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품 감정연구센터 입장 <또다시 버려진 근대미술관 근대미술관 없는 현대미술관 없다>
[2021년 7월 7일 문화부의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 건립 발표에 우리의 입장] 2021년 7월 7일 문체부가 발표한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 건립과 관련한 발표는 가장 기본적인 박물관학(MUSEOLOGY)에 어긋나는 박물관도 미술관도 기념관도 전시관도 아닌 ‘통합전시관’을 서울의 용산 또는 송현동 부지에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새롭게 건립될 기관 또는 시설의 성격이 우선 모호할 뿐만 아니라 비전(Vision)과 미션(Mission)조차 분명치 않은 시설일 뿐만 아니라 이런 기본적인 검토도 없이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기관의 설립을 경솔하게 발표해 이를 유치하고자 하는 3~40여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들에게 희망 고문을 했을 뿐 아니라 국민통합에 핵심 기제인 문화와 예술을 결과적으로 국민을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021년 4월 28일 국가에 기증하기로 발표한 이후 문체부는 당일 수장고 포화상태 등을 이유로 이미 수장고를 포함한 전용관 건립을 시사한 바 있다. 따라서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은 애초에 구상했던 짬짜면 같은 “통합전시관”의 새로운 대체어로 7월 7일 발표는 결국 문체부의 통합전시관 건립이라는 초기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계획에 의한, 계획을 위한” 결론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언론이나 국민들은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 어디에 설립되는가 즉 ‘장소’에 주목하고 있지만 우리는 새롭게 건립될 기관의 ‘성격’과 ‘의미’ 그리고 ‘임무’를 먼저 정하고 이를 가장 잘 실천하고 구현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고 믿는다.
문화예술기관은 항구적이며 영속적인, 비영리적 기관이기 때문에, 설립 전 기관의 지속가능성 즉 주제와 소장품의 확보 및 확대방안, 건축비와 연간운영비, 조직 그리고 개관 후의 효과에 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하나 절차적으로 이를 결여한 성급한 결론이라는 점에서 처음으로 돌아가 양 기관에 분산기증한 기증자들의 뜻을 존중해 원점에서 다시 검토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1. 불통 그리고 기회의 불평등과 욕심
이번 문체부의 발표는 그간 3~40여 지방자치단체의 유치를 희망하는 주장과 문화예술계 전문인 700여 명의 합리적이며 근거 있는 국립근대미술관 설립주장을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무시하는 ‘불통’으로 일관했다. 특히 국민적 관심사가 매우 높은 이건희 컬렉션의 향방을 두고 그 흔한 형식적인 토론회나 공청회 한번 없이 불도저식으로 일처리를 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을 통치 철학으로 삼는 문재인 정부의 문체부라면 해서는 안 될 일었다. 노무현 정부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명박 정부나 박근혜 정부가 이렇게 일 처리를 했다면 과연 지금의 장관과 여당 의원들은 무어라 했을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소위 ‘이건희 미술관’을 서로 유치하려고 과잉 노력한 것도 지적받아야 하지만 사실 이런 경쟁을 유발한 것은 문체부의 경솔한 단순함과 안일함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별도의 전시실이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어명 받들 듯 서둘러 이미 염두에 두고 있던 ‘통합전시관’을 ‘이건희 미술관’으로 포장해 언론에 흘리면서 지방자치단체들을 부추긴 것이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책임은 전적으로 치밀하지 못했던 문체부의 태도가 문제의 발단이 된 셈이다.
이렇게 일을 쉽게 즉흥적으로 처리한 문체부의 사고도 한심하지만, 지역균형발전과 문화분권을 볼모로 업적 쌓기, 자기 홍보 수단으로 브랜드로서의 ‘이건희’가 붙어있는 미술관 또는 박물관을 유치하겠다고 나선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 아닌가.
