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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MMCA] 1부 "예술 짧고 인생 길다", 백남준 역설의 예술론

경천사지 10층 석탑

<1>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백남준 <다다익선>의 보존·복원 3개년 만에 완료하고 2022915일 재가동 기념 제막식 및 점등 축하 행사와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손상된 브라운관(CRT) 모니터 737대 수리·교체. 6인치 및 10인치 266대 모니터 외형 유지하면서 평면 디스플레이(LCD) 교체해 총예산 37억 정도 들었다고 한다 <작성 중>

2022 다다익선 재가동 상향식

<다다익선>의 재복원을 기념해 백남준 아카이브 기획전 '다다익선: 즐거운 협연' 그동안 축적된 아카이브 200여 점과 구술 인터뷰로 구성된 915일부터 2023226일까지 과천관 35호실에서 열린다. 이번 부제는 “고급 예술과“ 대중예술이 함께하는 최초이며 신구세대 무서운 아이들(앙팡 테러블) 즐거운 협연이라고 설명한 표현에서 착안한 것이다.

참여작가: 백남준, 구보타 시게코, 폴 개린, 우종덕, 이미지, 이은주, 장영규, 조영주 출품작 아카이브 200여 점 및 영상, 사운드 설치, 사진 등 작품 25점이다.

다시 다다익선 이야기로 돌아와서, 새로 가동하는 다다익선 보니 역시 첨단이다. 그 규모에서 타의 추정을 불허한다. 벌써 36살이다. 당시 88세계 올림픽이라는 온 국민이 설레는 때라 모든 에너지가 모아진 작품이다. 그 타임임이 적절했다. 그래서 첨단의 전자기술자, 건축가, 엔지니어 등 총협력으로 가능했다. 당시 물론 백남준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2> 다다익선 총동원

현대미술의 주류가 된 미디어아트의 본산인 이 수작은 개성 경천사지 10층 석탑 혹은 경주 '다보탑'을 닮아 지극히 한국적이다. 석탑 이미지를 현대화하고 전자 아트로 전환해서 여기에 옮겨놓은 것이다. 매체가 돌에서 TV로 바꿨다. 이 전자매체는 글로벌 생태계를 가졌다.

다다익선 영상에는 동대문, 남대문, 고려청자, 한복 등의 이미지와 파리 개선문, 파르테논 신전, 뉴욕빌딩이 교차하다가 하나로 추상화된다. ‘86 아시안 게임과 자동차 경주 장면, C. 무어만, J. 보이스, M. 커닝햄, R. 사카모토 같은 예술가의 공연도 등장한다.

다다익선은 주지하다시피 여러 번 고장 나, 백남준을 애호하는 관객 마음을 졸이고 애를 태웠다. 게다가 복원방식에서 의견이 분분해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서 역설인 것은 그의 작품이 고장이 많이 나 더 유명해졌고 그 소중함 더 깨닫게 되었다. 아이러니다.

이번 재가동 기념전 1988915일과 같은 날 했다.. 당시 TV 1004대 동시에 켰는데 폭발음 없었다. 하늘이 도왔다. 마침 백남준 노련한 이정성 전자기술자를 영입한 이 거사를 거뜬히 해냈다.

이 다다익선 재가동 기념행사 '다시 연결된 신호'는 한국예술 종합학교 최준호 교수 연출을 맡았다. 창작그룹 노니, VOM Lab 퍼포먼스로 대성황을 이뤘고 조명 등 3030여 명 수고했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직원 총동원이 내려질 정도로 난이한 전시이었다. 김유미 작품 보존 미술은행관리과장, 권인철 학예연구사, 박영란 소장품자료관리과장, 이지희 학예연구사, 송수정 미술정책연구과장, 한정인 학예연구사, 류지연 현대미술 1 과장, 이수연 학예연구사, 강수정 미술관 교육과장,, 최지은 학예연구사, 임대근 현대미술 2 과장 등이 참여했다.

