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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美디어담론

[앙소르] 1889년 브뤼셀에 입성한 그리스도

제임스 앙소르 I 브뤼셀에 입성한 예수그리스도 1888

[앙소르] 1889년 브뤼셀에 입성한 그리스도

제임스 앙소르 I 브뤼셀에 입성한 예수그리스도 1888,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 1888년 작품 '브뤼셀에 입성한 그리스도'(Christ’s Entry into Brussels in 1889) 지금 우리나라 혹은 서울에 거지나 노숙자나, 도시 빈민 등으로 변장을 하고 예수가 왔다면 그가 들어갈 수 있는 한국 교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예수가 와도 교회 출입을 막고 그를 거절할 것이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다.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James Sidney Ensor, 1860413~19491119)는 벨기에 화가이다. 이 그림의 상단을 보면 붉은색 배너 위에 프랑스어로 <Vive La Sociale(소셜 만세)> 적혀 있다. 그는 예수를 소셜리스트로 봤나

이에 대해서 해설을 붙인 책(제임스 앙소리의 예술적 실천의 사회적 맥락)이 있다 간단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그의 시대에 대한 인종 및 성별 관점. Ensor의 급진적 비전과 저항, 자기 개조 및 성능에 대한 반대급부와 여전히 ​​관련이 있다"

제임스 앙소리의 예술적 실천의 사회적 맥락

"Vive la Sociale(소셜 만세)" 1889'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의 그리스도의 브뤼셀 입성(Christ's Entry in Brussels in 1889) 상단에 있는 밝은 빨간색 배너에 쓰여진 이 고무적이고 혁명적인 문구는 벨기에 예술가(1860-1949)의 시각적 선언문이자 행동을 촉구하는 역할을 했다. 끈질긴 대중의 목소리로 현대 벨기에의 문화적 담론에 대한 그의 예술 실천의 중심성을 발표했다. 이 도발적인 선언은 사회적 담론과 예술가의 동시대 환경과의 상호 작용 및 때로는 풍자적인 만남에 초점을 맞춘 앙소르의 예술에 대한 이 새로운 연구의 제목 역할을 하다.

현대 미술사에서 선호하는 소외되고 트라우마가 있는 표현주의자라기보다는, 앙소르는 중산층 벨기에 생활, 사회 및 정치의 문제와 관심사에 관여하고 가치와 계급에 의해 영향을 받은 예술 활동을 하는 주체와 목적의 예술가로 여기에서 제시된다. <그의 시대에 대한 인종 및 성별 관점. 앙소르의 급진적 비전과 저항, 자기 개조 및 성능에 대한 반대급부와 여전히 ​​관련이 있다> 종종 오해받는 이 "예술가"의 예술과 경력에 대한 시의적절하고 미묘한 해석이 포함된 이 책(이 제목에 대한 해설서)은 앙소르의 사회적 맥락과 표현적 비평뿐만 아니라 모더니스트 예술 실천에 대한 그의 독특한 공헌을 재평가하도록 초대한다

제임스 시드니 앙소르(James Sidney Ensor, 1860413~19491119)는 벨기에 화가이다.

[생애] 오스텐더에서 잉글랜드인 아버지와 벨기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877년부터 1880년까지 브뤼셀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재학했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오스텐더에서 보냈다. 1883년에는 자신이 출품한 미술 작품이 브뤼셀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거절당하자 예술가 집단인 20인회(Les XX)를 결성했다.

처음에는 빛에 대해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에두아르 마네와 같은 인상주의 화가의 영향을 받아서 사실적인 이미지를 담은 그림을 제작했다. 그렇지만 1885년부터 해골, 유령, 가면을 소재로 한 그림을 제작했을 정도로 괴기한 이미지, 환상의 이미지를 담은 그림을 제작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소란스러운 가면(1883), 해안의 카니발(1887), 1889년 브뤼셀에 입성한 그리스도(1889), 교수형된 사람의 육체를 얻으려고 싸우는 해골들(1891) . 그 외에 괴기한 이미지를 담은 판화도 제작했다. 1929년에는 벨기에의 알베르 1세 국왕으로부터 남작 작위를 받았으며 1933년에는 프랑스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그가 제작한 그림들은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에서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았으며 화려한 색채를 띠는 경우가 많았다. 그가 제작한 그림들 중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들은 1880년대부터 1900년대 사이에 제작된 작품들이다. 반면 1900년대 이후에 제작된 그의 그림들에 대한 평가는 별로 높지 않은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