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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자-사상가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와 '다르위시(M. Darwish)'

1부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년 4월 9일~1867년 8월 31일)

현대에 보들레르를 공부하는 사람은 원시인 - 어느 교수. 보들레르 주장은 우리 모두가 원시인이 되자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최고의 현대시인이 되다. "죽음을 제외하면 모든 것은 다 허무다(Tout est Néant, excepté la Mort)" -보들레르. 이 정도의 정신무장이 되어야 창조적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현대작가가 그린 보들레르 초상화

샤를 보들레르(1821~1867)가 살던 당대 낭만파 시인들은 ‘거창한 독백’을 통해 불안을 사치스럽게 발산했다. 낭만주의 시대의 한복판에서 살아온 보들레르는, 그러나 그들과 달리 ‘마음의 참회소’를 마련하고 인간 내면의 세계를 탐험했다.

위선의 독자여, 내 同類여, 내 형제여! - 현대시 운동의 근원이 된, 새로운 문학사조의 출발이 된 샤를 보들레르. 그의 시집 <악의 꽃> 서시인 '독자에게'만 이해해도 그의 시 반은 먹고 들어간다

독자에게 -번역 전 서울대 金鵬九 교수

어리석음, 과오, 죄악, 탐욕이
우리 정신을 차지하고 육신 괴롭히며,
또한 거지들이 몸에 이·벼룩 기르듯이,

우리의 알뜰한 회한을 키우도다.
우리 죄악들 끈질기고 참회는 무른고야.
고해의 값을 듬뿍 치루어 받고는,
치사스런 눈물로 모든 오점 씻어내린 줄 알고,
좋아라 흙탕길로 되돌아오는구나.

홀린 우리 정신을 악의 베갯머리에서
오래오래 흔들어 재우는 건 거대한 〈악마〉,
그러면 우리 의지의 으리으리한 금속도
그 해박한 연금사에 걸려 몽땅 증발하는구나.
우릴 조종하는 끄나풀을 쥔 것은 〈악마〉인지고!

지겨운 물건에서도 우리는 입맛을 느끼고,
날마다 한걸음씩 악취 풍기는 어둠을 가로질러
혐오도 없이 〈지옥〉으로 내려가는구나.
(중략)
우리 뇌수 속엔 한 무리의 〈마귀〉떼가
백만의 회충인 양 와글와글 엉겨 탕진하니,
숨 들이키면 〈죽음〉이 폐(肺) 속으로
보이지 않는 강물처럼 콸콸 흘러내린다.
폭행, 독약, 비수, 방화 따위가 아직
그 멋진 그림으로 우리 가소·가련한

운명의 용렬한 화포(畵布)*를 수놓지 않았음은
오호라! 우리 넋이 그만큼 담대치 못하기 때문.
허나 승냥이, 표범, 암사냥개,
원숭이, 독섬섬이, 독수리, 뱀 따위
우리들의 악덕의 더러운 동물원에서,
짖어대고, 포효하고, 으르릉 대고 기어가는 괴물들,
그중에도 더욱 추악 간사하고 치사한 놈이 있어!

놈은 큰 몸짓도 고함도 없지만,
기꺼이 대지를 부숴 조각을 내고
하품하며 세계를 집어삼킬 것이니,
그놈이 바로 〈권태〉! - 뜻 않은 눈물 고인
눈으로, 놈은 담뱃대 물고 교수대를 꿈꾸지.

그대는 알리, 독자여, 이 까다로운 괴물을
위선의 독자여, 내 동류(同類)여, 내 형제여!

한국 현대시는 너무 낡았다.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과 사이버네틱스를 능가하면서 전율과 파동과 공명을 주는 전혀 새로운 시가 나와야 한다. 시각언어를 뛰어넘는 시학언어가 나와야 한다 보들레르는 200년 전 유럽에서 <악의 시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시를 창안하여 유럽문학계를 뒤집어 놓았고 아직도 그보다 더 새로운 시가 없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지금 한국시단에도 이런 시인이 필요하다. 보들레르 이후 프랑스에서는 아폴리네르가 그런 시도를 한 시인이기도 하다. 그가 피카소와 절친인 것을 바로 그런 면에서 서로 상통했기 때문이다. 한국시단은 정체되어 있다. 전위적 실험정신이 부족하다 실패를 두려워하면 안 된다 정지용 시를 21세기 비주얼 언어로 노래하는 시가 필요하다. <아래는 100년전 실험시 아폴리네르의 분수>

발터 벤야민이 보들레르에 열광한 것은 바로 그가 경계를 없애는 예술가였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의 복제술을 예술의 도구로 벤야민이 높게 평가한 것은 보들레르의 관점이 아닌가. 선과 악, 미와 추 그리고 문명과 야만의 경계가 없는 보들레르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리라. 미의 기준에서도 동서의 구별이 없다. 미인의 기준도 마찬가지다. 보들레르의 비너스는 에피오피아 출신 흑인여성이었다. 이런 사고가 바로 현대적 시인이 되는 조건이다.

보들레르가 서구에서 현대시의 창시자가 된 건 2가지 때문 1) 서구의 문명은 일찍이 야만문명으로 봤다는 것이고 랭보가 이걸 따라했고 20세기에서는 구조적 인류학자 레비스크로스도 같은 관점이다. 그래서 (서구로부터) 저주 받은 시인이라고 불리다. 2) 서구문명의 권태와 허무 그리고 덧없음 속에서도 새로운 아름다움과 영원성을 발굴했기 때문이다.

'고통의 연금술(아래 시)' 대학입학자격시험 '기출'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시는 불교에서 말하는 '고집멸도'와 통한다. 아시아가 얼마나 앞서 있나? 이걸 최고 단순화시키면 "고통이 역설적으로 인간을 구원시킨다"라는 메시지.

