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대조각을 새 장을 연 권진규전] 60년대 담담한 표정의 한국여인상
덕수궁미술관 2009.12.22-2010.02.28
김구림_브라운갤러리-박방영_리뷰-이준호_리뷰-민병권_인사동-돌장승_전시소개-황재형
권진규(1922∼1973)전이 열리는 덕수궁미술관입구
권진규가 새로 조명을 받은 것은 사실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모교인 일본의 무사시노미술대학 설립 80주년 작가로 권진규를 교수와 학생 만장일치로 선정했기 때문이다. 그의 치열한 예술혼은 늦게나마 빛을 보게 되었다.
이번 전은 제1전시실 학창시절, 제2전시실 여인상, 제3전시실 자소상과 부조작품, 제4전시실 동물상과 참고작품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각 100점, 드로잉 40점 등 전 생애에 걸친 작품을 시대별로 고르게 감상할 수 있다. 그에게 영향을 준 작가로는 피카소, 모딜리아니, 로댕, 부르델, 마리노 마리니, 시미즈 다카시, 김종영, 이중섭 등이 있다. 작품설명회는 매일 10시부터 오후5시까지 열리고, 금-토-일요일에는 6시30분에 한차례 더 열린다.
"아이들을 잘 키우는 것은 뛰어난 작품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나 인간의 아이는 언젠가 죽지만 내가 만든 아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 권진규
[한겨레구본준기자] http://blog.hani.co.kr/bonbon/23966
[오마이임순혜기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42842
작업실에서 작가 권진규
이 자신에서 보듯 권진규는 자신의 얼굴을 조각하고 있는 게 그 형상은 거의 흡사하나 그만의 독특한 시선과 안목으로 모양새가 같으면서 전혀 다른 인물상을 낳았다. 현실적 괴로움을 도피하거나 극복하려는 면모를 보인다. 그래서 그의 자모상이 위에서 보듯이 그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보다 이상적이고 이국적이다.
[작가소개] 일제 때인 1922년 4월 7일에 함흥의 한 신흥부호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8년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무사시노미술대학 조각과에서 공부했다. 유학 후 1952년 도쿄에서 열리는 제37회 이과전(二科 展)에서 입선하며 주목을 받는다. 이과전은 입체파와 야수주의 등 진취적 양식을 표방하고 신진작가를 의욕적으로 배출하던 시기였다. 구본웅, 김환기, 이쾌대 등이 이를 통해 데뷔한다. 이후 1953년이후 내리 3년 이과전에서 입선하여 스타가 된다.
1959년 귀국 후 주로 테라코타와 건칠(乾漆)로 두상조각과 흉상을 만든다. 절제된 긴장감과 정적인 조각을 통해 이상세계를 추구하는 인간상을 담아낸다. 1966년 홍대, 서울대, 수도여사대에서 학생을 가르친다. 1965년 수화랑 기획으로 첫 개인전을 개최한 이래, 1968년 도쿄 니혼바시화랑, 1971년 명동화랑에서 개인전을 연다. 1973년 5월 4일 자신의 작업실에서 자살이라는 극단적 방법으로 생을 마감한다. [네이버 등 참고]
부르델(1861-1929) I 샹젤리제 대극장 정면장식 위한 습작(릴리프) '아폴론의 명상' 1911. 도쿄국립미술관소장
권진규의 스승인 시미즈 다카시가 프랑스에서 그의 스승 부르델의 작업실에서 찍은 사진
그는 결혼을 3번했고 50대에 들어서 자살했다. 한국조각의 선구자. 그는 일본에 유학했고 시미즈 다카시(淸水多嘉示 1897-1981)를 스승으로 모셨는데 이 일본조각가는 프랑스유학파로 부르델(E.A. Bourdelle 1861-1929)에게 직접 배웠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권진규는 부르델의 영향을 받은 셈이다. 이번 전에는 시미즈 다카시, 부르델 부조작품도 같이 전시되어 권진규에게 그들의 영향력을 한눈에 읽을 수 있다.
권진규전이 열리는 덕수궁미술관 야경
제1전시실 '학창(유학)시절' 해설
권진규의 명성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사실 그동안 제대로 된 권진규의 전시를 볼 수 없었다. 그러니 이 작가와 만남이 쉽지 않았다. 이번에 덕수궁전시는 정말 그와 마음으로 대화하고 그의 예술세계를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그가 왜 자살했다는 점의 숙제가 조금은 풀린다. 한국은 이 비운의 천재의 예술적 혜안을 알아보지 못했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때가 60-70년대 고도성장기 오직 앞만 보고 살던 시대아닌가.
권진규 I '나부(Nude)작품' 석고 1953. 센나 히데오소장
이 작품은 권진규의 진가를 내다보게 하는 작품이다. 그리스적 균형과 조화를 이룬 조각이 아니라 동양의 리얼리즘적 요소를 과감하게 반영했다. 그래서 독자적 세계를 구출한 작품이다. 짧은 다리와 울퉁불퉁한 몸매 이런 것이 보다 현대적 조각의 한 영역을 넓히는 길을 열었다. 앞모습 못지않게 뒷모습이 아름답다.
권진규 I '두상(Head)' 석고 1953. 도시마야스마사기념관
학창시절 그의 조각은 서구적이다. 젊은 시절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그의 스승의 스승인 부르델에 빠진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권진규는 조각과 함께 프랑스어를 공부한 것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식민지시대에 서구적인 것에 종속되는 것은 벗어나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는 한때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적인 것을 추구했는지 모른다. 위의 작품이 그렇다. 하긴 요즘 젊은이들의 미국보다 더 미국이 되려고 하는 층도 있지 않은가
학창시절의 작품이라 매우 서구적이다. 1953년이라는 시대적 한계가 느껴진다.
권진규의 말 드로잉
권진규의 말 드로잉에서 보면 이것은 하나의 회화다. 어떻게 말을 저렇게 요약할 수 있는지 놀랍다. 붓의 끝에 힘과 긴장감이 넘치면서 말의 특성과 매력을 단순화게 잘 농축하였다. 담백한 맛이 나면서 동시에 웅장한 기상이 엿보인다. 특히 말등의 선이 날카롭고 날렵하다.
