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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현대] 이건용, 신체로 그리는 9차원 회화 창시자

이건용 작가의 '보디스케이프(Bodyscape)'전 갤러리현대(신관) 전관에서 10월 31일까지
-미술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으로 길 찾기

오마이뉴스 관련 기사 http://omn.kr/1vazv

 

아폴로 조각상 '뒤통수' 그려서 미대 합격... 온몸으로 그리는 80대 작가

신체로 그리는 9차원 회화 창시자, 이건용 작가와 '보디스케이프(Bodyscape)' 전

www.ohmynews.com

한국 실험미술의 대가인 이건용 작가의 '보디스케이프(Bodyscape:신체의 풍경)'전 갤러리현대(신관) 전관에서 10월 31일까지 열린다. 별관 두가헌에서는 아크릴, 색연필, 판화 등도 전시가 이어진다. 2016년 '이벤트-로지컬'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전시다

사람들과 소통을 가장 중시하면 유머감각으로 주변 사람들 즐겹게 한다.

[갤러리현대] 이건용, 신체로 그리는(Bodyscape) 9차원 회화의 창시자

이건용 작가의 대표하는 단어는 거꾸로다. 그림도 거꾸로 그리고, 안경도 거꾸로 쓰고... 그의 창의성은 주변인과 소통하려는 유머감각에서 나온다.

9차원 회화의 내용은 이렇다: 1976년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ST전'에서 9가지 방법론(The Method of Drawing)’을 발표 [1] 화면의 뒤에서 그리기(76-1) [2] 화면을 등지고 그리기(76-2) [3] 화면 옆에 놓고 그리기(76-3) [4]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 후 하나둘 풀면서 그리기(76-4) [5]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고 그리기(76-5) [6] 화면을 코앞에 둔 채 양팔을 활짝 벌리고 그리기 (76-6) [7]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기면서 그리기(76-7) [8] 온몸을 축으로 거대한 반원을 만들면서 그리기(76-8) [9] 두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점프하듯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날개 형상의 선을 드러내면서 그리기(76-9)

유머지만 그는 자신의 80을 '여덟 살'로 표현한다. 열 두살(120세)까지 그림을 그리겠다는 포부를 밣히다. 인생을 길게 멀리 본다. 그는 평생 몸을 붓 삼아 거꾸로 그렸다. 캔버스 화면 뒤에서 혹은 등지고 그렸다. 기존의 미술과 다른 방식이다.  이런 시도는 오랫동안 제도미술권에서 외면을 당했다 그럼에도 50년이 지는 지금 그는 승리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술유력지 <ARTSY>지에서 그를 '2020년 주목해야 할 예술가 35인’에 한국인 작가 중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내년, 뉴욕구겐하임미술관 한국아방가르드 전에도 참여한다. 그동안 신체의 풍경(Bodyscape) 연작 등은 갤러리현대(2016, 2021), 부산시립미술관(2019), 아시아현대미술센터(2018), 국립현대미술관(2014) 등 국내외 주요 미술관에서 열렸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잘 때까지 드로잉을 한다. 당연히 미술기법에서 능숙하다. 그러나 그는 그림을 잘 그리는 것데 관심이 없다. 내 그림은 누구나 그릴 수 있다고 한다. 자신의 그림이 안 팔려 걱정한 적이 없단다. 다만 끊임없이 미술의 본질을 물음뿐이다. 사유의 전환을 통해 작품에 대한 새로운 발상과 관점과 아이디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듯 그에게 그림이란 어떤 양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흔적과 현상으로 본다. 그는 온몸을 던져 화폭에 그의 심혼을 담는다. 신체로 사유하고 그리는 화가'다. 그의 신체 풍경화과 신체 드로잉은 그렇게 나온다. 그러니 세계 어느 화가가 그를 따라오겠는가.

