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거중요전시행사

거리미술관에서 문화민주주의 꽃 피우다

2017 뭔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_유럽 3대미술행사] 뮌스터편 "맘 안 드는 전시야 안 가면 되지만 길거리 조각은 안 볼 수도 없잖아" [오마이뉴스관련기사] http://omn.kr/o94f


30만 인구 뮌스터는 이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국제미술행사를 여는 도시도 거듭나다 뮌스터 구시가지,

전시장소 : 뮌스터 시내곳곳 행사기간 2017년 6월 10일-10월 1일까지 입장료 무료 가이드 투어 금요일 오후 6기 토-일요일 오후 4시 2시간 진행 LWL미술관 앞에서 집합 무료 연락처 LWL Domplatz 10 D-48143 Munster +49-251-5907-500 홈 www.skulptur-projekte.de mail @skulptur-projekte.de / 예술가 36명(팀) 참여 1회부터 4회까지 영구적으로 설치된 ‘퍼블릭 컬렉션’ 38점을 볼 수 있다

[공공미술?] 이것은 프랑스대혁명 후 1793년 루브르궁이 미술관으로 바뀌면서 시작되다 "예술 체험을 통한 시민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목표하고 할 수 있다 문화민주화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뮌스터 프로젝트를 창시한 '부스만' 36명 작가 만든 도시가 미술 애호가의 놀이터가 되다 이 행사를 거듭할수록 보수적 시민의 예술적 상상력을 열어준다 건축과 긴밀한 공공미술프로젝크는 또한 숨은 역사의 뒷이야기도 들려준다

[1] 28년 만에 다시 본 뮌스터 시

작가 Cosima von Bonin/Tom Burr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뮌스터시립미술관(LWL) 입구에 헨리 무어의 조각이 있다. 왜 미술관 앞에 중장비 이사용 트레일러라니 그런데 이 작품을 설치하려고 할 때 시민들 기괴한 몰골이라고 거부했던 해프닝이 있었다. 여기서 우리의 고정개념을 깨는 작품은 좌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 위에 실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는 '이사'이라는 21세기의 노마드 정신이 담겨 있다. 언제나 이동이 가능하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착안한 작품이다.

뭔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는 1977년 클라우스 부스만(1985-2004 뮌스터시립미술관 큐레이터)과 카스파르 쾨니히가 주도해 독일 북서부에 있는 중소도시 뮌스터(Münster)에서 10년마다 열리는 공공미술축제다. 이번에 5번째로 10월 1일까지 열린다. 전시장과 다르게 거리와 광장과 공원 등에서 작품을 본다. 당연히 입장료는 없고. 자전거로 다니면 편리하다.

뮌스터 구시가지 중심가 뒤로 람베르트 성당이 보인다

그런데 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쇼나 전시나 관람회가 아니고 왜 현대미술에서는 (뮌스터)프로젝트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를 사용할까 개념이 다른 것인가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이유를 알 것 같다. 비엔날레는 2면마다 열리기 때문이고 도큐멘타는 시대정신의 표본을 기록하는 전시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뮌스터는 '프로젝트'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작가는 작품을 그냥 자국에서 만들어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2년 전부터 사전에 이 도시에 머물면서 아트 심포지엄과 아티스트 토크를 통해 이곳 주민과 소통한다 시민들이 미술과 전혀 관련이 없이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는 그들로부터 따끔한 질책과 제안을 받기도 한다.


그렇게 
초대 받은 작가들은  여기에 와서 시와 풍경과 역사 미리 조사해 구상을 한다. 전시할 장소와 작품의 관계를 설정하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주제를 잡아 작품을 설치할 위치를 검토한다 그리고 나서 제안서를 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베니스비엔날레나 카셀 도쿠멘타와 다른 점이다.

뮌스터 시민을 설득시키는 부스만(Klaus Bussmann) © 김석모

[Tip] 뮌스터의 조각전 역시도 공공미술의 개념이 도입되던 60년대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역시 그러한 논란으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당시 영국의조각가 헨리 무어 Henry Moore는 자신의 작품을 뮌스터시에 기증하고자했다. 하지만 뮌헨, 마인츠와 함께 독일 가톨릭의 3대 본향 중의 하나로손꼽히는 보수적인 도시인 뮌스터시는 이 제안을 거부했다. 울퉁불퉁한‘브론즈 덩어리에 불과한’ 이 괴상망칙한 것을 예술작품이랍시고 공원에세워두기가 민망했던 것이다.

그러자 예술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또 이에 대한 해명과 반박이 연이어지면서, 이 문제는 70년대 중반까지 시 전체를 시끄럽게 만드는 논제가 되었다. 결국 1973년에 시 정부는 예술계 인사들의 항변에 굴복하여 헨리 무어의 조각품을 대체할 생각으로 미국의 키네틱 조각가 조지 리키 George Rickey의 작품을 구매하기로 결정했다. 헨리 무어의 작품을 모던하다고 거부했던 시정부와 일반 시민들에게 예술계는 이 보다 더 ‘현대적인’ 작품을 들이댄 것이다. 당연히 이를 둘러싼 논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결정을 주도했던 시립 미술관장 크라우스 부스만은 3개월 동안이나 방송에 출연하여 일반시민들에게 현대미술을 이해시키고자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처럼 시민사회에 대한 도발적 문제제기와 더불어 현대예술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예술계의 끈질긴 노력이, 시의 여론을 어느 정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갔다. 그 결과 예술계와 시민, 그리고시정부의 합의로 1977년에 ‘20세기 조각의 역사’전이 열리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뮌스터 조각 프젝트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탕아?․남덕현 중에서

다니엘 뷔렌의 공공미술 제목: 4 Gates 1987 © Skulptur Projekte 2017 일상의 공간이 예술의 장소가 되다

2004년 터너상(Turner Prize)을 수상하고 2013년 베니스비엔날레 참가한 영국작가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는 올해 이번 행사를 보고 "뮌스터는 미술의 상업주의·엘리트주의에 대한 해독제"라는 멋진 코멘트를 남겼다. 이번 전시가 성공적이라는 의미다. 30만명이 사는 이 도시에 지금까지 관객 진행 현황으로 뵈사 7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행사 진행측은 예상한다.

그럼 이 프로젝트의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그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많았다. 이 행사가 시작되기 전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논쟁 터졌다. 그 발단은 20세기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을 뮌스터 시에 기증하려 했으나, 시민들이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로댕 작품만을 조각이라고 생각한 뮌스터 시민은 불분명하고 뭉개진 것 같은 추상적이고 전위적이고 난해한 헨리 무어의 조각을 그렇게 좋은 작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Three Squares Gyratory Variation I, 1971 2/3 by George Rickey. Stainless Steel (14'6" x 14' x 14') Collection: George Rickey Foundation. Licensed by VAGA, New York

그러다가 1974년 도시환경을 새롭게 꾸미려 현대조각가의 작품을 구입하려 했다. 이전에 사례가 없는 일이다. 작품선정은 당시 시립미술관 큐레이터이고 미술사가인 부스만에게 의뢰했다. 그는 운송비를 포함해서 13만 마르크로 책정해 미국조각가 '조지 리키(George Rickey)' 작품을 구입하려 했다 아직 시민들에게는 낯선 바람이 불면 네모 판이 회전하는 움직이는(키네틱) 조각이었다.

