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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백남준]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 06.15~08.31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
제주 돌문화 공원 (5백장군갤러리)에서 2023.06.15~2023.08.31 기획: 송정희 누보갤러리 관장

<이번 전시의 키워드는 '(Super Ultra Meta Communication 마저 )'> 1995년 백남준 광주비엔날레가 열렸을 때 "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2023년 제주에서 백남준이 전자굿과 제주굿이 위성아트처럼 랑데부하는 전시를 봤다면 "이 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라는 소감을 밝혔을 것 같다. 지난번 목포에 이어 이번에 제주도에서 굿을 주제로 백남준 전시가 열린다. 아래에서 보듯 백남준은 선사시대 고인돌을 현대화한 미디어 디지털 인터넷 문명을 제주 전통굿과 함께 전자굿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시대 탁월한 예술감각을 발현한 사진가 최재영 선생님 1990년 갤러리 현대에서 열린 백남준 굿(보이스 추모굿) 사진전도 열린다. 백남준 예술론을 한 단어로 줄이면 <미디어 굿론>이다. 아예 1996년 그런 매체미학을 백남준은 로제타 스톤 돌판에 새기다. 그것도 전 세계 사람들이 읽고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전 지구인과 신통하게 소통하기 위해서 5개국어로 새기다.

[백남준] TV와 함께, 요강과 놋그릇으로 연주하는 굿

TV와 함께, 요강과 놋그릇으로 연주하는 굿 - "백남준과 제주, 굿판에서 만나다"(제주돌문화공원 특별전)

굿, 백남준 어린 시절의 '원경험'

굿은 백남준에게 모든 예술의 원류였다. 어린 시절 추억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집안은 일 년에 한 번씩 음력 시월상달에 무당을 데려와 집안 사업 잘 풀어달라는 '재수굿'을 벌였다. 그때마다 애꾸 무당이 단골로 왔다. 음식을 차려 놓고 징과 북 치고 동네 사람들 다 모아 한바탕 잔치가 벌어졌다.

백남준은 어머니처럼 샤머니즘을 종교로 믿는 건 아니나, 여기서 예술적 영감을 받았다. 백남준 부인 시게코는 "그가 미친 듯 무대 위를 뛰어올라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샬럿과 함께 공연하는 순간을 볼 때면 백남준은 영락없이 신기 들린 무당의 모습 그대로였다"라고 의 증언한다.

굿, 서구예술의 '종말선언'

"현대예술은 예술을 하지 않는 게 예술이다"라는 백남준의 말은 '서구식 방식의 예술은 끝났다'라는 뉘앙스다. 세계 예술의 규칙에 대해서도 "우리가 세계사의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서구인이 독점한) 룰을 바꿔라"라고" 말했다. 백남준의 이런 비전은 '굿의 세계화' 선언으로 들린다.

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그의 첫 '전자 텔레비전-음악의 전시'에서 잘린 소머리를 전시장 입구에 걸었다. 그것 굿이었다. 부제가 '추방(EXPEL), 뭘 추방했나? 터줏대감 같은 서양미술을 추방한 굿이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설치작품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 그런 정신이 담겨 있다.

 30년 후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받을 때도 최고 미모의 이탈리아 여성을 북방 몽골족 일파인 '타타르' 로봇에게 재물을 바쳤다. 현장에서 이 영상을 찍은 사람은 바로 백남준의 전자 테크니션 이정성 아트 마스터 대표다. 이번에 이 영상도 소개된다. 이 또한 굿이다. 서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미술판에서 한국 굿을 과시했다. 백남준은 이렇듯 모든 전시를 굿(퍼포먼스)으로 봤다.

백남준의 "총체피아노" 1963. 서구미술의 종언을 상징하는 작품 같다

굿, 세상을 변혁하는 '혁명'

사람마다 굿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백남준에게 굿이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소통(communication)이었다. "점과 점을 이으면 선이 되고, 선과 선을 이으면 면이 되고, 면은 오브제가 되고, 결국 오브제가 세상이 되는 거지. 굿은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는 세상의 시작이지!”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백남준은 한국의 샤머니즘에서 생자와 망자의 소통하는 우주와 화해하는 제의, 천지인이 하나라는 우주 만물의 원리, 거기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생동과 삶의 축제를 예술과 접목하는 것이었다. 물질에서 정신을, 죽음에서 생명을 끌어내는 동력이 있다고 봤다.