사실 대통령의 지시는 단순하게 전시관 특별관 설치를 검토하라는 것이었지만 건축, 토목공사를 중시하는 지자체와 새로운 산하기관설립의 기회로 생각한 문체부가 이 지시를 적극적으로 해석해서 비롯된 일이다.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대통령의 말씀은 국립중앙박물관이 현재 운영 중인 기증관 즉 동원실, 이우치실, 하치우마실, 유창종실, 가네코 가즈시게실, 박병래실, 최영도실과 유사한 공간을 설치하라는 것으로 이해했다. 여기에 문화예술계가 주장했던 “컬렉션이 흩어지면 안된다”는 말은 소장품이 개개인에게 분산되는 산실(散失)을 걱정했던 것이지 이 모든 기증품을 한 곳에 모으자는 이야기 아니었다. 이를 곡해해 ‘통합전시관’을 구상했다면 이는 잘못된 일이다.
그런데 문체부의 치적 쌓기와 산하기관 불리기라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대통령의 지시는 문체부의 자의적 해석에 따라 새로운 기관설립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7월 7일 발표 후에도 새로이 설립될 기관의 성격이나 임무가 불분명한 유령 같은 통합전시관이라는 기관을 유치하겠다고 지방자치단체들을 소모전에 뛰어들었고, 결과적으로 국론만 분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2. 왜곡된 수집철학과 훼손된 기증정신
사실 이번 발표를 보면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을 건설하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를 거쳤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이건희 회장의 수집철학을 존중해서 통합전시관인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을 건설하기로 했다는 설명도 사실 통합전시관을 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이렇게 시대와 지역과 장르를 넘나들며 컬렉션이 이루어진 것은 선대 이병철회장부터 수집을 시작해 이건희 회장부부로 이어진 컬렉션의 역사 때문이다. 대를 이어 컬렉션이 이루어진 탓에 다양한 시대를 망라하는 문화재와 미술품이 수집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소장품을 고고, 역사, 미술품은 호암미술박물관으로, 그리고 리움을 들여다보면 3개 관으로 분리해 고미술과 근현대미술 그리고 교육센터로 분리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컬렉션은 시대와 장르 지역을 넘나들면서 했지만 확실하게 분류해서 관리하고 수장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이번 기증도 이런 장르별, 시대별 지역별 분류원칙에 의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그리고 대구시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양구 박수근미술관,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 나름대로 연구하고 조사해서 각각의 기관에 기증했다. 이렇게 분리해서 기증된 기증자들의 뜻을 임의로 기증받은 이들이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고 하지만 실은 이렇게 기관별 특성에 맞추어 기증했다는 사실 자체가 조건인 셈이다. 따라서 하나의 기관을 설립해 그곳에 모든 기증품을 모으는 것은 기증자의 뜻을 왜곡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체부의 통합전시관 발표 후 이미 외신에서도 기증자의 뜻에 반하는 일이라고 보도하고 있다는 점도 새겨야 할 것이다.
특히 기증자의 수집철학을 존중한다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기증작품 뿐만 아니라 지방 공립미술관에 기증된 작품까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가칭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에 모아야 진정으로 기증의 뜻을 기리는 것 아닐까. 이런 노력은 없이 수집철학을 기리겠다고 양 기관의 기증품을 모은다는 것은 수사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건희 컬렉션의 기증이란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중요한 일을 토대로 박물관도 미술관도 아닌 통합 전시관으로서 ‘MUSEUM’을 설립한다는 전대미문의 실험을 하는 것은 온당한 일일까. 이건희 컬렉션을 실험용으로 쓴다는 것 자체가 기증의 의미와 컬렉션의 의미를 퇴색또는 무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 바란다.
3. 절차의 불공정
또한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기증받은 작품을, 아무리 이들 기관이 문체부 장관의 지휘감독을 받는 문체부 산하기관이라고 하지만 엄연한 독립적인 전문기관인데 이들이 기증받은 기증품들을 문체부가 통합전시관에 모으기 위해 내놓으라면 순순히 내 놓아야 하는 것일까. 이것이야말로 비문화적인 일인 동시에 반 문명적인 일이다.
