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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랩소디

뉴욕 우연히 출창 갔다가 찍은 백남준 장례사진

[세계적이면서 세기적 작가 백남준 추모 사진전] 2012.1.29 사진전 
[오마이뉴스 기사] 세계를 호령한 문화 칭기즈칸, 백남준 

권연정 전시기획자, 뉴욕에 우연히 출창갔다가 백남준 장례식에 참가하게 되고 그래서 사진을 찍은 것이다 ⓒ 권연정 

고인의 조카인 켄 백 하쿠타(백남준 스튜디오 디렉터)의 진행으로 장례식이 시작되고 생전에 연출했던 퍼포먼스에 헌정하는 형식으로 넥타이 자르기를 재현 오노 요코가 켄 하쿠다의 넥타이를 자르자 300여명의 조문객도 가위로 옆에 있는 사람의 넥타이를 잘라내 백남준의 시신 위에 놓아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다. 당시 뉴욕에 머물고 있었던 권연정 전시기획자(베이징거주)가 찍은 사진을 보내줌

온 대지에 봄기운이 가득하네요. 자연의 순환원리 앞에서 우리가 뭐라고 말할 수 있으랴. 자연은 무질서한 것 같으나 그런 속에 질서가 있다. 어찌 보면 백남준이 말하는 랜덤 액세스와 흡사한지 모른다. 백남준은 <손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하는 랜덤 액세스라는 동양의 무위(무질서)정신을 현대미술에 도입했는데 이것이 서양인에게 설득력을 얻은 것은 서구의 합리주의가 낳은 재앙이 바로 파시즘과 나치즘을 경험했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이란 끔찍한 전쟁을 통해 대학살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랜덤 액세스(무질서한 시공간이 뒤죽박죽되어 있다가 어느 순간에 하나로 합쳐지면 기존의 질서와 규칙을 깨고 보다 창조적이고 미학적인 진정한 질서가 빅뱅처럼 일어나는) 미학은 합리적이고 서구적인 질서를 넘어서는 보다 원초적이고 무질서해 보이는 자연의 원리 샤머니즘적 과학인지도 모른다 



백남준 I '슈톡하우젠의 괴짜[오리기날레]에게 바치는 비디오(Video still from Nam June Paik's contribution to Karl Stockhausen's Originale performances)' 영상제작: Wolfgang Ramsbott 1961. Courtesy Kunsthalle Bremen ⓒ The Estate of Nam June Paik '손과 얼굴(Hand and Face)' 29살 때 깊은 고뇌에 빠진 모습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 - 아티스트 백남준을 기리며 

뉴욕에 3주차 머물고 있던 어느 날, 문득 뉴스에서 백남준 선생의 별세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년을 맞이하는 새로운 퍼포먼스인가보다 싶었는데, 며칠 후 백남준 스튜디오의 홈페이지에 접속해보니 정말 고인의 장례식 일정이 공지되어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뉴욕에 머물고 있었던 나는 그 역사적 현장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2월 3일 오후 3시,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에 서둘러 한 시간 일찍 도착했는데도 많은 조문객과 취재진이 북적였다. 재미 예술가들과 한국에서 급히 비행기로 날아온 저명 인사들만 보아도 추모 열기를 실감케했다. 안무가 머스 커닝헴, 비평가 러셀 코너, MoMA 큐레이터 바바라 런던, 플럭서스를 함께 했던 요나스 메카스 등 특별 게스트와 세계 각국의 예술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이다. 장례식장의 벽면에는 고인의 영상이 프로젝션되고 미어지는 인파에 좁은 장례식장은 그야말로 입추의 여지가 없었다. 



2006년 백남준 장례식 순서지 ⓒ 권연정 

고인의 조카이자 백남준 스튜디오의 디렉터인 켄 백 하쿠타의 진행으로 장례식이 시작되고 존 헨하트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빌 비올라, 크리스토 & 장 끌로드, 오노 요코, 불프 헤르첸고라트 독일 쿤스탈 브레멘 미술관 디렉터, 베시 브룬 스미스소니언 아메리칸 아트 뮤지엄 디렉터, 송태호 경기문화재단 이사장 등 초대 인사 7인의 연설이 이어졌다. 켄 백 하쿠타의 답사로 점점 분위기가 고조될 무렵 갑자기 장내에서는 깜짝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고인이 생전에 연출했던 퍼포먼스에 헌정하는 형식으로 우리도 넥타이 자르기를 재현하기로한 것이다. 먼저 오노 요코가 켄 하쿠다의 넥타이를 자르자 300여명의 조문객들도 미리 준비된 가위로 옆에 있는 사람의 넥타이를 서로 잘랐다. 조문객들은 잘라낸 넥타이 혹은 스카프 조각을 백남준의 시신 위에 수북이 바치며 아티스트에 대한 존경을 표했다. 




백남준 프랭크 캠벨 장례식장 ⓒ 권연정 

장례식 마지막에는 문상객에게 시신 목례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다들 카메라를 들이대고 심지어 플래쉬를 터뜨려 가면서 사진과 비디오를 찍는데 기분이 묘했다. 고인의 가는 길을 애도하기 위해 모였는데 보통 장례식과는 달리 장엄하면서도 축제 분위기 속에서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것이 참 이상했다. 이발과 면도를 하고 곱게 화장한 얼굴로 꽃으로 덮인 관 속에 잠자듯 고요히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조용히 부르면 바로 깨어날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진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이번에도 퍼포먼스이기를 바라면서 아티스트 백남준을 향한 짧은 묵념을 하고 장례식장을 나섰다. 워낙 기인이었던 백남준이기에 어쩌면 그는 저 세상에서 애도하는 우리를 지켜보면서 거꾸로 즐거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엉뚱한 생각을 해보면서 말이다.  - 전시기획자 권연정(2006.03 포토넷) 


무어맨은 백남준에게 그의 마릴린 먼로였다 

피카소의 한계를 뒤샹이 뚫었다 뒤샹의 한계를 백남준이 뚫다 "나의 실험적 TV는 완전범죄에 가깝다" 백남준은 카오스를 제자리로 돌려놓은 혼돈의 신이다. 백남준은 큰 무당 영감으로 넘치는 위성예술가백남준의 삶과 예술은 서양의 페니스에 대한 동양의 버자이너 반격하며 백남준은 문명의 축을 서양에서 동양으로 바꾼 혁명가였다 <굿으로 보는 백남준 비디오아트 읽기 2010> 박정진 일부 참고 

백남준-문명의 축을 서양(양)에서 동양(음)으로 바꾼 큰 무당 말(馬)을 타고 달리는 박수무당 전타를 타고 나르는 견우 황색공포가 바로 나다라는 것을 보면 그는 유목문화에 대해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 천지인의 샤머니즘 발과 말과 언어가 지배한 역사 머리가 지배한... 역사가 아니고 몸이 지배한 역사 백남준 계열은 모계다(이미지-기의-샤머니즘-생성론-氣철학-음양적 음사상) 반대는 부계다(텍스트-기표-고등종교-존재론-理철학-양음적 양사상) 미학의 철학보다 상위개념 진선미가 아니라 미선진다 마이너스가 있어야 플러스가 힘을 쓴다. 모성이 있어야 부성이 힘을 쓴다. 예술은 마이너스고 과학은 플러스다. 


백남준은 독일인들을 웃기는 천재였다 

천지는 제 스스로 몸을 얻은 것이다 백남준은 기운생동 파롤 실천 천지개벽 역동적 무교 주역이고 그 반대는 이성논리 랑크 이론 천지창조 역학적 유교 물리이다. 세습무 예술을 함으로써 신을 접해 강신무 신이 내림으로써 예술을 한다 철학하는 인간 眞 놀이하는 인간 爲에 구별이 없다 천(플러스) 지(영) 인(마이너스)다 피카소의 한계를 뒤샹이 뚫었다 뒤샹의 한계를 백남준이 뚫었다 나의 실험적 TV는 완전범죄에 가까운 최초의 예술작품이다. 백남준은 달에 빠진 작가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다. 예술은 고등사기다:: 상상계와 현실계를 왕래하는 일종의 주술 낯익은 것을 낯설게 하는 예술은 최대의 사기다. 속임수가 그 임무다. 새로운 신의 탄생 오브제의 전자문명적 탈출구. 한국인은 우뇌형 레프트 반제국주의다. 


칼 하인츠 슈톡하우젠이 작곡하고  전위음악가들이 참여한 해프닝 오르기날레의 1961년 독일공연 때 모습 

무형미술 뒤샹 무조음악 쇤베르크 무상미술 백남준 bricoleur 손재주꾼으로서의 백남준 한판의 강신굿으로서의 백남준 예술:: 전체성의 회복 천지창조에 다른 후천개벽으로서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신이 백남준에게 내려준 여신은 바로 샬롯 무어맨이다 백남준은 박수무당이고 무어맨은 미국무당이고 무당은 무아지경이고 신명은 황홀경이고 만신은 귀신들림이고 물림은 귀신쫒는 것이다.합성 concrescence 네오샤머니즘 애니미즘 토템이즘 셔머니즘 고등종교 그 이후 무어맨은 백남준에게 마릴린 먼로였다 백남준 연보 음악에서 미술을 완성하다. 소리를 오브제하고 오브제를 소리화하다. 카오스를 제자리로 돌려놓다 혼돈의 대가이면서 혼돈의 신이다. 무질서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다. 모든 길은 매체와 사이버테틱스로 통한다. 부처 백남준 일본 가마쿠라에서 선불교를 배우다. 천수관음보살에 관심이 많다. 부처의 대자대비가 극진함을 보여준다. 관음의 손이 천개라도 모자란다. 

