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데우스 로팍(서울)] '미구엘 바르셀로(Miquel Barceló)' 빛의 연회장'(그리자유Grisailles: Banquet of Light): 2023년 3월 9일~4월 15일까지 서울 포트힐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 122-1(포트힐 빌딩), 2층에서 열린다.
“송별 음악, 오늘날의 연회, 그리고 지난날의 연회들, 그 모든 것이 놓여진 하나의 긴 테이블” - 미구엘 바르셀로
<모든 이미지 : 미술관 제공> All images © Miquel Barceló / ADAGP, Paris 2022
현대미술작가 미구엘 바르셀로(Miquel Barceló)의 개인전 ⟪그리자유: 빛의 연회장(Grisailles: Banquet of Light)⟫을 연다. 해양생물과 꽃, 그리고 뼈가 되어버린 생물들로 구성된 ‘연회’ 회화는 작가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대형 정물화 연작으로, 중세 화가들이 사용했던 기법인 그리자유(grisaille)로부터 영향을 받아 제작되었다.
그리자유는 단색조의 색을 사용하여 그 명암과 농담(濃淡)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법을 일컫는 용어이다. 바르셀로는 단색조의 색채 위에 얇은 색조의 층위를 켜켜이 더함으로써 반투명한 화면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그리자유 회화 전통에 경의를 표한다. 본 전시는 일련의 연회 회화와 더불어 해양생물, 그리고 힘을 상징하는 황소 회화까지 아울러 선보이며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망한다.
작은 동물(La petite bête), 2021. 캔버스에 혼합매체, 235×235cm 사진: Charles Duprat
스페인의 저명한 현대미술가로 꼽히는 미구엘 바르셀로에게 회화란 자신을 세상과 결부시키는 본능적인 방식이자 수단이다. 작가는 1980년대부터 정물화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이는 그로 하여금 자신을 둘러싼 자연 속 대상과 시각적 요소들 특히, 그의 고향인 지중해 마요르카 섬 도처에 있는 해양 생물을 보다 적극적으로 탐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작가의 작업은 미술사에 관한 깊은 지식에 근거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연작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와 스페인 정물화(bodegón)로부터 기인한 것으로, 정물화라는 회화적 장르에 근간을 두면서도 바다와 자양물,초점을 맞춤으로써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회화적 전통을 따르는 작가는 실물 크기의 테이블로 화면을 가로질러 구획하고 작품을 마주하는 관람객을 연회장으로 초대한다. 이 별난 연회에 초대된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그의 삶과 풍요로움에 대해 반추하게 된다.
바르셀로는 전통적인 그리자유 기법을 계승하되 단색조 배경에 반투명 유색 층위를 덧칠함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화풍을 구축했다. 이렇듯 옅고 느슨히 표현된 정물화는 캔버스 표면 위 자리한 빨간색, 분홍색, 파란색, 노란색의 얇은 아크릴과 잉크 레이어 그 너머를 볼 수 있게 해 준다.
작가 특유의 유려한 필치로 그려진 요소는 자연과의 상호연결성을 떠올리게 할 뿐만 아니라, 무너질 듯한 환경에서도 모든 생명체가 각자의 자리에서 구조적 역할을 한다는 지점에서 상호의존성을 환기하기도 한다. 작품 내 대상들은 꿈과 현실 사이 그 어딘가에 위치하며, 마치 이들 중 하나라도 떨어지면 떠내려갈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인다. 작가가 ‘폼페이에서 온 테이블 […] 또는 어떤 것들의 얼어붙은 재’라고 묘사하듯, 그의 작품은 마치 잔상과 같은 여운을 남긴다.
