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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염리대왕도] 무슨 지옥도가 이렇게 아름다워

[국립중앙박물관 대고려전(2018.12.4-2019.3.3)] <무슨 지옥도가 이렇게 아름다운가> 

"네 죄는 조사가 이미 끝났느니라" <염라왕도>66 


제5염라왕도(第五閻羅王圖) 화가/ 작자미상 크기/ 62.0x45.2cm 재료/ 비단에 채색 시기/ 고려후기 또는 남송 소장/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지옥에 있다는 염라대왕의 심판소 장면이다. 국화문 레이스가 달린 탁자에 한 팔을 짚고 비스듬히 앉은 사람이 염라대왕이다. 끌려와 심판을 받는 자는 셋. 남자 둘에 여자 하나이다. 남자 하나는 큰 칼을 머리에 쓰고 있고 여자는 상반신이 벗겨진 채 꽁꽁 묶여 순번을 기다리는 중이다.

업경대라는 죄상을 비춰주는 지옥의 거울 앞에 죄인 한 사람이 있다. 옥리(獄吏)가 거울에 얼굴을 세게 밀어붙이고 있다. 난폭하게 보여도 이는 경전에 따른 것이다. 죄인의 머리채를 잡고 업경대에 비추면 거울 속에 생전에 지은 죄가 떠오른다고 했다.

과연. 거울 속에는 흰 옷을 걸친 남자가 도끼를 치켜들고 막 소를 도살하려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 자는 부처께서 가르친 오계(五戒) 중에서 가장 엄한 살생계(殺生戒)를 어긴 자이다. 업경대가 그냥 마구 비추는 것이 아니라 증거가 있다. 말 못하는 짐승인 소와 오리(그림에는 돼지도 보인다)가 염라대왕 앞에 종이를 입에 물고 죄상을 증언하고 있다.

지옥행이 앞에 놓인 죽은 자의 처지가 한없이 가련해 보인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지옥하면 염라대왕이 당장 떠오르지만 지옥은 염라대왕 단독으로 통치하는 곳은 아니다. 염라대왕은 지옥에 있는 열 명 대왕 중 한 사람일뿐이다.

사람은 죽으면 7일, 14일, 21일식으로 칠칠일까지 일주일에 한번 씩 심문을 받는다. 염라대왕은 그중 오칠일의 심판관이다. 칠칠일이 돼 이승에서 49재를 지내주며 극락왕생을 빌어준다 해도 심판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다시 100일 되는 날, 1년 되는 날 그리고 3년 되는 날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마지막 3년째의 심판은 명부의 대왕이라 할 오도전륜왕(五道轉輪王)이 심판을 내린다. 육도윤회 가운데 지옥에 떨어질지, 짐승으로 태어날지 아니면 천상 나라로 올라갈지가 최종적으로 결정된다.

몰라서라면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일주일마다 일곱 번 그리고 100일, 1년, 3년에 걸쳐 다시 3번 엄중한 심판을 받아 탈탈 먼지 털리듯 지은 죄가 드러난다면 등골이 서늘해지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명부의 심판이야기는 지금도 믿고 싶은 구석이 굴뚝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