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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자-사상가

[서경덕] '기'의 대사상가보다 '러브스토리'가 더 유명하죠

[서경덕] 조선시대 재야 대학자이면서 너무나 유명한 러브스토리를 가진 경우는 드물다

 

격물을 통해 이치를 깨닫다_우주만물의 근원은 기()

서경덕은 농사를 지으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는 후일 "난 스승을 얻지 못하여 학문을 익히고 깨닫는데 힘이 들었다."고 말했다. 독학을 통해 학문을 이룩한 셈이다. 그래서 스스로 자득지학(自得之學)’, 즉 스스로 터득한 학문이라 부른다.

그가 독학을 한 데에는 집안이 가난하여 스승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14세 때에 선생을 정하고 공부를 하였는데, 선생이 <상서>의 기삼백(朞三百) 대목을 설명하지 못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선생을 두지 않고 홀로 독학을 하였다고 한다. 18세 때 <대학>을 읽다가 격물치지(格物致知)’에 이르러 학문의 방법을 깨달았다고 한다.

이때의 감격을 그는 "우리가 학문을 하는 데 있어 먼저 격물을 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격물치지’. 알기 위해서는 사물을 연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이백이나 두보의 시에서 시구를 찾는 버릇이 여전히 있다면, 소씨(昭氏)의 거문고와 같지 않겠는가. 시가 마음을 즐겁게 하면서 그 뜻을 잃지 않는다면 올바른 태도가 아니겠는가. 서경덕, <송심교수서>

소씨의 거문고는 <장자>에 나오는 얘기이다. 소씨가 거문고를 타니 제대로 나오지 않는 소리가 있고, 거문고를 타지 않으니 소리가 제대로 나온다는 말이다. 스스로 연구하여 시를 짓지 않고, 이백이나 두보의 시구를 모방하는 자세에 대한 비판이다.

격물, 즉 사물에 대한 연구. 이것이 서경덕의 학문하는 방법이었다. 그는 자신의 방에 천지만물의 이름을 써 붙여 놓고, 그것을 하나하나 연구하였다. 그리하여 3년을 연구한 끝에 그는 "나는 20세가 되어서야 한 번 저지른 실수를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게 되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의 연구는 주로 주변 자연 환경에 집중되었다. 종달새는 왜 나는 걸까, 바람은 왜 부는 걸까. 이러한 것들이 그의 주된 연구 주제였다. 그는 연구를 통한 발견에 기쁨과 자부심을 느꼈다. 자신이 도달한 경지에 대해 이렇게 시로 썼다.

눈에는 발을 드리우고 귀에는 문을 닫았지만,

솔바람 시내 소리는 더욱 뚜렷하기만 하구나.

나를 잊고 물()을 물대로 보게 되니,

마음이 어디에 있든 절로 맑고 따뜻하구나.

서경덕, <무제>

나를 잊고 물을 물대로 본다는 것은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말한다. 이런 경지에 다다르니 눈귀를 가려도 바람 소리, 시내 소리를 뚜렷하게 들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서경덕은 자연에 대한 탐구를 통해 물아일체에 이르렀음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우주만물의 근원은 기()

서경덕은 오랜 연구를 통해 무엇을 알아냈을까. 다음의 시를 보자.

바람이 지나간 뒤 달은 밝게 떠오르고,

비온 뒤 풀 냄새 향기롭다.

하나가 둘을 타고 있는 것을 보니,

()과 물이 서로 의지해 있구나.

오묘한 낌새를 꿰뚫어 얻어,

방을 비우고 앉으니 빛이 생겨난다.

서경덕, <천기>

바람이 불고 난 뒤에 달이 밝고 비가 온 뒤 풀 냄새가 향기롭다는 것은 서경덕이 자연을 관찰한 결과이다. 그것은 물과 물이 서로 의지해 있음을 말한다. 하나가 둘을 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서경덕은 <원리기>에서 "하나의 기()가 음양의 두 기를 가지고 있어서 음양의 두 기가 하나의 기에서 나타나는 원리"라고 말한다. 이런 오묘한 이치를 알게 되니, 방을 비워도 즉 마음을 비워도 진리를 얻게 된다는 얘기이다.

서경덕이 얻은 이치는 기에서 물이 생겨났고, 물과 물은 서로 의존해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신이 밝혀낸 진리에 대해 <태허설>에서 재차 설명을 한다.

