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세계 일류(탈영토제국주의)가 되면 조국이고 뭐고 없다고" -1994년 백남준 인터뷰 중에서.
자신감 넘치는 그의 말이 참으로 멋지다.
내가 정치가가 되었다면 감옥을 갔을 것이고 내가 사업가가 되었다면 세속적인데 물들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싫어서 난 예술가가 되었다. 나는 늦잠을 잘 수 있는 예술가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관객하고 예술가(아티스트)하고 괴리를 더 좁히는 것, 그게 바로 '예술의 진의(essence)'이고 '인생의 진의'가 아닌가?" -백남준 1995년 광주 비엔날레 인터뷰 중에서 [평] 백남준은 전시의 주인공을 작가가 아니고 관객으로 봤다. 그만큼 작가와 관객의 원활한 (쌍방)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철저한 문화 민주주의자였다.
<백남준에게 피아노를 부수는 것은 일종의 수행이자 명상이었다. 그런 행위를 하다가 인터넷 발상을 한 것이다.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일종의 단[斷]의 철학(깨달음을 통해 기존의 모든 가치를 잘라내는 행위)이다> "백남준은 샤머니즘 요소가 강했고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불교적인 것에도 심취했죠. 피아노를 부수는 행위가 그에게는 어떻게 보면 수행이나 명상이었을 거예요. 국가와 사회에 대한 급진적 사고로 사람들에게 많은 오해를 샀죠." 시게코 여사와 공동 인터뷰 중
"나는 다소간(이러나저러나) 안티, 안티였다(안티에 안티를 거는 자였다)’(I'm more or less anti-, anti-)" -백남준
"백남준은 최초의 근대에 대한 강박증이나 열등감이 없는 비근대적 예술가다" - 이영철(백남준아트센터초대관장) [평] 나는 백남준을 서구에 대한 열등감이 1%도 없는 열등감 제로인간이라고 부른다.
"남이 나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하는 것을 포기한 순간부터 굉장히 자유로웠다" - 백남준 [평] 백남준 자신의 전시장 오프닝에 세수도 안 하고 간다. 워싱턴 국립미술관 미국 상원의원 등 소위 정치권 VIP가 오는 자신의 전시회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다. "넥타이는 맬 뿐만 아니라 자를 수도 있으며, 피아노는 연주뿐만 아니라 두들겨 부술 수도 있다." -백남준
"비디오는 누가 독점할 수 없고, 모두가 쉽게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공동재산이다. 비디오는 유일한 작품의 독점에 바탕을 둔 체제로 작동하는 예술세계에서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현금을 내고 사가는 작품, 순전히 과시하고 경쟁하는 작품들로 이루어진 예술세계에서 말이다”(백남준 외, 2010: 106).66)
백남준: 그런데 본래 내가 테크닉이 없으니까. 피아노도 못치고, 작곡도 못하고, 그림도 못그리고 하니까 이것저것 해보는 거예요. 김재권: 그건 너무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백남준 아! 천만에 말씀. 사실예요. 사실.(김재권-백남준, 1990: 67, 밑줄은 연구자) 나는 처음에 작곡가로 시작했지만, 사실은 미학자, 산문가였죠. 그리고 행위예술을 했지만 배우는 아니었어요. 한번도 배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죠. 나는 심지어 수줍음을 타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는 TV를 연구했죠...나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을 가고 싶었던 거예요"(이르멜린 리비어와의 인터뷰, 백남준 외, 2010: 213, 밑줄은 연구자)
<우리가 보는 백남준>우리는 하루도 백남준 없이 살아 갈 수가 없다. -HSK
우리 인류는 모두 백남준의 (전자) 은하계 속에 살고 있다. -*이영철 교수(초대 백남준 아트센터 관장)
여러분 손과 주머니에 백남준이 들어 있습니다. -삼성동 봉은사 원명주지스님
<백남준과 포스텔의 상징투쟁(?) 여기서 독일에서 백남준으로 박사를 받은 데커가 백남준 손을 들어주다> 여기서 데커가 주장하는 논점은 분명하다. 포스텔이 히긴스나 핸슨의 주장처럼 백남준보다 앞서 TV를 통해 작업했다는 증거는 없으며, 나아가 1963년 5월 열린 포스텔의 <텔레비전 데콜라주> 전시는 3월에 열린 백남준의 <음악의 전시>의 모방이며, 아류라는 것이다. “기술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진술하는 포스텔이 혼자서 그리고 아무런 구체적인 자극도 없이 이러한 결과에 도달했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Decker, 2001[1998]: 78-79)
