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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중요전시행사

[홍승혜]뜨거운 열정보다는 따뜻한 애정으로 살기

[홍승혜전_광장사각]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광장 열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3층에서 2012.4.5-6.12까지 
- 뜨거운 열정보다는 따뜻한 애정으로 오늘을 즐기고 자신을 사랑하라 

홍승혜전이 열리는 강남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 입구 


아뜰리에 에르메스 홍승혜전 오프닝 행사 모습 <사진 반이정> 

홍승혜작가는 그의 눈길이 닿은 모든 사물을 유기적 기하학적인 선으로 전화시킨다. 아뜰리에 에르메스의 건축이 유기적 기하학적인 선을 바탕으로 한 건물이라 작품과 건물이 너무 잘 어울린다. 상생의 미술전시라고 할까요 담담하면서 우하하고 아뜰리에 에르메스에 들어서면 강남의 한복판에 있는 사찰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에 들어와 잠시 자신의 삶과 되돌아보면 그림을 감상하지 않더라고 많은 것을 얻고 가게 될 것이다


유기적 기하학이란 매우 유럽적인 것인데 아뜰리에 에르메스가 바로 그 전형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이런 건축적 특징을 지닌 곳에서 전시되기에 작품과 공간이 잘 어울린다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최소의 개입으로 최대의 공간을 창출하는 이우환의 정신을 여기에서도 일부 발견할 수 있다. 전시바닥이 크다고 할 수는 없지만 바다처럼 넓은 광장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은 바로 유기적 기하학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싶다.


인간의 시각적 쾌락은 가장 수준 높은 단순성에 발현되는지 모른다. 여기에 모든 기호가 바로 인간의 그런 욕구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유기적 기학학이 연출하는 황홀한 미적 쾌감은 역시 추상주의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여기서는 차가운 추상을 대표하는 몬드리안의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홍승혜의 기하학적 추상은 차가운 듯하나 실은 따뜻한 것이 그 두드러진 특징이다. 


[리뷰 홍승혜전_2008년전시] 국제갤러리 파편 Debris http://www.kukjegallery.com/artist/hong-seung-hye


홍승혜 I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 알루미늄에 폴리우레탄 116.7×190cm 2004 ⓒ 홍승혜 

기하학적 이미지의 하모니 국제갤러리, 홍승혜 파편展 
[본문사이트]  http://www.sciencetimes.co.kr/article.do?todo=view&atidx=0000023987 

기하학적 이미지의 하모니 같은 픽셀(pixel, picture element 줄인 말)은 화질이 좋은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디지털카메라 등의 화면을 확대경으로 보면 일정간격의 많은 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면을 구성하기 위한 최소단위로서 점의 크기 여부에 따라 그림의 윤곽이나 농담(濃淡)이 달라지고, 쇠라의 점묘법처럼 화면 전체의 점 즉 화소수가 많을수록 정밀하고 상세한 재현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점이 모여 선이나 면이 되고, 점, 선, 면이 모여 하나의 예술작품이 탄생한다. 유클리드가 <원론>에서 "점은 부분을 갖지 않는 것이다"라고 기하학적 의미에서 정의했다면, 예술적 의미에서 점은 하나의 조금만 세계이다. 또한 점은 미술의 외적 및 내적 의미에서 '회화의 원천적 요소'이자 '그래픽의 원천적 요소'이다. 이러한 점이 움직여 만들어진 것이 바로 선이다. 선은 길이는 있으나 넓이가 없고 위치와 방향을 갖는다. 그리고 다양한 요소에 의해 새롭게 변화하면서, 직선, 각진 선, 곡선 등 그 형태가 다양해진다. 

홍승혜 I '파편(Debris)' 알루미늄 각파이프에 폴리우레탄 300×10×10cm×32 2008 ⓒ 홍승혜 

이러한 선이 모여 이동한 것이 새로운 형태의 기하학적 면이다. 면은 길이와 넓이는 있으나 두께는 없다. 유클리드는 <원론>에서 "면은 길이와 폭만을 가진 것이다" 혹은 "평면은 그 직선이 그 위에 균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예술에 있어서 도식적인 평면은 두 개의 수평선과 두 개의 수직선이 만나 만들어진 것으로 작품의 내용을 담는 물질적 요소이다. 이러한 평면은 어떤 형태의 평면이든지 네 개의 변을 지니고 있고, 이 네 변의 각각은 변을 구성하는 색깔이나 모양 등에 따라서 그 고유한 특징을 드러낸다. 

점, 선, 면이 조화, 균형, 대비 등을 이루며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탄생해 수학적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점은 면과 면이 공간에서 마주치는 모서리의 끝으로 표현되는데, 고딕 건축에서 질서정연하게 이루어진 뾰족한 첨탑이 바로 점이다. 다음으로 선은 한 직선의 무한적인 반복, 한 곡선의 무한적 반복으로 표현되는데, 조각이나 건축에서 선이 이용된 사례로 선을 이용하여 시도한 파리의 에펠탑이 있다. 

마지막으로 면은 2차원의 공간을 이루고 자유곡선적이며 유동성을 갖는 유기적 형, 직선적 형, 불규칙 형, 우연적 형 등을 취한다. 이러한 평면 형태는 조각이나 건축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쉽게 볼 수 있다. 

홍승혜(1959-) 작가 서울대회화과 및 파리국립미술대학졸업 

일상생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벽지의 문양, 타일 등은 면이 만나 이루어지는 시각화 활동의 좋은 사례이다. 대부분의 벽지 문양은 규칙적인 방식으로 반복되어 평면을 완전히 채운다. 이러한 벽지 문양을 도안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들은 종이의 한 부분을 채우는 양식을 만들고 그 양식을 전체에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일이다. 

원자가 모여 물질이 만들어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학적으로 삼각형, 사각형 등 다각형이 평면전체를 완전히 덮는 것과 유사하다. 최근에 수학자들은 보급품의 분배와 회로의 설계 등 다른 여러 분야에 응용되는 수학적 영역으로서 타일붙이기와 벽지의 문양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작가 홍승혜는 수학적 및 기하학적 요소이자 예술 활동에서 중요한 요소인 점선면을 인공적인 가공의 과정을 거쳐 예술품으로 재생산하고 있다. 홍승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유기적 기하학(Organic Geometry)'이라는 주제 아래 새로운 회화제작 방식인 공업적 생산방식을 이용하여 다양한 작품을 만들며 그 개념을 발전시켜왔다. 

그녀는 물감이나 붓 대신에 컴퓨터 프로그램인 포토샵(Photoshop)을 사용하여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고, 네모난 픽셀 이미지를 벽돌처럼 쌓아 올리거나 축소와 확대, 순열과 조합 등을 반복하여 만들어진 다양한 모양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홍승혜 I '파편(Debris)' 나무에 폴리우레탄 79.2×60×21.6cm 2008 ⓒ 홍승혜 

이러한 이미지는 인간의 손길보다 대부분 공업적 생산방식으로 제작되어 현대미술이 갖고 있는 특징을 드러낸다. 그녀의 이미지는 공업적 생산방식을 거치면서 평면의 화면에서 가구, 벽화, 조각, 비디오, 책과 같은 다양한 성질의 물질로 입체화되었고, 그것은 실제의 공간과 조화를 이루며 새로운 의미로 창조하였다. 

이렇게 인공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창조물은 "창조와 복제의 경계, 독창성과 익명성의 경계" 등 현대미술이 갖고 있는 특징을 아우르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그녀의 작품은 기계적 제작 방법으로 만들어졌다는 단순한 의미보다 "오히려 자연 파괴적 기계문명으로 대변되는 현대문명을 포용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번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홍승혜의 <파편>展은 그녀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발전시켜온 '유기적 기하학' 개념을 새롭게 선보인 자리였다. 작가에 따르면 작가의 개입에 의해 미세한 크기의 변화나 배열의 조율에 의해 유연하고 불규칙한 화면이 만들어지고, 그 결과 유기적인 수학, 혹은 유기적 기하학의 이미지가 창조된다. 

이렇게 창조된 작품은 단순히 작품 자체의 의미보다 전시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작품이 어우러져 전시되면서 새로운 의미를 만든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시장을 보면 전시 공간을 분할한다는 의미에서 일정한 벽면 전체가 페인트로 채색되어 새로운 전시공간이 탄생했다. 이는 작품뿐만 아니라 건축 공간 자체도 하나의 조각품, 즉 작품이라고 보는 작가의 의도를 말해준다. 

홍승혜 I '파편(Debris)' 잉크젯 프린트 50×37.5cm×12 2008 ⓒ 홍승혜 

이번 전시는 '유기적 기하학'이라는 말처럼 공장에서 인공적 이미지가 만들어지나 그 이미지가 작가의 힘에 의해 어떻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탄생하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리였다. 또한 그러한 시각적 재현이 새롭게 만들어진 공간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지, 그리고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파편처럼 분할되어 있는 기하학적 문양들에서 어떠한 의미를 보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전시였다. - 공하린 객원기자 씀 

[세마(SeMA) 청년(30세-40세) 2012 열두개의 방을 위한 열두개의 이벤트전] 
서울시립미술관(관장 김홍희)2층3층에서  2012.04.10-05.17까지 www.seoulmoa.org 


서울시립미술은은 건물이 그림을 그린다 햇살과 그 그림자가 실루엣을 만들면서 매시간 그 그림이 달라진다. 오늘은 유난히 봄햇살이 맑아 그림이 선명하다 

12명의 작가, 12개의 방, 12개의 개인전 

전시명 열두개의 방을 위한 열두개의 이벤트전으로 서울시립미술관 2층과 3층에서 열린다. 전시부분은 회화 사진 영상 설치 사운드아트 등 전 부분이다. 참여작가는 문형민, 진기종, 파트타임스위트, 김기라, 하태범, 김상돈, 한경우, 김용관, 김영섭, 노진아, 변웅필. 이진준이다. 주로 30-40대 젊은 블루칩 작가들이다.   

