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마저(Kim Majeo)] 2022. 03. 19~2022. 04. 09 연희동 플레이스막2(PLACEMAK2) 관련기사 https://www.fnnews.com/news/202203301845399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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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적 욕망과 유희 담긴 ‘쉐이프트 목기’ -최광진(미술평론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가구는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의 상자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수납의 편리함과 제작의 용이함을 위해 오랫동안 당연시되어온 전통이다. 그러나 김마저의 목기는 그러한 상식을 뒤집는 즐거운 유희가 있다. 일반 가구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예각이나 둔각뿐만 아니라 미묘하게 휘어진 곡선이 등장한다.
때로는 목재를 엿가락처럼 휘어 쉼표처럼 생긴 형태가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형태를 드로잉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유연성이 없는 단단한 목재를 실제로 이렇게 자유롭게 변형시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변형을 위해서는 나무로 먼저 ‘지그’(jig)라는 특수 보조용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 이른바 ‘쉐이프트 목기’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작품은 이처럼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1] 김마저, Mubeing 무빙, 2021 Birch Plywood, Mother of Pearl, PNY Stone, Acrylic, W600 x H1980 x D200mm
부조 형식의 결과물을 보여주는 김마저의 쉐이프트 목기는 구체적인 기능이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무언가 올려놓아도 좋을듯한 잠재적 공간을 이루고 있다. 이것은 가구의 기능적 공간을 심리적 공간으로 변형시켜 공예의 기능성과 예술의 자율성을 화해시킨 것이다. 그녀는 이런 방식으로 공예와 예술, 기능성과 자율성, 가구와 조각 같은 이분법적 분류를 무너뜨리고, 그 경계에서 그 어느 것도 희생시키지 않으면서 중도적 자유를 누리고 있다.
이러한 작품은 양식적으로 미니멀리즘의 ‘쉐이프트 캔버스’(Shaped canvas)와 유사하게 보인다. 프랭크 스텔라의 쉐이프트 캔버스는 미술의 자율성을 위해 재현적 일루전을 제거해가는 과정에서 사각의 캔버스를 없애고 그림이 내용이 곧바로 형태가 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작품을 “우리 앞에 존재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보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원칙에 부합하게 했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쉐이프트 캔버스는 삶과 일상을 완전히 제거하고 ‘자기지시적’인 즉물성을 드러내어 현상학적인 현전을 체험하게 했다.
그러나 김마저의 ‘쉐이프트 목기’는 이처럼 자연과 인간을 제거해가는 서양의 미니멀리즘과 달리, 즉물적이고 차가운 미니멀 아트에 뜨거운 인간의 감정과 욕망을 개입시켜 만든 것이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라는 루이스 설리반의 기능주의는 모던 공예의 이상이 되었고, 이를 위해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온전히 기능에 따른 형태를 추구했다.
김마저의 쉐이프트 목기는 프랭크 게리가 성냥갑 모양의 모던 건축을 해체하듯이, 이러한 기능주의 가구를 해체하면서 자신의 유목적 욕망과 본성의 유희를 반영한 것이다. 그녀는 이러한 자신의 작품을 “무각(無角)의 유희”라고 부른다.
작가노트 | 무각형이란 규정 지을 수 없는 계속 변해가는 비정형 도형의 형태를 지칭한다. 우리는 사각, 삼각으로 수많은 분류를 하고 제도와 규범이라는 틀 안에 코드화되어 있다.
여기서 ‘무각’이란 인위적으로 규정하고 고정된 삼각이나 사각 같은 정형화된 형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변해가는 역동성을 의미한다. 이때 ‘무(無)’는 “없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 끊임없이 유동적으로 변화하기에 “고정되지 않는다”라는 개념에 가깝다.
이러한 무각의 개념에는 수학적으로 고정된 공간이 아니라 지속적인 자연의 시간성과 과정성, 그리고 서로 다른 개체 간의 유기적 관계성에 대한 사유가 담겨 있다. 이러한 사유는 그녀가 심취한 불교의 ‘공’(空)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일찍부터 자아에 관한 탐구에 골몰했던 그녀는 20대 후반, 머리를 깎고 송광사에 들어가 수행을 할 정도로 정신적 갈등이 컸다. 그리고 깊은 명상과 수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 자연은 물질적으로 일정하게 마름질 되어 있는 것 같지만, 연속적인 시간의 작용 속에 우연적 만남과 불연속적인 도약이 이루어지며 끝없이 변해가고 있다.