그해 11월 15일 지역 언론에 보도되자, 뮌스터 시민들은 격하게 반대했다. 너무 비싸다는 것이다 그 돈이면 더 좋은 사업을 할 수 있는게 많다는 어론이다. 공공미술을 몰랐던 그들에게 이런 작품은 이 도시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정크아트로 본 것이다. 이런 것은 조각공해이고, 멋 대가리 없는 원시미술이고 심지어는 도시에 테러를 가하는 것이라는 말까지 나오게 된다.

Nairy Baghramian이 장소 Erbdrostenhof(1753-1757 사이에 Johann Christoph Manskirch가 만든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잘츠스튜라세(Salzstraße) 38 2017년 모습

[Tip] [3가지 유럽예술축제 다 나름 자기 역할을 하면서 차별성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독일을 비롯한 국내외 언론에서는 카셀의 도쿠멘타가 다분히 계몽주의에 입각한 엘리트주의적 시각으로, 관람객에게 ‘현대미술이란 이런 것’이라고 가르치려 들고, 베니스 비엔날레가 예술의 국제적인 각축장이 된지 오래라면, 뮌스터의 조각전은 그야말로 예술가와 일반시민 사이에 참다운 예술적 소통을 이루려는 참신한 노력을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독일 뮌스터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는 가출했던 탕아를 다시금 집으로 불러들여 예술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 맺기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남태현

1987년 미국작가 리처드 세라가 참가 Richard Serra Trunk_Johann Conrad Schlaun Recomposedi © Skulptur Projekte 2017

뮌스터 시는 난감하게 되었고 더 이상 진행시킬 수 없어 포기한다고 선언한다. 자신들이 낸 세금으로 살 수 없다는 완고한 분위기였다. 결국 이 조각은 1975년 서독연방은행이 구입해 시에 기증을 하게 되고 나중에 카셀의 작은 공원에 설치되었다. 2004년 클래스 올덴버그 스트링 서울 청계천 사건과 그 상황이 흡사했다.

이 모든 소동은 결국 이 도시의 문화수준이 도마에 오르는 계기를 맞게 된다. 드디어 공공성과 예술의 관계를 둘러싼 논의가 시작되었다. 결국 부스만은 시민들이 현대미술에 대한 몰이해에서 온다고 봤다 그래서 이를 계기로 현대미술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의 기회를 준다는 차원에서 야외조각전시회를 제안했다. 이게 바로 뭔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출발점이 된다.

2017 뭔스터 조각프로젝트(Skulptur Projekte Münster) 기자간담회

나는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세계적 미술도시로 거듭난 이 도시를 2017년 6월 9일일 방문했다 왜냐하면 시립극장에서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기자간담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1989년 여름 뮌스터대학에서 공부 중인 동생을 만나기 위해서 여기를 온 적이 있다. 그러니까 28년 만이다 감개가 무량하다.

그런데 이 뮌스터 프로젝트는 왜 10년 만에 한번 열리는 것인가? 카셀 도쿠멘타처럼 5년에 열리면 안 되는가에 대한 질문에 이에 대한 실무진의 답은 확고하다.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면서도 적어도 10년이 필요하단다. 그런 원칙은 변할 수 없고 거기서 이 미술전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지켜낸다고 발상이다. 철저한 준비는 독일식이다.

뮌스터는 자전거 도시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자전거 애용자가 많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그 때는 미술과 무관하게 살았던 시절이지만 예사롭지 않았다. 이 도시는 별명이 많다. 그만큼 매력이 넘친다는 소리인데 우선 5만명의 대학생이 사는 대학도시이고 고풍스런 대학 건물에 반했다. 그리고 빼놓을 없는 게 자전거 도시이다 처음 여기 와서 대학교수가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모습이 신기했다.

자전거 도시이다 보니 친환경도시일 수밖에 없었고 작은 규모지만 호수가 있고 산책로며 숲과 공원과 거리 등 너무 멋졌다. 그리고 신구교 평화협정을 맺은 종교도시라니 더욱 호감이 갔다.

28년이 지간 지금 와서 다시 보니 이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거듭함으로써 문화예술적으로 도시의 품격이 확 높아진 것 같다. 이제 유럽에서 미술도시하면 뮌스터를 빼놓을 없게 되었다. 시민들 모습이 활기차 보인다. 그들의 표정에서 문화시민으로서의 교양과 높은 자율성과 자부심과 예술애호정신 등을 엿볼 수 있다.

다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이야기로 돌아와서 1977년 시립 미술관에서 주관하여 시가지와 공원 등 세계 각국에서 쟁쟁한 칼 안드레, 요셉 보이스, 리차드 롱, 도널드 저드, 클래스 올덴버그, 브루스 나우만, 리처드 세라 등등 9명의 작가가 시작되었다.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대지미술, 팝아트, 설치미술을 대변하는 작가가 다 모인 것이다.

그런데 쇼나 전시나 관람회가 아니고 왜 현대미술에서는 (뮌스터)프로젝트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를 사용할까 개념이 다른 것인가

뮌스터 시립극장 안에 있는 CAMP 로마유적지

그렇지만 단순히 이미 만들어진 조각 작품을 전시하는 게 아니라 작품과 도시의 관계성을 묻고 주민과 토론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 전시된다. 시민과 긴 논의를 거듭한 후 작품을 설치할 위치를 검토하면서 제안서를 내는 식 바로 프로젝트방식인 셈이다.

초대받은 작가들은 프로젝트가 시작하기 2년 전부터 여기에 와서 시와 풍경과 역사 미리 조사해 구상을 한다. 아트 심포지엄과 아티스트 토크를 하면서 이곳 주민과 예술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는다. 주민에게 작품의 의미를 이해시키기도 한다. 작가들은 미술과 전혀 관련이 없이 살아가는 주민의 따끔한 질책과 평가를 받기도 한다.

뮌스터 프로젝트 기자간담회 시작하기 전 모습

그런 과정을 중시하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동안 시민들은 미술에 대한 이해가 넓어 졌고 적극 참여하게 되면서 자원 봉사자도 늘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과정을 중시하고 주민과 소통하는 방식이 먹히면서 이 프로젝트는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다.

이제는 '베니스 비엔날레' '도큐멘타' 등에 필적하는 공공미술에서 중요한 세계미술 축제가 된 것이다 프로젝트가 끝나도 다 끝난 것이 아니라 시민들은 프로젝트 작품 중 일부는 시에서 구입해 영구 설치한다.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기자간담회 후 이번 진행의 총책을 맡은 큐레이터 2명 중 한 사람인 마리안네 바그너(Marianne Wagner) 내가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포즈를 취하다

뮌스터는 인구는 대략 30만이다 서울의 33분의 1정도다. 그런 인구수에 비해 미술관, 갤러리, 박물관 숫자가 많아 보인다. 이런 상호적 프로젝트를 통해 시민들은 자신이 태어난 이 도시의 인상이 변화하고 예술의 효과도 경험하면서 도시의 미래도 상상해보게 된다. 그래서 이 도시에 자부심을 가지게 되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다른 장르의 예술분야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연극이나 공연이나 춤이나 등등의 시민들 참여도가 높은 것 같다.