김기라 I '공동선-모든 산에 오르라' 2012 

문명비평가가 다된 김기라 작가는 사르트르가 고민한 즉자(en soi)와 대자(pour soi)를 이야기하고 있다. 둘이 같이 살아야 하는데 한 사람이 살면 다른 사람이 죽고 다른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이 죽고 이런 딜레마 속에서 문명의 위기를 논하면서 그럼에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역사의 발전에 대해서 희망의 끈을 놓치진 않는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 예의도 지키지 않으면서 왜 신을 찾는가 

인간의 욕망은 시간과 역사를 등에 업고 유물이 되기도 한다. 욕망을 제거하기 위해서 산에 오르다가 또다른 욕망을 세우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예물삼종세트는 우리들의 잃어버린 마음가짐을 상징한다. 나는 여기서 다시 한번 우리라는 공동체에 대해서 공동선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싶었다. 

인간의 욕망, 물질에 대한 욕망이든 전쟁영웅이나 신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든 여기 전시장에 선보이는 것은  인간욕심의 물화를 보여주면서 인간의 정신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인간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으면서 왜 신을 찾는가라고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 것인양 숭배한다. 

김기라 I '우리가 생각하는 그것(Something that we thought)' 브론즈에 채색 180×160×160cm 2011.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뭔가 중요하다고 착각하여 이런 것을 숭배하고 소유하려고 한다. 

공동선을 외면한 채 포스트구조주의(혹은 모더니즘)을 살아가는 현대인은 무엇을 토대로 하고 살고 있는가. 인간은 자신을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없는 우상도 만든다. 그런 과정에서 발생하는 그들의 고질병은 과연 뭔가. 그것은 결국 물질을 만들어 믿고 숭배하려는 속성으로 인해 치유불가능한 편집증과 강박증이 대두하게 된다. 불안을 거세하려고 다시 불안을 만들고 욕망을 제거하려고 또 다른 욕망을 꿈꾼다. 

현대인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하루에도 수많은 우상을 만드는 제조기일뿐이다. 그의 생생한 목소릴 옮기면 이렇다. "현대인들은 우리라는 공동체나 공동선을 잃어버리고 단지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뭔가를 잡고 싶고, 뭔가라도 만들어 믿고 싶고, 그 어떤 걸 맹목적으로 숭배하고 싶은 유혹에 빠진다. 신은 인간을 용서하는데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채워주지 않은 신을 용서하지 않는다(God 4Gives U But I do not)" 

김기라 I '공동선-모든 산에 오르라' 2012. 우리의 욕망이 만든 괴물 같은 우상과 그 밑그림 드로잉 

드로잉는 그에게 있어 생각을 담는 방식이고 그런 개념을 정리하고 압축하는 메모장 같은 것이다. 이걸 가지고 어떤 메타포와 방법론과 물질(마티에르)로 표현할까 하는 것을 고민하는 과정을  이루는 정거장과 같은 것이다 그의 작업은 완성형이 아니라 진행형(on going) 개념이 완성될 수는 있지만 작품은 완성될 수 없는 것이다. 동시에 관객의 중요성이을 생각하면서 그냥 무조건 봐라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의 폭력이고 그들에게 생각을 유발시키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방식이 중요하다.  [작가와 인터뷰 내용요약] 

예수와 부처 서 있는 모습과 그 제스처가 거의 동일하다. 

[추신] '공동선_모든 산에 오르라(Common Good_Climb Every Mountain)'은 근 10년 동안 사진, 회화, 영상과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하여 사회와 개인의 모습이 반영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작업전반에 흐르는 희극적 요소와 서사적 구조가 통합된 보다 집약적인 '스펙터(망령 Specter)', '비기념비적 드로잉', '번영을 위한 새로운 이념' 등 연작을 선보인다. 

일련의 연작은 신화, 종교, 사회, 경제구조에 의해 파생된 이미지나 성상이 인간의 존재와 삶을 확장시키고 '공동선'보다는 망령이 되어 보이지 않게 인간을 제약하고 규제하며 욕망을 부추긴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형식적 방식을 역사적, 사회적으로 의미가 축적되어 온 신화와 성상 이미지를 해체, 변형하고 재구축하면서 그 개념을 유추하기 위한 단서와 개념을 드로잉한다. 이는 인간의 의식이 반영된 또 다른 망령으로 결코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인간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지난 8년간 세계 10여 개국을 다니며 모은 500권 이상의 문화, 역사, 인류사 등의 서적에서 발췌한 신화와 성상의 이미지로 만든 사진 콜라주, 드로잉, 그리고 설치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김영섭 I '정원에 대한 새로운 기억' 스피커 스피커케이블 합판 앰프 DVD 5-10채널 가변 3분 33초 2008-2012 

김영섭 작가는 형체 없이 존재하는 일상의 소리를 물질화시키고 시각화한 사운드 설치 '정원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선보인다. 스피커는 점처럼 보이고 전기선은 곡선으로 구현한다. 일종의 전자 추상화다. 거기에 일상의 소리가 녹음되어 있고 그 소리를 통한 시각적 효과를 넣었다. 예술은 인간이 만든 자연인데 거기에 문명의 소리도 들어간다. 

하태범 I '미니아처' 영상자료 2012 

하태범 작가는 미디어에 보도된 사진자료를 수집하고 그 중 일부를 골라 미니아처로 재현한 후 그것을 다시 사진과 영상으로 재현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또한 하 작가는 표백(blanchissement)을 통해서 현대문명의 어둠을 씻어내고 정화하려고 한다. 그는 젊은 현대작가답게 작품을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같이 만들어가려 한다. 

한경우 I '그린 하우스' 나무 페인트 와이어 가변설치 2009 http://www.kyungwoohan.com/ 

한경우의 작업은 사람의 시점과 관점에 대한 연구에서 비롯되어 모든 사실은 상대적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사람은 평생에 걸쳐 학습되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같은 사실을 두명 이상이 바라본다면 두개 이상의 관점이 생겨나고 그것은 절대로 서로 같을 수 없다. 모두가 서로 보고 싶은 사실을 볼 뿐이다. 

한경우 I '그린 하우스' 나무 페인트 와이어 가변설치 2009 

인간은 세상을 지각하는 많은 방법중에 많은 부분을 시각에 의존하고 있고 인간의 관점이 구축되는 과정 또한 시각적인 부분의 영향이 가장 크다. 이렇듯 본인의 작업에서 인간의 '본다' 라는 행위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의 보고 읽는 행위가 얼마나 객관성을 유지하기가 힘든가를 보여주고 현상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그것을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작업을 통해 말한다. - 한경우 

노진아 I '미(未)생물' 현미경 컴퓨터 등의 복합재료 인터렉티브 가변설치 2009 

노진아 작가의 작품 [관련기사] 사이보그와 사랑을 논하면 행복할까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2111083&NewsCategoryCD=60900000 

노진아 작가가 만든 인조인간의 지능은 IQ 100에 가까운 것 같다. 컴퓨터로 질문을 입력하면 인조인간이 대답을 하는데 거의 사람 수준이다. 꿈이란 말을 입력하면 "저는 사실 인간이 되고 싶은데 아직도 되지 못하고 있어요 제 꿈을 그런 것이죠 절 도와주세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정도의 대답이 나온다. 노진아 작가는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DB가 축적되었기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이진준 I '인공정원(Artificial Garden)' Led Sound Polycarbonates Site generating installation 2012. LED빛과 기계음으로 연출한 인공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사계절 

[봄] 어느 날 그들은 예고도 없이 찾아왔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모두 떠나버렸다. [여름] 태양이 하늘 가득 퍼져가는 어느 여름 오후 마침내 기다렸다는 듯이 폭풍이 밀려오고 있다. 가느다란 하프의 선율과 함께 몰아치는 비바람 속을 헤쳐 가는 그들의 고단한 항해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가을] 가을을 짧았고 많은 사람이 그들의 지나간 과거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한번 지나간 것은 결코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 읽는다 그리고 다시 읽는다. 춤추고 뛰어다니는 무용수가 혼자 말로 계속해서 떠들고 있다. 찬바람이 불고 눈이 쏟아지는 그들의 흔적을 따라 숲 속 깊이 그리고 더 깊이 황폐해진 눈 내린 길이다. - 이진준 

변웅필 I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시리즈' 캔버스에 유채 180×150cm_2011 

변웅필은 그의 독일 유학시절인 2002년부터 불특정한 '한 사람'을 주제로 작업을 이어왔다. 특징을 모두 덜어내거나 감추고 인상마저 일그러트려 개인의 개성과 특징을 최대한 감춘 자화상시리즈가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품제목을 명시하지 않는다. 미리 정해진 제목으로부터 작품을 제작하지 않았던 것처럼 관객에게 제목으로부터 작품을 접하는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게 작품을 대하기를 바란다. - 변웅필 

