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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故)이건희 회장] 문화재‧미술품 2만여 점 기증

고(故)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미술품 11,023건 2만 3천여 점 기증

[]국립중앙박물관에 9,797건 21,600여 점 기증 / 국보 제216호 <정선필 인왕제색도>, 보물 제2015호 <고려천수관음보살도>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 포함 [1] 국립현대미술관에 미술품 1,226건 1,400여 점 기증 - 이중섭 <황소>,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김환기<여인들과 항아리> 등 한국 대표 근대미술품 460여 점 및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등 세계 거장 대표작 포함 [2] 오는 6월부터 국민에게 공개 - ‘고(故)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중박, 6월 / 국현, 8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황희, 이하 문체부)는 2021년 4월 28일(수), 고(故) 이건희 회장 유족 측이 이 회장 소장품 11,023건 약 2만3천여 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고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 기증품에 국보 제216호 <정선필 인왕제색도>, 보물 제2015호 <고려천수관음보살도>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 포함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민병찬)은 9,797건(2만 1천6백여 점)을 기증받는다. 기증품 중에는 겸재 정선(1676~1759)의 <정선필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국보 제216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千手觀音菩薩圖)>(보물 제2015호), 단원 김홍도(1757~1806?)의 마지막 그림인 <김홍도필 추성부도(秋聲賦圖)>(보물 제1393호) 등 우리 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작품 등 국가지정문화재 60건(국보 14건, 보물 46건)이 포함되어 있다. 이 외에도 통일신라 인화문토기, 청자, 분청사기, 백자 등 도자류와 서화, 전적, 불교미술, 금속공예, 석조물 등 한국 고고·미술사를 망라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1946년 개관 이래 이번 기증품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43만여 점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이 중 5만여 점이 기증품으로 이번 2만 점 이상 기증은 기증된 문화재의 약 43%에 달한다. 국립현대미술관 기증품에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이인성, 이중섭 등 한국 대표 근대미술품 460여 점 등 포함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미술품 약 1,226건(1천4백여 점)을 기증받는다. 기증품에는 김환기, 나혜석, 박수근 등 한국 대표 근대미술품 460여 점과 모네, 고갱, 르누아르, 피사로, 샤갈, 달리 등 세계적인 거장들의 대표작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이중섭의 <황소>,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과 <농악>,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장욱진의 <소녀/나룻배> 및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호안 미로의 <구성>,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 등 회화가 대다수를 이루며, 회화 이외에도 판화, 소묘, 공예, 조각 등 다양하게 구성되어 근현대미술사를 망라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1969년 개관 이래 이번 기증품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만 2백여 점의 작품을 수집했다. 이 중 5,400여 점이 기증품이며, 이번 1천4백여 점의 기증은 역대 최대 규모다.

한국 고고미술사 및 근현대미술사를 망라하는 수준 높은 작품 기증

고 이건희 회장 소장품의 기증으로 우리 박물관‧미술관의 문화적 자산이 풍성해졌으며, 해외 유명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없는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특히 미술관의 경우 그동안 희소가치가 높고 수집조차 어려웠던 근대미술작품을 보강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근대미술사 전시와 연구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발굴 매장문화재가 대부분이었던 박물관 역시 우리 역사의 전 시대를 망라한 미술, 역사, 공예 등 다양한 문화재들이 골고루 기증받아 고고·미술사·역사 분야 전반에 걸쳐 전시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전국 13개 소속박물관 전시실을 비롯해 공립박물관·미술관 순회전 등을 통해 국민들의 문화 자긍심을 높이고 문화향유 기회 확대에 기여하며 우수한 우리 문화를 해외에 알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6월부터 순차적으로 국내외 전시 및 활발한 학술연구 기대

국립중앙박물관은 2021년 6월부터 대표 기증품을 선별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특별공개전(가제)’을 시작으로 유물을 공개한다. 2022년 10월에는 기증품 중 대표 명품을 선별 공개하는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 명품전(가제)’을 개최한다. 아울러 13개 지방소속박물관 전시와 국외 주요 박물관 한국실 전시, 우리 문화재 국외전시 등에도 적극적으로 활용해 지역문화를 활성화하는 것은 물론 문화 강국의 이미지를 국외에 확산할 계획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은 2021년 8월에 서울관에서 ‘고 이건희 회장 소장 명품전(가제)’ 개최를 시작으로, 9월에 과천, 2022년 청주 등에서 특별 전시 및 상설 전시를 통해 작품을 공개한다. 더욱 많은 국민들이 소중한 미술자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지역 공립미술관과 연계한 특별 순회전도 개최하고 해외 주요 미술관 순회전도 진행해 한국 미술에 대한 국제적 위상을 높일 방침이다.