삶과 죽음의 공포에 찢긴 시인 보들레르

아래 짧은 시는 삶과 죽음 사이의 비장한 고통을 표현했다. 현대 시인으로서 더이상 숭고하고 이상적인 작품을 잉태하지 못하는 처지를 뼈저리게 슬퍼한다. 그런 한계점이 오히려 그에게 새로운 미학과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게 한다. 창조적인 것은 만들어내는 것은 그의 고민이다. 접근 불가능한 시적 분야의 탐구과 도전은 역으로 이럴 때 나오는 것이다.

Alchimie de la douleur -Charles BAUDELAIRE 1821~1867

L'un t'éclaire avec son ardeur,
L'autre en toi met son deuil, Nature !

Ce qui dit à l'un : Sépulture !
Dit à l'autre : Vie et splendeur !
Hermès inconnu qui m'assistes

Et qui toujours m'intimidas,
Tu me rends l'égal de Midas,
Le plus triste des alchimistes ;

Par toi je change l'or en fer
Et le paradis en enfer ;
Dans le suaire des nuages

Je découvre un cadavre cher,
Et sur les célestes rivages
Je bâtis de grands sarcophages.

금수저 갑부의 아들인 보들레르 길에다 돈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반자본주의자. 그래서 집안에서 '금치산자' 판결을 받았다. 상속 받은 유산 중 2년 동안 10만 프랑을 다 써버리자. 집안에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면 그 돈을 어디에 썼냐. 보들레르는 흑인 창녀(댄서)와 함께 최고급 호텔에서 방탕한 시간을 보내면 돈을 낭비했다. 호화스러운 삶과 사치 쇼핑 등 과소비로 돈을 마구 하늘에 뿌리고 다녔다.

“내가 나 자신을 이 세상과 그 종교로부터 이방인처럼 느끼고 있음을 느끼게 하고 싶다.” -보들레르. 보들레르의 이방인이라는 시에서 이런 구절이 나온다 "당신은 황금을 좋아해? - 당신이 신을 증오하듯 나는 황금을 증오해" 두 문장은 같은 메시지다. 니체의 <신의 죽음>을 보들레르는 미리 선언한 셈이다.

보들레르 시대는 나폴레옹 집권 후에 공립학교(공교육)를 많이 세웠는데 그래서 프랑스 사회도 학력이 높아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요즘 우리도 정규직 대기업 직원이 되기가 힘들듯 당시 학교를 나와도 취업하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보헤미안 지식인이 등장한다. 보들레르는 그런 보헤미안의 헤드 격이다. 보들레르는 최초의 도시의 시인으로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다니는 한량이었다. 고급 브랜드 옷을 구입하는데 천문학적인 돈을 쓰다. 얼마 지나지 않고 거지가 되다. 그런 가운데 이들은 자기들만의 클럽을 만들어와 시와 예술을 논하며 남이 만든 일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일거리를 만들어 나가며 세상을 떠돌았다 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요즘으로 말하면 고학력 프리랜서와 유사하다. 당시 이런 지식인 무리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가 바로 보들레르다.

서양은 스피노자, 니체, 샤를 보들레르를 알면 답이 보인다. 동양은 공자, 노자와 장자, 백남준을 알면 답이 보인다

홍준성 변호사 서구의 최고시인인 '보들레르'에게 영감을 준 최고의 뮤즈는 백인 비너스가 아니라 에티오피아 혼혈아였던 '잔 뒤발'이기에 보들레르가 서구에서도 초기에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배척을 당한 것인가? 그런 면에서 보들레르는 백남준처럼 경계를 없앤 사람의 선구자가 아닌가.

<황현산교수는 보들레르를 우리들에게 가장 쉽게 설명하는 분이다. 불행하게도 최근에 작고하셨다. 보들레르 시는 덧없음[바니타스] 속에 영원함(시 '스쳐가는 여인'에 나옴)을, 지옥 속에서 천국과 열락[주이상스]과 이상향(시 '여행에의 초대'에 나옴)을 염원하며 노래하다>

그가 현대시의 아버지라 보는 보들레르 시의 특징은 무엇일까. 보들레르 시의 새로움은 덧없는 현대적 삶의 일상성에서 고전주의 예술의 불멸과 영원성을 발견하는 데에 있다. 도시의 거리에서 우연히 스쳐 지나간 여성에게서 “얼을 빼는 감미로움과 애를 태우는 쾌락을” 맛보며 “오 내가 사랑했었을 그대, 오 그것을 알고 있던 그대여!”라 탄식하는 시 ‘지나가는 여인에게’에 그런 면모가 잘 나타나 있다.

금수저 갑부의 아들인 보들레르 길에다 돈을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반자본주의자. 그래서 집안에서 '금치산자' 판결을 받았다. 상속 받은 유산 중 2년 동안 10만 프랑을 다 써버리자. 집안에서 그런 조치를 취한 것이다. 그러면 그 돈을 어디에 썼냐. 보들레르는 흑인 창녀(댄서)와 함께 최고급 호텔에서 방탕한 시간을 보내면 돈을 낭비했다. 호화스러운 삶과 사치 쇼핑 등 과소비로 돈을 마구 하늘에 뿌리고 다녔다.

피에르 보들레르(Charles Pierre Baudelaire, 1821년 4월 9일 ~ 1867년 8월 31일)는 프랑스의 비평가이자 시인이다.

- 교응 (Correspondances)
자연은 살아 있는 기둥들이
때때로 모호한 말들을 새어 보내는 사원.
사람들은 친근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 보는
상징의 숲을 가로질러 그곳으로 들어간다.

어둠처럼 빛처럼 드넓으며
컴컴하고도 심원한 통일 속에서
긴 메아리 멀리서 섞이어 들듯
향과 색과 소리가 서로 화답하네.