김용관 I '표본공간(Sample Space)' 종이박스 가변설치 2012 

나는 이 물건을 벽돌로 삼아 당위가 아닌 임의의 결합으로 세워지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인 '표본공간'은 실험 또는 임의의 모든 경우의 집합을 의미한다. 나는 이 공간에서 임의로 만든 작은 단위의 블록을 무작위로 쌓으며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을 다시금 새로운 조합의 룰로 사용하거나, 하나의 완결된 구조를 분해하여 다른 모습으로 재구축하거나, 그 관계를 불분명하게 하여 공간을 납작하게 만들거나, 역으로 원근을 강조함으로써 과도한 전후의 구분이 만들어내는 문제를 왜곡된 환영으로 나타내고자 한다. - 김용관 

문형민 I '통계숫자 시리즈(By numbers series)' 서울시립미술관 벽화 가변크기 2000-2011 

위 작품은 기존에 진행하던 숫자, 즉 통계를 이용하는(by numbers series)를 이번 전시의 장소와 공간에 맞게 재구성한 작업이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된 48회의 전시도록, 전체 페이지 7811, 총 문단수 80,458, 총 단어수 1,018,164를 컴퓨터로 스캐닝했다. 입력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가장 많이 사용된 10개의 단어의 횟수와 순위를 찾아내고, 가장 많이 사용된 열개의 색을 골랐다. 완성된 단어와 색의 조합을 주어진 전시공간 총 면적 174.71㎡위에 각 단어의 빈도수에 따라 채색했다. - 문형민 

김상돈 I '불광동 토템_면접' 2012 

사실 나는 이 대상에서 어느 포르노그래피 보다 색끈한 애욕과 에로틱스, 그리고 환희를 느낀다. 일종의 타나토스(죽음)에 가깝다. 예컨대 서낭당에서 민초의 집단적 애환과 카타르시스를 읽고, 공동체의 구심체로서의 사회적 기능을 분석하기보다, 개개인의 맹렬한 욕망과 기운이 얽히고설킨 카니발과 굿판을 연상하는 식이다. 

그렇다면 나는 주로 어떤 대상의 사연에 매료되는가. 그것은 제도가 규정하는 집단적 가치관(실용주의, 기능주의, 환금만능, 공공도덕, 윤리, 평가)의 기준에서 나는 부적절하고 무능하다. 제외되는 존재, 경계와 경계 사이의 중간지대에 낀 이방존재, 불온한 존재, 비공식적 존재, 사회적 소수자, 하위주체의 사연이 드러내는 기운생동과 정서, 생활력 그리고 치열한 분노에 매료된다. 그것은 생물일 수도 있고 무생물일 수도 있다. - 김상돈 

진기종 I '항해' 키네틱 설치 가변 1:24스케일 디오라마 모형 기계장치 2011 

누군가의 정처없어 보이고 험난해 보이는 항해는 땅을 밟기 위한 여정일까. 지구 북쪽에서 녹인 새하얀 결정체가 결국 세상을 푸른 바다로 변화 시킨 것일까. 땅을 찾아 헤메이는 걸까, 아니면 더이상 땅에서 살 수 없기에 무작정 다른 땅을 찾아 떠나는 것일까. 저 허름한 배 한척은 육지를 갈망하는 인류의 마지막 항해가 아닐까 - 진기종 

서울시립미술관 2층 

이밖에도 파트타임스위트는 2010년 9월 열흘 간 민간인 출입통제선 부근을 횡단하는 비디오작품 '드롭 바이 덴(42분 04초 2010)' 등을 선보인다. 

[다리파 : 표현주의의 기원전] 프랑스 그르노블미술관에서 3월 31일부터 7월 17일까지 
- 독일인은 강력한 색채와 거친 붓질로 그리는 표현주의를 통해 1차(2차 포함)대전으로 받은 역사적 상처를 씻어내는데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은 이렇게 인간을 가장 차원 높은 단계에서 구원하는 방법 중 하나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I '베를린 거리' 유채 121×91cm 1913. 뉴욕현대미술관소장 

[독일 표현주의] 1905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창립된 '다리파'는 키르히너, 헤켈, 놀데, 뮐러 등이 핵심 멤버이다. 이들은 주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학생으로서, 전통적 미술교육을 거부하고 순수한 상태로 그림을 그리려고 시도한다. 이들은 또한 중세 길드 조직과 비슷하게 공동작업을 중요시 했는데,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기 보다는 한 그룹으로서 집단으로 작업하는 것을 선호한다. 

특히 키르히너는 표현주의와 다리파의 예술관에 대한 많은 글을 남기며, 그룹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905년에 목판화에 세긴 선언문을 통해 이들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짓는 다리역할을 함으로써, 빈민계층에 대한 동정, 부르조아중심의 낡은 사회제도에 대한 비판, 사회정치적 현명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다리파 화가의 공통적인 양식의 특성은 야수주의와 비슷한 강렬한 윈색사용과 고의적인 형태 변형을 들 수 있지만, 야수주의와 구별되는 점은 중세 고딕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에서 전통을 이어받은 듯한 왜곡되면서도 호소력 있는 기법이다. 또한 윈시미술의 영향과 신인상주의나 후기인상주의의 영향도 간과할 수 없다.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 I '거울 앞 누운 누드(Nu couché au moroir)' 유채 1909-1910 [사진출처] <다리파> 전 프랑스 그르노블 미술관 Die Brücke, l'origine de l'expressionisme allemand au Musée de Grenoble http://www.lemonde.fr/culture/infographe/2012/04/20/les-toiles-virulentes-de-die-brucke-exposees-au-musee-de-grenoble_1688198_3246.html#xtor=AL-32280258 

에른스트 루드비히 키르히너(1880-1938)의 초기작은 1906년에 그린 해바라기와 같이 있는 여인의 머리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시기의 프랑스의 마티스가 보였던 야수파 수법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키르히너의 선은 야수파의 것보다 훨씬 투박하게 처리되고 있다. 그러나 1911년에 베를린으로 활동무대를 옮기고 나서는 표현주의 화풍을 완성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1913년에 그린 다섯명 거리의 여인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톱날같은 예리한 선과 포물선 같은 곡선이 서로 대조되면서 동시에 결합하여 화면 가득히 특이한 긴장감과 움직임이 살아나고 있다. 이러한 효과는 1915년에 그린 군인으로 분한 자화상에서도 느낄 수있다. 

뒷편의 나부와 급한 경사로 이루어진 화가의 정면상은 현실적인 색채로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날카로운 선과 강렬한 원색이 한데 어울어져 화면은 강한 호소력을 지니게 된다. 

1913년 같은 해에 그린 베를린의 거리풍경에서는 도시의 삭막함과 고독한 군상을 표현하고 있다. 당시 독일 사회는 급격한 산업과 도시발달로 경제적 부를 축척하게 되지만, 빠른 경제성장에 비례하여 각종 도시문제가 산재해 있었다. 바로 이러한 혼돈과 무질서속에서 쾌락을 쫓는 인간은 몰개성적 그 자체인 것이다. 

에밀놀데(Emil Nolde) I '피서객들(Les Estivants)' 1911. ⓒ Stiftung Seebull and Emil Nolde/ADAGP 2012 

에밀 놀데(1867-1956)는 독일 표현주의의 중요한 작가로 자리 매김하고 있다. 그는 젊은 시절 목각공예를 습득하고, 한때 베를린에서 가구와 장식미술가로 일한 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1906년에 다리파에 가입해 그 다음해 탈퇴하여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나아간다. 브뤼케 그룹 시절 얻은 목판화의 제작 방법은 그림에까지도 감정표현, 그것도 현실 사회를 넘어선 종교적 감정표현으로 이색적인 종교적 표현주의 회화를 구현해 나갔다. 

놀데의 작품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1909년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약 20여점이 넘는 종교적인 주제의 작품이다. 그의 종교화는 전통적인 기독교도상을 과감히 탈피해, 표현주의자다운 화면을 구성하게 된다. 그는 사실적이면서도 무게 있는 그림으로 앙소르, 루오, 고갱과 더불어 현대회화사에서 손꼽히는 종교화가로 불리우게 된다.

1909년에 그린 오순절 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한 북부 독일의 건장한 농임과 같은 모습으로 재현하고 있다. 그를 둘러싼 사람도 신앙의 깊은 체험을 함께 나누며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또한 사람들의 눈은 크고 선명히 그려지고 있다. 서구미슬에서 전통적으로 눈은 마음과 정신의 상징으로서 정신성을 강조할 때는 눈을 크게 그린다 

에릭 헤켈(Eric Heckel 1883-1970) I '초원에 나무(Arbres dans un pré)' 1905. 'Die Brücke, aux origines de l'Expressionnisme', Musée de Grenoble [피가로지] 독일표현주의_색채의 불꽃놀이 
http://www.lefigaro.fr/culture/2012/04/26/03004-20120426ARTFIG00852-l-expressionnisme-feu-d-artifice-de-couleurs.php 

에릭 헤켈(1883-1970) 은 온건하면서도 절제된 표현주의자였다. 그는 원시조각에 매료되어 문명에 찌들지 않은 원시세계를 화폭에 담고자 했다. 기법에서는 입체주의의 분할된 윤곽선 처리와 원근의 다시점이 도입한다. 

이러한 원시성은 1913년에 그린 여인과 바다 에서도 나타난다. 날카롭게 각진 주변 풍경과 직선으로 표현된 빛의 분광 속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누드의 여인은 서양 미술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솔직함이 드러난다. 이런 점에서 그녀는 고갱의 타히티 여인을 연상시킨다. 

오토 뮐러(1874-1930) 또한 자연과 원시성에 매혹되어 숲속의 누드를 많이 다룬다. 1911년에 그린 숲속의 세 나부 는 마르고 아이와 같은 신체는 비문명적이자 비서구적이다. 검은머리와 갈색의 피부로 인하여 동양여성을 생각나게 한다. 집시로 명명된 두 여인은 두터운 입술과 뭉툭한 코, 짙은 갈색의 피부를 가진 흑인들로 묘사된다.