권진규 I '마두' 테라코타 1957. 정세영소장
말 머리 몸체는 없지만 말의 전체 몸집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말의 눈을 살아있고 콧김도 느껴진다. 긴 입에서 나오는 입김과 함께 그러나 음영이 깊지 않아 아직도 더 많은 수련이 요구되는 것 같기도 하다. 권진규의 두골이 마두를 많이 닮은 점은 재미있다. 조각가와 동물이 작품을 통해 교류하고 소통하는 것 같다.
권진규 I '마두' 테라코타 1969. 국립현대미술관소장
이 작품에 위 작품보다 12년 후의 것으로 완숙한 완결미를 보인다. 말의 에너지 넘치는 위력과 조형적 미를 잘 살려냈다. 말은 동물 중에서 가장 조형적인 요소가 풍부하다. 비록 물질로 만들어졌지만 눈과 코, 귀과 입 등 이목구비가 다 살아있다. 그리고 붉은 빛은 인상적이다. 이는 작가내면의 강인함의 표현이리라.
작업실에서의 작가. 권진규의 당시 화실 재연과 작품들. 가나아트센터 전시장 ⓒ 임순혜
권진규는 흙을 직접 손으로 다루며 가마를 만들어 구워내는 테라코타와 얇은 삼베천에 옻칠을 덧입혀 형태를 만들어내는 동양방식인 건칠을 동시에 사용한다. 우리에게는 브론즈보다 건칠로 만든 작품이 거칠고 투박해 보이지만 더 친근감이 간다. 왠지 따뜻하게 느껴진다.
권진규의 제자인 김동우교수는 그의 작품의 특징을 '압축된 힘'이라고 봤다. 또한 권진규의 삶과 예술에 대한 엄격성을 긴장되고 압축된 힘으로 표현했다"고 말한다. 그는 스승에게서 조각을 배운 것이 아니라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와 작업에서 선을 넘지 않는 절제와 엄격함과 양보할 수 없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배웠다고 회상한다.
미술평론가 김이순은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대부분 그의 작품은 전통을 자기화하려는 노력이 강하게 녹아있고, 전통적이면서도 모던하고, 절제미와 단아함이 느껴지고 볼륨과 선에서 우리 미감이 서양식 조각방식으로 표출되었다"고 평가했다. [임순혜기사 중 일부 인용]
[권진규의 스승 시미즈 다카시작품 2점소개]
시미즈 다카시(1897-1981) I '노라양(Miss Nora)' 브론즈 1925. 유족소장
이 작품은 그의 스승인 부르델의 냄새가 강하게 풍긴다. 1925년이 이런 작품이 나왔다는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앞선 것이다. 1930년 식민지한국에서서 일본의 고급문화를 접할 수 있었지만 극소수일 뿐이다 일본유학파와 극소수 지식인뿐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적 영양분마저 차단된 것은 바로 1940-1950년에 태어난 세대이다. 이들의 특징은 철학이 없다. 대형교회와 아파트숭배, 경박함이 특징이다. 이 세대가 지금 우리나라를 주도하고 있다.
시미즈 다카시(1897-1981) I '호시메양(Miss Hosime)' 석고 1950. 유족소장
인간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숭고한 이상세계를 서구적 잣대로 표현한 것 같다. 재현하는 기술적인 면에서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지만 이 작가의 독창적 특징이 없어 안타깝다. 그의 제자인 권진규보다 작가 개성을 살리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인물이 표정이 생생하게 살아있어 마치 숨을 쉬는 것 같다.
권진규 I '해신(Sea God)' 테라코타 1963. 강은경소장
권진규의 작품 중 가장 독창적 작품이다. 구상과 추상의 요소가 적절하게 뒤섞였다. 닭머리를 형상화한 것 같은데 그 뻗치는 생명력과 절규하는 듯한 모습과 괴기스러운 형상이 관객의 눈길을 잡는다. 마치 고궁의 처마에 와당 같기도 하다. 작가는 사람과 사물에 대한 예리한 관찰자로 그런 걸 입력했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쏟아낸다.
권진규 I '말' 건칠 1969-1970. 신성수소장
이 작품은 한분에 보기에 이탈리아 조각가 마리노 마리니(덕수궁미술관에서 전시한 적이 있음) 작품을 연상시킨다. 그 날렵하고 세련된 몸의 형태 균형감이 없어 보이지만 전체적으로 봐서 조화를 이룬다. 하늘로 치솟는 듯한 기상이 보는 이에게 아찔한 쾌감을 준다. 날씬한 다리와 기운이 치솟는 듯한 말의 머리와 머리털부분은 작품의 매력을 몇 배로 증가시킨다.
[마리노마리니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4399
덕수궁미술관 입구에 붙여놓은 전시홍보포스터
그가 풍기는 외모는 날카로우나 인간적 매력으로 넘친다. 그가 남긴 여인상을 보면 이 작가의 내면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일본여성과 사랑을 통해 많은 영감을 받았고 그녀와 우여곡절을 통해 여성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사랑하지만 같이 살 수 없는 운명에 대해서 담담하게 받아들인 것 같다. 하지만 잠시도 여자 없이는 살 수 없는 그런 작가가 아닌가싶다.
[예술가는 여자와 같다. 그러니 여자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현실은 여자에게 가혹하다. 현실은 여자를 고생시킨다. 여자는 실제로 엄청나게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세상은 여자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여자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여자는 사는 것이 힘들어 죽겠다. 여성은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본연의 아름다움을 포기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꾸민 아름다움을 따르게 된다.
"여자를 예술가로 대치시켜보면 너무나 같다. 현실은 예술가에게 가혹하다. 현실은 예술가를 고생시킨다. 예술가는 실제로 엄청나게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세상은 예술가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예술가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 예술가는 여자 같다. 엄청나게 탄압을 받는다. 왕따를 당한다.
