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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유튜브

[백남준&사이버] <17강> '사이버네틱스'와 동시대예술

[백남준&사이버] <17> '인공지능-전자화-디지털'시대 II 결국 지식과 정보를 많이 가진 사람일수록 위성 아트 시대에 사이버 영토를 더 많이 차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가? 백남준은 호모 사이버네티쿠스의 전형.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그 창시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는 누구(?) "위너가 전자시대 기술적 내부를 건설“ -백남준
https://www.youtube.com/watch?v=RqfZY_GxKYU&t=84s

중반후기 중요내용&어려운 부분, 1가지 질문 백남준 강좌 후 변화가 있는지 궁금(?). 백관장님 드디어 뉴욕타임스 읽기 시작 <이번주, 백남준week>1) 백남준 강좌, 중반후기 중요내용&어려운 부분, 2) 백남준 강좌 후 변화가 있는지 궁금(?). 백관장 드디어 뉴욕타임스 읽기 시작 지식확장은 늘 즐겁다. 3) 이번주, 백남준week 2019년 1월 29일 백남준 추모재 13주기 봉은사에서 이번음 주 금요일 2021년 1월 29일에 백남준 추모재 15주기 봉은사에서 있겠죠 

사이버 아트 혹은 위성 아트를 통해 지구상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문화 칭기즈칸 백남준. 1986년 바이바이 키플링을 통해 이슬람 영토까지 품다. 지식과 정보 확장은 늘 즐겁다. 공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즐거운 축제 중 하나이다.

폴란드에서 열린 전자아트전 1958-1979 '손과 얼굴 (Hand and Face)' 1961(29살 때) I 고뇌하며 깊은 성찰에 빠진 20대 모습

[진정한 소통을 위한 교육(EDU)] 5가지 과정을 통과해야 비로소 완성. 1) 입력의 단계 2) 출력의 단계 3) 소통 감동이 이루어지는 단계 4) 삶의 변화가 오는 단계 5) 전자화(사이버네틱스)가 이론 만이 아니라 내 삶의 전반적 기조가 되는 단계: 백남준에게 중요한 것을 '앎'이 아니고 '삶'이다. 즉 '사이버네틱스'라는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고 사이버네틱스라는 것이 예술이 되어 삶을 바꾸는 것이다.

[1][백남준&사이버] <17번째 백남준 강좌> '인공지능-전자화-디지털'시대+[목포 이야기-백남준&인터넷&김대중] I <18번째 백남준 강좌> '백남준&돈 철학'백남준&돈철학: 돈의 주인으로 사는 삶의 예술(Savoir Vivre)' <예고편> I <19번째 백남준 강좌> 백남준&사기론&교란미학의 창시자. 기존 체계와 그런 질서의 교란자로서 백남준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사기가 횡행하기에 그것을 극복하려면 예술가는 그 모든 사기를 사기 치는 교란자가 될 수밖에 없다. 백남준의 예술가론은 교란시키는 것. 그래서 백남준의 사기론은 이런 교란의 미학과 관련이 있다. I <20번째 백남준 강좌> 백남준&뉴욕행] 백남준 1964년 미국전성기 뉴욕 도착, 50년만 나는 백남준을 뉴욕에서 만나다

사이버그 & 사이버네틱스 인간·동물·기계의 혼종, 사이보그 

[3]<오늘 포인트:백남준에게 중요한 것을 '앎'이 아니고 '삶'>

"그러나 사실 강자는 없는 것이다" -1984년 3월 23일 박경리. [평] 이 세상에 강자는 없다. 이 세상에 강대국은 없다. 요즘 미국을 보라. 백남준이 진정한 강자

다음 주 금요일 2021년 1월 29일에 백남준 추모재 15주기 봉은사에서 있겠죠. 아래는 13주기 사진 II '사이버네틱스와 인터미디어 미학'이 담긴 자신의 <예술 골자>를 백남준은 아래와 같이 요약하다. "1) 카타르시스, 2) 순간의 환희, 3) 모든 감각의 만족, 4) 전인격 총체적 개입, 5) 극도의 전자적 충동, 6) 두뇌의 전기자기 진동, 7) 직접 접촉 예술, 8) 전자와 생리학의 시뮬레이션, 9)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 초고속도로), 10) 정신의 사이버네틱스, 11) 인공지능신진대사, 12) 다매체 다방향 상응주의(Correspondence) 등등." 그는 확실하게 '전자적 축제주의자'이면서 '감각적 쾌락주의자'다.

백남준은 1948년에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니버가 발명한 사이버네틱스[사이버세상])라는 실험적 인식론을 수학적, 생리학적, 과학적 기술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사유를 유도하는 시대의 패러다임가상 디지털 세상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수정하는 지식의 방편이 될 수 있음을 내비치다.

1월 24일 일요일 날씨 겨울 속 봄이 왔다 내 마음 속 얼어붙은 냇물이 다 녹아서 콸콸 흘러내리다. “당신은 당신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끊임없이 당신이 되고, 당신 자신의 주인이 되고 조각가가 되십시오" - 니체 [평] 결국 초인이라 자신의 삶에서 주인으로 사는 것을 뜻이겠죠.

<백남준 한국이 1998년 IMF로 625한국전쟁 이상의 참혹한 고통당할 때 한 위로의 말> “IMF 빚 갚는 것은 5년, 길어도 10년이면 끝날 거야. 예술은 그런 걸 상대하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예술이 상대하는 건 영원이야.”

<목포기행 이야기 백남준&김대중> seulsong.tistory.com/1355

 

[목포아트투어] 붉은 동백 햇살이 빚은 '풍경'

[2021년 1월 20일 목포 방문] 문화예술의 지방화 한국이 선진화되는데 급선무. 백해영 갤러리 서울본관 지방 순회전 등 시청 문화행정과들과 긴밀한 대화와 협의 예정이다. 목포엔 시가 소지한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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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이 살아있다면 BTS를 광팬이었을 것이다. 서태지 팬이기도 했다

[1]<목포기행 이야기 백남준&김대중>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터넷 강국으로 만든 김대중 그리고 BTS&마이클 잭슨] 김대중의 위대한 점은 백남준처럼 대중문화를 제대로 이해했다. 서태지, 마이클 잭슨 생존하고 있었다면  BTS를 얼마나 사랑할까.

김대중 대통령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정보시대를 대비하다

[백남준&인터넷&김대중] 돌아가서 백남준 2000년 김대중대통령으로부터 금관문화훈장 받다. 그 수상의 동기: "백남준은 뉴욕 구겐하임 전과 새천년 준비위원 활동 등 공로로 김대중 정부로부터 2000년 '문화의 날'에 '금관문화훈장'을 받는다.
이날 수상 소감에서 "내가 이런 좋은 상을 탈 줄 알았다면, '백'씨 대신 '천'씨 성을 타고나 1000년 동안 오래오래 살면서 훌륭한 작품을 더 만들면 좋았을 것"이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도 보였다.

[3][김대중대통령] 그는 백남준과에 속하는 사람. 정보마인드가 강했다. 정보와 지식 강국을 열망하다. 새천년들어서자 국민컴퓨터 보급과 함께 인터넷 ADSL 망을 세계에서 제일 먼저 깔다. (1998년 8월 시범 서비스 시작, 1999년 4월 사용 서비스 시작)ADSL 정보시대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었다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소통이 가능한 나라가 되었다 한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다. 케이방역의 성공은 여기서 시작.
[결론]지금 전 세계가 민주주의에 대한 절망으로 고통을 당하지만 한국만이 민주주의을 본원하고 코로나 대비를 잘 하는 것을 바로 한글과 인터넷 때문이다. 가장 빠른 스마트폰으로 전 국민이 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모든 사람은 지식근로자(지식노동자) 바로 그 자체이다.
[결론]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인터넷 강국으로 만든 김대중 [코로나 포스트 시대] 이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미국이 한국을 모델로 할 수밖에 없다. 중국 빼고 한국은 경제와 코로나를 다 잡은 나라로 유일하다
[경기신문] <문 정권의 문화와 교육에서 실패 그러나 케이 방역과 경제는 성공하다>
문재인 정부 경제, 일본 추월 가속화 * 무디스 신용평가 韓 1등급, 日 3등급 * 코로나19 속 경제성장률 -1%대 사수 * 1인당 구매력지수, 올해 3천달러 격차 * 日무역보복, 기술독립·불매운동 나비효과 // 2021년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런던에서 열리는 G7 회원국 (영국, 미국, 캐나다, 일본, 프랑스, 독일 및 이탈리아) 외에도 영국 정부는 한국 등을 토론에 초청 [평] 현재 전 세계에서 문재인 대통령보다 세계 시민들 더 강력하게 각인되는 정치 지도자는 없다. // 지구 상에 문 대통령처럼 세계 시민들을 사로잡을 있는 정치가는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문재인이 G7에 초대받은 이유인가(?)// 우리는 세계 10분의 1밖에 모른다. 우리는 스스로 우리를 모른다. 한국이 지도자 국가가 될 수밖에 없다. 영국이 한국을 G7에 초대하는 이유다. 박원순이 서울을 세계 4대 스마트 도시에 들어가게 하다. 지하철 등 프리 와이파이, 수준 높은 화장실 문화, 야간에 도시 안전지수 세계 1위, 케이 방역 등등