백남준 아트센터 입구 

네오샤면 백남준 원시인이면서 인디언이다. TV로 작업을 하면서 나는 신석기의 시대를 떠올린다. 내 개인적 해설 백남준의 예술은 구석기에서 신석기를 만들어낸 것과 같은 수준의 것이다(백남준) 선사시대의 주술과 포스트모더니즘시대는 예술 대모신 마더 마고 mother mago 영원한 어머니 영매와 소머리 관념이야말로 동굴의 우상이다. 물질이 형상은 관념의 자궁이다. 보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매체이다 스피노자. 큰 무당 영감으로 넘치는 위성예술가 새로운 모니터문화의 시인 색미욕의 시인 하이브리드와 trickster 무천 무속 춤과 없음의 미학 백남준의 의식지도1 생태주의자2 무욕주의자3 쾌락주의자4 지방자치옹호자 5 무정부주의자6 평화주의자 백남준: 음의 양 비디오 태음적 노마드 전자의 노마드 들뢰즈: 양의 음 탈영토 태양적 노마드 모나드의 노마드 백남준의 삶과 예술은 서양의 페니스에 대한 동양의 버자이너의 반격이다 나의 결론 백남준은 문명의 축을 서양에서 동양으로 바꾼 혁명가였다 


백남준 1주기 추모 이은주 사진전 포스터 ⓒ 이은주 

이 세상에 이렇기 마음씨 좋아 보이는 옆집 아저씨가 있을까요. 천국의 사람이다. 


‎1990년 백남준 요셉 보이스추모굿 장면. 보이스를 상징하는 모자에 영혼의 안식을 취하라고 흙을 덮어준다 

1990년 백남준은 <보이스추모굿>을 통해서 죽은 친구 보이스를 살려냈다. 백남준의 이런 부활사상은 한국의 굿 정신에서 온다. 삶과 죽음의 화해를 통한 부활을 말하고 있다. 한국인의 사고방식 중 하나인 삶이 죽음이고, 죽임이 삶이라는 생각에서 온 것이다. 이런 삶과 죽음의 화해를 통한 생사를 뛰어넘을 때 부활사상 그런 지혜를 터득한 것은 바로 오랜 고난의 역사에서 얻어진 후천적인 것일지 모른다. 하여간 죽음도 삶처럼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죽음을 이렇게 예술적으로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작가도 민족도 드물 것이다. 

내가 작품을 만들 때 무의식으로 만들지만 나에게 가장 영향은 준 것은 무당이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머니는 1년액을 때우기 위해 무당을 부른다. 24시간 해프닝이 된다. 혼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밤에 이루어지는 예술, 그것도 그녀의 예술이 된다. 무당은 돼지머리를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춤춘다. 그 리듬은 중국 아악 리듬과는 전혀 다르다. 한국의 리듬은 싱코페이션이 있는 삼박자로 3박자, 5박자, 7박자로 이어지는 홀수가 많다. 내가 작곡하면 거의 3박자, 5박자가 되던 것은 결국 한국의 미술 그중에서도 민중의 시간예술, 춤, 무당의 음악에 가까운 것이다" - 백남준 

[백남준과 보이스] 1986년 1월25일 65세 일기로 보이스가 세상을 뜬다. 일생동안 신비에 쌓여 만은 신화를 남기고 인생과 예술이 구별되지 않는 극적인 삶을 살았던 보이는 백남준의 작업 동료이자 백남준과 가장 잘 통하는 쌍둥이 같은 존재였다 보이스는 2차 대전 중 비행사로 복무하다가 남부 러시아 크리미아반도에서 소련군의 폭격을 맞고 추락하게 된다. 안전벨트를 묶고 있던 옆자리 조종사는 그 자리에서 숨졌으나 벨트를 묶지 않았던 보이스는 비행기가 지상에 부딪히면서 창을 둟고 나와 눈 바닥에 떨어져 목숨을 구한다. 그 지방의 주민들은 몽고계 타타르 인으로 보이스를 발견하고 온몸에 버터를 바르고 담요로 싸서 썰매로 실어가 간호해 준 덕분에 보이스는 회생된다. 그의 작품에 기름 덩어리, 왁스, 회색, 펠트지, 손전등, 썰매 약품 등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삶과 죽음 의 경계를 몇 번씩 들락거린 이러한 개인적 경험에서 유래한다. 그는 타타르족이 굿하는 것을 자주 봤기에 친근감을 가진다. 그리하여 백남준과 한국에서 무당굿을 벌일 계획은 몇 년 전부터 하고 있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타계한다. 백남준은 1990년 7월 서울 현대화랑에서 보이스의 추모굿을 올림으로써 그와의 약속을 지킨다 <백남준과 그의 예술(1992)> 김홍희 지음 214쪽 중에서 


고뇌하는 백남준 

니체는 신은 죽었다고 했는데 백남준은 예술은 죽었다라고 선언한 셈이다. 그는 1963년 독일 부퍼탈 전시에서 서양미술의 추방을 선언했다. 그것의 상징으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소머리를 전시장 앞에 걸었고 욕조에 서양미술을 상징인 뮤즈를 난도질했다. 이제는 서양미술은 죽었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나는 새로운 예술을 시작하겠다고 선언이기도 하다. 백남준은 이런 예술적 고등사기로 독일의 전위 예술가들은 다 속아 넘어가게 했다. TV를 예술화하는 것에 생각하지 못하던 시대에 그는 TV로 그림을 그리고 시작했다. '깡통 TV'를 '멀리 보는(visionary) TV'로 인격을 부여한 것이다. 백남준은 통해서 TV는 생명을 잉태했다. 한 인격체로 태어난 것이다. 백남준은 시간예술인 TV를 공간예술 속에 끄집어 들였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새로운 예술을 만든 것이다. 

이것은 20년 후 위성예술로 재탄생했고 이것이 인터넷시대를 열었고 마침내 그의 주장하는 '소통과 참여'를 완성품인 SNS시대를 연 것이다. 그러니까 SNS는 1963년이 시작된 셈이다. 1963년은 1863년 마네가 이룩한 서양근현대미술이 생긴 지 꼭 100년 후라 의미가 더 깊다. 인생파는 당시에 잠에서 깨어난 정신 나간 사람이 그린 괴상한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런 재현에서 벗어난 현대적 의미의 회화였으나 이 그림이 나온지 꼭 100년 만에 백남준은 이런 그림을 해체시키고 드디어 TV붓으로 그림을 그리는 시대를 연 것이다.
 


독일 뒤셀도르프 시내전차에 그려진 백남준의 얼굴. 그는 독일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다. 백남준의 유명한 말 "너무 완벽하면 신이 화를 낸다"는 문구가 전차에 적혀있다. ⓒ Estate of Nam June Paik(Museum Kunst Palast, Dusseldorf) 

백남준은 왜 독일에서 신이 되었나. 그것은 백남준이 독일인들이 스스로 깨지 못하는 고정관념에서 해방을 시켜준 예술계의 모세이자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이 첫 전시회에서 유럽 부르주아문화의 상징이자 숭배대상인 피아노를 박살낸 것은 유럽이 그들의 틀 즉 과학주의 이성주의 합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우쳐주었고 또한 그 덫에서 빠져나오는데 도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독일이 스스로 못하는 것은 백남준이 도움으로 그 틀에서 벗어난 것이다. 마치 물에 빠져 죽어가는 사람을 백남준이 손을 내밀어 살려준 것이다. 첫 전시에 욕조에 해체된 뮤즈가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것의 의미는 당연히 서양문화의 신화와 구조를 과감하게 깬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동양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게 한 것이다. 백남준만큼 서구문화를 깊이 이해한 사람이 없기에 또한 동양문화의 원형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소통이 가능했던 것이다. 


쾰른 아틀리에에서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 작품구상하는 백남준. 사진 만프레드 레베 

파시즘과 나치즘의 악몽에서 방황하는 데 그들을 그 굴에서 해방시키는 것을 바로 백남준이다. 뮌헨이나 뒤셀도르프에 가면 백남준의 얼굴이 휘날리는 이유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그 진가를 인정받지 못한다. 성서에도 예수가 말하기를 위인은 자기고향에서 배척을 받는다고 했다. 백남준도 마찬가지다. 학벌 재벌 문벌 족벌 이런 것이 우리나라의 우상이다. 이것을 깨지 않고 한국은 절대 행복할 수 없다. 백남준의 정신을 현대에 이어가려면 이런 우상숭배의 파괴와 전복이 바로 한국이 제대로 된 나라가 되고 행복해지고 아름다움다운 나라가 되는 우선순위1번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참여와 소통인데 이것은 상당히 정치적이기도 해 이 난제를 풀기 어렵지만 이것을 결코 피할 수 없는 문제이다
 


2006년 백남준 장례식장 근처 눈 내린 풍경 ⓒ 권연정 

불가능한 유토피아 은하계 실현 

백남준 작가가 흥미로운 것은 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철학, 미학, 현대물리학, 정치학, 인류학, 역사학, 미디어학, 큐레이터학, 미술사 등등 그는 카오스의 이론가다. 무의식적 샤머니즘철학자다. 비트켄슈타인처럼 침묵이 최고의 소통방식이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통제 불능이다. 서구의 이론을 들이댈 수가 없다. 바로 텔레토피아 제국(이영철)이다.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판타지 이를 성취하는데 열쇠는 바로 비디오아트다. 비디오아트는 빛과 색의 분자들을 신디사이저 음악으로 바꿔 시간으로 콜라주하는 인식론적 장치예술이다. 여기서 변주 역행 분화 배합이 일어난다. 보들레르가 현대적 예술론에서 미술이 선악의 경계를 넘어서듯(사랑에서 ...불륜이나 로맨스를 구별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랑을 선악으로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동기가 순수하냐 아니냐가 문제다) 백남준은 동서와 남북의 문화적 차이의 장벽을 없앤다. 