사실 우리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 이하 구성원들은 이번 결정에 동의하는지? 아니면 내부에서 토론 끝에 제대로 합의된 결과를 가지고 기자회견장에 동석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양 기관장은 분명하게 답변을 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이런 ‘통합관’이 새로운 박물관과 미술관의 경계를 넘는 획기적인 방안이라면 아예 이번 기회에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을 통합해서 융복합형 하이브리드 한 기관으로 통합할 것을 제안한다.
하이브리드도 혁신도 융복합도 좋지만 G7을 넘보는 선진국가에 ‘국립근대미술관’이란 기본적이며 기초적인 미술관도 없는 나라에서 다 건너뛰고 새롭기만 하면 된다는 식의 발상, 기지도 못하면서 날겠다는 발상은 도대체 어디에 근거한 자신감인지? 지금 자신들이 검토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중차대한 일인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실험적이면서 유례가 없는 박물관학에도 반하는 결론을 내린 소위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 활용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되었으며 어떤 경로와 절차를 거쳐 선정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또 한 10회에 걸친 회의 끝에 내린 결론이라는데 각각의 회의에 참여한 인사의 명단과 회의록을 공개해서 ‘통합기증관’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위한 위원회가 아니었다는 것을 명백하게 밝힐 것을 요구하며, 이 위원회와 공개토론회와 공청회를 열 것을 문체부에 제안한다. 그리고 향후 이 위원회의 회의를 공개로 해 줄 것을 요구한다.
사실 새로운 문화예술기관의 설립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검토되어야 할 것이 그 기관의 임무(Mission)과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따라서 먼저 기증된 문화재 미술품의 조사연구사 선행되고, 시간이 없었다면 최소한 기증품의 연대별 유형별 재질별 분류와 함께 그 구성비라도 먼저 따져 보아야 했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이런 기초적인 조사와 연구도 없이 위원회부터 구성해 논의를 시작했다는 것은 결론을 내려놓고 그 결론을 옹호하고 엄호할 구실을 마련했다는 지적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는 박물관·미술관 형태의 시설이나 기관을 설비하려면 적어도 몇가지 질문에 대해 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새롭게 탄생하는 기관이 다룰 주제는 무엇인가?
기관의 성격을 분명하게 할 소장품의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인가.
새로운 기관의 어떤 건축물을 필요로 하는가.
조직과 필요한 인력은 확보 가능한가.
이 기관을 설립하고 운영하는데 얼마의 비용이 필요할까.
필요한 예산을 확보할 방법은 무엇인가.
고객은 어떻게 확보할까. 주 고객은 누구일까.
특히 중요한 것은 새로운 기관의 건축비도 중요하지만 지속 가능한 시설이 되기 위해서는 새롭게 생기는 기관의 인건비, 유물구입비를 포함한 연간 운영비를 산출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아마도 1천억 정도의 건설비가 소요되는 기관이라면 연간 운영비로 550억에서 750억은 들어가야 그런대로 운영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이런 기본적인 고민과 검토도 없이 무슨 배짱으로 통합전시관인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을 발표했는지 그 무모함은 가히 역대급이다.
4. 다 계획에 있었던 ‘통합전시관’
본질이 불분명할 때 이를 설명하는 말이 풍성하다고 했던가. 사실 새롭게 건립하겠다는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은 명칭에서 보듯 국가가 고 이건희 회장에게 기증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고 이건희 회장이 소장했던 문화재와 미술품들을 국가가 기증받았다는 것인지 도대체 뜻이 모호한 명칭만 보아도 소위 문화부가 의도한 ‘통합전시관’의 명분과 당위성이 그만큼 옹색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문 정책을 다루는 문화부가 내놓은 기관의 명칭이 분명하고 확실해서 그 기관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것이어야 할 텐데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만약 이 명칭을 외국인들에게 설명한다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 까.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은 그럼 ‘박물관’인가 ‘미술관’인가 그도 저도 아니라면 ‘기념관’일까 아님 ‘전시관’일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새로운 융복합형 하이브리드한 기관을 지향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한번 시도하는 그런 의미있는 일이라면서 외국에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통합해서 다루는 박물관 미술관이 이미 있다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이미 있는데 새로 생기는 기관이 새로운 시도리면 우리가 모르는 새롭다는 의미가 새로 생긴 것일까.
