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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목포가 그에게 또 다른 '예술 고향'

'나의 예술적 고향' 백남준전 목포 오거리문화센터에서 6월 27일까지

오마이뉴스 기사 http://omn.kr/1tccf

 

목포가 '백남준의 예술적 고향' 다 되었네

'나의 예술적 고향' 백남준 전, 목포 오거리문화센터에서 6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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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전이 열리는 목포 오거리 문화센터 입구

'나의 예술적 고향(My Artistic Heimat)' 백남준전이 서울 이태원에 위치한 '백해영갤러리(관장 백해영)' 주관으로 '목포 오거리문화센터'에서 627일까지 열린다. 백남준전은 사실 국립미술관도 하기 쉽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설치미술과 영상, 사진, 편지 등 아카이브, 전시 포스터, 독일 만화가가 그린 백남준일대기 등 작지만 알차게 꾸몄다.

기획은 백남준 초기 독일시절에 정통한 '김순주(B/S 쿤스트라움)' 디렉터가 맡았다. 김 디렉터는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에서 '백남준 아카이브전'을 연 바 있다. 이번 백남준 목포전을 안내하는 '시민아카데미' 특강도 목포 MBC에서 가졌다.

목포는 예향, 맛과 멋의 항구, 전남 근대문화유산 1번지, 남행열차 종착점 등 별칭이 많다. 그러나 이제는 거기에만 만족할 게 아니라 글로벌 문화도시로 거듭날 때가 되었다. 이럴 시기에 백남준 같은 세계적 작가의 전시를 여는 건 의미가 크다.

이번 전시장 '오거리문화센터'는 특별하다. 1898년 개항 후 첫 일본사찰(등본원사)이었다. 1946년부터 '정광중학교'가 되었고 '법정'이 여길 다녔다. 1957년에는 '목포중앙교회', 1980년에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출원지였다. 2007년 문화재로 등록됐지만 철거될 뻔했다. 근대적 문화유산가치를 주장한 시민들에 힘입어 간신히 보존되었다.

백남준은 1995년 광주에서 처음 '비엔날레' 열렸을 때 기뻐하며 국내외 홍보대사을 했다. '인포아트(Info Art:정보예술)'전을 열어 세계 첨단 미디어 작가를 초대했다. 또 이곳 선사문화를 전자아트로 번역한 '고인돌'도 출품했다. 지방자치 옹호자인 백남준이 생존했다면 이곳 전시를 좋아했으리라. 백남준은 이번 전시를 통해 목포시민과 만난 셈이다.

이번 전시는 백해영관장의 큰 기부와 헌신 그리고 목포시장과 시 직원들 노고로 가능했다. 태평염전 김상일 대표과 카스텔 한국지부장 이봉기 대표도 협찬했다. 개막식엔 '김종식' 목포시장, '전성규' 목포대교수, 80년대 뉴욕에서 백남준과 활동한 '임영균'교수도 참가했다. 임 교수는 인사말에서 백남준을 일본 작가로 알고 있는 미국인 많아 크게 충격 받고 그를 사진 찍게 됐다고 전했다.

백남준의 시간철학, "미래가 지금"

2019 년 백남준 영국 ' 테이트모던 ' 네덜란드 순회전 포스터 백해영갤러리 소장품

그러면 지금부터 이번에 선보인 작품을 알아보자.

먼저 2019년 백남준 테이트모던 순회전 때 '암스테르담' 포스터다. 여기 하단에 "The Future is Now" 명구가 보인다. 백남준은 "미래(Future)의 시점에서 현재의 역사(Now)를 쓰는 게 예술"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메시지다. 미래를 내다본 예술가의 시간 개념은 독창적이다. 또 한 인터뷰에서 "현재가 유토피아(Jetzt ist: Utopie)"라는 말도 했다.

여기서 보면 백남준에게 현재, 과거, 미래는 구분이 없이 맞물려있다. 더 쉽게 해석하면 가장 먼 과거(선사시대)를 알아야, 가장 먼 미래(30세기)를 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TV아트를 시간예술로 해석한 그는 시간에 대한 폭과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첫 전시 등장한 'TV'가 30년 후 '인터넷' 되다

1963 년 백남준 첫 전시에서 ' 총체피아노' 를 연주하는 '예를링 김순주 소장품

60년대 이 사진은 독일 부퍼털 '파르나스화랑'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전시 장면 중 하나다. 온통 잡동사니로 뒤덮인 '총체 피아노'를 연주하는 'R. 예를링' 그는 원래 건축가로 이 전시장 주인이었다. 백남준은 "예술이란 사람들을 얼떨떨하게 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어처구니없는 장면이 연출되었다. 여기서 피아노는 악기보다는 오브제가 된다.