존 레논 요코 오네 백남준 슈아 아베 John Lennon, Yoko One, Nam June Paik, Shuya Abe, opening of the Paik exhibition, Galeria Bonino, New York, 23 November 1971. Photo © 1971 Tom Haar 

북방유라시아의 초원의 문화적 특징을 주류에 세운다. 사통팔방이 통한다. 그는 기계와 인간의 경계도 없앤다. 기계의 인간화를 추구한다. 일체의 장벽을 없앤다. 인간과 기계의 순수잡종이다. 샤머니즘과 첨단IT가 만난다. 소극적 퇴행이 아니라 적극적 역행이다. 보이지 않은 인연 네트워크 상호의존적 연결성 생명의 자궁으로 통하는 음악적 행위예술의 반복이다. 일종의 총체적 피아노이다. 그의 괴상한 행위예술은 유럽부르주아공격과 근대적 예술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백남준은 나는 야만인이다. 이 말은 유럽인이 자신이 야만인인 것도 모른다는 뜻이다. <짐은 국가다>를 패러디하여 <황색재앙> 즉 <유럽정복으로 인해 공포를 일으킨 칭기즈칸이 될 사람은 바로 나다>라고 대치시킨다. 몽골기마민족 유목민의 후예라는 자존심을 산 백남준은 서양인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문화적으로 정치적 갈등과 텃세문제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방식은 위성 예술적 유목방식이다. 예술은 보편성이 아니라 텃세다. 탈/영토개념을 미술에 도입한다. <팍스 몽골리카>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세계정복음모는 완전범죄다. 그래서 예술을 사기라고 했다. 터줏대감을 살해하고 스스로 터줏대감이 된다. 그리고 유럽예술의 상징이자 여신이 뮤즈를 욕조에서 완전 범죄자처럼 살해한다. 이렇게 그가 하는 방식은 랜덤액세스다. 그는블랙 홀 속에 사회와 우주와 미래와 대지를 다 삼켜버린다. 일종의 아상블라주인데 이것을 우리는 '백남준의 은하계'라고 한다.
 


2006년 백남준 장례식이 열린 뉴욕 설경 ⓒ 권연정 

"여자의 가장 오래된 질병은 무엇인가 사랑, 여자의 가장 오래된 직업은 무엇인가 매춘, 남자의 가장 오래된 직업은 무엇인가 고문" 서구문명을 풍자한 글이죠. 서양문화는 <사랑과 섹스와 폭력>이라는 3가지 요소를 축으로 하여 역사를 움직이고 있다는 의미가 담긴 것인가요. 백남준이 바로 이런 질서를 해체하려 했는지 모른다. -백남준 어록 


백남준 I '서울 랩소디(Seoul Rhapsody)' 서울시립미술관 소장품 

1984년 1월 1일에 21세기가 시작되었다 - 백남준 

그는 1984년 1월1일 굿모닝 미스터오웰로 가장 넓은 영토를 정복한 문화 징키스칸이 되었고 위성예술의 제왕이 되었다. 사진에 보면 <제국>이라는 단어에 눈에 들어온다. 백남준은 1984년 1월1일에 21세기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인터넷시대를 예고한 것이다. 전 세계가 하나로 통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전 세계인의 참여하고 소통하는 통로를 만든 것이다. 일종의 숨통을 터 준 것이다. 무한한 시간 속에 사이버공간을 열어준 것이다. 뉴욕 파리 서울 쾰른 동경 등등이 연결되었으니 전 세계가 하나로 열린 셈이다. 뉴욕시간 정오 파리 쾰른 18시 샌프란시스코 9시 백남준이 열어놓는 마당에 전 세계 스타급 연애인과 아티스트가 총출동한다. 이런 예는 미술사에 한 번도 없었다. 한국의 샤머니즘이 이렇게 자세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전 세계에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한국의 굿 장면은 가장 중요한 콘텐츠였다. 서양이 동양을 깔보는 것은 정보의 결핍이니 그들에게 이런 장면을 보여준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의 면모를 보면 장 루이 바로, 장 팅겔리, 니키 드 생팔, 앤런 긴즈버그, 요셉 보이스, 크리크만, 존 케이지, 머스 커닝엄, 로리 앤더슨 스타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것을 힘들었다고 회고한다. 그것도 1월1일 말이다. 미국 공영방송(PBS)에서 맡았다. 뉴욕을 7%시청률 성공적이다. 내셔널 풋볼리그 때문에 시청률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하여간 백남준의 전 지구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문화칭기즈칸이 되었다. 지구촌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다. 일종의 랜덤 액세스 무작위로 나간다. 세계는 백남준의 의해서 놀아났다. 좋은 의미로 한바탕 재미있게 놀게 된 것이다. 백남준 유희적 인간의 전형이자 두목이 되었다. 백남준은 그래서 유명해졌고 덩달아 한국에도 알려졌다. 한국이 브랜드가치가 없는 시대 그 덕분에 우리나라가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올림픽도 유치하게 되었다. 


백남준 장례식 근처 설경 ⓒ 권연정 

"세계의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주어진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면 규칙을 바꿔라" - 백남준. 재해석 정말 1등을 하고 싶으면 서구의 룰을 깨고 동양의 새 법칙을 만들어라 

백남준은 서구의 룰을 깨고 동양의 새 법칙을 만든 사람이다. 동양에서는 게임보다는 대동이 기본이다. 그런데 서양의 문명이 극에 달하면서 20세기 유럽의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하거니 결국 1-2차 대전을 치루면서 정신이 번쩍 났다. 19세기 프랑스의 시인들은 이를 미리 예언하고 스스로 저주받은 자라라고 하면서 유럽의 문명을 혹되게 비판하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그 중 대표적 시인은 바로 랭보이다. 그는 시란 가난한 자가 부자에게 던지는 폭탄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런 서구의 규칙을 바꾸려고 한 사람은 없었다.... 조선의 시를 써야 한다는 정약용도 결국 한문이라는 당시의 귀족 언어로 시를 썼다. 그러나 이제는 텍스트의 시대가 아니고 이미지의 시대이기에 번역이 필요 없다. 세계인은 누구다 단번에 이해할 수 있다. 


'음악의 전시-전자텔레비전(추방)' 흑백사진 24×30cm 1963. 사진 만프레드 레베.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나의 '실험적 TV'는 '완전범죄'를 가능케 한 세계최초의 예술작품이다" -백남준 

백남준은 서구인들이 만든 첨단하이를 동양의 마음 혹은 동양의 전통으로 예술화했다 그는 서양의 논리를 넘어섰다. 서양의 무의식을 넘엇는 동양적 무질서 랜덤 액세스 혹은 프리 액세스 개념을 도입했다. 이런 것은 한국의 샤머니즘의 노이지(noisy)와도 통한다. 이런 개념은 2차 대전 이전에는 유럽에서 통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치즘을 경험한 유럽인들을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들은 동양의 무질서의 질서라는 것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즉 윤회이고 비선형, 비전형, 비규칙 같은 것 말이다. 동양은 무소유가 소유이듯 무질서가 질서다. 무언어가 언어이다. 무음악의 음악이다. 무음악은 백남준이 바라는 진정한 예술이다. 그런데 이를 구현한 서양음악가가 바로 존 케이지다. 침묵을 음악으로 본 것은 바로 이런 선불교나 동양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백남준은 세계문명사의 기준이 서에서 동으로 넘어오게 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서 결정타를 쳤다. 이것은 바로 빅뱅이다. 서양의 축을 동양의 축으로 바꾼 것이다. 그리고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서구의 이원론을 붕괴되었다 자크 데리다의 해체철학은 같은 맥락이다 그래서 우리는 원효의 원융합일이나 화이부동(화쟁)을 다시 보게 된다. 물질과 정신을 하나로 소통될 때 서경덕은 가장 큰 기가 발휘한다고 봤다. 서구의 유물론을 뛰어넘는 진정한 유물주의자가 바로 서경덕이다. 


백남준 첫 전시 Nam June Paik during his 'Exposition of Music - Electronic Television', Galerie Parnass, Wuppertal, 1963 © The Estate of Nam June Paik 

거기서 TV인류학이 나온다. 백남준의 아이디어다. 기계를 인간처럼 호흡을 불어넣어 살아 움직이게 했다. 신이 인간에게 호흡을 넣듯 백남준은 TV와 기계에 호흡을 넣었다. 바로 그게 예술가의 몫이다 유럽의 패러다임을 바꾼 사람이 철학에서는 맑스 니체 프로이트라면 미술에서는 마네와 뒤샹이고 이마저 뛰어넘어 서에서 동으로 축을 바꾼 사람은 백남준이다. 그는 시간의 문제와 공간의 문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묶어냈다. 그것이 바로 비디오아트다. 이런 백남준을 서양에서는 알아주는데 동양에tj는 별로 안 알아준다. 그는 한 번도 금의환향하지 못했다. 보물이 우리 안에 있는데도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한 것을 보지 못하면 우리는 영원히 2등일 수밖에 없다. 남의 것에 의존하여 서구적 사고의 추종자로 살수밖에 없다.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판타지> 