이는 새로운 복합형 기관이 결국 ‘통합전시관’이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포장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의 반증이다. 이런 자가당착은 금번 문체부가 발표한 자료를 조금만 읽어보면 확연하게 읽힌다.
문체부는 빌바오 효과를 거론하면서 통합전시관인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을 서울에 두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체부는 빌바오 효과와는 거리가 먼 ‘접근성’을 들며,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의 유관기관 간 협업의 용이성을 들어 서울을 낙점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용산으로 가면 근현대미술이, 송현동에 자리하면 문화재와 유물의 연구인력들과 멀어지게 된다. 또 이렇게 기관 간의 거리를 따진다면 앞으로도 모든 문화예술기관은 서울에 두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경험 있는 박물관 미술관과의 협력도 좋지만, 독자적 기관화를 원한다면 국립현대미술관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 인원을 차출함으로서 발생할 업무상의 공백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도 아울러 제시해야 했다. 국제적으로 20세기 이후 모든 박물관 미술관들이 세분화, 전문화되고 있는 추세라는 것을 모를리 없는 ‘위원회’의 위원들이 이런 기상천외한 결론에 동의했다는것도 믿기 어려운 일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합쳐 창의성을 구현한다고 하지만 이미 많은 미술관 박물관들이 각종 기획전을 통해서 이런 전시를 구현하고 연구성과를 내놓고 있다. 특히 전 세계의 미술관과 박물관은 네트워크를 통해 소장품을 대여해주고 받는 형식으로 많은 학제간, 기관간 협력을 통해 많은 성과를 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은 ‘통합전시관’이라는 목적을 포장하기위한 수사에 불과하다.
‘문화적·산업적 가치 창출을 통한 문화강국 이미지 강화’라는 말도 거꾸로 57년 만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격상된 국격을 문화적으로 깍아내리는 자충수 일 뿐이다. 여기에 통합전시관인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에 합해져서 관리될 기증품의 소유권은 양 기관이 각각 지닌 채, 한곳에 모은다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기관에 이관을 해 준다는 것인지도 불분명하다.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같이 협업해 운영하고 만들어나가는 그런 체계를 갖출 것이다.”고 했지만 말이 협업이지 국가의 지정문화재를 포함해서 기증된 중요한 문화재 미술품을 보존 관리하고 연구하는 일을 불분명한 ‘협업’을 통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시스템에 맡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 통합전시관의 기증품의 수장 전시조사연구를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의 연구인력 30명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연구인력 14명을 차출해 우선 조사연구 업무를 수행한다는데 인력도 예산도 없이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인력과 예산을 투입한다면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과 조사연구업무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부실하다 못해 이름만 남기겠다는 것인지 문체부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다.
부지문제를 설명하면서도 건축비만 필요한 것처럼 설명했지만 용산 부지는 이미 국민의 세금을 투입해 확보한 땅이고, 송현동은 서울시가 세금으로 해결해야 하는 땅이다. 이런 상황을 애써 감춘 채 국고 1천억이면 통합전시관인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 하늘에서 뚝 떨어질 것처럼 말하는 것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이 모두가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일이다. 그런데 이를 슬쩍 1천억 정도만 들어가면 통합전시관인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 설립 개관할 수 있는 것처럼 설명한 것도 뻔히 속이 보이는 일이다.