[2] 기자간담회 열기를 상징하는 '런치수프'

서울시립미술관 변지혜 학예연구사를 뮌스터기자간담회에서 극적으로 만나다

나는 쾰른에 숙소를 두고 이곳을 뮌스터를 왔다갔다하다 보니 이기에 머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9월 9일 아침 일찍 쾰른을 출발해 뮌스터에서 11시 반에 도착 12시에 기자 간단회에 참가했다. 여기서 한국출신 현지 교수를 만나고 일본기자도 서울에서 자주 보는 서울시립미술관 변지혜 큐레이터도 극적으로 만났다.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도록 디자인인 단아하도 속지도 누렇다 가벼워서 좋다 친환경적이다. © Skulptur Projekte 2017

나는 사전에 해둔 기자등록을 확인하고 전시도록과 가방을 받았다 내가 불어는 하지만 독일어는 못하기에 영어번역기를 받았다. 내 얕은 영어실력이라 별 도움이 안 되겠지만

이 날 오후 늦은 6시쯤에 다시 2차로 여러 나라에서 온 기자와 임원 간 밀착질의응답시간도 있었다. 난 영어도 짧고 여기 현대미술관 관람하느라고 이 소중한 소통의 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기자간담회 분위기는 다른 경우에 별로 다르지 않았고 지원기업가와 스펀서 대표들 실무자와 예술감독 무대에 올라가 한마디씩 던지고 분위기는 고조되고 한 시간 정도 지나고 응답시간이 되었다 국내외 기자들의 질문과 답변도 오갔다. 나는 불어로 질문을 하려고 했지만 영어와 독일어만 가능하다고 해 다음으로 미루었다.

내가 순간 생각한 질문은 백남준을 생각을 차용한 질문이었다. "백남준은 앞으로 예술가는 사람들이 잘 노는 기술 노하우를 개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에 비춰볼 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그런 개념에 속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에 대해서 알고 싶다"

"Nam June a dit que le rôle de l'artiste c'est comment on peut créer le software de jouir bien(savoir vivre) dans la vie quotidienne. Je crois que le projet Münster de cette année naturnellement y compris ces concepts. Pourriez vous en me donnez un example" 이걸 영어로 바꿔 말하기가 귀찮았다.

뮌스터 프로젝트에 참가하기 위해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미술부 기자들

기자간담회 장소는 뮌스터 시립극장이다. 외국기자가 다 셀 수는 없었지만 7-800명은 온 것 같다. 8월 11일 프레스스텝이 보내준 통계를 보니 1000명 정도라고 한다. 여기 임원과 실무진 그리고 기업 스폰서 이들은 무엇보다 예술이 우리시대에 평화적으로 소통하는 최선의 방식이라는 것과 예술이 가장 많은 이자를 내는 투자라는 걸 아는 사람들 같았다.

2017년 뮌스터 공공미술 기자 간담회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간소했다 474쪽 짜리 전시도록을 받았는데 표지에 제목도 없고 안에 광고도 거의 없고 책 옆에 <Münster skulptur projekte 2017>라는 단어가 보일 뿐, 종이 색도 누렇다 질이 나쁘다 그러나 사용하는데 문제는 없다 오히려 가벼워서 좋다 환경을 생각한 독일방식이다.

기자간담회전 뮌스터 프로젝트 임원들 밝은 모습

유럽의 도시도 이제 서서히 변하고 있다 과거의 파리와 같은 대도시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 유럽의 도시가 그랬듯 전에는 관광 명소로서 위상에 치중했다면 지금은 품격 있는 문화도시로 맹렬하게 변신하고 있었다. 뮌스터가 그중 가장 성공적 사례다. 그래선가 그날 약간 비가 내리는 흐른 날씨에도 임원들 표정이 매우 밝다.

기자간담회 후 런치

기자간담회 끝나고 1시 반쯤 런치가 나왔다 메뉴가 뭔가 궁금했는데 역시 간소한 서양수프다. 두 가지 있었다. 소고기와 감자가 들어간 비프 토마토 감자 스프와 크림 스프다 그날 가벼운 비도 오고해서 뜨끈뜨끈한 수프가 온 몸을 확 풀러줘서 좋았다. 비프 수프 2그릇 크림 스프 1그릇, 총 3그릇을 비웠다.

기자들 사이에 둘러싸인 이번 프로젝트 예술감독 카스파르 쾨니히

1회부터 무스만과 함께 예술감독을 맡아온 카스파르 쾨니히(Kaspar Konig)는 카리스마로 넘쳤다. 주변에 기자에 둘러싸인 이 도시의 문화인사로 아이디어맨이라는 인상을 받아도 유머도 백남준 수준이다 40년을 일관성 이끌어오는 저력과 한 사람의 힘은 크다. www.museum-fuer-lackkunst.de

뮌스터 프로젝트 주 임원들

이곳은 시립극장(Theater Munster)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기자간담회가 열린 곳인데 이곳의 공연도 상당한 수준인 것 같다 뮌스터 인구 30만이면 서울 인구의 33분의 1도 안 되는데 그에 비해 문화 향유지수는 높아 보인다. 미술관이 17개 사회복지와 관련된 기관이 21곳 그리고 교육관련기관이 32개나 된다.

[3] 도시는 미술관, 거리는 예술을 줍는 곳

-길 위에 예술, 도시의 일상에 숨과 영환과 축제감을 불어넣다

뮌스터에 있는 이 호수의 이름 Aasee 그리고 커다란 볼 작폼의 작가는 스웨덴 출신의 미국 작가 '클래스 올덴버그'이군요 Skulptur Giant Pool Balls von Claes Oldenburg (1977) 올렌버그 작품은 청계광장에도 있다

뮌스터 공공미술은 길 위에 예술을 줍고 건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관객이 굳이 미술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미술관이 되어 모두가 관객이 되고 자신도 모르게 미술품을 만나는 방식이다. 뮌스터 프로젝트를 창시한 부스만의 유명한 말이죠 “맘 안 드는 전시야 안 가면 되지만 길거리 조각은 안 볼 수도 없잖아…”

뮌스터 Aasee 호수

이제는 도시전체가 미술관이라는 개념은 단순하지만 매우 의미심장하다. 21세기 미술계의 화두 다 도시를 하나의 큰 미술관으로 본다는 점에서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요즘 서울시에서도 이런 개념을 수요해 서울이 큰 미술관이라는 보기 시작했다. 동대문에 백남준 박수근 기념관이 생긴 것을 매우 고무적이고 다행스러운 일이다

뮌스터 Aasee 호수

요트가 없는 도시 뮌스터 이 말에는 상업주의를 배격하는 미술의 도시라는 의미도 있다. 거리가 최대의 미술관 되는 뮌스터 이번 뮌스터조각 프로젝트는 전반적으로 세계미술의 이목을 끌며 성공적인 것 같다. 그리고 런던이나 파리와 같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대형전시나 엘리트주의전시를 견제하는 일상적 삶에 포커스를 두는 이번 전시는 앞으로 전개될 동시대미술의 새로운 양상을 선구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상과 미술을 네트워킹하면서 문화 예술의 민주화에 기여할 것이다

뮌스터 Aasee 호수

뮌스터  도심녹지공간인 ‘프로메나데(Promenade 산책로) 전체 8km정도
자연과 문명이 만남 뮌스터는 European Green Capital Award를 수상할 정도로 환경이 좋다 자전거를 타고 운동화차림이 어울린다. 이 조용한 도시는 10만마다 한번씩 세계에서 몰려온 관광객으로 시끌벅쩍해진다. 한번 공공조각 프로젝트의 기회를 놏치면 무려 10년을 기다려야 한다.

