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2021년 7월 21일(수)~9월 26일(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에서 전시품은 <인왕제색도>(국보 제216호) 등 45건 77점
오마이뉴스 http://omn.kr/1umwp
“정보화와 관련해 본다면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의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글은 기막히게 과학적인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이건희 회장 (1997년 5월)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고(故) 이건희(李健熙, 1942~2020) 삼성 회장의 기증품을 특별 공개하는 ‘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2021.7.21.~9.26.)을 개최한다.
1.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특별 공개
이건희 회장 유족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9,797건 21,600여 점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금속, 도토기, 전적, 서화, 목가구 등으로 폭넓고 다양하다. 유례없는 대규모 기증으로 높아진 국민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신속하게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 이건희 회장 기증품 중 시대와 분야를 대표하는 명품 45건 77점(국보·보물 28건 포함)을 특별 공개한다.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의 최고 걸작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 삼국시대 금동불의 섬세함을 보여주는 <일광삼존상(一光三尊像)>(국보 제134호), 글씨와 그림이 빼어난 고려 사경(寫經)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大方廣佛華嚴經普賢行願品)>(국보 제235호), 현존하는 유일의 <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보물 제2015호),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1757~1806?)가 말년에 그린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 등이 전시되어 기증 명품전의 의미를 높인다(도1~5).
2. 이건희 컬렉션의 성격을 보여주는 기증 명품전
이번 전시는 이건희 회장의 철학과 전통 문화유산 컬렉션의 성격을 보여주는 대표작을 소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건희 회장은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은 인류 문화의 미래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 모두의 시대적 의무라고 생각한다.”라고 했다(2004년 10월 삼성미술관 Leeum 개관식 축사). 이처럼 문화 발전에 대한 사명감을 지녔던 이건희 회장의 전통 문화유산 컬렉션은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우리나라 전 시기와 전 분야를 포괄한다. 이에 따라 이번 전시에서는 청동기시대·초기철기시대 토기와 청동기, 삼국시대 금동불·토기, 고려시대 전적·사경·불교미술품·청자, 조선시대 전적·회화·도자·목가구 등 이건희 컬렉션의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청동기시대 토기로 산화철을 발라서 붉은 광택이 아름다운 <붉은 간토기>, 초기철기시대 청동기로 당시 권력을 상징하는 <청동 방울>(국보 제255호), 삼국시대 배 모양을 추측할 수 있는 <배 모양 토기>, 삼국시대 조각의 유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보살상>(보물 제780호), 삼국시대 뛰어난 금세공 기술 수준을 알 수 있는 <쌍용무늬 칼 손잡이 장식>(보물 제776호), 조선 백자로 넉넉한 기형과 문양이 조화로운 <백자 청화 산수무늬 병>(보물 제1390호)은 당대 최고의 기술과 디자인을 보여주는 명품이다(도6~11). 신소재 개발과 기술혁신이 가져온 문화의 변화와 아름다운 디자인을 추구하는 미의식이 명품에 담겨져 있다.
이처럼 이건희 회장 컬렉션은 기술혁신과 디자인을 중시한 기증자의 경영철학과 맞닿아 있다.
이건희 회장은 해외에 있는 국보급 우리 문화유산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여 다수의 고려불화가 국내로 돌아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이번 전시에는 고려불화 2점이 포함되는데, 고려불화 특유의 섬세한 미를 보여주는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이다.(도4·12)
또한 이건희 회장은 “정보화와 관련해 본다면 금속활자는 세계 최초의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으며, 한글은 기막히게 과학적인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1997년 5월 야구공의 실밥, 이건희 에세이/21세기 앞에서, 동아일보). 이처럼 이건희 회장은 우리나라 전적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번 전시에 세종대 한글 창제의 노력과 결실을 보여주는 <석보상절(釋譜詳節) 권11>(보물 제523-3호)과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1·12>(보물 제935호), <월인석보(月印釋譜) 권17·18>을 전시한다(도13~14). 이와 같은 귀중한 한글 전적으로 15세기 우리말과 훈민정음 표기법, 한글과 한자 서체 편집 디자인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 우리에게 아스라히 잊혀진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첫 사랑 같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석보상절〉이다. 조선시대 훈민정음을 창제(1443년)하고 반포(1446년)한 후 첫 번째로 혼신의 힘을 기울여 열과 성을 다하여 만든 작품이 유교 국가 조선에서 조선불교를 주제로 쓴 〈석보상절〉(1447년)이었다는 것이다.
왜 유교 책이 아니라 불교 책인 것일까. 그렇다면 누가 그 위험하고 대단한 일을 한 것일까. 바로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이다. 고려시대의 불교를 선교양종으로 혁파하고 대대적으로 불교를 박해했던 임금이다. 그 책을 쓴 저자는 다름 아닌 그의 아들 수양대군이었다. 이것이 〈석보상절〉을 읽는 관전 포인트이자 내내 들고 있어야 할 화두라고 할 수 있다.