<다음 주 18강 미리 맛보기 [백남준&돈철학]> '적자와 기부' 사이에서 돈을 잘 쓰다.
<1>[백남준&돈철학]
[1]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만들면서 40만 달러가 들었다그 중 일부는 록펠러 재단 문화 기금(지원금)이 들어갔고 몇몇 방송과 개인의 지원금이 들어갔지만 그럼에도 17만 달러 빚졌다. 그러는 바람에 그것 갚느라고 말할 수 없는 고생과 고통을 감수해야 했지만 인류에게 인터넷이라는 최고의 선물을 했기에 그는 지구상에서 돈을 가장 잘 쓴 사람이 되었다.
[2]백남준은 인터넷 개념을 만들 때 3가지 원칙이 있었다 1) 가장 싸게 저비용 2) 가장 접근에서 쉽게 3) 가장 빠르게 [...] 가장 적은 돈으로 인류에게 가장 많은 기여를 한 사람이 돈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 된다. 정보소외자를 없게 하려고 <아래> 백남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 위성아트 후 진 빚을 갚지 못해 비행기 안에서 괴로워하는 모습

<2>[백남준&돈철학]
[1]백남준 1993년 한국의 동네미술수준을 세계미술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미국의 세계적 수준의 첨단 휘트니 현대미술을 과천국립미술관에서 순회전을 열고 국립이 예산부족해 당시 2억 기부. 지금 시세로 3억-4억(?) 백남준 돈 잘 쓰다. 그 돈이 어디서 나왔나 베니스황금사자상과 휘트니비엔날레 수상하면서 받은 기금

[2]<백남준은 왜 사이버 세상을 좋아했나? 그것은 뭐든지 저비용으로 정보를 쉽게 빠르게 소통하고 전달할 수 있기 때문> <3>[백남준&돈철학] 개인만 아니라 사회만 아니라 국가에도 돈철학이 필요하다.
[1]프랑스어에 '사부아르 비브르(savoir vivre=know how to live)' 말이 있다. 여기서 savoir는 '…을(를) (배워서) 할 줄 알다'란 동사이고, vivre는 '살다'라는 동사이다. 그러므로 savoir-vivre란 '살 줄 알다'란 뜻이 된다.
[2]한국적 예를 들면 淸貧樂道 (저비용 고행복)같은 것이 있었다. 시대에 뒤떨어진 것처럼 보이나 당시 조선시대 가난한 한반도 선비들이 잘 사는 방법이다. 자본주의 발달하면서 풍요 속 빈곤 등장 돈을 벌수록 마음이 허전하고 더 가난해진다.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 빠진다. 일종의 중독 위험 / 樂道(도를 즐긴다) 어떻게 청빈한 삶을 통해서 이것을 영어로 고치면 low price high happiness이다. 빈궁하지만 부자로 사는 '사부아르 비브르'인 셈이다.
[3] 윤동주와 아버지, 케네디, 카네기, 록펠러 그러나 히틀러 등등 이야기... [4] 네덜란드 최고부자시절 <바니타스>회화 등장 그리고
[5] 구약성서에 '희년선포'이 있다. 50년 지나면 모든 것이 원위치된다. 다시 말해서 빈부차가 심해지면 50년이 지나면 처음부터 다시 제로로 시작한다. 유태인 공동체 위기 예방. 매우 혁신적. 미국 신자유주의 위기
[5]<타인에게는 저비용, 나에게는 고비용> 백남준 돈 철학의 핵심어는 '저비용'이다. 그래야 정보 소외자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만들 때는 고비용이다.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기에

<<다시 백남준 이야기로 돌아가서>>

[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솔르윗 작품은 회화로 그린 '전자파 아트' '사이버네틱스 아트'로 봐도 될 것 같다.

[1] <맥루언 루트 3.5와&이경희 루트 3.5 다른 점 같은 점>공식 다시 등장 <25년만에 공개된 백남준 콜라주 드로잉> 이경희 여사가 백남준의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겨우 일어나 거동을 시작했을 무렵인 1996년 가을에 이경희 여사에게 73장의 콜라주 드로잉을 보냈다.그런데 이경희 여사는 이 작품을 2019년 쯤에 공개하다. 25년만에 공개한 셈인데 왜 이렇게 늦었나 한국사회가 백남준보다 25년 뒤쳐지기 때문이다. 당시 이것을 공개할 수 없었다. 그만큼 성의 표현에서 뒤진 것이다.

1965년 백남준 뉴욕 전자아트 전 공식

여기에도 루트 3.5가 자주 등장한다. 여기에는 이 세상에서 가장 에로틱한 사람이 거의 대부분을 찾지한다. 백남준은 '성'에서 촉이 예민한 작가다. 예술적 에로티시즘에서 백남준을 따라갈 작가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뒤샹이 그런 시도를 했지만 백남준 만큼은 못했다. 가장 위대한 예술가를 에로티시즘에서 가장 창조적이고 능수능란해야 한다. 백남준은 이 드로잉을 "나의 유일한 작품"이라고 했다.

[2]<맥루언 루트 3.5와&이경희 루트 3.5> 백남준 1996년 이경희 여사에게 그려서 보낸 드로잉 편지에도 등장한다. 맥루언 루트 3.5와 같이 1996년에는 이경희 루트 3.5도 있다 이경희 여사에게 보낸 드로잉에도 나타난다."여기서 3.5를 수학적으로 풀면 세곱하고도 절반을 더 가지는 것이다. 시간이란 단순히 추상적인 영역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시간을 들여서 체험하고 살아온 사람의 느낌에 대한 부분이다" -김남수.

백남준 1996년 이경희 여사에게 그려서 보낸 드로잉 편지에도 등장한다.

맥루언 루트 3.5라는 것이 있는데 1996년에는 이경희 루트 3.5도 있다. 이여사에게 보낸 드로잉에도 나타난다."여기서 3.5를 수학적으로 풀면 세곱하고도 절반을 더 가지는 것이다. 시간이란 단순히 추상적인 영역이 아니라 삶의 구체적 시간을 들여서 체험하고 살아온 사람의 느낌에 대한 부분이다" -김남수.

[5]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 -백남준 [백남준과 건축가 김원 대담]
질문: <다다익선> 수명에 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눠보신 적이 있으셨나요?
대답: 내 기억에 그때 나오던 브라운관 티비의 수명이 평균적으로 아마 8만 시간 정도라고 들었어요. 하루에 티브이를 몇 시간 트느냐에 따라서 티브이가 몇 년 갈 수 있을지 계산이 될 텐데, 그러면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가 문제였지. 나는 모니터 화면이 나갈까 봐 걱정이었어. 보통 일반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불이 나가면 작품이 시체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고. 그런데 백 선생은 그거 뭐 고민할 거리도 안 된다는 태도였어요. ‘그 뭐 수명이 다 되면 할 수 없지’ 뭐 이런 말씀이야. (웃음)

[해설] 그때 백 선생이 ‘인생은 길고 예술은 짧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원래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않잖아요. 그 유명한 말 알죠?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리스 아테네부터 이천 년을 내려와도 예술은 예술이고 그때 그걸 만든 사람들은 다 죽어서 아무도 기억을 못 하잖아요. 그래서 보통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는 말을 믿는데, 그걸 한마디로 엎어버린 거야. 예술이 지금 예술이고 그 후는 난 모른다는 거지. 지금 여기서 번쩍번쩍하는 이게 중요하다는 거죠. 백 선생이 한 일들을 생각해보니까 조금씩 이해가 되더라고. 백 선생이 예전에 한 예술들 중에 피아노를 때려 부순다든지 한 것들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기록이나 기억, 사진으로 남아있는 걸로 끝이지 그 장면이 다음에 그대로 완벽하게 재현되는 것은 아니란 말이죠. 예술은 정말 찰나의 것인가 봐요.

[6]1978년 백남준 뒤셀도르프 미대 교수 취임 copyright ©백남준 All rights reserved 국립현대미술관 백남준 아카이브 전시 때 사진
<느닷없는 나의 에피소드>[1]뉴욕 플랫 인스티튜드 근처 게스트하우스 게시판 뉴욕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 영어 빼고 1위: 스페인어 중남미 사람들 많다 2위: 중국어, 3위: 러시아어, 5위: 프랑스어, 8위: 한국어, 9위: 폴란드어.
그리고 "자신 나라를 잘 알고 싶다면 자신 나라를 떠나라" -Henry Rollins 인상적

[2]2015년 처음 백해영 갤러리 방문 

백해영갤러리와 처음 랑데부하다. 기자들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다.

엘로디 등등 옛 친구들 반갑게 만나다.
<2021년 1월 20일 목포아트기행>
[2021년 1월 20일 목포 방문] 문화예술의 지방화 한국이 선진화되는데 급선무. 백해영 갤러리 서울본관 지방 순회전 등 시청 문화행정과들과 긴밀한 대화와 협의 예정이다. 목포엔 시가 소지한 문화공간이 상당히 많다. 목포 관련 안내로 5곳 예비 전시장 순회 1) 노적봉 예술공원 미술관(목포 시립미술관) 2) 성옥기념관 3) 오거리 문화센터 4)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 5) 아트센터 신선미술관

목포 항구 선착지 어려서 본 마산항구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목포 출신 김암기 작가> 1992 작품 봄이 움트다. 김환기와 친척관계

노적봉 예술공원 미술관 목포 시립미술관 위 사진과 비교가 된다.

한영섭 피카소보다 더 훌륭하다

[4] 한영섭 성옥미술관: 이번 기행의 큰 수확>[한영섭(Han Yeongseop) 1941년 평안남도 개천 출생. 자갈돌 위에 한지를 바르거나 구옥(舊屋)의 석가래,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 사용] 한영섭 작가는 거대한 크기의 한지회화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한지와 탁본의 화가’ 국내·해외에서 왕성한 활동 중에 있다.