불교의 ‘공(空)’사상은 이처럼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호 작용하며 끝없이 변화하는 ‘연기(緣起)’작용에 주목하여 ‘무상’(無常)과 ‘무아’(無我)를 주장한다.
김마저의 ‘무각’(無角)의 개념은 이러한 불교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인간의 수학적 사고나 지성적 분석은 자연에서 연속적인 흐름과 미세한 차이를 거세하고 동일성으로 대상을 분류하고 이름을 붙인다. 이것은 지속으로 변하는 자연의 흐름에서 일부를 떼어내고 고정하여 얻은 불완전한 지식이다. 이러한 지식은 실용적인 측면에서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으나 이것을 온전한 것으로 절대시하고 계몽할 때 폭력이 될 수 있다.
[2] 김마저, A crooked nose and comma 삐딱코 쉼표, 2020 Birch Plywood, Mother of Pearl, PNY Stone, Natural Paint, W1615 x H810 x D200mm
[3] 김마저, A ridge of serene sounds 고요한 소리 등선, 2020 Birch Plywood, Mother of Pearl, PNY Stone, Natural Paint W1804 x H1023 x D200mm
[4] 김마저, Round Flight 둥근 비행, 2020 Birch Plywood, Mother of Pearl, PNY Stone, Natural Paint W1750 x H905 x D200mm
김마저의 예술은 이러한 도구적 이성과 지식화된 사회적 권력의 폭력성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그녀는 가부장적 남성 중심 사회에서 겪어야 했던 억압과 경직성을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느꼈다.
회화가 주류를 이루었던 초기 작업에서는 이러한 갈등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결혼 이전의 초기 작품에서는 주로 화려하고 예쁜 플라스틱 조화(造花)를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허구로 치장된 자신의 피상적인 자아를 표현했다.
그러나 평탄치 못한 결혼 생활과 파란만장한 인생의 질곡을 경험하면서 그녀의 관심사는 상처 입은 자신의 내면적 자아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벌집처럼 수많은 무의식의 방에 저장된 두렵고 불쾌한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민화의 책가도 형식으로 표현하였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민화 책가도는 높게 쌓아놓은 책더미와 여러 가지 길상과 구복의 상징적 물건들을 정물화처럼 배치한 그림이다. 이때 그림에 트레이드 마크처럼 등장했던 인형 같은 인물상은 바로 억압받고 상처 입은 본인의 자아상이었다.이러한 자아상을 회화 작품과 목기에 그려 넣었는데, 그녀가 목기 작업을 시작한 계기는 40의 나이에 가구 디자이너로 취직을 하면서부터이다. 상업 가구들을 제작하면서 그녀는 평소 좋아했던 민화의 책가도 형식을 차용하게 된다.
그리고 프랑스 유진 유토픽(Usine Utopik) 레지던시에 참가하여 그림으로만 표현하여 오던 책가도 형식의 작품을 입체 작품으로 제작하여 전시하였다.
무의식에 저장된 상처와 응어리를 구상적 이미지로 풀어내면서 그녀는 자신에게 폭력을 가한 대상의 본질을 사유하게 된다. 그리고 합리적 이성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되는 은밀한 폭력의 뿌리에 인간의 이분법적 분별심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였다.
사회적으로 거룩하게 포장된 도구적 이성이 개인의 본성과 욕망을 억누르고 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이때부터 서랍 같은 사각형의 상자는 개인의 욕망을 억압하고 가두어 질식시키는 도구적 이성의 상징물로 자리하게 된다.
근작인 ‘쉐이프트 목기’는 도구적 이성을 상징하는 사각이나 삼각, 원형 등의 정형화된 도형을 무각의 비정형 가구로 변형시킨 것이다. 이것은 억압받고 상처받은 자아를 직접적으로 노출하는 대신 사회적으로 경직된 규범과 도구적 이성을 유희의 대상으로 삼아 해방의 자유를 누리려는 것이다.
