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부르주아(Louise Bourgeois 1911-2010)_PERSONAGES] 2012.05.23-06.29
국제갤러리 3관에서 [오마이관련기사] 상처받은 꽃에게 보내는 치유의 메시지 http://bit.ly/cnllTB
Louise Bourgeois (1911- 2010) I 무제 I Untitled_1947-49
Untitled 1947-49 Bronze, painted white and blue, and stainless steel 167.6 x 30.5 x 30.5 cm
Photo: Christopher Burke, © Louise Bourgeois Trust Image provided by Kukje Gallery
국제갤러리는 루이스 부르주아 개인전 <PERSONAGES>를 개최한다. 2002년 국제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이후 다섯 번째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2010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후 국내에서는 처음 마련된 자리이다. 전 생애 동안 다양한 예술적 실험과 도전을 거듭해왔던 루이스 부르주아의 작업세계는 조각에서부터 드로잉, 설치, 손바느질 작업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규정짓기 힘든 다양한 소재와 장르를 넘나들었다. 이번 개인전에서는 부르주아의 초기 작업세계를 조명하며 1940년대 후반에서 1950년대 초반에 작업했던, 모호하게 의인화된 조각 작품인 ‘인격들’를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Louise Bourgeois (1911- 2010) I 판매용 철재 속 토끼껍질 PEAUX DE LAPINS FERRAILLES A VENDRE 2006 Steel, stainless steel, marble, wood, fabric and plexiglass251.5 x 304.8 x 403.9 cm
부르주아는 이 연작에서 그녀의 예술적 노력이 진정으로 성숙하게 표현되었다고 언급한 바 있으며, 실제 이 작품들을 통해 그녀가 조각가로서 자리를 공고히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PERSONAGES’ 연작을 대표하는 14점의 작품을 선보이고, 또한 부르주아의 가장 잘 알려진 설치작품 중 하나인 ‘밀실(Cell)’ 연작 중 1 점도 함께 전시하여 감상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그녀의 오랜 작업 여정 가운데에서도 초기작들을 함께하며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 내는 루이스 부르주아 작업의 특성을 다시 한번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It was not until 1947 that Louise Bourgeois began to sculpt, creating totemic figures in wood. These figures, that she would later call 'personages', are the entities that enabled her to 'exorcise the homesickness' that she experienced when she left France and her family members. Always placing her emotional life at the centre of her art, Louise Bourgeois emphasises : "In the beginning, my work represented the fear of falling. Afterwards, it became the art of falling. How to fall without being hurt. Then the art of being here, in this place"
From this fear of falling that she felt in 1940, pregnant with her first child, she developed one of the essential themes of her art. All the 'personages' of 1947-49 have in common, according to the artist, 'the fragility of verticality (…) that the superhuman effort of standing upright represents' The monoliths that she created during these years are directly interrelated. A spatial and psychological field of attraction and repulsion commands them. From the outset, Louise Bourgeois saw sculpture as an interrelationship with the environment and of the works between themselves. Lacking bases, the personages were designed to be pushed into the ground like totems. The constraints of her gallery obliged her to provide them with bases.
[참고자료] It was not until 1947 that Louise Bourgeois began to sculpt, creating totemic figures in wood. These figures, that she would later call “personages”, are the entities that enabled her to “exorcise the homesickness” that she experienced when she left France and her family members
http://www.centrepompidou.fr/education/ressources//ens-bourgeois-en//ens-bourgeois-en.html
Bourgeois has explained what drove her to create these works in the following words: "I make drawings to suppress the unspeakable. The unspeakable is not a problem for me. It’s even the beginning of the work. It’s the reason for the work; the motivation of the work is to destroy the unspeakable. Clothing is also an exercise of memory. It makes me explore the past: how did I feel when I wore that? They are like signposts in the search of the past."