사물의 표면 질감을 찍어내고 떠내는 일련의 작업 과정을 통해 지극히 단순하고 절제된 전면 회화 양식의 화폭 위에 자연 속 깊이 내재된 운율을 표출하는데, 이는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온 그만의 고집스러운 작업 방식이다. 그는 한지에 대한 실험 정신이 남다른데, 두꺼운 요철지를 이용하여 새로운 한지의 질감을 살리는 방식을 고수한다. 한때는 자갈돌 위에 한지를 바르거나 구옥(舊屋)의 석가래, 아크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렇듯 수십 년 간의 고민을 통해 그는 우리 한지가 지닌 회화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며, 이는 세계 곳곳에서 그의 작품을 주목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거대한 작품에서 뿜어내는 아우라와 시적 운율은 그의 일상 속에서 비롯된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 무심한 흙바닥 등 그가 관찰하고 품어낸 자연은 작고 소박하지만 그 안에서 그가 찾아낸 세계는 거대하고 무한한 우주인 것이다.

[5]남도의 식단, 반찬이 다양하다. 물 맛과 소금 맛과 해풍의 기운 그리고 무엇보다 햇살이 몸에 깊이 스며들 정도로 좋다. 벌써 굴비가 다시 그립다 진동 횟집[6]목포 근대역사관 <목포 근대역사관> 찾은 관광객들, 자신의 동선을 확인하면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있다 <추신> “당신은 당신만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끊임없이 당신이 되고, 당신 자신의 주인이 되고 조각가가 되십시오" - 니체 [평] 결국 초인이라 자신의 삶에서 주인으로 사는 것을 뜻하리라. 한국인의 정체성 혹은 목포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는 것이 바로 주인으로 사는 것이리라.

 [관련 사이트] http://seulsong.tistory.com/1351 

 

[백남준]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

2013년 2월 3일 이영철 관장 인터뷰 원본 소개 당시 내용이 너무 많고 길어 줄일 수 밖에 없었다 <제목 백남준 시대가 왔지만 백남준 연구는 없다> [이제는 백남준을 이야기 할 때②] 이영철 전 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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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백남준&이영철] '이영철' 백남준아트센터 초대관장 편집하지 않는 내용 이 인터뷰하는데 하루 종일 걸리다. 여기서 오늘의 주제가 나온다.

질문: 당시 진보미술계는 백남준에 대한 오해가 있었다 하던데요? 대답: "백남준에 대해 진보 쪽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기술의 발전이 예술의 발전에 결정적이라는 '기술결정론'은 받아들일 수 없었으니까요. 여러 사회경제적 문제, 타자, 소수자 문제에는 별반 관심이 없고 세상의 어둔 면을 개선하려는 면이 없다고 봤어요. 그래서 진보 쪽에서는 백남준을 '맥루한'(미디어학자)주의자 본 거죠. 당시 유럽에선 '레비-스트로스'의 야생적 사고가 지식계의 축을 뒤흔들었고 '노버트 위너(N. Wiener)'의 사이버네틱스이론 등이 한참 영향을 미칠 때죠. 또한 서구문명의 몰락에 절규하며 새 문화를 그리려 한 잔혹극의 창시자 '앙토냉 아르토(A. Artaud)'도 있었고요. 백남준은 이렇듯 당대 가장 선진적 관점에 관심이 많았어요."

[8] 질문: 백남준을'천년 써먹을 세계적 문화브랜드'라는데 정부가 어떻게 활용해야?

대답:이영철: 천년 써먹을 세계적 문화브랜드' 그건 구호일 뿐입니다. '뒤샹'도 20세기 현대미술의 창시자가 되는데 시간이 꽤 많이 걸렸어요. 난 한국사회의 지성사에 예술의 중요성을 입증하는데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한국미술계에 묻고 싶어요. 예술이 문화의 꽃이라는 걸 누구나 당연하게 여길 때 우리가 선진국이 되는 거죠.

지금은 모든 국민이 첨단의 스마트 폰을 가지고 다니는 1인 기업시대, 1인 미디어 방송시대,그래서 모든 국민이 '지식근로자'잖아요. 이럴 때 정부가 국민의 지적 수준을 높이고 백남준의 가치도 전국적으로 개화시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김구가 원했고 백남준이 실현하려 했던 두뇌강국, 문화강국이 되는 거죠."

<유라시아 시대 이야기 다시 시작, 유목민의 삶>[1] 한국에서 가장 먼 중앙아시아 러시아 벨라루스(요즘 민주화 시위로 홍역을 앓고 있다) 고려인 반찬가게 한국인은 반찬 없이 살 수 없다. 이곳 고려인들 50대 넘어도 한국인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부채춤을 배운다. 백남준 말대로 춤과 노래는 머리 속에 담고 다니기에 유목에서 전혀 문제 없다.

50대 여인들 조국을 잃지 않기 위해서 부채춤

20세기 가장 위대한 서양의 인물은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뿐이다. 그는 말했다. "야만을 믿는 그 자체가 최고의 야만이다" 스토로스 선사시대를 연구해 보니 (전쟁과 혁명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인) 20세기가 얼마나 야만인가 특히 서양의 문화가 야만인가를 얼마나 발견하게 된 것이다. 무지한 사람이 야만이라는 말을 함부로 쓰는 것이다.

반찬가게

<백남준과 IMF> 백남준 한국이 1998년 IMF로 625한국전쟁 이상의 참혹한 고통 당할 때 한 위로의 말 “IMF 빚 갚는 것은 5년, 길어도 10년이면 끝날 거야. 예술은 그런 걸 상대하는 게 아니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어. 예술이 상대하는 건 영원이야.”<예술세계 되짚어 보자> 3주기 맞아 회고 세미나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움츠러들어 있던 1998년 1월, 미국의 백남준(뉴욕 1964년 공연)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조국을 위로했다.
[5] 프랑스는 사전의 나라다. 18세기 백과사전파가 유럽에서 처음 생겼다. 사실 동양의 공맹사상을 접하고 만든 것이다. 하여간 프랑스의 세계적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국제 사전>이 나왔다. 한 학자를 연구하기 위한 사전이다. 역시 프랑스답다. 우리나라도 <백남준 국제사전> 나와야 한다. www.cnrseditions.fr/catalogue/philosophie-et-histoire-des-idees/dictionnaire-international-bourdieu/?fbclid=IwAR2NDGTgUMlBsrD7Lb8cg25XyaWZLpc-Nj7UOwXeaklSR_sWTmRufDi-VcA  Dictionnaire international Bourdieu - CNRS Editions Dictionnaire international Bourdieu - (EAN13 : 9782271082039) édité par CNRS Editions - Près de 600 notices, une équipe de 126 auteurs venus de vingt pays et réunissant les meilleurs spécialistes de Pierre Bourdieu, sociologues, politistes, www.cnrseditions.fr

 

Dictionnaire international Bourdieu - CNRS Editions

Dictionnaire international Bourdieu - (EAN13 : 9782271082039) édité par CNRS Editions - Près de 600 notices, une équipe de 126 auteurs venus de vingt pays et réunissant les meilleurs spécialistes de Pierre Bourdieu, sociologues, politistes,

www.cnrseditions.fr

[6]<진화, 혁명, 결의> 4번째 작품 ‘로베스피에르', 혁명, 결의> ‘로베스피에르'

백남준 ‘로베스피에르' 1989

백남준 유럽 민주주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프랑스 대혁명의 당위성에 대해 물는다. 그리고 그 폭력성을 비판하다. ‘혁명은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나?’란 문구를 써넣었다. 서양의 최고 역사 사건을 풍자하다. 석판화 연작 <진화, 혁명, 결의>의 네 번째 작품 ‘로베스피에르’. 18세기 프랑스 혁명가 로베스피에르를 상징하는 로봇 그림 양옆으로

[7]<백남준 정치에 관심이 높은 예술가 정치적 촉이 예민한 작가> 익살스럽고 심오한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볼거리는 프랑스혁명을 다룬 석판화 연작이다. 1989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혁명 200주년을 기념한 영상 조형물 작업을 의뢰받은 뒤 구상한 작품이다. 
당대 혁명가 8명을 상징한 로봇 이미지 석판화 연작 8점이 나왔다. 로봇 그림마다 여러 나라말로 된 문장과 암호 같은 기호를 가득 적은 백남준의 필적이 작은 화면에 함께 들어가 있다.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헌영, 조만식

이 작품을 통해 <한국정치의 저속함을 비꼬다>혁명기 암살된 마라를 다룬 두 번째 작품을 보면 로봇의 얼굴 부분에 이승만, 김구, 여운형, 박헌영, 조만식 같은 국내 해방 공간의 주요 정객의 한자 이름과 ‘죽는다’ ‘바보’ 같은 문장·단어를 뒤섞어 적었다.

[8] 이어 사람 얼굴이 들어간 티브이 모니터와 뜻 모를 기호를 줄줄이 그려놓아 마치 한국과 프랑스의 혁명사가 얽힌 암호 그림 같은 인상을 준다. 한불 민주주의 역사 비교

[9]프랑스 혁명가 조르주 당통을 다룬 석판화에는 “나는 자식을 하나도 안 만들었으나, 로봇은 100마리나 만들었다”는 다소 엉뚱한 술회를 털어놓으며 역사의 무상을 설파한다. 석판화 외에도 컬러텔레비전 초창기에 나왔던 화면 조정 화면을 캔버스에 재현한 뒤, 그 위에 김소월의 시구나 ‘가나다라’ 등 한글 자모를 적은 작품도 보이는데, 선승의 게송이나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일어 등으로 적은 작품 속 문장과 기호를 탐구하는 ‘작가 도상학’의 지평이 열릴까. 미술사가나 기호학 전문가들이 주목한다면, 거장백남준의 깊고 넓은 내면을 새롭게 이해하는 통로가 생길 듯 -한겨레(노형석)

<<[리뷰]>> 지난번 강좌 백남준 어록에 대해
[1]"백남준이 평생 해온 예술의 주제 중 하나가 소통와 참여 그래야 전쟁을 방지 가능

[2]예술가는 외줄 타는 사람.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역사를 쓰는 게 예술 -백남준

[3] 오늘 2부 본론에서는 백남준의 말 어록에 대해서 소개:
백남준(1962) 30살 발언: "황색 재앙은 바로 나다(내가 서구를 다 쓸어버릴 황화다)" 
백남준(1992) 60살 발언: "서양의 룰로 이길 수 없다면 그 룰을 바꿔라" 자신감 넘치다. 이 두 마디로 서구와 모든 게임이 끝났다.