경직된 이성과 사회적 규범을 상징하는 사각형의 정형을 해체하기 위해 그녀는 다양한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다. 사각형을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방향으로 늘어놓고 종합하여 재구성하는가 하면, 둘 또는 세 가지 기본 도형을 결합하고 늘리는 과정에서 우연적으로 나온 형태를 포착하기도 한다.
이처럼 입체파적 다시점의 종합이나 서로 다른 도형이 우연적으로 만나 어우러지는 관계속에 새로운 형태로의 도약이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렇게 포착된 새로운 도형을 생명체를 탄생시키듯이 소중하게 조형 언어로 제작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탄생한 쉐이프트 목기에는 인간의 분석적 분류체계와 경직된 지식에 저항하여 자유를 구가하려는 그녀의 욕망이 담겨 있다. 니체나 들뢰즈가 주목했듯이, 욕망은 형이상학적인 이데아나 고정된 본질이 아니라 유목적으로 부단히 생성하고 변화하며 다자 간의 거침 없는 만남과 차이들을 생산한다.
이러한 욕망은 이성보다 열등한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수학적 사유와 기하학으로 포착 불가능한 오묘하고 미묘한 자연의 생명력을 현시한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쉐이프트 목기 일부에 조개껍데기에서 떼어낸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자개들을 규칙적으로 상감하여 작품을 마무리한다.
이것은 규정된 형태를 해체한 후,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마지막 절차이다. 영롱하고 아름다운 신비를 머금은 자개의 문양은 상처가 아물어 돋아난 새살처럼 시련과 역경을 극복한 치유와 승화를 상징하는 듯하다.
나무는 다른 재료와 달리 잘린 후에도 기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 가구의 잔재가 남아 있는 김마저의 쉐이프트 목기는 자신의 조형 의지를 일방적으로 실현하는 게 아니라 생명이 남아 있는 나무와 대화하고 타협하며 만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녀의 작품은 개념적이고 차가운 서양의 쉐이프트 캔버스와 달리 따스한 인간적 온기와 정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인간과 자연의 친밀한 화해를 추구한 한국 특유의 소박한 전통을 계승한 것이며, 조선 목가구의 훌륭한 전통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5] 김마저, Episode 에피소드, 2021. Birch Plywood, Mother of Pearl, PNY Stone, Natural Paint W850 x H1258 x D450mm
[6] 김마저, Empty ringing 비워진 울림, 2021. Birch Plywood, Mother of Pearl, PNY Stone, Natural Paint, Acrylic W395.6 x H620 x D160mm
[7] 김마저, Very little scream 움트린 비명, 2022. Birch Plywood, Mother of Pearl, PNY Stone, Natural Paint, Acrylic W1000 x H493 x D200mm
유영하는 특이성(Singularity) _'Mubeing'(無 being) -홍재승(건축가)
지금 김마저 작가는 어디에 서있나? 그는 지금 가장 중요한 페르소나 즉 변모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보통의 많은 작가들은 스스로의 보편적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간다. 변화의 시도를 두려워하기에 안위하고 안주하는 것이다.
김마저 작가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가면 뒤에 숨은 그의 진면목을 모색하며 지난한 ‘개인화 과정’을 밟고 있는지 모른다. 이것은 충만한 저항의식과 끊임없는 자문에 의해 가능하다. 작가는 오랫동안 준비한 이번 전시를 통해 진지하게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작가는 삶의 굴곡을 본인의 에고를 통해 발산하고, 작업의지로 반추되어지는데, 김마저 작가의 작업이 산물이 아닌 아직 과정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생의 좌표를 다시 점검하지 않을 수 없는 작가의 깊은 목마름은 생활용 가구 디자인을 통해 영위되었고, 그 빌미는 공간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가져다주는 계기가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과 혼란이야 말로 가장 강력한 창조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붓과 안료를 이용한 과거 작업에서 작품들은 공간으로 나오게 되었다. 회화로 표현 되었던 형태들이 밖으로 나와 목공으로 이어지고 부재와 부재를 휘어서 연결하여 바탕을 만들어 나갔다.