다리파 작가는 이상화되지 않고 솔직히 드러나는 자연속의 무리지은 누드를 애호하는 주제로 사용했는데, 그들은 그것을 그 당시 중산층 부르조아 계급의 위선적인 도덕관을 거부하며, 거기서부터 벗어나 진실한 인간 본연의 해방을 추구하는 방식이자 표현으로 삼은 것이다. 

[참고] 독일의 표현주의와 비교되는 프랑스의 야수주의(1898-1908) 

모리스 드 블라맹크 I '서커스' 1906 

감정의 폭발을 표현하기 위해 튜브에서 바로 짜낸 화려한 원색을 도발적이고도 직접적인 수법으로 구사했다. 1905년 파리에서 공식적으로 전시된 야수파 그림은 연례 가을 살롱 전의 관람객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준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비평가 루이 보셀은 작품의 격정적 특성에 주목해 그 화가들에게 '야수'라는 호칭을 붙는다. 

야수파의 주도적 화가는 앙리 마티스였다. 그는 후기 인상파의 거장인 폴 고갱과 빈센트 반 고흐, 조르주 쇠라 등의 작품을 세밀하고 비판적으로 연구한 결과 야수파 양식를 낳았다. 마티스는 체계적 연구에 입각하여 전통적인 3차원 공간의 묘사를 거부했다. 그의 양식은 언제나 직관적인 형식적 질서의 감각이 그림을 지배한다. 

[...] 이들 대부분 화가에게 야수파는 과도기적인 습작 단계였다. 1908년경에 자연의 질서와 구조에 관한 폴 세잔의 통찰력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면서 그들은 야수파의 격정적 정서를 거부하고 입체파의 논리성을 선호했다. 마티스만이 외부세계와 내면의 정서가 만들어내는 미묘한 균형을 형상화했다. 

[해외전시 파리의 여왕 미시아] 오르세미술관에서 2012.06.12-09.09 www.musee-orsay.fr 
Misia, Queen of Paris(reine de Paris), exhibition at the Musée d'Orsay 

Intérieur avec Misa au piano de Edouard Vuillard 

This multidisciplinary exhibition at the Musée d'Orsay in Paris presents portraits of Misia Godebska (a legendary figure of French artistic life from the Belle Epoque to the Roaring Twenties) and her entourage as well as works, documents and testimony by contemporary artists illustrating the creative ferment at a time when she reigned as Queen of Paris. 

피에르 보나르(Pierre-Bonnard) I 미시아(Misia) 유채 1908-1909 

Misia Godebska (1872-1950) was known as a talented pianist. Her marriage in 1893 to Thadée Natanson, the editor of La Revue Blanche, introduced her to a group of creators advocating Symbolist and decorative art. She became one of the most painted women of her time. 

[안철 작가 6번째 개인전_'염력(念力]  가나아트스페이스 1층에서 2012.5.9-5.15  
- 울트라파워맨이 시각화한 슈퍼에너지 '염력(念力)'의 미학 

가나아트스페이스 1층 입구 


[1] 안철(1950-)작가의 6번째 전시가 인사동 가나아트센터(1층)에서 5월 9일부터 5월 15일까지 열린다. 작가가 60대를 넘어서 여는 전시라 죽음에 대한 경관(landscape of death)을 주제로 하고 있다. 그는 고려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인문학도로 30년째 (주)수도프리미움엔지니어링회사를 운영해오고 있다. 사업만 하기엔 창작에 대한 미련이 커 50대가 되면서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아내도 화가고 일가친척 중 음악가, 미술가가 비교적 많다. 그런 분위기에서 작가가 된 건 자연스럽다. 

그가 엔지니어링사업을 해서 그런지 그의 미학적 상상력은 뒤샹 풍에 공학적이다. 그에게 미술을 하는 건 그리기보다는 오브제를 가져오는 것이다. 작품에서 재료의 독창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미술전공자가 아니기에 고정된 틀이나 경계 없이 창작을 하기에 그 어느 전위미술가보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다. 

1999년 강남 갤러리인데코에서 열린 그의 첫 전시는 오브제를 아상블라주(assemblage, 뜯어붙이기)와 페인팅을 융합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이브리드미술이다. 당시로는 매우 앞선 것이다. 전시 때마다 색다른 발상, 형태, 색채를 도입하여 시선을 잡았다. 그만의 독특한 미적 에너지는 여러 형태로 전시장에서 폭발한다. 


[2] 그는 이렇게 다빈치처럼 좌우뇌가 동시에 발달한 울트라 파워맨이다. 이 세상에 그처럼 기가 센 사람은 난 아직 본 적이 없다. 공학감각에다 인문학적 교양과 직관적 공감각과 예술적 상상력 등이 두루 뒤엉켰다. 다재다능한 그의 뇌구조를 한번 해부해 보고 싶다. 사업과 작업에서 주체할 수 없는 파워를 과시한다. 1990년대 한 달에 2번씩 미국출장이 다닐 정도로 분주한 일과 속에서도 뉴욕현대미술관(MoMA) 등 미국의 주요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작품구상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이런 그를 오래 봐온 김진혜갤러리 김진혜 대표는 그에게 '초강력 울트라 파워맨'이라는 별명을 붙여준다. 


[3] 이 글을 쓰기 위해 방문한 그의 작업실은 공장 안에 있다. 거기 걸린 특허증만 얼핏 봐도 40개가 넘어 보인다. 그는 사업을 기획하듯 전시를 기획한다. 예술과 사업에 구별이 없다. 공장에서 쓰는 물건을 작품에 가져다 쓰면 그만이다. 그의 아이디어 상품 중 하나인 '동파방지용 수도꼭지'는 거의 세계독과점인데 이런 발상은 그의 창작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의 모험정신에서 오는 엉뚱한 아이디어가 사업적으로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런 실패도 미래성공의 밑거름이 된다. 

지난번에는 인터넷검색을 통해 '한국을 이해하는 48개의 키워드(The 48 Keywords that describe Korea(GONGTO KOREA)'같은 영문책자 등을 내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는 한국인이라 그런지 '삶과 죽임이 하나(一體兩面)'라고 받아들인다. 그는 나에게 "죽는 것은 죽은 것이 아니고 변하는 것이고, 그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죽음을 또 다른 생명으로 가는 하나의 역정(rites of passage)으로 보는 것 같다. 


[4] 울트라 파워맨이라는 별명답게 그는 평생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다. 삶과 죽음, 물질과 정신만 아니라 우주와 자연과 인간에 담긴 에너지에 올인 한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죽음의 대안이라 할 만한 생명에너지 '염력(念力 Psychoki power)'를 발굴한다. 나는 이걸 "죽음도 간절한 염원으로 감싸면 생명이 된다"라고 해석하고 싶다. 


[5] 그는 최근에 쓴 아포리즘에는 이 염력에 대한 몇 가지 내용이 적혀있다. 예컨대 "물건에는 의식이 없지만 그러나 염기가 들면 의식이 생긴다. 돌멩이가 있는데 작가가 여기에 염기를 넣으면 생명이 된다. 염기에 에너지를 넣으면 염력이 된다. 염원이 이루는 힘이 염력이다. 염력도 진화한다. 염력은 희망, 기쁨, 성공, 소원을 이루는 힘이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6] 안철 작가와 가끔 이야기를 하다보면 의견차가 심해서 동문서답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나면 절로 소통이 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말은 달라도 마음이 통하는 엉뚱한 소통방식인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까. 그 밑바탕에는 서로에 대한 신뢰와 다른 견해에 대한 존중, 뭐 그런 관용이나 배려가 깔려있다. 그는 종종 듣도 보도 못한 엉뚱한 이야기를 끄집어내 주변사람을 당황하게 한다. 

그가 말하는 수준을 따라가거나 눈높이를 맞추기가 버겁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맞는 말이 많다. 그런 엉뚱한 상상력에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와 같은 어떤 유기체성이 있다. 이런 엉뚱함은 그의 작품에서도 그대도 적용된다. 그는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가 많이 사용한 '데페이즈망(떼다붙이기)' 기법을 즐긴다. 서로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향토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기막히게 어울린다. 이런 방식의 말과 행동이 예상 밖이라 주변 사람을 놀라게 한다. 그래서 감동을 넘어 충격을 준다. 


[7] 안철이라는 이름의 다른 해석 중에는 안+철(철이 안든 사나이)이다. 정말 그가 그렇게 보일 때가 있다. 철없는 아이처럼 천진난만하다. 그래 선가 그의 철학에는 유희정신이 깔려있다. 잘 놀아야 일도 잘 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요즘 <노는 만큼 성공한다(김정운著)>라는 책이 대히트지만 그는 오래전부터 이를 실천해오고 있다. 유희가 주는 창의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가 지금 운영하는 회사에는 두 명의 사장을 두고 있는데 한 사랑은 매니지먼트(경영)담당이고 또 한 사장은 엔터테인먼트(유희)담당이다. 엔터테인먼트 사장은 직원을 즐겁게 하여 생산성을 높이는 게 그의 역할이다. 세상에 이런 사장까지 두다니 정말 기발하다. 


[8] 안철 작가와 같이 다니다보면 가장 흔히 듣는 말이 "배고프지 않니? 뭐 먹을래?"다. 625세대라 그런지 밥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그의 공장식단을 봐도 그런 게 보인다. 메뉴가 호화스럽다. 된장찌개, 동태찌개는 물론 오징어무침, 골뱅이, 생선조림, 낙지볶음, 미역국, 닭매운탕, 생선구이, 육개장 등등 작업장 방문한 날 점심도 4찬에 국이 설렁탕이다. 