"우리가 숭례문 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살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문화재에게 가혹하다. 현실은 문화재를 혹사시킨다. 문화재는 실제로 엄청나게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세상은 문화재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문화재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여자는 아직 한국에서는 비주류다. 남자만 주류다. 비주류인 여자가 주류인 남자의 세계에 도전하면 살아남기 쉽지 않다. 비주류인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그래서 똑똑한 여자가 중세기에 마녀로 몰리고 19세기말에는 팜 파탈(요부)로 몰렸다. 심지어 화형을 당했다. 21세기 한국에서는 된장녀가 된다. - <매혹 남자를 눈뜨게 하는 여자의 신비(청림출판)>의 패러디
[부조(Relief) : 구상과 추상의 접점]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한국현대미술은 구상과 추상의 경향이 혼재되어있는 특징을 지닌다. 권진규는 구상에서부터 정제되고 단순한 추상화로 나간다. 이런 접점을 잘 드러낸 작품이 바로 부조이다. 선의 리듬감, 고색창연한 색채, 조형솜씨가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유독 말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1960년대부터 제작되는데 소에 대한 관심은 전통문화에 대한 권진규 자신의 관심과 더불어 당시 민족적인 것을 형상화하고자 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린 것이리라.
권진규 I '악사(Musician)' 테라코타 1964. 김진소장
동물 중에서 조각적 요소가 풍부한 것은 말인 것 같다. 말과 인간이 서로 대화를 나누는 듯이 이 작품은 바로 서양조각의 영향이 역력하나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사람과 말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권진규 I '공포(栱包 Bracket Set)' 테라코타 부조 1965. 국립현대미술관. 하이트문화재단
공포(栱包)는 전통 목조건축에서 처마 끝의 하중을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댄 나무재료를 말한다. 고궁이나 사찰건물에 많이 볼 수 있다. 사람의 얼굴이나 사물의 형체를 극단적으로 단순화하여 보다 조각의 매력을 한 단계 끌어올린다. 마치 회화 같기도 하고 조각 같기도 하고 추상같기도 하고 구상 같기도 하고 그런 여러 요소가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권진규 I '작품' 테라코타 부조 1966. 국립현대미술관. HITE문화재단
역시 말을 보고 그린 것인가 일종의 해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을 재조합하고 있다. 선과 면과 점이 삼요소를 이루면서 어떤 형태를 연상시킨다. 입체감 나는 질감이 비슷한 형태로 변주하여 관객에게 보는 재미를 유도한다. 매우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 여기서는 피카소의 영향도 보인다.
권진규 I '전설(왕조의 전설 Dynasty)' 테라코타 부조 1965. 개인소장
여기서는 오브제를 더 단순화했다. 가운데 둥근 것은 눈의 모양을 형상화한 것 같다. 역시 머리와 다리는 있다 그리고 몸통도 보인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동물인지 사람인가 아니면 사람과 동물이 혼합인가
권진규 I '춤추는 뱃사람' 테라코타 부조 1964. 권경숙소장. '두 사람' 1964. 개인소장
여기는 음양시리즈라고 할까. 비슷한 것을 대조시켜 상승효과를 준다. 둥근 선과 곡선 그리고 직선의 요소가 뒤얽혀져 색다른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입체파화가들의 회화를 조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고 봐도 좋으리라. 무생물인 물질을 통해 작가의 상상의 세계와 혼과 정신을 생생하게 담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제3전시실 관객들
뒤에 보이는 작품은 부르델의 활 쏘는 사람을 권진규 나름의 방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이런 영웅을 조각함으로써 현실의 고통을 이겨내고 현실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인가. 하긴 예술에서 이상적 세계가 없는 것은 없으리라. 모든 예술은 현실을 직시하되 현실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이 동시에 있지 않은가.
제2전시실 작품해설 인물화
인물을 통해서 그가 추가한 지향점은 가장 순수한 영혼의 모습으로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영원성이다. 흔들림 없이 뜨고 있는 눈은 본질을 꿰뚫는 힘이 있다. 생생한 눈빛을 통해 무언의 메시지를 말하면서 동시에 어떤 것을 갈구하는 듯한 분위기를 준다.
권진규 I '춘몽(Spring Dream)' 대리석 1968-1969.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권진규 I '도모' 테라코타 1957. 센나히데오소장. 권진권의 첫 번째 부인 도모를 모델로 한 작품
도모와 권진규
48년 일본으로 유학 가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공부하다 6.25가 터지자 한국에서 학비가 끊겼다. 낮에는 데생과 조각을 밤에는 마네킹공장에서 알바로 학비를 벌었다. 이때 이 학교에서 서양화를 공부하던 여학생 도모를 만나서 결혼한다. 도모도 남편을 같이 공장일을 한다. 가난하긴 했지만 서로를 이해하며 보낸 6년간이 그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1959년에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편지를 받고 권진규는 귀국한다. 한일관계가 극도로 나빠 당시로는 부인을 데리고 귀국할 처지가 아니었다. 귀국하면 부인을 부르겠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권진규의 이후 삶에서 역시 도모를 평생 가슴에 그리워하며 외롭게 살아갔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을 떠난 지 6년이 지나도 엽서 한 장 보내지 않자 도모부모들이 한국으로 이혼장을 보냈다. 그러고 얼마지 않아서 권진규의 도장이 찍힌 이혼장이 우송된다. 그 후로는 권진규도 한국에서 몇몇 여인이 인연이 있기는 했지만 더 이상 그들에게 안주하지 못한다. 작업실 구석에 방 한 칸을 마련하여 외롭고 힘든 생활을 꾸려 나간다.
먼 훗날 한국에서 한 기자가 찾아갔을 때 도모여사는 눈가가 물기에 젖은 채 이렇게 회고했다. "뭐라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그이의 작품은 매우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그런데 그이가 서울로 가서 변했어요. 서울에서 만든 작품에는 고독의 냄새가 풍기는 것 같아요"
<글출처> http://cafe.daum.net/donmie/F4QX/27?docid=17Yt1|F4QX|27|20061018133805&q=%B5%B5%B8%F0%20%B1%C7%C1%F8%B1%D4&srchid=CCB17Yt1|F4QX|27|20061018133805
권진규 I 춘엽니비구니(Priestess)작품' 1967-1971 개인소장 도쿄국립근현대미술관소장
연작이나 재료에 따라 질감과 분위기가 달라진다. 맨 왼쪽은 건칠(乾漆)로 만든 것이다. 건칠은 점토나 석고틀을 만들고 그 위에 옻칠을 모시고 삼베나 모시에 걸쳐 바르는 방식(옻나무줄기에 상처를 내 흘러나온 수액이 건조하는 방식)을 말한다. 거칠지만 동양적 미감을 표현하기에는 이런 재료가 안성맞춤일 것이다.