어린 아이들의 살처럼 싱그럽고
오보에처럼 달콤하고, 초원처럼 푸르른 향내들,
또 그밖에도 썩고 풍만하고 의기양양한 것들.
정신과 향기의 교통을 노래하는

용연향, 사향, 안식향, 훈향처럼
끝없는 사물들의 확산을 가진다.

- 취해라 (Enivrez-vous)
언제나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것은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이다. 그대의 어깨를 짓부수고 땅으로 그대 몸을 기울게 하는 저 '시간'의 무서운 짐을 느끼지 않기 위하여, 쉴새 없이 취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술이건 시건 또는 덕이건, 무엇에고 그대 좋도록. 그러나 다만 취하여라.그리고 때때로, 궁전의 섬돌 위에서, 도랑 가의 푸른 풀 위에서, 그대의 밤의 침울한 고독 속에서, 그대가 잠을 깨고, 취기가 벌써 줄어지고 사라져 가거들랑, 물어보라, 바람에, 물결에, 별에, 새에, 시계에, 사라져 가는 모든 것에, 울부짖는 모든 것에, 흘러가는 모든 것에, 노래하는 모든 것에, 말하는 모든 것에, 물어보라, 지금은 몇 시인가 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그대에게 대답하리, "지금은 취할 시간! '시간'의 학대 받는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취하여라! 술이건, 시건, 또는 덕이건, 무엇에고 그대 좋도록."

“보들레르에게서, 말라르메는 순수라는 개념을 배웠고, 베를렌은 감정을 어떻게 언어로 표현하는가를 배웠으며, 랭보는 보들레르의 감각 사용법, 감각의 깊이를 자기 전공 분야로 택했다”. 말라르메가 추구한 순수란 무엇인가. 그는 말라르메의 시학을 가리켜 ‘빼기의 시학’이라 표현한다. “이것도 없애고, 저것도 없애고, 다 없애고 나니까 결국은 순수만 남았”다는 것. 말라르메가 사랑하는 여성을 위해 쓴 연애시 ‘내 낡은 책들이 파포스의 이름 위에’ 마지막 구절 “내가 더 오랫동안 어쩌면 더 열렬히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 옛날 아마존 여인의 타 버린 그 젖가슴”을 두고 황현산은 “없는 가슴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가슴을 대신할 수 있다는” 태도로는 연애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으로 청중의 웃음을 자아낸다

<보들레르, 돈보다 자유 Vagabond> 돈을 위해서 자신의 에너지를 다 소비해야 하는 취업을 거부한 최초로 보헤미언, 프리랜서의 창시자, 안정보다는 자유를 추구하다. 최고의 지성이지만 당시 그를 받아줄 그 어떤 기업도 없었다. 반자본주의자, 최초의 반항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는 독립하기 위해서 내가 가진 지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려고 자본화되는 도시를 목적지 없이 방황하며 산책자(flaneur), 돈을 위해 몸을 파는 화려한 파리의 창녀처럼 사랑의 순교자가 되어 가장 자기 파괴적인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현대문학의 잉태시킨 그는 기존의 유럽문학을 완벽하게 전복시키고 해체한 모던 시인이었다. 그는 최초로 서양문학에 악의 미학을 도입해 서양시의 혁명을 일으키다. 전율과 해체의 시학을 통해서 서양의 기존사고를 완벽하게 뒤집어놓다. 보들레르의 제자 랭보도 보들레르처럼 한번도 취업을 한 적 없다. 그는 거의 먹지를 못해 배가 고파서 누워서 쓴 시도 많다. 그는 말했다. "시란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던지는 폭탄이다".

<보들레르 배가본드(Vagabond) 창시자 혹은 플라뇌르(Flaneur)의 창시자>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보들레르가 당시 재벌급 자산가의 상속자였기 때문이다 [1] 방랑자 Vagabond : A person who has no home and usually no job, and who travels from place to place [2] 플라뇌르 Flaneur : 목적지 없이 도시를 이러 저리 돌아다니는 산책자. 도시문명의 빛과 어두움을 관찰하는 시대의 지성인 Flaneur: Someone who walks around not doing anything in particular but watching people and society * 보들레르, 젊어서 꽃미남이었지만 말기에는 거의 폐인처럼 보였다. *보들레르의 수제자가 발터 벤야민이다.

 

‘밤의 선생’이 베푼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

2016년 초 ‘시민행성’에서 한 황현산 연속 강의 책으로“상징주의는 현실 감각 통해 다른 세계를 보려는 것”

www.hani.co.kr

[한국에서 사용하는 댄디즘은 보들레르가 말하는 댄디즘과는 상반된다] 영국에서 발생한 가벼운 치장으로서의 댄디즘을 보들레르는 예술가의 자존감을 세우는 새로운 미학의 한 방편으로 재활용하다. 보들레르의 댄디즘을 재해석해 귀족과 시민의 경계를 만드는 지점과 그 장벽을 해체시키고 없애는데 활용하였다 대량생산방식인 자본주의가 당시 크게 대두되면서 보들레르는 인간을 모두 소비자로 만드는 스펙터글의 세상에서 예술가(혹은 시민)가 진정으로 크리에이터가 되는 숨구멍을 열어준 셈이다. 발터 벤야민이 이런 관점을 창조적으로 재맥락화하면서 그는 현대문학과 미술비평의 플랫폼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댄디즘은 반자본주의적이다.

'추'라고 쓰고, '미'라고 읽는다. '추'는 '미'의 부정이 아니고 미의 '다른 얼굴'이다. -움베르토 에코. 이런 미학의 원조는 '보들레르'다.

