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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자-사상가

[생텍쥐페리] 사막 걷는 현대인에게 샘의 비밀과 생의 아름다움...

[90년대 지학사 시절 사보에 투고한 '생텍쥐페리'] 사막 걷는 현대인에게 샘의 비밀과 생의 아름다움 보여주다 - 생텍쥐페리(1900-1944)

1. 짧은 잠언, 긴 감동: 생텍쥐페리는 프랑스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우리에게 준 영향 크다. 그는 서구인임에도 우리에게 친근감을 주고, 그의 짧은 잠언은 감동과 함께 긴 여운을 주어 우리를 깊은 명상 속으로 빠트린다.

2. 담론적 잠언의 마력: 왜 그의 잠언들이 우리에게 와 닿는 것일까? 그건 아마도 그런 잠언들의 진실의 힘과 언어의 매력에서 오는 것이 아닐까? 이건 아마도 그의 세계가 동양적 전통인 높은 정신주의와 닮은 점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라든지 "오직 대지(점토)에 입김을 불어넣은 정신만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하는 말은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주기에 충분하다.

3. 행동적 영웅주의: 그의 삶과 문학은 숭고한 영웅주의에 근거하고 있다. 자기 행복을 포기하는 그의 영웅주의는 오직 행동과 실천을 통해 진정한 영웅주의를 획득하려 한다. 언어의 성찬이 화려하게 차려지는 시대에 몸으로 보여주는 위험한 영웅주의라니 좀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그의 영웅주의가 설득력이 있는 것은 그의 치열한 행동주의가 깊은 사색과 명상 뒤에 오는 심오함과 단호함에 근거한다는 것과 대자연의 열애 속에 심도 있는 인간 탐험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4. 인간 찬양과 시적 문체:그는 어린아이의 상상과 천진의 눈으로 우주의 신비와 생명의 환희를 볼 줄 알았고, 인간에 대한 찬양과 통찰력을 빼어난 문체와 미적 언어로 잘 그릴 줄 알았다그는 시인이고 철학자고, 한 시대의 예언가며, 형이상학적 건축 기사였다. 그는 무모하게도 사막 속에서 샘을 찾아다녔다. "사막의 아름다움은 그 속에서 샘이 숨어 있다."는 그의 담론은 여러 가지 해석을 붙일 수 있겠지만, 난 이렇게 재해석을 해 본다. "인생의 아름다움은 그 속에 뜻(의미)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5. 인간과 자연, 우주와 생명의 관계 길들이기:그의 시대가 인긴 조건에 대한 치열한 성찰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는 고독(solitaire)과 연대(solidaire)의 변증법적 통합을 꾀했다. "개인의 행동이 집단의 이해관계와 결부된다"는 생각은 바로 여기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6. 그의 유명한 담론 '길들이기론'은 바로 인간과 자연, 우주와 생명의 관계를 맺는 그의 독특한 방법이다. 어린 왕자에 등장하는 여우와 장미는 그의 시적 분위기와 설화적 요소가 빚어 낸 멋진 상징이다. 어린 왕자에서 주인공이 장미에게 하는 말 "나는 내 장미에 대해서 책임이 있어."라든가 "여우야 길들인다는 것이 뭔지 알아? 그건 말이야, 서로 좋은 관계를 맺는 일이야."라는 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이 짧은 대화 속엔 인간 사이의 참다운 관계란 사랑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상품화(보이는 것)되는 시대에 진실한 마음(보이지 않는 것)만이 진정한 길들임(관계의 회복)을 뜻하기도 한다.

7. 사막을 걷는 현대인에게 주는 샘물:우리에게 주는 그의 메시지는 마치 사막을 걷는 현대인에게 샘물을 마시게 하는 시원함과 통쾌함을 준다. 생텍쥐페리는 인간 본연의 모습을 사막과 대지 그리고 창공에서 마치 명상가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현대인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다. 그는 물질과 권력, 인습과 속박의 감옥 속에서 허덕이는 현대인들에게 잠시나마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주고 그 이기심과 허영심에서 벗어나게 해 준다.

8. 사막 같은 고독 속 인간 찬양: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는 듯 의자에 앉아, 지는 해를 바라보는 어린 왕자의 쓸쓸한 뒷모습은 우리에게 서정적 우수까지도 불러일으킨다. 왜 이다지 어린 왕자는 아름답게 보일까? 파스칼의 유명한 명언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는 우주적 이미지는 연상시키는 생텍쥐페리의 이런 분위기와 닮았다. 황량한 사막과 높은 창공, 광활한 대지는 그 절대 고독 속에서도 인간과의 유대와 완벽한 결합을 갈망하는 듯 보인다. 어린 왕자의 고독을 벗어나게 하는 길은 그의 애인인 장미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것이며, 그의 길들이기(사랑)를 하는 것이다.

