비스바덴·코펜하겐·파리·런던·뉴욕 등 여러 도시에서 기념 행사를 열어오고 있다. 

[3] 21세기 문명은 텍스트에서 이미지로 이미지에서 사운드로 변하고 있다. 사운드는 보이지 않기에 이미지보다 더 상위의 예술(?)이다. 폴 베를렌의 시에 "무엇보다 사운드(음악)이다"라는 시가 있다. 미술의 치명적 약점은 물질이라는 점> 

김훈: 인류의 미래 문명 속에서 언어적 담론이란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 

백남준: 순수 언어의 의미론적 완성을 피나게 추구해 나가는 사람들도 물론 있습니다. 주로 예일 대학을 중심으로 그러한 노력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비트겐슈타인의 제자들도 순수언어학에 입각한 철학을 세워 나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노력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언어적 담론이란 견딜 수 없이 거북한 것입니다. 저는 그런 언어주의자들의 세대에 속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보다 이전 세대에 속하겠지요. 그들은 저와는 다른 사람들이고, 저도 그들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김훈: 이번 비디오 쇼에서 당신 자신의 눈꺼풀과 입술··얼굴의 미세한 표정들을 대형 비디오 화면을 통해서 보여줬습니다. 이 화면을 인간의 실존적 삶과 예술 사이의 구획을 허물어 내려는 시도로 이해했습니다. 예술 장르와 삶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고 계시는지요? 

백남준: 귀에는 표정이 없습니다. 따라서 제가 저의 비디오카메라를 통해서 저를 보여주자면 눈꺼풀과 입술과 혀를 동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을 놓고 예술과 삶 사이의 경계 문제를 생각할 수도 있겠지요. 그 표정들이 관객에게 경계문제를 생각하게 했다면, 경계가 해체되고 새로운 공간이 관객에게 느껴졌다면, 저는 그러한 관객의 느낌에 반대하지 않습니다.

[4] <백남준의 한국어 책 독서량은? 김훈의 독서량 훨씬 많은 것 같다. 여기서 김훈이 기가 죽었다. 백남준의 맑시즘에 대한 생각은 매우 이중적이고 복잡하다. 그는 말한다. 맑시즘은 지식인의 허영이자 귀족주의였다고 백남준은 서양의 모든 지식인을 우습게봤지만 맑시스트에 대해서는 힘든 경쟁자라고 고백했다> 

김훈: 모국어로 쓴 책을 어디까지 읽었습니까? 

백남준: 이태준, 정지용, 유진오, 한설야, 박태준, 김기림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나를 매혹시킨 것은 단연코 정지용이었습니다. 정지용은 언어의 의미와 언어의 시각적 이미지를 모두 장악한 시인으로 저를 매혹시켰습니다. 그렇게 날카롭고 가파르고 또 시각화한 언어에 저는 매료되는 것입니다. 

김훈: 맑시즘으부터 탈각해 나간 청년기의 정신 궤적이 궁금합니다. 

백남준: 맑스는 제 청년기의 질환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맑시즘에 빠졌습니다. 저는 그런 이상하고도 강렬한 허영심이, 저뿐 아니라 지식인 전체를 향해서 어떻게 그렇게 밀려들 수 있는 것인지, 그런 미신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이며 왜 인간을 사로잡을 수가 있는 것인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20세기 초 인텔리들은 나는 피카소를 사랑한다혹은 나는 아인슈타인을 사랑한다는 포즈만으로도 대중과 차별되는 정신적 우위를 과시할 수 있었습니다. 피카소와 아인슈타인만으로도 그들은 귀족 행세를 할 수 있었지요. 

맑스는 제 청년기 때의 지식인들에게 피카소나 아인슈타인과 똑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스탈린 대숙청의 광기가 진행되고 있을 때도 우리는 그 광기의 본질을 헤아리지 않고, 여전히 맑시즘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들의 귀족주의와 허영심이 기묘하게 결합된 심리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런 무지한 모순을 가능케 하는 힘이 어디서 온 것인지 아직도 알지 못합니다. 

[5] <예술은 도덕적이거나 이념적인 것 아니다> 김훈: 예술이 인간의 현실을 감당해 내야 하는 도덕적 책임이 있다는 명제를 전제로 하고, 당신은 자신의 예술을 돌아본 적이 있습니까? 

백남준: 그것도 저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1, 2년을 겨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술의 지역성·민족성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 것들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은 팔자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그렇게 팔자가 좋지 않아서, 더 바쁘고 치열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6] 백남준은 기계와 인간은 동급으로 봤다 그는 말하고 노래하는 기계가 나오기를 기대했다 아니 그게 가능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의 1963년 로봇 작품은 오페라도 부른다. "기계와 기계적 장치들은 인간 쪽으로 가까워지면 인간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백남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