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몽각전] 딸에 대한 아빠의 애틋한 정 담긴 사진일기, 뭉클 아니 쿨하다
- 딸의 태어나서 결혼하기 직전까지 딸의 모습
한미사진미술관(송파구 방이동) www.photomuseum.or.kr 2010.12.12-2011.02.19까지
한미사진미술관(송파구 방이동)입구
큰딸이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 모습을 담은 화제의 사진집, <윤미네 집>이 32년 만에 전시장을 찾아 들어왔다. 어찌 보면 평범한 사진인데 평범하게 보이지 않고 특별한 것은 우리가 바로 평범한 행복을 다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비록 경제생활의 수준은 높아졌고 문명의 이기는 IT기술로 편리해졌지만 말이다.
이번 전시는 '전몽각'이라는 인물이 촬영한 사진에서 세 가지 풍경을 발굴하여, 그 풍경을 한데 엮어 1960-80년대 시대풍경화를 보여주는데 그 의미가 있다. 60․70년대 아빠의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이 그의 26년간 사진일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신자유주의시대, 가족이 해체된 이 시대에 이런 사진을 더욱 감동적이다. 딸과 아내에 대한 남편과 아빠로서의 부성애 가족애가가 뭉클하다. 아니 쿨(cool)하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갈현동 집에서 ⓒ 전몽각
'윤미네 집'은 전몽각 선생이 큰딸 윤미가 태어나 결혼할 때까지(1964-89) 찍은 사진을 담은 책으로 1990년 첫 발간 때부터 화제가 되었다. 그 후 20년 만인 2010년 재발간 된 '윤미네 집'은 현재 4쇄 판매에 들어갈 정도로 대중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여기 사진에는 가족애가 넘쳐 감동의 드라마다.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을 이렇게 사진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믿기지 않는다. 가족애가 해체된 지금에 보면 보물 같다. 인간의 행복이란 물질과는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전몽각(1931-2006) 선생은 토목공학자로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참여했으며 성균관대 부총장을 역임한 인물로, 일반인에게는 '윤미네 집'의 부정(父情)이 가득한 윤미 아빠로 더 알려져 있다.
'윤미네 집' 갈현동 집에서 ⓒ 전몽각
아내에 대한 사랑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소중한 딸을 낳아준 아빠에게는 최고의 모델이자 연인 같은 낳아준 분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 여기서 딸에 대한 사랑은 아내에 대한 사랑이다. 아내를 사랑하기에 딸도 사랑하는 것이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에 사진 곳곳에 묻어있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 전몽각
너무 꾸미지 않고 담담하고 삶의 현장성과 리얼리티를 살렸다. 참으로 우리에게 시시 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그때에 비하면 경제적으로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과연 더 행복해진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몽각 사진전:: 전몽각 그리고 윤미네 집- 사진으로 보는 세 가지 풍경 -
사진 140여점 관람시간 : 평일 10:00~19:00 / 주말 11:00~18:30
성인 5,000원, 학생 4,000원, 10인 이상 단체 2,000원 할인 도슨트 설명(매일 오후 4시)
전시문의: 이계영 이진우 큐레이터 TEL. 02-418-1315
전몽각 I '윤미네 집' ⓒ 전몽각
'윤미네' 가족의 풍경은 한 가족만의 이야기를 넘어서 보편적인 삶의 모습이자 '가족'을 통해 바라본 소소한 일상사의 장면들이다. 우리네 가족 풍경을 정겹고 포근하게 담아낸 윤미네 집은 따스한 가족애와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1971년과 1978년에 이어 32년 만에 세 번째로 약 100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 전몽각
그는 경부고속도로 작업에도 참여했고 그가 남긴 사진을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감동을 받는 것은 그 속에 사랑이 넘치기에 아빠는 딸은 연인처럼 그렇게 찍고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부는 일정한 한계를 넘어서고 나면 더 이상 삶의 만족감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보다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가 더 중요하다. 행복을 추구하는 현명한 사람이라면 시민단체나 자원봉사 등 사회적 연대의 기쁨을 맛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행복의 공식 중 한 구절]
전몽각 I '윤미네 집' 숭인동 집에서 ⓒ 전몽각
이렇게 아빠의 사랑을 받은 딸이 이 세상에 많아지면 이 세상을 더욱 아름다고 그 딸은 또 아빠 같은 남자를 사랑하고 그래서 또 그런 사랑은 이어지고 사회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할 것이다.
전몽각 I '윤미네 집' ⓒ 전몽각
사진에 작가의 철학과 개념 생각과 주장이 들어가면 예술이 된다. 사진은 누구나 찍을 수 있다. 그리고 보기 좋은 사진은 얼마든지 있다. 그런 와중에 살아남는 사진은 어찌 보면 드물다.