아울러 두 기관은 기증품의 이미지를 디지털화해 박물관과 미술관 누리집에 공개하고, 디지털 이미지를 활용한 주요 대표작 등을 국외 박물관과 미술관에 알릴 계획이다. ‘이건희 기증품’의 역사적·예술적·미술사적 가치를 조망하기 위한 관련 학술대회 등도 진행할 예정이다.

문체부 황희 장관은 “한국 문화예술계 발전을 위해 평생 수집한 문화재와 미술품을 기증해주신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분들께 감사드린다.”라며, “국가지정문화재 및 예술성·사료적 가치가 높은 주요 미술품을 대규모로 국가에 기증한 것은 사실상 국내에서 최초이며, 이는 해외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의 대규모 기증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이번 기증은 국내 문화자산의 안정적인 보존과 국민들의 문화 향유권 제고, 지역의 박물관·미술관 활성화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 정부의 다양한 문화 관련 사업의 기획과 추진에 있어 상승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2부 고(故) 이건희 회장 소장 문화재‧미술품 11,023건 2만 3천여 점 기증

아래 박수근 '농악' 1960년대, 김환기와 카미유 피사로 등등 국립현대미술관 ‘이건희 기증품’ 대표 작품 소개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281×568cm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R3_00900(참고용).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733pixel, 세로 341pixel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적 작가로 평가받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는 중학교 시절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1933년부터 1936년까지 니혼대학 예술학부에서 공부한 후 1937년에 귀국하였다. 유학 시절에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단체전인 니카텐(二科展, 이과전)과 자유미술가협회전 등에 출품하였다. 김환기는 광복 후 서울대학교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유영국, 이규상 등과 함께 모더니즘을 기반으로 한국적 전통과 정서를 결합하여 새로운 조형의식을 추구한 미술동인단체인 ‘신사실파(新寫實派)’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는 1956년에 파리로 떠나 3년간 작품 활동을 하다가 귀국하여 홍익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1963년에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참여한 뒤 뉴욕으로 건너가면서 국제적으로 활동하였다. 김환기의 작품은 한국적 정서가 드러나는 자연과 사물을 단순화된 형태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었으며, 뉴욕으로 간 이후에는 완전히 추상화되었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색면으로 분할된 배경에 사슴, 여인, 도자기 등을 단순화된 형태로 그려 배치한 작품이다. 도자기를 들고 있는 반라의 여인들은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도상이다. <여인들과 항아리>는 이 시기 작가의 작품 중에서 상당히 대형작품에 속하며, 당시 그가 한국의 전통미에 주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박수근_절구질하는여인.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466pixel, 세로 64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04월 26일 오후 3:57 카메라 제조 업체 : Phase One 카메라 모델 : IQ3 100MP F-스톱 : 10.0 노출 시간 : 1/125초 IOS 감도 : 50 색 대표 : sRGB 프로그램 노출 : 메뉴얼 노출 제어 모드 측광 모드 : 평균 분할 측광 EXIF 버전 : 0230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130×97cm

박수근(朴壽根, 1914-1965)은 독학으로 그림을 공부하고, 1932년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수채화와 유화를 출품하여 여러 차례 입선했다. 광복 후에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와 대한미술협회전 등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국전의 추천 작가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박수근은 광복 이전에는 주로 농촌의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는데, 이 시기의 작품들은 한국전쟁 때 거의 소실되었다. 한국전쟁 이후에는 미군 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리면서 어렵게 생활했으며, 서울 거리의 풍경과 서민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주된 소재로 삼았다.

박수근은 노동하는 여인의 모습을 즐겨 그렸으며 자신의 아내를 모델로 삼기도 했다. <절구질하는 여인>은 아이를 등에 업고 절구질하는 여인의 모습을 화면 가운데 클로즈업하여 그린 작품이다. 작가는 전체적으로 갈색조를 띠는 화면에 단순하고 평면적인 형태로 대상을 묘사하였다.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만들어 낸 표면의 거친 질감에서 소박한 정취가 느껴진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박수근_농악.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77pixel, 세로 64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04월 26일 오후 3:57 카메라 제조 업체 : Phase One 카메라 모델 : IQ3 100MP F-스톱 : 11.0 노출 시간 : 1/125초 IOS 감도 : 50 색 대표 : sRGB 프로그램 노출 : 메뉴얼 노출 제어 모드 측광 모드 : 평균 분할 측광 EXIF 버전 : 0230

