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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뮤지엄] 장 미쉘 바스키아:거리, 예술, 영웅

[롯데뮤지엄] 장 미쉘 바스키아, 장 미셸 바스키아: 거리, 예술, 영웅(«JEAN-MICHEL BASQUIAT: Royalty, Heroism, and the Streets) 2020.10. 8(목)-2021. 2. 7(일) [1] 천재 화가 「장 미쉘 바스키아」 한국 최초 대규모 기획전시 [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제프 쿤스, 데이비드 호크니를 뛰어넘는 최고 낙찰가 기록 [3] 앤디 워홀과 함께 작업한 대형 작품 및 회화, 조각, 드로잉 등 대표작 150여점 전시 -장 미쉘 바스키아 전시 포스터 *롯데뮤지엄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300 롯데월드타워 7층(에비뉴엘 6층) Henry Geldzahler : What is the subject matter of your work? Jean-Michel Basquiat : Royalty, Heroism, and the Streets - 1983, Interview with Henry Geldzahler.

롯데뮤지엄은 2020년 10월 8일부터 2021년 2월 7일까지 «장 미쉘 바스키아: 거리, 예술, 영웅»전을 개최한다. 1980년대 초 뉴욕 화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8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3,000여 점의 작품을 남긴 바스키아는 자유와 저항의 에너지로 점철된 새로운 예술작품을 통해 현대 시각 문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금까지도젊음의대명사이자새로운영감의원천으로전세계적인사랑을받는바스키아의주옥같은작품 150여 점이 국내 최대 규모로 롯데뮤지엄에 전시된다. 전시 개최에 앞서 2020년 7월 10일부터 10월 7일까지 네이버, 멜론 티켓 예매 사이트에서 얼리버드 티켓을 40 % 할인하는 금액으로 판매된다.

롯데뮤지엄은 ‘거리’, ‘예술’, ‘영웅’의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바스키아가 이룬 혁신적 예술세계 전반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뉴욕 거리에서 시작된 SAMO 시기부터 바스키아의 예술 속에 나타나는 대중문화와 산업화의 새로운 방식들, 그리고 영웅을 모티브로 그가 창조한 다양한 아이콘까지 그의 예술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회화, 조각, 드로잉, 세라믹 작품이 전시장을 가득 채울 예정이다. 또한 앤디 워홀과 함께 작업한 대형 작품도 출품되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될 것이다.

거리의 이단아로 뉴욕 화단에 등장한 바스키아는 시작과 동시에 최고의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바스키아는1984년 경매에서 2천3백만원($19,000)에 판매된 1982년 작품이 2017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380억 원($110, 5 million)에 낙찰되면서 명실상부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임을 증명했다. 산업화와 대중문화의 다양한 이미지들을 즉흥적이고 우연으로 조합함으로써 의미의 문맥을 새롭게 열어놓는 방식을 연 그의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28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까지도 미술, 음악과 패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새롭게 해석되며, 살아있는 신화이자 영웅으로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바스키아의 예술세계를 직접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소개 JEAN MICHEL BASQUIAT(1960-1988, United States) : 장 미쉘 바스키아는 1960년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공화국(Republic of Haiti) 출신의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77년부터 바스키아는 그의 친구 알 디아즈(Al Diaz)와 함께 ‘흔해 빠진 개똥(SAMe Old Shit)’ 같다는 뜻의 ‘세이모(SAMO)’를 만들어 거리 곳곳에 스프레이로 하는 낙서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디에고 코르테즈(Diego Cortez)소개로 바스키아는 1980년 제니 홀저, 케니 샤프, 키키 스미스 등이 참여한 대규모 그룹전 《더 타임스 스퀘어 쇼 The Times Squ are Show》와 1981년 뉴욕 PS1의 《뉴욕-뉴 웨이브 New York-New Wave》에 참여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미국 화단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1982년 아니나 노세이 갤러리에서 미국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언더그라운드 낙서 미술가에서 미국 화단의 떠오르는 신인 아티스트로 급부상한다. 그해 6월 유럽의 가장 권위 있는 전시 중 하나인 《카셀 도큐 멘타 7 Kassel Documenta 7》에 출품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갔다.

1983년 바스키아는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했으며 같은 해 브루노 비쇼프버거의 제안으로 프란체스코 클레멘테 (France sco Clemente), 워홀과 협업한 전시를 개최한다. 그러나 이 전시와 1985년 워홀과 함께한 전시가 미술계 의 혹평을 받으면서 워홀과의 공동작업은 막을 내리게 된다.

지속적으로 흑인 영웅들을 그려왔던 바스키아는 1986년 단순한 관심을 넘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찰로써 아프리카 코트디 부아르공화국(République of Côte d’Ivoire)에서의 전시를 개최한다. 1987년 아버지와도 같았던 앤디 워홀이 수술 후유증으로 사망하자 바스키아는 큰 충격을 받고 아프리카 코트디부아르로 이주할 결심을 한다. 그러나 바스키아는 코트디부아르 아비장으로의 이주를 엿새 앞둔 8월 12일 마약 남용으로 유명을 달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