태허는 비어 있으나 비어 있지 않다. 태허는 곧 기이다. 태허는 끝이 없고 기 또한 끝이 없다. 서경덕, <태허설>

태허와 기는 만물의 근원이다.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태허와 기는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태허인 기는 만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면 어떻게 만들어내는가.

기이하고 기이하다. 묘하고 묘하다. 갑자기 튀어 나오고 홀연히 열린다. 누가 그렇게 하였는가. 스스로 그렇게 한 것이다. 서경덕, <태허설>

기의 운동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기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운동한다는 얘기이다. 기는 만물의 근원 즉 만물의 재료이자 만물의 창조자 즉 운동의 주체이다. 기의 역할과 작용에는 인간의 정신도 포함된다. 이 점에서 기는 유물론에서 말하는 물질과 다르다.

사람과 자연이 모두 기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서경덕은 자연의 연구를 통해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물아일체를 주장하는 철학에 도교가 있다. 서경덕은 도교로부터 몇 가지 아이디어를 차용하였다. 예를 들어 태허는 장자가 사용한 개념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철학과 도교 철학의 차이를 분명하게 밝혀놓았다.

노자는 유에서 무가 생겨난다고 말하는데, 이는 태허가 곧 기라는 것을 모르고 한 말이다. 태허에서 기가 생겨난다면 기가 생겨나기 전에는 기가 없는 것이니, 태허는 죽은 것이다. 태허에서 기가 생겨난다면 기는 시작과 끝이 있는 한정적인 것이 된다. 서경덕, <태허설>

태허와 기를 분리하는 도교 철학에 대한 비판이다. 이 둘을 구분하면 만물의 근원과 운동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게 된다. 태허는 만물의 근원이고 기는 운동인데, 기 이전에 또 다른 운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기의 무한성은 부정되고, 기인 태허 역시 부정되어 버린다는 얘기이다.

생성과 극복의 통일

서경덕의 철학은 김시습의 제기한 기일원론을 체계화한 것이었다. 김시습은 만물의 시작과 끝이 음과 양이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생긴다는 주장에 머물렀다. 서경덕은 이를 체계화하여 만물의 구성과 생성 원리를 밝혀놓았다. 다음의 설명을 보자.

태허가 움직여 양을 낳고 조용히 하여 음을 낳는다. 기가 모여 두텁게 쌓인 것이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 모여 있던 사람의 기가 흩어지는 것은 몸과 영혼이 흩어지는 것이다. 서경덕, <태허설>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소멸하는지를 밝혔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은 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것에 불과하다. 서경덕은 기의 운동 법칙 또한 밝힌다.

태허는 하나이지만 그 속에 둘을 포함하고 있다. 이미 둘이기에 그것은 열리고 닫히고 움직이고 멈추고 생성하고 극복한다. 서경덕, <이기설>

또한 그는 생성과 극복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하나는 둘을 생성하지 않을 수 없고 둘은 능히 스스로 극복한다. 생성이 극복이고 극복이 생성이다. 기가 미세하게 움직이든 크게 움직이든 생성과 극복이 있다. 서경덕, <이기설>

만물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데 외부의 힘은 필요하지 않다. 내부에서 스스로 생성과 극복의 운동을 한다. 생성과 극복. 요샛말로 바꾸어 놓으면 조화와 투쟁이다. 이런 두 가지 운동과 그것의 통일을 통해 만물이 생성, 유지, 발전을 하여간다고 서경덕은 말한다. 조화만을 강조하는 입장도 투쟁만을 강조하는 입장도 반대한다. 원효의 화쟁사상과 상통하는 얘기이다.

서경덕의 철학은 정통 성리학과 대치된다. 성리학은 이()와 기()를 가지고 세계와 자연과 인간을 설명하는 철학이다. 이 둘 중에서 성리학은 이치를 말하는 이를 더 중시한다. 이는 귀한 것이고 기는 천한 것이다. 서경덕은 이런 구분을 부정한다.

이는 기를 주재한다. 주재한다는 말은 바깥에서 주재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는 기보다 선행할 수 없다. 만약 선행한다면 기를 유한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서경덕, <이기설>

이는 기에 포함된 것에 불과하다. 이를 앞세우게 되면 태허와 기를 분리하는 도교와 마찬가지로 만물의 생성과 운동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얘기이다. 서경덕은 이를 폐기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의 독자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기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어디까지나 기가 중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