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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몽골(영토) 칭기스칸 : 문화(탈영토) 칭기스칸

<몽골 혹은 원나라는 고려여성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최고의 영예로 삼았다. 고려 여성은 미모만 아니라 살림 잘하고 똑똑하고 지혜가 높고 요리도 잘하고 원나라는 고려의 왕조를 유지하게 할 정도로 나름 관용적 정책을 썼다. 왜냐하면 몽골은 한반도 한국인과 같은 형통으로 봤기 때문이다>

13세기 초 칭기즈칸 각 나라의 종교의 다양성을 최대로 존중하다. 반면 15-17세기 유럽은 오랫동안 신교와 구교가 종교전쟁을 하다. "문화인류학자인 잭 웨더퍼드 매켈리스터대 명예교수에 따르면 칭기즈칸은 평등, 신앙의 자유, 관용, 다문화주의 같은 보편가치를 가장 먼저 실천한 역사적 인물이다" <> news.joins.com/article/21921472

 

아시아가 서구 지성 발전에 큰 역할, ‘종교의 자유’ 가치 칭기즈칸서 유래

몽골 정부는 2012년 칭기즈칸 탄생 850주년을 맞아 전국적으로 행사를 거행했는데 전국의 신성한 장소에서 웨더퍼드 교수가 지은 책을 녹음한 것을 틀었다. "많은 학자조차 아시아가 서구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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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몽골제국과 고려의 관계에서 어떤 특이점이 발견되는가.
대답: “고려를 침공한 몽골군은 힘든 싸움을 벌였지만, 이내 몽골과 고려 사이에 특별한 커넥션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 몽골인들은 중국인 등 다른 종족과 결혼하는 것을 금지했지만, 고려 왕실과 결혼하는 것은 오히려 장려했다. 몽골 사람들은 제지술, 조선술, 항해술, 도자기 제조법과 같은 고려인들의 능력에 크게 감탄했다. 몽골인들은 자신들이 복속시킨 그 어느 나라보다 더 고려를 존경했다.”

저자 잭 웨더포드(Jack Weatherford)는 미국 미네소타 주 매칼래스터 대학교 인류학과 교수이자 부족 연구 전문가. 세계사 속 부족민의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던 중 칭기스 칸과 몽골 제국이 동서 문명 교류에 끼친 영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1998년에 서구 학자로는 최초로 칭기스 칸의 고향 부르칸 칼둔 산을 방문한 이래 20년 동안 몽골 제국 연구에 전념했고, 매해 몽골에서 몽골 학자들과 위대한 정복자의 발자취를 찾아다녔다. 그 첫 성과물로 2004년에 펴낸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는 전 세계에서 2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30만 부 이상 팔렸고, 국내에서도 칭기스 칸 관련 책 중에서 가장 많은 독자가 찾았다. 이어 2010년에는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를 펴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웨더포드는 2006년에 몽골 최고의 훈장인 북극성 훈장을, 2010년에 몽골 대통령 훈장을 받았다.

13세기 초 동서 소통의 천재 칭기즈칸의 몽골=말갈=고구려(고려) 긴밀한 계보학. 백남준도 그런 생각을 했나. 그는 자신이 몽골계라는 걸 늘 자랑했다.백남준의 '고속도로로 가는 열쇠' 1995. 이 로제타 석에 백남준 미디어 예술론이 요약되어 있다. 거기에 독일어로 쓴 문장이 나온다.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요소를 좋아한다(Ich mag das chaotische sibirisch-mongolische" 그리고 프랑스어가 나온다. "의심할 여지없이 나의 몽골 선조은 이 노마디즘 문화로 내게 영감을 불러일으킨다(Mes ancêtres mongols m'inspirent sans doute ce nomadisme cultu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