이런 질문에 대한 기본적인 검토조차 마치지 못한 채 앞으로 5~6년이 지난 2026년이나 27년에 개관 가능하다는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의 계획을 이렇게 성급하게 발표한 저의는 무엇일까.
우리의 이상과 같은 질문에 대해 아마도 문체부는 연구용역을 통해 해답을 제시 할 것이라고 발을 빼겠지만 그 진정성을 설명하려면 적어도 문체부 산하의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 연구용역을 맡겨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일은 애당초 문체부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문체부가 유족의 기증 취지를 존중했다면 기증받은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이나 자체적으로 기증품에 관해 조사연구 한 후에 이를 검토해 미흡하다면 문체부가 개입해 그에 맞는 계획을 수립해 발표하는 것이 순서였다. 대통령의 말씀을 ‘통합전시관’건립이라는 자신들의 희망 사항을 보태 확대해석해 부랴부랴 TF까지 꾸리며 호들갑스럽게 일을 벌여 국민분열과 지역 갈등만 유발한 결과를 낳았다.
5. 또 다시 버려진 근대
그리고 우리가 주장하는 국립근대미술관 신설요구는 분명하다. 우리는 역사, 미술사적인 측면에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줄곧 요구해왔다. 고대와 중세를 잇는 가교로서의 근대는 우리의 오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체이다. 그리고 근대미술은 이런 역사적, 경제적 문화적 증좌들을 포함하는 사상사적 실체이다. 이를 간과하고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민족의 미래, 우리 국가의 목표를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다.
우리의 근대는 비록 서세동점의 시기를 겪었다고는 하나 결코 비루하거나 초라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충분히 자긍심을 느끼고 자부할 만큼 크고 중요한 성취와 자랑스러운 성과를 지니고 있다. 감추고 드러내지 못할 과거가 아니라 그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강불식하며 이끌어 낸 문화적 업적과 성과를 더욱 갈고 닦아 자랑스러운 민족문화를 넘어 세계의 보편적인 문화로 승화시켜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근대’는 부끄러운 것, 감추어야 할 덧, 드러내서는 안되는 것으로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을 통해 우리의 근대에 대한 자긍심을 고양하는 한편 근대의 분열된 역사를 문화라는 중성적이며 상호 공감하는 토대를 통해 새롭게 해석하고 정리함으로서 국론을 통일하고, 민족을 통합하며, 이념적 분열을 치유하는 기반으로 삼아야 한다.
이제라도 ‘근대’ 없이 현대로 건너뛴 우리 문화사의 과오의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사실 국립현대미술관 이전에 이미 존재했어야 할 국립근대미술관을 세워야 한다는 염원이 이렇게 국립현대미술관의 영문 명칭이 “NMCA, Modern and Contemprary Art”라고 해서 넘어가야할 미미한 사안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최소한 국립현대미술관의 명칭을 국립근현대미술관으로 개칭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돌아보자. 지구상에 미술관 명칭으로 “Modern and Contemprary Art”를 병기한 미술관은 15개소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복합적인 명칭을 지닌 미술관은 대부분 지방미술관이거나 사립인 경우다. 이런 사정조차 파악을 못 한 채 ‘국립현대미술관’이 근대와 현대를 다 다루기 때문에 국립근대미술관은 필요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할 일인가 말이다.
따라서 우리의 주장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짬짜면’을 연상시키는 국적불명의, 학문적으로 유레가 없는 이미 19세기 중후반 시작되어 미국에나 몇 남아있는 통합전시관 형태의 ‘Museum’ 즉 통합전시관으로서의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이라는 뜻도 애매한 기관을 세우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증자의 가장 중요한 뜻인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분산기증을 존중해서 국가를 대표하는 양 기관에 기증품의 수장과 관리 향후 확대방안까지 일임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국립현대미술관은 그 산하에 분관이 되었던 독립적인 별도의 기관이건 간에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해 우리 역사의 공백을 메꾸자는 것이다.
