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중요전시행사

허(虛)와 공(空)과 무(無)의 철학이 담긴 물방울 미학

[김창열근작전-회귀(回歸)] "작은 물방울 속에 큰 우주의 노래 있어" www.kimtschang-yeul.com 
갤러리현대강남(강남구신사동 640-6 아트타워)에서 2010.10.08–2010.11.07까지 www.galleryhyundai.com 

김창열((Tchang-Yeul Kim))화백의 근황. 갤러리현대제공 


갤러리현대 강남에서는 10월 8일부터 11월 7일까지 물방울작가 김창열(1929~) 화백의 대규모 근작전 <회귀>가 열었다. 김창열 화백은 프랑스는 물론 유럽 각지와 미국, 일본 등지에서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을 가지며 물방울작가로 독자적 회화세계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대표 작가다. 

그가 처음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72년경부터로 현재까지도 작품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으로 계속되고 있다. 천 가지 만 가지 형태의 물방울 작품을 거듭 발전되어 왔다, 이번 전에서는 최근작을 중심으로 500호, 1000호 등의 대작과 함께 총 50여 점을 선보인다. 

그는 서울미대에서 공부했고 1950년대에 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1965년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에서 공부했으나 미국의 소비문화에 적응 못하고 마침 백남준의 소개로 파리에 갔다가 결국 프랑스에 정착하여 유럽에서 독자적 회화세계를 빛낸다. 

그는 1972년 물방울작가로 파리의 권위 있는 살롱 드 메(Salon de Mai)전에 데뷔하면서 큰 반향을 일으킨다. 
1976년 갤러리현대에서 귀국전을 열었고 그 이후 2천대에 들어와서도 2004년 쥬드폼국립미술관에서 대규모회고전을 열었고 2005년 베이징 중국국가박물관 초대전을 받는 등 최근까지 최고작가로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다. 

갤러리현대입구의 김창열(Tchang-Yeul Kim)전 안내홍보물 

[학력] 1948-50 서울대 미대수학1966-68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 판화 전공 수상 1996 프랑스 문화훈장 수상 

[개인전] 2010 갤러리현대 강남(서울) 2009 부산시립미술관, 부산 표갤러리 2008 갤러리 보드앙 르봉(파리) 표갤러리(LA) 발레리바흐 갤러리(브뤼셀) 2007 갤러리현대(서울) 2006 표갤러리 베이징(중국) 2005 김창열 초청전 중국국가박물관(베이징) 2004 쥬드폼국립미술관(파리) 갤러리현대(서울) 2002 박영덕화랑(서울) 2000 갤러리현대, 박영덕화랑(서울) 1999 앤드류샤이어갤러리(LA)1998 MMG갤러리(동경) 등등 

[주요소장처] 퐁피두센터(파리),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일본도쿄도미술관, 물나라미술관(시마네 현, 일본) 베란느망재단미술관(겐트, 벨기에) 보스턴현대미술관(보스턴), 보이만미술관(로테르담), 보쿰미술관(보쿰, 독일)

[관련기사]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1201032230048006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100108591 

김창열 I '회귀 SH10001'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200×500cm 2010 전시홍보물사진 

"물방울은 가장 가볍고 아무것도 아니고, 무에 가장 가까운 사물이지만은 나한테는 상흔과 맞먹는 어떤 상흔 때문에 나온 눈물 그것보다 더 진한 액체인 것이죠" "물방울을 그리는 행위는 모든 것을 물방울 속에 용해시키고 투명하게 '무(無)'로 되돌려 보내기 위한 행위이고 분노도 불안도 공포도 모든 것을 '허(虛)'로 되돌려는 행위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박수근 I '농무' 캔버스에 유화 도록사진 

김창열의 말기작품과 박수근 작품 두 작가는 서로 상통한다고 할까 너무 서로 닮았다. 위에는 천자문이 있고 아래는 농부가 있을 뿐 다른 점이 없다. 여기서는 구상이나 추상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예술이 될 뿐이다. 결국 최고의 경지에 도달하면 서로 만나게 되어 있는 모양이다. 