내 사라진 오마이 블로그에 올린 '보들레르 소론' 다른 사이트에 옮겨져 살아있네요. 거기서 사진을 건져오다. "Le beau est toujours bizzare" -Baudelaire 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엽기적이다 보들레르 그는 언어의 테러리스트였다. 그래서 그의 스승 위고는 그가 시에서 "새로운 전율"을 창조했다고 극찬하다. 또 보들레르는 이런 말도 했다. 시란 무목적적이다(La poesie n'a pas d'autre but qu'elle-meme) 그리고 또 이런 말을 했다. "아름다움이란 행복의 약속 그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Beauty is nothing else but a promise of happiness)"

보들레르와 발터 벤야민과 백남준

저주받은 시인 보들레르 그의 제자 발터 벤야민 그리고 백남준 // 이들의 공통어는 바로 조응과 융합과 소통(correspondence convergence and communication)? 보들레르는 비도덕성, 발터 벤야민은 비의성(중요개념의 공유), 백남준 비의도성

철학자로서의 보들레르, 시로 철학을 한다. 보들레르 왈, "사람들이 날 철학자로 보지 않은 것 같다(Il paraît que je n’ai pas du tout l’air d’un philosophe)" 보들레르 연구가 발터 벤야민 그는 보들레르를 나쁜 철학자 그러나 좋은 이론가였다 그러나 그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점은 명상적이라는 것이다 Walter Benjamin confirme plus tard cette impression : « Baudelaire était un mauvais philosophe, un bon théoricien, mais c’est seulement en tant que méditatif qu’il était incomparable. » / 예술이 철학적으로 더 명확해지려고 하면 할수록 더 타락해야 하고 더 천진한 언어세계를 구가해야 한다. 그리고 예술이 도덕적 가르침에서 멀어져야 하고 더 무심하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 Plus l’art voudra être philosophiquement clair, plus il se dégradera et remontera vers l’hiéroglyphe enfantin ; plus au contraire l’art se détachera de l’enseignement et plus il montera vers la beauté pure et désintéressée.

조재룡 아케이드 프로젝트 2014–2020 비평 일기 *2021년 8월 10일 발간“시인이 될 것 심지어 산문으로도”(보들레르)시는 말을 다급하게 말아 쥐고 속절없이 무너질 때 빛난다. 말의 힘을 부리는 능력에서 한발 양보하면 시는 그것으로 끝이다. 꽃피울 수 없는 바위 위에서 전개하는 이 싸움은, 결구를 예견할 수 없으며, 삶을 정화하는 데는 실패하지만, 우리를 빈손으로 살게 하지 않는다. 난해하다고 알려져 푸대접을 받았던 시의 낱말들을 헤아리고, 문장의 조직과 움직임을 움켜쥐려 몇 시간 골몰히 파다 보면, 결국 시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나, 비평가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때 이상한 환희가 행간에서 솟아오른다. 길은 항상 막다른 골목에서 열린다.

보들레르 데드 마스크

블루+레드=보라색(내가 좋아하는 색). 나는 차라리 가지색이 좋다. 맑스+프로이트+니체=보들레르(내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시인) 근데 멋진 보라색도 너무 난해하고 보들레르 의 상징시도 너무 난해하다 백남준 왈, "황색재앙은 바로 나다" 그래서 황색 혹은 황토색이다.

보들레르, 상징의 시학, 십자가의 길을 가며 저주와 모욕을 받지만 그는 바람과 노닐며 구름과 이야기 한다. 무엇보다 자연과의 교감의 시인이다. 세속적 먼지를 털고 시의 세계로 비약할 때 그는 힘 안 들이고 꽃들과 말 없는 사물의 말귀를 알아듣고 깨닫는 행복을 누린다 -보들레르 연구자 김붕구 교수

시는 말을 다급하게 말아 쥐고 속절없이 무너질 때 빛난다. 말의 힘을 부리는 능력에서 한발 양보하면 시는 그것으로 끝이다. 꽃피울 수 없는 바위 위에서 전개하는 이 싸움은, 결구를 예견할 수 없으며, 삶을 정화하는 데는 실패하지만, 우리를 빈손으로 살게 하지 않는다. 난해하다고 알려져 푸대접을 받았던 시의 낱말들을 헤아리고, 문장의 조직과 움직임을 움켜쥐려 몇 시간 골몰히 파다 보면, 결국 시에서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나, 비평가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때 이상한 환희가 행간에서 솟아오른다. 길은 항상 막다른 골목에서 열린다.

<보들레르는 심미적 실존주의의 창시자다> '보들레르'가 태어나고 23년 후에 '니체'가 태어나다. 보들레르는 태어나고 84년 후에 '사르트르'가 태어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들레르는 사르트르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사르트르는 겨우 '장 주네(Jean Genet, 1970년부터 팔레스타인 주권 운동에 참여하다. 장 주네와 자코메티는 절친이었다)'를 발견하고 그를 높이 찬양했는데(사르트르는 1952년 '聖 주네, 배우와 순교자'라는 책을 쓰다) 사실을 84년 전에 보들레르가 바로 장 주네였다. 그리고 사르트르는 보들레르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보들레르>라는 책을 쓰기도 했다.

[파스칼과 보들레르] <보들레르, 파스칼이 설파한 심연의 세계에서 영감 받고 아래 시를 쓰다> 보들레르와 원효는 통한다. 시대의 불문율인 타락의 시(보들레르는 시인을 창녀에 비유하다)와 타락의 도(파계)를 통해 인류와 우주를 구원하려고 했다. 나의 대학원 논문 제목 너무 난해해 미완성으로 끝나다. On ne sait où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Pascal avait son gouffre, avec lui se mouvant.
- Hélas ! tout est abîme, - action, désir, rêve,
Parole ! Et sur mon poil qui tout droit se relève
Maintes fois de la Peur je sens passer le vent.
En haut, en bas, partout, la profondeur, la grève,
Le silence, l'espace affreux et captivant...
Sur le fond de mes nuits Dieu de son doigt savant
Dessine un cauchemar multiforme et sans trêve.
J'ai peur du sommeil comme on a peur d'un grand trou,
Tout plein de vague horreur, menant on ne sait où ;
Je ne vois qu'infini par toutes les fenêtres,
Et mon esprit, toujours du vertige hanté,
Jalouse du néant l'insensibilité.
Ah ! ne jamais sortir des Nombres et des Etres !