[작가소개] 1931 평북 용천태생 1959 서울대 공대 토목공학과 졸업 1966-1967 네덜란드 Delft공대 수공학과정졸업 1959-1968 국립건설연구소근무 1968-1972경부고속도로건설사무소 근무 1970-72 한국도로공사근무 1972-96 성대 토목공학과교수 1995-96 성대부총장 1996 정년퇴직 후 명예교수 전시 1971 '윤미네집' 신세계백화 1978 '윤미네집' 출판문화회관 1999 '개인전(1996-1999)' 예술의전당 2010 '전몽각 그리고 윤미네집' 한미사진미술관
[전몽각선생 네덜란드 단기유학기에 찍은 사진들 1966-1967]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 전몽각
그는 사진으로 추상을 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추상화가 나온 것도 사진 때문인데 사진을 추상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그런데 그의 작품에서는 추상적 사진예술을 암시를 준다. 추상의 이미지의 보다 근원적 세계인지 모른다. 벽화에서 보는 것 같은 그런 그림말이다. 울산에 암석에 그려진 그림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잡지연감을 아무리 뒤져보다 우리가 좋다고 열중하는 조형이나 추상적인 작품은 드물다. 우리가 보기에 하나도 신통해 보이지 않는 작품으로 꽉 차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주류 속에 끼지 못하고 방류소에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 작가의 말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 전몽각
어디나 사춘기청소년은 같다. 버릇이 없다. 기존의 틀을 깬다. 사회의 낡은 옷을 벗긴다. 그러나 너무나 좋은 시절이다. 그러나 그 시절이 좋다고 깨닫지는 못한다. 언제나 세월이 지나야 그런 것을 알게 된다. 인생에는 그래서 회한의 정이 따라오는 것인가. 민주주의의 고마움을 모르다가 독재정권이 들어서는 그것을 깨닫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 전몽각
구애기 참으로 아름다운 시기죠. 그런데 젊어서는 정열은 넘치는 경험이 없고 늙어서는 경험은 많은데 정열이 없죠. 이 모순을 어떻게 다스려나갈 방법은 없는 것인지 모르겠다. 역시 여행과 독서만이 이런 점을 조금이라도 보안해 주는 장치가 아닐까싶다. 여행은 1년은 일상 10년을 산다고 할까 그만큼 얻는 것이 많다. 여행은 인생을 무한대로 오래 살게 해준다. 제일 부자는 여행을 많이 한 사람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 아닐까싶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 전몽각
유럽은 노령사회고 늙은 나라임을 읽을 수 있지만 이제 우리도 유럽처럼 고령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 전몽각작가가 유럽에 갔을 때 받은 충격 중 하나가 바로 이런 사회의 일면이 아닐까 싶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 전몽각
공원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한 장의 사진의 잘 담을 수 있을까 아이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젊은 부부의 모습이 이 사진에 생명감을 불어넣어준다. 바로 이런 음양의 조화가 바로 이 지상에서 천국을 이루는 것이리라.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 전몽각
자전거의 나라 네덜란드 바다보다 낮은 나라라 자전거천국이다. 이런 사진은 그 시대의 길과 골목과 가옥을 고스란히 잘 기록하고 있다는 면에서도 가치가 높다
전몽각 I '네덜란드 풍속사진' 1966-1967 ⓒ 전몽각
네덜란드는 물과 싸워서 이긴 나라다. 그들은 매우 실리에 밝게 세계에서 자본주의가 먼저 발달한 나라다. 영국에 세계해상권을 잡기 직전에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술의 나라다. 렘브란트는 바로 17세기 말 전성기에 인물이다. 그는 역시 네덜란드출신 고흐와 함께 자화상을 많이 그려 유명하다.
[미술관에서 영상으로 만든 사진자료]
아이들의 웃음 속에는 천국이 들어있다. 그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내는 것이 사진이다. 이 얼마나 놀랍고 대단한 일인가. 여기서는 언어가 필요 없다. 다만 인간의 마음을 통하게 하는 교감이 필요할 뿐이다.
삶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시가 좋다고 하는데 사진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장면은 우리가 어려서 흔히 봐왔지만 사진에 담겨 이렇게 기록으로 남은 것을 별로 없다. 이 장면을 바라보고 셔터를 누리는 주인공인 작가의 마음이 순간 전율을 맛보았을 모른다.
이런 순간의 표정을 잡아낼 때의 쾌감이 크기에 사진가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리고 참고 인고하는 것이다. 이런 사진이 나올 때 그 동안의 모든 고생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여기에는 아이와 엄마의 거의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런 것은 청춘남녀가 키스를 할 때도 마찬가지다. 전기알에 불이 들어오듯이 그런 순간 가장 완벽한 소통을 이루어지고 일체감을 맛본다. 그것이 바로 삶의 찰나에서 체감하는 절대적 희열의 순간이다. 작가가 이런 순간을 놓친다면 진정한 작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미술관전시장 모습]
[1960-70년대 당시 경부고속도로건설현장 사진들]
전몽각 선생은 경부고속도로 건설공사의 토질담당으로 일하며, 틈틈이 공사현장의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되는 '경부고속도로'시리즈는 고속도로 공사현장과 논밭이, 토착민들의 호기심 가득한 낯선 시선과 분주히 움직이는 장비들이 대조된 모습으로 보이고 있다. 이는 급속도로 이루어진 한국현대화의 과정을 전몽각 선생만의 재치 있는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이다.
전몽각 I '경부고속도로건설사진' ⓒ 전몽각
전몽각 I '경부고속도로건설사진' ⓒ 전몽각
전몽각 I '경부고속도로건설사진' ⓒ 전몽각
전몽각 I '경부고속도로건설사진' ⓒ 전몽각
[그가 남긴 회화사진들] - 현대사진연구회시절에 찍은 사진들
- 한국현대사진의 산실인 현대사진연구회 사진이 함께 전시된다
전몽각 I '회화사진' ⓒ 전몽각
전몽각 I '회화사진' ⓒ 전몽각
1960~70년대 한국의 현대사진을 이끌어 온 황규태, 주명덕, 박영숙작가와 유수의 사진기자들이 포진해 있는 현대사진연구회는 한국현대사진이 다양한 시각과 경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현대사진연구회의 일원이었던 전몽각 선생은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실험적 구도와 다양한 작업형태를 보여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현대사진연구회 시절 신선한 프레이밍이 돋보였던 풍경사진 외에도 당시 최고의 영화배우 엄앵란의 젊은 시절 모습도 볼 수 있다.