Louise Bourgeois states: "Colour is stronger than language. It’s a subliminal communication"
This elegantly produced and extensive catalogue includes more than 300 sculptures, assemblages, and collages by artist Louise Bourgeois (1911–2010), the majority created after 2002 and accompanying the 2010 Fabric Works exhibition in Venice. "It is not an image that I am seeking," Bourgeois said. "It's not an idea. It is an emotion you want to recreate, an emotion of wanting, of giving, and of destroying." In the 1990s, Bourgeois started using her own and others' clothing to refashion the diverse range of emotions embodied in her sculpture. Photographs of Bourgeois's work are interspersed with her diary entries, poems, and interview excerpts, often provocative ("How much violence is there in you today... how can I possibly find out?") and revealing ("I blame someone when I am upset or when I have failed..."). Art critic Celant's intellectually rigorous and graceful essay prefaces the collection and persuasively contextualizes her fabric works as an autobiographical visual diary connected to Russian Suprematism, Italian Futurism, and the German Bauhaus. A brief but revealing essay by Bourgeois follows, describing her family's deep connection to tapestry making: her mother's roots in Aubusson and her family's renowned tapestry gallery in Paris. This exceptional collection reveals how weaving, fabric, and pattern were literally and metaphorically intrinsic to Bourgeois's recreation of emotion in her art. (June)
[관련기사] 당신은 마음이 다쳤을 때 어떻게 치유하는가? - http://bit.ly/KwgScU
이인성 I '해당화' 캔버스에 유채, 228.5x146cm 1944년 개인소장
한국의 여성을 가장 아름답게 그리는 화가 이인성 그는 정말 30년대 우리보다 100년 서구문화를 먼저 받아들인 일본제국주의의 고급문화를 수용하면서도 그런 와중에 한국적인 화풍으로 짧은 시간에 소화하려고 한 작가로 볼 수 있다. 이인성 작가의 아들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이인성 작가는 일본에서 들여온 서구의 최근 정보와 자료 등 아카이브를 상당히 가지고 있었고 그의 아들 증언에 의하면 그것을 다 정리하고 관리하기가 벅찰 정도였다고 한다. 후에 버린 것도 많고 그를 천재라고 하지만 그만큼 많은 노력이 했다는 증거도 된다. 그리고 너무 전시기획에 만족하고 자랑하고 싶은 것인지 무료입장이라고 한다. 많이 가서 보고 삶이 에너지를 얻으면 좋겠다
[유튜브자료] http://www.youtube.com/watch?v=yyjxADj3An8
이인성 I 자화상. 그림 설명 박수진 학예연구사
덕수궁 환골탈태 덕수궁미술관의 1930년대 설계도를 발견하고 2층 전시장의 원형을 복원하여 천장의 자연광이 들어올 수 있도록 리모델링하다 전시관의 분위가가 확 바뀌다. 사람들 마음에 상처를 아주 창조적으로 치유하고 미술을 통해 어머니의 자궁처럼 편하게 느껴진다 관객친화적 노력이 돋보인다. 최근의 전시 중에 아주 잘 기획된 전시 중 하나이다.
이인성 I '가을 어느 날' 캔버스에 유채, 90x161cm 1934년 리움 삼성미술관 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이인성은 1929년 17세의 나이로 일제강점기의 가장 권위있는 전람회인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후 1944년까지 입선과 특선을 거듭, 1937년에는 서양화부에 추천작가로 선정되는 당대 제일가는 화가였다. 그러나 이인성의 평가에 대해서는 일제 강점기의 관제전람회를 주무대로 활약했다는 경력에서 오는 선입견이 미술계에 깔려있다. 따라서 이인성 탄생 100주년(1912-50)을 맞이하여 새로운 사료 발굴을 통해 이인성이라는 인물과 작품세계를 재해석하다.
이인성 I 정물. 고흐의 해바라기 풍인데 이걸 매우 한국적(향토적)인 것으로 변주하려고 애쓴다
근대성의 인식
이인성은 1931년에서 1935년 일본에 체류하게 된다. 그는 도쿄와 대구를 오가며 일본 전람회와 조선미술전람회에 꾸준히 출품하면서 수채화와 유화로 기량을 쌓아간다. 당시 대구에서는 근대화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계산동 성당 등 건물들이 세워졌는데 이러한 서양식 건물, 세련된 실내, 정원 풍경은 이인성 작품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작품들에서는 빛과 색, 짧고 단속적인 붓질, 화면을 과감히 자르는 기법 등이 나타난다. 서구 및 일본 회화와의 영향관계는 이인성이 수집했던 200장이 넘는 그림 엽서와 도서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일본화단의 영향으로 불투명수채화를 그리기 시작하는데 순도높은 원색을 사용하고 빨강과 녹색을 배치하여 강한 효과를 내고 있다. 이러한 색채는 후에 상징적인 색채로 변모한다. - 미술관 자료
이인성 사과나무. 이인성은 대구작가다. 이런 작품이 나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인성은 일본엽서 등 당시 엄청난 양의 자료와 화집 등을 모았다 아카이브의 중요성을 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의 아들은 처음에 아버지가 의사이거나 해부학자인줄 알았다고 말한다.