백남준 작가가 흥미로운 것은 그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철학 현대물리학 정치학 인류학 역사학 미디어학 큐레이팅 미술사 등등 그는 카오스의 이론가다. 무의식적 샤머니즘철학자다. 비트켄슈타인처럼 침묵이 최고의 소통방식이라고 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그는 통제 불능이다. 서구의 이론을 들이댈 수가 없다. 바로 텔레-토피아 제국(이영철관장의 글)이다. 불가능한 유토피아의 판타지 이를 성취하는데 열쇠는 바로 비디오아트다. 비디오아트는 빛과 색의 분자들을 신디사이징하여 시간으로 콜라주하는 인식론적 장치예술이다. 여기서 변주 역행 분화 배합이 일어난다. 보들레르가 현대적 예술론에서 미술이 선악의 경계를 넘어서듯(사랑에서 불륜이나 로맨스를 구별...하지 않는 것과 같다. 사랑을 선악으로 구별하지 않는 것이다 단지 동기가 순수하냐 아니냐가 문제다) 백남준은 동서와 남북의 문화적 차이의 장벽을 없앤다. 북방유라시아의 초원의 문화적 특징을 주류에 세운다. 사통팔방이 통한다. 그는 기계와 인간의 경계도 없앤다. 기계의 인간화를 추구한다. 일체의 장벽을 없앤다. 인간과 기계의 순수잡종이다. 샤머니즘과 첨단IT가 만난다. 소극적 퇴행이 아니라 적극적 역행(이영철)이다. 보이지 않은 인연 네트워크 상호의존적 연결성 생명의 자궁으로 통하는 음악적 행위예술의 반복이다. 일종의 총체적 피아노이다. 그의 괴상한 행위예술은 유럽부르주아공격과 근대적 예술 관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백남준은 나는 야만인이다. 이 말은 유럽인이 자신이 야만인인 것도 모른다는 뜻이다. <짐은 국가다>를 패러디하여 황색재앙 즉 칭기즈칸의 유럽정복으로 인해 공포를 일으키게 하는 자는 바로 나다라고 대치시킨다. 몽골기마민족 유목민의 후예라는 자존심을 산 백남준은 서양인에게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문화적으로 정치적 갈등과 텃세문제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방식은 위성예술적 유목방식이다. 예술은 보편성이 아니라 텃세다. 탈영토개념을 미술에 도입한다. 팍스 몽골리카에 기초한 것이다. 그는 세계정복음모는 완전범죄다. 그래서 예술을 사기라고 했다. 터줏대감을 살해하고 스스로 터줏대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유럽예술의 상징이자 여신이 뮤즈를 욕조에서 완전범죄자처럼 살해한다. 이렇게 하는 방식 랜덤액세스 사회 우주 미래 대지를 삼켜버린다. 일종의 아상블라주인데 이것을 백남준의 은하계(이영철)라고도 한다. 


그는 정말 패션이 헐렁하다. 진짜 천재는 좀 바보스럽게 보인다. 헐렁한 인간으로 말이다 

"나는 작품을 만들 때 무의식으로 만드는데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샤먼이다"- 백남준. 백남준의 무속사상. 샤머니즘 샤먼 무당 무(巫) 무라는 단어에는 천지인이 들어 있다. 샤머니즘은 기운생동의 극치점이다. 예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 죽음에서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물질에서 정신과 영혼을 낳는 것이다. 그런 역할의 역할모델이 바로 샤먼이다. 무인 것이다. 무(巫)는 천지인을 통해서 무에서 유를 창조한다. 원시적 생명력을 다시 살아나게 한다. 그들은 야만적 타자이고 매혹적 타자이고 치료하는 타자이고 스스로 발화하는 타자이고 자신의 내면을 발견하는 타자이고 통괄적이고 거대한 이데올로기를 몰락하는 타자이고 새로운 풍속을 창조하는 타자이고 산자와 죽은 자를 만나게 하는 ...타자이다. 일종의 매치메이커인 셈이다. 불을 만드는 신이고 풍요를 보장하고 부와 가축을 지키는 신이다 가무를 즐기는 자의 멋과 문화와 축제주의자의 연금술사다 삶의 고단함과 괴로움을 덜어주는 치유자다 다시 말해서 삶에 기운을 넣어주는 자이다 프랑스어로 animateur 영어로 animator다 생활 속에 예술을 실천하는 퍼포머(performer)이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직업이자 의사이고 정신분석가이고 심리치료사이다. 돼지머리를 머리에 얹어놓고 춤을 추는 자이다 가장 원색적 오방색을 쓰는 마술처럼 구가하는 채색주의자이다 우주만물과 소통과 대화가 잘하는 안테나이다 한국미술의 시원지이고 마지막종착역이기도 하다 박경리에서 김지하 그리고 백남준 등 한국의 대가들의 마음의 고향이다 랜덤 액세스이고 마구잡이로 하는 것 같으니 내재율이 있고 신기를 막판에 보여준다. 불이 타 한밤중에 클라이맥스 오르가슴 황홀경에 도달하여 신과 동격이 되고 가장 완벽한 인간이 된다. 니체의 초인이 되는 것이다 불의 찬미가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살리는 자이다 이것이 식민시대를 거치면서 개인화되고 평가절하 되기도 했으나 인간에게 혼을 불어오는 인간의 마음에 씨를 뿌리는 자연과 인간의 중개자로 천지인을 통일시킨다 불순한 자도 혼합된 자도 아니며 순수한 열정으로 이 세상의 먼지와 갈등을 털어주고 풀어주는 잡종이고 합금이고 불순한 자이고 혼합된 자이고 그래서 아름다운 자이다 

‎1962년 마키우나스는 백남준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백남준은 키가 작고 머리카락은 보리밭처럼 삐죽 올라섰다. 겨울에도 샌들을 신고 목도리를 눈밑까지 하고 다닌다. 누고에게나 "할로 할로"하면서 인사를 하고 뉴욕커들과 다르게 매우 겸손했다. 그는 또 영어와 독일어를 일본말처럼 하는데 처음에는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 1988년에 쓴 마키우나스의 <플럭서스 코텍스>에서 


백남준의 '비디오 코뮌' 

이 작품은' 글로벌 그루브'로 발전하고 나중에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진화한다. 박인영기자의 뒷모습이 보이네요. 백남준의 정보(소통과 참여)는 많을수록 좋다는 다다익선, 이 작품은 합치면 합칠수록 좋다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게 바로 백남준의 통일 통합 통섭의 정치철학을 비디오아트로 표현한 것이 아닌가. 분단국출신의 아티스트다운 발상이다 

초국가적인 영역을 횡단했던 유목주의 

백남준은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에서 한민족의전설적 역사적 시조로 여겨져 온 단군을 로봇으로 제작했다. 그런데 작품명은 단군 스키다이의 왕이다 스키타이는 북방 유라시아 초원지대를 지배했던 고대 유목기마집단이다. 이 집단은 기원전 6세기 흑해북쪽에서 발원하여 기마의 스피드로 시베리아 몽골고원 그리고 한반도 남단까지 진출하여 그 유목문화의 흔적을 남겼다. 즉 백남준은 로봇 단군을 통해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초국가적인 영역을 횡단했던 유목주의를 보여주고자 했다. 백남준의 귀환 중에서 350쪽 

“한국에서는 말[言]을 앞세우는 국수적인 애국자가 늘 이기는 것 같다. 세계주의자가 늘 패배하는 나라에서는 문화의 시야가 좁아진다. 이제는 군사독...재도 사라졌으니 한번 모두가 뭉쳐 뛰어볼 만하지 않은가. 한민족은 기마민족의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곳에 정착하기보다는 자꾸 뻗어나가야 한다.” - 백남준 

그는 애국주의를 혐오했다. 애국주의는 나치즘을 낳았고 그것처럼 폐쇄적이고 야만적인 것이 없다. 진정한 애국은 이념으로 하는 것이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의 이념논쟁이 얼만 유치찬란한 애국주의에서 오염되었는가. 진정한 애국은 바로 국경의 경계를 넘어서는 것이다. 국경없는 의사회처럼 자국을 넘어 세계로 나아가 그들과 함께 호흡하고 상대 국가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도와주는 것이 애국이다. 이런 면에서는 로맹 롤랑과 닮은 점이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백남준은 그것이 예술을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범위가 넓고 그 생각은 깊다. 

백남준이 독일에서 수학한 수강과목을 보면 얼마나 넓게 인문학을 익히고 폭넓은 독서를 했는지 알 수 있다. 독일 쾰른대학 철학과 시절에 그가 공부한 내용을 보자. 란트 그레베교수에게서 헤겔을, 폴크만 슐루크교수에게서 니체와 서양형이상학의 증언을 헤센교수에게서 현대20세기철학을, 폴크만 슐루크교수에게서 자연철학과 기초개념을, 발페르트교수에게서 철학적 인류학 등등에서 보듯 그는 서양철학사도 꿰뚫고 있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 그러나 그의 투쟁은 예술이가 가장 평화적이고 보편적인 것이다. 

그의 뇌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그가 애국주의를 그리도 혐오한 것은 알 듯하다. 모든 전쟁과 파괴가 결국은 애국주의와 이념주의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백남준에게 단군까지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스키타이족으로 묘사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렘브란트 오토매틱' 위에 앉은 백남준 1976 프레드리히 로젠탈 

백남준은 유럽의 최고 천재가 발명한 말 착취와 소외에 대한 대안으로 참여와 소통이라는 개념을 그의 미술에 도입했다. "레오나르도만큼 정확하게 피카소만큼 자유롭게 르누아르만큼 다채롭게 몬드리안처럼 심오하게 폴록처럼 난폭하게 재스퍼 존스만큼 서정적으로" - 백남준 


백남준 I 'TV 부처' 1970년대 

"1972년 생일날, 남준은 일본의 형에게서 1만 달러를 받아서 뉴욕으로 돌아왔어요. 그런데 그 돈으로 맨해튼의 골동품 가게에서 표정이 일그러진 불상 하나를 사왔더군요. 가난한 살림에 치여 살던 저는 크게 화를 냈지만, 2년 후 그 불상은 남준의 대표작인 'TV 부처'가 되었습니다. '아, 이 사람은 정말 천재구나, 이 사람이 돈을 쓰는 것에 대해 불평하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습니다." - 시게코 


백남준 I '피버 옵틱(Phiber Optic)' 홉합재료 224×14×206cm 1995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거대한 기계의 도움으로 기계를 반대하기 위한 나 자신의 기계를 창조했다" - 백남준 

백남준은 기계의 인간화, 일상의 축제화, 시공간의 예술화에 각별한 관심이 있었죠. 이런 TV자전거가 나올지 누가 알았겠는가. 그의 유머감각과 조형적 상상력이 정말 대단하다. 