전몽각 I '회화사진' ⓒ 전몽각
전몽각 I '회화사진' ⓒ 전몽각
[백남준추모5주기-최재영사진전] '백남준 굿' 2011.01.25-02.13 갤러리아트링크(artlink)에서
http://www.artlink.co.kr 안국동 17-6 02) 738-0738 총괄기획: 문인희(Inhee Iris Moon)
오프닝 리센션및 추모제 프로그램 2011.01.25 오후 3시33분 ⓒ 최재영
진혼무:임이조 굿:이수연, 황진경 이별가: 정경숙 국악: 곽효상, 이주성, 감치이 서예: 문동원 기획: 강현중
사진가 최재영(1952~)이 다소 늦은 감이 있으나 첫 개인전으로 준비한 이번 전은 2006년 1월29일 작고한 백남준의 5주기를 맞이하여 그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최초로 공개하는 백남준의 퍼포먼스 기록사진으로, 백남준의 생일이었던 1990년 7월 20일 서울 현대화랑 마당에서 절친이자 은인이었던 요셉 보이스를 기리며 펼친 백남준의 주술적 행위예술을 촬영한 것이다
[정재숙기자] "백남준을 찍는데 카메라가 신들린 듯 춤췄다"
http://news.joinsmsn.com/article/aid/2011/01/19/4610395.html?cloc=olink|article|default
[故백남준 추모5주기 추모식 및 기념강연] 2011년 1월 29일 14시, 백남준아트센터 메모라빌리아 홀에서
故백남준 선생의 5주기추모식이 1월 29일 오후 2시 백남준아트센터 메모라빌리아 홀에서 열린다. 유족, 경기문화재단 대표 및 관련자, 백기사(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회원과 국내외 관계자들이 5주기에 당일인 백남준 선생님의 오랜 지기이자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님의 거문고 곡 <및 도드리>가 백악관에서 클린턴 대통령 앞에서 펼친 백남준의 퍼포먼스동영상에 맞춰 연주될 예정이다.
동시에 오후 3시부터는 3시 백남준아트센터 2층 세미나실에서 역사가, 한국몽골학회 회장인 박원길선생을 모시고 <초원의 바람>이라는 제목으로 기념강연이 열린다. 박원길선생은 몽골고대사 및 북방민족사를 전공한 역사학자, 2000년 3월 몽골학술포장(몽골정부)을 받았다. 저서로는 '유라시아대륙에 피어났던 야망의 바람―칭기즈칸의 꿈과 길(2003)' '배반의 땅, 서약의 호수―21세기 한국에 몽골은 무엇인가(2008)' 등 있다
[황병기와 백남준의 떼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이 언제부터 생겼을까?]
<나의 사랑 백남준(구보다 시게코 저 이순출판사 2010)> 에 나오는 다음을 글을 읽으면 바로 이해가 된다
[성(性)을 연주하는 음악가들] - <나의 사랑 백남준(구보다 시게코 저 이순출판사 2010)> 중에서
뉴욕 아방가르드페스티벌공연을 통해 예술적 유대를 확인한 남준과 무어맨은 1965년 유럽순회공연을 다녔다. 그들은 파리, 로마, 베를린, 프랑크푸르트, 스톡홀름 등 유럽각지에서 공연퍼포먼스를 했다. 음악과 성에 대한 남준의 철학은 독특하면서도 시대를 앞서갔다 그는 항상 미술과 문학에서 그렇듯 음악도 성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이렇게 표현했다. "진지함을 유지한다는 이유로 음악에서 성을 제거한다는 것은 오히려 음악의 진지함을 해치는 일이다. 음악과 미술과 문학과 동일한 위치의 고전예술이다. 따라서 음악도 로렌스, 프로이트가 필요한 것이다" -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서문 중에서
남준의 이 같은 철학은 흔쾌히 호응하고 용감하게 거들고 나선 게 샬럿이다. 샬럿을 만나기 전부터 남준은 반라차림의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를 찾고 있었다. 일본전위음악가인 시오미 미에코에게 부탁을 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그가 아는 다른 전위예술가 앨리슨 놀스는 과격한 퍼포먼스를 했지만 클래식 연주자가 아니었다. 반드시 고전음악연주자여야 한다는 게 남준의 조건이었다.
반면 정통파 첼리스트인 샬럿은 퍼포먼스를 위해 옷을 벗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더 좋은 건 그녀가 음악적인 재능뿐만 아니라 미와 매력적인 몸매 예술가로서의 섬세한 감수성까지 두루 갖추고 있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남준이 찾아 헤매던 퍼포먼스 동반자로서 아직 적합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보수적인 미국남부출신의 그녀가 처음부터 노골적으로 벗은 몸을 드러내며 공연을 한 것은 아니다. 선정적인 공연의 발단은 실은 예기치 못한 일에서 비롯되었다.
1965년 5월 남준은 샬럿은 장 자크 르벨이 파리 몽파르나스 미문화원엣 열었던 표현자유의 페스티발(Festival de la libre expression)에서 함께 공연을 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이미 1여 년 동안 호흡을 맞춰온 터였다. 의상을 정상적인 연주복을 입기도 했다.
그런데 공연당일 저녁 문화원에서 리허설을 막 끝낸 샬럿이 숙소에 검은 드레스를 놓고 왔다고 호텔을 가야한다고 소리를 쳤다. 개막 30분을 남긴 상황이었다. 밖을 보니 교통체증 때문에 거리가 꽉 막혀 이대로 호텔을 갔다가는 도저히 공연시간까지 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남준은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보호막이 둘둘 말려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남준은 즉각 그걸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샬럿에게 말했다. "저거 어때 저녁 이브닝드레스로 입는 거야"
그러나 샬럿이 소리쳤다 "말도 안 돼"
그러나 결국 그녀는 루비콘 강을 건넸다. 남준의 설득 끝에 급기야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비닐을 몸에 두르고 무대에 섰던 것이다. 맨 정신으로는 어려웠나 보다 무대에 오르기 전 스카치위스키를 한 잔 걸쳤다. 그녀가 나타나자 프랑스 관객은 장내가 떠나갈 듯이 박수를 쳤다. 샬럿은 스카치를 한 모금 더 마시고 격정적인 연주를 시작했다.