이런 먹는 축제는 그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소통을 여는 친교의 장으로 연결되어 삶의 향연을 펼친다. '축제 자리인 상갓집'이라는 말도 있지만 고단한 인생에서 이런 자리는 삶에 활력을 준다. 그가 이번 전시에서 말하고자 하는 '염력'도 이와 비슷한 개념이리라. 염력은 고단한 일상을 축제로 바꿔 원자폭탄 같은 위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9] 끝으로 그가 가장 중시하는 것은 바로 밀도(density)다. 밀도가 높은 삶, 이것은 일이나 삶에서 속도감과 긴장감을 유발시키면서 생산성과 효율성과 창조성을 높이는 것이다. 이는 질 높은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한 좋은 방안인데 그는 이를 매우 즐긴다. 삶의 질은 높이는 이런 당도의 철학은 죽음마저도 생명으로 바꾸는 위력을 발휘하는 염력의 미학과 통한다. 


그는 이런 걸 바탕으로 차원 높고, 밀도 높은 생사(being & dying)를 창출한다. 이렇게 당도 높은 슈퍼에너지인 염력의 미학이 이 작가를 울트라 파워맨으로 만드는 것 같다. 그런 면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와 존중감이 높고 이들을 적극적으로 돕는다.  일상 속 영성을 실천하는 휴머니스트로서의 면모도 놓치지 않는다. - 김형순 

안철작가의 작업실 경기도 광주시 

[노순택 개인전_망각기계] 학고재갤러리 신관에서 5월 4일-6월 10일까지 
[오마이뉴스관련기사] 망실된 광주 5월을 되살리는 사진의 힘  

노순택 I '들이 운다' ⓒ 노순택 

이번 개인전은 노순택 작가가 2005년부터 8년 가까운 시간동안 꾸준히 촬영한 광주 망월동 묘지와 그곳에서 발견한 망가진 영정사진들을 비롯하여 광주시내 일대에서 보았던 사건의 장면들, 화순 운주사 와불 등을 촬영한 '망각기계연작' 가운데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분단의 현재성에 관해 꾸준히 작업하고 있는 노순택에게 오월광주는 분단역사의 분수령과도 같다. 광주민주화항쟁과 이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 현상들이야말로 한국전쟁과 분단이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노순택 I '망각 기계' ⓒ 노순택 

작가는 기억이 망각에 의해 재조직된다고 말한다. '오월 광주'의 '역사화'는 이미 이루어졌다. 그 결과 광주의 문제는 현재 우리 삶과 연결해 고민해볼 필요가 없는 명료한 '과거'가 되었다. 그러나, 과연 오월 광주가 끝난 과거인지 작가는 의심한다. 여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작동하는 공권력의 폭력을 마주하면서 작가는 이번 전시를 매개로 이런 문제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저항'은 가장 오래된 미디어아트다! - 노순택 작가 

백남준의 "사회가 썩어야 예술이 된다"는 옳은 말이다. 썩은 사회는 예술에 흥미로운 재료를 제공한다. 하지만 썩은 사회는 무엇보다도, 그 자체로 현대적 예술 행위처럼 보인다. 게다가 독보적이다. 규모의 측면에서도, 기간의 측면에서도, 썩은 사회의 울트라 퍼포먼스는 알량한 개별 예술가가 흉내 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의 파피루스에도 "요즘 애들 버르장머리 없다"는 말이 적혀 있다던데, '썩은 사회'에 대한 비탄과 경멸은 동서고금에 즐비한 일이어서 새로울 게 없을지 모르겠다. 고로, "언제는 사회가 안 썩었냐?"는 반문에 할 말은 달아난다. 허나 이내 돌아온다. 모든 썩은 사회는 당대정신을 가지기 때문이다. 

노순택 I ''얄읏한 공' ⓒ 노순택 

월터 주니어는 "미디어는 의식을 다시 구조화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다. 이는 언어의 발명 이후 인간에게 끊임없이 촉구되어 온 문제니까. 새로운 미디어의 발명은 '축적된 과거'의 현재적 표현이요, 그 확산은 '오늘의 우리'를 반영할 뿐만 아니라, 내일의 우리마저 상상케 하는 것이니까. 미디어는 그 의식의 방법이자 절차이자 목적이었다. 

미디어는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화차일 뿐만 아니라, 메시지자체라는 게 마셜 맥루한의 유명한 선언 아니었던가? 미디어는 감각마저 건드린다. 사회를 '마사지'한다. 새로운 미디어가 출현했을 때, 대개의 권력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권력 강화와 사회 통제의 효과적 수단이 될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노순택 작가 

하지만 동시에 밀려오는 두려움, 고삐를 쥐었지만 놓치는 순간 독화살로 돌아올 거란 예리한 생존감각. 그래서 미디어의 사회사에는 사용자의 응용태도뿐만 아니라, 권력의 변화무쌍한 태도가 흥미롭게 드러나게 마련이다. 썩은 사회는 시민의 입을 틀어막음으로써 시민의 입을 벌린다. 새로운 미디어를 억누름으로써 날개를 달아 준다. 표현에 대한 두려움과 참을 수 없는 갈망은, 저항이라는 가장 오래된 '미디어아트'를 잉태해 왔다. 

노순택 I '제주 구럼비' ⓒ 노순택 

강정천을 거슬러 올라오던 은어는 길을 잃었다. 여름이면 물장구치던 아이들은 바다연못을 잃었다. 할망, 할아방들은 “우리를 살려줍서” 눈물짓는다. 구럼비로 가는 모든 길목은 3미터짜리, 5미터짜리 괴물 같은 장벽으로 모두 막혔다 .괴물의 장벽은 저 먼 고통의 땅, 팔레스타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리뷰_손장섭개인전] 관훈갤러리에서 4월 11일부터 5월 1일까지 www.kwanhoongallery.com 
[관련기사 오마이뉴스] 
분단된 조국의 얼굴에 통일의 햇살 비추다 http://bit.ly/I5clvd 

손장섭 I '실크로드' 캔버스에 유채 200×300cm 1992 

손장섭 작가은 우리는 그를 4·19 등 격동의 현대사를 주제로 그리는 역사화가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연과 서민의 삶과 신목 등도 많이 그렸다. 또한 분단시대를 아프게 살아가는 작가로서 한 시대의 증언자 몫까지 한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그 현실을 고발 

손장섭 I '동해철책과 해오름'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400cm 2007-2008  

세계에서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은 허리가 잘린 불구의 몸이나 마찬가지다. 백낙청 교수는 그래서 분단을 괴물로 비유한다. 우리도 괴물이 될 수 있고 괴물지도자를 뽑고 괴물정권을 낳을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린 여전히 휴전체제라 교육비에 비해 군사비는 엄청 많고 젊은이는 군에서 삶의 전성기를 다 보내야 하고 또한 제대로 된 민주주의도 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린 4대강국 사이에 끼여 산다. 게다가 북한이 막혀 걸어서 세계여행도 할 수 없다. 남한은 그렇게 완전히 고립된 섬이다. 여기서 동해철책이란 그런 답답한 현실을 극복하는 해오름을 의미하는가. 다산 정약용은 19세기 통일조선을 살면서 "아! 우리 겨레는 마치 자루 속에 갇힌 것 같구나"라고 자조어린 시를 토해냈지만 분단된 우리처지는 어찌하랴. 

손장섭 I '우리가 보고 의식하는 것들'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00×300cm 2011  

위 작품은 그의 70여 년 생애를 정리하듯 걸게 형식으로 그린 역사화로 민주화과정에서 일어난 주요사건을 농축해서 보여준다.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와 1973년 납치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김대중 전 대통령과 무모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킨 인혁당사건, 전태일의 분신과 5월 광주민중항쟁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미술평론가 성완경의 말대로 그는 회화로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맥을 읽고 현실적 삶을 녹여내어 증언으로서 역사를 다시 세우는 메타한 풍경을 그린다. 시각적으로 표현되는 그림이 개념적인 글보다 훨씬 파급력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뼈아픈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작가는 갈급한 심정으로 이런 그림을 고집하는지 모른다. 

분단된 역사의 창으로 본 한국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냉전의식 속에 단절감과 적대감이 몸에 배여 우리는 모르게 피해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미완이 혁명처럼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일이 많음을 아쉬워하는지 그림 속 구름은 눈물을 흘린다. 이런 참담한 세월을 50년이나 낭비하고 있으니 그 시간이 아깝다는 뜻이리라. 

손장섭 I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00×200cm 2008 

손 작가는 또한 10대에 6·25를 비롯하여 그 이후 수없는 사건을 겪으면서 그런 힘겨운 현실과 역사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안으로 자연경관을 그린 것인가. 하여간 그는 전국을 돌며 산과 바다를 많이 그린다. 정감어린 한반도의 자연을 두꺼운 붓질로 박진감 있게 살려낸다. 

손장섭 I '상현리 반송'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30×162cm 2009  

손장섭 작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그리는 것은 바로 덕송, 적송, 반송, 은행나무, 정자나무 등 신목이다. 나무에 신(神)이 붙은 것은 그만큼 거룩하고 신령하다는 뜻이다. 신목은 마을의 수호신으로 단군신화에 나오는 신단수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을의 친교와 소통과 축제와 제사가 벌어지는 곳이다. 여기서 소원도 빌고 굿도 하면서 힘을 얻었다. 