지나가는 여인에게 -샤를 보들레르
https://www.youtube.com/watch?v=LTxZUSJ-GL8 

거리는 내 주위에서 귀가 멍멍하게 아우성치고 있었다.
갖춘 상복, 장중한 고통에 싸여, 후리후리하고 날씬한
여인이 지나갔다, 화사한 한 쪽 손으로

꽃무늬 주름장식 치맛자락을 살풋 들어 흔들며,
날렵하고 의젓하게, 조각 같은 그 다리로.
나는 마셨다, 얼빠진 사람처럼 경련하며,

태풍이 싹트는 창백한 하늘, 그녀의 눈에서,
얼을 빼는 감미로움과 애를 태우는 쾌락을.
한 줄기 번갯불... 그리고는 어둠! -그 눈길로 홀연
나를 되살렸던, 종적 없는 미인이여,

영원에서 밖에는 나는 그대를 다시 보지 못하련가?
저 세상에서, 아득히 먼! 너무 늦게! 아마도 영영!
그대 사라진 곳 내 모르고, 내 가는 곳 그대 알지 못하기에,
오 내가 사랑했었을 그대, 오 그것을 알고 있던 그대여

*찰나의 순간에 포착한 사랑이 영원한 연가가 되다. 19세기 모던 도시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특징이다. 이것은 5분짜리 사랑이다 그러나 사랑은 사랑이다. 지금도 또 다르다.

[보들레르와 하버마스] 독일의 세계적 철학자 '하버마스'의 보들레르 해석은 다음과 같다. “진정한 작품은 철저하게 생성의 순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진정한 작품은 현재성 안에서 소진되는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진부한 통속성의 물결을 멈추게 할 수 있고, 정상성을 타파할 수 있으며, 영원한 것이 현재적인 것과 일시적으로 결합하는 그 순간에 아름다움을 향한 불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의 텍스트는 인류 전체의 이성적이고도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행위가 얼마나 공허하고 허위적인지를 아이러니컬하게 암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보들레르가 공격하였던 시민적(부르주아적) 세계는 조화로운 현실이나 이상을 추구하였던 세계였다. 그들이 내세운 형제애, 인간성, 도덕성 같은 서구 계몽주의적 이념은 그러나 그들이 속해 있는 현실과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타자를 억압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하였으며, 따라서 부르주아 세계의 이념들은 보들레르에게 이미 추상적이고도 허위적인 환상으로 비추어졌다. 이러한 부르주아적 도덕의 허위에 저항하기 위해 보들레르는 갑작스러운 단절의 상상력, 즉 독자의 예상과 기대를 깨는 아이러니컬한 방식을 들이댔던 것이다. 그렇다면, 보들레르 문학의 도발성은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그것은 기존의 도덕적인 기대감을 파괴하는 곳에서, 또한 그 어떤 새로운 도덕이나 긍정의 이념을 설파하지 않는 곳에 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는 알레고리보다는 ‘사악한 아이러니’가 작동되고 있는 산문시집 『파리의 우울』이다. 이 산문시집에서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아이러니는 서술된 것과 서술하는 자 사이에 놓여 있는 차이 내지는 간극을 뜻하며, 따라서 아이러니컬한 텍스트와 관련하여 독자는 씌어진 내용을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여기서 최근 자주 분석되고 있는 「불쾌한 유리장수 Le Mauvais Vitrier」 「가난뱅이들의 눈 Les Yeux des Pauvres」 「위조화폐La Fausse monnaie」 등을 살펴봄으로써 보들레르 문학의 ‘사악한 아이러니’에 가까이 가보자.

악의 꽃 시집 표지

<Les Fleurs du Mal> est un recueil de poésie publié pour la première fois en 1857 par Charles Baudelaire. Son titre antithétique (les fleurs sont-lles mauvaises ?) annoncent la volonté provocatrice de son auteur, qui verra certains de ses poèmes censurées pour la première publication. Il y décrit son tiraillement indépassable entre le spleen et l'Idéal, entre son désespoir et sa volonté de sublime. <악의 꽃> 시인 자신이기도 하고, 파리라는 도시(돈이 없으면 여자를 구할 수 없는 도시)이기도 하고, 거리의 창녀이기도 하고, 불교로 말하면 흙탕물에서 피어나는 연꽃이기도 하다. 도시적 삶의 상징어로 물질숭배주의에 빠져 자본을 구걸하기 위해 노예살이(노동의 소이를 감수하면서까지 직장 생활을) 해야만하는 현대인이기도 하다.

백남준, 보들레르의 소리 색채 음향(공감각) 미학을 미디어아트에 담다 <진중권이 본 백남준 미디어 아트론 요약>
01. 비디아와 비디올로지(vediology)는 백남준의 예술적 신앙고백. 비디아(videa)는 플라톤의 이데아(idea)에서 유래하다. 02. 비디올로지(vediology)는 도상학(iconology)의 전복이라고 할 수 있다. 03. 구텐베르크 종이시대의 종언을 선언하다. 이제 더 이상 역사는 없으며 영상물과 비디오물이 있을 뿐이다. 04. 백남준은 낮은 해상도와 노이즈로 승부를 걸다. 05. TV는 모든 기술적 오작동을 통해 TV아트가 되었다(인터넷 되다) 06.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맥루언의 명제를 실천하다. 07. 랜덤 액세스*(비정형-비연속-비결정주의 개척)-1963 선형성의 파괴, 소음의 도입, 관객의 참여 3요소를 담고 있다. 08. 올드미디어의 아방가르드는 뉴미디어의 개척자이다. 09. 보들레르, 소리 색채 음향(공감각) 미학을 백남준, 미디어아트에 담다 10. 백남준은 일단 알수 없는 길을 가는 가운데 작품이 완성된다. 창조적 우연성 "도(道 Tao)는 회로이다"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