술기운이었는지 너무 긴장한 탓인지 그러다 결국 무대에서 쓰려져버렸다. 바로 이날 이후 샬럿이 전위적인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1965년 뉴욕에서 선보인 존 케이지의 현악기 연주자를 위한 26분 1.1499초를 해석한 퍼포먼스도 그 중 하나다. 이 퍼포먼스는 현악기 연주자를 위한 26분 1.1499초를 연주하던 샬럿이 윗옷을 찢고 두 손으로 첼로 줄을 붙잡아 스스로 인간첼로가 된 남준을 껴안고 그를 악기 삼아 첼로를 연주하는 퍼포먼스였다
클래식음악과 성의 결합을 추구했던 남준이 작곡한 곡이 있다. 바로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1966년 독일 아헨엣 초연된 이 작품에서 샬럿은 아예 나신을 드러냈다. 오페라 섹스는 1967년 뉴욕에서 공연되었을 때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4막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서 토플리스로 3막은 아랫도리를 벗고 그리고 마지막 4막에서는 완전한 누드로 연주를 하게 되어 있었다.
당시 미국은 유럽보다 훨씬 보수적인 사회였다 첼리스트가 옷을 다 벗은 연주를 한다는 소문이 돌자 미국당국은 그 공연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고 만약 강행한다면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여러 번 경고한 터이다. 이런 통보를 의식하여 뉴욕 시네마테크에서 열린 이 공연에서는 특별히 200명을 엄선하여 그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냈다. 일반인에게는 입장이 금지된 비공개공연이었다. 시간이 되고 막이 오르자. 샬럿은 어둠 속에 비키니차림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첼로를 연주했다.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자 예고된 대로 샬럿은 가슴을 완전히 그러낸 토플리스차림으로 연주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 즉시 사복경찰관 3명이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다. 그리고는 샬럿의 상반신을 코트로 덮어버린 다음에 경찰서로 끌고 갔다.
이 작품의 작곡자이자 제작자인 남준도 함께 연행되었다. 그는 양복차림으로 공연장에 점잖게 앉아있었기 때문에 훈방 조치되었다. 그러나 샬럿은 결국 풀려나기는 했지만 외설혐의로 재판에 붙여졌고 이 사건은 외설과 예술의 자유 논쟁으로 비화하여 미국 예술계 전체에 뜨거운 화두가 되었다.
여럿이 법정에 서게 되면서 애가 닳은 남준은 그녀를 구출해내기 위해서 백반 뛰었다. 미국은 물론 유럽의 유명예술가를 동원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프랑스시인이자 정치운동가인 장 자크 르벨에게 편지를 보내 뉴욕주지사에게 샬럿의 사면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보내달라고 사정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고맙다는 답장을 늦게 보내는 나를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번 용서해 주게나 자네의 멋진 전보 1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번 넘게 고맙다네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에서 남준은 다음과 같은 것을 요청했다
샬럿 무어맨은 유럽에서는 진지하고 역동적인 아방가르드 예술가로 존경받는다는 사실 자네가 샬럿을 위해 파리 미문화원에서 음악회를 열었다는 것 그녀가 그 음악회에 알몸을 등장했는데도 경찰이 간섭하지 않았다는 것 오히려 파리에서는 이 공연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평이 좋았고 비평가들도 호의적이었다는 것 전 세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얼마나 분개하는지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항의해주게 바라네.
어쨌거나 재판을 시작되었고 그 후 생각도 못할 문제가 생겼다. 빈털터리 예술가처지에 변호사 비용을 대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남준은 결국 이 문제도 자기 식으로 풀었다. 1968년 6월 10일 샬럿 무어맨과 함께 한국의 가야금 명인 황병기를 동원하여 뉴욕 타운홀엣 전위적인 재판모금연주를 열었던 것이다
남준이 황병기를 알게 된 것은 그의 누이를 통해서였다. 2번째 누이 백영득은 큰 다방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가야금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황병기에게 전화를 걸어 레슨을 청했다. 황병기가 이를 허락하여 그를 스승으로 모식 열심히 배웠는데 한 1년쯤 지난 후에 그녀는 황병기에게 무심결에 전위예술을 한다고 난리를 치는 남준이라는 동생이 있다고 말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백남준이라는 괴짜 예술가의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았을 때이다. 그러나 황병기는 음악예술이라는 일본잡지를 통해서 백남준을 알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1968년 5월 말경 황병기는 아시아소사이어티의 초정을 받아 뉴욕에서 가야금 연주를 할 기회가 생겼다. 뉴욕에 도착한 황병기는 평소 만나고 싶었던 백남준에게 전화를 해 자신이 작은 누이의 가야금선생이자 경기고 후배임을 밝혔다. 이런 차에 학교후배가 제 발로 찾아와 전화를 걸었으니 한 걸음에 달려가고 싶었을 것이다
남준은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만나라고 한 후에 황병기를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스튜디오로 불렸다. 그런 뒤에 그를 가까이 있는 차이나타운 중국음식점으로 데려가 이야기꽃을 피웠다. 당시 시대상황에서는 두 사람은 일반경기고생들이 하지 않는 예술 그것도 비디오아트와 가야금은 별종 중 별종이었다. 이들은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했다
어쨌든 이날 이후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고 그리하여 남은 황병기에게 샬럿의 변호사비용을 마련하기 위한 공연에 출연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무대에 오른 황병기는 평소와 다름없이 한복을 입고 무대에 올랐다. 즉흥적인 남도선율이 공연장에 퍼지자 샬럿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채 커다랗고 까만 자루를 들고 나왔다. 그 자루에는 지퍼가 달려 있었다. 샬럿은 지퍼를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안을 지퍼를 닫고 무대 위에서 가야금 소리에 맞춰 굴러다녔다 그러다 지퍼를 열고 바깥을 내다보기도 하고 팔과 다리를 내밀었다가 집어넣기도 했다. 당시 황병기는 가야금 연주에 집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낯설고 독특한 무대는 처음이었다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훗날 털어놓았다.