작가가 이렇게 신목에 애착을 보이는 건 마을공동체를 잘 이루면 이게 국가공동체도 잘 이루어지고 마을의 작은 통일이 나라의 큰 통일의 초석이 될 수 있는 뜻인가. 하여간 신목이야말로 우리를 지켜주고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같이 견디어낸 버팀목 같은 고마운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신성한 숭배를 받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대상이다. -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서 

손장섭은 이 땅의 자연, 나무를 그릴 때 진가를 발휘한다. 가라앉은 색채와 톤, 부드러운 질감으로 감싸고 문질러대는 붓질로 떠내는 풍경은 단순한 경관에 머물지 않는다. 삶의 애환과 역사가 끈끈하게 묻어나며 정령적으로 되살아나는 나무의 모습이다. 작가는 오래된 나무를 통해 우리네 삶과 역사를 보았다. 수백년을 살아오면서 간직한 이력과 상처, 애환은 곧 나무와 함께 살아왔던 우리 삶의 아픔이고 역사이다. 세월의 풍상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 의연히 서 있는 나무는 저마다 깊은 표정을 지닌 우리의 진실한 초상이다. -미술평론가  박영택 

기댈곳 없는 이들의  염원 그리다 

손장섭 I '내금강 마애불'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162×130cm 2009 

조선시대에는 기댈 데 없는 이들은 삶의 피할 수 없는 어려움을 당할 때 굿을 했고, 생의 의욕에 불타 열심해 살다 욕심을 너무 내 허무함을 느끼면 사찰에 가서 부처님에게 용서를 빌어 마음의 시름을 풀었고 양반층은 시서화로 삶의 여유를 찾았다. 그런데 이런 전통은 20세기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여기 부처님에게 비는 사람들도 열심히 살다보면 피할 수 없이 맛보게 되는 삶의 고단함과 쓰라림을 달래러 온 서민인 셈이다.   

[외젠 앗제 Eugène Atget 해외전시]  파리 카르나발레미술관에서 2012.4.25-7.29까지 
http://carnavalet.paris.fr/fr/expositions 

외젠 앗제 I '파리 고블랭가:아리스토타입' <현대미술관, 뉴욕1925> 

20세기 사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외젠 앗제사진전이 파리 카르나발레미술관에서 열린다. 이번에 소개되는 사진은 앗제가 1898년부터 1927년 파리에 찍은 사진들이다. 

Eugène Atget I '팡테옹(Corner of rue Valette and the Panthéon, fifth arrondissement)' 1925년 3월 아침 
lightbox.time.com/2012/02/06/eugene-atgets-documents-pour-artistes/#ixzz1tVV5KohT MoMA 

이번 회고전에 소개되는 작품은 잘 알려진 것도 있지만 20세기초 벨에포크(태평성대) 시절 네거티브한 사진과는 다른 방식의 비정형적이고 편집되지 않은 사진도 선보인다 

사진자료 카르나발레미술관홈페이지 http://carnavalet.paris.fr/fr/expositions 

Eugène Atget I '일식(During the eclipse)' 1912 
lightbox.time.com/2012/02/06/eugene-atgets-documents-pour-artistes/#ixzz1tVV5KohT MoMA 

파리의 정원과 센 강변 옛날 부티크 순회광대 등도 볼 수 있다. 파리이 거리풍경을 본격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만레이가 1920년대 수집한 43개의 사진인화지 통채로 볼 수 있다. 또한 그와 함께 파리의 피토레스크한 모습을 개발한 엠마누엘 포티에의 작품도 볼 수 있다. 

[뮤지엄데이_미술관의 날 행사]_서울시립미술관 & '뮤지엄데이 콘서트-음악이 흐르는 조각공원' 

2012. 5.1 연주를 준비하는 모습과 관객들 

연주 5월에는 그 시작으로 5.1(화)  12시-13시 바이올린, 첼로 듀엣과 바이올린, 기타 듀엣으로 구성된 [예원학교 영재아티스트팀]이, 5.5(토) 현악 4중주 [더 콰르텟프로젝트팀]이 아름다운 현악 선율을 들려준다. 한편, 공연을 원하는 아마추어 팀은 누구나 서울시립미술관 홈페이지(seoulmoa.seoul.go.kr) 또는 전화(02-2124-8939)를 통해 공연 신청을 하면 심의를 거쳐 공연무대와 음향시스템 등을 무료로 제공하여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5월 5일에도 공연이 있다. 

현악 4중주 '더 콰르텟프로젝트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12.05.05(토) 오후 1-2시까지 연주 

[서울시립미술관 소장작품 자치구 순회전(1차)]_시민과 하나되는 소장전_극사실주의 회화 : 낯설은 일상] 
은평문화예술회관 전시실(B1)에서 2012. 5. 3(목) - 20(일) 까지 개막식   2012. 5. 3(목)  오전 11:00 


[참여작가]  김강용, 김기라, 김성진, 김영성, 김용석, 김용중, 김은옥, 김창영, 박성민, 오흥배, 윤병락, 이용학, 이은주, 이흠, 정영한, 정창균, 정창기, 최경문, 황순일 (총 19인) 총 20여 점 

[민경갑_자연에 길을 묻다]_
서울시립미술관 기증작가초대전 개막식 : 2012. 5. 8(화) 17:00 본관1층 로비 
2012. 5. 8(화)-6. 3(일) (본관 50여점) 2012. 5. 8(화)-7. 8(일) (남서울미술관 50여점) 


[정직성 개인전] 김종영갤러리에서 2012년 5월 4일-6월 14일까지 
오프닝행사 05. 04(금) 오후 5시 김종영 미술관 (서울시 종로구 평창32길 30, 전화 02-3217-6484, 월요일 휴관) 


정직성 작가는 복잡하고 무질서한 서울주택가 구조물과 골목길에서 보이지 않는 패턴의 내재율을 찾아내어 화면을 재구성하고 색다른 구성의 역동적 파워를 구현한다. 이번 전에는 전보다 더 박진감이 보이고 색채가 튀고 더욱 강력해졌다. 

[필립 누와제트_앙쥴랭 프렐죠카주를 위한 오마주] 2012년 5월 18일, 저녁6시, 문화역서울284 


유명한 무용 비평가이자 예술전문잡지 Les Inrockuptibles 기자인 필립 누와제뜨가 안무가 앙쥴랭 프렐죠까쥬(Angelin Preljocaj)의 화려한 무용 경력을 소개합니다. Ciné-Danse (2012년 5월 5일-29일, 문화역서울 284)의 일환으로 열리는 행사로서, 강연 후에 <백설공주> 공연 비디오가 상영된다. 

[한국-라틴아메리카 수교 50주년 기념전] 라틴 아메리카의 시선_사진과 정체성 
-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에서 2012.05.15-06.09 Una Mirada a America Latina y el Caribe 
Photograph and Identity : A View to Latin America and the Caribbean 

도미니카 공화국 Republica Dominicana - 세자르 빠이암스 Cesar Payamps - TODOS SILUETAS 사본 

개막식: 2012년 5월 15일(금) 오후 6시, 재단 문화센터 갤러리 특별초청 세미나 
<라틴사진에 비춰진 기호학적 이미지> 강사: 빅토르 후엔마이로르 (평론가, 베네수엘라) 
[더 많은 전시정보] http://artnews.me/?p=10254 

[강현욱전] Project L Hello! Media_ Kang hyunwook 대전 이응노미술관 2012.04.27-08.26 
- 사회현실을 재기발랄한 예술적 실험을 통해 풍자, 미래지향적 기획 

강현욱 작가(1973-)는 현대 미디어아트를 대표하는 프레누아 현대미술국립스튜디오 출신의 주목받는 신예다. 미디어, 설치, 사진, 드로잉 등을 통해 자신의 감성을 표현한다. 강현욱 작품을 살펴보면 현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 가장 먼 곳에서 관조적인 입장으로 세상을 직시하는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이는 작가가 유학 당시 이방인으로써 느꼈던 인간으로서의 외로움과 나약함을 인정함과 동시에 거대한 사회구조의 실체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런 정체불명의 억압과 거대 세력으로부터 받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작품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는데, 분명히 그에게 있어서 고통스러웠을 그 순간을 오히려 아름답고 서정적인 영상이나 재미있는 장치로 전환하여 표현한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정신적 외상으로써  느끼는 단면적 공포와 트라우마를 치유함과 동시에 보는 이에게는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거대사회구조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SOAF(SEOUL OPEN ART FAIR) 2012 서울오픈아트페어 2012] 2012.5.4-5.7 오전 11시-오후7시 
http://www.soaf.co.kr http://www.seoulopenartfair.com 삼성동 무역센터 코엑스 1층 Hall B 

전시품목  회화, 조각, 사진, 판화, 설치, 미디어아트 사무국  서울오픈아트페어 사무국02-545-3314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47-8 유로미빌딩 B-103 email. seoulopenartfair@empal.com 

[해외전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_Uraniborg)전]
 파리 주드폼 2012.05.22-09.23 www.jeudepaume.org 
[오마이뉴스관련기사] "작품이 시간 따라 변하고 행위예술까지 하다"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1972-) I '새떼(Les Oiseaux)' Vidéo numérique, 8 min 55 sec, en boucle. 2008Collection privée. Courtesy Gallerie chez Valentin, Paris. © Laurent Grasso / ADAGP, Paris, 2012 

그의 작품은 시간과 시간성의 관계를 뒤섞어버리다.  가시적인 오브제의 기원을  흐리게 만든다. 장소성의 건축을 변화시키는 전시의 장치를 마련한다. 신화적, 역사적, 자료적 소스를 가지고 있는 상황과 함께 가공적이고 미학적인 가능성을 담지할 수 있는 지각을 가지고 있는지 관객에게 묻는다.   