1963년 백남준 첫 전시는 서양미술추방(전시제목이 EXPEL추방이었다)선언이었다. 그 이후 백남준 전 세계 돌아다니며 서구의 꽉 막힌 2원론의 장막을 거두고 쇠창살을 부수고 숨 막히는 경쟁과 갈등조장사회에 구멍을 내고 서양주도하는 깔판을 걷어내고 그 무식한 우월론을 깨부수고 그들의 사고를 교란시키다. 백남준 자신의 말이기도 하다 “나는 서양 미술판에서 문화깡패였다”고. 여기서 깡패란 즉 판을 깨는 사람인데 그야말로 그들의 문화독점 주도권(음모)을 깨 유럽적 기존 질서를 전복시킨 그런 예술가였다. 그로 인해 이제 미국과 유럽과 아시아는 비슷한 수준이 되었다. 아니 이제 21세기 아시아가 미국과 유럽보다 더 앞서가고 있다. 바로 인터넷 문명의 낳은 경이로눈 역사의 대반전 사건이자 흐름이다. 이제 유라시아 시대가 오고 있다. 백남준 말대로 이제 우리가 문화도 서구에 수출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고 서구문명에서 배울 게 없다는 소리는 아니다. 'TV 부처'에서 보듯 오히려 서구기술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고 봤다
- 백남준은 음악가인가 미술가인가?
"(김홍희) 백남준이 일본유학을 마치고 독일 뮌헨대학에서 고전음악을 공부하게 되는데 백남준은 이런 클래식 회의를 가지게 되고 피아노 사이에 피아노 사이의 음악 없을까를 생각해 두 대로 치는 피아노를 치는 발상도 하게 되죠. 그런 어떤 고전음악 돌파구를 찾고 있었는데 그 때 존 케이지 만남 우연히 만나 사상적으로 크게 매료되죠. 존 케이지 말하는 음악은 문학 철학이 다 음악이고 음의 화음보다 소리의 조직을 음악이라고 보죠, 바로 비트음악 몸의 맥박을 비롯한 신체의 소리 거리의 소리 일상과 기계의 소리 등 모든 소리가 음악의 기원이 된다는 생각했죠. 음악도 작곡을 해서 연주라는 것이 아니라 소리의 조직으로 이루어진다는 새로운 발상 그걸 주역에서 얻어왔죠 그러다보니 비결정성 우연의 소리의 도입이 중요하게 봤는데 백남준은 그런 사상에 경도된 셈이다. 서구인이지만 동양정신에 함몰된 철학자에게 서양음악에 젖은 동양인 반대 입장에게 영향을 받은 것이죠. [백남준은 이걸 모래 씹은 것 같다고 해죠] 소음 침묵 정적 호흡소리 들리지 않는 차원의 소리까지 음악이 될 수 있었죠. 이런 새로운 음악철학이 백남준으로 하여금 음악의 고정관념 깨고 되고 더 나아가 음악에 행위를 집어넣어 행위음악이 되죠. 그래서 매우 자극적 충동적이고 때로는 폭력적이죠. 이것은 결국 음악이라는 장르의 한계 벗어나 전자음악이 있듯 전자미술 전자비전으로 확장 탈장르의 현상을 보이게 되죠 미술의 범위가 그만큼 넓어지는 것이죠"
<홍라희, 2007).> 백남준 선생과 삼성과의 인연은 1984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백남준 선생이 35년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였을 때 당시 국제적 성장의 기틀을 마련한 삼성전자의 TV모니터를 자신의 작업에 사용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건희 회장과 함께한 어느 날 백선생이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세계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애정과 삼성에 대한 기대를 재치 와 유머를 섞어가며 표현하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다음 해 백선생은 삼성전자와 정식으로 계약을 맺어 자신의 작업에 삼성 TV 모니터를 지원받아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88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념비적인 작품<다다익선>의 전자장비 제작지원을 시작으로, 1992년의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회고전과 1997년 독일의 뮌스터 조각프로젝트, 그리고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의 <백남준의 세계전>과 호암갤러리와 로댕갤러리의 <백남준의 세계전>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핵심적인 프로젝트에 삼성문화재단이 직-간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었던 것도 참 크나큰 보람이었습니다. 백남준 선생이 비디오아트의 거장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동안 삼성의 첨단기술과 기업이미지도 한층발전되어 갔습니다. 예술과 기업의 멋진 만남, 결국 우리의 협력작업은 한국의 기술과 문화를 세계 곳곳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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