박수근 농악 1960년대

박수근, <농악>, 1960년대, 162×97cm

<농악>은 흥겨운 동작으로 농악기를 연주하는 인물들을 그린 것으로, 원근과 명암을 배제한 평면적인 화면 구성 및 단순한 인물묘사가 드러난다. 작가는 전면적으로 물감을 여러 번 덧칠하여 만들어 낸 화강암 같은 질감의 표면 위에 은은한 선과 엷은 색채로 농악패의 모습을 표현하여 통일감 있고 담백한 화면을 구현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이중섭_황소.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40pixel, 세로 462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04월 26일 오후 3:58 카메라 제조 업체 : Phase One 카메라 모델 : IQ3 100MP F-스톱 : 12.0 노출 시간 : 1/125초 IOS 감도 : 50 색 대표 : sRGB 프로그램 노출 : 메뉴얼 노출 제어 모드 측광 모드 : 평균 분할 측광 EXIF 버전 : 0230

이중섭, <황소>, 1950년대, 26.4×38.7cm

평안남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중섭(李仲燮, 1916-1956)은 평양에서 초등학교를 다닌 후, 정주에 있던 오산고등보통학교에서 임용련에게 서양화를 배웠다. 1935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데이코쿠미술학교와 분카학원에서 미술을 전공했고 《자유미술가협회전》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귀국 후에는 한국전쟁 때문에 극심한 가난 속에서 피난 생활을 했으며, 전쟁 중 아내와 두 아들이 일본으로 가면서 가족 간의 이별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작품의 주된 주제가 되었다. 전후(戰後)에는 돈을 모아 가족을 만나려는 생각에 활발히 작품을 제작하며 서울에서 개인전을 개최하기도 했으나,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질환 등에 시달리며 1956년 4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황소>는 강렬한 붉은색 배경에 황소가 고개를 틀고 울부짖는 듯한 순간을 그린 것으로, 머리를 화면 가득 묘사함으로써 소가 내뿜는 힘찬 기운을 강조한 작품이다. 강한 선묘는 소의 동세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거친 붓놀림과 강렬한 색감은 표현주의적인 경향을 보여 준다. 이 작품은 작가가 헤어진 가족과 곧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던 시기에 제작한 것으로 당당한 기세가 화면에 드러난다.

끌로드 모네, <수련이 있는 연못 Le Bassin Aux Nympheas>, 1919-1920, 100×200cm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01_ClaudeMonet_lo.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92pixel, 세로 54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04월 26일 오후 3:57 카메라 제조 업체 : Phase One 카메라 모델 : IQ3 100MP 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21.0 (Macintosh) F-스톱 : 16.0 노출 시간 : 1/125초 IOS 감도 : 100 색 대표 : sRGB 프로그램 노출 : 메뉴얼 노출 제어 모드 측광 모드 : 평균 분할 측광 EXIF 버전 : 0230

끌로드 모네(Claude Monet, 1840-1926)는 프랑스 인상주의 화풍의 창시자 중 한 명이다. 그는 파리에서 미술을 공부하면서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프레드 시슬레 등과 교류했으며, 1873년에는 이들과 함께 무명예술가협회를 결성했다. 협회의 첫 번째 전시에 출품했던 <인상, 해돋이>(1872)를 두고 비평가 루이 르로이(Louis Leroy)가 조롱의 의미를 담아 사용한 ‘인상주의’라는 말이 그룹의 이름이 되었다. 모네는 1886년까지 총 5회에 걸쳐 인상파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1890년 이후부터는 <건초더미>, <포플러 나무>, <루앙 대성당>, <수련> 등의 연작을 제작했다. 그는 이 연작들을 통해 동일한 사물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표현했다. 모네는 말년에 백내장으로 시력을 거의 잃게 되었으나 끝까지 인상주의의 원칙을 고수하며 작업을 지속했다.

모네는 지베르니의 자택에서 연못에 핀 수련을 주제로 250여 점의 작품을 제작했는데, <수련>은 이 연작 중 하나이다. 작가는 가로로 긴 화폭에 흰색, 초록색, 보라색을 겹쳐 바르는 방식으로 화면 가득 연못의 수면과 수련만을 묘사했다. 수평선을 드러내지 않은 평면적 구성을 통해 수면에 반사된 빛만을 표현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를 확인할 수 있다. 모네의 <수련> 연작은 작품 제작 시기에 따라 조금씩 다른 양상을 띠는데, 이 작품은 작가가 백내장으로 시력을 점차 잃게 된 후기 작업의 추상화된 경향을 보여준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02_MarcChagall.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1080pixel, 세로 1358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04월 26일 오후 3:58 카메라 제조 업체 : Phase One 카메라 모델 : IQ3 100MP 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21.0 (Macintosh) F-스톱 : 11.0 노출 시간 : 1/125초 IOS 감도 : 50 색 대표 : sRGB 프로그램 노출 : 메뉴얼 노출 제어 모드 측광 모드 : 평균 분할 측광 EXIF 버전 : 0230

마르크 샤갈,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 Les amoureux aux bouquets rouges>, 1975, 92×73cm