다른 면에서 굿이란 모순된 사회구조 속에서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 모여 마을을 괴롭히는 공동악을 물리치고, 노동의 고단함과 일상의 스트레스를 풀고 삶을 재충전하여 정신적 해방을 맛보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더 좋은 세상을 위한 구체적 대안을 창출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대동굿은 무엇보다 남녀노소의 차별 없이 같이 노는 것이고, 끝에 음식은 다 나누어 먹고 춤추고 노래하는 축제의 자리다. 그러나 이런 마을 대동굿이 한국인을 단결시키다 보니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그리고 미국 선교사들에 의해 마치 미신인 것처럼 많이 왜곡되고 축소되기도 했다.

굿, 현대어로 '미디어'

'(정신)'이란 뜻이 담긴 굿은 결코 낡은 언어가 아니다. 현대어로 바꾸면 '미디어(media)'다. 지금이 인공지능시대라지만 고인돌이 생긴 선사시대나 고대시대보다 더 문명적이라 말하기 힘들다. 백남준은 "무릇 늑대의 세계에서 더한 진보한 것은 별로 없다"라고 말했다.

그럼 미디어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미디어란 쉽게 설명하면 부부 사이를 연결하는 '자식' 같은 역할이다. 백남준은 '미디어'란 중세기독교에서 왔다고 여겼다. 신과 인간을 매개시키는 '영매(靈媒, meditator)로 봤다. 쉽게 말해서 시공간과 우주와 인간을 뛰어넘는 중개자인 셈이다.

백남준에게 굿은 몽골, 미디어, 노마디즘, 실크로드, 전자인터넷과 연결되어 있다. "나는 내 피 속에 흐르는 시베리아-몽골리언 요소를 좋아한다. [...] 몽골 사람들하고 우리하고 3천 년 전에 헤어졌지만"라고 말했다. 그는 의심 없이 몽골 선조를 믿었고 그들의 노마디즘 문화에 심취했다.

유라시아가 하나 되는 '우랄 알타이의 꿈'이라고 할까? 백남준은 1974년 '록펠러재단'의 예술기금을 받고 실크로드를 생각하면서 '인터넷'을 창안했다. 지구촌에 사는 인류의 평화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이게 바로 굿의 정신이다. '주술과 기술과 예술'은 원래 한 뿌리다. 이를 더 '싸고·빠르고·손쉽게' 구현하기 위해 처음에는 전 세계의 위성방송을 연결하는 테크놀로지 개념이 발상했다. 

굿, 서양을 해체하는 '노이즈'

백남준은 굿 정신에 디지털 시대에 순차 없이 무질서하게 접근하는 속성을 가진 컴퓨터 개념인 '랜덤액세스'를 접목했다. 이 뜻은 원래 기억 장치에 저장된 자료를 순차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동일한 시간 내에 임의의 장소를 찾아 접근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전복자'와 유사한 개념이다.

백남준은 예술가를 해커처럼 예상하기 힘든 방식으로 서구 근대주의 무너뜨리는 교란자로 봤다. 어찌 보면 굿쟁이나 마찬가지다. 기존의 규칙을 바꾸는 전환 국면의 요소가 다분하다.

"원래 예술이란 사기다. 속이고 속는 거다. 독재자가 대중을 속이니까 예술가는 사기꾼 독재자를 속이는 고등 사기꾼"이라고 덧붙였다. 지금처럼 허위정보, 거짓(fake) 뉴스가 범람하는 시대 진실을 보기란 힘들다. "얼마만큼 생()이며 얼마만큼 연출이며 얼마만큼이 사기? 그건 아무도 모른다. 진리는 가면의 진리이다" 백남준의 초탈한 넋두리다.

진실은 연제나 역설 속에 있다. 서양인 중에서 '존 케이지'가 그랬다. 그래서 그는 화음보다 잡음을 음악으로 봤다. 백남준은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자유를 맛봤다. 그런 면에서. 서양의 '노이즈'와 샤머니즘의 소란한 난장은 닮았다. 기존 질서와 규칙을 넘어 시공간이 뒤죽박죽 된 것 같으나 어느 순간에 하나가 된다.

백남준은 서양의 기존 질서를 전복시키는 사람을 좋아했다. 기존 음계를 전복시킨 작곡가인 '쇤베르크', 기존사회를 변혁하려는 '맑스', 계몽적 근대주의를 비판한 '푸코', 원시적 생명력이 넘치는 야생의 사고를 주장한 '레비-스트로스'를 좋아했다.