독일 비스바덴에서 딕 히긴스의 위험한 음악 2번을 퍼포먼스형식으로 연주하는 백남준(왼쪽)과 위험한 음악 2번 백남준 악보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 1962(오른쪽) 

백남준은 끊임없이 어떤 틀과 우상과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기 위해서 몸부림친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이영철 평론가는 백남준과 관련하여 그를 깊은 사유의 잠수자들 중 하나라고 해석한 적이 있다.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라는 도발적 제목이 이를 뒤받침한다. 푸코도 자신을 흔히 고래에 비유했다고 한다. ""바다 깊은 곳에 잠수하면 누구도 보지 못하고 누구의 조정도 받지 않는 그래서 나는 더 심오하고 일관성 있는 궤적에 따라 움직일 수 있게 된다"(M.Foucault Puissance /Savoir 1972-1977) 

백남준은 그야말로 멀리 내다보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깊은 바다에 잠수해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심오한 세계과 소통하는 인물인지 모른다. 어떤 형태의 장벽도 헤쳐나가면서 그걸 견디어내는 깊은 사유의 잠수자 말이다. 

멜빌의 체험소설 보비딕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고 이영철관장을 말한다."나는 잠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수면가까이에서는 어떤 물고기도 헤엄칠 수 있지만 5해리 이상을 내려가는 것은 큰 고래뿐이다. 태초부터 사유의 잠수자들은 충혈된 눈을 하고 수면으로 돌아왔다" 깊은 사고의 잠수 그것은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로 인도한다. 

백남준이 30살이었을 때 동료 작가 딕 히긴스가 기획한 위험한 음악 2번 연주회에 참가하여 그는 정장을 한 채 아기욕조에 들어가 머리부터 온몸에 물을 퍼붓고 신던 구두를 벗어 물을 담아 벌컥벌컥 들이키며 관객에게 마셔보라고 건유하면 짓긏게 장난을 거는 해프닝을 벌리며 <살아있는 암고래의 질 속으로 기어 들어가라>고 강하게 외친다. 남이 아무도 가지 않은영역을 침범하고 들어가보라는 강력한 권유다.  

고래의 질 속으로 들어가는 인간은 과연 누구인가 보이스가 유라시안웨이를 신화의 근원으로 삼아 야생의 초원을 그리워하는 늑대로 자신을 비유했든 백남준은 잠수하는 사유의 존재로서 고래인간으로 거듭 태어난 것이다. 일본에서는 17세기부터 고래의 사리를 남골한 관음당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백남준 I 'TV는 키치(TV is kitsch)' 1996 

백남준의 화해사상은 한국의 굿정신에서 온다. 삶과 죽음의 화해란 무엇인가 그건 바로 한국인의 사고방식 삶이 죽음이고 죽임이 삶이다라는 생각에서 온다 이런 생각을 가지면 삶과 죽음이 저절로 화해가 된다. 그리고 죽음을 삶처럼 아름답게 받아들일 수 있다. 백남준의 화해정신의 또 다른 근거는 바로 한국인의 풍류다. 거기에서도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 슬픔과 기쁨이 하나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한국의 샤머니즘을 종교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술적인 영감을 일으키는 소재로 받아들이다" 

백남준의 어머니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점쟁이를 찾아가 점괘를 받아왔고 뭔가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 무당을 불러 굿을 했다. 그렇게 해서 어려서부터 굿과 익숙했다. 백남준은 부인 시게코와 일본의 선과 한국의 굿 이 중에서 한국의 샤머니즘이 더 창의적이라고 우기며 부인과 다투기도 했다. 사실 한국문화의 뿌리는 샤머니즘이다. 한국문화는 유교적이기보다는 불교적이고 불교적이기보다는 샤머니즘적이다. 이것은 동학사상과 함께 한국문화의 기원이자 뿌리이자 근간이다. 그러나 이를 창조적으로 재해석하는 예술가나 이론가가 드물다. 사머니즘을 통해 한국인의 무의식적인 내면에 비추어지는 풍경의 원류를 읽을 수 있다. 

흥미롭게도 백남준은 한국의 샤머니즘을 그의 어머니처럼 종교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예술적인 영감을 받는 소재로 받아들였다. 거기서 창의적 생명의 힘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의 무속은 한마디로 소통을 의미한다. 소통 중 소통은 신통이다. 신도 통하는 것이다. 신과 인간을 연결시켜 통화를 하게하고 또한 죽은 자와 산자를 만나게 해 주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무속의 위대한 점이다. 살아있는 자끼리의 소통이 아니라 죽은 자까지도 끌어들여 소통하는 방식이니 소통과 참여를 중시하는 그에게 이보다 더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소통방식이 없다. 

시게코는 말한다. 백남준 안에는 신기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미친듯 무대 위를 날뛰고 무어맨과 함께 거침없는 전위연극을 벌릴 때 모습은 영락없이 무당의 모습이다. 무당의 연기는 노이즈이고 무질서이다. 예상을 할 수 없는 창의적 몸짓이고 이 세상의 모든 에너지를 모아들여 인간의 희로애락을 보여주면서 그 아픔과 슬픔 무거운 짐과 고통을 치유하는 의례이자 제례이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재즈음악처럼 즉흥성 랜덤 액세스로 넘친다. 우리말로 신명이다. 신명을 성서에서는 부활이라고 한다 죽음의 끝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일종의 엑스터시 절대 황홀경인데 이런 것이 없이 어찌 예술이 되겠는가 


백남준과 보이스의 Performance 1984년 6월 2일 도쿄공연 

백남준과 보이스의 Performance 1984년 6월 2일 도쿄 피아노 부수기는 여전합니다. 백남준의 거상의 아들이고 보이스는 촌놈이죠. 그런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서로 잘 어울린다. 호형호제하던 두 예술가는 20세기 미술사가 피카소 워홀 뒤샹과 함께 최고의 작가다. 


싱싱한 페니스로 심포니를 연주하다(Young Penis Symphony) 

<백남준의 에로티시즘> 진정한 에로티시즘이란 성과 죽음도 넘어선다. 백남준 연구에서 가장 취약한 것이 그의 에로티시즘과 맑시즘이다. 그가 동경대학 음악전공한 자로써 첫 작곡의 제목은 1962년작 <싱싱한 페니스로 심포니 연주(Young Penis Symphony)>이다. 이를 실제로 1965년 퍼포밍했다. 동서양의 이런 젊은 남자들을 다 모아 누드로 무대에 올려놓을 수 있었으니 그의 괴력과 카리스마는 대단하다. 악기가 아니라 남자의 물건으로 연주하는 심포니라 그 발상이 기발하다. 그 제목도 충격적이고 예술적이고 도전적인가. 그야말로 제목이 예술이다. 이런 작곡이 돈을 벌어다 주지는 않는다. 이런 예술은 소유할 수 없기에 돈의 지배를 받지 않았다. 이건 분명 현대문명과 자본주의에 대한 풍자...다. 백남준은 '돈의 지배'보다는 '축제의 회복'을 우선시한다. 마음보다 몸이었다. 정신이나 관념보다 육체와 섹스가 먼저였다 


백남준 샬롯의 섹스트로니크 

백남준이 스스로 악기가 되었네요. 그 아이디어가 정말 기발하다 

1967년 샬롯 무어만과 <오페라 섹스트로니크> 공연을 하다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다. 이렇듯 예술가란 아무도 하지 않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일종의 도착이고 도발이자 도전이다 백남준은 본래 예술이란 본능을 따르는 일이라고 했다 생명(EROS)은 음양조화에서 탄생 한다. 백남준의 친구 오토 뮐은 과격한 에로티시즘을 선보였다. 에로티시즘은 인류의 영원한 주제다. 생사의 문제를 넘어 우리존재의 근간이 된다. G. 바타이유(1897-1962)는 "에로티시즘은 죽음 속에서도 삶을 찬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과거에는 에로티시즘을 육체적인 것으로 한정했는데 현대에 와선 삶 전체와 연관시킨다. 우리 몸속에 정신과 영혼이 담겨진 것이다. 하긴 생명도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않는다면 진화할 수 없고 멸종할 것이다. 클림트도 피카소도 모든 예술은 에로틱하다고 했다. 로미오 남준과 줄리엣 샬롯의 로맨스 이 둘은 수없이 예술로 섹스를 했다. 그는 연애로 시작하여 연애로 끝났다. 그는 평생 연애쟁이 아니면 연애지상주의자였다. 백남준의 어린 연인은 그의 소꿉동무인 이경희 여사를 비롯하여 많다. 백남준은 이 여사에게서 '봄을 느꼈다'라고 고백했다. 마지막 인터뷰에서도 가장 하고 싶은 것이 '연애'라고 했다.
 


