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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백남준] 20세기:조직, 미디어, 자동차 폭력 1997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 20세기를 위한 32대 자동차(부제: 모차르트 미사곡을 연주하라. 11시30분 늦은 밤까지 사람들이 불평할 때까지 연주하라) 여기서 백남준 20세기 3가지 폭력을 언급하다 1) 조직 폭력 2) 미디어 폭력 3) 자동차 폭력 조직폭력은 1차 대전, 2차 대전, 나치즘 폭력, 파시즘 폭력 미디어 폭력은 정보와 지식의 독점 세력을 강력하게 비판하다. 여기에는 가짜 뉴스 세력도 포함된다. 자동차 폭력 이것의 대안으로 디지털 아트 제시. '하드웨어(산업사회=자동차사회)'에서 '소프트 웨어(정보사회=컴퓨터사회)'로 지구촌 풍경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다. 10년마다 열리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가 초기에는 사실 별 볼일 없었는데 백남준 1997년 출품작으로 이 미술 프로젝.. 더보기
[백남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창시자 Klaus Bußmann(1941년생)이라는 분이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처음 창안한 사람으로 백남준과도 절친한 사이였다. 처음에 이 도시에서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시민들로부터 엄청난 저항과 반대와 공격에도 굴하지 않고 끈기 있게 시민들을 설득했다(아래 2번째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맘 안 드는 전시야 안 가면 되지만, 길거리 조각은 안 볼 수도 없고…” 그렇게 그는 이 프로젝트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갔고 결국은 세계 3대 미술행사로 위상을 높인 전설적인 미술인이다. 지금은 뮌스터 시민들이 이 프로젝트에 대한 호응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재정적 지원이나 자발적 헌신과 참여와 서비스에서도 적극적이 되었단다. 초기에는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고 백남준이 1997년에 출품작(5번째 .. 더보기
[백남준] 96년 쓰러진 후 97년 뮌스터에서 대박 김홍희 큐레이터가 백남준의 뉴욕 집을 방문해 함께 외출 중이다. 백남준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됐다 사진 저작권 천호선 자신하는 작업 이외에 아무 생각이 없었던 백남준 그는 자신의 몸과 건강에 대한 걱정과 배려는 전혀 없었다 사실 그는 당뇨 등이 심한 중환자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결국 새벽 5시까지 작업하는 방식 등 과로로 쓰러지고 만다. 1996년 3월 말에 호암상을 받기 위해서 뉴욕에서 서울로 가야 했고 다시 서울에서 뉴욕 등은 강행군이었다. 그의 체력으로는 좀 버거운 일정이었다. 무사히 뉴욕에 도착했지만 결국은 뉴욕 자택(소호 머스 스트리트 5층)에서 1996년 4월 9일 쓰러지고 만다. 뇌졸중이 온 것이다. 백남준 기독교 절기 4월 수난절과 부활절 기간에 쓰려졌군요 그래서 이렇.. 더보기
[백남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세계적 행사로 백남준 1996년 쓰러지고 1년 후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 의뢰를 받아 작품을 출품하다 여기서 그동안 인기가 없었던 독일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를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행사로 바꿔버린다. 왜냐하면 뮌스터 시민들 그동안 조각프로젝트에 관심이 없다가 이 백남준 작품을 보고 환호하면서 시민들 협조가 급상승하고 기부금도 많이 내게 된 것이다. 이후 이 국제미술행사는 베니스와 카셀과 함께 3대 권위 있는 세계적 미술행사가 되었다. 아래는 자동차(산업) 시대는 가고, 컴퓨터(정보) 시대가 왔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자동차 속도와 전자고속도로(인터넷) 속도는 비교가 안 된다.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이래저래 백남준은 독일미술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 그래서 백남준 독일에서 주는 모든 미술상(괴테상 포함)을 다 받..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