그가 스승인 존 케이지 넥타이 자르는 건 우상파괴 정신과 불교의 '()'의 철학을 연성시킨다. 또 백남준은 독일에서 동료작가를 무대에 올려놓고 샴푸를 붓고 머리를 감긴 건 일종의 '씻김굿'이다. 백남준은 평생 굿을 했다. 고급예술로 변질된 예술의 계급화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굿, 백남준 이를 독창적으로 '재해석'

백남준은 전통굿을 독창적으로 창조적으로 진화시키며 재해석했다. 그중 일부의 예를 들어보자.

첫 번째, 굿의 '세계화'. 백남준은 1960년대 초에 독일에서 '괴짜들'에서 기절초풍할 몸짓으로 독일 관중의 배꼽을 뺐다. 이건 서양인이 보면 음악도 미술도 춤도 연극도 퍼포먼스도 아니었다. 난생처음 보는 괴상망측한 스펙터클이었다. 이런 퍼포먼스로 서양 관객을 사로잡았다. 굿을 세계화한 단면이다.

70년대에는 세계 55개국에서 위성방송 '글로벌 그로브(전 지구적 놀이굿)'를 통해 한국의 부채춤과 굿을 소개했다. 80년대는 전 세계 방송을 연결하는 위성 오페라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세계의 춤과 함께 한국의 춤과 굿도 소개했다.

두 번째, 굿의 '인간화'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백남준이 1990년 서울 갤러리 현대에서 생일날 삿갓을 쓰고 1986년에 작고한 독일 친구 '요셉 보이스'의 편린을 추모하는 진혼굿, 그 영혼을 잡은 '최재영' 선생의 사진도 이번에 선보인다. 생과 사, 동과 서를 넘어 우정을 다지고 영적으로 만나는 '접신굿'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초인적 커뮤니케이션이다.

세 번째, 굿의 '현대화'이다. 백남준의 굿은 그냥 굿이 아니고 선사시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과 포스트모던, 첨단과학의 정신을 다 합쳐진 '신문명굿'이다. 한국 굿판에 등장하는 갓이 서양의 중절모자와 나란히 놓이고, 악귀를 몰아내고 신을 부르는 신성한 도구인 '방울'이나  '칼·요강·놋그릇'을 서양의 '피아노'가 대신하고, 우리의 '청동거울' 'TV(모니터)'와 절묘하게 만난다.

네 번째, 굿의 '민주화'이다. 백남준은 굿과 전시에 관객 적극 참여시켰다. 첫 전시부터 관객을 전시의 주인공으로 모셨다. 백남준은 그렇게 대중에게 성큼 다가갔다. 문턱 높았던 기존의 권위적인 예술의 벽을 허물었다. 대신 관객을 문화 소비자 아니라 주체자로 치켜세웠다.

굿, 5가지 통()의 '결정체'

이번 전시 <통>의 기획자 '송정희' 누보갤러리 관장이 뽑은 5가지 <신통('····')>이다. 그렇다. 하긴 백남준만 아니라 율곡 선생도 "국가의 흥망성쇠는 소통의 열림과 닫힘에 달렸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초대교회의 사도 문서에 보면 교회에서도 '신통(神通)' 사건이 일어났다. 그걸 교회에서는 '성령강림절'이라고 한다. 갑자기 서로 모르는 언어가 신도 간에 이해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다. 문화예술도 마찬가지다. 보들레르의 '5감 조응'은 백남준의 '5차원 실험예술'과 통한다. 모든 분야에서 소통이 일어나야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

신통이 일어나면 '영육·혼백·희비·생사·성속·귀천'같은 경계가 무너진다. 한국의 소통 계보학에는 '화쟁' '회통'을 발명한 원효가 최고 수준이다. 화쟁은 극한 다툼과 대립을 푸는 해법이고, 회통은 쌍방적으로() 통하는() 것이다. 원효는 당시 불교가 귀족화되어 대중과 멀어지자 그 벽을 허물고 거리에 나가 '무애가(無碍歌)'를 불렀다.

굿, 비빔밥 같은 '총체예술'

백남준은 엉뚱하게 *"칸트의 음악을 케이지의 철학으로 접합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그의 비디오 굿에는 선사시대부터 첨단 문명의 장르 '춤, 록, 무구, 탭댄스, 오페라, 콘서트, 미사곡, 인디언 나바호족 북소리, 오키나와 전통음악, 한국 무용 등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총체예술(Art for all senses)'이다.

또한, 시각·청각·촉각·미각·후각  오감이 다 들어가 있다. 그래서 완판이 된다. 생방송처럼 임의적이고 가변적이고 비위계적이다. 백남준 이런 총체 예술인 비디오아트를 누가 독점할 수 없는 모두의 공공재로 봤다. 그러므로 거기에 편향된 민족주의 경향은 들어갈 틈이 없다.