부재의 내구성을 위해 천을 덧대어 바탕을 만드는 전통방식을 이어갔고, 그렇게 만든 바탕 위에다 수십 수백번을 칠하고 갈아내는것을 반복한다. 이것은 노동을 넘어서는 고행으로 작가가 이 프로세스를 견딜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내적 원동력에서 기인한다. 또한 보조 도구인 지그를 사용하여 나무의 굴곡을 표현하고 제작하게 되고 목구조의 형태를 띈 작품들은 서로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전이된 오브제로 재탄생 된다.
작가가 천착된 단어는 ‘인식’인데, 작업의 시작은 사각형을 바라보는 관점의 비틀어짐에서 발현되어, 그 도형이 가지는 경계와 궤적을 작자의 해석에 의해 변형되고 이런 형태를 작가는 고정되지 않는 변형 ‘무각형’으로 지칭하고 무각형으로 유영하는 특징적 형태를 ‘특이성(singularity) 이라 명명하고 싶다.
이 특이성은 주로 직관과 즉흥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사실 그 의지의 결정은 명상을 통해 몸이 사라지는 찰라, 무심의 차원에서 잉태된다고 한다. 우연이 아닌 필연이며, 수행의 과정과도 비견할 수 있는 과정이다.
특이성(singularity)은 무수한 기억의 파편들로 작가 작업실의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아직 폐쇄적인 상징 질서 안에 있는 기표 상태로 분류(taxonomy)된 요소는 곧 작가에 의해 재조합된다. 오히려 교합과 부정합을 즐기는 지도 모른다.
이 집적화된 기억(collective memory)은 기의가 되어 유영하고 확산(proliferation)하는데, 두 요소가 동전의 양면과 같다. 기표 없는 기의를 상정할 수 없듯 김마저 작가의 작업 또한 기표를 부정해서 기의를 끌어들이고 다시 기의를 부정해서 새로운 기표를 만들어 나간다.
더 흥미로운 부분은 이 형상화된 작가의 자의성은 작업실의 품을 벗어나 미술관의 환경 속에 놓이는 대목인데, 관람객은 몸의 움직임과 시각의 변화를 통해 작품은 마치 전령사(傳令使)가 된다. 환경으로 인도하는 매질은 평면, 부조, 조각, 설치 미술로 명명하기엔 그 역할을 오히려 한계 하는 것이다.
확장된 세계 속에 경계는 과감하게 허물어지는데, 이번 전시를 통해서도 시공을 넘나드는 오브제간의 연결 퍼포먼스는 확장성에 대한 실험인 것이고, 이 부분이 추후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된다.
또한 ‘움직임’의 등장에 주목한다. 이 움직임은 경계를 넘어서고 다른 관계항의 질서이고 은유이다. Mu(無)_being 이란 작가가 생각하는 존재의 방식의 형태이다. 특이성을 띈 개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관계 맺음 하면서 움직이는 형태는 무(無)의 상태 즉 고정되어 있지 않는 모습에 가깝다.
이것은 조형 언어로 규정되기보다 주체적인 인격체의 작품으로 개별적 심상과 함께 완결되는 것을 추구한다. 크로노톱(chrontope) 즉 작품에 두드러진 시간적, 공간적 양상들이 작품이 생산된 세계가 아닌, 작품에 의해 인식된 현상학적 세계라는 것은 김마저 작가에게 열려진 공간 수용의 방식인 것이다.
[8] 김마저, Installation View
관람객은 이렇게 잘 차려진 반상의 맛을 즐기며 작가와 함께 삶을 반추해 본다는 것은 욕심일까? 나는 이 비비드한 컬러와 도형이 그렇게 화창한 날로만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삶의 경계에서 아픔을 넘어 탈출을 시도하는 김마저 작가의 깊은 울림으로 들리는 것은 왜일까? 평면에서 탈출해 공간속에 유영하고 있는 저 기억들은 고요한 아우성인 것이다.
유희로 가득찬 이면엔 긴 시간 수행하듯 경계를 넘어서는 작가의 시간은 힘겨웠다. 멀리 시외버스를 타고 도착한 파주 깊은 곳의 창고안, 글을 쓰기위해 첫 대면한 창고를 개조한 작업실 안은 진공 상태의 우주공간이다. 유영하는 특이성은 고통과 위기에서 태어난 산물로 꽃망울로 터져 나오려 하니, 그게 나만의 생각이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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