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백남준랩소디

[백남준] 흐르는 우주에 몸에 맡겨라!

백남준은 언제나 전자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실험하는 선구자, 창조적 행위 예술가,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 저항가, 그리고 시대의 우상 파괴자였다

"백남준은 극단적인 것을 종합하는데 천재였다" -백남준 연구가 박정진.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엽기적인(bizarre) 작가다. 현대미술의 특징이 바로 엽기적인 데서 온다. 원시 종합예술인 굿과 첨단의 하이테크인 TV의 결합 이개 백남준이다. 백남준의 예술은 고인돌(1995년 광주비엔날레 출품작)에서 볼 수 있듯 선사시대(Prehistory)와 초현대(Super Modernism)가 만난다. 그런 면에서 이우환의 관계망-응답(Relatum-Dialogue) 시리즈도 결국 백남준의 벤치마케팅인가(?)

"플럭서스는 불협화음과 우연적-즉흥적-돌발적 해프닝이다. 그래서 멀티개념이다. 음악과 퍼포먼스의 교집합(대추씨) 이것은 시공간에 대한 역도전이고 공()의 재발견이다. 보이는(visual) 음악은 작곡이 아니라 대본(score)이다. 행위음악이 벌리는 퍼포먼스는 몸으로 쓰는 시적 은유이다. 이건 다른 어떤 개념보다 굿으로 보는게 적합하다. 굿은 윈시적 종합예술인데 백남준 현대미술에서 이걸 복원시키다. 백남준은 극단적인 것을 종합하는데 천재다" -백남준 연구가 박정진

<흐르는 우주에 몸에 맡겨라 당장 느껴라> "기억하지 말라. 생각을 열어라(멈추어라). 망령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결코 실체를 볼 수 없다. 흐르는 우주에 몸을 맡겨고 당장 느껴라. 그러면 너는 이미 실체가 되는 것이다" - 신라의 선사 무상 스님. 이런 정신은 바로 플럭서스 정신과 통하는 것이다

백남준이 1960년대 참여한 플럭서스는 마치 강물을 닮았다. 플럭서스 예술운동이 생긴이유는 고체사회를 액체사회로 만들기 위해서다. 남성사회를 여성사회, 하드웨어 사회를 소프트웨어 사회로, 일방형 독재사회를 쌍방형 민주사회를 만드려고 했다. 그런 면에서 플럭서스(fluxus)는 말 그대로 흐른다(flow)는 뜻이다. 사회가 순환(이중나선구조)이 잘 되고 리듬감이 넘쳐야 진정 활기차고 인간답게 사는 것이 된다. 즉 죽임의 세계를 넘어 축제의 삶의 염원하는 정신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단체는 후에 체코 대통령된 정치인을 비롯해 시인, 음악가, 건축가, 무용가 등 강물처럼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한 회원들로 구성된 점이 특징이다.

백남준의 인터넷-인터코뮌-소셜네트워크-소셜코뮌-투웨이텔레스크린-전자초고속도로 다 비숫한 의미다. 맑스의 코뮌 공동체에서 발상. 거기에 전자매체 electronic media, 상호매체 inter media, 사회적 매체 social media가 합쳐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