하버드대 시각예술과 '데이비드 조슬릿(D. Joselit)' 교수는 "백남준은 선() 철학을 괴벽스럽게 때로는 농담 투로 전자아트에 적용하기로 유명하다"라고 말했는데 맞는 말이다.

백남준은 첫 전시에서 선불교에서 말하는 '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즉 시각(sight)과 청각(sound)이 하나' 되는 개념을 도입했다. 음악이 미술이 되고, 미술이 음악이 되는 융복합 미학, '종합예술양식(Gesamtkunstwerk)'을 취했다. 그래서 그의 첫 전시제목도 '음악의 전시'. 부제는 서양 미술판을 갈아엎겠다는 메타포가 담긴 '추방(Expel)'이다.

그는 서구인들 듣도 보도 못한 비디오아트를 창안해 전혀 새로운 미술판을 열었다. 백남준이 첫 전시에서 획기적으로 TV를 도입한 건 사건이었다. 왜나면 1963'일방소통매체''TV'30년 후인 1993년에는 '쌍방소통매체''인터넷'이 됐기에 그래서 혁명이다.

서구음악의 '성상' 끌고 다니는 백남준

백남준& I ' 걸음 위한 선 '혹은 ' 줄이 달린 바이올린 ' 영상 , 1979 년; 장소 쾰른; 이걸 찍은 사람은 헤르겐라트 ' 박사 . 그는 독일에서 유명한 미술사가로 이 액션에 담긴 의도를 알았다.

이번엔 70년대 퍼포먼스를 보자. 백남준은 서양음악의 성상인 바이올린 목에 줄을 달아 '쾰른' 거리를 질질 끌고 다녔다. 사실 이런 '해프닝'60년대부터 시작했다. 바이올린뿐만 아니라 피아노도 때려 부쉈다. 70년대 영상을 보면 피아노가 불타고 그 속에서 베토벤 흉상도 흔들린다. 왜인가? 서구가 예술을 주도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였다.

백남준은 '서구우월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런 실험은 동양사상에 심취한 그의 멘토인 '존 케이지'의 영향도 있다. 피아니스트가 대중 앞에서 '433' 연주를 하지 않고 그냥 내려오는 게 그의 대표작이다. 이 작곡가는 그런 침묵과 관중들이 자연스럽게 내는 기침이나 소음을 현대음악으로 또는 훌륭한 그림으로 봤다.

그리고 이번에 관객이라면 누구나 퍼포먼스에 참여할 수 있는 코너가 있다. 긴 끈이 달린 바이올린이 있어 손을 뒤로한 채, 전시장을 돌면 된다. 이번 전시를 들러보니 백남준은 새삼 ''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 칭기즈칸'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니다. 6개 국어를 한 백남준은 서양의 석학들과 논쟁이 붙으면 재치 넘치는 유머로 그들을 압도했단다.

백남준, "서구철학 맹종마라!"

백남준  I '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 (I never read Wittgenstein)' 가변설치 . 1998 년  백해영갤러리 소장

이번에는 1980-1990년대 작품을 보자.

TV와 인터넷의 중간역할을 한 80년대 널리 알려진 위성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도 볼 수 있다. 그리고 90년대로 넘어가 백남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작가로 출전해 '황금사자상' 받았는데, 그때 찍은 사진작품도 선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전시의 최고 하이라이트는 1989년작 '나는 비트겐슈타인은 읽어본 적이 없다'.

이에 대해 해석이 많으나 분명한 건 '서구철학 맹신에 대한 경고'. 서구에서 철학은 '플라톤'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20세기 플라톤은 '비트겐슈타인'이다. 그는 현대서구철학의 대가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의 책을 안 읽어도 된다고 왜? 동양에는 그를 능가하는 사상가 많고 또 내가 창안한 비디오아트라는 시각언어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기에.

