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근전시행사소개

[갤러리현대] 신관 존 배 '운명의 조우' 8. 28-10. 20

1존 배 운명의 조우2024. 8. 28 10. 20 갤러리현대 신관 (서울시 종로구 삼청로 14) // 존배는 뉴욕 플랫 미대 학장을 했고(28살부터 이 대학 최연소 교수로 임명) 뉴욕 거주 한국 작가들의 정신적 거처(아버지) 같은 역할을 하다 저의 작품은 하나의 음표에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많은 작품들이 말 그대로 하나의 점이나 선에서 시작하지요 () 레너드 번스타인은 음악은 다음 음표에 관한 것이다라고 쓰기도 했었죠. 제 작업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어요. 다음에 올 음은 무엇일까? () 마치 대화가 일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를 이어 나가면서 각각의 점들과 선들이 전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 존 배 <이미지제공 갤러리 현대>

갤러리현대는 존 배(1937년생)의 개인전 운명의 조우2024828일부터 1020일까지 개최한다. 2013년 갤러리현대에서 열린 전시 In Memory's Lair이후 10여 년 만에 열리는 국내 개인전으로 이번 전시는 존 배의 70여 년의 예술적 여정을 집약적으로 선보이는 자리이다. 1960년대 초반 구축주의에 영향을 받아 제작된 초기 강철 조각을 비롯하여 연대기별로 주요 철사 조각, 드로잉과 회화까지, 작가의 작품 세계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작품 40여 점을 선별하여 소개한다.

존 배는 1937년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나 일산에서 유년을 보내고, 1949년 미국으로 이주한 코리안 아메리칸 미술가로 철을 이용한 용접 조각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였으며, 어머니는 러시아 태생으로 러시아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던 신여성 한국인이었다. 존 배는 태어난 이후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다 1949년 한국을 떠나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웨스트버지니아로 이주한다. 이후 존 배는 프랫 인스티튜트(Pratt Institute)의 디자인 학부에 4년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한다. 당시 구축주의와 미국식 바우하우스를 접하며 조각가를 꿈꾸지만, 당시 프랫 인스티튜트에는 순수미술 전공이 없었다. 학교 측은 존 배에게 맞는 순수미술 프로그램을 신설하였으며, 1965년 존 배는 대학원 졸업 후 스물여덟이란 나이로 프랫 인스티튜트에 최연소 교수로 취임한다. 구축주의에서 예술 실천이 삶과 예술을 통합하는 교육적 방법론과 뗄 수 없는 관계이듯, 그에게 40여 년 간의 교수직은 단순한 직업의 의미를 넘어서 자신의 사고관을 계속해서 실험하고 조각 분야의 다학제적 연결 가능성을 확장하는 통로였다. 1979년부터는 조각부 의장을 맡으며 현상학과 생체공학 과목을 신설했고 여러 현대 예술가들을 초청하며 수학, 과학, 자연에 대한 관심을 다방면으로 탐구하는 계기로 삼았다. 2000, 그는 작업 활동에 전념하고자 교수직을 내려놓는다.

존 배의 조각은 미국 미니멀리스트 조각가들의 용접 조각과 조형적, 미학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있지만, 서구의 예술 운동의 흐름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가늘고 짧은 철사를 용접하여 사용하는 그의 조각에는 19501960년대 뉴욕에서 전후 추상과 미국식 바우하우스, 네오 아방가르드의 이름으로 새롭게 인정받기 시작했던 러시아 구축주의 정신, 전후 미국의 환원주의적 추상 조각 등의 흐름이 엿보인다. 나아가 존 배는 당시 미국의 예술적 토양을 넘어 음악과 미술, 수학과 과학 등 다학제적인 관심사를 발전시키고, 하나의 철심을 하나의 음처럼 사용하여 전체와 부분이 상호연결성을 갖는 조화와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무화하는 동양 철학의 세계까지 포괄하며 독창적인 예술관을 형성했다. 또한, 그의 예술 언어는 단단한 철을 녹여가는 과정으로서의 개념성을 동반하며 동서양의 범주를 넘어선다. 고체에서 액체라는 연금술적인 액체성과 불을 통해 하나의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전이성이 동반된다.