백남준의 시간 과거(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현재가 유토피아, 미래는 지금
[0]백남준을 연상시키는 글 1. "독재는 무지에서 피어난다" - 조지 오웰. 무지는 정보와 지식의 턱없는 결핍에서 온다. 가짜 뉴스에 속으면 오는 것이다. 가짜 뉴스가 많은 것은 그것 때문에 이득을 보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2. 공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놀랍고 즐거운 축제 중 하나이다. 3. 공자의 말씀 서로 예의를 지켜야 한다. 참 어려운 이야기지만 이해가 된다. 나이 먹어가면서 철 드는 과정인가 4. “정신분석학은 무지를 치료하는 처방이다. 헛된 소리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 - 자크 라캉

[1] 白南凖의 生涯와 藝術 백남준은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공존.”라고 말한다.

[2] 백남준은 이렇게 말했다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

[3]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바라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희랍인 조르바 그 어느 것에 얽매이지 않는다. 나는 사랑을 할 수 있기에 자유롭다.

[4] 예술은 밋밋한 이 세계에 양념과 같은 것이다. 이 상투적인 세계에 그나마 예술적 충격이 없으면 인간들은 정말 스스로 파멸할 것이다. 예술이 위대해서가 아니라 건조한 세상이 재미없다 보니 예술이 비정상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위대한 것처럼 보일 따름이다

[5] -창조가 없는 불확실성은 있지만 불확실성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이 전람회를 끌어온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무슨 음식이나 깨뜨려 먹는 강한 이빨을 주려고 이 고생스런 쇼를 하고 있는 것이다. (1993년 휘트니비엔날레 서울 순회전을 기획하며)

[6]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세계 최초의 쌍방향 방송이다. 나는 이것을 염라대왕 앞에 가서도 자랑할 수 있다. TV 문화는 레이더로 시작되었으며, 레이더는 쌍방향이다. 즉 TV는 쌍방향에서 시작된 것이다.

[7] 나의 환희는 거칠 것 없어라. 1977 그해 결혼 1978년 교수취임

[8] 난 몽골을 좋아해, 몽골 사람들하고 우리들하고 3천 년 전에 헤어졌는데 그 3천 년 전 우리 것을 몽고 사람들이 보존하고 있어요. 난 공자, 노자, 이런 사람들 이전을 좋아해요. 신석기시대 같은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리고 후대로 내려올수록 역사가 엉터리입니다. 대부분 읽고 생각해볼 가치가 없는 쓰레기뿐입니다. 백남준 (김용옥, <석도화론> 중에서), 2001

[9] 나는 TV로 작업을 하면 할수록 신석기시대가 떠오른다. DNA는 인종차별주의가 아니다, 1988

<비디아 앤 비디올로지 (1959-1973)>, 1974

[1]<센티멘털한 컴퓨터> "길거리에 비가 내리듯 내 가슴에 비가 내린다"라고" 베블렌이 말한다. 나는.나는 " 내 가슴에 비가 내리듯 내 컴퓨터에 비가 내린다"라고" 말하겠다."내 컴퓨터에 비가 내리네"가" 나의 비디오 첫 작품이 될 것이다. 그것은. 현상의 비(자연)와 컴퓨터 비(기계)의 혼합이다. 나의. 두 번째 작품은 센티멘탈한 컴퓨터 되다.

[2] 콜라주가 오일 페인팅을 대신하듯이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신할 것이다. <기계의인간화 예술화>

[3] 사람들은 내게 왜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하느냐고 많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그들에게 생중계 위성방송은 나의 무모함에 와 닿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모험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고 생방송은 언제 무엇이 일어날지 모르는 현실감을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4] 인공위성 생중계는 베타멕스처럼 리와인드가 안 된다.

[5] 우리들의 인생처럼-내 인생의 하나의 행운은 존 케이지가 완전 성공하기 전에, 요셉, 보이스가 거의 무명일 때에 만나 놓은 것이다. 따라서. 금세기의 두 연장자와 역경 시대의 동지로서 동등하게 교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6] 나는 한국 문화를 수출하기 위해 외국을 맴도는 문화현상 혹은 문화장사꾼이다.

[7] 한마디로 전위예술은 신화를 파는 예술이다.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다.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다.

[8] 한국에 비빔밥 정신이 있는 한 멀티미디어 시대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9] 콜라주가 유화를 대체하듯 브라운관이 캔버스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1] 선생께서는 비디오아트가 앞으로 커다란 발전을 맞게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물론 그러리라 확신합니다. 마르셀 뒤샹은 이미 비디오 아트를 제외하곤 모든 것을 다 이뤄놓았습니다. 그는 입구는 커다랗게 만들어 놓고, 출구는 아주 작게 만들어 놓았지요. 그 조그마한 출구가 바로 비디오아트입니다. 그리로 나가면 우리는 마르셀 뒤샹의 영향권 밖으로 나가는 셈입니다. “마르셀 뒤샹은 비디오를 생각하지 않았다”(1974년 이르멜린 리비어와의 인터뷰), <백남준 : 말에서 크리스토까지>, 2009

[2] 난 구라파에 가서 보고 음악이나 미술 수준에 관하여 매우 실망을 느꼈다. 내가 가서 본 르네상스 이후의 위대한 실물들이 너무 초라하게 보였다. 그러나 거대한 사원에 들어가서는 좀 위압감을 느꼈다. 그 위압감의 본질이 고딕의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공간 처리에도 있겠지만 난 무엇보다도 스테인드글라스의 신비로움에 감명을 받았다. 그것은 벽에 건 그림과는 달리 빛이 투과한다는 것이 특징이다. 빛이 반사되는 것이 아니라 빛이 저 건너 바깥에 있다. 그리고 그 바깥에 있는 빛 때문에 인포메이션이 생겨난다. 그래서 난 그걸 좋아했고 그것을 내 아트로 옮겨보았다.(김용옥, <석도화론>, 2001)
[2] 나의 실험적 텔레비전은 “완전 범죄”를 가능케 한 최초의 예술작품이다. <실험TV 전시회의 후주곡>, 1964

[3] 미국인들은 부자이기 때문에 항상 즐거워하거나 자극받을 필요는 없다. 미국에는 지루한 음악을 가능케 하는 마음의 부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지루한 음악을 작곡하지 않는다. 나는 가난한 나라 출신이고 나 자신도 가난하다. 나는 매 순간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어야 한다.

[4] 레오나르도처럼 정확하게 / 피카소처럼 자유분방하게 르노와르처럼 화려하게 /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풀록처럼 간결하게 /제스퍼 존스처럼 서정적으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텔레비전 스크린 캔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 백남준-아베 영상합성기”, <비디아 앤 비디올로지 (1959-1973)>, 1974

[5] 영원성의 숭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1965 영원에 대한 숭배 인류의 가장 큰 과오, 우상숭배를 말하는가 아니면 영원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메시지인가

[6] 나는 기계에 대한 저항으로서 기계를 사용한다. 1980

[7]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변화다. 백남준 강좌를 통해서 변화가 오면 성공이다
[7] 백남준 첫 전시 16개 개념 중 하나가 '내용 없는 시간(무시간)'을 착안하다. 백남준과 장자: 피리 속이 비어야(무음악) 아름다운 소리가 나고, 바람(음악)을 만나야 울림이 생긴다(진정한 소통이 일어난다).
[8] 원래 예술이란 사기다. 속이고 속는 거다. 독재자가 대중을 속이니까 예술가는 독재자를 속이는 사기꾼, 그러니까 사기꾼의 사기꾼이다. 고등 사기꾼 말이다. 1984

[9]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다. 한마디로. 전위 예술은 신화를 파는 예술이다. 자유를. 위한 자유의 추구이며, 무목적적인 실험이기도 하다. 규칙이. 없는 게임이기 때문에 객관적 평가란 힘들다.

[1] 만약 현대예술이 고등 사기라면, 비디오는 5차원의 사기인 것이다. 1986

[2] 얼마만큼이 생이며 얼마만큼이 연출이며 얼마만큼이 사기가 되느냐.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진리는 가면의 진리다. 월간<춤>, 1986년 11월. 요즘 가짜 뉴스의 홍수시대 

[3] 백남준은 한국이 경제성장의 기적을 이룩한 것은 재벌이 아니라 바로 시장통 사람들로 보다.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 사람들 서민들 덕으로> "나는 한국인의 가능성과 생명력을 남대문시장, 동대문시장에서 찾는다. 세계경제의 경쟁력은 유통과 자유시장 기능인데 남대문과 동대문시장은 이 문제를 1백 년 전에 이미 해결하여 놓았던 것이다. 일제 하에서도, 6·25 동란과 군사독재, 부정부패, 산업화, 재벌독점, 환경오염에서도 이 두 시장은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 불만 났다 하면 제일 먼저 터지고 타는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 시장 불타 폭삭 주저앉았나 싶더니 다음날 여지없이 제일 먼저 문을 여는 곳 전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먹지 않는 이런 곳을 경제속도가 달라졌다고 방치하면 근본을 잃는다" -1999년 2월 18일 백남준

[4] 1993년 휘트니베엔날레 서울 순회전을 기획하며 한국의 재벌은 결코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 사람을 이길 수 없다(독점기업도 건드리지 못하는 양대 <남대문 동대문> 시장의> 기능을 우리가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란의 *'샤' 왕조(1077년부터 1231년까지)가 결국 바자의 상인들에게 진 것처럼 말이다 *(페르시아어: خوارزمشاهیان) [...] 자본도 변변치 않은, 노력투성이의 경제라 시장상인은 아무도 무섭지 않고 특혜금융도 필요 없다 양대 시장이 거대 부패와 특혜융자에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 불만 났다 하면 제일 먼저 불타 폭사 주저 않았나 싶더니 다음날 제일 먼저 문을 여는 곳 전통을 정치적으로 이용해먹지 않는 이런 곳을 경제속도가 방치하면 근본을 잃는다. 이런 자유경제가 자본주의의 능률을 최상으로 끌어올리고 한국을 지킬 것이다 -백남준

[5] 행복이냐? 아마… 배반이냐? 아마… 출세주의냐? 아마… 겁쟁이냐? 아마…

[6] 8・15로 돌아가자. 해방 20년이 다가온다. -슈투트가르트 좀 아카이브, 1965년

[7] 어느 시대건 예술가는 자동차로 달린다면 대중은 버스로 가는 속도다.