1967년 첼로 연주자 샬롯 무어맨과 함께 한 ‘오페라 섹스' 퍼포먼스의 한 장면
미국법원은 결국 오페라 섹스트로니크를 외설이 아닌 예술이라는 남준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샬럿에게 선고유예판결을 내린다. 남준과 샬럿의 완벽한 승리였다. 샬럿은 토플리스 첼리스트란 별명이 죽을 때까지 붙어 다녔고 어쨌거나 두 사람은 예술의 자유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되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나의 심경은 참으로 복잡 미묘했다. 그냥 예술적 동반자로 보기에는 너무나 샬럿이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둘은 늘 붙어 다니며 유럽 여러 나라 순회공연 했다. 아슬아슬한 마음이 들었다. 한편 남준에게는 다른 예술적 잠재력과 에너지가 훨씬 많았는데 왜 이런 미덥지 않는 퍼포먼스에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는 지 의문이 들었다. 그에게 비디오아트처럼 빛나는 재능을 발휘한 좋은 장르가 있지 않은가
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지만 샬럿과 벌이는 해프닝에 대해 너그러울 수 없었다. 그래서 때로 이 문제로 논쟁을 벌였다. 당신이 샬럿과 벌이는 해프닝은 찬사보다 적을 더 많이 만들고 있어요.
"그게 내 인생이야 그냥 하고 싶어서 할 뿐이야"
"왜 그런 일을 하나요 당신 스스로 재능을 낭비하고 더럽히고 있어요"
"더 이상 잔소리 하지 마"
늘 이런 식이었다. 샬럿과 공연에 관해서는 남준은 결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마이클 케나사진전] 2011.02.12-2011.03.20 공근혜갤러리 http://www.gallerykong.com/
마이클 케나 I '철학자의 나무(Philosopher's Tree)' Study 3 Biei Hokkaido Japan 2009 <사진 공근혜갤러리>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 1953~)는 다양한 나라의 독특한 분위기를 풍경사진으로 담아온 영국작가이다. 위 자신은 개발위기에 처한 강원도 솔섬을 아름답게 담아낸 것이다. 이번 전시는 30여년간 세계를 여행하며 촬영한 풍경사진 중 나무와 관련된 사진만을 모아 50점의 대표작으로 구성된다.
10시간이 넘는 장시간노출로 카메라와 함께 조용히 풍경을 응시하며 사람과 주변 환경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를 고민하는 작가의 모습이 그의 사진 속 나무로 표현했다. 디지털 컬러사진이 근접할 수 없는 아날로그 흑백사진들의 무한하고 아늑한 깊이감은 동양의 수묵화에서나 느껴볼 수 있는 감성적이고 서정적인 삶의 여유를 느끼게 해준다. 2011년 02월 12일에 작가사인회가 있다. 02)738-7776
[상페전] 프랑스는 작게 그리나 프랑스의 에스프리는 크게 그린다
- 장 자크 상페::꼬마 니콜라의 아름다운 날들
고양아람누리 아람미술관 에서 2010. 12. 21-2011. 3. 20까지 031)960-0180 / www.artgy.or.kr
일반 1만1천원, 19세 미만 8천원, 미취학아동 6천원, 단체할인 별도문의
장 자크 상페 I 기막힌 우연처럼COMME PAR HASARD 1981 ⓒ Jean-Jacques Sempé
고양 아람누리 아람미술관에서는 이번 겨울을 맞아 프랑스의 일러스트레이터 장 자크 상페의 특별전 <장 자크 상페::꼬마 니콜라의 아름다운 날들> 전을 오는 3월 20일 (일)까지 77일간 연다. 프랑스 삽화의 세계를 만나다 195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최근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한 작가 장 자크 상페의 인생과 작품세계를 고루 엿볼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장 자크 상페 I 상페의 음악가들 LES MUSICIENS DE SEMPE, 1979 ⓒ Jean-Jacques Sempé
장 자크 상페의 삽화에 대해 한 프랑스 언론은 ‘천 편의 논문보다 현대인들의 삶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말해준다’고 이야기했다. 이번 <장 자크 상페::꼬마 니콜라의 아름다운 날들>전은 프랑스인과 그들의 삶을 누구보다도 담담하고 세밀하게 그려낸 작가의 작품세계를 만나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장 자크 상페 I 각별한 마음 SENTIMENTS DISTINGUES(), 2007 ⓒ Jean-Jacques Sempé
<상페와 예술>은 악단 연주자가 되고 싶었던 작가 장 자크 상페의 어릴 적 꿈을 그림에 그대로 옮긴 듯, 극장과 연주자, 관람객 등 극장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풍경을 그린 작품들을 전시한다
장 자크 상페 I 파리 소묘(UN PEU DE PARIS) 2001 ⓒ Jean-Jacques Sempé
<프랑스에서 상페>는 작가의 삽화집 <프랑스 소묘>와 <파리 소묘>에 수록된 삽화들로 이루어진다. 한적한 센 강변과 사람으로 들어찬 프랑스 도심의 풍경 등 '프랑스'를 대표하는 이미지를 감상할 수 있다.