<어린 시절 성장기> 책 속에 살다

이건용은 1942년 황해도 사리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개척교회 목사였다. 625직후에서 소록도에서 목회도 했다. 어머니는 세브란스 병원 간호사였다. 아버지의 서재에는 만 여 권의 장서를 있었고 이건용은 어려서 이런 분위기 속에 책을 가까이했다.

그는 대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 이사를 했는데 작은 트럭이 7대 중 6대는 책이고 1대만 살림살이였다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배재고 1년 때 <논리학> 시간이 있어 현대철학을 접했다. 동양의 노장사상은 물론 서양의 실존주의, 현상학, 언어분석철학과 접했다. 메를로 퐁티의 현상학(몸 철학)과 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논고』를 좋아했단다.

어머니로부터는 5살부터 "지고 오너라! 지고 오세요!"라는 말을 들었단다. 이게 무슨 뜻인가? 남에게 이기지 말고 지라는 말이다. 욕심부리지 말고 소박하게 살라는 말, 이건용은 한국 미술계에서 오랫동안 알아주지 않고 무시해도 그를 뭐라할 이유가 없었다. 그의 친구 김홍민은 그걸 견디지 못해 30년간 정신병원에 산단다.

그는 중학시절부터 괴짜였다. 배제중학교 1학년 때, 새로 받는 미술교과서 촌평을 했다가 담임으로부터 따귀를 수십대 맞고, 중2때 교장 몰아내기 주동자였고, 중3 때는 집안에서 예술고를 가겠다고 떼를 쓰다 거절당하자 졸업시험 백지 제출로 졸업이 못할 뻔했는데 미술교사의 강력한 변호로 구사일생,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가 금지된 적도 있었다

1969년 신체항으로 데뷔

그가 홍익대 입시 데생 시험 때 아폴로 조각상 뒤통수를 그려 합격했다. 당시 미대 학장이 김환기 화백이었는데 그 이유를 묻자 "특별한 걸 그리고 싶었다. 중학교 때부터 새로운 회화를 탄생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철학과 현상학을 공부하고 미술 밖에서 미술을 봤고 신체 드로잉을 하게 됐죠."라고 대답할 정도였다

당시 홍익대 분위기는 다이내믹 했단다. 대학을 졸업하고 본격적 활동하면서 1969년 이대 입구에서 동양미술학원을 운영했다.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대 평론가와 작가 등이 함께 S.T(Space and Time) 설립했다. 미술 토론과 세미나를 열다. 또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의 창립돼 가입했다. 당대의 맹렬한 실험미술 속 그는 뼛속까지 아방가르드였나보다.

이런 저런 고민과 노력의 결과물로 29살인 1971 데뷔작 신체항을 내놓았다. 보이는 나무와 보이지 않은 지형을 동시에 구현했다. 노자의 '무위자연'과 M. 퐁티의 현상학과 현대미술의 선구자 뒤샹이 기성품의 예술화 정신도 담겨 있었다. 전시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단다. 이 작품은 자연을 미적 공간에 개입시켜 '장소성'도 획득했다.

1973년 해외공모에 당선되어 35세 미만 전 세계 전위작가의 미술축제 '파리 비엔날레'에 초대받았다. 그곳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작품을 보고 프랑스 미술평론가 '장 자크 레베크(J. J. Leveque)'는 "미술과 지질학을 결합시킨 감동적인 작품이다. 새로운 미술의 장을 열었다"라고 극찬했다. 화려하게 데뷔를 한 셈이다.

프랑스 미술평론가 '장 자크 레베크(J. J. Leveque)

그리고 그는 1975년 '이벤트 로지컬'이라는 말을 발명했다 이벤트와 로지컬은 서로 모순되는 말이다. 그러나 그의 포퍼먼스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오랫 고민과 사유 끝에 나온 작가의 확신과 주장과 발언이 들어갔다는 말이다. 여기서 논리 즉 로지컬은 자신만의 <실내 측정>, <동일면적>을 논리적 방법론 통해 한국의 혼란한 정치·사회적 상황을 예술적으로 해석한 것이다.