[8] 원래 예술이란 반이 사기다. 속이고 속는 것이다. 사기 중에서도 고등 사기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

[9] 넥타이는 멜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를 수도 있다.

[1] 창조가 없는 불확실성 없는 창조란 있을 수 없다.
[2] 우리는 청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려고 이 전람회를 끌어 온 것이 아니다. 청년들에게. 무슨 음식이나 깨뜨려 먹는 강한 이빨을 주려고 이 고생스런 쇼를 하는 것.
[3] 예술가는 외줄 타는 사람이다.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역사를 쓰는 게 예술
[4] “나도 이제 쉰에서 다섯이 넘었으니 차차 죽는 연습을 해야겠다. 예전 어른이면 地官(지관)을 데리고 이상적인 묘자리를 찾아다닐 나이가 됐으나 나는 돈도 없고 요새는 땅값도 비싸졌으니 그런 국토 낭비 계획은 없애고 오붓하게 죽는 재미를 만드는 것이 상책이다. 내 인생의 행운은 존 케이지가 완전 성공하기 전에, 조셉 보이스가 거의 무명시절에 만나 놓은 것이다”
[5] 백남준의 과거 현재 미래: 과거(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무한제곱, 현재가 유토피아, 미래는 지금이다.[6]정치적 애국심보다 문화적 애국심이 더 많은 폐해를 낳으며, 문화적 애국심은 교묘하고 위선적인 방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조심스러우며, 또한 "선의 자기선전"은 선의 가장 어리석은 자살 행위라 말하며, 선의 핵심적인 두가지 부정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7]'황홀(ESCTASY)'이라는 단어 남을 황홀하게 할 때 나에게 최고의 황홀이 온다
이는 원래 그리스어로 eksisteanai(ek=넘어서는, 바깥의-histanai=세우다, 서 있다.)이다. 이 단어는 보통 시적인 영감의 광란, 또는 신성한 것에 대한 명상으로 인한 정신적 변화나 희열을 의미했다" 백남준에게 '황홀' 이라는 단어는 매우 다른 듯한 두 상태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그는 광란의 상태와 명상의 상태를 모두 '황홀'한 상태로 여깁니다.
[8] <백남준 전문가 평>현대 문화에서 비디오 아트가 크게 자리 잡은 것은 백남준의 예술과 놀라운 상상력 덕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텔레비전을. 이용한 프로젝트, 설치 미술, 행위 미술, 공동 제작, 새로운, 예술 도구 개발, 교육에 이르기까지 그는 대중 매체 문화 형성에 큰 기여를 했으며,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언어를 재해석한 선구자적 존재이다. -존 헨하르트. 아이폰은 백남준 아이디어다 -존 헨하르트. 예술가에게 실수는 오히려 천재성을 증명하는 계기가 된다. "남준 내겐 어머니 같은 존재" -장 폴 파르지에
[9] 전자가 과잉/흥분된 고양이라면 후자는 절제/집중된 고양입니다. 하지만 이 '황홀'의 상태가 정신적 변화로 이끈다는 점에선 둘이 같습니다. 이는 마치 굿과 명상의 효과는 동일하다는 식의 이야기로 들립니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백남준이 말하는, 예술의 역할은 경험자로 하여금 '황홀'의 경지에 이르게 하는 수단적 의미를 갖게 됩니다. 즉, 예술의 도움 없이도 '황홀'의 지경에 이를 수 있다면, 예술은 더이상 쓸모가 없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가장 행복한 자살 - 가장 어려운 반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황홀'을 단지 비정상적인 상태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합니다. 백남준은 사르트르의 보통 상태의 의식에 대한 분석에서 '황홀' 개념이 일상적으로 발현될 수 있다(혹은 이미 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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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사이버네틱스[사이버세상]과 이를 창시한 니버로 돌아가기>

https://www.youtube.com/watch?v=5CMX0yvSLZg&t=25s 

 사이버네틱스: cybernetics)?[4]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는 뭔가(?) 그 창시자 니버는 누구(?) "위너가 전자시대 기술적 내부를 건설“ -백남준

[1] 사이버네틱스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한 것으로 미국의 수학자 위너(N. Wiener)에 의하여 창시되다. 그는 18세에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천재로 원래는 수학자다. 전자계산기를 발명하고 이를 응용해 인공지능을 만든 장본인이다. 뉴턴 물리학의 인과성을 넘어 기계도 사람처럼 소통하고 사유할 수 있는 생명의 유기체로 봤고 그래서 '인간·기계·자연'을 하나로 결합하려 한다.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하다.

[2] 하지만 도대체 '위너'는 누군가. 그는 18세에 하버드대에서 철학박사를 받은 천재로 원래는 수학자다. 전자계산기를 발명하고 이를 응용해 인공지능을 만든 장본인이다. 뉴턴 물리학의 인과성을 넘어 기계도 사람처럼 소통하고 사유할 수 있는 생명의 유기체로 봤고 그래서 '인간·기계·자연'을 하나로 결합하려 한다. 사이버네틱스의 3가지 핵심요소가 '컨트롤·커뮤니케이션·피드백'인데 이런 용어는 인터넷 시대의 쌍방적 소통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은 '사이버네틱스'를 농담처럼 생사의 순환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인과의 그물망)'에 비유하기도 했다.

[3]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두뇌학이라고 요즘 그런 시대가 온 게 확실하다. 우리는 사이버네틱스라는 말보다는 사이버 세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그의 영향으로 백남준은 사이버아트를 맨 처음 시도하다.
[4]백남준은 1948년에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니버가 발명한 사이버네틱스[사이버세상]라는 실험적 인식론을 수학적, 생리학적, 과학적 기술방식으로만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역사적 사유를 유도하는 시대의 패러다임과 가상 (디지털) 세상을 끊임없이 실험하고 수정하는 지식의 방편이 될 수 있음을 내비치다. 전자시대의 새로운 개념어 필요.

[1]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매스메틱스(mathematics)의 전자화? 사이버네틱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생물의 자기 제어(自己制御)의 원리를 기계 장치에 적용하여 통신·제어·정보 처리 등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한 것으로 미국의 수학자 위너(N. Wiener)에 의하여 창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두뇌(인공지능)이라고 요즘 그런 시대가 온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사이버네틱스라는 말보다는 사이버 세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5]<위 뉴욕 첫 전시 다이어그램> 과거와 현재를 근거로 미래의 궤적을 예측하듯 백남준은 존 케이지의 전위음악과 맥루언의 미디어 이론 그의 바탕은 니버의 사이버네틱스론을 응요하여 더하고 빼고 곱하고 나누기를 통해 전자아트를 착안. 백남준 이 것을 어떻게 적용되고 어떤 영향을 줬는가. 호모 사이버네티쿠스 인터미디어와 인터 사이언스 '정보이론-피드백-로봇 공학-인공지능-사이버공간-네트워킹' 긴밀하게 연결.
[6]뉴욕 간지 1년 후 1965년 뉴욕 보니노갤러리에서 <백남준:전자아트>전 열다. 백남준. 기존 과학 질서에 대한 도전이다. 20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 '비디오아트'와 '사이버네틱스' 백남준이 ''비디오아트'라는 새 장을 열다.
백남준 과학상식마저 뒤집다. 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극을 첨가시켰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불교적 ‘제3의 길’에 해당할지도 모른다.-<사이버네틱스 예술>, 1965