또한 뮌스터는 도시자체가 하나의 자연사미술관 같다. 숲과 호수와 가로수길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 그만큼 우리시대의 미술은 우리 삶과 밀착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 공공미술이 작품이라고 아니라도 볼 수도 있다. 그만큼 미술이 우리생활 속에 파고들어오고 있다는 소리다. 이렇게 뮌스터라는 도시는 서서히 세계적 공공미술 성지가 되고 있다

백남준과 부스만은 인연이 깊다. 두 사람 같은 출판사에서 시리즈물로 책이 나오다

클라우스 부스만 백남준과도 인연이 깊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전시에 독일의 개념미술가 한스 하케와 함께 참여했다. 그때 이 전시장 큐레이터였다. 백남준은 이후 이를 기반으로 한국관도 설치했다. 1997년에는 백남준도 이 프로젝트에 참가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조용히 연주하라> 최고작을 선물했다.

뭔스터대학교 본관 건물 1989년 이 건물을 보고 반하다 1780년 4월 16일 설립되었다

뮌스터 대학 학생들 수업을 듣는 모습

이 대학은 연간예산이 3억 3100만 유로(2008년) 학생수가 3만 6763명(2009년) 지금은 거의 4만명이 되고 15학부 130학과로 구성된 독일에서 가장 큰 종합대학 중 하나다 위치는 독일 북서부 지역에 있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뮌스터 웹사이트 http://www.uni-muenster.de/

1989년 8월 2일 뮌스터대학교 도서관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그해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놀랐다

쾨니히도 이 작품에 대해 가장 인상적 작품이라고 말했단다. 출품작 중 최고 인기였다고 한다. 제목은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조용히 연주하다' 빈티지자동차 32대가 출동하는 대단한 스케일이다 여기서 32대 32년생인 백남준을 말한다 하드웨어(자동차) 산업사회 도태와 소프트웨어(컴퓨터) 정보사화의 도래도 암시한다.

백남준은 이 작품의 제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의 특징은 조직화된 폭력, 미디어, 자동차 숭배이고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소비주의이며 폭력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비목록이다" 차안에 모차르트장엄미사곡 밤11시반까지 틀어 주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고 폭력의 진가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은화 저 <그랜드 아트 투어(2017)>에서는 이 작품에 대해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패러다임 바꾼 백남준 18세기 모차르트가 듣는 음악에서 최고라면 자신은 20세기 보는 음악에서 최고라는 자부심 은근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이 글에 중요한 부분은 이 책을 참고했다 이 프로젝트에 대해서 더 알고 싶으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시민들 냉담과 오해 속에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결정적으로 전환시킨 건 백남준 작품 '32대의 자동차'다 백남준 덕분에 전시기획자 30년 만에 성공]

백남준이 뮌스터 프로젝트에 1997년 출품한 작품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조용히 연주하다 빈티지자동차 32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카스퍼 쾨니히를 비롯한 기획자들의 공공미술에 대한 비전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전방위적 기획, 그리고 이들의 추진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사실상 크라우스 바우만과 카스퍼 쾨니히의 노력으로 1977년에 가까스로 ‘20세기 조각의 역사’전이 열리긴 했지만 이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었다. 심지어 일부시민들의 항의와 방해로 전시작품 제작과 전시가 경찰의 보호 하에 이루어져야 했던 경우도 있었는가하면, 이제는 뮌스터의 상징물이 된 크라스 올덴부르크 Cleas Oldenburg의 거대한 당구공들 Giant Poolbolls 을 호수물 속에 처박으려는 대학생이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1987년 행사 때부터 시정부와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치면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국내외의 관심을 불러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이 ‘밖으로부터의 관심’이 시민들의 여론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돌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면서 백남준의 초대작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조용히 연주하시오 32 cars for the 20th century:play Mozart's Requiem quietly 가 전시되었던 1997년의 세 번째 프로젝트부터는 관람객이 50만 명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기획자의 입장에서 보면 6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노력이 근 30여년 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그것은 물론 1977년부터 2007년 까지 4회에 이르는 동안 카스퍼 쾨니히가 계속해서 예술감독직을 맡아 일관된 컨셉으로 추진해 나갈 수 있게끔, 그에게 한결같은 신뢰를 보여준 시정부와 시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러한 신뢰는 다시금 이들이 공공미술에 대한 이해와 이에 대한 신념을 바탕으로 장기간에 걸쳐 시민을 이해시키고자 하는 끈질긴 노력을 기울인 결과로 얻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덕현

1920년대부터 50년대까지 생산된 32대의 미국 올드카를 수집해 직선, 사각형, 원, 삼각형으로 배치하고 은색 에나멜페인트를 붓으로 칠한 후, 작가의 비디오 작품에 쓰이고 남은 유리 브라운관과 플라스틱 또는 나무 텔레비전 케이스 등을 무질서하게 집어넣었다. 이 자동차들은 20세기 전반의 기술 혁명 역사를, 자동차 내부에 설치된 물건들은 20세기 후반의 텔레비전 시대를 상징한다.

In 1997, ten years after creating TV-Buddha für Enten (TV Buddha for Ducks), the Korean artist Nam June Paik installed 32 silver-varnished vintage cars on the forecourt of Münster’s city palace. In the period between sunset and close to midnight Wolfgang Amadeus Mozart’s final composition Requiem was to be played – so long, in fact, “until people complain about it”,1 as Paik’s instructions stated. With the vehicle bodies arranged in groups of eight it was possible to identify different geometric forms – a triangle, a circle, a parallelogram and a line

작가는 20세기 산업의 대표적 상징물인 자동차와 텔레비전을 한데 모아놓고 모차르트의 장송곡을 틀었다. 이 레퀴엠은 각 8대 자동차 그룹에 스피커를 2대씩 설치하여 가까이 갔을 때 들릴 정도의 음량으로 연주되었다.

The artist’s choice of vintage cars dating back to the period between 1920 and 1950 was a reference to the history of technology. Besides addressing the cult of the car and the attendant consumerist ideology, Nam June Paik’s project was concerned with mediatisation, which he saw as a key aspect of the 20th century. Accordingly, looking in through the windscreens of the unroadworthy cars one caught sight of heaps of discarded televisions. This was Paik’s way of announcing the end of the video age and, simultaneously, of his preferred artistic medium.

Since Münster’s Schloss was the last palace to be built in Germany before the French Revolution, this constellation reflected the transition from aristocratic to civic, democratic society. Confronting this historic backdrop with the innovative forces of the car and media culture, which stand for the shift from industrial society to the information age, Paik highlighted the upheavals of the twentieth century.

[4] 이 도시의 주는 역사적 메시지는 화해와 공존

-신구교종교간 갈등과 대립의 해소시킨 곳

뮌스터의 문화유산을 상징하는 뮌스터 대성당 건물

뮌스터는 고대로마문화의 흔적이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로마문화를 기초로 해서 새롭게 자기문명을 꽃피운 곳이다 이렇게 뮌스터 역사는 8세기로 올라간다. 793년 샤를마뉴(카롤루스)대제가 이 지역에 대사로 '르투거(Ludger)'를 파견한다. 그는 교육에 치중해 797년 성당보다 학교를 먼저 세웠다. 이 학교는 파울리눔 김나지움로 이어진단다.