미술사학자 정연심은 존 배의 철 조각에 소요된 물리적인 노동의 시간성 자체보다 그 긴 노동을 통해 그가 구현한 탄력적이면서도 기하학적인, 열려 있으면서도 닫혀 있는, 시작과 끝이 없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모호한 공간성과 운동성을 주목한다. 또한 좌우대칭과 같이 모더니즘적인 완결된 형태에서 벗어난 존 배의 그리드 조각이 주변의 상황과 교감하는 역할, 조각의 정밀함이 계획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연적인 요소를 통해 형성된 점 등을 강조한다. 철사와 철사가 연결된 점과 선, 철사가 만들어내는 면과 주변 공간이나 환경이 서로 상호 연결되거나 상호 의존성을 보여주어 일종의 취약하지만 강인하고, 유연하지만 단단한 양가적인 공간을 만든다는 점이다.

존 배의 조각은 비어 있는 공간 속에서 점이나 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전 음표가 다음 음표로 대화하듯 연결되며 아름다운 선율로 완성되는 음악처럼, 그는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점과 선이 품는 움직임의 기류를 감지하고, 서로 간의 관계와 작동 원리를 관찰하며 작품을 발전시킨다. 그의 작업에서는 작곡과의 유사성뿐 아니라 과학과 수학의 원리도 발견할 수 있다. 과학자, 수학자들이 사고하듯 작가는 직설적이고 명료하게 중심을 관통하는 힘에 대해 숙고한다. 나아가 그는 얇고 짧은 철사를 용접해 복잡한 선형구조의 작품을 제작했고, 코어 축을 중심으로 하부와 상부가 나뉘지만 비대칭적인 구조를 구축하여 운동감을 적극 살렸다. 존 배는 미리 완성을 상정하지 않은 채 작업을 시작하고, 공간 속에 놓인 점과 선과 대화를 이어가며 유기적인 구조로 작품을 구축한다. 이렇듯, 완성된 작품은 그가 예측하는 범위 바깥의 형태를 띠게 되고, 역설적으로 멈춰 있지만 동시에 다음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의 상태에 놓인,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존 배는 자신의 작품을 공간 속 드로잉이라 말한다. 자연에서 많은 영감을 받은 그의 작업은 거미줄이나 산호가 얽혀 있는 듯한 형상과 원형의 곡선으로 만들어진 비정형을 보여주며 동시에 물방울같이 내부가 훤히 보이는 투명성을 가진다. 코어를 중심으로 형성된 형태는 하나의 뿌리와 줄기로부터 식물을 보는 듯하기도 하고, 나무의 곡선, 유영하는 생명체나 유기체로 보이기도 한다. 얽힌 선들의 집합체가 갖는 곡면은 보는 이에게 철제 재료를 날렵하고 가볍게 느껴지게 하고, 비상하는 듯한 운동성으로 다가온다. 불과 손을 사용하여 제작된 철이 무거운 속성에서 벗어나, 공간 속에 놓이며 보는 시점과 시각에 따라 다른 운동성을 가지고, 공간에 입체적으로 그려진 드로잉으로 다가온다.