[2]백남준은 '전기시대(Control Machanism)'에서 '전자시대(Communication Process)'로 넘어가는 과정을 1948년에 발명한 니버의 사이버네틱스 개념을 통해 전자아트라는 새로운 타이틀로 붙여1965년 뉴욕 보니노 갤러리에서 열다.
[3]백남준은 위너와 맥루언이라는 글에서 미디어(차거운 미디어와 뜨거운 미디어가 있다)가 지구를 연결하는 거대한 신경계인 것처럼, 맥루언의 미디어이론을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과 연결시키다.
[4] 1963년 이후 일본의 형님댁에 갔다가 뉴욕으로 건너간 백남준은 첼리스트 샬롯 무어만과 각종 퍼포먼스를 펼치며 예술가로 자리 잡아 갔다. ‘작가들의 작가’였던 백남준에게 뉴욕의 유력화랑인 갤러리 보니노(Galeria Bonino)가 개인전을 제안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알프레도 보니노가 대표. 뉴욕 외에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브라질의 상파울루 등에도 전시장을 두다. 뉴욕에서는 1960년부터 활동했다. 보니노 덕분에 백남준은 1965년 처음으로 ‘전자예술(Electronic Art)’ 전시를 열었다. 첫 개인전 이후로 전자예술에 심취했다. 그해 1월 뉴스쿨(New School social Research)에서 무어맨과 공연하며 선보인 ‘자석TV’는 자석이 전자의 흐름을 바꿔 유기적 형태의 영상이미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착안한 작품이었다.
[5]독학으로 전자공학을 연구한 백남준은 TV를 왜곡시켜 물속을 다니는 해파리 같은 이미지, 흔들리고 지직거리기를 반복하는 영상 등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다. 화가가 세상에 없던 새로운 필법을 발견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보니노갤러리에서의 첫 개인전에서는 TV모니터에 덩그러니 달 하나 뜬 것 같은 작품도 선보였다. 
[6]“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그의 발성에 보듯 음의 철학자인 백남준에게 달은 전통적 추억의 소재이자 자연의 숭배대상이며 그리움의 정서를 담고 신령스런 힘을 지닌 특별한 의미였다. 전시 개막식은 대성황을 이뤘다. 다음 날 뉴욕타임즈(NYT)는 백남준에게 극찬을 쏟아냈다. 비디오아트라는 새로운 장르와 비디오아티스트로서의 확신을 얻는 계기가 됐다. 이후 백남준은 본격적으로 전자TV를 이용한 비디오작품을 선보인다.
[7]그리고 백남준은 또 '랜덤액세스'나 '사이버네틱스'도 좋아했다. 이 이론은 60년대 유행한 '제3의 과학체계'로 놀랍게도 "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신물리학이다. 아래를 보면 백남준이 왜 이런 역발상적인 이론을 좋아했는지 알 것 같다. -조상인 기자 글 인용
[8]"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전극을 첨가시켰다. 그러므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불교적 '제3의 길'에 해당할지도 모른다" - 백남준 <사이버네틱스 예술> [9]백남준은 플라톤, 니체, 루소, 헤겔, 맑스, 사르트르, 리오타르 등의 주제이기도 한 '약자의 힘(La force des faibles)'이라는 철학개념을 과학에서도 발견하다.

[1]하이젠베르크 누구인가? <양자역학> 과학자들은 19 세기 말에 뉴턴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만 있다면 물리학의 모든 법칙들이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뉴턴역학은 입자 즉 눈에 보이는 역학을 담당하였고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파동을 다루었기 때문이다. 즉, 이 시절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은 파동과 입자 로 나뉜다고 생각했다. 입자와 파동은 서로 다른 것으로 취급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론에는 치명적인 문제, 즉, 흑체복사가 있었다. 흑체란 모든 전자기파를 흡수할 수 있는 물체인데 이로 이루어진 상자를 가열하였더니 흑체 안에 무한히 많은 파동들이 제각각의 에너지를 가지고 존재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플랑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게 되는데 이것이 양자역학의 시발점이 되었다. 플랑크는 실험 내용을 이용하여 강제로 수식을 만들었는데 이 수식이 의미하는 것이 파동 자체가 불연속적이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사람들이 믿어 왔던 진리가 깨어지게 된 것이다. 얼마 후 아인슈타인은 광양자 이론을 발표한다. 이 이론은 빛이 입자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이로 인하여 빛은 파동이자 입자인 것이 되었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값들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자의 사전적 정의는 ‘어떤 물리량이 연속 값을 취하지 않고 어떤 단위량의 정수배로 나타나는 비연속 값을 취할 경우, 그 단위량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즉 모든 물리량이 불연속적인 값을 가지며 이 불연속적인, 즉 양자화된 것들의 움직임을 설명하여 주는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2]사람들이 어떠한 물체를 '본다'라고 하는 행위는 그 물체에 대하여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즉 가시적인 물체에 대하여만 적용될 뿐이다. 만약 이러한 물체가 빛의 입자만큼 작아지게 된다면, 이러한 관측 행위는 관찰 대상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즉, 불확정성의 원리란 것은 작은 입자들을 볼 때 그 입자들이 양자만큼 작아질수록 “관측”이라는 행동을 하게 되면 그 입자들은 그 관찰 행위 자체에 영향을 받게 되어 우리가 “관측”한 물리량에 착오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그에 따라 어떤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알아낼 수 없다는 것이다.

[3] 막스 슈티르너: 독일의 철학자로서 허무주의, 실존주의, 정신분석 이론, 포스트모더니즘,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에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슈티르너의 주요 저서로는 《유일자와 그 소유》가 있으며, 이 책은 1845년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여러 판본으로 번역

백남준 에세이 3페이지에 나오는 이름 중 아는 사람 10%도 안 된다. 내가 얼마나 무식한지 단번에 알 수 있다. 백남준 북한에서 재해석한 노자해설서까지 다 읽다. 벨 연구소 다니면서 공부 많이 하다.

[4]사이버네틱스 또는 인공두뇌학(人工頭腦學)은 기계나 조직의 조합을 통해 통신과 제어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오토마타와 로봇과 같은 컴퓨터로 제어된 기계에 대한 연구를 포함한다. 사이버네틱스라는 어원을 보면 키잡이, 조절기(governor), 방향타, 결정타에서 기원한다. 예로부터 현재까지 이 용어는 인공지능 복합성 이론 제어계 정보이론 시뮬레이션 시스템 공함을 통칭하기도 한다. 1956년 철학자 루이 쿠피냘(Louis Couffignal)에따르면 사이버네틱스는 '행위의 유효성을 보증하는 기예'로 정의된다.

[5]<사이버네틱스:전자관계> 백남준, 사이버네틱스를 순수관계망(NETWORK OF PURE RELATIONS)으로 보다. 다시 말해 '제어-통신 및 피드백'으로 본다. 백남준은 이것을 선불교와 카르마와 연결 그만큼 동서사상과 과거 현재를 연결시키고자 한다. 모든 예술을 수렴하려면 사이버네틱스 기술이 필요하다. 불교의 제3의 길(환생)이기도 하다. 인류문명에서 우리의 상식과 다르게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제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인터넷이다. 사이버네틱스는 과학기술 인간화 예술화 연결화의 한 방편이다. 끊임없는 (상호의존적) '인과의 그물'이다. 사이버네틱스의 기술보다 예술 즉 삶이 더 중요하다. 사이버는 무엇보다 열린 회로.<예 로봇 K-456>

로봇 K-456 전자장치 철 알루미늄 고무 70*55*18cm 1964. 슈아 아베와 공동작

[1][기계의 인간화&예술화]-기계와 소통하며 친하게 지내기,'로봇 K-456' 전자장치 철 알루미늄 고무 70*55*18cm 1964. 슈아 아베와 공동작, 백남준은 기계와 인간이 친하게 지내는 시대를 예견했다. 이제 인간은 기계와 같이 살아갈 운명이다. 그는 기계를 만드는데 기계적으로 만들지 않고 인격을 부여하였다. 그래서 인간적이다. 

[2]그는 또 기계의 예술화도 꿈꾸었다. 기계와 소통하고 대화하고 친하게 지내기를 바란다. 그리면서 로봇작품이 많이 만들었다. 기계에 신명나는 기와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기계가 예술이 되었다. 동양예술의 핵심인 '신령기화(神靈氣化)'가 여기에 적용.

[3]<사이버그[사이버버그사이버네틱스&선] 이러 기술의 대표작이 바로 K-456 역사에서 과거가 필요하듯 이 기술에서 피드백이 필요하다. 선순화 메커니즘 TV부처는 피드백이라는 사이버네틱스 개념이 내장되어있다. 우연성 비결정적 비선형성을 갖추고 있다. 
[3]백남준 전시의 단골손님으로 1964년 일본에서 태어나 1982년 6월 23일 휘트니미술관 앞길에서 교통사고로 사망선고를 받은 휴먼로봇 K-456 
[4]백남준은 비디오가 시간의 매개변수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의 직선성을 빠르게 하거나 늦출 수 있고 뒤바꾸거나 뒤집을 수 있으면 변형하고 변조할 수 있다고 봤다.[5] 백남준은 6·25 중 일본으로 가 현대음악을 공부했고, 1956년부턴 독일에서 현대철학을 연구했다. 거기서 '존 케이지'를 만나 동양사상을 새롭게 인식한다. 그에게 보낸 편지에선 TV가 미래매체가 될 거라 말한다. 1964년 미국으로 간 백남준은 인간을 위한 기술과 과학을 모색한 미국의 수학자 '위버(N. Wieber 1894-1964)'에 빠진다. 

[1]백남준은 6·25 중 일본으로 가 현대음악을 공부했고, 1956년부턴 독일에서 현대철학을 연구했다. 거기서 '존 케이지'를 만나 동양사상을 새롭게 인식한다. 그에게 보낸 편지에선 TV가 미래매체가 될 거라 말한다. 1964년 미국으로 간 백남준은 인간을 위한 기술과 과학을 모색한 미국의 수학자 '위버(N. Wieber 1894-1964)'에 빠진다.

[2]백남준이 이런 과학이론에 빠질 수 있는 이유는 그와 동거 동락한 부인 '시게코'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다. 학창시절 물리학자가 되고플 정도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기계 다루는 데도 능했다. 'K-456'도 만들었고, 전시 땐 TV내부회로도 직접 조작했고,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를 설계할 만큼 과학적 지식도 풍부했다.

[3]백남준은 이렇게 "과학자에게는 예술이 마법이고, 예술가에게는 과학이 미스터리다"라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다. 그래서 백남준이 '현대판 20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4]로봇아트에서 인공생명아트(생명재창조)로 발전해야 한다. 예술은 더 이상 마술적, 종교적,상징적, 정치적이지 않다. -자크 엘루엘. 발명가로서의 예술가의 시대가 도래. 우리예술가들은 사회가 닌텐도보다 더 좋고 심오한 것을 발명하도록 도와줘야 -남준.