그리고 뮌스터가 사원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종교도시다. 805년 처음 교구가 되었다 주교가 있는 뮌스터 대성당이 세워진다. 이 건물 단지 성당이 아니라 뮌스터를 대표하는 역사적 명소이다 9세기에 이미 신학교를 갖춘 종교의 도시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에 당시 급진적 개혁파인 재세례파는 이곳에 신정정치를 이룩하고자 가톨릭교회에 반란을 일으킨다. 이 때 일어나 비극적 사건이 벌어진다.

람베르트 성당 지금도 남아있는 미니 감옥

여기 람베르트 성당을 보면 대롱대롱 매달린 작은 직사각형 쇠창살이 있는데 가톨릭을 반대한 재세례파 신도들은 여기에 가두어 굶어죽게 한 것이다. 얼마나 참혹하고 풍경인가 이런 지난한 과정을 지나가나서야 마침내 평화협정을 이끌어낸다.

뮌스터 상가 중심가 뒤로 람베르트 성당이 보인다

무엇보다 신구교가 갈등이 심각할 때 기적적으로 둘의 갈등을 봉합하고 화해한 이곳 시청홀이 열린 것이다 예술이란 결국 같이 공존하는 평화정신이다 평화협정을 만들어낸 저력이 있다 그런 전통을 근간으로 그들이 창출한 공공미술프로젝트 더욱 빛이 난다 뮌스터가 왜 유명한지 바로 알 수 있다

또 이 성당과 관련해 이야기가 또 있다 1933년 나치시절 뮌스터 대주교로 취임한 '클레멘스 아우구스트 폰 갈렌' 신부는 장애인, 동성애자, 노약자 등에 대해 나치에 의해 집도된 무차별적으로 안락사에 반대며 반 나치 운동을 이끌어 유명하다. 그는 나치의 잔혹함을 비판하고 저항의 구심점이었다. 그래서 '뮌스터의 사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젊어서 뮌스터 대학부에 와서 사회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가 신앙의 사회적 실천을 그나마 도모하고 터득한 곳이 바로 여기다.

1648년 유럽의 신구종교전쟁 평화협정을 맺은 뮌스터 구 시청 1989년 이곳에서 찍은 사진이다. Opening times: Tuesday-Friday 10am-5pm, Saturday, Sunday & public holidays 10am-4pm

뮌스터 시가 왜 유명한가 하니 이 건물은 뮌스터 시 구시청 30년 유럽의 종교전쟁 끝에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을 맺은 곳 평화의 방이 있어 유명하다 [Friedenssaal]

The Friedenssaal in Munster's historical town hall is one of the highlights of any visit to the city. © Skulptur Projekte 2017

Don't miss the Renaissance panelling dating from 1577, the imposing chandeliers or the ambassadors' portrait gallery, where you can feel the hand of history on your shoulder. It was here that, on 15 May 1648, European history was written with the conclusion of the Peace of Münster between Spain and the Dutch Republic.

구 시청사 파사드 ‘프린치팔마크트(Prinzipalmarkt 중앙시장)’에 있다 사진 tamtamtamlife.tistory.com/

카셀이나 쾰른과 그렇지만 여기도 2차대전 당시 도신전체의 60%이상 그리고 구시가지(알트슈타트) 중심가의 90%이상이 파괴되었으나 저력을 발휘했다 중세도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실제로는 설계도 보고 복구시킨 것이다 누구는 유럽을 여행하면서 가장 부러운 것이 바로 뛰어난 과거보존 놀라운 복원기술이라고 과거와 현재의 그렇게 이어준다.

뮌스터 거리에서 보는 공공미술

이렇게 많이 파괴된 도시가 가장  명성 높은 미술도시 역사의 아이러니다. 모름지기 파괴가 있어야 창조가 있다는 원리인가 예술만 아니라 역사에도 적용이 되는가

[5] 예술에 대한 열망과 높은 자율성을 바탕으로 하는 자신감

뮌스터 구시가지에 이 건물(주소 Ludgeristraße 80 48143 뮌스터 Pohlmeyer's Holzofen)이 뭔가 했더니 피자가게다 이런 곳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고 역사의 향기를 음미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도시의 시민들은 예술적 열망이 충족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생존의 빵과 함께 아름다움의 허기도 해소하는 것인가. 빵집과 꽃집도 그렇지만 한 집 건너 문화 예술친화적 공간과  어느 도시나 역사적 건물 문화유산이 그만큼 많다는 소리다. 공공미술을 하려면 우선 역사적인 건물이 많아야 한다. 거리가 캔버스이다.

이 도시의 주인으로 문화적 향유 속에 삶의 자율성과 창의성은 높아지고 자연스럽게 시민들의 자신감은 높아진다. 예술적 향기가 지성과 교양을 갖춘 높은 삶의 질이 누린다  파리보다 수준이 더 높아 보인다. 부스만이 서울대를 방문했을 대 한국언론과 인터뷰에서 뮌스터 프로젝트의 성공비결을 “시민들의 자신감 회복”이라고 말했다.

뮌스터 시립미술관 카페

거리에서 연인들의 입맞춤도 예술적 퍼포먼스를 본다면 모든 사물을 우호적인 시선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성을 긍정하는 분위기, 작은 일상을 삶의 축제로 바꾸는 기술 작은 친절과 호의를 나름으로 일상의 멋과 즐거움 더하는 경향은 사실 소중한 것이다.

[6] 문화민주주의의 구현

Dear Sir or Madam, we cordially invite you to the Bar Talk with Mariechen Danz, Anthea Hamilton & Julie Verhoeven, on Friday, 11 August 2017, and 12 August 2017, at 7 pm in the sculpture by Peles Empire, corner Aegidiistraße / Aegidiikirchplatz, 48143 Münster. Caption: PELES EMPIRE BAR TALK with Maria Loboda, photo: Hubertus Huvermann.

작가 펠레스 엠파이어(Peles Empire) 작품명: Sculpture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09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작품감상 2017년 8월 11-12일 바 토크 초대장] 시민의 소통의 장으로 활용되는 공공미술

"공공미술은 무엇보다 미술에서의 민주주의 실현 과정”이라고 로스만을 말했지만 이런 도시의 변신은 문화의 민주화로 가는데 필수적이다 우리가 이 프로젝트에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점이다 보다 튼튼한 민주주의의 이루기 위해서도 정치의 민주화로 부족하다 문화의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누구의 말처럼

이탈리아가 르네상스를 통해 유럽의 문화민주화에 첫 발을 내디뎠고 지금도 그 영향력을 대단하다. 베니스비엔날레가 100년 이상 이어지는 이유다. 한국의 민주주의 이제는 정치의 민주화 경제의 민주화를 넘어서는 메타민주화 즉 문화의 민주화에 관심을 둘 때가 되었다 우리도 하면 할 수 있다. 한국인처럼 풍유가 많은 나라도 없다.

우리는 사회적 공기로써 사회적 미디어를 나누고 공유하듯(partager/share) 공공미술을 통해서 우리사회의 분위기를 보다 정겹고 아름답게 사회적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인 바로 인터넷 시대의 핵심개념이 아니겠는가.