장 자크 상페 I 프랑스 소묘(UN PEU DE LA France), 2005 ⓒ Jean-Jacques Sempé
[양혜규전] 2011. 01.22-03.04 HAEGUE YANG Arrivals 22|01|–03|04|2011
오스트리아 첫 개인전 <복수도착(複數到着)Arrivals> http://www.kunsthaus-bregenz.at/
Haegue Yang Warrior Believer Lover 33 light sculptures No.5, Female Natives – Maturing 여성형 원주민–숙성 2010 © Nick Ash, 제공: 국제 갤러리
미술가 양혜규의 오스트리아 첫 개인전 <복수도착(複數到着)Arrivals>이 쿤스트하우스 브레겐츠(Kunshaus Bregenz, KUB) 에서 개최된다. 독일 베를린과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양혜규는 2009년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개인전과 아르세날레 단체전, 그리고 2010년 서울 아트선재 센터 개인전 <셋을 위한 목소리> 전을 통해 광원 조각과 블라인드 설치작 그리고 영상 작품 등을 선보이며 국내외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바 있다.
양혜규의 작업은 독보적인 형식 미학으로 공간을 점유하며, 상상력과 연상 작용을 자극하는 새로운 공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작가는 습기, 냄새, 바람, 빛, 온도 등의 추상적이고도 감각을 환기시키는 요소를 설치 작업에 도입한다. 적외선 히터를 통해 열을 발생시키는가 하면, 함께 설치된 선풍기가 향 분사기에서 나온 냄새를 싣고 잔잔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한다.
Haegue Yang Warrior Believer Lover 33 light sculptures No.26, Ghost Fishing 유령 낚기 2010 ⓒ Nick Ash, 제공:국제갤러리
1층에 선별되어 전시된 1994-2010년의 주요작으로는 <래커 페인팅>(1994, 1995), 사진연작 <평상의 사회적 조건>(2001), 슬라이드 프로젝션 <문맹文盲 잔여물>(2004)과 <그 밖에서>(2006), 단채널 비디오 연작 <비디오 삼부작>(2004-2006), 신작 조각 <현장 큐브>(2010) 등이 포함된다. 2010년부터 새로 시작한 콜라쥬 연작 <신용 양호자들>은 편지봉투 안쪽에 인쇄된 기하학적인 보안 문양을 소재로 하여, 개인 정보의 전송과 보안 체계에 대해 반문하는 작업이다. <창고 피스>(2004)는 여러 차례 개봉되고 재포장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발표한 설치작으로, 2007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유럽에서 선보이며 양작가의 초기 대표작으로 꼽힌다.
2층 전체 공간은 은색 블라인드, 무빙 라이트, 8대의 향 분사기로 이루어진 대규모 설치 신작이 점유한다. 한 면이 17 미터에 달하는 정사각형이 블라인드로 구획된 격자 구조로, 잇닿은 두 면에 걸쳐 제공되는 입구를 통해 관객을 작업 내부로 초대한다. 미로와도 같은 블라인드 구조 안으로 진입하는 입구는 여럿이나, 마련된 어떤 동선도 공간을 관통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었다. 즉 관객은 한 입구로 들어와서 높이 솟은 탑이나 열린 내부 공간을 경험하게 되며, 다시 동일한 입구를 통해 다시 작품 외부로 나오게 된다.
3층 설치 역시 본 전시를 위해 새로이 제작된 33 점의 광원 조각만으로 이루어진다. 제작 과정에서 작가가 최근 주목하는 플라스틱 조화와 가발, 건조된 식자재 등의 소재가 보다 강한 표현력을 드러낸다. 전체 조각들은 개별작, 쌍, 소그룹 등으로 나뉘어 일종의 군상과도 같은 풍경을 이룬다. 여기에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1913)이 울려퍼지며 이 군상에 상상적인 군무의 순간을 선사한다. 작가는 기존의 형상적인 조각의 특성을 유지하는 한편, 기존과는 다르게 원시적인 혹은 고대적인 기운을 더하고 있다.
Haegue Yang Warrior Believer Lover 33 light sculptures No.5, Female Natives – Maturing 여성형 원주민–숙성 2010 © Nick Ash, 제공: 국제 갤러리
양혜규가 전시 제목으로 채택한 복수형의 도착은 유일자에 대한 고대가 아닌 불특정한 도착들이 연속되는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과정을 의미한다. 즉 <복수도착>은 아직 실현하지 못한 사람, 사물, 사고와의 만남에 도달하려는 기대와 의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작가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은 경험과 시공간, 즉 이미 도달한 사건과 아직 도달하지 못한 사건 사이의 틈에 주목한다. 작가는 이러한 복합적인 <복수도착>의 개념을 통해 최종적이며 결정론적인 도착의 의미를 거부하며, 동시에 대규모 전시를 맞이한 작가의 자조적 자기 성찰을 피력한다.
전시에 맞추어 현재까지 200 점에 달하는 작업을 총망라한 동명의 독어 영어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é)가 발간된다. 안더스 크류거(Anders Kreuger)의 에세이, 마리나 비슈미트(Marina Vishmidt)의 작품 설명, 카타나 슈베렌트(Katharina Schwerendt)의 작품색인을 수록하였다. [국제갤러리자료]
[성완경 사진전-사진은 나에게] 나우갤러리에서 2011.01.14-2011.01.25 <디카로 장난질하기>
"예술이 유희가 아니라면 나는 벌써 예술을 그만 두었을 것이다" - 미디어아티스트 미셸 자프르누
미술전공자로서 내가 사진을 갖고 개인전을 한다니 그것도 첫 개인전 그 자체가 만용이고 좀 동키호테란 소리 들을 법 하다. 우선 평론가가 전시를 한다는 것이 그 하나의 이유이고, 사진가가 아닌 사람이 사진전을 감히 연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의 이유이다. [...]
나는 벽에 거는 액자라는 고전적 액자방식으로부터 지금 이럴게 전자기기의 디스플레이 방식에 이르는 프레임의 변화가 우리의 시각적 인지방식의 매우 흥미 있는 변화로서 주목거리가 된다고 느끼고 있다. 또한 나는 내가 찍은 사진만이 아니라 신문의 사진이나 기사, 그리고 방금 말한 인터넷 상의 이미지나 텍스트도 자주 갈무리해두거나 전체 혹은 분할 스캐닝했다가 작업에 이용하기도 한다.