그러나 핵심부품 생산이 중단되고 기기 노후화가 가속돼 CRT 모니터 앞으로 계속 수리, 교체 작업해야 하는 운명에 놓여 있어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이번 다다익선 내부 수리 책임자 권인철 학예연구사의 말에 의하면 일부 CRT를 그대로 보전해 고장 날 개연성은 매우 높다. CRTLED 교체하지 않았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3> 국립현대 백남준 작가 소홀

뉴욕 백남준 작업실

물론 용인에 백남준아트센터가 있다. 하지만 국립미술관은 백남준 전시를 제대로 못했다. 저작권도 그렇고 그만큼 소화하기 힘든 작가라는 말을 전했다. 그래도 심했다. 워싱턴에 있는 스미소니언 미국 국립미술관과 비교된다. 2006년 백남준 타계했을 때 이 미술관은 백남준 상속자 하쿠타 씨의 허락을 받아 백남준 모아든 모든 물건은 7대 트럭에 실어 미술관으로 옮겼다.

스미소니언 미국 국립미술관 백남준 오브제

쓰레기같은 오브제를 미국 국립미술관 큐레이터 동원해 1020년 계획으로 백남준의 왜 이런 오브제를 수집하고 정리하면서 아카이빙하고 있다. 백남준 10주기를 맞아 미국국립미술관은 9개월간(2012~2013) 글로벌 비전이라는 제목으로 미국 국립미술관에서 연구한 결과물을 전시했다.

스미소니언 미국 국립미술관 백남준아카이브실

우리 국립미술관은 이전 재가동을 고생했지만 더욱 분발해야 할 것이다

장 폴 파르지에

다른 이야기지만 80년대 프랑스 파리 8대학에서 장 폴 파르지에 교수 20년 간 백남준과 비디오 영상학 강의를 했다. 그는 70년대 백남준 알게 된 후 그를 연구하여 1989년 에서 <백남준(ART Presse 출판사)>이라는 냈다 한국미술대학에서는 아직 백남준 강좌가 없다.

<4-0> 왜 다다익선 만들었나

그럼 다다익선은 왜 만들게 되었나. 우리가 알다시피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관이 장소도 비좁고 환경이 열악해 과천으로 1986년 신축이전했다. 이번에 전시도록에서 김원 건축가와 인터뷰에서 그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다. 그 이야기를 들어보자

1986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당시 국립현대미술관 신축 이전을 준비하며 이경성 씨를 추진위원장으로 국제 공모했고 재미 건축가 김태수 씨가 당선돼 그의 설계안대로 공사가 일사천리로 진행 후 거의 완공될 때쯤 당시 이진희 문화부 장관이 현장을 방문했을 때 누군가 "어? 구겐하임 닮았네?"라고 한마디에 장관이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게다가 로비는 한 가운데가 텅 빈 상태였다..

그리면서 역점 사업으로 추진한 건데, 첫눈에 미국 건물과 닮은 것으로 보인다고 하자 비상이 걸렸죠. 그때 대안으로 건물에 시선이 가지 않고 작품에 시선이 가야 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 나오자 가운데 큰 원형작품을 설치하기로 했어요. 이때 백 선생님 작품은 번쩍번쩍하니까요 백남준의 가까이 지낸 예술국장이었던 천호선 씨가 백남준 씨를 추천한 거죠.

이 말은 전해 들은 백남준은 '내 작품은 첫눈에 사람들을 사로잡지. 한 번 보면 장면이 자꾸 바뀌니까 다음에 뭐가 나올까 계속 보게 되고, 그게 묘수란 말이야!" 우스게 소리를 하며 허락을 했어요. 예산도 없었지만, 백남준은 모니터만 주면 해보시겠다고 했어요.