작가 Geeerard Byrne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뮌스터프로젝트 난민출신노동자와 독일인이 인터뷰하는 영상이 가슴에 와 닿는다 장소는 자동차 앞좌석이다. 마치 연인이나 가까운 친구처럼 말이다

[7] 몸과 시간과 공간(Out of PlaceOut of Body Out of Time)을 넘어서

-시공간을 확장하는 참여와 시공간을 넘어서는 몸

현재가 과거와 만나고 그리로 미래도 내다본다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이번 프로젝트의 주제는 몸과 시간과 공간(Out of Place Out of Body Out of Time)을 넘어서이다. 즉 몸과 시간과 공간을 확장시키는 개념이 담겨 있다 현대미술은 미술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있고 보이스가 말하는 사회적 조각의 개념이 여기에도 작동된다. 미술 그 중에서도 공공미술의 범위를 무한히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더 커진다.

백남준은 이미 오래전에 몸의 증발된 현대 문명을 비판하고 모든 시민이 참여하는 관객의 피부를 자극하는 밀착예술이 요구되는 이유다 모두가 신나게 잘 노는 게 바로 최고의 예술이다 그럴 때 삶의 바탕인 몸이 중요해진다.

또한 갇힌 시공간을 벗어나기를 시도했다 추상시간과 공간이라고 할까 이제 이런 개념은 현대미술에서 아주 중요한 한 흐름이다 맥루한의 미디어학자의 확장이론과 미디어의 융합 백남준 이런 사람들이 이런 개념의 선구자는 현대미술을 보는 눈을 확대하고 전체를 보는 눈을 키우려한다 난해하다는 현대미술도 확장과 융합이라는 개념을 이해하면 너끈히 이해할 수 있고 흥미를 가지고 호기심을 넘칠 수 있다

작가 Andreas 작품명

디지털 아트 작품을 설치한 여기가 갔을 때 가장 좋았던 점은 와이파이가 된다는 점이다 QR 코드 모션 갭처 motion capture 개념 도입 Andreas Bunte* 1970 Mettmann, lebt in Berlin 작가 안드레아스 분테 베를린 거주

[8] 왜 초대 받은 한국작가는 없나

작가 John Knight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작가 아이 아라카(Ei Arakawa)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도시라는 미술관을 그리는 방식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하다. 일본 전위운동 구타이(Gutai)와 유럽의 전위운동인 플럭서스(Fluxus)의 전승이 엿보인다. 따라서 음악을 중시하는 사운드아트의 성격이 강한 작품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뮌스터 초대받은 역대 작가 중 백남준 빼고는 한국작가는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직도 골목대장식의 현대미술을 한다는 소리인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아직도 가늠해보고 못한다는 소리인가 초대받지 못한 것을 원망하거나 성토해봐야 소용없다. 동네미술이 되기 쉬운 한국현대미술의 안목과 시야를 넓히는데 쓴 보약으로 삼으면 어떨까 싶다

한국현대미술은 아직도 갓난아이처럼 세계미술의 흐름에 대해 눈을 뜨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사실 우리가 실력이 없다기보다는 서양이 우리를 잘 모른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우리는 이런 프로젝트를 통해 많은 작가를 만고 배우고 탐색하면서 한국현대미술의 안목을 그야말로 확장시켜야 한다.

작가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이 프로젝트는 내세우는 표어가 있다 "우리는 매번 0에서 시작했다" 이렇게 늘 새롭게 시작하려는 참신성과 그리고 어느 것에 묶이지 않으려는 융통성, 투명성, 유연성 이런 것이야말로 말로 자율적 창의성의 기반이 된다. 그리고 시 당국 시민과 다양하고 열린 대화를 전제로 예술가의 절대적 자유 보장한다는 정신이다.


[9] 작품 감상해보기 홍해를 건너다

작가 펠레스 엠파이어(Peles Empire) 작품명: Sculpture 기자 간담회 투어 시작 영어파트

나는 영어로 하는 기자간담회 투어에 합류하다 내 짧은 영어로 이해하기는 역부족 하지만 미술은 시각언어이기에 문자언어가 도움이 되기는 하지만 크게 불편하지는 않았다. 동양의 얼굴을 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중국과 브라질 혼혈인 미국 작가와 필리핀 등 아시아, 인도 있어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기자들은 독일어와 영어로 구분해서 전시투어가 있었다.

[돌출위기] 나는 다른 사람 사진을 찍어주다가 뮌스터 프로젝트 디카 드디어 페이브먼트 위에 떨어뜨리다. 렌즈가 2번 휘어지다 사진이 나올까 걱정이다 스마트폰의 렌즈가 깨지듯이 화면이 반은 검게 되었고 반만 보인다 그런데 다행인 것은 사진을 그대로 나온다. 2년 전 뉴욕에서 보다는 그래도 양호한 상태다

작가 펠레스 엠파이어(Peles Empire) 작품명: Sculpture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뮌스터 프레스자료] 조각프로젝트 이제 반이 지났는데 관람객이 35만 명이라고 하네요 지금 수준이라면 70만 명 그 이상이 예상되네요 뭔스터 인구가 30만 명이니 이 도시의 인구의 2.5-3배가 다녀갈 것이라고 본다면 관람객 동원에서 성공적이네요 이 프로젝트는 물론 입장료는 없지요 그래서 비상업적이지만요 그러나 관광수입과 경제효과는 아마도 엄청나겠죠 자료에 의하면 기자간담회에 참가한 기자만도 1000명이 넘었다고 뮌스터미술관LWL도 관람객 수도 최고를 경신했군요

작가 Justin Matherly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작가: 니콜 아이젠맨(Nicole Eisenman) 작품명: Sketch for a Fountain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기존의 고전 조각에 일침을 가하는 유머와 파격을 가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조각품이 멍청이들처럼 보이게 까지 한다.

작가 Justin Matherly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작가 아이젠 에르코맨(Ayse Erkmen) 작품명 On Water 두 항구의 연결되어 20분 거리고 5분 안에 도착 © 송아영

도시한복판에 물길이 생기니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너무 좋아한다. 관객이 물 위는 걷는 예수가 되기도 한다. 도시라는 미술관을 그리는 방식에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게 하다. 그 도시 한복판에 물길이 생기니 남녀노소 모든 사람들이 너무 좋아하는군요. 이번 프로젝트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 왜냐하면 피부접촉 친화적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시에서 언제 이런 물바다 경험해 보겠나 홍수가 아니라면 굉장히 넓은 공간이다. 난리법석을 떨게 하는 공공미술 이곳 시민들 이런 행사에 이제는 능동적이다 물질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협조하면서 참여하는 기쁨은 기대보다 클 것이다 http://m.blog.naver.com/giambologna/221041265346

작가: 알렉산드라 피리치 Alexandra Piric 작품명: Leaking Territories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작가 Alexandra Pirici는 지속적으로 춤과 퍼포먼스와 조각을 융합한다. 그녀는 기존의 계층구조를 바꾸기 위해 특정 장소의 역사와 의미를 자주 거론한다. 유머와 장난기가 뒤섞인 방식으로 말이다 민족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유럽의 개념에 의문을 제기 할 때, 작가의 연구는 초국가적 대화의 문화와 다양한 목소리에 호소한다. 장소는 신구교가 화해한 역사 타운홀이다

몸의 국경을 넘어서] 전혀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타인의 몸 위를 나의 몸을 굴려 넘어가기 몸으로 친하기 여기서 나이 국경 인종 종교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다 몸을 굴려 다른 사람 몸을 넘어가기 주제는 평화와 국가다

작가 마이클 딘, 작품명 Tender Tender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이란작가 나이리 바그라미안(Nairy Baghramion) 작품명: Beliebte Stellen/Priviledged Points

Nairy Baghramian이 장소 Erbdrostenhof(1753-1757 사이에 Johann Christoph Manskirch가 만든 바로크 양식의 건물로 잘츠슈트라스(Salzstraße) 38에 있다 2차 대전 때 파괴되었다가 다시 복원되어 지금은 뮌스터 현대미술관 사무실로 사용된다고 하는군요.