아버지 세종의 명을 받들어 수양대군은 갓 태어난 문자 훈민정음으로 일필휘지 써내려간다. 반포 10개월만의 쾌거 〈석보상절〉 24권이라는 대작을 단숨에 완성한다. 세계 불가사의에 속할 조선불교 대장경의 효시이다. 이 대단한 첫사랑의 결실을 받을 주인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의 이름과 위엄을 아는 이 계실까.
[석보상절 주인공은 소헌왕후] 이 책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소헌왕후의 별세였다. 만일 소헌왕후가 없었다면 〈석보상절〉도 〈월인천강지곡〉도 없었을지 모른다. 있다고 해도 지금과 달라졌거나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왔을지도 모른다. 과연 〈석보상절〉의 탄생은 소헌왕후와 어떤 시절 인연이 되었던 것일까.
세종(1397~1450)의 왕비이자 수양대군(세조)의 어머니, 소헌왕후(1395~1446)를 만나보자. 시호는 ‘소헌왕후(昭憲王后)’로 그 삶을 요약하면 ‘뛰어나고 깊이 깨달아(昭), 선을 행하여 기록했다(憲)’는 뜻에서 ‘소헌’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그녀는 시호만큼 통찰력과 굳은 강단 그리고 평생 검소하고 선을 행하던 왕비였다.
항상 영웅 뒤에는 그보다 몇 배 훌륭한 여성이 있기 마련이다. 세종과의 사이에서 무려 8남 2녀를 낳은 그는 정 깊은 부부이자 다복한 어머니였다. 이뿐 아니라 세종은 두 살 연상인 아내 소헌왕후를 맞이할 때마다 반드시 일어서서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세종이 왕이니까, 조선시대 최고의 성군이니까 부부 사이도 역시 좋았으리라고 지레짐작해서는 안 된다. 소헌왕후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들여다보노라면 세종을 세종답게 만든 그이의 인품과 지혜가 한참 윗길에 있어야 비로소 가능한 일이었음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먼저 가족의 비극. 그의 부모와 형제들은 그가 왕비가 됐다는 기쁨도 잠시, 왕비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외척 세력을 근절하겠다는 시아버지 태종의 명으로 멸문지화를 당해야 했다. 그것도 세종이 1418년 왕으로 즉위하자마자 일어난 일이다. 상왕이었던 태종은 먼저 소헌왕후의 아버지 심온에게 죄를 씌워 죽이고 어머니와 동생들은 관청의 노비로 만들었다. 세종은 아버지 태종이 벌이는 그 참담한 상황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만 했다. 새로 등극한 왕이면 무엇하랴. 무능하기 필부만도 못한 남편과 그 끔찍한 가족의 비극을 소헌왕후는 묵묵히 견뎌야만 했던 것이다.
이미 태종에 의해 시어머니 원경왕후의 친정이 풍비박산 나는 것을 목도한 전례가 있었기에 당시 4남매의 어머니였던 소헌왕후는 자신과 자녀들의 안위 또한 살얼음판에서 지켜내야만 했을 것이다.
게다가 역적으로 몰린 친정아버지로 인하여 소헌왕후는 폐비까지 거론되었지만 이미 정의공주와 두 아들(문종, 세조)을 낳고 셋째 안평을 임신 중이었기에 이를 모면할 수 있었다. 태종도 외척 세력을 없애는 것이 목표였지 새 왕비를 뽑아 또다시 외척 세력이 생기는 악순환을 원치 않았다.
이렇게 조선시대 초기 건국의 기틀을 다질 당시에 왕비가 되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 무섭고 끔찍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모진 세월을 함께 이겨낸 세종이 아내를 대하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여자 세종’ 소헌왕후와 훈민정음
세종은 모두 22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후궁이 무려 12명이었다. 소헌왕후는 이들을 잘 거느려서 조선 역사상 내명부를 가장 안정적으로 다스린 왕비로 알려지고 있으며, 이것이 세종의 업적에 좋은 영향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선시대 왕비의 롤 모델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종이 산행을 간 사이 궁궐에 화재가 났을 때는 직접 진두지휘해 불을 끄는 등 통솔력과 순발력도 뛰어나 부창부수, 여자 세종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듯하다. 이 정도면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이라는 조선 최고 걸작 탄생의 주인공이 될 만하지 않은가.
그러한 소헌왕후가 훈민정음 반포를 6개월 앞둔 1446년 3월에 세상을 떠났다. 반포는 모두가 아는 한글날로 음력 9월 상순을 양력으로 환산한 10월 9일이다. 갖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순탄한 40대를 보낸 소헌왕후에게 1444년부터 엄청난 일이 닥친다. 딸이 왕비가 된 탓에 한 많은 인생을 살다 간 친정어머니 순흥 안씨가 1444년 11월에 별세한다.