굿에는 '에로스와 타나토스', '카오스와 코스모스', '원시적 야생과 문명적 이기'의 경계가 없다. 동서문화의 '비빔밥'이다. 즉 '인터미디어'이다. 굿은 그릇이 커 이제는 AI, G챗트, NFT, 메타버스 등 다 수용할 수 있다.

굿, 오감으로 맛보는 '황홀경'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 속성을 "카타르시스, 순간의 환희, 모든 감각의 만족, 전인격 총체적 개입, 극도의 전자적 충동, 두뇌의 전기 자기 진동, 직접접촉예술, 전자와 생리학의 시뮬레이션, 일렉트로닉 슈퍼하이웨이(전자초고속도로), 정신의 사이버네틱스, 인공신진대사, 다매체-다방향 상응(Correspondence)"이라 밝혔다. 그가 초감각적 쾌락주의자임을 알 수 있다.

아래를 보면 그는 또한 축제주의자다. "예술은 페스티벌이지요, 쉽게 말하면 잔치예요. 왜 우리의 굿 있잖아요. 나는 굿쟁이예요. 여러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도록 부추기는 광대나 다름없어요. 나의 예술철학은 관념을 무너뜨리자는 거지요. [...] 획일성을 막기 위해 자유스러운 작업을 하죠. 민중이 춤을 추도록 대중 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것이지요(1984)"

굿은 황홀한 엑스터시에 이르게 하는 '접신술', '돈의 지배'보다는 '축제의 회복'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다. 백남준은 마음보다 몸, 정신보다는 육체, 관념보다는 성애, 돈보다는 축제에 더 높은 가치를 두었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은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나 현대철학자 '니체'의 후손이다.

무속에서 경험할 수 있는 '무아지경', 신명이 불러오는 '황홀경'과 접하다 보면 우리가 '만신'이 될 수도 있다. 샤머니즘은 삶을 긍정하는 종교다. 우리나라에서 불교, 유교, 도교는 몇 번씩 망했으나 무속은 망한 적이 없다. 왜 그런가? 생명을 소중히 모시는 여성성 때문이다.

 굿, 차세대 과제는 '전자화'

우리에게는 "강자에게 당한 약자의 ()을 푼다 '해원상생'이 있다. 20세기 '서양 현상학에서는 이를 '약자의 힘(La force des faibles)'라 부른다. 이런 지혜는 무당의 원조인 '스키타이 단군'(백남준 1993년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에게 벌써 있었다. 그의 건국이야기에는 인간을 두루 넓게 사랑하라는 '홍익인간' '경천애인'(몽골어로 '탱글리') 사상이 있다. 이게 바로 인류애의 반영하는 굿의 정신이 아닌가.

이제는 굿을 시대정신에 맞게 '전자화'하는 과제가 남았. 백남준은 이를 '전자유토피아(Teletopia)'라고 했다. 그의 이런 아이디어로 1993년 드디어 '월드와이드웹(WWW)'이 상용화되었다. 지금도 이런 첨단기술은 계속 발전하고 있다. 결론으로 이제는 백남준 전승에 따라 제2, 3 '상생적 인터넷 미디어 굿'도 새롭게 탄생되어야 한다. - 아트저널리스트 김형순


레비-스토로스에 대한 글

야만과 문명의 구분 없애다. 그 사이의 유사점을 언급하다 - 레비-스트로스.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한다면 그는 선사시대가 21세기보다 더 문명적이었다고 보는 것 같다.


백남준 서양의 구음악에 반대하면서 신음악 창안 여기에 굿의 요소를 집어넣다

백남준의 신음악은 일단 관객과 연주자가 괴리감 거리감이 전혀 없다. 몸으로 연주하는데 양동이와 요강도 등장한다. 한국 굿의 요소가 들어갔다. 여기에는 물론 요강(배설굿)이 보이지 않고 양동이(씻김굿)만 있다 //아래 뉴욕 몸을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 백남준은 이것을 신음악(Neue Musik)이라고 했다. 연주장에 '양동이' 등도 등장한다 현대실험음악에서 갈 때까지(끝을 볼 때까지) 가 보는 것이다. 관객과 연주자가 괴리감 거리감이 전혀 없다. 카라얀이 지휘하는 베를린 오케스트라는 구음악(Alt Musik)이라 했다.