미구엘 바르셀로, 노란 정물화(Bodegón groc), 2021. 캔버스에 혼합매체, 190 x 240 cm 사진: Charles Duprat
그의 작품에는 바니타스(vanitas) 장르를 연상시키는 상징적 요소들이 다분히 등장하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 지나친 방종에 대한 경고로써 활용되었던 도상들이다. 칼과해골, 그리고 책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의 유한함에 대한 상기이다. 이들은 생명과 부활을 상징하는 꽃다발이나 과일이 담긴 그릇과 같은 식물적 요소와 대비되어 배치됨으로써 그 의미가 더욱 고조된다.
연회 회화에는 뱀장어나 문어, 새우, 성게 등 작가가 거주하는 섬에서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해양물이 등장한다. 각 작품에서 쏟아져 나오는 얽히고설킨 생명체들은 풍요의 희소성에 대한, 그리고 자연과 깊은 연결성이 지니는 가치에 대한 작가의 언급이자 역설이다. 환경 운동가이자 지지자인 바르셀로는 관람객에게 테이블에서 무심코 만나는 보물들에 눈을 돌리고 또 그들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를 장려한다.
차려진 테이블 주위로 북적거리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겠지만,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품에는 특유의 활기가 넘친다. 정물화란 본디 움직이지 않는, 생명이 없는 대상을 담은 회화인데, 바르셀로에게 정물화란 더 이상 정적인 것이 아니다. 기존의 원칙에서 탈피하고 새로운 형식적 접근을 취하는 작가는 활력이 넘치고 동적인, 새로운 정물화를 선보인다.
미구엘 바르셀로, 달아나는 개를 그린 유색 회화(Quadro color de gos que fuig), 2022. 캔버스에 혼합매체, 205 x 248 cm 사진: David Bone
작품 속 대상들에 대해 그는 ‘그들이 살아있고 건강하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이야기한다. 테이블 옆에 앉아 음식을 갈구하듯 바라보는 개의 모습이나 해양생물로 가득 찬 와인의 바다처럼 끊임없이 너울거리는 붉은 배경 등 작품 곳곳에서 작가만의 고유한 예술적 어휘들이 나타난다. 작가는 오랜 시간 동굴 벽화에 매료되어 다양한 작품의 레퍼런스로 다뤄왔는데, 이러한 그의 천착은 일련의 황소 회화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선사시대 동굴 벽화를 연상케 하는 황소는 테이블처럼 등을 길게 펴고 서있다. 마치 생동감 넘치는 만찬의 유쾌함과 시공간이 정지된 취약함 사이에 놓인 연회에 참여하라는 듯 한쪽 눈을 크게 뜨고 관람객을 응시한다.
바르셀로는 그림 그리는 행위를 캔버스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에 비유한다. 이러한 생명은 그리자유 회화의 섬세한 물질성과 미구엘 바르셀로, 노란 정물화(Bodegón groc), 2021. 캔버스에 혼합매체, 190×240 cm사진: Charles Duprat / 미구엘 바르셀로, 달아나는 개를 그린 유색 회화(Quadro color de gos que fuig), 2022. 캔버스에 혼합매체, 205×248 cm사진: David Bonet 3 함께 스며든다. 그가 묘사하듯 ‘먼지 나고 지글지글거리는’ 목탄은 캔버스 위에 얹힌 선명한 안료들과 한 데 섞이며 어우러지기도 하고, 하얀 바탕의 바다 거품이나 이끼가 연상되는 두터운 질감으로 쌓이기도 한다.
존재는 부재와 균형을 이루고, 유색은 흑백과, 조화로움은 불안정성과, 풍요는 결핍과, 그리고 삶은 죽음과 그 균형을 맞춘다. 본 전시는 현대 사회에 가장 시급한 질문 중 하나인 쇠퇴와 회복에 관해 고찰해 보기를 권유하며, 작가가 상정한 정지된 장으로 관람객을 안내한다. 본 전시와 연계하여 알베르토 망구엘(Alberto Manguel)의 에세이와 작가의 설명을 담은 도록이 출간된다.
