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어제 도서관 책을 반납하고 대여하는 학부시절 방곤 지도교수가 번역한 책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다시 빌려왔다 // 1974년 방곤 교수에게 직접 배운 기억이 난다. // 방곤 교수는 당시 세계번역가협회 회장일 정도로 대단한 역할을 했고 // 불문학에서 서울대 김붕구 교수와 2대 산맥을 이루었다. // 그의 인간적 분위기는 늘 매려되었다. // 부암동 집에도 2번 놀려갔던 기억이 난다. // 부인도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였다 // 그가 툭 던진 말들은 그냥 하나의 그림처럼 허공에 흩어져 남는다. // 사르트르 설명할 때 그의 특이한 표정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 사르트르에 대한 아래 짧은 글이 남아있다. // 열심히 <구토> 원본 소설과 번역본과 공부하던 시절 있었지만, 아 그렇지 90년 초에 그에 대한 시는 있다.
실존의 삶을 온몸으로 연출한 앙가주망의 문학의 상징 사르트르(1905-1980)
[01] 삶이 문학의 원동력
사르트르, 그에게 있어 삶은 문학의 원동력이다.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문학의 퍼포먼스다. 그는 서재에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거리에서 카페에서 대중들과 함께 글을 썼다. 그는 프랑스 앙가주망 문학의 전통에 따라 문학을 거리로 끌로 나온 것이다. 그는 자신의 살아 있음(실존)을 글쓰기와 사회 참여를 통해서 확인하며 살았다.
[02] 맑스의 후손
프랑스 지식인의 대부분이 맑스의 세례자들(후손들)이다. 사르트르는 예외가 아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급진적 맑스주의자였고, 문학적으로는 참여적 실존주의자였다. 그는 말하는 것도 행동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늘 떠벌린다. 그가 있는 곳에 늘 기자들이 상주했다. 그의 한마디가 그날의 주요 기삿거리였기 때문이다.
[03] 시위 제조기
그는 자신의 삶을 문학과 연극으로 연출하며 사는 희극 배우였는지 모른다. 그가 가는 곳에 해프닝이 있어 났다. 한 예를 들어보자. 오늘 그가 찾아가는 곳은 외국인 불법 체류자들이 숨어 있는 곳, 거기서 비참한 삶을 이어가는 외국 노동자의 현장을 폭로한다. 가스 누출 사고로 쓰러져 있는 그 현장에서 사르트르는 프랑스의 현주소를 고발한다. “세계에서 가장 문화 민족이라고 자부하는 프랑스에서 과연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라고
[04] 부르주아의 허위 의식 비판
그의 문학이라는 것은 별것이 아니다. 그의 대표적 <구토>를 읽어 봐도 어떤 플롯이 있는 것도 아니고 소설적 멋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와는 거리가 있다. 그저 무미건조한 로캉탱(Roquentin)의 생활 일기만 이어질 뿐이다. 그렇다고 프랑스의 전후 신세대 소설 장르인 누보로망(발자크 등의 전통적 소설 양식 즉 들려주는 소설을 거부하고 보여주는 소설을 주장한 프랑스 문학의 한 조류)과도 또 다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은 그저 재즈를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뿐이다. 한 지식인이 자유를 깨쳐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가 발견한 자유란 감옥 안의 자유임을 깨닫고 구역질을 한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은 지식인의 허위와 한계를 고발하며, 부르주아 계급을 통렬히 비판하며 조롱하고 있다.
[05] 실존(existence)은 본질(essence)에 앞선다
“실존(existence)은 본질(essence)에 앞선다”<사르트르의 설명 : 인간의 본질을 규명하는 신이나 절대자나 절대정신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은 자유로운 선택(실존적 삶)과 자발적 결단을 할 수 있다.>는 그의 유명한 명제는 많은 철학적 논쟁 중 하나이다. 이 명제는 많은 철학적 논쟁 중 하나이다. 이 명제는 단연코 무신론이다. “인간은 그저 우연한 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다.” 라는 로캉탱의 고백처럼 잉여 인간(de trop)에 대한 고발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그날그날 자신의 삶이 존재 이유인 자유를 만들어 가야 한다.