이제 모니터를 얻는 게 문제 처음엔 대우에 청했더니 난색을 표했고, 삼성에 얘기했더니 처음에는 곤란하고 했어요. 그때 내가 가만히 보니 삼성 TV 한 대에 50만 원 정도 하는 때 1,000대면 5, 그 정도면 TV에 광고하는 것보다 훨씬 광고효과가 있다고 설득했어요. 그랬더니 허락했고 백 선생님도 작품료 안 받겠다고 해 당시로는 대단한 작품은 시도한 거죠.

삼성과 백남준 1988(1989?)년 파리에서 사진이다

1996년 백남준 이건희 회장

백남준이 삼성으로부터 1300대 기증을 받았지만 그런 면에서 삼성의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일찍이 전 세계 한류를 일으킨 백남준에게 삼성이 세계에 알려지는 데 큰 도움을 줘 < 백남준에게 1986 이미 계약을 맺고 홍라희 여사가 고맙다는 인사의 글을 남기도 했다

"백남준 선생과 삼성은 1984년 3535년 만에 조국을 방문 시부터 국제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삼성 TVTV 모니터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기로 하면서 인연을 맺었어요. 이건희 회장과 함께한 어느 날 백 선생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삼성에 대한 기대 등을 재치와 유머를 섞어가며 표현하신 기억이 새롭어요. 1985년에는 백 선생은 삼성전자와 정식 계약을 맺었죠"

<5> 이정성 기술자(전자테크니션)

아이디어를 제공한 사람은 백남준 그러나 실제로 그것을 가동한 사람은 이정선 선생이 다이기에 다다익선을 이야기하면서 또 뺄 수 없는 사람은 이정선 기술자(전자 테크니션)이다. 도록 이정성 인터뷰(2021.12.09. 이정성)(2021.12.9. 작업실 중 일부를 소개하려고 한다. )

이 정성 선생은 어떻게 백남준과 인연을 맺고 다다익선을 만들게 되었다 이후 두 분은 평생 생사고락을 같이 했다 이정성 선생님의 말을 들어보다 그 시절 난 작은 전자회사에서 CATV나 삼성전자의 쇼룸 구성 그런 걸 많이 하고 있었고, 삼성전자에서 부탁한 530대짜리 'TV wall'을 만든 적이 있어요. 아마 그걸 참고하셨는지 저한테 오신 것 같았어

1988년 이정성 백남준

그때 선생님은 "1,003대짜리 TV 타워를 만들려고 하는데 할 수 있겠어?" 물으셨어요 그래서 난 그거 반만 한 사이즈를 했으니까 ", 네 할 수 있다."라고 대답했더니 선생님께서 묻지도 않고 "그럼 잘해줘." 이렇게만 얘기하고 가셨어요. 대답은 큰소리를 쳤는데, ', 이거 큰일 났다.'.' 싶었죠. 그때 백남준 선생님 못 만났다면 전자제품 수리하는 데만 열중했을 거예요

이정성

선생은 이 작품 제작 과정에 대해서는 당시에는 전기드릴, 배터리 드릴 같은 게 없어서 다 손으로 했단다. 비디오를 4개 틀어서 1,003대가 작동하려면 많은 분배기가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비디오 분배기를 만들어 파는 상점이 없었어요. 일본에서 수입하면 되지만 당시 개인회사에서 일본에 수입하는 건 거의 불가능했어요 그래서 그것도 삼성전자에 부품을 공급받아서 분배기를 만들었어요.

1988년 다다익선 버튼을 누르는 감격적인 순간

다다익선 만들 때 원래 백 선생님께서 자세하게 부탁하거나 설명하는 게 없이 작가가 원하는 것 정도 이야기하고 나머지는 엔지니어 알아서 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힘이 많이 들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겁이 없이 시작을 했죠. 백남준 70% 정도 전원이 들어오면 성공으로 봤는데 다 들어와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몰라요

<6> 이번 간담회 1988411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작성한 다다익선 보도자료 만든 기자 간담회 내용을 복사해 기자들에 나눠 좋다 그중 당시 국립현대 학예연구실장 유준상 쓴 이 작품에 대한 미술사가적 비평이 나오는 탁월했다. 그중에서 인용