권진규 I '선자(宣子)' 테라코타 1966
권진규는 드로잉과 조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많이 다루었는데 그는 모델과 작가와의 관계를 '모델 +작가=작품'이라고 했다. 제자인 장지원을 모델로 한 '지원'을 비롯하여 '영희','홍자', '경자' 등 주변의 여인들을 형상화한 작품들은 지나치게 긴 목과 사선으로 좁게 처리된 어깨가 특징적이다. 특히 목을 길게 내민 것은 마치 영혼의 소리를 들으려는 구도자처럼 느껴져 작가가 추구하는 예술세계를 짐작하게 한다. [박현주]
작품의 모델 선자
"여자는 숨 막히도록 아름답다. 여자는 진정한 남자 앞에서 정말 여자이고 싶어 한다. 사랑하는 여자만큼 남자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것은 없다. 여자들은 예쁘다고 말해주는 당신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한다. 여자에게 아름답고자 하는 열망은 연령과 무관하다. - <매혹 남자를 눈뜨게 하는 여자의 신비(청림출판)>의 패러디
권진규 I '영희' 테라코타 1946. HITE소장
작품의 모델 영희(?) 확실하지는 않다.
"여자들은 온갖 종류의 조언을 듣지만 여자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른다. 여자가 남자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느냐 그것은 유혹이다. 유혹이란 여성이 남성을 깨워주는 수많은 방법을 상징적으로 말해주는 단어일 뿐이다. 진정 아름답고 여성 강한 여성만이 남성을 유혹할 수 있다. 진정한 여성은 유혹을 통해서 남성의 영웅 심리를 깨운다. - <매혹 남자를 눈뜨게 하는 여자의 신비(청림출판)>의 패러디
권진규 I '지원(志媛)의 얼굴' 테라코타 1967. 개인소장
지원은 권진규의 홍대서양화과에 다니던 제자를 모델로 그의 대표작이다. 잔잔하고 담담하고 은은한 여인의 흉상이다. 눈썹 위 긴 선의 자국이 남아있는 게 개인소장품이고 없는 게 국립현대미술관소장품이다.
권진규 I '지원(志媛)의 얼굴'(앞모습) 테라코타 1967. 국립현대미술관소장
한국여인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했다고 할까. 하지만 그는 여전히 서구적 미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을 극복한 것을 한 단계 높은 작품을 선보이기 전에 세상과 작별한 것이 아쉽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그의 최고걸작으로 손꼽을 수밖에 없다. 이상적 세계를 넘보면서 그리움의 갈망이 그 누구보다 깊고 강렬하다. 여인흉상 시간이 갈수록 그의 예술을 빛날 것이다. 지금은 바로 그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작품 '자원의 얼굴'의 모델인가. 사진이 전시되어 있지만 명기되어 있지는 않다.
여자에게 아름다움은 강력한 힘이다. 아름다움을 조금씩 드러내는 여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활력을 준다. 예술가에겐 영감을 준다. 여성은 삶의 기를 넣어주는 존재(animator)다. 그런 면에서 여자는 예술가를 닮았다. 그러기에 예술가를 여자와 같은 운명이다. 서로 소통이 쉬울 수밖에 없다
작업과정을 볼 수 있는 '애자 석고틀' 1점을 선보인다
권진규 I '애자' 테라코타 1967. 정문술소장
구차한 살림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은은한 미소가 강렬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작품으로 이번 전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 모딜리아니의 긴 목을 연상시키는 길게 뺀 목은 일상의 폭풍우를 다스리는 마음이 담긴 것 같고 오래 기다리고 참을 줄 알고 멀리 내다보는 안목을 두루 지신 한국여성의 미덕을 상징하는 것 같다. 만감이 교차하는 애자의 얼굴에는 삶에서 맛보는 서러움을 씻어내는 사랑에 대한 막연한 그리움이 강하게 흐른다.
권진규 I '자소상(Priest)' 테라코다 1969-1970 고려대학교박물관소장
권진규는 1973년 5월 4일 고려대학교 박물관 현대미술실 개관전에 전시중인 위 작품을 본 후 자결했다. 그는 비극의 운명을 향유했던 예술가였다 목을 앞으로 길게 내민 것은 미지에 세계에 대한 무한한 동경을 보여주는 모습으로 구도자적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권진규작업실 내셔널 트러스트에서 2006년부터 '시민문화유산3호'지정]
-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1시간동안 개방
권진규의 작업실
관람객의 이해와 감상을 돕기 위해 전시장에서 한편, 전시기간 중 서울 성북구 동선동 '권진규작업실'이 매주 금요일 오후 3시부터 1시간동안 개방된다(사전에 전화 02-3675-3401∼2)로 신청) 권진규작업실은 1959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작가가 1973년에 생을 마감할 때까지 사용된 곳이다. 이 곳은 2006년 문화유산 보전운동 단체인 내셔널트러스트 시민문화유산 3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내셔널 트러스트관련 오블]http://blog.ohmynews.com/seulsong/151785
[권진규전 연계강연회 및 좌담회]
1 강연회 일정 장소 : 덕수궁미술관 시청각실 매주 금요일(15:00~17:00) 참여방법 : 관람객 누구나
- 2월05일(금) 오후 5시 류지연(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전시 취지 및 소개
- 2월19일(금) 오후 5시 김이순(홍익대학교 교수) 권진규 조형론
- 2월26일(금) 오후 5시 조은정(한남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구상조각과 권진규
2 좌담회 일정 "권진규와 모델들" 일시 : 2010년 2월 9일(화) 15:00~17:00 장소 : 덕수궁미술관 시청각실
사회 : 류지연 학예연구사 대담자 : 제자(김정제, 장지원) 지인(안동림) 조수(원수영)
[음양 김구림(KIMKULIM, 金丘林)전] 실험과 전위의 열정과 관능적 위력으로 현대문명비평
- 씨에스피111 아트스페이스(CSP111 ART SPACE 대표 조성운) 2010.01.10-2010.02.12
- 서대문구 연희동 188-55번지 현빌딩 3층 www.csp111.co.kr 02)3143.0121 큐레이터 이수현문의
김구림기획초대전 전시장 입구 펼침막 작품명 'S-01' 혼합재료 28 ×46.5cm 2001
[미술관전시소개] CSP111 아트스페이스는 2010년 첫 전시로서 '영원한 아방가르드' 김구림 화백의 '음양'특별초대전을 마련했다. 평면과 오브제, 영상설치를 총망라한다. 이번 전은 1부 '소멸의 미학'(2010.1.11.~1.31.)과 2부 'ic Toc Monster'(2010.2.2.~2.12.)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2000년 미국에서 귀국한 후 10년 간 서울에서의'음양' 연작을 발표해왔다.
