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홀이 그린 보이스, 둘은 라이벌 관계 > 앤디 워홀 빛나는 그림자: 요셉 보이스의 초상 / 2024년 5월 29일~7월 27일 타데우스 로팍 서울 포트힐 서울시 용산구 독서당로 122-1(포트힐 빌딩), 2층 / 앤디 워홀, <이미지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연마된 화강암 바닥을 가로질러 서로에게 다가가는 그들의 모습을 목도한 사람들은 그 순간,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과 같은 의식적인 아우라를 느꼈다" - 데이비드 갤러웨이(David Galloway), 1988
타데우스 로팍 서울은 오는 5월 29일부터 7월 27일까지 앤디 워홀의 개인전 ⟪빛나는 그림자: 요셉 보이스의 초상(The Joseph Beuys Portraits)⟫을 개최한다. 본 전시는 앤디 워홀보이스의 초상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 시리즈를 선보임으로써 워홀과 보이스의 역사적인 초기 만남을 재조명한다. 보이스의 초상화는 뉴욕 현대 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필라델피아 미술관(Philadelphia Museum of Art, PA), 런던 테이트(Tate, London) 등 전 세계 유수의 기관에 소장된 바 있으며, 일련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하는 것은 1980년대 이후 처음 기획된 것이다. 미술사의 획을 그은 두 명의 거장은 1979년 독일 소재 한스 마이어 갤러리(Hans Mayer, Düsseldorf)에서 개최된 전시에서 처음 조우했다. 미국의 저술가인 데이비드 갤러웨이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아비뇽에서 두 명의 라이벌 교황이 마주한 것과 같은 의식적인 아우라’가 감돌았던 이 만남은 유럽과 미국 예술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접선하며 중요한 접점을 이룬 순간이었다.
두 사람은 1979년 10월 30일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Solomon R. Guggenheim Museum, New York)에서의 보이스 회고전을 비롯하여 그해 여러 차례 다시 만났다.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의 사진을 촬영하고 있을 당시, 보이스 또한 사진 촬영을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했다. 워홀은 자신의 폴라로이드 카메라(Polaroid Big Shot)를 사용해 펠트 모자와 낚시 조끼를 입은 보이스의 상징적인 모습을 담아냈고, 이
이미지는 1980년부터 1986년 사이에 제작된 스크린 프린팅 초상화 연작의 근간이 되었다.
워홀은 다양한 크기와 형식으로 보이스의 강렬한 시선을 반복적으로 담아냈다. 작가는 특유의 실험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며 초상화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매체적 실험을 진행했는데, 본 전시에서 선보이는 트라이얼 프루프(Trial Proof), 라인 드로잉, 종이 작품에서 다이아몬드 가루를 활용한 작가의 초기 실험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사진의 네거티브 효과를 보다 극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색조를 반전시킨 일련의 작품들과 나란히 전시되는데, 작가의 실험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워홀은 그의 광범위한 작품 세계에 걸쳐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마오쩌둥 그리고 요셉 보이스와 같은 주요 인물을 재현하는 연작 <리버설(Reversal)>을 지속했다. 이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다른 예술가를 표현하는 데 특별한 가치를 두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워홀은 원본 사진의 이미지를 단순화함으로써 인물을 상징적이고 아이콘스럽게 표현하였고, 스크린 프린팅 기법을 통해 작가의 직접적인 개입을 최소화했다. 실크 스크린 기법과 관련하여 작가는 ‘사진을 선택하고 확대한 다음, 접착제를 활용해 실크에 전사한다. 그리고서 잉크를 바르면 접착제가 없는 실크 부분으로만 잉크가 통과하며 인쇄된다. 같은 이미지를 활용하더라도 이 방법을 통해 매번 조금씩 다른 무언가를 얻게 된다’고 설명했다.
워홀은 이미지 자체보다 색상, 구성,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변화를 꾀했다. 작가는 단조로운 단색 바탕 위에 실크 스크린 스텐실을 사용해 여러 색상으로 덧바르며 보이스의 머리와 어깨를 보다 선명하게 표현하였다. 그는 트라이얼 프루프 즉, 이미지의 다양한 변용을 실험해 보기 위한 개별 판화를 제작하며 작가적 연구를 이어 나갔다. 워홀은 이렇게 생산된 트라이얼 프루프를 자신의 판화 에디션이나 회화 작품을 상호 보완할 수 있는 작업군으로 여겼으며, 1980년대 워홀과 긴밀히 협력했던 출판업자인 외르크 셸만(Jörg Schellmann)은
‘트라이얼 프루프를 워홀의 원화와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인 바 있다. 이는 판화와 원화 사이의 구분을 해체하고 예술 제작의 본질에 집중했던 작가의 혁신적인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다.
보이스는 워홀에 관하여 ‘그는 일종의 영(靈)적인 존재로, 영성을 가지고 있다’며, ‘앤디 워홀이 초상화를 통해 행하는 타불라 라사(tabula rasa) 즉, 관습적인 상징을 비워내고 깨끗이 하는 것은 […] 다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낸다’고 말한 바 있다.
워홀과 보이스가 예술에 접근하는 미학적, 철학적 방식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지만, 각자의 작품 전반에서 일상적인 사물과 이미지를 활용하고 더 나아가 낯설게 만든다는 점, 그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한 집념이 있다는 데서 교차한다. 주지하듯, 보이스는 비행기 추락 사고에서 유목민 타타르족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신화적 기원을 지닌 예술가였으며, 워홀은 어디서든 한눈에 띄는 은발 가발을 착용한 ‘팝의 교황’으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구축해 낸 예술가였다.
워홀의 연속성에 대한 흥미는 유명 인사와 자아상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결부되었다. 그는 자신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타인의 자기양식화(self-stylisation)를 포착해 냈고 반복, 매체 그리고 기술에 대한 예술적 탐구를 바탕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예술적, 문화적, 정치적 아이콘들의 강렬한 모습을 기록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Joseph Beuys, 1980. 린넨에 아크릴과 다이아몬드 가루, 잉크 실크 스크린. 101.6 x 101.6 cm (40 x 40 i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 DACS, London, 2024. 사진: Eva Herzog.
앤디 워홀, Joseph Beuys (Diamond Dust), 1980. 캔버스에 다이아몬드 가루와 잉크 실크 스크린. 101.6 x 101.6 cm (40 x 40 in). © The Andy Warhol Foundation for the Visual Arts, Inc. / DACS, London, 2024. 사진: Charles Dupr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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