1층과 지하 전시장에는 1960년대 작가의 초기작부터 1990년대 작품을 아우른다. 프랫 인스티튜트 재학 중 제작된 유화 작업 Trompe L'oeil(1960)에서 산업디자인으로부터 점차 조각, 순수예술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존 배의 모습이 드러난다. 초기작 Untitled(1963)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의 교육과 조각가 테오도르 로스작(Theodore Roszak), 캘빈 앨버트(Calvin Albert) 등을 통해 구축주의의 영향을 받은 1960년대 작업을 대표한다. 자동차, 기계 부품이라는 재료와 그것들이 자아내는 유기적 형태 사이의 긴장감에서 자연과의 교향적 구조를 융합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 , 부피의 삼대 구성 요소와 다양한 질감이 부각되고, 제스처적인 측면과 구성 요소들 사이의 상호작용은 움직임, 긴장, 대조의 효과를 연상시킨다. Untitled(1963)는 로스엔젤레스 카운티 미술관에서 2022년에 개최했던 The Space Between: The Modern in Korean Art에서 한국 현대 미술사의 주요한 작품으로 소개된 바 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공간에서의 드로잉으로써 그만의 예술관이 확립되기 시작된다. Untitled 1970, Entitled 2021어떻게 공간 속에서 드로잉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하여 공중 속의 틀에서 작업하기에 이르렀다. 원래 대형 작품을 예상했으나 정해진 결과 없이 조각과의 대화를 이어 나가는 존 배 특유의 즉흥적 과정으로 현재의 이미지에 이르렀다. Involution(1974)Sphere with Two Faces(1976)는 시작과 끝이 모호한 뫼비우스 띠처럼 구 안에 또 다른 구가 여러 번 중첩되어 내부와 외부의 관계가 유동적이고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 낸다. 학생 시절 종이 작업을 통해 관심 가지게 된 위상학의 주제를 짧은 철막대가 계속해 연결되는 선형 구조로 확대해 나간다. Other Voices(1982) 또한 구멍이 뚫린 개방적 구조를 보여주는데, “과거와 미래, 신화와 현실이 어우러지는 존재와 허구 사이의 이상적 공간을 상상하며 작가가 한국과 동아시아 문화로부터 받은 무의식적 영향을 되돌아본다.

또한, Past Imperfect(1981)Cube(1980)에서 큐브가 불규칙적으로 축적되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그리드(grid) 구조를 비정형적으로 변형시킨다. Past Imperfect는 작가가 내면의 대화, 자아 성찰, 자신이나 과거를 판단하는 경향에 대한 사색을 담아내어, 유려한 조형성과 더불어 실존적 가치까지 담아내는 그의 작업의 공통적인 세계관 또한 살필 수 있다. 그리드 형태를 왜곡시킨 또 다른 작업 Cube Root은 굴곡진 선들이 이외 작품에서 사용된 가는 철막대와 사뭇 대조되는데, 그 질량감을 이용해 추상적인 선이 무게를 지닌 물체로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고자 했다. 비버 연못에서 인상을 받은 Great Barrington(1985)과 브루클린 스튜디오 앞의 도로 사이에서 자라난 풀에서 영감을 받은 The Vigil(1986)에서는 존 배가 구축주의와 구분되는 지점인 자연에 대한 관심이 엿보인다. Great Barrington과 구성 요소가 유사해 보이기도 하는 Here and Now(1986)는 두 개의 구분된 형태 사이에 시각적인 연결성과 상호 대화를 주선하고자 했다. Risen, Fallen, Walken(1987)은 짧은 길이의 철사를 밀도 있게 용접하여 물결치는 율동감을 표현하며, 철의 무거운 물질성을 날렵하고 가볍게 변화시킨다. 구부리고, 압축하고, 회전하는 움직임을 통해 독특한 긴장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이 작업의 동기를 당시 동료가 겪고 있던 어려움과 극복하지 못할 것만 같은 압박감을 목격하면서라고 말한다. “환상과 현실 사이의 접점은 우리 주위의 세계를 인식하는 아주 얇은 막 같아요.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막을 현실로 착각할까요?” Homefront(1990)에서도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의 무게감과 그 주위를 돌면서 각도에 따라 유연하게 변화하는 모습이 대조되며 시각의 세계란 결국 환영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지하에서 존 배의 두 드로잉 Night in Engadin(1985), Untitled Drawing(1986)도 선보이며, 빛과 어둠, 다양한 질감, 교차하는 선 속에서 발생하는 유령 같은 형태 등에 대한 작가의 끊임없는 실험을 증언한다.