9. 인간 위선과 허영을 벗고서야 만나는 행복: 어린 왕자의 진실을 만나기 위해 향한 순례의 자리에서 그에게 실망이 주는 것이 너무나 많다. 끝까지 지지와 찬양을 요구하는 허영꾼, 추상적 지식만으로 탐험을 요구하는 지리학자, 자기 책임과 선택을 회피하고 존재의 공허를 은폐하려고 애쓰는 술주정꾼, 온갖 종류의 소유대상만이 필요한 사업가 등이 있다. 어린 왕자는 여유를 만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발견한다. 왜 어린 왕자는 진정한 관계를 사람보다 동물에 비유하여 말했을까? 이는 그가 가지고 있는 블랙 코미디 기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 인간에 대한 남다른 연정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뿐이리라.

10. 여우에게서 배우는 인간: 한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데는 얼마나 많은 시감과 노력이 필요한가? 우리는 이 가르침을 여우에게서 배워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은 사랑만이 우리의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고, 외로움과 허전함과 권태로움을 사라지게 한다고

11. 어른들의 어리석음: 어른들은 어린 왕자의 괴로움을 몰라준다. 어른들은 집을 이야기하면 가격이 얼마 인지밖에 관심이 없다. 그 집에 꽃이 있는지 못이 있는지 정원이 있는지 전혀 관심이 없다. 이런 어른들은 진정한 행복이나 기쁨의 진리를 만나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12. 사막의 아름다움과 숨은 샘: 사막의 아름다움이 그 속에 샘이 숨어 있음을 보지 못한다. 그 샘은 바로 사랑(길들이기)이다. 사막은 메마름, 죽음, 고통, 끝없는 황량함만을 연상하지만, 우리들은 그 속에서 현대인의 갈증을 적셔 주는 샘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늘 망각하고 있다. 사막을 자꾸 파면, 그 속에 비축된 물뿐만 아니라 삶의 환희, 자연의 풍요로움, 대지의 생명력, 인간의 사랑과 희망들이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속도 문화를 적응하느라 조급한 현대인들은 그 샘을 파기에는 너무나 그 인내심이 부족하다. 생의 슬픔 뒤에 숨어 있는 생의 환희를 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마음뿐이다.

13. 자연과 인간과 우주가 하나의 나라: 그는 지식적이고 관념적 문명사회를 비판하고 있고, 그보다는 따뜻한 인간애와 동화적 서정과 생명이 살아 있는 자연과 인간과 우주가 하나의 끈으로 이어지는 나라를 꿈꾸고 있다. 그의 이야기는 사막 속에서 한 송이 장미를 피우게 하고, 한줄기 샘물을 터지게 하려는 꿈이다. 인간의 위대함과 숭고함이 메말라 가는 시대에 그는 영웅적인 행동과 초인적 생의 건축 기사로 우리에게 허무와 죽음과 절망을 딛고서 일어서는 길을 찾게 해 주고 있다. 그래서 그에게는 일이 중요하다. 직업의 중요함을 뒷받침해 주는 그의 직업에 대한 철학은 이렇다. 직업의 위대함은 무엇보다도 인간을 결합시키는 데 있다. 게다가 같은 방향으로 서로 쳐다볼 때의 사랑과 결합되면 더욱 완전한 것이다

14. 순수한 이상과 비참한 현실의 투쟁: 이러한 그이 순수한 사상은 현실 속에서 끊임없는 갈등과 고뇌를 준다. 그는 자신의 이런 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전쟁의 역사 한복판에 서 있었고, 그이 하루하루는 순수한 이상과 비참한 현실과의 투쟁이었다. 그이 모험적 행동주의는 바로 다음과 같은 신념에서 언 것이라고 고백한다. 내 운명은 개인을 넘어서서, 인간의 예찬 위에 참 인간관계를 세우려 노력하였다.

15. 목마름과 황량함을 걷고 현대인이게 성채를 세움: 이 고독과 침묵의 우주 공간에서 떠도는 우리 인간들에게, 목마름과 황량함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제 무엇이 살아남을 수 있는가? 체험적 자서전적 요소들이 강한 그의 미완성 유작인 '성체에서는 우주와 인간의 중개자적 입장에서 있는데 이 소설은 20세기, 현대문명의 정신적 갈등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많은 여운과 의미를 던져 준다. 인간은 성채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은 자유를 확신하기 위하여 성벽을 부숴 버린다. 그리하여, 그 성은별에게도 문을 활짝 열어 주는 무방비의 요새가 된다. 그래서 불필요한 불행이 시작된다. 성채,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다 너를 세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