덕수궁미술관 2층 표현주의 야수주의 풍 구본웅 작품.
이인성전(1층)과 함께 열리는 꿈과 시전(국립미술관 소장품 특별전 2층)도 역시 좋다.
[에펠탑의 페인트공, 마크 리부 사진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2012년 5월 26일-8월5일까지
-"최고의 사진은 내일의 것이다[아직 찍은 적이 없다]"
마크 리부 I 노트르담 성당 앞의 수녀, 파리 1953 ⓒ Marc Riboud
아날로그 사진의 대가 마크 리부(89)의 사진들이 26일부터 8월5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에펠탑의 페인트공, 마크 리부' 라는 제목으로 전시된다. 아날로그 사진의 대가로 꼽히는 마크 리부(89)의 사진을 직접 볼 수 있다. 마크 리부는 1952년 파리에서 매그넘의 공동 창립자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과 로버트 카파를 만나면서 매그넘에 합류했다. 문의: 02-532-4407
마크 리부 I '에펠탑의 페인트공' 1953 마크 리부의 사진전에 간판으로 내세운 대표작
이듬해 안전장치 하나 없이 에펠탑에 페인트를 칠하는 페인트공의 모습을 담은 ‘에펠탑의 페인트공’으로 세계적 사진작가 반열에 올랐다 [1] 에펠탑의 페인트공 [2] 마오 시대의 중국과 일본 [3] 파리의 사랑 [4] 여성미,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5] 시대의 목격자 [6] 세상 속으로 등 6개 테마로 구성했다.
[참고사이트]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57909
마크 리부 I '마르셀 뒤샹과 막스 에른스트' 1986
현대미술의 아버지 대가 마르셀 뒤샹 그의 면모가 사진을 통해서도 확실하게 느껴지네요
마크 리부 I '1967년 10월 21일 워싱턴 DC' 1967 월남전 반대하는 꽃시위
꽃이 없다면 인간의 평균수명은 20년은 줄 것이다. 예술이 없다면 인간의 행복지수가 100점에 20점은 깎일 것이다. 봄에 꽃이 피지 않는다면 얼마나 삭막할까 예술이 없다면 어디서 삶의 활기를 찾을까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꽃과 예술을 쓰잘데 없는 무용지물로 본다 그럼에도 인생을 잘 산다는 것은 꽃처럼 아름답게 예술처럼 즐겁게 사는 것이리라
마크 리부 I '파리 5월 혁명' 1968
리부는 1923년 출생으로 레지스탕스출신이라 사회변혁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당시 구호중 가장 유명한 말은 "금지를 금지하라"가 있다. 68혁명구호 중 내 마음에 가장 드는 것은 "모든 권력은 상상력에서 나온다"이다. I totally agree with you; I believe in the power of the imagination!!! The imagination is the source of the power!!!
마크 리부 I '콜카다' 인도 1971 Jeune mère dans un camp de refugiés Calcutta, Inde 1971
인도 캘커타 임시수용서에 어린 엄마는 아이의 젖을 물리고 있네요. 자신도 먹지 못하는 어디서 모유가 나올까 관객의 마음을 정말 가슴 아프게 하는 사진이다.
마크 리부 I '달라이 라마' 인도 1957 젊은 시절 참 미남이었다
"삶의 목표는 행복에 있다.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또는 어떤 종교를 믿든 우리 모두는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은 근본적으로 행복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 행복은 각자의 마음 안에 있다는 것이 나의 변함없는 믿음이다." -달라이 라마
마크 리부 I 밥 윌슨, 이자벨 위페르, 피에르 술라주 1994 ⓒ Marc Riboud
Plusieurs poids-lourds, déjà primés, figurent parmi les favoris d'une sélection discutée parfois, mais dont émergent notamment l'Autrichien Michael Haneke pour "Amour". ANNE-CHRISTINE POUJOULAT / AFP
2012년 칸 영화제 이자벨 위페르의 모습
냉전시대 두 세계는 철의 장막으로 넘나든 유일한 사진작가 마크 리부(1923-)
[양극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마크 리부의 사진이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소련과 미국으로 대변되는 양극의 시대를 찍은 유일한 사진가라는 점이다. 당시는 서로를 적대시하며 냉전 그 자체의 긴장감으로 냉혹한 평화가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시기였다. 이 두 세계는 철의 장막으로 감히 넘볼 수 없었고 알 수도 없었던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그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관통하여 신비한 나라의 모습을 우리 앞에 내놓았다.
