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소: 국제갤러리 K1, 한옥 전시기간: 2025년 3월 20일(목)–2025년 5월 11일(일)

국제갤러리는 오는 3월 20일부터 5월 11일까지 K1과 한옥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의 개척자인 하종현의 개인전 《Ha Chong-Hyun》을 개최한다. 지난 2015년, 2019년, 2022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3년 만에 열리는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회화란 무엇인갗라는 화두 아래 반세기에 걸쳐 유화를 다뤄온 하종현의 지속적인 실험과 물성 탐구의 현주소를 조망하는 자리다. 기존의 〈접합(Conjunction)〉 연작과 여기서 비롯된 다채색의 〈접합〉, 제스처의 자유분방함과 기법의 자연미를 강조하는 최근의 〈접합〉, 그리고 2009년부터 시작된 〈이후 접합(Post-Conjunction)〉 연작 등 2009년부터 최근까지의 작품 30여 점을 통해 쉼 없이 진화 및 확장하고 있는 하종현의 작업세계를 일괄한다. <이미지 갤러리 제공>
하종현이 개발한 하이테크: '접합'과 '배압'(마대자루 뒤에서 압력을 가해 튀어나오게 하는 기접 The Back-Press Method) // 하종현은 1974년 <집합> 연작을 시작했다. 이 작업은 "입체 실험에서 얻은 효과를 평면에 어떻게 옮길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회화의 평면성을 실험하기 위해 올이 생긴 마대자루를 캔버스로 활용하여 그 뒷면에 유성 물감을 듬뿍 바른 뒤 커다란 나무주걱과 같은 도구로 물감을 밀어내는 '배압법'을고안했다. 이 독창적인 제작 기법은 회화의 뒷면에서 시작한 작업의 결과가 앞면으로 드러난다는 점에서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직조된 마대자루 표면을 투과해 흘러나온 물감이 만들어내는 생생한 질감은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 작가의 신체적 행위와 물질성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하는지를 보여준다.<접합> 연작은 2010년부터 (이후 접합)이라는 또다른연작으로 발전되어 현재까지도 하종현의 작업 세계를 대표하는 주요 지역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후 접합>은 초기 직업의 기법과 정산을 괴한들 동시에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된 새로운 조형성을 선보이며 그의 실험 정신이 여전히 지속됨을 보여준다. |

1970년대부터 시작된 〈접합〉은 지난 50여 년에 걸쳐 하종현을 대표하는 연작으로 자리매김했다. 작가는 올이 굵은 마포 뒷면에 두터운 물감을 바르고 천의 앞면으로 물감을 밀어 넣는 '배압법(背押法)'으로 평면에 공간의 개념을 부여하는 노동집약적인 기법을 구축했다. 한국전쟁 이후 화가로서의 활동을 본격화한 그가 재료로 선택한 마포(마대 자루)는 밀가루, 철조망 등과 함께 전후 상황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로, 당시 시대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재료였다. 그뿐 아니라 그는 손수 만든 도구들을 이용해 작업해 왔다. 즉, 하종현은 재료와 기법, 작업 도구를 포함하는 모든 가능한 방법과 수단을 동원해 회화에 대한 고정관념과 기존의 관행을 전복하고자 부단히 시도했다.
이번 전시는 배압법을 이용하는 기존 〈접합〉의 방식과 형태를 고수하되 그 기법과 의미의 변주를 조명하는 작가의 신작을 포함한다. 예컨대 색에 대한 동시대적 고민이 반영된 다채색의 〈접합〉 신작에서는 캔버스 뒷면에서 만들어진 작가의 붓 터치(mark-making)와 함께 밝은 색이 섞인 그라데이션이 강조된다. 기존 〈접합〉 연작에서 기왓장이나 백자를 연상시키는 한국적인 색상이 주로 사용되었다면, 다채색의 〈접합〉 신작은 색이 지닌 상징적 의미보다는 주변에서 흔히 볼 법한 일상의 색상을 도입해 보다 현대적으로 해석된다. 그의 또 다른 〈접합〉 신작인 〈Conjunction 24-52〉(2024)는 마포 뒷면에서 밀어낸 물감이 앞면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접합〉 초기작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초기작에서 자연의 흙색을 사용한 것과 달리 신작에서는 그라데이션을 이용해 흰색을 보다 세련되게 표현했을 뿐 아니라 점성 있는 물감이 흘러내리는 모습을 부각시켜 물감이 지닌 물성을 더욱 강조했다.