[06] 자유를 언도 받은 사형수
그는 이렇게 선언하고 있다. “인간은 매순간 자유를 언도 받는다.” 그에게 있어 인간은 자유의 사형수다. 이 사형수에게 있어 지금 여기(here and now)가 중요하다. 매순간 선택과 결단을 통하여 무에서 유를 창조해 가야 한다. 그러므로 그의 자유와 실존은 책임 있는 행동을 통하여 완성을 해 가는 것이다.
[07] 행동하는 지성
앞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사르트르의 면모를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그가 65세 때인 1970년 1월부터 1971년 7월까지 이 18개월 동안 근 20번 이상 회의에 참석했고, 갖가지 시위대 대표 격으로 앞장섰으며, 참석하여 대중 앞에서 즉흥 연설을 했고, 여러 호소 운동에 서명하였다. 공식적 기자 회견 2번, 법정에 증언 4차례, 인터뷰 6번, 성명서 발표 3번, 신문 기고 4번, 경찰에 출두 요구서 5번이나 받는다. 사실 그의 정치 노선은 좌충우돌, 그이 수다 만큼 행동도 많고 시행착오도 크다. 그러나 그는 최선의 선택으로 최선이 실존적 살을 살았다.
[08] 실존적 자유는 절대적 자유
그의 자유는 개인적 자유라기보다는 사회적(연대적) 자유를 말한다. 그의 자유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는 상대적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다.
여기서 절대적 자유란, 우리가 자유롭다고 한 자유가, 알고 보니 감옥 안에 자유, 즉 위선적 자유임을 깨닫는 것이다. 자유란 이렇게 교묘하고 집요하다. 이 위선적 자유에서 벗어나는 것이 진정한 자유, 실존적 자유, 절대적 자유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감옥 안에 자유에 익숙해져 때로 감옥 밖의 자유를 두려워한다.
[09] 대타 존재(etre pour autre/be for others)
사르트르의 사상은 무신론적이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삶은 가장 기독교적이다. 그는 늘 버려진 사람들과 함께 했다. 그는 인간을 대타 존재(etre pour autre/be for others) 로 보았다. 이 말은 전후 레지스탕스 시인 중 하나인 폴 엘뤼아르의 말대로 “인간 - 너는 누구인가? 너는 곧 나 자신이다.(You are just myself)"와 같은 뜻이고, 우리말로 번역하면 ”색즉시공(色卽是空:나와 남이 구별이 없다)“를 뜻한다.
[10] 불우한 어린 시절을 이겨낸 수재
사실, 사르트르 자신은 명문 고등 사법 학교 출신의 수재형 지식인이고, 아버지는 해군 장교 출신인 부르주아적 출신이다. 그러나, 사르트르는 지식인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하찮은 노동자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지식인이라는 어떤 열등감이나 강박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근 하찮은 민중에게 지지 않기 위해 열심히 살고 열심히 글을 썼다.
그는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읜 반 고아였다. 불행하고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 틀림없다. 그의 글에서 처절한 고독의 흔적이 보인다. 때론 보들레르적 우울과 절망까지도 엿볼 수 잇다. 그러나, 그는 자기 환멸과 자기 비하를 예술적 창조와 철학적 행동을 통해서 극복했다.
[11] 그의 대표저서 무와 존재
그의 사상을 그의 대표적 철학 저서 무와 존재에서 요약할 수 있지만 글 내용을 제대로 풀기는 쉽지 않다. ‘無’(없음,nothing)와 ‘存在’(있음,being)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다. 이 말을 노자의 말로 바꾼다면, 자기 무화(nothing)를 통한 자기 유화(being)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2] 실존적 선택(fidelity et choix)과 책임(responsibility)
그에게 있어 자신의 철학적 꿈을 버리는 것(nothing)이 바로 자신의 문학적 삶을 얻는 것(being)이다. 그는 책임(自己無化)을 통해서 자유(自己有化)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자율적 선택은 우주적이고 철학적이고 실존적이다. “나는 온 우주와 인류의 이름으로 선택하고, 동시에 나는 온 우주와 인류의 이름으로 책임진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선택의 옳고 그름보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여기에 바로 그의 실존적 책임성(responsibility)과 성실성(fidelity)이 있다.