<1963년 백남준 첫 전시> 보들레르(빛, 소리, 향기 등등 모든 사물의 조응 [correspondance 이 말은 이우환도 많이 애용하다] 을 중시한)의 영향을 받은 백남준은 오감의 예술을 시도했죠. 요즘 말로 다원예술을 말한다.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선불교식 융합적 개념의 영향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기서는 더 나아가 아래에서 보듯 입으로 음악을 듣는 예술 그런데 여기서 백남준이 입에 물고 있는 물체는 콘돔이라고 설명했는데 그게 아니고 사실은 모조 페니스인데 실수. 아주 쉽게 말하면 듣는 음악이 아니라 보는 음악이다. 입으로 맛보는 음악이죠. 기존의 음악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 이것은 백남준이 구음악(alt musik)에서 신음악(neue musik)을 실험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보들레르 탄생 200주년 학술대회 제목

보들레르 탄생 200주년 학술대회 제목. 9월9일부터 11월 11일까지 주최: 유럽인문아카데미

<퍼오기> 푸키에 탱빌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재판 공소장에서 그녀를 "프랑스 국민들의 천벌이자 흡혈귀"라고 표현했다. 흔히 지배계층의 미화, 질병, 섹슈얼리즘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흡혈귀는 살리카법전의 시대인지라 지롱드와 자코뱅 할 것 없이 여성의 참정권을 견제하던 때에 존재 자체만으로도 상징성을 가지고 있고, 오스트리아 계집이라며 온갖 음담패설과 정치적 포르노그래피의 대상이 되던 베르사유의 장미만큼 이 단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흡혈귀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가장 사랑하는 시인인 보들레르(고전 소설 장르를 가장 좋아하면서 최애 책은 시집인 아이러니.)의 팜므파탈이자 그가 검은 비너스라 부른 잔느 뒤발이다. 그 당시 신여성들과 빅토리아시대 남성들 사이에서 나타난 갈등의 상징이자 운명의 여인, 악녀로 해석되며 흡혈귀에도 비유되던 팜므파탈. 그 망나니 보들레르가 도지코인에 올인한 염따마냥 재산을 바치면서도 브레이크를 걸 수 없게 만들었던, 보들레르 인생의 주축이자 『악의 꽃』을 쓰는 데 큰 영향을 준 전형적인 팜므파탈인 그녀는 후대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흡혈귀 그 자체로 보인다. 남들은 보들레르의 멍청함을 한탄하지만, 그녀가 없었다면 『악의 꽃』도 없었을 테니 나는 긍정적으로 본다. 잔느 뒤발은 능력이 좋았던 것이고, 보들레르는 그런 삶을 사는 와중에도 상남자에 낭만 있는 순정파였다고 하지 뭐.

19세기 초 낭만주의 작품의 시대. 현대 시, 상징주의의 시조이면서 퇴폐의 시인으로 불린 보들레르. 퇴폐란 도덕, 풍속, 문화 따위가 어지러워짐을 일컫는데, 그 시절 격변의 프랑스(롤랑 부인의 "자유여, 너의 이름 아래 얼마나 많은 범죄가 저질러졌는가"는 한 문장으로 당시의 프랑스가 다 표현되는 것 같아 좋아하는 문장이다.)와 보들레르에게 퇴폐보다 찰떡인 단어가 있을까. 내가 그를 가장 사랑하는 이유는 인간이 온갖 위선을 떨며 모르는 척하는 본연의 모습, 즉, 악덕, 죄악감, 육체적 욕망 등을 외설적이면서도 서정적으로 묘사하고, 자신의 감정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것을 거리낌 없이, 세련되게, 낭만적으로 표현하는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특히나 『악의 꽃』에 수록된 ‘흡혈귀’의 경우 내가 가장 깊은 나락에 빠졌을 때의 감정을 보들레르답게 표현한 것 같아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다.

『악의 꽃』 국내 번역판은 출판사별로 모두 소장하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민음사에서 나온 김붕구 님의 번역(완역이 아닌 게 너무나도 아쉽지만, 김붕구 님의 ‘흡혈귀’ 번역은 진짜 기가 막히다 못해 자지러질 지경.)을 가장 좋아한다. 그렇다고 다른 번역들이 별로라는 것은 절대 아니고. 번역하기가 워낙 어렵기로 소문난 시집인지라, 김붕구 님의 번역이 내가 원하는 보들레르스러운 분위기를 가장 잘 표현했다고 느끼기 때문. 아무튼 보들레르 같은 인생을 살기를 원하진 않지만, 분명 그의 작품은 내 인생에서 영원불멸로 남을 것이며, 마리 앙투아네트든 잔느 뒤발이든 결국 둘 다 매우 아름답고 예뻤기에, 나도 예쁜 여자친구 사귀고 싶다.

p. s. 며칠 전 유일한 완역본(내가 알기론 국내에서 『악의 꽃』 완역은 이 책이 유일하다.)인 문학과 지성사 윤영애 님의 번역본이 리커버 디자인으로 나왔다고 한다. 사진 찍기 전에 나왔으면 좋았을걸...... 아무튼 당장 사러 가야겠다. 『악의 꽃』 하나 더 추가. <그림: The Vampire's Kiss - Max Ernst (1934)> -Leo Lee

