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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백남준] 보이스 그리고 이성과 자유의 관계

보이스는 스스로 합리적이라고 똑똑하다고 고집하는 인간과는 말이 전혀 통한다며 오히려 평화의 상징인 온순하고 선량한 토끼와 대화가 잘 된다고 주장하다. 그걸 퍼포먼스 아트로 보여주다. 서구의 어리석움을 풍자한 것이다

백남준은 로봇을 만들면서 정말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과 기계를 동급으로 본 것이다. 서로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존재로 봤다. 보이스는 사람보다 동물이 낫다고 했고, 백남준은 사람 못지 않게 로봇이 훌륭하다고 본 것이다 백남준 로봇에 적혀 있는 '자유와 이성'이라는 단어가 많은 생각을 유발시키네요

여기서는 결혼에 대한 서구적 환상주의를 여지없이 뭉개버리다. 그때가지만 해도 결혼이란 사실 남성용이다. 여자가 남자에게 소유되는 절차를 정당하게 합법적으로 문서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것을 들통내는 포퍼먼스 이런 것은 1968혁명의 전초전이라고 볼 수 있다 1968년 이후 유럽에서 소위 자유연애라는 발명품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동거라는 새로운 형태의 남녀의 라이프스타일도 유행했다

포퍼먼스 몸으로 그리는 그림 머리칼이 붓이 되어 그림을 그리다 이것은 예술이라고보다는 일종의 고행에 가까운 구도이다. 동양의 철학은 모든 것이 도이다 사실 정신보다 몸을 갈고 닦은 도이다. 이런 면을 매우 관념적인 이성적인 서구인에게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문화충격을 주다

서양인에게 우상화되어 있는 피아노를 완전히 해체하고 그것의 연장으로 TV피아노를 만들어 자기나름으로 예술화하다. 그에게 TV는 전천후 악기였던 것이다 여기서 보면 내가 피아노를 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가 나를 친다는 깨달음에서 이런 작품이 나온 것 같다. 라우셴버그의 <흰색 회화>에서 영감을 받아 백남준은 white noise라는 개념을 만들다.

백남준 1964년 처음 뉴욕에 가서 1965년 운좋게 보비노(Bonino) 갤러리에서 전자아트라는 전시를 열게 된다 그리고 거의 10년간 보니노 갤러리에서 전시를 내줬는데 작품이 한점도 팔리지 않았다. 백남준은 거의 돈이 바닥이 났다 생활비가 없고 월세가 낼 수 없는 전기 선도 살짝 남의 집 것을 써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형이 사는 일본으로가 아버지가 나에게 유산을 주지 않았으니 형이 나에게 돈을 좀 줘야겠다고 부탁해 나름 큰 돈을 가지고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의 동반자 시게코 여사 그런데 백남준이 한심하게 보였다 집에 먹을 것이 없는데 맨날 골동품만 사들고 들어온 것이다. 그중에는 부처도 있었다 그런데 마침내 보니노 갤러리에서 백남준의 TV 부처가 선을 보였는데 이 작품이 뉴욕 미술계의 지축을 흔들었다. 대 성공을 거둔 것이다. 그때부터 백남준 작업비가 마련되고 생활이 폈다고 한다. 10년간 한점 작품이 팔리지 않아도 전시장을 내준 보니노 갤러리 대단하다. 그 이후 이 갤러리도 백남준 덕을 크게 본 것이다

마철민 작가 교보에서 책을 가장 많이 사는 고객 중 탑에 속한다. 독서량이 상당하다. 그의 도서 중에서 현대미술사전 중 한컷 찍다 백남준에게도 영향을 준 라우센버그 작품 같네요

서양미술사 책 중에서 백남준을 소개하는 코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