이곳은 리처드 세라가 30년전 첫 프로젝트에 이곳에 그의 작품을 설치해 의미가 있는 곳이다. 공공미술 작품소개 매우 에너지 넘치는 그녀의 작품은 현대미술의 화두인 몸의 요소가 들어가 매우 관능적이기까지 하다. 현대미술의 한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개념적 가변성과 적응성과 무거운 철로 만들었지만 상호 연결 요소로 구성된 우아한 곡선미의 놀라운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작가의 내면의 풍경까지도 은유적으로 포함시키고 있다.

작가 Nairy Baghramion 작품명

Bárbara Wagner and Benjamin de Burca, Bye Bye Germany! A living melody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뮌스터 프로제트 공공미술은 노래방과 어린이도서관에서 시작한다 브라질에서 근거를 두고 있는 Bárbara Wagner작가의 이 작품은 바로 그런 점을 잘 보여준다 공공미술 혹은 공공조각의 정의를 성공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다 그만큼 생활밀착형 작품으로 현대미술이 일상과 밀접하게 닿아있다는 소리다 그 속에 서민의 고달품을 풀어내는 애환도 담겨 있는 것이다

작가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뮌스터 공공미술은 노래방과 어린이도서관에서 시작한다 그만큼 현대미술은 생활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작가 Pierre Huyghe 작품명 앞만 보고 사는 삶 이후(After a life Ahead)’©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피에르 위그 지난번 서울시림미술관 뉴미디어 비엔날레에서도 수상을 했죠 그래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가다.아이스링크에서 디스토니아(전혀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신세계)를 찾다. 인기작이라 오전 개장 전부터 줄을 서야 하는 기풍경이 연출된다.

작년에 폐장한 아이스링크 건물을 건축적으로 해체하고 진흙투성이 바닥의 새로운 생태환경으로 구축한 이 생명공학적 조형의 주제는 '애프터 어라이프 어헤드'(After Alife Ahead)다. 여기서는 조각이라는 것이 하늘로 솟아 오르는 것만이 아니라 땅 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일종의 고정관념 깨기다

빙상경기장이 앞만 보고 개발위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작품이다 재개발로 파괴되고 버려진 공간을 살려낸다. 여기에는 물방개 등 해조류도 살고 있는 해조도 있고 한 쪽에는 새싹이 무리지어 자라는 공간이 있어 이곳이 마치 죽어가는 자연을 다시 살려주는 인큐베이터 같다 자연과 함께 사는 것 같이 살아가는 삶의 스타일 그런 여유을 주고 숨톰을 터준다 파괴된 자연의 자생력을 키워가는 모습을 암시하고 있다.

His cultivated landscapes turn out to be spaces for radical aesthetic experimentation. In Münster he is making use of far-reaching deconstruction and alteration measures along with bio-and media-technological interventions to transform the former ice-skating rink into one of his environments. http://www.mariangoodman.com/art…/nairy-baghramian/biography

[조상인기자 글 중에서] 아이스링크로 사용된 체육관 전체를 작품으로 바꿔놓은 프랑스 작가 피에르 위그의 ‘앞선 삶 이후(After a life Ahead)’가 개인적으로는 최고였다. 마치 고고학자의 발굴현장처럼 파놓은 빙상경기장 아래로 흙과 물이 드러나 있는데 고인 물에서 작은 물고기와 소라게·물방개 같은 것들이 꼬물거리며 살아간다. 하늘을 나는 벌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미생물도 이곳에 ‘살아 있다’. 작가는 인간이 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만든 문명의 이기는 인간을 위한 환경일 뿐이라는 사실을 지적하며 재개발을 위해 버려지는 건축물을 통해 자연이 어떻게 스스로 정화하고 치유하는지 보여준다. 언뜻 파헤쳐 놓은 것 같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숨통과 터전이 열린 복구이자 복귀인 셈이다.

작가 작품명 © Skulptur Projekte 2017, Foto: Henning Rogge

천지의 연결시켜 주는 안테나와 같은 역할을 하는 메신저로 우리나라의 솟대를 연상시키는 토템이네요. 일종의 미디어라고 보면 되겠죠.

뮌스터 공공미술 전시장이 있는 곳 © Skulptur Projekte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한 달을 남겨놓고 독일 대통령이 방문하다 © Skulptur Projekte 2017

대통령이 정말 해야 할 일 제1순위를 잘 지키고 있죠 © Skulptur Projekte 2017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로고

야 일단 모든 행사가 끝내고 나서 '야호'를 해치다

[뮌스터 미술관 LWL미술관] 소장품과 작품 소개

뮌스터 박물관 LWL Museum fur Kunst und Kultur in Munster

오토 딕스 작품

오토 딕스의 작품엔 전쟁 이후 공포, 파괴, 절망, 혼란, 모순의 사회 분위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독일문화원은 “딕스는 대사회적 파장이 강한 새로운 양상의 논쟁적으로 첨예화된 리얼리즘을 전개했다. 오토 딕스의 삶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히틀러 암살 계획 중 하나인 ‘뮌헨 피습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누명으로 게슈타포에 체포돼 옥살이를 했다. 쉰이 넘은 1945년에 ‘나치 돌격대’에 강제 징집돼 2차 대전을 치르기도 했다 -경향

작가 표현주의 기법의 전형을 보여주다 어둡고 무겁고 낯선 분위기 속 시대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키르히너(Ernst Ludwig Korchner 1880-1938) 커피 테이블 117*114cm 1908년 독일표현주의 대표적 작가

중상층 세명의 여인 어설픈 표정으로 그렇게 유쾌한 표정은 아니다 키르히너가 28살에 그린 작품으로 색의 대조에 대해서 배울 때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규칙을 지키기를 원하지 않았다. 역발상으로 오히려 더 강력한 시작효과를 얻기를 원했다 자신의 개성을 중시하면서 새로운 회화의 생성을 꿈꾸다

표현주의의 아버지 에드바드 뭉크(Edvard Munch)의 작품 울부짖는 소녀 1909작품 © LWL Museum

불안과 공포에서 잠시도 벗어나지 못하는 현대인의 자화상을 잘 표현하다 그는 인류의 비극인 세계대전과 인간의 죽음을 미리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뭉크는 평생 가족 중 어머니와 여동생이 일찍 죽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그의 작품에 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히 여성에 대한 공포감이 강했다. Das Weinende Madchen(The crying girl)