이 사진을 보면 눈물이 난다. 이 세상에 이렇게 선량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백남준 I '살불살조(殺佛殺組)' 1993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부처의 목이 잘린 몸뚱이가 바닥에 뒹글다 

1993년 백남준이 베니스비엔날레 초청 받았을 때 그는 조수들을 시켜 큼지막한 부처상의 목을 베어 나무에 걸었고 몸체는 바닥에 그대로 뉘어 놓았다. 살불살조(殺佛殺祖)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백남준은 그의 최고스승인 맑스에게도 그랬다. 맑스를 만나면 맑스를 죽여라 

선불교의 원리(자기포기교리)는 스스로를 죽이는 것이다.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75% 만족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50% 만족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30% 만족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09% 만족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00% 만족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1000% 만족할 수 있는지 배워야 한다  


백남준, 어린아이처럼 천진하고 우주처럼 심오했던 남자 - 구보타 시게코 

백남준은 TV를 자식처럼 생각했다. 친구처럼 대했다. 그리고 말을 걸고 대화를 했다. TV는 물론 기계이지만 이것을 생명이 있는 물체로 봤다. 그리고 그것을 인간화 예술화하려고 했다. 서양인이 도무지 할 수 없는 발상이다. 옛부터 동양은 사물을 의인화해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이 자연과 대화하는 것은 동양에서는 흔한 일이다. 돌멩이와 풀포기의 대화하는 서양의 시인도 없지 않지만 그건 동양에서는 물아일체라고 하여 오래전부터 있는 하나의 전통이다 하여간 백남준은 이런 발상으로 TV를 인간으로 만들었다. 마치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었듯 백남준은 TV를 그의 살아움직이는 피조물로 만든 것이다 



이르멜린 리비어는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의 서문에서 백남준을 내가 주목하는 것은 바로 그의 활력 넘치는 유희 기질이다. 그는 TV 등 모든 것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고 적고 있다. 백남준이 실러를 자주 인용하는 것도 실러가 문화의 가장 중요한 기능을 유희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유희를 다른 말로 하면 삶의 축제다. 백남준은 돈에 짓눌려 인간이 삶의 축제를 놓치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그러면서 리비어는 백남준은 "나는 내가 아닌 것으로 존재하고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말을 연상시킨다며 그의 비존재와 존재의 이중성을 말하고 있다. 백남준은 한마디로 진정한 샤먼이었다. 이 세상에 샤먼은 많지만 진정한 샤먼을 드물다. 고통과 수난의 축제주의자 예수나 고뇌와 성찰하는 축제주의자 붓다를 빼고는 말이다. 우리시대 가장 요구되는 사람은 바로 진정한 엔터테이너인데 이것은 정말 천재가 아니면 할 수 없다. 상업적 엔터테이너도 구하기 힘들어 그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그 출연료가 엄청난데 백남준은 진정한 엔터테이너다. 앞으로도 그런 인물을 나오기 힘들 것이다. 백남준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워홀 뒤샹 정도가 있을까 


슈톡하우젠 '오리기날레(Die Originale)' 1961 Photo ⓒ Pieter Fischer 

백남준이 17살 이전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 

나는 한국에서 17살 반이 될때까지 살았다. 나는 그곳에서 중요한 2가지를 배웠다. 바로 맑스와 쇤베르크다. 맑스는 설명할 필요없이 전세계적으로 유행이었다. 자본주의의 탐욕스러움 때문에 세계대전을 2 차례나 겪은 후였다. 맑스는 우리에게 유토피아건설과 과학적 논리를 제공했다. 쇤베르크는 내가 14셀이었던 1947년 그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던 시절에 그의 존재를 발견한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자랑스럽다. 그때 나는 이건우선생에게 작곡을 배웠고 신재덕선생에게서 피아노를 배웠다. 두분 모두 위대한 김순남선생의 모임의 회원이었다. 훌륭한 무조음악 작곡가인 두 분은 14후퇴 때 월북했다. 순진한 두 작곡가는 북한의 지옥같은 스탈린 정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했다. 당시 서울에는 바쿠니, 부하린, 프루동, 맑스, 프랑스노동조합, 영국 페이비언 회주의 거의 환상적으로 받아들여진 시기다. 돌아보니 이는 성숙하지 못한 한국지식인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다 그때 나는 바로톡, 스트라빈스키, 힌데미트, 시벨리우수에 대해서 조금 알았다. 20세기 중반을 빛낸 유명한 작곡가들이다. 내가 쇤베르크에 전적으로 마음을 쏟은 것은 그가 가장 극단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대번혁을 예고하는 화약고와 같은 것인데 이는 바로 당시 서울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한다. 1947년 내가 쇤베르크의 작품 중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31번이 유일했다. 서울의 백조라는 음반가게주인을 2년 넘게 설득해서 당시에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들을 수 있는 음반 <정화된 밤 작품 6번>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난 이것이 단지 바그너식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추신] 그런데 내가 맑스의 이념에 충실했다면 나는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랬다면 1951년 한국에서 죽었거나 월북해 음악교사가 되었을 것이다. 그저 방안에 앉아 혁명가라고 떠들어대는 위선자는 될 수없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1996년에 인터뷰에서는 월북한 사람들은 바보라고 비난하는 내용도 나온다. 약간 모순되는 내용이다. - 백남준 [자료  백남준 말(馬)에서 크리스토까지의 59세의 사유]에서


1988년 KBS를 방문한 백남준 

[故백남준 추모 6주기 공연 및 기증식] 


백남준 작곡 악보 

장소: 백남준 아트센터 2층 메모라빌리아 홀 일시: 2012년 1월 29일(일) 오후4시 내용: 삼성SDI 삼성전자(베트남 법인) 브라운관 텔레비전 기증식 참석예정자: 경기문화재단 권영빈 대표이사, 황병기, 이경희, 김원, 송정숙, 김용원등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회원들. 삼성 SDI 및 삼성전자 관계자. 
[추모행사] 백남준 NHK 방송(1984년) 퍼포먼스 동영상 상영 추모 연주 : 두들쟁이 타래 (경기도박물관 상주단체) I. 백남준 초기작곡 : '조가', '먼후일', '산국화', '향수'(1947-48), II. 전통국악곡 : '영산회상' III. 두들쟁이 타래 창작곡: '어느 맑은 날', '생각하는 유목민' 



이 세상에 이런 개구장이가 없는 것 같죠. 그는 이런 어리광을 받아주는 좋은 짝을 만났죠  

http://kaldorartprojects.org.au/_webapp_1098352/CHARLOTTE_MOORMAN_and_NAM_JUNE_PAIK_1976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 브라'는 전자기술을 인간화한 좋은 보기이다. - 백남준 



세계의 역사에서 우리가 이길 수 없다면 그 규칙을 바꿔야 한다 [원문 Cependant l'histoire du monde nous apprend que nous ne gagnons jamais à un jeu nous pouvons par contre en chanter les règles] 가장 백남준다운 생각이죠. 그는 서양음악의 법칙을 깬 쇤베르트를 좋아했고 그 역시 그 법칙을 깼죠 피아노연주를 손으로 하지 않고 머리로 하는 방식에서는 백남준이 세계최고의 연주가가 된 것이다. 


왕싱웨이(Wang Xingwei) I '늙고 불쌍한(가련한) 해밀턴(Poor Old Hamilton)' 220×280cm 1996 

중국 신세대 작가 왕싱웨이의 이 작품은 아시아와 유럽과 위상변화를 풍자한 독창적 작품이다. '늙고 불쌍한 해밀턴'은 '유럽'을 상징하고 마르셀 뒤샹의 대표작을 깨뜨리고 울고 있는 아이는 '아시아'를 상징한다. 유럽의 해밀턴은 사고뭉치인 아시아의 아이를 야단치지만 그 아이는 딴청을 부린다. 그 아이는 누구인가? 유럽의 최고 작가 마르셀 뒤샹과 아시아 최고 작가 백남준을 대결구조가 끌고 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Wang Xingwei (1969 Liaoning) is a well regarded painter known for a variety of styles and clever techniques. His images can be sexual, erotic, violent or smooth and almost cartoon like. His work is often intellectual and references western and eastern art. Many regard Wang as a talented but often overlooked painter. Wang lives and works in Shanghai. [Influences] Wang Xingwei is an extremely intelligent artist. Characterized by a total lack of traditional sense of harmony and consistency, his conceptually oriented works often pose many questions to viewers. 


백남준 I '입으로 듣는 음악' Nam June Paik demonstrates Listening to Music through the Mouth in Exposition of Music Electronic Television, 1963, Photo by Manfred Montwé, © Manfred Montwé.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베를렌은 "무엇보다 음악 [...]" 이란 유명한 시가 있는데 백남준은 베를렌이 시에 음악을 도입한 것처럼 미술에 음악을 도입하여 음악과 미술의 경계를 해체하고 하나의 비빔밥으로 만들었다 


백남준 '장 피에르 빌헬름에게 보내는 경의' 1978 사진 만프레드 레베 

백남준은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붓이 아니라 몸으로 온몸으로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일종의 절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몸부림은 이 세상을 보다 인간적이고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시공간으로 연출할 수 있었다 