국립현대 학예연구실장 유준상 오른쪽

"예술과 과학(전자매체기술)이 협력하면 인류의 소통을 최대화하는 기능을 가지게 된다 비디오 아트는 바로 그런 기능을 하는데 최적이다.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실천하는 새로운 복합예술 방식 필요한 시대 이처럼 현대는 정밀하고 정확한 테크놀로지 기술과 미적 감각의 총집합체인 예술이 마치 일란성쌍둥이처럼 상호보완 변증적인 방식으로 실현되었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만년에 딱 한번, 천년에 딱 한 차례('萬歲一期 千載一會)에 온다는 생명의 인과응보(因果應報) 정신이 담긴 비디오 아트로서 실현해왔으며 그 절정의 단계인 다다익선은 이번에 조국에 바치는 일념으로 만든 프로젝트 추진하게 그 의미가 깊다고 평했다

<7> 백남준의 예술은 짧다 무슨 의미 올 도쿠멘타의 주제(I HAVE 냐냐? I GIVE 냐)

1부 이야기 결론 삼아 백남준은 다다익선 과정에서 다다익선 구조 설계한 김원 선생과 이야기하다가"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라고" 유명한 말을 남겼다 우리의 얼떨떨하게 반상식의 말이다. 사실 백남준은 작품의 보전보다 그 작품에 깔린 시대 정신과 철학이 중요한 말이다.

이런 충격적 말을 김원 선생의 전화는 인터뷰를 통해 들어보자 나는 건축 가니까, 건축가라는 사람들의 직업상 자기가 한 일이 50, 100년 가는 것은 보통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백 선생님은 나에게 '예술은 짧고 인생은 길다'라는 명언을 남겼어요. 바이올린을 끌고 가는 그런 행위예술을 하는 그에게 예술이 순간에 사라진다는 얘기는 당연하죠

모든 전제 제품은 냉장고처럼 20년 지나면 고장 난다 는 것을 잘 아는 두 분은 다다익선 '8만 시간? 돌리면 고장 나는데 그럼 어떻게 하나요 물으니 백남준이 나는 몰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이런 식으로 무책임하게 보이는 대답도 나오고 그래서 백남준은 이걸 잘 알기에 이정성 선생에게 위임장까지 주면서 고장 나면 무조건 신형으로 교체하라고 했죠

최근 2017201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예술은 짧다 라는 것을 보여주는 행위예술이 다 황금사자상을 휩쓸다. 여기서 백남준은 예술의 새로운 개념 그 유동성과 유연성과 일시적 휘발성은 중요함을 강조한다. 예술이라고 무조건 영원불변한 것이 아니라 것이다 예술은 남에게 좋은 아이디어를 주는 것(give)이지 무슨 물건을 소유하는 것(have) 같은 아니라는 해석

2022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독일의 카셀 도쿠멘타를( 예산이 600) 15회 카셀 도쿠멘타의 주제가 바로 이거다. 카셀 메인 전시장 '프리데리치아눔 입구에 텍스트 아트를 보면 I have? I give? 이런 문장이 보인다. 이것은 죽느냐 사느냐처럼 소유(HAVE)냐 존재(GIVE)냐 인류의 연원한 질문 독점이냐 공유냐 예술이 짧다는 이에 대한 답을 주는 말이다

미술품은 무슨 권력을 소유(have)하는 게 아니라 미술의 즐거움을 많은 이에게 나눠주는 것이다(give)한다는 메시지다. 보이스의 말처럼 누구나 예술가이다고 백남준의 말처럼 관객이 전시의 주인공이고 하버마스의 말처럼 모든 곳이 소통 공론장이고 이런 철학이 이 단에 담겨있다 이번에 카셀 도쿠멘타는 이를 위해 예산 600억을 기부한 셈이다. 이게 카셀의 정신이다 나치를 경험한 독일인 가능한 세계적인 미술축제다. 프리즈 아트페어가 성격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