로랑 그라소(Laurent Grasso) I '프로젝션' 베타 비디오, 컬러 비디오작품, 설치미술 3분 2003-2005 

그의 작업은 결정적으로 시사적인 것을 추월하는 시간 속에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눈속임의 아름다움과 정치적 유령과 감시체계와 천체의 관찰 등이 주제다. 독특한 전망 낯설고 미학적 감각속에 영원한 변화를 주는 원근법을 사용한다. 유동적인 관점을 만들면서 현실속에서도 변경을 만드는 것이다. 

<쉬어 가는 코너> 

[롤랑 바르트(1915-1980) 소개] - 작가의 죽음을 선언하며 비평의 새 장을 연 탈구조주의 기호문학가 

저술가 롤랑 바르트 

[1] 초기 맑스주의자에서 참여적 실존주의자로 후기에는 기호언어학자에서 원전비평가로 그 얼굴을 바꾼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의심할 바 없이 1960년대와 1970년대 프랑스의 이론가 중 가장 기발하고 재간 있고 대담한 이론가였다. 그의 문학 비평이 언어 사회학이나 구조주의 기호학과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것은 지당하다.

프랑스적 수재의 전형인 롤랑 바르트는 그 외모에서 보듯 아주 지적이고 때론 아주 차갑게까지 느껴진다. 그는 조르주 바타이유처럼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서구 문화의 광기와 열정으로 넘치는 첨단 문학가임에는 틀림없다.
롤랑 바르트의 문학적 이상은 "글쓰기의 신화에서 완전히 벗어난 에로티시즘의 회복"에 있다. 이는 말의 원형을 회복함으로써 성의 원전을 그대로 복구하려는 시도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그의 연구는 문학의 장르보다는 원전 연구에 집중된다. 그러나 그는 불합리적이고 비논리적인 연관의 관계를 캐내기 위해서 그 원전들을 초월해 나간다. 그의 의도는 소위 모든 허위 관념과 지배 이념을 폭로하는 데 있다. 
그는 원문들 속에 숨어 있는 또 그 배후에 깔려 있는 것들을 추정하며, 행간에 담긴 단어들과 의미들을 재해석하며 글의 내용을 작가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연상하게 하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성의 젖가슴을 '글쓰기영도'에 적용시킨다면 어떤 표현이 나올까 궁금하다 ⓒ 희완 

[2] 그는 '글쓰기 영도(Le degré zéro de l'écriture)'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원전의 배후 의도를 밝히고 모든 언어의 원형적 무의식인 세계를 벌거 벗기려 했다. 
글쓰기 0도란 글쓰기에 있어 의미의 폐쇄, 후퇴 그리고 보류를 뜻한다. 롤랑 바르트는 글의 의미 그 자체보다 그 의미를 창출하는 과정에 더 관심이 있었다. 

글을 쓴다는 건 진정한 글쓰기의 거부하는 것이고 또한 그 문턱을 넘는 것도 거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글쓰기를 하지 않는 글쓰기(écriture sans écriture)' 라는 것이다. 
단순한 관능적 즐거움이 아닌 정신적 희열을 추구하는 이 '원형(본원)적 글쓰기(archiécriture)'는 무엇보다도 '이미 쓰여진 문화 체계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진정한 문학이 사라지고 더 이상 거짓말투성이의 그 비밀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제로점'에서 그는 다시 문학을 끌어내는 것이다. 
이 관점은 다시 문학을 본래의 것으로 돌려놓고, '중립화 (neutralité)'하는 것이다. 한번도 언급한 적이 없는 말, 결코 그치거나 들려 주지 않을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이며 글쓰기의 원점과 태초 원형으로 돌아감을 뜻한다. 

롤랑 바르트는 초기에 사르트르 등 좌파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참여 문학'을 통해 인간애를 발휘하여 프티-부르주아적 출신을 초월하려고 그들과 가까이 지내기도 했지만, 여타의 지식인 마찬가지로 그는 결국 소쉬르의 기호학에 가담하게 되고,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인류학 즉 어떻게 신화들이 인간 안에서 사고하는가 하는 점과 그 공통적 기원을 언어학적 방법론으로 사회 현상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황금빛 링은 피터지게 싸워서 생존할 수밖에 없는 영광의 상처를 비유하는데 이런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렬한 아이러니로 읽을 수 있다. 이중부정이나 양자부정으로 말이다. [배영환전] 플라토미술관에서 2012.5.20까지 

[3] 그러나 그는 다시 이 구조주의를 넘어선다. 그는 기존의 문학과 비평을 전면 거부하고, 작가의 창조력까지도 넘어서는 비평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비평이 작가의 예속 상태에서 벗어난 진정한 문학의 독립 장르임을 선포했다. 
조장하는 대중 매체의 의해서 은폐된 메시지를 가차없이 폭로하고 우파나 좌파 가릴 것 없이 그 신화의 위장성과 허위성을 파헤친다.롤랑 바르트는 1850년경 플로베르나 발자크를 고비로 부르주아적 질서가 해체되는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단지 그의 비평의 작은 시작일 뿐이다. 

프랑스의 고전 문학은 부르주아적 질서의 불가피성을 꾸밈없이 반영 그 가치를 약호화한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라는 말에서부터 우리는 그의 문학 비평이 얼마나 엄청난 선전 포고이며 그의 문학의 길이 평탄하지 않음을 이미 예고하고 있다.
롤랑 바르트는 우선 글쓰기에 있어 언어소를 분석하면서 다양한 서술 방식의 출현을 파편화하고 작가의 부르주아적 기원을 캐내어 제시한다. 

그는 작가의 언어를 통해 소위 문학적 창조를 검증한다는 것과 언어와 특수한 원전에서의 표현이 이런 뿌리에 근거한 것이라는 역사적 차원 사이를 구별시켜 준다는 것이 유용하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그는 문학 전통의 모든 영역을 공격자였다. 문화 전쟁의 홍수 시대에 그는 가장 적이 많은 지휘자 역할을 했고 그의 비평은 무자비한 융단폭격이다. 그의 이런 방법론은 '통렬한 아이러니'인데 이것은 결국 이중 부정 내지 양자 부정일 수밖에 없다. 

롤랑 바르트 자서전 

[4] 그는 영화나 관광을 포함한 대중 소비 문화에까지도 언급을 하면서 상업성과 자본 증식의 대가는 진정한 에로티시즘의 상실을 초래했다고 보며 이제는 단지 하나의 스포츠와 오락만 남게 되었다고 꼬집는다. 

그는 라신(Racine) 연구에서 라신의 파토스 속에 숨긴 정치적 의도를 맹공격한다. 그의 연극 속에 주인공의 열정은 사랑이 아니라, 정욕적 상황에 있어서의 힘이라는 점을 지적하자, 라신의 비평의 대가 레이몽 피카르 (Raymond Picard)는 그와 격렬한 논쟁이 벌리게 된다. 
그뿐 아니라 롤랑 바르트는 20세기에 최대로 존경받는 랑송까지도 그의 비평의 대상에 포함시킨다. 그는 그들의 비평을 정치적이고 지적 보수주의이며 실증적 부르주아 이념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 역시 그(롤랑 바르트)의 신비평을 '악마의 손잡은 사악한 원흉'이라고 되받아 친다. 

바르트는 1960년 '작가의 죽음'을 선언하여 큰 반향을 일으킨다. 이 글에서 작가는 텍스트의 기원이고 의미의 근원이며 해석을 위한 유일한 권위를 가진다는 전통적인 견해를 거부했다. 그는 작가를 평가 절하하여 다음과 같이 꼬집어 말하고 있다. "작가란 그 시대의 재능 있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작가가 범하는 가장 큰 과오는 언어가 독자에게 정확하고 확실하게 진리 또는 사실로 알게 하는 가장 자연적이고 솔직한 매체라는 주장은 거짓말이라고 반박한다. 

그는 인류문화를 모두 기호체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언어를 단지 기호일 뿐이라고 본다 

[5] 그는 독자들이 저자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신들의 의미를 - 창출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독자들이 그렇게 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텍스트들은 항상 유동적이고 불안정하고 의심을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물론 이 점은 그러한 해석에서 벗어날 수 없는 과학적 내지 구조주의적 저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신비평에서는 텍스트의 통일성이 작가의 의도에 의해서가 아니라 작품 그 자체의 구조에 달려 있다고 믿었고, 인본주의적 내지는 인간주의적 개념을 추방하는데 급진적이었다. 동시에 그는 독자의 고유성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작가가 가진 모든 형이상학적 상태를 벗겨 버리고 사거리 골목으로 그 지위를 낮춘 다음 그곳에 인용과 반복, 모방과 지시 교차와 재교차의 무한한 보고를 올려놓는다. 그리하여 독자는 어느 방향으로든지 텍스트에 가담하는 데 자유롭게 해 주었다. 거기에 어떤 공식은 없다. 
그의 이런 충격적 선언은 그를 사람들이 논쟁을 좋아하는 인물, 독단론자, 이념적 인상주의자로 불리어지는 건 너무나 당연한지 모른다. 

1968년 '기호학 요강(Éléments de la sémiologie)'에서 그는 언어와 그의 메시지를 탈신화화하는 데 주력하여 근대 모든 작가를 그의 비평 언어에 끼어 넣었다. 그는 문헌연구에서 인류 문화를 모두 기호체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믿었다. 언어를 단지 기호일 뿐이라고 본 것이다. 