2층 전시장에서는 존 배의 최근작을 만나 볼 수 있다. Weigh of the Way(1996)는 신앙심 깊은 가족 배경으로부터 기독교와 불교 사이의 대립을 표현한 작업 중 하나인데, 제목의 ‘weigh’‘way’는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으로 아시아 철학, 특히 불교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을 반영한다. (‘the way’)는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의 방식과 믿음을 추구할 때 항상 대가가 따라온다는 존 배의 철학을 담았다. 전시 제목과 동명의 작업인 Shared Destinies(2014)는 선 하나하나가 모여 형성된 구 형상으로, 이 구 형상의 그물망은 외부가 곧 내부, 내부가 곧 외부가 되는 구조를 띤다. 음과 음으로 이어지며 아름다운 선율을 보여주는 음악 같이,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앞선 철사와 뒤에 붙을 철사를 운명적으로 연결하는 존 배의 작업 방식의 핵심을 엿볼 수 있다. Aspetuck(2008)Notes from the Stars(2004)는 작가의 잠재의식 속 기억이나 생각들을 불러내며, 추상적인 개념을 철선을 구부리고 용접하는 반복적 과정을 통해 서서히 구체화한다. Constellation(2012)은 존 배의 작업에서 계속되는 모티프인 과학과 천문학을 주제로 별자리를 이루는 천체들 사이의 복잡한 중력 관계를 가시화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최신작 Heaven and Earth(2024) 시리즈는 바닥에서부터 짧은 철선을 지그재그 형식으로 쌓아 올려 리듬감을 증폭시키며, 공간과 균형을 이루는 힘을 발산한다. 마치 무의식 깊은 곳에서 요동치는 무형의 형상을 보는 듯하다. 2층에서 선보이는 드로잉은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딸 리아나가 임신 중 희귀 박테리아에 감염되어 응급 심장 판막 치환수술을 받게 되면서 감정적으로 취약하고 힘들었던 경험을 승화했다.

자신만의 을 걸어온 존 배의 예술적 여정은 놀라운 진화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간의 기억과 잠재의식, 미술뿐 아니라 음악, 과학, 동양 철학 및 문학을 횡단하는 학제 간의 탐구를 지속적으로 수행해 왔다. 특히 음악과 다양한 스포츠, 발레, 현대 무용 등에 대한 관심은 그에게 공간 속 움직임에 대한 직관과 감각을 일깨우는 영감으로 작동한다. 이번 존 배의 개인전에서 마치 연주되고 있는 음악 같은 작품들을 바라보며, 살아 있는 듯한 작품의 생명력을 경험할 것이다.

작가에 관하여

존 배는 1937년 서울에서 태어나 194912살 때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1952년 웨스트버지니아주 휠링에 있는 오글베이 연구소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후에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 후, 대학원 과정으로 조각을 수학하였다. 존 배는 스물여덟 살에 프랫 인스티튜트의 최연소 교수로 임명이 되었고, 40년 동안 교직과 행정 역할을 맡으며 학교의 미술과 조각 프로그램을 이끌었고 2024년 프랫 인스티튜트 명예박사를 수여 받았다. 존 배는 갤러리현대, 서울(2024, 2013, 2006, 1993); 뉴욕한국문화원 갤러리 코리아, 뉴욕(2024), 플라토(구 로댕갤러리), 서울(2003); 시그마 갤러리, 뉴욕(1997, 1994); 뉴욕 환기재단, 뉴욕(1982) 등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또한, 컬럼비아 대학교 왈라흐 갤러리, 뉴욕(2022); LA 카운티미술관(LACMA), 로스앤젤레스(2022);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서울(2010); 갤러리 바이엘러, 바젤(2007); 스미소니언 미술관, 워싱턴 DC(2003); 환기미술관, 서울(2001, 1993); 뉴버거 미술관, 뉴욕(2000) 등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다양한 기획전에 참여했다. 주요 소장처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리움미술관, 서울; 서울시립미술관, 서울; 프랫 인스티튜트, 뉴욕; 얼터너티브 미술관, 뉴욕 등이 있다. 작가는 현재 미국 코네티컷 페어필드에 거주하며 작업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