"사진을 찍는 것은 매 순간 강렬하게 인생을 음미하는 것이다" - 마크 리부
마크 리부 I '마오의 침실' 1965 ⓒ Marc Riboud
무소유주의자 마오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사진이다. 그가 혁명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요소가 이런 것인가. 마오는 1936년 2월 7일 산하(山河)의 장려한 모습을 시상을 가다듬어 일필휘지하며 시를 지었다.
"북국의 풍광, 천리 곳곳이 얼음에 잠겼고, 만리 아득히 눈발이 휘날린다.
장성의 안팎을 바라보니, 오로지 흰 눈이 끝없이 펼쳐진다, 도도히 흐르는 황하 잠시 멈춰 섰구나.
산은 은빛 뱀이 춤추는 듯하고, 평원은 밀랍색 코끼리가 치닫는 것처럼, 하늘과 높이를 다투려 하네.
맑게 개인 날 대지는 흰옷에 붉은 단장, 황홀함을 더한다" 北國風光, 千里氷封, 萬里雪飄. 望長城內外, 惟余莽莽, 大河上下, 頓失滔滔. 山舞銀蛇, 原馳蠟象, 欲與天公試比高. 須晴日 看紅粧素裏, 分外妖嬈. - 마오의 시 중에서
마크 리부 I '중국 예술종합학교(Ecole des Beaux-Arts)' Chine 1957 ⓒ Marc Riboud
[관련기사] 현대사 격동현장과 평범한 일상 모두 담아낸 거장
http://nadri.hankooki.com/lpage/weekzine/201205/wz20120529212947113910.htm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전_사진미학의 거장] 세종문화회관에서 2012년 5월 19일-9월 20일까지
[오마이뉴스관련기사] [브레송전] 사진의 오르가슴, 절정 순간을 잡다 http://bit.ly/2NpxIy
카르티에-브레송은 당연히 현대사진의 플랫폼이다. 그는 세계사진거장의 산실인 매그넘의 공동창립자다. 그는 뉴스중심의 사건이나 사고사진에서 벗어나 일상적인 삶으로부터 얻은 흔히 보는 평범함을 중시하고 거기에 숨어있는 비범함을 재발견한다. 과장이나 강조를 극히 절제하고 그만의 르포르타주로 접근하여 현대사진의 대부가 되었다. - 이기명 전시 총감독
카르티에-브레송은 사진작가가 되기 전에 초현실주의 화가였는데 그때 그가 배운 자동기술법을 사진에 응용하여 절정의 순간을 잡아내는 찰나의 사진(결정적 순간)으로 승화시켰는지 모른다 1930년대 파시즘의 시대에 휴머니즘의 정신으로 한 시대를 충실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의 사진은 연출이나 꾸밈이 거의 없다. 선과 면과 연계구조 등을 중시한다. 위 사진은 런던을 찍은 것인데 안개가 낀 것 같고 조용한 가운데 활기찬 움직임도 보인다. 소형카메라의 장점인 신속한 촬용의 장점을 최대로 살린다. 놀라운 리듬감과 멋진 반사광 도형적 완벽성과 균형감 대립하는 요소들의 긴장감 주는 병치 황금분할 등이 여러 작품에서 그의 작품의 명성을 높이는 요소로 작용한다. 결정적 순간에 기습적(A la sauvette)으로 촬영하는 방법은 이제 사진에서 완전히 고전이 되었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과 마음을 모두 담는 것이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I '쿄토시 료안지(龍顔寺, 1965)' JAPAN. 1965. Kyoto. Daitoku-ji Temple ⓒ Agreed terms apply Henri Cartier-Bresson Magnum Photos Image licenced to Michael Shin Euro Communications Co
60년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찍은 '교토시 료안지(龍顔寺)' 사진이다. 가장 일본적 정원이라는 공간의 선적 세계를 기가막힌 구도 속에 포착하다 그의 시선이 이 정원을 빗겨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가장 일본적 정원이라는 이 물기 없는 정원이 분명 특이하다. 절제되고 정갈한 동양의 선적 세계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런 문화충격을 달래며 예상 밖 각도에서 사진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앙리 마티스를 거장 카르티에 브레송을 찍었다. 화가의 일상적 면모를 자연스럽게 포착하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I '국민당 최후의 날' 중국 1948
2012-05-30 오후 4시 백남준아트센터 세미나실 강사: 바트 드 베어, 벨기에 앤트워프현대미술관 관장
제목: 백남준아트센터와 앤트워프 현대미술관은 다른 미술관들과 어떻게 차별화 될 수 있는가
2012년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맞이하여 경기도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전문가 강연 시리즈인 NJP 라운지 프로그램을 5월 30일부터 시작된다. 미디어 아트 기관장, 백남준 전공 이론가, 백남준 전문 테크니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백남준과 교류했던 이들을 초청하여 백남준의 삶과 예술에 대해 들어보는 자리로 NJP 라운지는 진행된다.