천자문과 물방울 그의 그림 속에 한자체가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986년으로 천자문이 활자체나 서예체의 형태로 화면의 바탕으로서 물방울과 조화를 이룬다. 물방은 문자들 위에 영롱하게 맺히면서 허(虛)와 실(實), 음과 양 또는 무한과 유한이라는 동양적 발상의 근간한 문자의 획은 운치 있는 공간을 자연스럽게 우려낸다. 

김창열 I '회귀 SH10001'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200×500cm 2010 

하나, 물방울과 우연한 그러나 운명적 만남
 

김창열 I '회귀 SH08002'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61×73cm 2007 

[김창열전 관련기사] 삶의 회로애락을 물방울 속에 녹여 무(無)와 공(空)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0100108591&sid=01073202&nid=007&ltype=1

김화백은 물방울을 그리게 된 동기를 이렇게 말한다. "파리 가난한 아틀리에에서의 어느 날이었다. 밤새도록 그린 그림이 마음에 안 들어 유화 색체를 떼어내 재활용하기 위해 캔버스 뒤에 물을 뿌려 놓았는데 물이 방울져 아침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존재의 충일감에 온몸을 떨며 물방울을 만났다"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렇지만 김화백이 물방울을 그린 것은 필연적인 것인지 모른다. 평안남도 대동강 상류 강촌 마을인 맹산이 그의 고향이다. 어려서 약수터의 향수와 맑은 샘물에 대한 애착이 이런 작업을 낳은 무의식적인 원동력인지 모른다. 

둘, 이번 전 주제인 회귀의 정신은 과연 뭔가? 

김창열 I '회귀 연작 지하1층전시실 

이번 전시의 주제인 회귀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해석할 수 있지만 김화백이 발하는 회귀란 "과거로 돌아간다는 것보다 원점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리라. 그래서 원점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가 말하는 회귀란 한국, 미국, 프랑스, 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회귀하면서 물방울과 결정적으로 만난다. 전반기는 곧 사라지는 물방울의 긴장감을 후반기에는 인위적인 것에 방해를 받지 않는 무위의 정신을 보인다. 1984년 이후 물방울이 천자문과 만나 더욱 눈부시게 꽃을 피운다. 

둘, 투명한 세계와 천진성 그리고 긴장감 

김창열 I '회귀 PA97009'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290×194cm 1997 

그의 물방울은 현대인들의 시대정신인 투명성과 만난다. 그것은 역시 그의 천진성과 통한다. 그의 얼굴을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어린 소년처럼 홍조를 띤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런 얼굴이 나올 수 있는 데는 그의 어머니의 몫이 큰 것 같다. 

1976년 첫 귀국전을 갤러리현대에서 열고 거기서 번 돈으로 어머니의 산소자리 볼 정도로 그에게 어머니는 그에게 절대적 존재였다. 마음속 신이나 마찬가지다. 그의 맑고 투명한 천진의 세계는 바로 이런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물방울의 매력은 바로 그 투명하고 순수한 생동감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욱 물방울을 고요하고 순수하고 평화로운 울림이 있는 가운데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물방울의 긴장감은 최고의 매력이다 

"초창기 물방울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는, 프랑스 신문 위에 물방울을 그려 넣었었다. 활자 위에 물방울을 그려 넣게 되면 더 투명한 물방울의 느낌이 잘 살아나는 것 같아 신문을 바탕으로 활용하였다. 후에 캔버스에 작업하면서 이러한 신문 활자 대신 바탕에 천자문을 표현하게 되었다. 글자, 활자들이 물방울과 함께 표현되면 조형적으로 물방울의 투명성이 더 강조되는 느낌이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셋, 40년 물방울작업은 자아를 찾아가는 긴 여정 

김창열 I '회귀 SH10001'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200×500cm 2010 

그의 물방울작업 40년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프랑스 살롱 드 메(Salon de Mai) 출품에서 시작된다. 40년간 시행착오도 많았고 여러 매체로 실험을 해왔다. 캔버스에 나무판 모래 헝겊 나뭇잎 르피가로 신문지-마대 모래 흙 패널 합판 조립된 판자 등등 서울미대 뉴욕판화 거기에서 정착 추상표현주의에서 미니멀리즘에서 다양한 실험을 거친 후에 물방울에 귀의한 셈이다. 이 모든 탐색을 결국 자아를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다섯, 스러져가는 찰나 속에서 영원한 영겁을 잡다 

김창열 I '회귀 SH연작'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190×160cm 

작가는 화폭에 그의 세계관, 우주관, 인생관이 농축해서 담는다. 곧 스러져버리는 찰나의 시간 속에서 영원한 영겁의 세계를 변형하는 연금술사인지 모른다. 아니면 "마치 스님이 염불을 외듯 나는 물방울을 그린다"라고 그가 말한 대로 미의 창조를 위해 도를 닦는 구도자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거기서 잡아두는 것은 바로 공(空)과 무(無)의 세계다. 