에밀 놀데(Emil Nolde 1867-1956) 정원 Burchard's Garden 64*82cm 1907년 작품 © LWL Museum

꽃의 색채에 사로잡혀 눈부신 광채가 넘치는 위 작품을 그렇지만 인상파의 색채를 가지고 있으나 그만큼 감각적이거나 유쾌하지는 않다 표현주의 흐름을 충실한 그러나 매우 우아하고 아름다운 그는 '다리파(Die Brucke)' 화가로 컬러의 폭풍우 같은 효과를 내려고 했다

오토딕스(Otto Dix 1891-1969) The Painter Willy Kriegel with a portrait of his wife

독일 표현주의 작가 중 하나 오토딕스 매우 중요한 현대작가다 초상화 속에 초상화를 그린 것으로 그에게 여성은 중요한 그림의 모델이었다. 그러나 그의 초상화는 기존의 것과는 다른 독창성을 보이고 있다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 Familie Wende(The Wende Family) 유화 150*125cm 1971 © LWL Museum

평범한 가족사진을 블러 효과를 줘서 전혀 새로운 회화작춤을 바꾸다 사진의 지우기를 통해서 역사를 더 선명하게 보게하는 묘미가 있다 리히터는 현존작가 중 가장 가격의 비싼 편에 속한다. Loan from a nonprofit foundation

요셉프 알베르스(Josef Albers 1888-1976) Homage to the square: selected 101*101cm 1959

우리가 사각형을 보는 관점을 다변화시키고 확장시켜 새로운 시각언어를 창출하다 그래서 마치 움직이는 것 같다는 착시를 일으킨다. 관객도 작품을 보면 다양한 사작형 직사각형을 상상하게 자극한다. 색채에는 가장 낮은 색도를 사용하여 작가만의 독특한 색채감각을 보인다 관객의 눈을 가물거리게 한다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na 1899-1968) Concetto Spaziale 67*75cm 1959 © LWL Museum

회화의 캔버스에 노이즈를 일으킨 작품이다 소리가 들리고 숨통을 트다 칼을 대다 이런 제스처는 회화에서 혁명적인 것이다 시공간을 하모니 속에 담아보려고 하다 이 작품의 제목이 개념이라고 하는 것이 붙어 있는데 일치할 수는 없는 엇나가는 그러나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그런 점을 암시한다  2차원에서 3차원을 열어준 획기적인 작품이다

피에르 술라주(Pierre Soulage 1919-) 2004년 12월 17일 그림 163X181CM 2004 © LWL Museum

검은 색이지만 검은 색이 아닌 것을 그리다 그래서 진짜 검은 색이 나올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보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광채가 나는 검은 색깔의 작품 각도에 따라 달라보이는 색채 하나의 형상으로 검은 색이 그 검은색의 영역을 넘어서는 전혀 새로운 검은 색을 발명한 셈이다.

아우구스트 막케(August Macke 1887-1914) Sunny Path 여름산책길 50*30cm 1913년 작품 © LWL Museum

막케는 독일 표현주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가로 이 작품은 여름을 지나 초가을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풍경의 우연성이 보이고 우아한 패션과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 뭔가 불분명해 보이기도 한다. 대조가 강하고 독특함이 넘친다. 그는 프랑스 화가 로베르 들로네와 친했고 그의 동시대비적 기법을 차용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그만의 색채를 이끌어냈다 그가 현대미술에 중요한 작가가 되는 바로 그 지점이 된다

백남준 몽골텐트(The Mongolian Tent) 250*500cm 1993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중 하나 재료:Felt tent, brone masks, empty TV monotors hay, candle, Buddha figure 뮌스터미술관소장 © LWL Museum

백남준 인류구원의 비상구나 관문으로 모든 것을 털고 가는 무소유적 삶의 양식인 유목 게마인샤프트를 제시하다 여기에 쓰인 재료는 역시 원시적 생명력을 강력하게 풍기는 오브제가 주 재료가 된다

미술전문지 편집장 클라우디아 미킬리스는 이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고 있네요 Claudia Miklis(Head of Press and Public Relations) "When I look at the tent, I hear Mongoilian nomade riding across steppes. Dust is kicked up, the smell of earth, sheep and grass penetrates my nose. It is fascinating how Paik succeeded in breathing so much life into his work, even through the subject matter is 'death'"

백남준 새로운 뉴미디어의 등장하는 시대에도 불구하고 유목적 디지털 세계를 논다 리히터와 폴케는 반대로 개인성을 더 강조하다

Skulptur Ausstellung in Münster 1977 [Sculpture Exhibition in Münster, 1977] In 1973 the residents of Münster reacted with outrage to the installation of George Rickey’s kinetic sculpture Drei rotierende Quadrate (Three Rotary Squares) on Engelenschanze. The public outcry gave Klaus Bußmann the idea of laying the foundations of a new open-minded approach to the medium of sculpture by means of an exhibition. Together with Kasper König, he curated a two-part exhibition that opened in 1977. While a survey show at the Westfälische Landesmuseum traced the history and development of modern sculpture, nine contemporary artists – most of them from the USA – accepted an invitation from the curators to create works in situ within the framework of a project in the city of Münster. The encounter between viewers and sculpture was thus extended beyond the museum sphere into public space.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패러다임 바꾼 백남준 18세기 모차르트가 듣는 음악에서 최고라면 자신은 20세기 보는 음악에서 최고라는 자부심 담긴 1997년 뮌스터 출품작 제목 <20세기를 위한 32대의 자동차:조용히 모차르트 레퀴엠을 연주하라> 여기서 32대 그가 1932년생을 말한다. 산업사회 도태와 정보사화의 도래도 암시한다. 그는 이 작품의 제안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의 특징은 조직화된 폭력, 미디어, 자동차 숭배이고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소비주의이며 폭력은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소비목록이다" 차안에 모차르트장엄미사곡 밤11시반까지 틀어 주민들의 엄청난 반발을 샀고 폭력의 진가를 작품을 통해 보여주다“until people complain about it” In 1997, ten years after creating TV-Buddha für Enten (TV Buddha for Ducks), the Korean artist Nam June Paik installed 32 silver-varnished vintage cars on the forecourt of Münster’s city palace. In the period between sunset and close to midnight Wolfgang Amadeus Mozart’s final composition Requiem was to be played – so long, in fact, “until people complain about it”,1 as Paik’s instructions stated. With the vehicle bodies arranged in groups of eight it was possible to identify different geometric forms – a triangle, a circle, a parallelogram and a line. The artist’s choice of vintage cars dating back to the

백남준의 '랜덤 액세스'는 바로 유목적 사유에서 온 것이다(?). 21세기에 유쾌하고 유연해야 한다. 가부장적인 위계질서의 질서정연한 질서 속에 살면 절대 이런 유목시대에 적응할 수 없다. 뇌 회로의 다양성이 중요하다. 백남준이 한반도 고립 단절되지 않았다 그것을 바로 네크워크에 몸을 던지는 그의 유머정신에서 왔다. 즉 노마드적 사고에서 온 것이다. 백남준은 상대방 지위와 학식과 집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자였다 폼 잡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가 뉴욕 프랫 미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단에 올라가 단 한마디 생큐로 끝낸 이유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대하는 방식이 네트워크 시대 필요한 지혜다. 그의 유머감각은 지성의 유연성에서 나온다. 이것이 백남준이 우리에게 주는 최고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