Nam June Paik Fish Flies on Sky 1983-85 3-Kanal-Videoinstallation Maße variabel Nam June Paik Estate museum kunst palast, Düsseldorf
[일정] 연락처: 이유진 031-201-8555 백남준아트센터 www.njpartcenter.kr
백남준아트센터 라운지[1] : 5월30일 벨기에 앤트워프 현대미술관 관장 바트 드 베어(Bart de Baere)강연
백남준아트센터 라운지[2] : 7월20일 플럭서스 아티스트 다케히사 고수기 강연
백남준아트센터 라운지[3] : 7월21일 미디어아트 테크니션 요헨 자우어라커 및 이정성 강연
백남준아트센터 라운지[4] : 8월21일 전 쿤스트할레 브레멘 관장 불프 헤르조겐라트 강연
백남준아트센터는 백남준 탄생 80주년 기념사업과 관련해 7월20일 오후 2시부터 백남준의 미망인 구보타 시게코 등을 초청한 가운데 아트센터에서 개막행사를 한다. 이 행사에서는 제3회 백남준국제예술상 시상식도 열린다
[관련기사] www.yonhapnews.co.kr/bulletin/2012/05/24/0200000000AKR20120524077500061.HTML?sns
백남준은 먹통 TV에 생명을 불어넣어 사람과 쌍방형으로 대화할 수 있는 소통의 도구로 만들었다. 백남준은 TV를 독재자가 아니라 민주주의자로 만들었다 이것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백남준은 TV를 통해 전 지구인과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드디어 세계를 호령하는 세계와 소통하는 문화칭기즈칸이 된 셈이다
[예술의 기원_크리스토의 싸매기아트] 엉뚱한 장난기와 놀이에서 예술이 시작한다
http://www.leninimports.com/christo_cards.html ADAGP Paris 2009
http://www.artvalue.com/auctionresult--christo-javacheff-christo-vlad-wrapped-reichstag-project-for-1405971.htm
불가리아 출신의 미국작가 크리스토는 백남준의 절친이었는데 초기에는 병과 의지와 잡지 등을 포장하다가 1961년부터 아예 대자연과 건축물에 천을 뒤집어씌우기 시작...하다. 호주의 해변을 하얀 천으로 뒤덮고 콜로라도 계곡을 오렌지색 장막을 치고 파리의 퐁뇌프 다리를 천으로 감싸고 그리고 베를린 제국회의 건물자체를 포장하기도 했다
진중권은 이 베를린 작품을 유학시절 직접 봤다고 말한다. 그는 저 막을 다시 벗겨내면 혹시 건물이 사라지는 게 아닐까 상상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건물을 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럼 뭣 하러 저 엄청난 비용을 들여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이것은 미친 짓이 아닌가.
그런데 왜 미술사에게 이 작품이 중요할까 진중권은 이렇게 해석한다.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건물은 더 이상 과거의 건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포장은 존재의 연속성에 단절을 도입한다. 어느 독일인은 이 작품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Bilderberg Press and Information Office of the Federal Government of Germany. The Reichstag (Berlin) wrapped in silver fabric by Christo, June 1995
"전에 우리는 독일의 제국의회를 눈여겨보지 않은 채 그 앞을 지나갔다. 그것은 제목의 위대함의 광기와 제3제국의 탄생과 희미하게 연결된 거무튀튀한 육중한 모습에 불과했다. 하지만 크리스트가 그것을 포장하면서 뭔가 새롭고 아름다운 것을 만들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해방감을 준다" 이 작품은 결국 독일 베를린시민들의 자부심을 다시 회복시켜 주었다.