"예술가는 신진대사가 빠른 놈들이니까. 새로운 변화를 대체로 빨리 받아들이는 편이다" 현대작가 중 그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없다. 반항과 파괴와 실험 문화 테러리스트 문화게릴라이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건 백남준 때문이다. 백남준은 세계를 놀라게 한 예술가로 20세기 다빈치에 비유된다. 그는 서양의 첨단 기술에 동양의 실험 정신을 화엄 세계적 관점에서 융합시켰다. 화엄이란 장엄한 세계로 종파와 이념의 개념을 초월하여 대종합의 사상과 예술의 체계이자 기호이자 코드이다. 화엄이란 원효의 원융 합일 정신과도 통한다. 원융이란 종교와 예술의 이상인 모든 만물의 완전한 융합이다. 동서의 모든 것을 완전한 융합을 시도하였다. 백남준의 사기론 그것은 인간이 결국 기계보다 우위에 ...있다는 신념이다. 인간은 위대한 창조자이자 기계의 주인이라는 점이다. 기계 문명의 신화를 거부하고 이에 반항한 것이다. 서구인의 콧대를 꺾어 놓았다. 그는 작곡가이기도 하여 서양 음악의 상징인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마구잡이로 부셔 버렸다. 현대 기계 문명을 화엄 사상으로 통해 시각화시켰다. 일단 그의 예술은 움직인다는 점이 이전까지의 예술가 다르다. 20세기 아이들이 인상파나 입체파 그림을 보고 자란다면 21세기 아이들은 비디오나 레이저 아트를 보고 자랄 것이 분명하다. 그는 한국 미학의 핵심인 세계인에게 원초적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한국 미술사 속에 담겨 있는 역동적 힘을 현대적 언어와 코드를 통해서 유감없이 발휘한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감으로 차고 넘친다 이이디어는 무궁무진했다. 웅비하는 용처럼 기상천외의 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는 지구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그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했고 실험 파괴 저항 테러 우상파괴 진정한 소통과 참여를 위한 것 위성을 통해서 지구인과 소통하고 인간과 기계 사이의 소통도 시도했다. 기계의 생명화 인간화를 추구하였다. 흙에 기를 넣듯이 기계에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행위 예술 그 자체 악의 없는 개구쟁이의 전승을 세계화했다. 대동 굿판의 진정한 굿쟁이요, 광대한 정신을 소유한 진정한 피에로 혹은 광대(廣大)요, 헐렁이요, 탈춤의 초랭이요, 기상천외한 TV 도깨비다. 내 발가락은 가난한 자의 TV, 달은 가장 오래된 TV ,부처 TV 동양사상과 서양 기술의 비빔밥 개념 미술가로 요즘 유행어인 콘셉트는 어려서는 맑시즘에 경도하여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했지만 브랜드, 코드, 시니피앙을 꿰뚫고 있었다. 기호학 정신을 넥타이를 자르고 피아노 부스는 데서 시작하였다. 아폴리네르의 시 정신을 부활한 것이다. 비빔밥과 화엄정신을 쉬운 말로 비빔밥으로 표현했다. 해프닝 현대인의 마음의 치유 굿판이다. 해방 춤이다. 소통의 단절 뼈저리게 맛봄 낡은 예술의 파괴자 새로운 개념의 창조자 캔버스나 종이처럼 비디오와 TV 브라운관 전위 실험 예술에는 백남준의 흔적이 묻어 있다. 기술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 내가 한국인으로서 가장 자부심을 느낄 때는 백남준이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내가 한국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 할 때 가장 큰 백이었다. 내 정신적 지주가 되고 우리나라의 큰 별이다. 참여와 소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예술적 실천은 예술의 독재, 또는 독백 예술로 간주하였으므로 관객이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에 관계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예술 작품에서 심각한 사상이나 철학을 배제하고, 오직 예술가 자신의 재미와 변덕, 즉흥성에 의해 작품을 창조하며, 서양 전통 사상이나 예술에 철저하게 저항한 인물로, 오직 자기 주도적 아이디어로 작품을 생산한다. 2006년 글 중에서 


내 팔을 자름 1967

"가슴을 과감히 드러내놓고 연주하던 여성 첼로 연주자 샤롯 무어만과 뉴욕에서 자주 퍼포먼스를 함께 했는데 '애정' 관계는 없었느냐"고 묻자 그는 "독일에서 한 번 있었지.미국 뉴욕타임스 기자가 인터뷰에서주차된 차 안에서…"라고 익살을 떨며" 아내에게는 절대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단다.

그의 열린 마음, 부잣집 아들로 구김살 없이 자란 성격 덕분에 이런 자유분방한 전위서클의 '무서운 아이들(앙팡 테리블)'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백남준의 친구 요셉 보이스에 열광할까? 보이스의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그 이면에는 절대적인 미, 진정한 미의 극치에 도달하고자 하는 그의 욕구가 있었다고 볼 수도 있다.

20세기 중반을 전후로 하여 철학가들이나 사회학자들은 근대성에 대해 회의를 품고 있었다. 이성에 의해 행해진 폭력을 연구하였으며, 과학이 꼭 인간을 진보하게 만들진 않을 거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인간의 여러 구속여건에서 인간을 해방시키기를 바랐다.백남준의 난해한 자기 예술의 해설 한 토막... "하나의 원이 있다. 예술이다. 또 하나의 원이 있다. 통신이다. 이 두 원이 겹쳐지는 대추씨 같은 모양이 바로 비디오아트다. 



임영균 I 'TV 속 백남준'을 주제로 한 사진이네요 ⓒ 임영균 

샤머니즘은 미신이 아니라 인간종교의 원형이다. 백남준은 돈에 돌아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돈을 가지고 놀았다. 돈을 가지고 놀 때 진정으로 광대이고 그런 사람만이 정말 잘 놀 수 있다. 백남준 그가 왜 천재인가 그는 (돈 등을 가지고) 놀 줄 알줄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것은 잘 노는 것이다. 6개국을 하는 백남준이다. 그는 지성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물론 작업을 하는데 돈이 필요하지만 돈을 남기려하고 않았다.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다. 돈을 그렇게 까 붕갠 사람이 없다. 그는 어려서 돈의 쓴 맛을 봤다. 돈은 필요하지만 돈에서 자유롭고 싶어 했다. 그의 아버지는 당시한국에서 최고부자 중 최고 부자였다. 그래서 돈에 대한 공포가 없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래서 너......무나 신난다. 돈을 그렇게 깔아뭉갠 사람이 별로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신나게 전 세계를 돌며 잘 논 사람이 없다. 인생의 목적은 잘 노는 것이다. 예술을 창조하는 것이다. 한국인의 최고 삶의 목적은 멋이었다. 즉 생활 속에 아름다움이었다. 멋이 돈으로 대체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사회가 되었다. 자본주의가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한국만큼 자본주의를 견제할 힘이 없는 나라가 없다. 그래서 자살이 높다. 상대적 박탈감이 높다. 선진국 후진국보다 불행지수가 높은 것은 빈부의 차이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유럽은 미국보다 문제가 더 적다. 유럽은 맑스를 통해 부자가 부자답게 살려면 가난한 자를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자가 정말 부자로 살기 위해서 가난한 자를 최소한 생존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진정 가난한 자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살기 위해서이다. 서양사상의 근간이 되는 구약성서에는 <약자보호법>이라는 것이 나온다. 고아, 과부, 나그네(떠돌이) 실업자 노숙자를 도우라는 말이 수시로 나온다. 10계명의 정신도 바로 약자보호법이다. 간음 못한다는 여성보호법이고 효도법은 노인보호법이고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사회적 약자가 변호사를 댈 수 없기에 공정한 재판이 힘들어져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법은 거미줄 법이라고 한다. 미생물 똥파리 하루살이 등은 법에 걸리지만 정말 큰 살인자 죄인을 다 빠져 나간다. 언론과 법의 정신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인데 현실에서 정반대이다. 그는 절대로 상대가 가난하다고해서 깔보는 일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의 축제는 돈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 벌린 것이다. 그렇다고 그런 행사에 돈이 들지 않을 것은 아니지만 돈을 얻기 위해서 하지 않았다. 그런데 프로는 돈을 전혀 생각하기 않고 창작을 해도 돈이 모자라지 않는데 있다. 물론 백남준도 콜라와 피자를 사먹을 돈이 없어 라면을 먹어야 할 정도로 가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절대 돈을 인정하기는 하지만 돈에 굴복해 본 적이 없다. 그는 구겐하임회고전에서 사실 돈이 엄청나게 모자라 무산될 뻔 했다. 그러나 교토상과 삼성 등 도움으로 그 일을 해냈다. 그렇게 그는 아슬아슬하게 돈을 피해갔다. 돈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는 돈을 가지고 논 것이다. 돈을 가지고 놀 때 진정으로 광대이고 그런 사람만이 정말 잘 놀 수 있다. 노는 순간이란 바로 돈의 위력을 깨부수고 돈을 죽인다. 돈의 공포에 대해 절대적으로 망각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절대적 오르가슴이고 엑스터시이고 예술의 최고경지인 셈이다 그래서 그는 샤머니즘 특히 몽골에 샤먼에 탐닉했다. 샤머니즘 가장 수평적인 종교이자 무자본주의적 종교다. 몽골은 정복했지만 소유하지 않았다. 그런 정신을 지키라고 칭기즈칸은 법전에 기록하고 있다. 물론 꼭 그렇다는 말은 아니지만 박정진 교수의 말처럼 샤머니즘은 그런 면에서 예술인류학을 제창한 인간종교의 원형이다. 샤머니즘은 이렇게 애니미즘과 토테미즘을 통합하고 모든 종교와 예술의 융합시킨다. 신통은 바로 돈에서 자유로울 때 나온다. 몽골은 이슬람교 기독교 유교 고등종교까지도 샤머니즘 아래에 두었다. 모든 종교를 포용했다. 그래서 탱그리(하늘 푸른 하늘 영원한 하늘 경천애인)이 나온 것이다. 