작가라만 누구나 '공간과 시간의 관계규정'는 중요시한다. 우리는 공간과 장소의 차이를 잘 모른다 작가들은 다르다. 그는 어떤 '공간'에 우연한 '시간'과 특별한 사건이나 이벤트가 들어가면 역사적 '장소'가 된다고 본다. 그러면서 이런 주제에 맞는 논리적이며 개념적인 일련의 퍼포먼스가 소개되었다.

이건용 9차원 회화, 'Bodyscape'(1976-2021) 창안하다

그것이 바로 1976년 출판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ST전'에서 총 신체의 풍경 사리즈 9가지 방법론(The Method of Drawing)’을 발표했다. 이번 전시는 그 시리즈 작품을 다시 그린 것인데 그 중 몇 가지 소개된다.

[1] 화면의 뒤에서 그리기(76-1)

[2] 화면을 등지고 그리기(76-2)

[3] 화면 옆에 놓고 그리기(76-3)

손목과 팔꿈치를 부목으로 고정 후 하나둘 풀면서 그리기(76-4)
다리 사이에 화면을 놓고 그리기(76-5)
화면을 코앞에 둔 채 양팔을 활짝 벌리고 그리기 (76-6)
어깨를 축으로 삼고 반원의 선을 침착하게 화면에 남기면서 그리기(76-7)

[8] 온몸을 축으로 거대한 반원을 만들면서 그리기(76-8)

[9] 두 팔과 다리를 위아래로 점프하듯 격렬하게 몸부림치며 날개 형상의 선을 드러내면서 그리기(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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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다. 지하 전시장에서는 이 연작 총 아홉 가지가 담긴 영상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1976년부터 이 연작은 세계 미술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렵다 뒤집어 그리기다 전통적 회화 방법론을 과감하게 ‘전복시킨 회화’다. '그리는' 행위의 본질은 성찰한다  이 연작의 키워드는 몸 철학-현신(現身)-신체항'이다. 발표 후 이 계속 변형 했다. 결국 1979년 리스본국제미술제에서 대상을 수상한다.

몸이란 무엇인가? 쉽지 않은 물음이다. 동아시아의 몸은 '정기신(精氣神)' 몸에 마음이 포함된다. 원효도 마음 안에 몸ㅇ 있다고 봤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몸은 하나의 문화공간이 되기도 한다. 메를로 퐁티의 몸은 플라톤의 정신우위를 거부, 신체지각을 중시하다. 이건용은 예술가의 신체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소통할 수 있는가의 문제삼는다.

이건용의 이런 연작에는 70년대 압축 성장시대 박정희 독재정치에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획일적 독재 사회 제도화된 사회 거부증을 보인다 그게 전위작가인. 이건용 선생 체질이다 그런 특징은. 중고시절부터 그랬다 학교에서 배운 것도 달랐기에 반대로 가야 한다고 믿었다. 이런 회화사적 교란은 사회문화적 저항의 은유일 수도 있다 실제로 1976년 그는 직선만 그린다고 해 중앙정보부에 불려 가 조사를 받았다.

그의 대표작, '달팽이걸음'

사진: 헬로우뮤지엄


이건용 작가가 1979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퍼포먼스 ‘달팽이 걸음’,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질문 포퍼먼스다 느리지만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가지고 살라는 메시지다. 더 부연하면 '손으로 그리기'와 '발로 지우기', '기억과 망각'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벤트다. 느리게 반복되기는 하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날 때 너무 마음이 들떠 있다고, 할 일이 너무 많아 흥분돼 자신을 절제하는 못한다고 한다. 80이 다 된 나이에도 아직 8살 아이처럼 해맑았다. 어린이를 좋아해 서울 성수동 헬로우뮤지엄에서 위 퍼포먼스 선보였다 아이들과 직접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퍼포먼스는 관객과 가장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