하종현은 색채뿐 아니라 붓 터치와의 오랜 관계 역시 새롭게 변모시키고자 시도한다. 이러한 예는 이번 전시를 통해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접합〉 신작인 〈Conjunction 23-74〉(2023)에서 볼 수 있다. 기존의 〈접합〉 연작에서 기둥 형상의 수직적인 제스처가 주를 이루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자유분방하지만 사전에 계산된 듯한 미묘한 사선 형태의 붓 터치들이 캔버스 화면을 가득 메운다. 이는 그의 작업이 ‘재료의 물질적 특성이 만들어내는 표현이 곧 회화의 본질’임을 골조로 하고 그 표현이 회화의 표면에 밀착하도록 제한하면서도, 화면 위에서 끊임없이 시대에 상응하는 형식적 변모를 꾀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한편 전시는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만선(滿船)의 기쁨"을 희열에 찬 원색의 화면으로 표현한 〈이후 접합〉 연작으로 이어진다. 〈이후 접합〉 연작은 기존 〈접합〉 연작의 주요 방법론이었던 배압법을 응용, 색과 형태뿐만 아니라 회화의 화면을 대하는 태도와 방식 자체를 재해석하고 탐구한 작업이다. 이는 나무 합판을 일정 크기의 얇은 직선 형태로 자른 후 그 개별의 나무 조각을 일일이 먹이나 물감을 칠한 한지, 광목 천, 마대 천, 캔버스 천 등으로 감싸는 작업으로 시작된다. 작가는 이 나무 조각들을 화면에 순차적으로 나열하는데, 틀에 하나의 나무 조각을 배치하고 가장자리에 유화 물감을 짠 다음 또 다른 나무 조각을 붙여 물감이 나무 조각 사이로 눌리며 스며 나오도록 하는 일련의 방식을 반복한다. 하종현은 이렇게 스며 나온 물감 위에 스크래치를 하거나 유화 물감으로 덧칠하는 등 화면에 리듬감과 율동감을 더함으로써 형태와 뉘앙스를 다각화한다. 그가 일컬은 “만선의 기쁨”이란 곧 평면과 조각적 요소의 만남, 시대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는 재료로의 확장 등 〈접합〉의 범주를 확장해 나가는 작가로서의 성취감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하종현의 화가로서의 여정은 재료의 물성 탐구를 통해 하나의 카테고리에 얽매이기를 부단히 거부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기존의 전통적인 회화 관행에 대한 거부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 천착해온 작업 방식으로부터의 탈피이기도 하다. 박서보, 이우환, 권영우 등 동시대 작가들과 함께 단색화의 거장으로 불린 그가 최근 〈이후 접합〉이나 다채색의 〈접합〉을 통해 단색화라는 틀을 넘어 시대의 흐름을 담아내고자 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하종현의 〈접합〉은 특정 작업 스타일을 지칭하는 용어이기보다 지지체와 유화물감의 접합, 평면과 오브제의 접합, 회화적 재료와 시대적 배경의 접합 등 광범위한 범주를 아우르는 넓은 의미에서 하나의 방법론인 것이다.
한편 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는 하종현이 홍익대학교를 졸업한 1959년부터 〈접합〉 연작을 시작한 1975년까지의 초기 작업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는 개인전 《하종현 5975》가 진행중이다. 이 전시는 하종현이 다룬 물질과 회화적 기법이 재료와 매체의 새로운 가능성을 실험하려는 작가적 태도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라 한국전쟁과 급격한 산업화, 도시화라는 당시 한국의 시대적 맥락과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왔음을 일괄한다. 전통과 동시대성, 서구의 기법과 동양의 정신이라는 이분법에 의해 잠식되기보다 동서고금을 관통하는 재료의 물성을 부단히 탐구하며 ‘회화란 무엇인갗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천착해 온 하종현에게, 회화 작업은 그의 전체 여정을 아우르는 집약체일 따름이다. 일생에 걸친 여정의 출발점을 엿볼 수 있는 《하종현 5975》는 4월 20일까지 진행된다.
작가 소개
1935년 경상남도 산청에서 출생한 하종현은 1959년 홍익대학교 회화과 졸업 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1990–1994)과 서울시립미술관 관장(2001–2006)을 역임, 현재 일산에서 거주 및 작업하고 있다. 하종현의 작업은 뉴욕, LA, 런던, 파리 등 세계 주요 도시의 갤러리에서 다수의 개인전으로 소개되었으며, 주요 미술관 개인전으로는 대전시립미술관(2020), 국립현대미술관(2012), 가나아트센터(2008), 경남도립미술관(2004), 밀라노 무디마 현대미술재단(2003) 등이 있다.
LA 해머 미술관(2024),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2023), 덴버 미술관(2023), 뉴욕 현대미술관(2019), 상하이 파워롱 미술관(2018), 브루클린 미술관(2017), 벨기에 보고시안 재단(2016), 시카고 미술관(2016), 프라하 비엔날레(2009)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한 바 있다. 작가의 작품은 뉴욕 현대미술관, 뉴욕 솔로몬 R. 구겐하임 미술관, 시카고 미술관, 도쿄도 현대미술관, 파리 퐁피두센터, 홍콩 M+,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등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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