[2]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와 매스메틱스(mathematics)의 전자화? 사이버네틱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렇게 적혀 있다. "생물의 자기 제어(自己制御)의 원리를 기계 장치에 적용하여 통신·제어·정보 처리 등의 기술을 종합적으로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대두한 것으로 미국의 수학자 위너(N. Wiener)에 의하여 창시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인공두뇌의 실현과 오토메이션의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인공두뇌(인공지능)이라고 요즘 그런 시대가 온 것은 확실하다. 우리는 사이버네틱스라는 말보다는 사이버 세상이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르네상스 천장벽화를 사이버네틱스 아트로 변화

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unonthetree&logNo=220698529704&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여기서부터 2단계 더 쉽게 설명하기>>

 

백남준 일화와 되는대로의 어록

白南凖의 生涯와 藝術 백남준은 “세상의 모든 일에는 양면성이 공존한다.”라고 말한다. “프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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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사이버] <17> '인공지능-전자화-디지털'시대

백남준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이 아니고 . 즉 사이버네틱스라는 지식을 아는 것이 아니고 사이버네틱스라는 것이 예술이 되어 삶을 바꾸는 것이다.

<사진> 전자공학(물리학)을 프로처럼 구가하는 공학도로서의 백남준: 전자공학을 독학하다 학창 시절 물리학을 좋아한 백남준:백남준이 이런 과학이론에 빠질 수 있는 이유는 그와 부인 '시게코'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학창시절 물리학자가 되고플 정도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기계 다루는 데도 능했다. 'K-456'도 만들었고, 전시 땐 TV내부회로도 직접 조작했고,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를 설계할 만큼 과학적 지식도 풍부.

<<백남준의 뉴욕 첫 전시 다이어그램>>

백남준의 뉴욕 첫 전시 다이어그램 <사진> 이 표는 백남준 1965년 11월 뉴욕 '보비노(Bobino)갤러리'에서 열린 전자아트전 도록에 수록된 것으로 이를 풀이하면 사이버화 된 예술의 델타 T값과 사이버화된 삶을 위한 예술의 델타 X값은? 여기 밑에 있는 당신에 위에 있는 나를 로그 하면? '존 케이지'에서 '맥루한'을 빼고 이를 다시 '위너'로 나누면 그 답은?이 표는 백남준 1965년 11월 뉴욕 '보비노(Bobino)갤러리'에서 열린 전자아트전 도록에 수록된 것이다

[1]<노버트 위너와 마셜 맥루한> 백남준은 1967년 <신동아> 12월 호에 '전자와 예술과 비빔밥'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60년대를 읽은데 빼놓을 수 없는 두 인물인 사이버네틱스의 창시자 '노버트 위너'와 미디어의 권위자 '마셜 맥루한'을 한국 독자에게 소개.
[2]<공식> '사이버네이트된 예술(앎)'의 *델타 T(시간)의 값과 '사이버네이트된 삶을 위한 예술(삶)'의 델타 X 값은? 여기에 다시 밑이 '당신'이고 위인 '나'인 로그를 붙이면? 로그 '존 케이지'에서 루트 '마셜 맥루언'을 빼고 이를 다시 '노버트 위너'로 나누면 그 해답은? *델타 T: 정확한 타이밍 측정에 쓰인다. T는 Time을 뜻하고 델타(Δ)는 물리에서 어떤 요인에 의한 기초가치의 차이나 변화 혹은 기울기를 의미한다. 이 표는 백남준 1965년 11월 뉴욕 '보비노(Bobino)갤러리'에서 열린 전자아트전 도록에 수록된 것이다
[2]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 첫 전시에서 '흑백TV'를 처음 선보였고 1965년 미국 뉴욕 보니노갤러리 전시 때엔 TV의 연장이라 할 '비디오'를 등장시킨다. 위와 아래 다이어그램은 그 당시 전시도록에 공식적으로 적어놓은 전자예술론이다.

백남준에게 큰 영감을 준 전위예술가 존 케이지와 미래사회를 미리 내다본 탁월한 미디어 학자 맥루언 그러나 백남준이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니버를 만나지 못했다면(나누기 하지 못했다면) 1965년 뉴욕 전시 전자아트 전은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아래> 공식은 1965년 뉴욕 전자아트 전시 도록에 나오는 것이다. 백남준은 앎보다 삶을 중시했다. 사이버네틱스한 예술보다 사이버네틱스한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3]<테크놀로지의 인간화 모색>서양인들 비디오를 예술화 꿈도 못 꿨죠?" 이를 잘 설명한 게 이어령 선생의 탁월한 비유인데요, "비디오를 발명한 건 미국이고 이를 소형화(상업화)한 건 일본이고 이걸 예술화시킨 것이 백남준이다" 너무나 맞는 말이죠.
[4]테크놀로지의 인간화를 통해 기술에 대해 새롭게 접근한 건데 사람이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차원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뜻. 그래서 1965년에 '로봇 K-456'을 만들고 사람이 배설을 하듯 길거리를 걷다가 리모컨을 작동하면 콩이 똥처럼 떨어지고 또 오페라도 부르고 정말 환상적인 작품이었죠. 이게 백남준 최초의 로봇이에요. 나중에 구형 카메라, TV, 전축을 가지고 만든 TV로봇조각의 원형이죠." -김홍희

<<1965년, 백남준 본격적 사이버네틱스 전자아트 실험>>
[1] 1965년 샬럿 무어먼과 '로봇 K-456'이 백남준과 함께 유럽 여행을 떠나다. 두 사람 모두 백남준의  악곡을 (다소 다른 방식임에도 불구하고) '24시간 해프닝'에 참여하다. 샬럿 무어먼(Charlotte Moorman)은 그녀의 유명한 투명 플라스틱 드레스를 입고 첼로를 연주하며 때때로 물통에 잠수한 다음 계속해서 물을 흘리며 악기를 연주하거나 백남준 등을 올라타서 연주를 하기도 했다. 

[2] 1965년 10월 4일 '카페오고고'에서 비디오 첫선

[1]<사진> 새로 구입한 비디오테이트 녹음기를 찍은 자신의 초기 비디오화면에 나오는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백남준(1965년 10월 뉴욕) 백남준아트센터소장앞에서 언급한대로 백남준은 1965년 '소니'가 미국에 처음 수출한 비디오카메라를 예약구입을 해놓고 연락이 오자 케네디공항에까지 직접 나가 그걸 찾아온다.
맨해튼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침 교황 '바오로 6세'가 미국 방문 중이었고 그걸 카메라에 담아 65년 10월 4일 '카페오고고'에 상영해 비디오가 세계미술사에서 첫 등장한다. 비디오는 일방적 TV와 다르게 쌍방적이라는 점이 그의 예술에 날개를 달아준다. 대중을 조작하는 우상 같은 TV를 순식간에 전복시킬 대안이 나온 셈이다. 그래서 백남준은 사회변혁의 도구로 비디오를 마치 신이 내린 선물처럼 생각했다.

[2]그러면서 백남준은 1965년 '카페오고고' 시사회에서 록펠러재단 기금으로 전자TV와 녹음기를 결합하는 5년간의 꿈을 이뤘다고 감격하며 이제 비디오의 작은 화면이 유화대신 음극관이 되는 비디오아트 시대가 오고 있음을 아래와 같이 알렸다."전자음악10년이 지나면 전자TV시대가 도래한다. […] 콜라주기법이 유화를 대체한 것처럼 음극관이 캔버스를 대체할 것이고, 기존의 작가들이 사용하는 붓, 바이올린, 폐기물 같은 것 대신 축전지·전열선 혹은 반도체로 작업을 하게 될 것이다."

[3] 르네상스 인간으로서 백남준: "과학자에게는 예술이 마법이고, 예술가에게는 과학이 미스터리다"라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넘어서려 했다. 그래서 백남준이 '현대판 20세기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4]우상파괴자로의 백남준 우상숭배는 인류의 영원한 질병이다
[5]인류학자로서의 백남준 "백남준 사상이 동서양을 통틀어 독보적이잖아요. 그의 사유방식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인류학적 관점. 백남준의 앞면은 테크놀로지지만, 뒷면은 식민지 시대의 인류학이 아닌 새로운 인류학인 거죠. 신화와 역사를 하나로 보는 그의 관점을 파악하지 못하면 그를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국내에서 백남준 연구가 계속 맴돌고 오랜 세월 학문의 안테나에 안 잡힌 이유이다.
[6] 인류학자로서 백남준 신화적 상상력 없이 미래를 볼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맞아요. 과거는 신화적 상상력으로, 미래는 기술과학으로, 현재는 정치적 판단으로 세상을 그려나간다고 봐요. 서양인이 주도한 지난 200년 역사를 더 이상 믿지 않았기에 새 그림을 그린 거죠. 백남준은 20대에 그걸 알았고, 뒤돌아보지 않고 실행했고 혼자 나간 겁니다."

[7]백남준이 이런 과학이론에 빠질 수 있는 이유는 그와 동거 동락한 부인 '시게코'의 증언에서도 알 수 있다. 그는 학창 시절 물리학자가 되고플 정도로 수학과 물리를 좋아했고 기계 다루는 데도 능했다. 'K-456'도 만들었고, 전시 땐 TV내부회로도 직접 조작했고, '아베'와 함께 비디오합성기를 설계할 만큼 과학적 지식도 풍부했다.

[8]이 공식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존 케이지'도 나오지만, 중요한 세 단어 '사이버네틱스'와 이를 창안한 '위버' 그리고 '맥루한'이 언급된다. '지구촌'이란 말을 처음 쓰고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말을 남긴 세계적 미디어학자 '맥루한'은 유명하다.[

[9]사이버네틱스의 3가지 핵심요소가 '컨트롤·커뮤니케이션·피드백(쌍방소통)'인데 이런 용어는 인터넷시대의 쌍방적 소통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은 '사이버네틱스'를 농담처럼 생사의 순환에서 불교에서 말하는 '카르마(인과 그물망)[관계망]'에 비유...