[작가소개]
마요르카 출신의 작가 미구엘 바르셀로(Miquel Barceló)는 표현적인 회화와 청동 조각, 그리고 도자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 예술적 유목민인 작가는 자연계에 특히 매료되었고, 이는 1940년대와 50년에 걸쳐 유럽에서 발전된 앵포르멜 미술의 거친 물질성을 연상시키는 풍부한 질감의 캔버스에서 잘 나타난다. 비전통적인 예술 매체를 꾸준히 실험해 온 작가는 화산재와 음식물, 해조류, 퇴적물, 직접 만든 안료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으며,, 그의 주요 동력이 되는 강렬한 에너지의 흔적을 작품 내에서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작가는 스페인과의 뿌리 깊은 인연을 근간으로,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시간을 보내며 영감을 얻었다. 특히 1980년대에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앤디 워홀(Andy Warhol)과 가깝게 지내며 깊은 교류를 나눈 바 있다. 또한, 1990년대 초에는 서아프리카 말리(Mali)에 스튜디오를 마련하였는데, 당시 도곤(Dogon)족의 도기 제작 방식을 전수받게 된 것을 계기로 점토를 의욕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바르셀로는 선사 미술부터 동시대 미술까지 아우르는 방대한 미술사를 토대로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해 왔다.. 회화의 전통을 기반으로 표현의 기술적 경계를 확장해 온 작가는 프란시스코 고야 및 파블로 피카소를 포함한 위대한 선대 화가들의 발자취를 따른다.
1957년 스페인 마요르카(Mallorca)의 펠라니치(Felanitx)에서 태어난 바르셀로는 현재 파리와 마요르카를 기반으로 활동 중이다. 1974년 팔마 데 마요르카의 미술학교(Palma de Mallorca Fine Arts School) 입학 후, 바르셀로나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Royal Academy of Fine Arts, Barcelona)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1976년 아방가르드 개념 미술 그룹인 ‘Taller Llunàtic’의 해프닝과 시위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상 파울로 비엔날레(São Paulo Biennial, 1981)와 카셀 도큐멘타 7(documenta 7, 1982)에 참여하며 국제적인 입지를 다지기 시작했으며, 2009년 제53회53 베니스 비엔날레의 스페인 국가관 대표 작가로 참여하였다.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Centre Pompidou, 1996)와 파리 루브르 박물관(Musée du Louvre, 2004), 멕시코 타마요 미술관(Museo Rufino Tamayo, 2005), 프랑스 국립 도서관(Bibliothèque nationale de France, Paris, 2016), 파리와 말라가 소재의 피카소 미술관(Musée Picasso, Paris, 2016; Málaga, 2021) 등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전시된 바 있다. 2021년 작가의 작업 세계를 총망라하여 조망하는 회고전이 오사카 국립 국제 미술관(National Museum of Art, Osaka)에서 개최되었으며 이듬해 나가사키 현립 미술관(Nagasaki Prefectural Art Museum, Nagasaki), 미에 현립 미술관(Mie Prefectural Art Museum, Tsu), 그리고 도쿄 오페라 시티 아트 갤러리(Tokyo Opera City Art Gallery, Tokyo)를 순회했다.
바르셀로의 공공 커미션 작업으로는 스페인 소재의 팔마 데 마요르카 대성당(Cathedral of Palma de Mallorca)의 성 베드로 예배당(2001-6)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유엔 본부의 ‘인권과 문명 간 연합의 방(Human Rights and Alliance of Civilizations Chamber)’(2008)을 위한 대규모 설치 조각이 있다.
그의 작품은 파리 퐁피두 센터, 루브르 박물관, 마드리드 레이나 소피아 국립 미술관(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ía, Madrid),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Guggenheim Bilbao Museum, Bilbao), 대영 박물관(British Museum, London), 뉴욕 현대미술관(MoMA, New York) 등 세계 주요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외에도 2022년부터 23년까지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개최된 전시를 통해 그리자유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미구엘 바르셀로, 2022 사진: Charles Duprat / @thaddaeusropac #thaddaeusropac #miquelbarce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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