[오프닝행사] http://blog.naver.com/biz_analyst?Redirect=Log&logNo=10078278363
[오마이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81643
이번 전시를 위해 포즈를 취한 작가 김구림
김구림은 절대 늙지 않은 전위미술의 상징이자 한국퍼포먼스의 개척자다. 그는 일찍 몸 철학을 그의 예술행위의 키워드로 삼았다. 과거에는 정신이 먼저이고 육체가 나중인 문화였다. 그런데 그 정신문화가 결국 독재와 세계대전을 낳고 20세기는 망하고 말았다. 김구림을 바로 그런 점을 내다본 예언자다. 그는 이제 몸 철학의 시대에 그의 빛을 발한다. 여기서 몸이란 마음을 포함하는 몸이다. 음양의 조화와 같은 것이다. 그는 분명 퐁티처럼 "나는 나의 몸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김구림 I '음양 7-S 425' 혼합재료 107×36.5cm 2007
[김구림 작품세계] 김구림은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부정에 몰두하는 해체적 사유와 유목적 기질의 소유자이다. 그럼에도 그의 시선은 과거가 아닌, 현재에도 진행 중인 변화와 생성의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언제나 자신의 근원인 한국을 향하고 있다. 냉정과 열정을 오가는 사랑의 시선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역사적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예술과 사회, 전통과 혁신을 매개하며 건전하고 건재한 비평적 사색을 멈추지 않는 균형추역할을 유쾌하게 수행한다. [미술관자료]
김구림 I '음양 6-S 연작' 혼합재료 22.5×22.5cm 2006
이번 전에서는 전통적인 회화의 방법론에 대한 회의와 장르의 해체, 그리고 다시 회화적 이미지 공간으로의 화해적 결합을 추구해 온 김구림의 예술행보 속에서 조명하고자 한다. 2부에서 김구림은 지금껏 한 번도 공개하지 않았던 오브제들을 통해 지칠 줄 모르는 호기심과 시각적 매혹을 향한 탐식적 욕망을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로 풀어가는 예술적 유희의 흔적을 가감없이 보여줄 것이다.
이번 김구림 '음양'특별전은 한국사회의 현대기술문명과 미디어 문화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물질적 욕망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적 시각을 가벼우면서도 가볍게 지나치지 못할 농담처럼 던지고 있다.[미술관]
김구림 I '음양 3537' 아크릴 145×112cm 2003
"나의 작품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하고 어디서 끝인지가 분명치 않다. 거기서는 과거와 현대가 종횡으로 중첩된 이를테면 과거 현대를 부각시킨다. 그래서 있음은 없음의 상대성이며 서로가 더불어 존재한다" - 작가의 말
"최근작 음과 양은 양식 면에서 명시적인 음양구조보다는 중첩과 병치가 돋보인다. 의미의 측면에서 보면 동태적인 양삭을 구사하여 우리시대의 상대성의 신화를 창조한다. 서로 상충되고 무관해 보이는 이미지를 결부시킨다. 이를테면 동서의 갈등, 종교 간의 대립, 문명 간 의 충돌을 포함한 전대미문의 정신적 냉전 폭력과 살상 환경위기 기근과 각종재난 등 총체적인 이야기를 배경에 두고 이를 대응하는 상징을 구사한다" - 미술평론가 김복영
김구림 I '음양 9-S 8' 혼합재료 84×50cm 2009
그의 작품에는 관능적인 몸이 항상 등장한다. 누드 페티시라고 할까. 관능이란 가장 생명의 기운이 집약된 상태이다. 관능의 기운생동이 최고조에 달하면 그것이 에로티시즘이 된다. 그런데 라캉이 성관계는 없다고 말했듯이 진정한 에로티시즘은 없다. 그의 작품세계는 바로 그런 것이 도시의 문명 속에서 다시 되돌려오는 것이다. 우주의 순화법칙이 음양과 우주만물의 조화, 남녀통정을 통해 이 세상의 행복과 즐거움을 회복시키는 것 같다.
김구림 I '진한장미' 책에 혼합재료 23×15.5cm 2002 ⓒ Leolook
여자의 몸을 해체시켜 다시 오브제에 재조립하고 그런 가운데 현대인들의 애정결핍증과 현대문명의 풍요 속 빈곤을 꼬집는다. 그는 진품문명으로 짝뚱문명을 청소하는 것이다. 그에게는 몸 철학과 유희정신을 쌍두마차처럼 항상 함께 가지고 다닌다. 해체와 화해라는 음과 양을 반복하면서 거기서 새로운 미술적 도전과 실험을 통해 항상 전위에 서 있고자 한다. 그가 보기에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늙은이처럼 보일 것이다.