이번 가을 한 달에 한번 1. 백남준과 보들레르(9월) 2. 백남준과 보이스(10월) 3. 백남준과 샬럿 무어먼(11월) 4. 백남준과 맑스 혹은 쇤베르크(12월) 강좌를 열면 어떨까 싶다. 그런데 모두 넘기 힘든 거물 예술가 혹은 철학자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보들레르와 맑스는, 기술 복제 시대의 원형으로 간주해도 될 만한 제 2 제정기의 파리를 바라보면서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대한 암울한 전망, 그리고 "역사가 나쁜 편에 의해 진보한다"는 데에 대한 불길한 믿음을 공유한다. 먼저 음모와 비밀, 배신으로 일그러지는 의회정치의 타락한 말싸움과 보나파르트의 기만적인 언술은 가령 보들레르의 <교감>이라는 시에서는 말이 혼동되어 나타나는 "상징의 숲"에서 본래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한 말들을 힘겹게 연결하려는 교감의 시학을 통한 언어의 저항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맑스가 "이전의 혁명들은 자기 자신의 내용에 눈을 감아 버리기 위하여 지나가 버린 세계사의 추억을 필요로 하였다. 19세기 혁명은 그 자체의 독특한 내용을 얻기 위하여 죽은 자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시신을 묻어버리도록 하여야만 한다. 과거의 혁명에서는 형식이 내용을 압도하였다. 19세기 혁명에서는 내용이 형식을 압도한다"고 말하면서 부르주아의 혁명과 프롤레타리아의 혁명을 대비시킬 때, 보들레르는 부르주아적 시학의 미적 규범에 대항하여 추와 악을 표출하는 '히스테리컬한 숭고'로 맞선다. 마찬가지로 산업사회의 뒤돌아 볼 줄 모르는 진보와 지나친 낙관주의에서 보들레르는 우울한 파국의 징후를 읽어낸다. 벤야민의 말처럼, "진보의 개념은 카타스트로페(파국)의 이념 속에 자리잡고 있다." 벤야민은 대중에게 물질적 현실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믿음을 약속하려 한 것처럼 보였던 기술적 가능성들이 지배 체제의 합리적 유지를 위해 대중을 조작하는 도구적 이성으로 역전하여 물화(物化)되버리는 상황을 포착한다. 이른바 "정치의 예술화"라는 파시즘의 미학과 정치학은 이렇게 해서 태어난다. 벤야민은 이에 대항해 "예술의 정치화"로 맞선다. 에이젠슈제인의 몽타주 영화, 브레히트의 서사극등이 그 예들이다. 그런데 그는 그 이전에 "혁명을 위한 도취의 힘을 얻는 것"을 꿈꾸던 프랑스의 초현실주의를 예술의 정치화의 표본으로 삼고 있었으며,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바로 보들레르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술의 정치화는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예술적 집단(아방가르드)을 통해서 실제적으로 가능하겠지만, 보들레르의 반항적인 시 언어 속에서도 이미 물질처럼 꿈틀대고 있었다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보들레르는 19세기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면서 대량 생산 속 스펙터클 시대가 도래하고, 인간이 단지 소비자로 전략되고, 상품이 아닌 것은 모두 무가치해지는(수익성이 낮은 것은 모두 무가치하게 여기는) 상품물신숭배시대가 본격화되자, 작가 활동에서 창작의 자율성과 예술의 자유가 위태롭게 된다는 위기감에 이를 막는 일종의 방패가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예술가적 자존심을 지키는 고귀한 정신적인 면을 강조하는 댄디즘을 들고나온다. 시인나름의 물신주의에 대한 경계심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던 맑스가 자본론에서 말하는 상품물신주의와도 통하는 일면이 있다.

2부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1941년 3월 13일~2008년 8월 9일)

[2002.06.01 창비웹진] 아, 팔레스타인이여! / 마흐무드 다르위시 (Mahmoud Darwish 1941년 3월 13일~2008년 8월 9일: 30권 이상의 시집과 8권의 산문집 출판) 편집자 주: 이번호 「시사파일」은 이집트 양대 일간지 중 하나인 『알 아흐람』(Al-Ahram)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주간지 Al-Ahram weekly(2002년 4월 11∼17일자)의 기사 두 개 중 하나를 여기에 번역해서 싣는다. 이 글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침략에 대해 서방 언론에 의존도가 높은 우리에게 좀더 사실에 가깝게 다가가게 하는 계기/ 전쟁을 위한 전쟁 / 마흐무드 다르위시(Mahmoud Darwish)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저항할 수밖에 없는 한 민족의 의지의 표현이다. 이제 우리의 피는 모든 가정에, 모든 이의 양심에 흘려질 것이다. 이 날부터 마음속으로 팔레스타인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자신의 진정한 도덕적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시인, 마흐무드 다르위시

이것은 전쟁을 위한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는 자기보존 이외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구나 이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무력으로는 정신을 압살할 수 없다는 것이 다시 한번 입증될 것이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이 점령한 우리 조국영토의 1/5(가자지구[Gaza Strip]와 서안[West Bank]을 뜻함ㅡ옮긴이)에서 철수한다는 조건으로 이스라엘에 범아랍 차원의 평화를 제의했다. 그러나 이 관대함에 대한 이스라엘의 답변은 팔레스타인 민족과 아랍인들의 상상력 자체에 전면적인 전쟁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요르단강 서안 자치구 예닌의 붕괴된 건물 잔해에 놓인 팔레스타인인 시신 ⓒ AFP

다시 한번 우리는 우리가 우월한 도덕적 입장을 점하고 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사실,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이것의 증거뿐이다. 국제적인 권력균형을 통제하는 자들은 지적인 혹은 법적인 주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사건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들이 전쟁억제를 보장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입증되었듯이-평화밖에는 다른 대안이 없음에도 불구하고-그들이 평화를 보장할 능력도 없음이 드러났다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될 때까지는 계속 그러할 것이다.