호주 시드니에서 무어맨과 함께 연주여행을 하면서 인터뷰하는 모 

1962 황색재앙!그것이 바로 나다. 
1964 문화적 애국심은 정치적 애국심보다 더 해롭다. 
1964 자연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름답게 변하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변하기 때문이다. 
1965 영원성의 숭배는 인류의 가장 오래된 질병이다. 
1974 흐르는 물 오묘한 거문고 가락을 타건만, 한 가락 두 가락 아는 이 없구나. 
1977 빈 공간의 공포는 모든 예술이 생성되는 근본적인 계기이다. 
1977 나의 환희는 거칠 것이 없어라. 
1980 유목민의 예술은 뇌에 저장할 수 있는 음악, 시, 춤이다. 
1981 영혼의 신비로운 새인 ‘소문’은 호모사피엔스가 발명해낸 최초의 라디오였다. 
1983 우리에게 21세기는 1984년 1월 1일부터 시작된다. 
1988 나는 TV로 작업을 하면 할수록 신석기 시대가 떠오른다. 
1988 나는 기계에 대한 저항으로서 기계를 사용한다. 
1992 예술은 보편성이 아니다. 텃세다 



"예술이라는 게 사실은 사고파는 문제와 다름이 없는데, 예술을 만드는 놈은 4백만 명인데, 그것을 사는 놈은 4명도 안되거든. 그런데 텔레비전은 4개 회사가 4백만 대를 만들고, 또 사는 놈도 몇 백만이나 된다.예술이라는 게 본래 생활이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잖아. 우리의 정신이 많이 진보되면 보통 오락으로는 성에 안 차잖아! 그때부터 고도의 물건을 찾는 거지. 그러니까 취미의 고급이 예술 시장인 셈이야"

'예술로 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험난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데 선생님은 어떻게 유명하게 되었나요?그의 대답은 간단하다. "재수가 좋아서 그렇게 된 거야" 예술을 사기라고 외친 그에게 예술가에 대해서도 물었더니 왈 "예술가는 익은 밥 먹고 선소리 하는 존재야" 


말년의 백남준 

백남준 말기에도 그의 창작의욕은 전혀 꺾이지 않고 열정적으로 작업을 했다. 다행히 오른쪽 손을 쓰는데는 지장이 없어 그의 몸짓을 보여주는 크레용그림 등 많은 드로잉을 남기고 있다. 

[백남준 유머] 백남준은 어려서부터 단 음식을 좋아해 70년대 후반부터 당뇨가 생겼는데 그래서 자갈을 뜨겁게 달구어 가지고 다니면서 몸을 보완했다고 한다. 그러나 본인은 당뇨병이 생기면서 작품이 좋아졌다고 한다. 그 까닭은 몸속의 당분이 뇌세포를 자극하기 때문이란다. 

이 당시(1978년)에 백남준 독일 뒤셀도프프 미대교수가 된다. 그는 학생들에게 점심을 잘 사줄뿐만 아니라 도박할 돈까지 주며 그들의 창의성을 돋구었는데 학부모의 항의도 없지 않았지만 별 문제가 없이 넘어가고 나중에 그의 제자들은 그때 도박한 것이 창작하는데 너무 큰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고 하니 그 스스에 그 제자다 


백남준 I 'TV 촛불' 

백남준의 계보학적 사고 백남준은 30살에 <국가는 나다>를 <황색재앙은 나다>라고 바꾼다. 대단한 음모다. 완전범죄다. 고등사기다. 백남준은 지엽적인 사고보다 계보학적인 사고를 한다. 그냥 한국인이 아니라 시베리아 몽골 유목민으로 자신의 계보학을 세운다. 그런 발상은 참으로 깊고 높고 넓은 안목에서 나온 것이다. 백남준은 자신을 큰 고래에 비유하기도 한다. 고래만이 가장 깊은 곳에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그 어떤 것에도 간섭을 받지 않는다. 완전히 그 속에 최고의 왕좌를 지킨다. 가장 멀리 보는 사람이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사람이 가장 멀리 볼 수 있다고 하지만 고래처럼 가장 깊이 내려갈 수 있는 사람이 가장 심오한 세상을 보고 깊이 숙고할 수 있다. 백남준의 기상천외한 발상은 독...일에서 독일예술가들은 놀래자빠지게 했다. 그는 라인 강에 소용돌이를 일으킨 것이다. 일종의 파동이다. 총알이나 화살이나 애기가 나올 때 직선이 아니라 뱅뱅 돌아가는 소용돌이 방식이듯 백남준은 독일예술계를 정신 사납게 뒤집어놓았다. 그래서 백남준은 독일평론가로부터 비상한 현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물론 동야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말은 다 알고 있지만 백인이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그들을 휘저어 놓은 것이다 백남준의 계보학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시베리아 몽골 유목민 그런데 오일쇼크로 잘 움직일 수 없게 되자 내가 움직이지도 않고 남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정주 유목민이라는 개념도 만들어냈다. 백남준의 유목적 사유는 시대정신을 꿰뚫은 것이다.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들뢰즈는 천개의 고원에서 새로운 형태의 유목민의 탄생을 언급한다. 칭기즈칸은 예사롭게 보지 않는다. 가장 거대한 제국을 정복하고도 그것을 유지할 수 있었는가 칭기즈칸이 죽은 해가 1227년 모든 전쟁은 자본전쟁이고 결국 아메리카의 발견도 자원의 싸움 중 하나인데 칭기즈칸은 달랐다. 미국이 최강국이 된 것은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 때문인 것 같다. 가장 높은 곳에서 보면 세상을 다르게 읽는다. 인간은 동물과 다르게 상징코드가 중요하다. 1993년 백남준 첫 전시가 열린지 30년 만에 백남준은 베니스비엔날레 독일대표로 참석하여 동독출신 독일작가와 함께 두 사람의 공통점은 다 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다. 한 사람은 통일이 되었고 백남준의 나라는 아니다. 백남준의 작품의 부제는 베니스에 울란바토르다. 울란바토르는 몽골의 수도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백남준에게 자신의 긍지와 자부심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자신이 몽골인이고 그래서 칭기즈칸에서 찾았다. 가장 창조적일때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데 백남준의 에너지원은 바로 몽골후손이다. 그의 롤 플레이는 칭기즈칸이다. 백남준은 예술은 보편성이 아니라 텃세라고 했다. 그만큼 서구중심의 미술에 대한 제대로 평가받기 힘들었던 것이다. 백남준 그의 탄신 100년에 되는 2032년에 세상이 날 알아줄 것이다라고 했는데 꼭 그렇게 될 것이다. 백남준은 뒤샹을 세상이 알아주는데도 그렇게 시간이 걸렸다고 말한다. 백남준은 가장 깊이 곳에 잠수하는 고래처럼 가장 깊이 사유하는 예술가다. 그런 그가 독일에 간지 7년만에 첫 전시는 바로 독일미술계에 원자폭탄을 투하하는 것이었다. 빅뱅이다. 전시기간은 딱 10일 그것도 저녁시간에만 문을 열었다. 본 사람도 별로 없다. 그러나 사진기록 등은 많다. 그만큼 혁명적이었다. 미래의 비전을 제시했다. 꽉 막힌 서구미술의 비상구를 열었다. 비전을 제시했다. 그리고 자연광의 해체로 근대미술은 연 마네가 서양의 모더니즘을 연지 꼭 100년이 지난 1963년에 새로운 미술사를 썼다 사유의 잠수자가 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그리고 모든 기존의 체계를 때러 부셨다. 세력의 판도를 바꾼다. 미술의 헤게모니를 잡은 것이다. 달의 현대적 구현은 TV예술을 연 것이다. TV를 장난감으로 바꾼다. 기술만 따라가면 상상력이 빈곤해지는데 백남준은 이런 난제를 풀었다. 그리고 월경미학을 즉 달의 미학시대를 활짝 연다. 이말을 그의 매우 동양적이면서 여성적이라는 말이 된다. 백남준은 가치보다 속성을 중시한다. 좌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불어 같이 사는 것 코뮌을 중시했다. 너도 중요하고 나도 중요한 일종의 중립적인 것이기도 한데 가치관으로 접근하면 복잡하다. 백남준은 28살에 스트라빈스키 연주를 하다가 갑자기 피아노를 밟고 누워 쓰러뜨린다. 동서양의 경계를 허문다. 그리고 잡종문화 하이브리드를 들고 나온다. 융합과 통섭의 미학 즉 비빔밥 정신이다. 이것은 몽골의 전승이다. 몽골은 여러 종교를 인정한다. 그리고 샤머니즘의 미학 즉 무질서의 세계를 도입한다. 서구문명의 총아인 피아노의 소리를 변화시킨다. 전자음악을 발명한다. 신서사이저음악이다. 백남준이 TV를 들고 나왔는데 이것은 소이고 달이고 몽골전사의 거울이고 그리고 멀리 보는 관점이다. 서양 사람들은 나르시시즘과 관련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백남준은 몽골의굿 귀신을 추방하는 방식을 취한다. TV는 안테나와 같은 것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서로 얽혀있다. 샤머니즘은 혼성이고 혼열이다. 복잡하게 얽히고설켰다. TV는 우주의 질서와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내는 효과는 소음이다. white noise 직직거리는 소음 그러면서 빅뱅이 일어났다. TV는 신의 선물이라고 서양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데 백남준은 이것을 가지고 놀이도구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을 활용한다. 음악미술 e-TV를 만든다. 잡동산이가 혼대 서구의 질서정연한 것 해체 뒤죽박죽 무질서 서양문예의 법칙을 파괴 추방 공격한다. 그리고 터주대감 놀이를 한다.서양의 뮤즈를 살해한다. 그리고 예술가와 관객 생산자와 소비자를 뒤섞어 버린다. 관객참여형으로 만든다. 랜덤 액세스다. 질서기반 합리적 사고를 무너뜨린다. 등등등 [이영철관장 해석학첨가]

[백남준 사진자료] http://arttattler.com/archivenamjunepaik.html 
[백남준 2011년 영국 테이트전] http://channel.tate.org.uk/media/821234899001 
[백남준 10대 스승 맑스가 서울에 오다] http://blog.ohmynews.com/moomoo/454974 

[Lecture] 우리는 백남준을 알고 있는가, 이영철 
http://vimeo.com/136955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