[직가소개] 김구림 1936년 대구출생. 뉴욕 스튜던트 리그에서 수학 [개인전]1958~2007 39회(한국, 일본, 미국) [수상] 2006 제7회 이인성 미술상 [저서] 판화컬렉션 [작품소장] 국립현대미술관, 호암미술관, 워커힐미술관, 이스라엘미술관(예루살렘), 베켄카운티미술관(뉴저지, 미국), 프랑크푸르트 시민회관(독일), 훗가이도근대미술관(일본), 홍익대학교박물관, 뉴욕시티은행(미국), 대구문화예술회관, 부산시립미술관, 서울대학교박물관, 대전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토탈미술관, 한국문예진흥원, 수원대학교미술관, 경주아사달조각공원, 서울시립미술관, 오사카예술센터(일본), 경기도미술관, 후쿠오카아시아미술관(일본)외 다수
[브라운갤러리개관-박방영전] 삶의 환희를 율동적 선과 자유분방한 몸짓으로 노래
- 강남 압구정동 브라운갤러리(Brown Gallery)에서 2010.01.22-02.27까지
박방영전이 열리는 브라운갤러리 (www.browngallery.kr)입구
"강남 한복판에 새로운 갤러리 생겼네요" 명품점이 아니라 브라운갤러리(관장: 김수희 큐레이터: 안선영)라는 문화공간이 생겼다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죠. 앞으로도 좋은 전시를 기대해 볼만한 것 같다.
박방영 I '너와 함께 갈 거야' 31*21cm 2009
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글과 그림이 둘이 아니고 하나다 그 색채감이 그지없이 화사하다. 삶이 거침이 없고 자유분방하다. 몸과 마음이 완벽하게 같은 시공간에 만나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색과 빛과 혼이 하나가 되어 만난다. 가정의 화목함이 바로 만사형통의 지름길을 보여준다. 청춘남녀 꽃과 나무가 지상에서도 극락을 누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그의 즐거움이 우리의 즐거움이 된다(樂樂). 작가는 관객에게 무언중 말한다. "너와 함께 갈 거야"
박방영 I '멋진 날' 이번 전 도록전시
한국인의 삶의 목표는 과거에는 멋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돈으로 바꿨다. 그래서 멋이 사라졌다. 멋이란 한국미의 농축이다. 삶의 멋으로 돈의 위세를 꺾는 지혜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나 그런 노력은 필수적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자살률이 제일 높은 것은 이런 세파에 무관하지 않다. 돈에서 멋으로 삶의 코드를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어차피 고용 없는 성장이라면 각자의 여가를 나름의 지혜로 즐겨야 한다. 적은 비용으로 수준 높은 행복을 찾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멋의 예술이 아닌가.
박방영 I '즐거운 날' 한지위에 혼합매체 41*33 2009
정치와 종교가 타락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행복을 미래에 저당 잡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란한 정치적 수사에 속는다. 현대인들은 현대 속에 살지 않고 미래나 과거 속에 산다. 현대를 즐기는 것이 시급하다. 왜냐하면 정말 중요한 것은 언제 지금 여기이기 때문이다.
계급배반의 투표란 바로 여기에서 오는 것인다. 그래서 서민들은 부자를 대변하는 당을 찍는다. 자신을 강간한 남자를 자신을 사랑하기에 그랬다고 생각하는 여자와 흡사하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은 바로 지금 여기다 여기서 즐거운 날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 회한이 많아질 것 같다.
박방영홈 http://aqaba.tistory.com/4?srchid=BR1http%3A%2F%2Faqaba.tistory.com%2F4
박방영 I '사랑의 도사(道師)' 2009
이 작가 즐겨 쓰는 말이 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삶의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말이다. 이해하면 사랑하게 되고 이해하면 넓게 용서하게 되고 인생을 진정 사랑할 수 있다는 말로도 번역할 수 있으리라. 그의 그림에는 시서화의 전통과 함께 인문학적 교양과 사색 삶에 대한 환희 등을 솔직담백하게 담고 있다.
박방영 I '서호' 한지 위에 먹 27*24 2008
올해는 호랑이 해 호랑이는 한반도에 아직 살아있다. 일본에는 호랑이 없다. 우리의 선조들은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 굉장히 좋아했다. 왜냐하면 호랑이는 우리민족의 터전과 시원이 산에 출발하기 때문이고 환경급수가 최상급인 산에서만 호랑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런 정기를 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산에는 산신령이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산이 영험하려면 호랑이가 살아야 하고, 호랑이가 살려면 산이 온전해야 한다. 호랑이가 있는 그 산이 우리에게는 지상낙원이다.
박방영 I '아 좋다 외' 한지 위에 먹 27*24 2009
이 작가는 고등학교 떼 서예대회에 나가서 전국1등상을 탄 경력이 있다. 일찍부터 서예와 그림에 재능이 보였다. 그의 작품을 얼핏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필체는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리라. 그의 한글서예는 팝아트처럼 친근감이 간다. 한글의 글꼴이 조형적으로 그 어느 나라 것에 못지않다. 입구(口) 자에 모든 한글의 자음이 다 감겨져 있다. ㄱ ㄴ ㄷ ㄹ ㅁ ㅂ 등등 말이다.
브라운갤러리 1층 전시실
여기서 매주 혹은 매달 새로운 전시의 향연이 열린다. 갤러리를 오픈하면서 첫 전시로 박방영전이 열렸다. 브라운 갤러리는 상업화랑이지만 여러 모로 문화의 징검다리를 놓고 문화기부사업에도 관심을 보인다. 부군께서 병원운영으로 경제적 개념을 두지 않는다고 김수희관장도 한 말씀 보탠다.
작가 박방영(右 6번째)과 지인들 관객들
그는 애국자(?) 왜냐하면 자녀 다섯을 잘 키우고 있다. 위로 벌써 대학생이 둘이고 아래로 아직 중고생이다. 작가의 아내(右 7번째) 표정이 아직도 앳된 사춘기의 모습이다. 작가는 삶에 기를 넣어주는 사람인데 우리도 그의 기를 받아서 서로 그런 역할을 맘껏 발휘할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미술관에 가는 것은 작가와 그림을 기를 받고 삶을 아름답게 살기 위해서가 아닌가.