"몇 가지 떠오르는 것을 메모해본 적이 있다. 우선 촉각적인 것의 추구가 있다. 내 삶에서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존재와 사물과 환경의 촉각적 두께를 추구하고 드러내는 것 말이다. 이미지의 촉각성은 내가 세상을 느끼는 방식이자 구축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엔 아마도 미술학도로서 일찍이 익숙해져서 거의 나의 시각에 자연화된 회화적 촉각성(인상파, 나비파, 앵티미스트, 아르데코, 타시즘 등)도 많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초현실주의적인 것이나 '뜻밖의 것'에 대한 취향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때로는 시간 밖의 시간에 대한 탐구나 편집증적인 것, 비밀의 메모 같은 것을 담으려 했다. 미술의 영향일지, 철학의 영향일지 어떤 '개념주의적' 주관성이나 정신적인 것을 미니멀리즘적인 형식 속에 담아보려는 유혹에 빠지기도 한다" - 작가노트 성완경
[작가소개] 서울대미대 회화과 졸업 파리국립장식학교졸업(벽화전공) 인하대명예교수 미술평론가
[DIE GALERIE] celebrates its debut at India Art Summit™ 2011! from January 20-23, 2011
The leading German art gallery DIE GALERIE is delighted to announce its first appearance at
India’s major art fair for Modern and Contemporary Art, India Art Summit™, to be held in New
Delhi from January 20 . 23, 2011. It’s a whole chain of highlights that DIE GALERIE will
string for its first participation at its extensive booth #B-19 close to the main entrance of Hall 18
at Pragati Maidan.
Combas I 'Le Guépard rayé(The scratched Cheetah)' Acrylic on canvas 210x205cm 2007
Since DIE GALERIE was founded in Frankfurt/Main in 1979, the German gallerist Peter
Femfert has vouched for a sophisticated gallery presenting groundbreaking developments in the
art of the 20th century as well as promising and multifaceted contemporary positions. Alongside
the conception and organization of art exhibitions in its gallery rooms as well as in prestigious
museums, cultural institutes and other international galleries, its sphere of activities includes
publishing in addition to . first and foremost . art consultancy and advice for collectors,
enthusiasts and professionals. The landmark step of expanding its activities to Asia by opening
the branch DIE GALERIE Seoul in January 2009 is a consequence of its longstanding and
successful international involvement.
Volker Stelzmann(1940~) I 'Die Treppe(The Stair)' Mixed Media 180*120cm 2008
As with its presentations at internationally leading art fairs in New York, Seoul, Paris, Moscow,
Cologne, Abu Dhabi and other cities worldwide, DIE GALERIE will bring art of the highest
quality to New Delhi: The Indian art audience can look forward to discovering paintings, works
on paper and sculptures by some of the leading European artists of the Classical Modern: Pablo
Picasso, Joan Miro, Andre Masson and Salvador Dali.
Dietrich Klinge(1954~) I 'Wonne Bi(Delight Bi)' Bronze 215*160*140cm 2006
Of course, DIE GALERIE’s engagement to contemporary art is equally intense. Here, Peter
Femfert and his team primarily promote internationally recognized painters and sculptors whose
works are figurative in nature and simultaneously evidence traces of art history. Alongside such
renowned German artists as the painter Volker Stelzmann, member of the famous School of
Leipzig, or the sculptor Dietrich Klinge, for example, DIE GALERIE will be dedicating special
space to the outstanding French Pop Artist Robert Combas. His outstanding monumental
sculpture in synthetic resin, entitled Le Pot de jambes en bouquet de pieds et le mollets, will
definitely attract the attention of the fair audience.
Karel Appel(1921-2006) I 'Head in the Mountains' Oil on canvas 190*130cm 1960
Furthermore, as representatives of young contemporary art of DIE GALERIE’s home country
Germany, the well established painter Klaus Zylla as well as the young, talented Berlin artists
Torsten Holtz and FD Schlemme, both master students of Volker Stelzmann, will be presented.
Eugene Brands(1913-2002) I 'In Grey Sense' Gouche on paper 180*120cm 1962
DIE GALERIE Gesellschaft fur Kunsthandel mbH
Gruneburgweg 123 D-60323 Frankfurt am Main Phone +49-69-971-47 1-0 Fax +49-69-971-471-20
www.die-galerie.com info@die-galerie.com
[송은아트스페이스 개관전] 1부 미국의 팝아트 톰 웨셀만(1931∼2004)의 개인전
송은문화재단이 지상 6층, 지하 2층 가운데 지상 2∼4층의 전시장을 갖춘 송은아트스페이스(강남구 청담동)를 최근 개관했다. 개관전은 1부 전시로 미국의 팝아트 톰 웨셀만(Tom Wesselmann 1931∼2004)의 개인전이 열렸다. 2011년 1월부터는 지난 10년간 송은미술대상을 받은 작가들의 그룹전이 2부 전시로 진행된다. (02-3448-0100)
[2010 서울사진축제 워크숍 SPF]
서울역사박물관강당 일시 2011. 19.20-26.27 10시부터 오후6시까지
입장무료 기획 : 박상우 강사 : 이영준, 김성원, 임근준, 박상우 등등
<현대미술에서 사진의 쓸모는 무엇이었나?>라는 제목으로 강의하는 임근준 미술디자인 평론가
이제 어느 분야에서도 홀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 우리 앞에 던져진 문제들은 언제부턴가 복잡한 사회망에 얽힌 채로 다가온다. 사진은 태생적으로 통섭적인 분야이다. 예술과 과학의 경계에서 어쩔 수 없이 둘 다를 끌어안아야 하는 사진의 통섭(consilience)시대가 온 것이다. - 최재천 교수
1850년 사진의 무한한 확산에 감탄한 당시 프랑스사진비평가 에르네스트 라캉은 사진의 통섭적 성격에 대해 이렇게 피력했다. "사진은 이제 화가의 아틀리에에서 학자의 연구실, 상류계급의 서재, 귀부인들의 안방에까지 자리 잡았다. 사진은 바다를 건너 산을 넘어 대륙을 횡단했다. 사진은 박물관에, 성당에, 집 가구에, 병원에, 감옥에, 공장에 들어갔다. 사진은 모든 곳에서 필요한 것을 드러났다. 사진은 처음에 자신이약 속한 것 이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사진이론가 박상우 '사진의 역사는 통섭의 역사' 중에서
<삶을 기억하라>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사당동에 있는 서울시립미술관 분관 구 벨기에 공사가 있었던 곳이다.