[13] 행동만이 출구 없는 비상구
그에게는 문학이 전쟁과 죽음을 극복하는 무기요, 행동만이 출구 없는 현실에서 비상구이다. 그는 맑스의 소외 개념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지식인의 책무에 늘 충실하려 했다. 그래서 그는 지식인이란 “민중에게 말하는 자”라고 정의했다. 그의 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지식인의 역할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식인의 역할은 모든 사람을 위해 자기의 모순을 살고, 모든 사람을 위해 그 모순을 극복한다.”
[14] 옆으로 기어가는 게
사르트르, 떠버리로 정치적으로도 좌충우돌 그의 행동거지만큼 많은 시선을 받았던 그의 모습이 당대 사람들에게는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 여러 평이 있었지만 그중 짖궃은 평론가들을 그를 희화해 평한 것을 들어보자. ‘사팔뜨기 눈을 뜨고, 지식인의 허위를 깨치며, 민중의 그림자가 되어 게걸스럽게 옆으로 기어가는 하찮은 게나 거미’라고
[15] 레지스탕스 출신의 극좌파 당수
20세기는 한마디로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전쟁의 시대였다. 이젠 그 전쟁이 휴전을 지나 거의 붕괴되었지만, 그의 전성기에는 이 논쟁이 큰 논쟁 거리였다. 그의 행동의 치열함은 그 시대가 얼마나 이념적 대립으로 긴장되어 있었는가를 바로 알 수 있다.
1940년 레지스탕스 가담했고, 1960년 베트남 참전 규탄 및 프란츠 파농의 식민 비판 정책 지지했으며, 1964년 노벨 문학상 거부했고, 1968년 5월 대학생 혁명에 선봉에 섰다. 1974년에는 사형수가 된 김지하 시인 구출 운동에 적극 나서 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는 또 <혁명적 민주주의 연합>을 창당하여 극좌파 총수이기도 했다.
[16] 구조주의에 도전 받는 역사주의
그 시대를 변증법적 역사 비판을 통해 시간의 개념과 존재의 인식을 읽어 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는 도덕적 역사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다. 그는 이를 역사적 현실(historical reality) 이라 했지만, 1960년대 이후 사르트르는 이런 점을 거부하고 일어난 새로운 사조가 바로 구조주의다.
사르트르 당시, 지식인에게 있어 노동자는 선이고 부르주아는 악으로 구분되는 시대였다.. 사회적 계급이 올라갈수록 도덕성이 희박해진다고 보고 있었다. 사르트르는 이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내가 대학 다니던 70년 초 유신 반대 시위가 잦아 그 때 일 년 중 거의 6개월이 휴강 중이었던 그 시대에 사르트르는 우리에게 어떤 탈출구를 열어 주는 그런 인물로 받아졌다.
[17] 민중 지향적 지식인
사르트르는 사생아 출신 무기수 장 주네를 성자로 칭하며 그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초등학교 학력으로 프랑스 문단에서 도둑 일기 등의 작품으로 이름을 떨친 특이한 작가이다. 사르트르는 민중 지향적 지식인답게 이런 밑바닥의 삶을 체험한 작가를 선호했으며 이런 시각에 자신의 실존적 삶을 동일시했다.
그의 위대함은 그의 사상이 아니라, 삶의 열애자로서 한 지식인이 대중의 삶을 드높이기 위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타자에 대한 긴밀한 유대와 형제적 연대감을 가지고 수난의 행진을 마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8] 새로운 결혼 모델 제시
또는 그는 부인이자. 학문의 동반자인 시몬 드 보봐르와의 끊임없는 철학적 논쟁을 통하여 여성 해방에 동조했고 제1의 성인 남성과 제2의 성인 여성의 관계가 종속이 아니라 독립의 관계에 있음을 그의 계약 결혼으로 보여 주고 새 시대의 한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사회의 통념을 깨는 전위적 실천가였다. 이런 스타일의 결혼은 지금은 프랑스에서 대중화되었단다.
[19] 파리 시민의 애도 속에 사라진 거인
1980년 4월 그가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되던 날, 온 파리 시민은 수만명 거리로 쏟아져 나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고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작가의 사라짐을 아쉬워했다. 그는 20세기 프랑스 문학사에서 프랑스적 에스프리를 번득이며, 실존적 삶과 참여 문학에 맹렬히 뛰어든 지성인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20]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장 폴 사르트르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조주의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장 폴 사르트르보다는 한 수 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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