[작가 박방영 작업실풍경]
박방영작가의 작업실
그의 작업실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에 있다. 올해는 큰 아들이 S대 미대에 들어가 아버지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가정 분위기가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주변의 가구며 문 벽 형광등 일체가 생활미로 빛난다. 한적한 곳에 한 예술가가 들어가면 그 동네가 완전히 바꾼다. 마치 초등학교에 아동문학가가 담임을 맡으면 그 반이 달라지는 것과 같은 원리다.
박방영작가의 서재
공간이 넓어 책이며 화집 그리고 여러 가지 자료를 넓게 볼 수 있어서 쓸모가 있다. 방에도 따로 서재가 있다.
작가작업실 앞뜰 장독대
가장 한국적인 풍경 양지바른 곳에 된장 고추장 간장이 무루 익어가고 있다. 맛의 향연이 일어나는 소형발전소 같다. 색과 빛과 향 이런 것은 다 멋과 맛 그리고 음식과 자연의 소리와 바람과 공기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이곳의 음식은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기막힐 것이 틀림없다.
작가의 작업실 입구
일단 집의 담을 쌓기 위한 기초공사를 인부들이 와서 해 주고 나중에 일곱 가족이 달라붙어 그 위에 이렇게 멋진 돌담을 집을 뺑 돌아가면서 쌓은 것이다. 돌담의 높이가 균일하지 않고 들쑥날쑥 오히려 보기에 좋다. 너무 자연스럽다. 역시 작가의 집은 달라도 뭐가 다르다.
[리뷰 이준호전] 칼끝으로 되살린 현대적 감각의 세련된 산수화
- 영아트(종로구관훈동 105) 2010,01.10-01.31
작가 이준호 2008. 경기문화재단문예진흥기금선정. 국립현대미술관-미술은행선정 narara77@dreamwiz.com
이준호 I '산수경' 캔버스에 긁기 45*33cm 2009
회화와 디자인을 전공한 이 작가는 장점이 많다. 그 요소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산수화에 다자인과 그래픽요소가 들어가니 현대적 감각이 살아나면서 산수화의 또 다른 정형과 가능성을 활짝 열어준다. 한국작가의 모든 그림을 결국 그것이 산수화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산수화에는 그 속에 인물화 정물화 풍속화가 다 들어간다고 해도 좋다. 여기서는 산수의 풍경이라고 이름을 붙이면서 이 작가만의 예리한 선으로 굵고 또 굵어내어 전체적으로 균형감 넘치는 조형을 낳는다. 그가 포착한 색조의 아름다움 역시 신선하고 유쾌하다.
이준호 I '산수경' 45*33 캔버스에 긁기 2009
산수의 풍경에 민화적 해학과 위트가 넘친다. 아주 현대적 모텔도 다 들어 있다. 그리나 아주 작게 서양은 인간을 너무 과장되게 그리는 반면 자연을 너무 왜소하게 그리는 경향이 있는데 동양은 인간이 자연 속에 포함되기에 인간사는 언제나 작다. 남자보다 여자를 크게 그리는 이왈종처럼 인간보다 자연을 크게 그리는 것인 순리가 아닌가싶다. 여자의 몸은 특히 자연의 생리를 많이 빼닮았는데 역시 이런 작품에서 그런 것은 확인할 수 있다.
이준호 I '산수경 73*91cm 2009
산수는 그 속에 모든 우주만물이 다 들어있다. 원래 산수란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은 아니다 일종의 관념화라고도 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진경산수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면서 젊은 세대들도 산수경을 다시 보게 하는 효과를 준다. 우선 색채가 노란색이고 그 선의 세밀함과 섬세함이 돋보인다. 산수경도 날마다 업그레이드되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서는 확실히 기존의 산수화와는 다른 면을 보인다. 아니 그런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이준호 I '항구도시' 110*110cm 2009
제목이 항구도시 항구가 보이기는 하는데 그 규모가 너무 작다. 웅장한 산세에 위압감을 느껴 몸과 마음이 위축된 것 같다. 어머니 같은 자연에 안긴 작은 항구도시는 그래서 행복하게 보인다. 인간의 행복은 자연의 품에 안길 때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양사상가 파스칼은 신을 떠난 인간의 비참을 이야기했지만 동양에서는 자연을 품에 안긴 행복을 노래해왔다. 산을 포함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저절로 생긴 것이 산수화다.
이준호 I '바라보다' 73*91cm 2009
동양의 관조의 세계 바라보기(contemplation)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비행기가 새처럼 날고 그림 한복판에 시원하게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오른쪽에 무서운 호랑이가 아니라 귀엽게 웃고 있는 호랑이가 보인다. 세상과 거리를 두고 보는 마음 그런 여백과 여유가 느껴진다. 이 그림 안에는 인간의 사랑과 자연의 순환 그리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담겨 있는 것 같다. 하여간 새해에는 인생과 사랑과 예술, 정치와 경제 그리고 사회현상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리뷰 민병권 산수화전] 묵향이 넘치는 산수의 담백한 멋
- 가나아트스페이스 2010.01.20-2010.01.26
민병권(1972~) I '작품' 2009
이 작가는 동양화 산수화의 화려한 귀환을 꿈꾸고 있었다. 산수화란 일종의 우주화로 한국인에게는 각별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 홀대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미대에서 하나둘씩 동양화가가 없어지는 모양이다. 하긴 일본에도 없는 동양화가가 우리나라에만 일제의 잔재로 남아있기는 하지만 산수화의 현대화와 세계화는 모든 작가들의 고민일 것이다. 산수화에서 진정한 포스트모던을 재발굴하여 세계화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민병권은 그 다움을 작품에서 드러낸다. 강화도의 적토나 인근공원을 그려낸 작품에서 작가는 항상 그곳에 의연히 존재하는 자연을 그려낸다. 형식적인 실험만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옛 방식의 사고를 이용하여 자기만의 조형언어를 만들고자 한다. 동양화의 필과 준을 완성하는 과정은 오래되었고 진한한 과정이다. 그 필과 준에게 진검승부를 건 그의 작업이 어떻게 나아갈지 지켜볼 일이다" - 기혜경(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민병권 I '소나무' 2009
여기서 소나무 한 그루는 모든 나무를 집약시킨 것 같다. 소나무의 아름다움은 옛날부터 우리 조상들의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는데 사실 내가 캐나다에서 놀란 것은 거기에도 소나무가 있었다는 것 중국과 러시아에도 있고 어느 나라에도 있다. 그런데 한옥을 지을 때는 한국산적송이 최고다. 물 빠진 겨울소나무를 쓰면 갈라지지 않는다. 한우가 그렇게 한옥이 그렇고 고려인상이 그렇고 한국소나무가 그렇다. 그림도 그렇지 않을까 다만 이것의 과제는 역시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리라.