관객은 작가의 의도를 다 읽어낼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 노란 황색이 주류인 것은 아니면 조국의 황토색에 대한 그리움을 그 내면 깊이에서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달리 말하면 그가 작가로서 가장 황홀한 황혼기를 맞았다고 볼 수 있다.  

이젠 고인이 된 미술평론가 이일은 그의 회화는 "투명한 물방울은 일종의 눈속임(trompe l'oeil)으로서, 가상의 빛과 그림자의 유희로 만들어진 환상이다. 바탕을 칠하지 않은 천을 그대로 캔버스로 사용하기 때문에 천위에 실제로 물방울이 맺힌 듯한 눈속임 효과가 더욱 배가 된다"고 그의 특징을 요약해서 설명한다. 

여섯, 물방울은 전쟁의 상흔 달래주는 핏방울, 눈물방울 

김창열 I '회귀 SH10007'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195×160cm 2006 

20살에 인류의 역사상 가장 비참한 한국전쟁을 경험한 자로서 그에게 물방울은 전쟁의 상흔이고 물방울 피가 묻은 핏방울이고 또한 가난과 설움이 담겨진 눈물방울이다. 한국전쟁에서 상처받은 마음 물방울로 달래며 그의 상흔을 씻어주고 닦아주는 눈물보다 더 진한 액체이다. 이보다 농도가 더 진한 것은 없으리라. 

이렇게 물방울 그지없이 가볍고 하찮고 흔한 무에 가까운 것이지만 그것이 전쟁의 상처를 달래주는 매개체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너무 깊고 웬만해 가지고는 그것이 상쇄되지 않는다. 그의 마음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물방울을 그리도 또 그린다. 자신의 상처를 달래고 씻어내는 씻김굿이고 진혼곡이기도 하다 

김창열 I '회귀 SH10007'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195×160cm 2006 

그는 일제 감정기와 해방과 좌우익의 극단적 대립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격동의 한국 근대사 목숨을 위협과 죽음의 고비를 넘었던 세대다. 그의 초기 앵포르멜 작품에는 총 맞은 인간의 육체, 탱크에 무참히 짓밟힌 인간의 군상을 상징적으로 그리지고 있는데 이런 것은 다 그가 한국전쟁에서 받은 깊은 상처를 달래고 전쟁에서 죽어간 넋을 달래는 진혼굿일 수도 있다. 

일곱, 단색화(모노미디어)세대의 한 우물파기 

김창열 I '회귀 CH92005'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160×130cm 1992 

60세가 지나서야 그도 돈 걱정을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나이 들수록 작업량은 적어지었으나 사물을 보는 눈을 더 넓고 풍요로워지다. 모노미디아세대인 그는 오직 하나만 파고든다. 그러나 멀티미디어세대는 다양한 작업을 시도한다. 스님이 염불을 외우듯 나는 한-점/한-올 물방울을 그린다. 본의 아니게 가난과 역사의 질곡에서 인내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세대의 생존방식이다. 

여덟, 허(虛)와 공(空)과 무(無)의 철학이 담긴 물방울미학 

김창열 I '회귀 SH10013'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162×130cm 2008 

노자의 깨달음은 바로 저 물방울 속에 우주의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지 모든 것을 물방울에 녹여서 무로 돌아가게 하는 것 혹은 비어내는 것 모든 것이 허(虛)요 공(空)이요 무(無)다. 우리의 사상의 스펙터클인 유불선의 사상이 다 담겨 있다. 