우리는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실재를 창조한다기보다는 언어가 오히려 우리를 위해 실재를 구성한다는 구조주의 언어 철학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더 나아가 기호학적 분석은 다시 언어로 무너져 버린다고 경고와 함께 현실로 완전히 침투하는 예술 즉 예술과 현실의 경계는 그 둘이 보편적인 모조품으로 전락하면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라고 봤다. 

바르트는 문학뿐만 아니라 패션, 레슬링, 스트립쇼, 스테이크와 감자튀김, 사진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회사까지 포함하여 문화적인 모든 것의 부호해독이 가능하다고 봤다. 

[6] 바르트는 문학뿐만 아니라 패션, 레슬링, 스트립쇼, 스테이크와 감자 튀김, 사진 그리고 심지어는 일본 회사까지 포함하여 문화적인 모든 것의 부호 해독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기호학 옹호자였다. 다시 말해 이미지, 몸짓, 음악적 음향으로 된 모든 것을 기호라고 주장은 전통적 작가로부터 엄청난 비판의 대상이 된다. 

기호학자에게 언어로부터의 출구는 없다, 그 분석을 수행하는 그의 소위 '메타 언어(méta-langage)' 개념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이 개념은 1차 언어를 넘어서는 2차 언어를 뜻하며 언표 되지 않은 언어의 무의식적 구성 요소를 분석하고 있다. 메
타 언어는 일상 언어의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고안한 구조주의와 같은 기술적인 언어이다. 언어를 통해서 의미를 창조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말하는 언어라고 한 비트겐슈타인은 이미 1920년대에 메타 언어로서의 논리적 한계에 도전 받기도 했다. 

특권이 부여된 또는 메타 언어적인 입장은 언어 자체에 의해 창조된 신기루이다. 구조주의와 기호학 그리고 의미의 수수께끼로부터의 해방을 약속한 다른 형태의 메타 언어들은 다시 언어로 되돌아올 뿐 이 역시 출구는 없다. 이 '초언어학(trans-linguistique)'은 사회 속에 기호들의 삶을 연구하는 학문 소시민적인 신화의 폭로와 함께 과학적으로 발전된 방법 접근이다. 

그는 점차 러시아 형식주의와도 담을 쌓으면서 또한 이런 구조주의와 조금씩 멀어 지면서, 더욱 더 원전 분석에 정열을 쏟는다. 1973년경에 출간된 '원문의 즐거움(Le plaisir du texte)'에서 이런 개념을 도입한다. 
'파편, 사실, 경구, 건드리기 및 치기, 찌르기, 팔꿈치로 치기, 거품 내기, 반응 떠보기, 불가피한 무작위의 계기와 쾌락을 잡아내기, 행복을 얻기'를 여러 항목으로 나누어 열망하는 임의적인 계획에서 심혈을 기울인다. 


프랑스혁명광장에 2013년까지 도심 속 새로운 산책로가 완공될 예정이란다. 그런데 파리가 이런 계획도시가 된 것은 아이러니다. 19세기 파리코뮌 이후에 나폴레옹 3세가 대통령이 되면서 대중시위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서 오스만남작을 시켜 만든 것이다. 이런 사회적 기호를 읽어내려면 롤랑 바르트의 공부도 필요하리라 

[7] 원전 연구에 더욱 기울어진 것은 1968년 학생 시위로 좌파 지식인들이 탈정치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정치적 행동의 무용성이 대두하면서부터이다. 
그는 발자크의 단편 '사라신(Sarrasine)' 를 561개의 '독서 단위(lexia)'로 나누어 분석하기도 했다 그의 5가지 약호 즉 '해석학적 분류, 의미론적 분류, 상징적(다의적) 분류, 서술적(행동적) 분류, 문화적 분류' 등을 통해 원문들을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우리의 언어가 우리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할 때, 우리는 삶의 상실과 고통 빠지게 된다는 말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다. 말의 논리와 성의 게임은 신화나 설화의 본질을 왜곡함을 지적하면서 특히 현대 사회에서 시라는 장르는 그 기생성으로 혹되게 비판받아야 마땅하다고 보았다. 

그의 문학 시기를 흔히 초기 '감탄(émerveillement) 시기’, 중기 '과학 (science)시기’, 말기 ‘텍스트(texte) 시기’로 나누기도 하는데 말기에 해당하는 이 시기에 그는 원전 연구에 깊이 빠진다. 
원전에서 얻어지는 '텍스트의 지적 쾌락(plaisir)’은 '단순한 즐거움 (jouissance)’과 구별된다. 사드, 푸르니에, 로욜라 문학에 대한 문학 비평은 신성 모독과 같은 효과를 낸다. "책은 의미를 창출하고 의미는 삶을 창출한다"라는 말은 독자에게 자기 방식으로 원전을 해석하는 가능성을 열어 준다. 원죄의 즐거움과 원문의 즐거움은 서로 통하는 점이 있다. 

이 사진을 보고 롤랑 바르트 방식으로 우리시대의 텍스트를 독해할 수 있을까 

[8] 나체의 미가 의복을 만나는 순간 성적 쾌감이 모아지듯이 텍스트의 효과는 주석이 없는 있는 그대로의 언어와 관련되어 비정통적이거나 부당한 어떤 것을 낳게 된다고 보았다.
그의 말기의 저서 '에스 제드(S/Z)'에서 레비-스트로스 부족 전체 문화 체계 속 파악처럼 독자는 저자의 의도를 무시한 채 자유롭게 텍스트 의미 형성하고 참여하며 텍스트의 절대적 근원과 그 의미의 존재를 부인한다. 

독자가 참여하는 텍스트를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번째 유형은 독자의 고유성을 인정하며 고정된 의미의 소비자로 보는 것과 두번째 유형은 작가성을 지닌 생산성으로 보는 것이다. 그는 독자를 고전적 의미의 단순한 소비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원적 의미의 적극적인 생산자로도 보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전위의 후위'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S/Z]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의 구조로 파악하는 구조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언어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단어 창출하는 데 거침이 없다. 지적 사회의 문화 전쟁 속에서 그는 더욱 무례하고 신랄하며 제멋 대로다. 원전의 개념은 문학의 개념으로 배로 확대하면서 그는 더욱 파란과 논란의 비평가가 된다. 그는 또다시 무정부주의자의 신, 보수주의자에겐 악마, 문화 애호가에겐 우상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http://www.lemonde.fr/election-presidentielle-2012/article/2012/04/21/la-presidentielle-sous-le-regard-amuse-ennuye-ou-severe-de-la-presse-etrangere_1689095_1471069.html#xtor=AL-32280258[사진르몽드] 

[9] 그는 모든 문학의 범주화를 거부하고 그의 시대 보다 앞서 치고 가면서 기상천외한 재치와 해박함으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현대 최고의 지성이다.
프랑스의 예술 사회학자 장 뒤비뇨(Jean Duvignaud)는 그를 이렇게 평하고 있다. "상징과 기호를 통해 자유의 감동과 미래의 감정들을 불러일으키면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폭넓은 경험을 얻으려는 실존력을 다루었다" 

신화에 의한 허위 환상에 의해 정지된 즐거움을 원점을 만나게 해 모든 문학의 본래적 의도와 쾌락을 되찾게 해주려는 그의 의도는 참으로 많은 파란과 혹평한 세평을 감수해야 했다. 그만큼 그는 현대 사회와 문학 비평에 많은 물음표를 던지 사람이다. 논쟁의 구심점임을 부정할 수 없다. 

어쨌든 롤랑 바르트는 글쓰기의 신화에서 벗어난 글쓰기의 0점에서 글쓰기의 근본적 반성과 함께 진정한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는 문학적 쾌락주의자였다. 화법의 한 형식이기도 한 모든 신화의 허구성과 모순성을 깨트리며 문학의 과학화와 정보화를 꾀한 최초의 인물로 21세기 문학과 문화의 새 출발과 가능성을 열어 준 사람 중 하나다.

그는
 금세기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진정한 비평 문학의 한 장르를 개척한 문학 논쟁의 최전선 전사요 특이한 기호 문학가였다. 그의 글은 문학 장르를 해체하고 새롭게 태어난 글쓰기의 실천가였다. 즉 그의 글은 그 자체가 시이기도 하고 소설이기도 하고 연극이기도 하고 수필이기도 하고 철학이기도 하고 비평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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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10916141318


[그의 저서] '글쓰기의 영도(Le Degré zéro de l'écriture, Paris 1953)' 외 

'텍스트의 쾌락(Le Plasir du texte, Paris 1973)' 책 표지 

'신화론(Mythologies, Paris 1957)', '기호학원론(Éléments de sémiology Communications 4,1964)', '유행의 체계(Systéme de la mode, Paris 1967), '기호의 제국(L'Empire des signes, Genf 1970)', '텍스트의 쾌락(Le Plasir du texte, Paris 1973)',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R. B. par. R. B., Paris 1975) '사랑의 단상(Fragments d'un discours amoureux, Paris 1977)', '강의(Leçon, Paris 1978)',  '밝은 방:사진에 대한 노트(La Chambre claire: Note sur la photographie, Paris 1980)', '목소리의 결정(Le Grain le la voix. Entretiens 1962-1980, Paris 1981)', '비평에세이(Essais critiques III. L'Obvie et l'obtus', Paris 1982)', '비평에세이(Essais critiques IV. Le Bruissement de la langue, Paris 1984)', '기호학의 모험(L'Adventure sémilogique, Paris 1985)', '작은 사건들(Incidents, Paris 1987)', '전집(Œuvres complétes, Paris 1993-1995 )' 등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