그로부터 생때같은 20살 안팎의 5남 광평대군(1425~1444)이 12월에, 7남 평원대군(1427~1445)이 이듬해 1월에 연달아 세상을 떠났다. 굳건했던 소헌왕후도 상심하여 건강을 잃고 말았다. 정인지(1396~1478)가 쓴 ‘소헌왕후 영릉지’에는 이렇게 소헌왕후를 기리고 있다. 현대불교신문
3. 현대의 기술로 기증품의 가치를 돋보이게 하다
기증품 중 독보적 가치를 지닌 <인왕제색도>는 76세의 노대가(老大家) 정선이 눈길과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던 인왕산 구석구석을 자신감 있는 필치로 담아낸 최고의 역작이다. <인왕제색도>에 그려진 치마바위, 범바위, 수성동계곡 등 인왕산 명소와 평소 보기 힘든 비가 개는 인왕산 풍경을 담은 영상 ‘인왕산을 거닐다’를 98인치 대형 화면으로 제공하여 기증품의 가치를 더욱 높이고자 한다.
또한 육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고려불화 세부를 잘 볼 수 있도록 적외선과 X선 촬영 사진을 터치 스크린 영상으로 제시한다(도15~16). 적외선 사진에서는 먹으로 그린 밑그림을 볼 수 있는데, <천수관음보살도>에서는 천수관음보살의 여러 손의 모양, 손바닥과 광배에 그려진 눈, 손에 들고 있는 다양한 물건을 확인할 수 있다. X선 사진으로 <천수관음보살도>와 <수월관음도>의 채색 방식 및 안료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회화의 채색기법 중 하나인 뒷면에서 칠하는 배채법(背彩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녹색의 석록, 푸른색의 석청, 백색의 연백(鉛白)과 붉은색의 진사 등 광물성 안료를 구분하여 볼 수 있다. 이러한 배채법과 안료는 고려불화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특징이다.
감지금니 대방광불'화엄경' 입불사의해탈경계 보현행원품 정원본(紺紙金泥大方廣佛華嚴經入不思議解脫境界普賢行願品貞元本) 고려 말기에 감색의 종이에 금니로 쓴 ≪화엄경≫. 1권 1첩. 국보 제235호. 호암미술관소장.
삼중대광 영인군 이야선불화가 가족의 평안을 빌기 위해 사성한 금자경으로, 앞부분에 행원품변상도가 있다. 이 변상도는 그 자체로도 훌륭하게 묘사되었을 뿐만 아니라, 변상도 작가가 기록되어 있어 연구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감지에 금가루로 화엄경 34권을 쓴 것이다. 첫머리에는 원나라의 안새한이 부모를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적혀있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화엄경(華嚴經)
1984년 5월 30일 대한민국 보물 제752호로 지정되었다. 대방광불화엄경은 줄여서 ‘화엄경’이라고 부르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 정원본은 당나라 반야(般若)가 번역한 『화엄경』정원본 40권 가운데 권34에 해당하며, 보현보살이 선재동자에게 부처의 공덕을 얻기 위해 닦아야 할 10가지 계율을 설법한 보현행원품의 내용이 들어있다. 검푸른 종이에 금가루를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썼으며, 병풍처럼 펼쳐서 볼 수 있는 형태다. 접었을 때의 크기는 세로 34cm, 가로 11.5cm이다.
권의 첫머리에는 고려 충숙왕 복위 3년(1334)에 원나라의 안새한이 부모의 훌륭한 가르침을 기리기 위하여 만들었음을 알 수 있는 간행기록이 있다. 이어 설법한 내용을 요약하여 그린 변상도(變相圖)가 금색으로 세밀하게 그려져 있으며, 그 뒤에는 본문이 역시 금색으로 쓰여져 있다. 개인의 뜻에 의해 만든 것이기는 하나 그 품격이 정교하고, 고려시대 불경의 격식을 제대로 갖추고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삼성의 기업정신>
기술혁신으로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끌어올리려고 한 이건희 회장의 삼성 경영철학은 과거 위대한 문화유산에서 왔나.
삼성을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끌어올린 이건희 회장은 삼성 신 경영, 디자인 경영, 마하 경영 등 기술 혁신과 함께 디자인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누구보다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우리 문화 발전에 대한 사명감으로 문화유산을 모으고 보존하는 일에 노력을 기울였다. 이번 기증 명품전으로 기술력과 디자인이 탁월한 명품을 만든 선인(先人)의 노력과 명품을 지켜온 기증자의 철학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위대한 문화유산을 함께 누리다
고故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 관람 안내이번 전시는 ‘생활 속 거리두기’ 방침에 따라 30분 단위로 관람 인원을 20명으로 제한한다. 누리집에서 상설전시 예약과는 별도로 예약 후 입장할 수 있다. 전시 도록은 발간하지 않고 대신 전시품 이미지와 자료를 국립중앙박물관 누리집에서 제공한다
<이건희 회장 기증품 중 전시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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