이 땅의 방방곡곡에서 범죄가 자행되고 있다. 거리마다 살해된 시신들이 널려 있고 벽마다 핏자국이 묻어 있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기본적인 생존권을 빼앗기고 순교자들은 편히 묻힐 무덤조차 거부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저항할 수밖에 없는 한 민족의 의지의 표현이다. 상처받은 심장의 박동소리들을 하나씩 들으면서 우리는 묻는다. 예수가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와 같은 환호성을 우리는 얼마나 오랫동안 계속 지를 것인가? / 이스라엘군의 포격으로 연기에 싸인 예수탄생교회

그 유명한 “아랍-이스라엘 투쟁”에서 남아있는 것은 과연 팔레스타인 쪽뿐인가? 이것이 그토록 소름끼치는 유혈낭자한 폭력의 장면 앞에서 그런 무능력한 중립을 설명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야쎄르 아라파트의 외침이 나무십자가에 영원히 못박히게 될까봐 몹시 두려워한다. 현재의 사건들에 내포된 순교의 미학이 너무 충만하여, 기나긴 수난일의 전 국민의 애도는 불필요할 정도이다. 눈물은 정신을 정화하고 육체를 청결하게 만든다. 눈물이 소금기로 따끔거리게 만들 때조차도 그렇다. 군중은 눈물을 흘리면서, 이제 비극의 주인공이 온당한 결말로 보답을 받고, 빈틈없이 짜여진 이야기의 요소가 신화가 돼버리는 순간의 생중계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신화에서 주인공은 아라파트가 외쳤듯이, “순교자, 순교자, 순교자”가 되어 대단원을 장식할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된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고독하다거나 남다르다는 그런 감정 따위는 필요 없다. 그들은 여태껏 한 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이제 더이상 희생제물의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메타포의 바깥에서, 그들이 태어난 현실의 장소에서 살기를 원한다. 그들은 조국을 신화의 육중한 무게로부터, 야만적인 점령으로부터, 파괴만을 약속하는 평화의 신기루로부터 해방시키기를 바란다. 예닌 난민촌의 잔해 속에서 나온 팔레스타인인의 시신 ⓒ Aljazeera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는 인종주의적 미신과 강력한 무기들로 빈틈없이 무장한 채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평범한 삶-그 삶이 비록 꿈보다는 악몽을 꾸기 쉬운 척박한 삶이라 해도-의 권리마저 포위공격하고 있다. 이 권리는 또한 미국이 통제하는 세계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데, 이 세계는 미국과 이스라엘 사이의 오래된 연대마저 들이받는 성난 황소(이스라엘 수상 아리엘 샤론을 뜻함-옮긴이)의 뿔 위에 놓여 있는 듯하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속의 상태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데, 이로 말미암아 아랍의 기성 정계는 그럴듯한 간청의 말조차도 모든 것에 분노한 민중을 달래는 능력조차도 모두 박탈당했다.

아랍세계가 자신들도 포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몇번이나 더 포위되어야 한다는 말인가? 비록 저항하지 않는다 해도 아랍세계 역시 인질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몇번이나 더 그래야 한다는 말인가? 텔레비전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해명할 필요도 없다. 이제 우리의 피는 모든 가정에, 모든 이의 양심에 흘려진 것이다. 이 날부터 마음속으로 팔레스타인인이 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자신의 진정한 도덕적 정체성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는 정의와 자유가 결여된 “평화협상과정”이라는 일상적인 이야기 뒤에 숨어 있던, 유행을 타지 않는 가치들이 이제 되살아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의지가 이제 단순한 손익계산에서, 허약한 지식인의 비관주의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인간 존재가 가지고 있는 단 하나의 진정한 의미, 즉 자유를 해방시킨 것이다. 살육 중단 외치는 하마스와 헤즈볼라 지지자들 ⓒAFP

다르위시 무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미국의 자금지원으로 이스라엘이 조국의 영토를 점령하면서 자행하는 정치적인 집단학살에 맞서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꿋꿋이 저항하려 한다. 막다른 벽에 등을 대고 있어도 그들의 시선은 희망에 고정되어 있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정신의 힘을 보여준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면전은 온갖 종류의 물음을 불러들였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미래의 아랍-이스라엘과 아랍-미국간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이 “이스라엘의 존립을 위한 투쟁”이며,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기 위한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잽싸게 선언했다. 이는 평화협상과정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민족운동을 제거하는 것이 여전히 이스라엘의 의제로 남아 있으며, 이스라엘의 존립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존립이 파괴의 위협을 받고 있음을 의미할 뿐이다.

이스라엘이 우리에게 요청한 것은 이 투쟁을 맨 처음의 시발점으로 되돌리자는 것인데, 아이러닉하게도 이 요청 덕분에 우리는 우리가 겪은 모든 단계들과 그 동안의 우리의 투쟁개념의 변화 양상을 재점검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평화라는 개념 바로 그 자체에 전쟁을 선포했다. 도대체 무엇이 “이스라엘의 존립”을, 이스라엘이 그토록 공세적으로 수호하는 그 존립을 위협하는가? 그들을 위협하는 것이 아랍인들이 이스라엘에게 선전포고도 없이 일으킨 전쟁이란 말인가? 아니면 아랍인이 현재 제의하고 있는 평화란 말인가?

이스라엘이 벌이는 현재의 전쟁이라는 거짓은 이스라엘 사회에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이스라엘은 그들의 탄생신화를 중심으로 응집할 수 있다. 만약 점령이 이스라엘 존립의 조건이자 필수요소라면 지금 그렇게 보이는데, 이는 해결될 수 없는 문제이다.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민족적·인간적 존재를 방어하는 일이다. 설령 우리가 막다른 벽에 몰려있다고 해도 말이다. 우리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다. ⓒAL-AHRAM Weekly <번역: 한기욱> [창비 웹매거진/20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