이 대형설치물은 사방으로 TV모니터가 설치돼 있다. 그 형태가 비교적 단순하다. 이 작품은 백남준이 1996'뇌졸중'으로 쓰러진 후에 만든 작업이라 디테일하게 할 수 없었다.

직사각형 테두리는 지직거리는 백남준 TV화면이 떠오른다. 사방은 '동서남북, 춘하추동' 등 우주의 순환계가 연상된다. 7개 컬러색동은 그의 색채론의 반영이다. 백남준에게 ''은 시간과 섹스를 의미한다. '시간'으로 보는 건 계절마다 만물의 색이 달라지기 때문이고, ''으로 보는 건 그 에너지가 강력해 오색찬란한 전자 빛과 닮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시대', 한반도 벗어나 세계

백남준 I ' 호랑이 살아있다 ' 45 분 위성아트 한국인을 호랑이로 의인화하다

'호랑이는 살아있다(DMZ 2000)'는 새천년을 시작하는 2000110시에 87개국 위성으로 전 세계로 생중계되었다. "난 한 마리의 호랑이로 서구에 진출하여 예술 현장에서 저들을 이기고 있다. 우리 민족도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분단국의 처량한 신세를 청산하고 이제는 어엿한 통일국가로 나가야 한다"는 그의 멘트는 힘에 넘치는 밀레니엄 축사 같다.

아름다운 한국의 자연을 자랑하듯 '금강에 살으리랏다'가 나오고, 미국 소프라노 가수 '비티엘로'의 괴성이 들린다. 분단된 철조망 태우는 영상과 호랑이와 사자 대결 속 호랑이가 이기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앞으로 동양이 서양을 앞선다는 뜻인가! 요즘 BTS, 봉준호 감독 등 한국대중문화가 미국과 경쟁하는 시대다. 60년대는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다.

'G9'에 들어가는 우리도 이제 해외 갈 때 배나 비행기만 타야 하는 섬나라에서 벗어나야 한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예컨대 목포에서 베를린까지 대륙철도로 가는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다. 요즘 '익산역' 앞에 가보면 '유라시아대륙철도' 설치물이 세워져 있다. 거기에 익산에서 런던까지 차비는 95만이고 10일 정도 걸린다고 적혀 있다. 다음은 목포다.

백남준, 21세기 우리에게 준 '유언'

백남준I ' 지도의 우화 (Map Allegory from Crimea to Korea)' 1960 년대

위 지도에서 백남준은 60년대 유라시아 전성시대를 예언했다. 2차 대전 때 백남준과 호형호제하던 작가 '보이스'가 전투기 사고로 추락한 '크리미아반도'부터 '한반도까지' 연결해 그린 지도다. '호랑이는 살아있다'와도 통한다. 60년 전 이미 백남준과 보이스는, 한국과 독일을 잇는 유라시아 작가로 우뚝 섰다. 다만 사람들 이걸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다.

'다산'도 조선이 한반도 자루에 갇히면 안 된다 했지만, 백남준은 그보다 훨씬 더 스케일이 크다. 백남준이 말하는 한반도 범주가 '몽골, 우랄알타이, 시베리아, 훈족', 그리고 '헝가리와 핀란드'뿐만 아니라 '페루'까지 올라간다. 이런 관점은 낯설지만, 한국이 21세기 주도국이 될 것은 예언한 것이다. 목포시민도 이런 기백에서 뒤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서 백남준은 우리에게 유언을 남겼다. 20세기에는 0,2% 인구인 유대인(Jewish)이 노벨상 약 22% 받았고, 그들은 인류에게 사회와 경제, 과학과 문화, 사상과 철학 등에서 크게 이바지했다며, 21세에는 한국인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이다. 남북화해를 통해 한반도에서 대륙횡단 기차 타고 유럽 쪽으로 나가는 것이 절실함을 역설했다.

지금은 '탈영토시대', 땅 크기보다 첨단 정보와 지식으로 무장한 '사이버영토'를 넓히게는 더 중요하다. IT 강국인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리고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열등감을 건강하게 극복 못 하면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 백남준이 위 작품에서 보여준 '자신감'을 가지고 이제 목포시민도 유라시아로 뻗어가야 하리라.

덧붙이는 글 | [김수준 목포MBC 시민아카데미특강www.youtube.com/watch?v=jipYslTaFrc  

김수준 목포 MBC  시민아카데미특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