크리스트가 건물을 포장했다고 풀었을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나치독일을 탄생시킨 칙칙한 제국주의 건물이 다시 통일독일의 국회의사당으로 거듭한 것이다. 크리스트의 사라짐의 미학 이보다 더 큰 미술(혹은 마술)이 있을까 <놀이와 예술 그리고 상상력 참고> 예술은 결국 쓸데없는 장난질에서 시작하나 그 파급효과는 인류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다. 예술의 기원은 그런 면에서 놀이에서 시작한다는 말이 옳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7th Berlin Biennale for Contemporary Art] April 27–July 1, 2012 Curated by Artur Żmijewski
together with associate curators Voina and Joanna Warsza KW Institute for Contemporary Art
Auguststraße 69 | 10117 Berlin http://www.berlinbiennale.de
Oleg Vorotnikov, Artur Zmijewski, Zofia Waslicka, K. Nienagliadny Sokol, Natalya Sokol. Photo:Unknown
[오수미개인전_Cosmos Fractal] 2012.05.30-06.12 덕원갤러리 4-5전시실
www.dukwongallery.co.kr
디지털미디어아트 가상공간에서 창조되는 새로운 예술언어 프락탈 세분하면서 무한대로 반복된다는 뜻이라고 하는데 세모와 네모가 interactive하게 변하면서 무한대로 사람과 시간에 따라서 그 형태가 변하네요. 그 표현력은 기존의 회화나 조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강력하죠. 일종의 환상놀이라고 할 수 있겠죠. 여기에 오면 누구나 멋쟁이가 된다고 할까요 시뮬라크르 오리지널이 없는 복제품이 만들어내는 또다른 세상의 체험입니다
[나영첫번째개인전_TIMBUKTU] 미술공간현에서 2012.05.23-06.06까지 www.nayoung.net
나영 I '고양이들을 위한 숲' 혼합재료 60*48*28cm 2009
고양이가 있는 숲이 있는 산수화에 가방에 가지고 다니다 나영작가는 처음에는 풍경을 보고 그렸지만 나중에 소통이 잘 되면서 풍경이 나에게 와서 내 손을 움직이게 한다고 말한다. 감정이입 풍경과 작가의 혼연일체가 일어나면서 말로 할 수 없는 교감과 일체감을 느끼게 된다고 기뻐한다. 좋은 감상을 작품을 말을 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좋은 작품은 대상이 작가의 손을 움직이게 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인지 모른다.
[김미루작가의 새로운 도전]
http://www.facebook.com/#!/mirukim
[이것이 대중미술이다] (2102.06.02-07.01 세종문화회관 미슬관 본관 지하1층
낸시 랭 I '이명박 대통령' 부분화.
가까이서 보니 그림이 더 재미있다. 그의 미소에 담긴 메시지에 대한 해석은 다 다르겠지만 그의 웃음은 남북의 미묘한 차이도 닮았고 또한 우리의 내면에 숨겨진 욕망의 얼굴도 담겨 있고 국제 금융시장의 이상야릇한 표정도 보인다. 어디까지나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이자 매력이다.
[프랑스올랑드대통령 공식사진 찍기공개] 사진가: 매그넘 회원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
올랑드대통령의 앞길을 가시밭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 같다. 기념촬영하는 올랑드대통령
©MAGNUM DISTRIBUTION 저작권 매그넘 사진가: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
Pour préparer le portrait officiel de François Hollande, Raymond Depardon a utilisé un appareil réflex numérique dans des conditions d'éclairage les plus simples : à la lumière naturelle.