[인사동 석장승] 상처 남기고 귀환한 석장승, 그 멋과 풍류가 되살아나길...
- 북인사동 광장(안국역쪽) 석장승이 돌아오다
석장승 당장군(할아버지) 서 있던 북인사마당. 2009년 5월20일사진. 풍류객의 피리 부는 모습이 멋지다.
이 석장승은 인사동거리보수공사를 하면서 7월 1일 철거되었다. 내가 쓴 기사 때문인가 서울시와 종로구청에서 마음을 돌린 것인지 2010년 1월 30일 다시 인사동 입구에 되돌려놓았다. 원래 자리가 아니고 관광안내소 바로 오른쪽에 갔다놓았다. 작년 초만 해도 풍류객이 맘껏 멋을 내며 피리를 불기도 했는데 그런 분위기가 날까 모르겠다. 하여간 인사동으로 돌아왔다. 한 시민의 입장에서 기사 쓰는 사람으로 긍지와 함께 어깨도 더욱 무거워진다.
반년만에 북인사마당으로 귀환한 주장군(할머니), 당장군(할아버지) 석장승.
새로 세운 두 돌장승 부부가 민망하고 썰렁하고 왠지 쓸쓸하게 보인다. 민속학이나 문화인류학에 도통한 설치미술가가 이를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멋진 아이디어를 내면 좋겠다. 인사동 수문장으로써 의연한 모습이나 아니면 재앙을 막고 복을 불러들이는 그런 상징성을 담긴다면 나쁘진 않다. 하지만 이전만 하지는 못할 것 같다.
[관련기사] "인사동 석장승은 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나"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90581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26&newsid=20091230095307509&p=ohmynews
[안종연과 박범신의 만남전]'시간의 주름전(Groove of Time)' http://www.hakgojae.com
인생후기 격한 사랑의 파란을 영롱한 소녀적 꿈과 환상으로 화려하게 꽃피우다
갤러리학고재(대표우찬규) 2010.02.03-2010.02.28 설연휴 휴관(2.13-2.15)
50대 60대 화가와 소설가가 만나 소꼽장난하는 10대로 돌아가 환상적 유토피아와 엑스터시를 연출하다. 설치작품에 사용한 텍스틑 박범신소설 <시간의 흐름(랜덤하우스중앙 2006)>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산, 숲, 강, 호수, 해, 달, 별에게도 영이 있답니다. 또 사람도 제각기 에젠(ezen)이라고 불리는 영을 갖고 있는데 사람의 운명이 다 이 에젠의 지배를 받아요. 에젠의 이끌림을 잘못 받으면 죽음과 파멸뿐이지요" [...] "평생의 모든 삶을 바쳐 소유한 전부를 버리고 나서, 멀고 먼 유랑의 끝에 비로소 얻었다고 믿었던 자유, 아니 믿고 싶었던 그 자유의 중심이 텅 비어 있는 걸 나는 너무나 또렷이 본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어둡고 차가운, 동시에 깊고 부드러운, 꺼진 자궁 같은, 침묵의 집일 뿐이었다. "- <시간의 주름> 중에서
안종연 I '설치작품' 2009. 잔인한 세월의 주름을 화려한 무도회 같은 영롱한 빛으로 화려하게 옷입히다
[오마이기사] '시간의 주름'을 '빛 페인팅'으로 변주하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19910&PAGE_CD=N0000&BLCK_NO=5&CMPT_CD=M0034
[전시소식] 2010년 2월5일 가나아트센터에서 작가황재형 오프닝행사
오프닝행사에서 만난 작가황재형. 도록에 사인을 해주는 장발장 같은 모습 옆에서 아내가 흐뭇하게 쳐다본다
가나아트센터 황재형전 이번 전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품 중 하나인 '장마'
관객들과 기념촬영하는 모습 가운데 작가 황재형
[황재형전] 탄광촌의 황량함에서 잡아낸 따뜻한 숨결과 온정 - 가나아트센터 2010.02.05-2010.02.28
가나아트센터에서 2007년 '쥘흙과 뉠땅' 5번째 전시회를 연지 3년 만에 같은 곳에서 신작을 선보이네요. 그때 그림이 무료 15~20억 원어치 팔려(2007년 한국미술시장호황) 그동안 궁핍한 생활을 많이 보상받았다. 빅토르위고 같은 외모를 한 황재형 그는 남들이 꺼리는 탄광촌에서 그들과 희로애락을 같이 하며 거기서 지금도 살고 있다.
그는 이제 더 원숙한 경기에 도달한 것 같다. 그의 그림은 이제 인간의 노력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위력에 맡겨 그리는 것 같다. 그림이 그래서 이전보다 더 편하고 자연스럽게 보인다. 민중화가 거의 외면당하는 시점에서 그는 민중화가가 아니라 그냥 화가 혹은 대가로 이 세상에 남게 되었다. 그 꼬리표를 달지 않아도 그는 대단한 화가인 것이다. 최정상으로 향하고 있다.
[탄광촌화가 황재형 오블기사] http://blog.ohmynews.com/seulsong/157405
황재형전 축하공연에 초대된 장사익. 그의 노래는 사람속을 흟어낸다
[미술소식] 목수정의 파리통신-외규장각 도서를 둘러싼 불편한 진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051750095&code=990000
[미술소식]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자코메티 조각 '걷는 사람' 1197억원!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2041802515&code=96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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