그는 허(虛)요 공(空)이요 무(無) 즉 제로로 돌아갔을 때 평화와 평온이 오는 모양이다. 물방물의 투명함과 명료함과 깨끗함이 그에게 평온과 행복을 주는 모양이다. 삶에서 부딪치는  불안 분노 공포 등 백팔번뇌가 말끔히 씻어지는 모양이다. 그의 예술행위는 그런 면에서 무보상이고 무목적적(for nothing)이다. 그는 노자가 말하는 무위의 효율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의 물방울은 머리로 생각하는 기하하적이고 차가운 추상이라기보다는 가슴으로 느끼는 직관적이고 뜨거운 추상이기에 동양인뿐만 아니라 서양인들에게 강한 호소력을 주는 것 같다. 이런 점을 프랑스 평론가들은 "엄격함 속에 유머가 있다"고 평했다. 

"내가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다 보니, 과연 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나 고민이 많았는데, 결국 서양과 다른 나의 차이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게 바로 한 방울의 물방울이었던 것입니다. 물방울은 불교의 공(空)과 도교의 무(無)와도 통하는 것입니다" - 작가의 말 

아홉, 천자문과 물방울 그리고 추사의 예술혼 현대화 

김창열 I '회귀 SH10005'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196×300cm 2008. 글은 사라지고 그림만 남는다. 

살 때부터 천자문 배웠다. 붓 잡는 법, 그리는 법, 먹 가는 법도 배웠다. 천자문 자체가 하늘과 땅 등 우주에 대한 이야기다. 거기서 서예의 전통과 활자체 붓글씨와 천자문과 그리고 추사의 정신을 잇다. 즉 글을 그림으로 만들다. 텍스트를 이미지로 그의 그림은 처음에 천자문에서 시작했지만 그의 천자문을 글(text)이 아니라 그림(image)으로 변했다. 이제는 완전히 그림이 된 것이다. 불가능한 일 가능해 진 것이다. 기적과 같은 해프닝이다. 

김창열 I '회귀 SH10012'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오일 인디언잉크 162×130cm(100호) 2002 

이렇게 김창열화백은 81세에 마침내 추사 김정희선생이 이룩한 서예정신의 황홀경 그런 절대경지에 도달했다. 글(언어)을 그림(회화)으로 연금술사처럼 바꿨다. 추사의 혼과 예술세계를 현대화하고 세계화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추사의 계보학에 충실한 계승자가 된 것이다. 서체에 조형적 입체감을 주어 <죽어 있는 글을 살아있는 그림>으로 환생시켰다 즉 다시 추사로 돌아온 것이다. 그야말로 회귀(RECURRENCE)다. 

고인이 되신 이응로작품의 문자추상을 감상하는 김창열 화백 2009년 갤러리현대에서 

김창열전이 열리는 갤러리현대입구 

"김창열 선배는 물방울로 세계적으로 이름이 났기 때문에 물방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물방울이라는 하나의 메타포를 가지고 시각적으로 미술사에 남는 일을 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물방울은 현실적으로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그림으로 그려진 물방울은 착시현상이지 현실 자체의 물방울은 아니다. 

그런데 마대를 거꾸로 해서 그리거나 바탕을 칠하지 않은 캔버스에 그려 물방울이 금방 스며들거나 배어 나오는 듯한 느낌의 착시 현상은 그림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냥 하얀 캔버스에 그린 것과는 뜻이 다르다. 마대라는 물질적인 현상과 물방울의 착시현상을 중첩시킨 것이다. 

김창열의 물방울은 물질과 환상을 겹침으로써 새로운 시각적인 것을 제시했다. 그래서 하나의 오브제도 아니고, 옛날식의 그림도 아닌 묘한, 어중간한 지점을 포착해낸 대단히 새로운 매체현상을 그는 창안해 낸 것이다. 물방울 하나는 기쁨도 주고 설움도 주고 어떤 추억이나 기억도 되살려 준다. 그리고 우리는 영롱한 물방울 속에서 또 다른 환상도 본다"- 이우환 

파리에서 만난 백남준과 김창열 

김환기일기(1969년 12월14일)에 이렇게 적혀있다. 
"창열이 파리로 떠났다. 우중에 케네디공황에 나갔다. 저녁 8시30분발로 떠났다" 

2009년 갤러리현대강남 개관전에서 선보인 김창열작품 

[관련 오마이뉴스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73930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0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