마르크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은 러시아의 유대인계 가정에서 태어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했다. 그는 1910년부터 파리에서 지내면서 초기에는 입체주의와 야수주의의 영향을 드러내기도 했다. 1914년 베를린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으며, 이후 고향인 러시아의 비테프스크로 돌아가 미술학교 교장을 맡기도 했으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의 갈등으로 1922년에 러시아를 떠나 파리로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유태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피신했다가 1948년에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샤갈은 사랑과 동경, 그리움과 같은 주제를 환상적이고 낭만적인 분위기와 눈비신 색채로 표현했으며, 색채의 마법사라고 불리기도 했다.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에는 붉은색의 꽃들이 꽂혀 있는 화병이 화면의 중앙에 크게 그려져 있고 양옆으로 평화로워 보이는 연인 한 쌍과 마을의 풍경, 과일바구니와 와인병 등의 정물이 작게 묘사되어 있다. 연인과 꽃이 함께 묘사된 도상은 샤갈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의 배경과 빨간 꽃의 색채 대비가 강조되며, 몽환적인 분위기와 밝고 강렬한 색채의 사용 등에서 샤갈 작품 특유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살바도르 달리, <켄타우로스 가족 Family of marsupial Centaurs>, 1940, 35×30.5cm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03_SalvadorDali.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56pixel, 세로 64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04월 26일 오후 3:58 카메라 제조 업체 : Phase One 카메라 모델 : IQ3 100MP F-스톱 : 12.0 노출 시간 : 1/125초 IOS 감도 : 50 색 대표 : sRGB 프로그램 노출 : 메뉴얼 노출 제어 모드 측광 모드 : 평균 분할 측광 EXIF 버전 : 0230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i, 1904-1989)는 스페인 카탈루냐에서 출생하여 마드리드의 왕립미술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초기에는 큐비즘 등 당시의 전위적 미술운동에 심취했으며 1929년에는 초현실주의 그룹에 가입하여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하다가 1940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후 1948년에 스페인으로 귀국했다. 그는 회화와 조각, 사진뿐만 아니라 비평과 시, 영화 등을 제작했으며 꿈과 무의식, 성(性), 종교, 과학 등을 창작의 주된 주제로 삼았다.

달리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오토 랑크(Otto Rank, 1884-1939)에게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랑크는 출생 자체가 심리적 외상(트라우마)일 수 있다는 이론을 제기했으며, 정신분석학을 전설과 신화, 예술과 창조성의 영역으로 확장한 학자이다. 달리는 랑크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스스로 출생 전 기억이 있다고 믿었다. 작품에는 신화 속 존재인 켄타우로스들이 출산을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복부에 난 둥근 구멍에서 차례로 아기들을 꺼내고 있는 이 장면에 대하여, 달리는 자서전에서 “엄마의 자궁이라는 낙원에서 나올 수도 되돌아갈 수도 있는 켄타우로스가 부럽다”고 언급한 바 있다. 미국에서 그린 작품이지만 배경의 바다는 작가의 고향인 카탈루냐의 해안의 모습에 가깝다고 여겨진다. 정교한 테크닉과 균형감 있는 구도가 돋보이는 이 작품에 대해 달리는 스스로 고전주의 양식으로의 회귀를 드러낸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04_CamillePissaro.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533pixel, 세로 640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1년 04월 26일 오후 3:58 카메라 제조 업체 : Phase One 카메라 모델 : IQ3 100MP F-스톱 : 18.0 노출 시간 : 1/125초 IOS 감도 : 50 색 대표 : sRGB 프로그램 노출 : 메뉴얼 노출 제어 모드 측광 모드 : 평균 분할 측광 EXIF 버전 : 0230

카미유 피사로, <퐁투아즈 시장 Marché de Pontoise>, 1893, 59×52cm

프랑스 화가인 카미유 피사로(Camille Pissarro, 1830-1903)는 인상주의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후기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작가인 세잔과 고갱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서인도 제도에서 태어난 그는 1855년에 그림을 배우기 위해 프랑스 파리로 이주하여 공부를 시작했다. 1870년에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피해 런던으로 피신했으며 모네와 교류하며 영국의 풍경화를 연구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파리 퐁투아즈에 정착하여 풍경화를 제작했다. 1874년에 제1회 인상파그룹전에 참가한 이후로 매회 지속적으로 출품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퐁투아즈 시장>은 퐁투아즈의 시장 풍경을 그린 작품으로 짧은 붓터치로 대상을 표현한 방식은 이후 쇠라가 사용한 점묘법과 유사하다. 피사로는 루브시엔느에 있던 집이 전쟁 때 파괴된 후 파리 북서쪽의 퐁투아즈로 거처를 옮겼는데, 퐁투아즈의 전원 풍경이나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즐겨 그렸다. 이 작품은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들과 구경하는 사람들을 빼곡히 묘사하고 있어, 혼잡한 시장의 풍경을 생생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