[6] 60년대 사이버네틱스와 철학, 예술 <사진>'사이버화된 세대(Cybernated Generation)'라는 제목이 붙은 1965년 4월 2일 타임지표지. 그 부제가 '컴퓨터사회(The Computer in Society)'다 당시 '사이버네틱스'가 대유행이었음을 알 수 있다;

[7]60년대 '사이버네틱스(키잡이)' 개념은 '위버' 혼자 만든 게 아니라 광범위하다. 여기엔 수학자, 공학자, 철학자, 심리학자, 생태학자, 사회학자, 신경생물학자 등이 망라된다. 과학에 대한 민주적 사고라고 할까. 과학을 '자연정복론'이나 '기술결정론'에서 보지 않고 인간과 기계와 자연을 공생적이고 수평적인 관계로 놓았다.

[8]사이버네틱스와 예술을 처음으로 연결하려 한 이 분야의 이론가이자 작가인 '로이 애스코트(Roy Ascott 1934-)'는 백남준이 1966년에 선언한 '사이버화된 예술(Cybernated Art)'을 뉴미디어아트의 시작이라고 봤다.이런 개념은 정보화시대 여러 면에서 새로운 사유의 촉진제가 되어 정치, 사회, 철학, 예술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9] 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사이버화된) 예술'에 관한 언급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건 "뉴턴의 물리학은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비융합적 이중구조와 권력구조를 갖지만, 1920년대 독일의 한 천재가 진공관 안에서 양극과 음극 사이에 그리드를 첨가해 인류역사상 최초로 약함이 강함을 이기는 결과를 낳았다"라는 말이다. 노장사상을 통해 우리는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역설적 진실은 들어왔지만, 과학적 실험을 통해 "약한 게 강한 걸 이긴다"는 사실이 증명됐다니 놀랍다. 과학제일주의와 기술만능주의가 주도되는 세상에서 백남준이 기존의 과학상식을 뒤집는 제3의 관점에 주목했다는 건 그의 성향으로 볼 때 매우 자연스럽다.

'세기말 남자' 1991

[1] '세기말 남자(Fin de Siecle Man)' 85 ×62 ×31cm 1991. '자석TV'를 업그레이드 한 것으로 TV화면을 작가가 자석으로 조작할 수 있다. 백남준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정보독점의 상징이고 전자매체의 총아인 TV의 확고한 기능을 순식간에 마비시키면서 관객이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무모한 기술적 오작동으로 누구도 도전하지 않는 먹통 같은 TV를 아트로 바꿨다.
[2]백남준은 비디오가 나오기 전부터도 TV를 이렇게 창조적 매체로 본 것이다. 백남준 연구가 이용우 씨는 백남준 예술에 대한 평가에서 "관객 참여방식에 의한 그의 미적 실험은 백남준 미학의 하이라이트다. 그는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을 독재 또는 독백예술로 봤고, 고급예술로 변질된 모더니즘이 관객의 역할을 인정하지 않아 결국 예술의 계급화를 초래했다"라고 논평했다.

[2] 백남준과 보들레르의 같은 점은 시대를 꿰뚫어 보는 '관점(비전)'에 있다. 보들레르의 제자 랭보는 이런 예술가를 '견자(見者)'라 했다. 반면 두 사람의 다른 점은 보들레르가 반도덕적이고 비이성적이고 상징적 '시적 비전'을 썼다면, 백남준은 경계 허무는 반위계적이고 비선형적인 사이버화된 '전자 비전(Television 미래적 관점)'을 썼다는 점이다

[3][백남준, 보들레르의 현대 상징시를 전자아트로 코드변경하다] 시대를 꿰뚫는 '견자(見者)': 보들레르의 상징시를 백남준 사이버아트로 변형 백남준아트센터는 내부가 더 전자화면을 연상시킨다. 동시에 중세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도 떠올리게 한다. 백남준은 그의 전자아트에서 유럽성당에서 본 '스테인드글라스'와 '보들레르'의 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중세건축에서 스며드는 빛이 연출하는 짜릿한 전자 황홀경과 '색깔·소리·향기'의 언어에 '시각·청각·촉각'을 결합한 보들레르 시에서 융합의 미를 발견한 것인가. 다만 백남준은 그런 요소를 전자방식으로 바꿨다.

[3]아름다운 것은 언제나 엽기적이다(Le beau est toujours bizarre)시인은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때로 독이 되기도 하고 악마와 사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회를 씻어낼 수 있다. 보들레르 시인론은 '타락론(prostitution)'이다. 자신을 거리의 여인처럼 타락시켜 이 세상의 타락을 씻어내려 했다. 이것은 원효가 타락을 통한 더 차원 높은 구도의 길을 찾는 방식과 같다. 역시 위대한 예술가나 성직자는 그런 면에서 통한다고 할 수 있다. 보들레르는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최고의 지성인이었으나 특별히 갈 만한 직장 없이 떠도는 도시를 목적 없이 방황하는 산책자(flaneur)로 프리랜서라는 라이프스타일을 처음 만든 사람이다.

[4]백남준의 사이버네틱스 아트는 결국 1992년 자신을 동서 문명을 통합하는 데 성공한 작가 중 하나라고 평한 적이 있는 '오토 한(O. Hahn)'과 인터뷰에서 "비디오는 우리가 시간을 변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매체로 현재를 과거로 과거를 현재로 되돌릴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미국의 저명한 평론가 프레드릭 제임스(F. James)도 그에 걸맞게 "그의 비디오아트는 시공간의 궁극적 경계선을 탐색하는 유일한 예술"이라고 논평했다.

[5] 인간·동물·기계의 혼종, 사이보그 이불 I '사이보그_W5' 1999.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식 사진 그즈음인 1967년에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D. Haraway 1944-)'는 본능이 없는 동물을 상상하기 어렵듯 기술이 없는 인간을 상상하기 어렵다며 '암컷·수컷'의 법칙을 체계화한 근대 과학주의를 해체하고 유인원과 인간, 인간과 기계, 남녀경계를 없애고 성차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변종과 괴물 같은 '사이보그'를 등장시킨다.

그녀는 사이보그의 지능과 잠재력이 인간 이상이라며 <사이보그 선언(1985)>에서 "여신이 되기보단 사이보그가 되고 싶다"라고 말했고 또 "현재의 정치상황에서 우리는 저항과 재결합을 달성하기 위해 이보다 더 강력한 신화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6]백남준도 인간과 동물과 기계가 혼합되는 사이버네틱스 잡종인 이런 사이보그 출현에 동조했고, '무어먼'을 '뮤즈여신'보단 '전사여신'으로 변신시켜 백남준식 사이보그를 선보였다. 한편 한국에선 페미니스트 작가 이불이 이 '연작'을 발표해왔다.

<<색에서 빛으로 전기에서 전자로 전환>>
[1] '기술의 인간화'로 사이버세계 추구 <사진>

백남준 I '테크노 보이(Techno Boy) II' 라디오, TV, 카메라, 조합(Antique Radios, Antique TVs, Antique Cameras) 2000. 미래전자소년을 형상화하다

[2]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예술화를 추구> 백남준은 그는 문명사회를 야생적 사유로도 다가갔지만, 첨단과학이론도 휴머니즘적 측면으로 접근했다. 기술에 대항하는 기술로서, 기술을 증오하기 위한 기술로서, 기계와 야합하지 않는 기술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그는 기술절대주의로 향하는 사회에서 부각되는 이런 시대의 우상을 추방하는 '셔먼 아티스트' 몫도 감당한다.이런 사고는 인간과 기계, 예술과 기술의 이분법을 깨고 기계를 인간으로 보고, 과학을 철학으로 보는 관점에서 온 것이다. 기술의 노예화가 아니라 인간화, 과학의 폭력화가 아닌 예술화를 추구한 셈이다. 그래서 색에서 빛으로 전기에서 전자로 전환시켜 기술의 인간화를 위한 예술적 실천을 가감하게 시도한다.

[3] <사이버네틱스는 결국 관계미학> '인터미디어'로 경계 넘기 더 나아가 인터사이언스 <사진>백남준 I 'TV부처' 부처조각과 2대의 TV 35×20×65cm 1992. UM 갤러리소장 서양하이테크와 동양사상을 만나게 하는 관계미학이다. 'TV부처' 버전은 다양하다. 백남준은 프랑스수학자 '앙리 푸앵카레(H. Poincaré 1854-1912)'가 "지난 세기의 전환점에서, 소위 말하는 물적 진보와 신문명을 이뤘지만 난 여기서 새로운 무엇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한 것뿐이다"라는 말을 인용하며 동과 서, 과거와 미래, 기계와 예술의 '인터미디어'를 추진한다.

[4] 이 인터미디어'는 백남준의 친구 '딕 히긴스(Dick Higgins)'가 1965년 창안한 것으로 '기존예술과 새로운 미디어 예컨대 시와 그림, 미술과 연극 같은 장르와 경계를 넘어 관계미학으로 예술(주술)과 기술을 융합시키는 총체예술(비빔밥)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백남준의 이런 시도는 사실 첫 전시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는 기존음악에 만족하지 않고 피아노와 피아노 사이의 연주할 수 있는 음악이 없을까 고민했다. 작곡된 걸 연주하는 게 아니라 연주하다 작곡이 되는 '랜덤액세스' 방식의 '무조음악'을 추구했다. 창작에서 그 과정과 거기서 유발되는 우연성도 중요함을 암시한다.

[0] 백남준아트센터는 보들레르의 시를 전자아트처럼 변조했듯 이 건물은 2003년 국제공모에서 독일의 젊은 건축가 키르스텐 쉐멜(K. Schemel)이 대상을 차지했으나 그가 제시한 공사비가 720억이라 준비위원회가 360억밖에 확보 못해 무산될 뻔 했으나 같은 건축사무소에 일하는 마리나 스탄코빅(M. Stankovic)이 뒤를 이어받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