우리의 주장은 분명하다.
1. 정체불명의 새로운 통합전시관인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 소장품관의 건립을 철회하라.
기증자들의 뜻을 왜곡하지 말고 기증품을 각각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 관리하면서, 조사 연구하도록 해서 각 기관의 소장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새로운 통합전시관 건립에 투입될 예산과 향후 새로운 기관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양 기관에 나누어 주어 명실공히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이 국가를 대표하며, 국격을 견인하는 기관으로 거듭나도록 해야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13개 분관 포함 연 예산이 1500억, 국립현대미술관이 분관포함 총 4개관 예산이 750억원 남짓한 현실에서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기보다는 여기에 투입될 예산과 인력을 양 기관에 분산 지원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다.
2. 국립근대미술관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분리 독립시켜 신설할 것을 요구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지방 분관을 권역별로 설립해 지역문화의 균형발전을 꾀하는 한편 국립근대미술관을 설립해 잃어버린 근대, 근대사를 복원하는 것이야 말로 문재인 정부의 아름다운 업적이 될 것이다. 통섭과 융복합을 이건희기증관의 명분으로 하지만 그 소장품의 구성으로 보면 ‘현대’가 빠져있다. 그렇다면 문체부와 위원회가 주장하는 통섭과 융복합은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대에 한정된 것이란 말인가.
3. 기증받은 이건희컬렉션의 확대발전방향에 대한 고민을 우선하라
사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은 이건희 소장품의 기증을 계기로 소장품의 완성도를 높일 좋은 기회를 맞았다. 그런데 이를 다시 통합전시관으로 모은다면 원상태로 돌아가는 셈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번 기증을 계기로 선물을 받은 셈이지만 그 선물을 바탕으로 그것의 양 기관의 소장품 완성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는 의무를 동시에 받은 것이다.
특히 모네나 르느와르, 고갱, 미로등 서양의 근현대미술품은 총 7 작가의 각 1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 작가의 작품을 중심으로 한 점 한 점 추가로 수집해서 서양근대미술 컬렉션을 확대완성해 나가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된 것이다. 또 기증받은 이건희 소장품의 질과 양이 아무리 튼실하다해도 추가로 수집해서 메꾸어야 할 빈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이는 기증품의 리스트만 살펴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따라서 향후 수집보강계획과 예산도 수립해야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 고민이나 연구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단순하기 기증받은 소장품만 가지고 ‘통합전시관’을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는 오히려 기증품을 유족 측에 반환해 리움과 호암미술관이 수장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4. 모든 논의를 열린 공간에서 할 것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활용위원회 구성을 비롯한 모든 절차와 그 결과가 밀실에서 이루어져 왔다. 이 중차대한 일을 몇몇 위원과 당연직인 관료들에게 맡겨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은 ‘과정의 공정’에 위배되는 일이다. 따라서 향후 모든 일정과 회의, 토론을 공개적으로 개최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문체부와 ‘활용위원회’와 공개된 토론회를 요구한다.
5. 관련 연구용역을 문체부 산하 한국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 주 맡겨서는 안된다.
‘통합전시관’ 즉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소장품관’ 설립을 발표했지만, 문체부의 논리는 빈약하다 못 해 불충분하고 모자랐다. 그리고 그 모자람을 가리기 위해 궤변과 앞뒤가 다른 언술로 포장했다. 그리고 모든 질문에 대해서는 연구용역을 수행해서 그 결과를 토대로 일을 진행하겠다고 했다. 따라서 그 연구용역은 누구나 신뢰하고 그 연구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기관 또는 사람들에게 의롸 할 것을 요구한다. 특히 문체부 산하의 문화관광정책연구원에서 연구하고 도출한 결과라면 누구라도 ‘통합전시관’ 즉 ‘가칭 국가기증 이건희소장품관’ 건립을 전제로한 금번 발표회와 같은 내용일 것임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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