보통사람들이 찍은 평범한 사진도 전시한다. 사진의 기록성을 놀라운 힘을 발휘한다. 그것이 아름다운 작품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가끔씩 그런 예술성과 만나는 사진들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가난한 시절 사진을 보면 사람들 얼굴은 지금보다 선량하고 소박하고 더 나아가 아름답기까지하다.
공동체가 해체된 지금에 그 시대를 보면 지금이 꼭 좋은 시대는 아니면 우리가 경제신화에 매달려 앞만 보고 온 것이 정말 옳았는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런 면에서 사진을 우리에게 역사의식을 심어주고 삶에 대한 진정한 가치를 다시 한번 돌아보는 여유까지 제공한다
[70년 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팔방미인-경기도미술관 소장품 기획전]
2010. 12. 24~2011. 03. 20 경기도미술관 기획전시실 장르: 회화, 사진, 조각 및 영상 설치작품, 각종 자료
[참여작가] 곽덕준, 김구림, 김용익, 박현기, 성능경, 이강소, 이건용, 홍명섭
윤진섭, 성능경, 김기림, 이강소, 이건용 등등 60-70년대 한국의 퍼포먼스쟁이(performer)들 총출동하다. <사진출처: facebook>
경기도미술관은 '1970-80년대 한국의 역사적 개념미술 : 팔방미인'전을 연다. 경기도미술관이 2006년 개관한 이래 수집한 미술관 컬렉션을 대상으로 한 소장품 기획전이다. 이들은 미술개념을 확장시킨 지성파이자 행동파작가이고 또한 아방가르드작가이다. 게다가 이론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팔방미인'이라고 붙었다 여기서 팔방미인은 또한 8인의 아방가르드 미술인을 지칭하기도 한다
[김구림·이건용 작가를 만나다] "아픈 시대 '치유의 예술' 정신을 되살렸습니다" -관련기사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101021842515&code=960202
[강익중(Ik-Joong Kang)의 공공미술론]
강익중의 백남준 다다익선에 대한 오마주-삼라만상展 중 전자폭포 떨어지는 TV산수화 2009.3
2011년이 되니까 그냥 허전하고 에너지가 고갈되는 것 같다. 글을 쓰기가 귀찮아진다. 뭔가 새로운 것을 모색해야 하는데 강익중도 1997년 베니스비엔날레 이후에 그랬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전 세계어린이들에게 3인치캔버스를 보내어 그림을 그리게 한 후 700개 정도를 합쳐 공공미술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공미술에서 새로운 전환점을 찾는다. 그의 공공미술론을 들어보다.
"공공미술은 사회를 명랑하게 하는 혁명이라서 중요해요 사회혁명을 하더라도 명랑하고 단순하게 하는 것이 종요해요 우울하면 안 되잖아요. 공공미술은 모두에게 골고루 희망을 주는 미술(Art for People)죠. 그래서 시장에서 팔 수 있는 작품보다 훨씰 중요해요" - <안녕하세요 예술가씨 책(이규현지음 넥서스)> 중 196쪽에서
강익중의 홈페이지 www.ikjoongkang.com/
<쉬어가는 코너>
그들은 왜 파리에 갔을까 ⓒ 문신기
요즘 20대의 모습인가요. 어느 때가 20대는 고민과 모색의 시기이겠죠. 어느 시대나 10-20대는 어려운 시기인가요. 재미 조각가 한용진(1934~)에게 20대는 너무 힘들었던 시기였다고 한다. 이규현기자가 그에게 왜 평생 추상조각을 하게 되었냐고 물으니 이런 대답이 나온다.
"17살에 6-25가 터졌어요. 3년동안 참전했어요. 그게 내 인생 전체에 참 큰 영향을 끼쳤죠. 아침밥 같이 먹은 친구가 저녁 때 안 보여서 물어보면 죽었다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생사의 고비를 겪고 나면 사람은 보이지 않는 것을 추구하게 돼요. 겉에 보이는 게 부질 없다는 것을 어려서 깨닫고 나니 평생 추상조각을 하게 됐네요"
[작가소개] 한용진(1934~) 서울대미대조각과 졸업. 미국과 유럽 및 서울을 오가며 활동했으며, 서울을 비롯한 여러 곳에 대형 공공 조형물을 남김. 국립 현대미술관 야외 조각장에 석조작업이 있음. 2006년 5월 캘리포니아 북부 소재 레딩시 시청의 조각공원에 그의 한국 화강석 조각품이 영구 설치 됨. 한국 조각분야의 최고 권위상인 김세중조각상수장자. 한국 근대 조각의 형성기 이후 추상적인 석조(돌)로 작업하는 현대조각 1세대다.
침울한 표정의 오바마 애리조나 총기사건에 대통령으로서 책임감을 느끼며 강한 애도를 표하고 있죠. 무기협회 때문에 총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미국은 참 딱한 나라다. 하여간 숙연해지면서 감동을 주는 장면이다. Photo: AP J. Scott Applewh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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