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갤러리(한옥공간)]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A stranger to Strangers)> 2024. 02.01~03.03까지 / 최욱경 한옥이라는 그릇에 담아 전시를 하니 더 정겹게 느껴진다. 이 전시는 2023년 국제갤러리 부산에서 8월 25일부터 10월 22일까지 최욱경(1940-1985)의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A Stranger to Strangers)》을 개최했었다. 그 전시를 못 본 관객을 위한 전시인데 입장은 랜덤하게 이뤄지기에 바로 볼 수 없는 경우가 있음을 사전에 알고 있으면 좋다.
국제갤러리는 오는 2월 1일부터 3월 3일까지 한옥공간에서 최욱경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프레젠테이션형식의 이번 전시는 지난해 8월 부산에서 개최된 최욱경의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A Stranger to Strangers)》 전시작 중 일부 종이 작업과 크로키(인체드로잉)을포함해 총 21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이번 프레젠테이션은 부산 전시를 아쉽게 놓친 서울 관객 및 미술 관계자들이 최욱경의 개인 및 작가로서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작업을 새로 단장한 한옥 공간에서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대담한 필치와 강렬한 색채를 사용하며 한국추상회화의 대표 작가로 손꼽히는 최욱경은 초기 미국유학시절 본격적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추상문법을 구축했다. 부산 전시 제목이었던 "낯설은 얼굴들처럼"은 최욱경이"은최욱경이 1972년 첫번째 미국 체류를 마치고 잠시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시기에 출간한 국문 시집의 제목이다.
유학 시절에 쓴 45편의 시와 16점의 삽화로 구성된 이 시집은 작가가 뿌리를 흔드는 경험'이라 표현했을 만큼 모든 것이 새로웠던 당시의 생경한 환경과 자극을 마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능동적으로 다져가던 과정에 대한 가장 직접적인 텍스트 및 이미지의 기록이다.
특히 시집에 삽화로 소개되는 16점의 작품 중 <습작 (習作)>, <실험 (實驗)〉, 〈I loved you once〉,<Study I>, <Study II>, <experiment A> 6점은 부산에이어 이번 전시에도 포함된다. 작가만의 유머를 기반으로 때론 직설적인 제목이 붙여졌던 다수의 회화 작품이 한 편의 완결된 이야기를 전달했다면, 이번 전시 드로잉은 작가의 일상을 채우던 생각의 파편, 일기장 속미완의 이야기를 엿보는 듯하다.
시집을 통한 소개를 필두로, 최욱경의 종이 드로잉작품들은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작업하던 작가의 당시고유한 감정과 의식의 흐름을 그대로 전달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의 컴바인 페인팅을 연상시킨다고 평가받는 최욱경의 콜라주 작품들이 현실과 이슈들을 즉각적으로 반영한 것과 대조적으로, 드로잉에는 종종 의식의 흐름에서 즉흥적으로 나온 단어 또는 생각 등이 담긴텍스트가 등장한다.
이를테면 <Untitled>(c. 1960s)에서는최욱경 자신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이질적인 인물 옆에 영문으로 IDON'T KNOW WHAT YOURDOING, BUT, I CAN'T HELP YOU BECAUSE IDON'T LIKE IT.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내 맘에 안 들기에 난 도와줄 수 없겠다)”라 쓰인 문구가 등장한다. 작가가 직접 들은 말, 혹은 생각의 단상인 이 문구를 통해 최욱경은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감정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1963년 서울대학교 회화과 졸업 이후 변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최욱경은 작가로서의 역량을 확장하기 위해 유학을 결심한다. 유학 중 작가는 잉크, 연필, 차콜, 콩테,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접하고 탐구했고, 낯선 환경 속에서 숱한 실험과 수행을 거쳐 자신만의 독자적인 언어를 구축할 수 있었다.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Cranbrook Academy of Art) 대학원 과정에 진학한 후에는 그간 단순히 연습 과정이라 여겼던 드로잉 작업의 중요성을 인지해 다시 기본기에 충실하고자 방대한 양의 소묘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때 정말 많이그렸다" 회고하던 작가는 "2년을 그렇게 그리고 나니까 졸업할 무렵엔 '아, 이것이 그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고 나는 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마음을 굳힐 수가 있었다"라 말했다. 끝없는 연습으로 회화에 대한 탐구를 지속했던 작가의 의지는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매체로 찾아낸 시와 드로잉의 언어를 통해 가감 없이 발현된다.
또 다른 작품 <Untitled (AM I AMERICAN)>(c.1960s)을 통해서는 작가가 머나먼 땅에서 혼자 작업하고생활하며 느낀 '나는 미국인인가?'와 같은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엿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에 담긴시 그래도 내일은」(p.36)에서 작가는 “그래도 내일은, 다시 솟는 해로 밝을 것입니다. 꽃피울 햇살로 빛날 것입니다."라고 쓰며, 무수히 괴롭고 외로운 나날들 속에서도 내일은 희망찰 것이라 믿는다.
머뭇거림 없이 대범한 자신의 필치대로 꾸밈없이 솔직했던 최욱경의 시와 드로잉 작업을 통해, 제 자리에서 저마다의 혼란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오늘의 우리도 각자의 위안을 얻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 소개] 최욱경(1940-1985)은 1959년 서울예술고등학교, 1963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1963년 미국 유학을 떠나 크랜브룩 미술학교 서양화과, 브루클린, 미술관 미술학교에서 수학하였고, 1968년부터 1971년까지 미국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의 미술과 조교수로 일하였다.
작가는 1978년 귀국하여 영남대학교회화과 부교수, 덕성여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 등을 역임하면서 후학 양성 및 창작 활동에 전념하였다. 주요개인전으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2021, 1987), 서울미국문화원(1978), 뉴멕시코 로스웰미술관(1977), 캐나다업스테어즈 갤러리(1974), 서울 신세계 갤러리(1971), 뉴욕(1971), 코넬대학교(1965) 등이 있다.
이외에도 빌레펠트 쿤스트할레(2023), 아를 반 고흐 뮤지엄(2023), 런던화이트채플 갤러리(2023), 샤르자 비엔날레 15(2023), 파리 퐁피두센터(2021), 미시건 크랜브룩 뮤지엄(2021),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2021), 서울시립미술관(2018), 서울대학교미술관(2016, 2004), 뉴욕 브루클린미술관(1981), 제16회 상파울루 비엔날레(1981), 스코히건재단(1967-1968) 등 해외전시에 작품이 선보였으며, 1972년 제8회 파리 비엔날레 공모전에서 3위에 입상한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구겐하임 미술관, 퐁피두센터, 뉴욕 스코히건 미술학교, 미주리 주립대학 등에 주요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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