인위적 사진이 아니고 아주 단순하고 소박하게 사진을 찍고 있다 미스터 평범이 그의 별명이다 기념촬영하는 올랑드대통령 ©MAGNUM DISTRIBUTION 저작권 매그넘 사진가: 레이몽 드파르동(Raymond Depardon)
Pour préparer le portrait officiel de François Hollande, Raymond Depardon a utilisé un appareil réflex numérique dans des conditions d'éclairage les plus simples : à la lumière naturelle. [사진출처]
http://www.lemonde.fr/politique/portfolio/2012/06/04/les-coulisses-du-portrait-officiel-de-francois-hollande_1712189_823448.html
[얀샤우덱(Jan saudek)] insa art center.korea 2012.05.20-07.15
[사진출처] http://www.saudek.co.kr/exhibition.html
<쉬어가는 코너>
[엘리자베스 2세 취임 60주년기념 공식행사] 2012.6.5 Queen's Diamond Jubilee Holiday (UK)
저작권 Crédits : AP_Sergeant Steven Hughes, RLC. II fête ses 60 ans de règne
요즘 영국 난리났다. 엘리자베스 2세 취임 60주년을 맞아 축제의 축제가 벌어지고 있네요 주말이 6월 5일까지 연장되었다 영국을 리퍼블릭 Reblic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아직도 군주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이기도 하다. 영국인의 실용성 내지 실리성 정말 놀랍다. 물론 왕정을 없애자는 사람이 있지만 겨우 15%뿐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왕정이 아니므로 말끝마다 리퍼브릭을 가져다 붙인다. [사진출처]
http://www.lemonde.fr/europe/article/2012/06/02/elisabeth-ii-fete-ses-60-ans-de-regne_1711609_3214.html
영국여왕 엘리스베스2세 취임 60주년 영국이 들썩있다. 60년간 여왕으로 인기를 누리는 비결은 무엇인가? 그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 지지 때문이다. 영국여왕은 노무현대통령을 영국왕실에 최초로 직접 초대하여 민주화 공로에 높이 사며 치하하는 등의 차원 높은 정치적 제스처와 처세술로 영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여왕이 세계민주주의의 수호자임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사진출처]
http://www.lefigaro.fr/international/2012/06/02/01003-20120602DIMFIG00434-coup-d-envoi-des-festivites-du-jubile-d-elizabeth-ii.php
[사진출처] http://www.lexpress.fr/24henimage/une-flotte-sur-la-tamise_1122457.html
파리샹제리제에서 개봉된 게르하르트 리히터 전기영화
[2012 프랑스 대학시험 바카롤레아가 6월 18일부터]
2012 프랑스 대학시험 바카롤레아가 6월 18일부터 .일반계와 기술계를 다 해당하는 철학논술시험과 시작되는 모양이군요 그 결과는 7월6일부터 교육일정에 따라 자유롭게 발표할 수 있다 내가 알기는 시험볼때 사전이나 전자계산기를 가지고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네요 그리고 한가지 재미있는 점은 논술시험 채점에서 누구도 그 형평성에 대한 시비가 없다는 점입니다. 결국 교육은 신뢰와 자율성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라고 할 수 있지요 교사에 대한 신뢰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겠죠
http://www.lemonde.fr/education/article/2012/05/28/bac-2012-les-dates-des-epreuves_1708586_1473685.htmlBac
연경당 내부 건물의 소통 미학
벵자맹(서울에 18년간 거주한 프랑스인 문화평론가) 2004년 그가 기획한 코리안 아이스(관훈갤러리)전 취재하다가 조금 알게 되었다. 그의 한국어솜씨는 훌율하다. 그와 관련된 기사를 여기에 소개한다. 그는 "서울은 사는 도시가 아니라 이용하는 도시다. 서울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 서울시민을 100여 명 이상 인터뷰했다. 그들 중 90% 이상이 은퇴 후에는 서울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서울은 사는 도시가 맞다.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산다"라고 일단 농을 친 뒤, "앞으로는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벵자맹 씨와 같은 외국인도 살 만한 곳으로 만들겠다. 서울에 대해서 고민하는 거주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다. 청계천은 '쉼표 없는 복도' 시청사는 '쓰나미' 같아 [기사출처]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3259
[2012 파리미술사축제(Festival de l’histoire de l’art)] 프랑스에서는 미술사에 대한 일반인의 열기가 뜨겁다
Crédits photo : Didier Plowy/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Château de Fontainebleau, le Salon du livre et des revues d’art lors de la première édition du Festival de l’histoire de l’art, mai 2011 CREDIT : © Didier Plowy/Ministère de la Culture et de la Communication
프랑스에서는 2011년 제1회 미술사축제가 15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고 이번 주에 제2회 미술사축제가 17000명참가예정으로 열린다고 한다. 미술사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Plus de 15 000 personnes ont participé au premier Festival de l'histoire de l'art en 2011. On en attend 17 000 ce week-end, pour la deuxième édition. www.lefigaro.fr/culture/2012/06/01/03004-20120601ARTFIG00361-tous-passionnes-d-art.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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