1963년 첫 전시를 독일 부퍼탈

백남준 1963년 첫 전시를 독일 부퍼탈에서 열면서 한국의 굿의 요소를 집어넣다 백남준 첫 전시 열리는 입구에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대가리를 걸다


백남준 작곡(현악사중주) 악보 1955년 일본에서 시작해 1957년 독일에서 완성하다

197695일 백남준 베를린 미술대학(Academie der Kunste)에서 <소호4중주>연주하는 모습. 백남준은 혼란과 무질서한 분위기에서 최고의 창조성이 발굴된다고 믿는 것 같다. 피아노로 굿판 벌리는 아트 셔먼임에 틀림없다

<백남준이 미국에 한국의 샤먼을 초대한 이유는 뭔가?> 백남준은 콧대 높은 미국에서 그들을 이렇게 기를 꺾어 놓고 죽을 만들었을까? 그의 힘은 바로 백남준 아트의 원류인 샤머니즘에서 온 것이고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자부심에서 온 것이다. 신기와 신통(Super power communication)와 내림굿에서 받은 슈퍼에너지가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19861014일 아방가르드 극장인 La mama Theatre(뉴욕 이스트사이드에 위치) Bye Bye Kipling 공연 중에서 여기서 백남준이 하는 이야기의 주제는 이제 문명의 중심은 서양이 아니라 동양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칭기즈칸의 위대한 점은 뭔가? 바로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른 관용의 정치다 백남준도 칭기즈칸 좋아했다 백남준은 무력으로 세계 지배, 이걸 평화 방식(예술)으로 바꾸다. 그러면서 칭기스칸의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른 관용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다. "나는 문화 칭기즈칸이다(황색재앙은 바로 나다)"라고 약관 서른 살에 선언하다(내가 서양에 가서 서양문화를 다 쓸어버리겠다고 선언) 그 방식은 무력이 아니라 예술적 상상력으로 그렇게 하겠다고 선언하다 백남준 서양에 가서 그들을 겁줄 때 항상 칭기스칸 등장시키다. 사실 유럽은 황색재앙 그 공포가 아직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 약점: 수백 년간 우리를 떨게 했던 공포

수많은 역사학자들은 칭기즈 칸과 몽골군이 가져왔던 어마어마한 공포에 대해서 묘사했다. 그들은 아이와 여자를 잔혹하게 죽였고, 포로들의 눈에 뜨거운 은을 붓기도 했다고 한다. 과장된 소문은 유라시아 대륙에 순식간에 퍼져 몽골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상대 적군들이 도망치기도 했다. 서양에서는 자신들을 벌하러 온 지옥의 악마라고도 불렀다. 몽골군은 아직 정복되지 않은 나라한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칭기즈 칸은 이러한 공포감으로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것을 유효적절하게 전술로 활용했다.

칭기즈칸의 장점: 다양한 민족과 종교를 아우른 관용의 정치

칭기즈 칸의 또 다른 얼굴은 관용이다. 몽골 제국에서 모든 사람들은 평등했다. 부패한 관리들을 엄벌로 다스리고 아무리 지위가 높은 자라도 약한 사람을 착취해서는 안 되었다. 정복한 다른 민족을 몽골화 하지 않았고, 자신의 언어를 강요하지도 않았다. 또한 다양한 민족의 다양한 종교들이 모두 평등하다고 여겨 각 종교들이 평화와 조화를 유지하도록 애썼다. 그리하여 유교와 도교, 불교가 융성하고 그리스도교가 사방으로 전파되는데 기여했다.


[1] "선사시대, 우랄알타이족의 사냥꾼인 우리는 말을 타고 시베리아에서 페루(잉카), 한국, 네팔, 라플란드(핀란드의 북부)까지 세계를 누볐고, 그들은 농업중심의 중국사회처럼 중앙에 집착하지 않았고 몽골처럼 더 멀리 보기(텔레-비전) 위해 여행을 떠나 새 지평을 봤다." - 백남준

[2] 백남준은 우리의 원류를 따라가다가 1) 칠레(잉카문명)까지 간다. 그 범위에 엄청나게 넓다. 그리고 2) 인디언, 3) 핀란드, 4) 훈족, 5) 터키, 6) 헝가리, 7) 우랄 알타이(스키타이), ) 말갈, 9) 거란, 10) 몽골, 11) 동이족, 12) 발해 모두가 우리의 원류에 포함시킨다.

[3] 백남준은 '단군(스키타이)'을 우리와 유라시아(스키타이 등등)를 연결시켜주는 미디어(match maker, PEACE MAKER)로 본 것이다. PEACE MAKER인가 그는 인류 공존주의자였다. 단군은 가능하면 주변에 모든 세상 사람들에게 두루 넓게 이로움을 주는 사람이 되라(홍익인간 To broadly benefit the human world AND human be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