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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천호선사진전] 백남준과 '세 여자' '토포하우스'

천호선 사진전 세 여자 2021.08.18-08.31까지 인사동 거리 토포하우스 제2전시실(2층) 여기 등장하는 tree graces에서 백남준도 포함된다. 와글와글 등등 사진 저작권 천호선 토포하우스 서울 종로구 인사동 11길 6 관훈동 02)734-7555

사진 저작권 천호선

<관련기사> https://www.asiatoday.co.kr/view.php?key=20210812010007600 

 

천호선 전 쌈지길 대표가 카메라에 담은 ‘세 여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쌈지길 대표 등을 역임한 천호선이 79세의 나이에 첫 번째 개인전 ‘세여자’를 연다.자신의 어머니, 아내, 딸의 각기 다른 삶을 사진작업으로 조명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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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중 아내 김홍희에 대한 부분에는 그녀가 뉴욕에서 만난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 작가들, 한국 문화계에서 만난 다양한 인물들과의 소중한 인연이 담겨 있다. 스스로를 ‘아줌마 큐레이터’ ‘할머니 큐레이터’로 자처하며 살아온 김홍희의 모습이 40년간 기획한 다양한 전시, 작가들과 함께한 무수한 파티 장면 등에 고스란히 담겼다.

김홍희 선생의 따님 천민정교수 사진 저작권 천호선
천민정교수 딸 사진 저작권 천호선
김홍희 선생과 천민정작가 '폴리티컬 팝아티스트' 사진 저작권 천호선
사진 저작권 천호선 사진작가
시게코 여사와 백남준 사진 저작권 천호선
사진 저작권 천호선
전문화행정가, 사진가 천호선 선생님, 따님 천민정(Mina Cheon) 재미작가. 메릴랜드 예술대학(MICA) 교수 그리고 백남준
전시장 풍경
이번에는 미술계 문제적 인물 조영남과 백남준. 사진저작권: 천호선
계 문제적 인물 강익중과 김홍희 선생. 사진저작권: 천호선
백남준과 신디아 굿맨 그리고 김홍희 사진 저작권 천호선

95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인포 아트' 두 명 큐레이터 미국의 신디아 굿맨(굿맨은 박사학위 소유자로 당시 미국에서 명성이 높은 미디어아트 이론가)과 한국의 김홍희. 사진 저작권: 천호선

제1회 '월간미술대상' 대상수상자 신시아 굿맨  80년대초부터 「디지털 예술」분야의 전시기획 및 연구서를 펴내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IBM갤러리의 「컴퓨터와 예술」전이라는 획기적인 전시를 기획하고 91년 나고야 테크놀로지아트 국제비엔날레에서 디렉터로도 활약했다.그의 저서 『 디지털비전-컴퓨터와 예술』은 이 분야의 필독서로 알려져 있다.미술관 자동화분야의 선구자중의 한사람으로 90년 과학.기술.예술의 국제협의회인 「아트트랜지션」의 디렉터로도 활약,MIT고등연구센터의 특별연구원으로 지명된바 있다

백남준과 김홍희 선생. 사진저작권: 천호선

백남준, 김홍희 선생 따님 천민정 교수 그리고 김홍희 선생 사진 저작권 천호선
백남준과 김홍희여사 사진 저작권 천호선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 관장의 결혼식과 김홍희 선생. 사진저작권: 천호선
김홍희 선생 댁 파티 사진 저작권 천호선

축제주의자 백남준의 영향을 받은 김홍희 선생 댁에 가면 대단한 FEAST가 열리는데 나는 딱 한번 가봤다. 손님이 매우 다양, 내가 갔을 때 특별한 손님으로 기억나는 사람을 바로 평창 올림픽 유치위원회 통역요원이었던 나승연 선생, 남편과 동행. 나는 황인 미술평론가와 같이 가다. 그녀는 전 세계 올림픽 위원들 앞에서 평창올림픽 유치를 위한 영어와 프랑스어 스피치를 완벽하게 구사해 최고 인기 얻었다. 그리고 김홍희 선생의 따님인 천민정교수로부터 그녀 박사학위논문 출간도서를 선물로 받았다. 사진저작권: 천호선

김홍희 션생과 예술인 친구들 사진 저작권 천호선

천호선 작가 경기고와 연세대 철학과 졸업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석사 중앙대 첨담영상정문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68년부터 35년간 문화행정. 뉴욕문화원 문정관, 문공부 문화예술극장, 국회문광위 수석전문의원 쌈지길 대표. 고교시절부터 사진찍기를 좋아했고 자녀들이 10년 전에 사진 디지털 카메라 선물로 받은 뒤 사진작업에 몰두 2013년 20여회 사진그룹전 현대 '다락'사진 동호회. '57포토클럽', '두리사진연구회' 활동

백남준 김홍희 선생과 그의 아들과 딸

<사진전후기> 김홍택 선생 

천호선의 사진전에 다녀왔다. 그는 평생을 공무원으로서 문화발전을 위해 힘써온 문화외교관이었다. 뉴욕에 최초로 뉴욕문화원을 만들었고 그곳 문정관을 지냈다. 마지막 국회문광위 수석전문위원으로 정년할 때까지 오로지 문화발전을 위해 힘쓴 분이다. 그의 인생엔 세 여자가 있었는데, 어머니와 아내와 딸이다. 그래서 사진전 제목이 ‘세여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사진을 찍어왔기에, 그의 아날로그+디지털 저장고엔 60년을 인내해온 수많은 사진 데이터들이 숨쉬고 있다. 그 중 전시 컨셉에 맞는 사진들이 이번에 줄줄이 전시장 벽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사진은 대한민국 현대미술의 역사를 알리는 자료로서의 가치도 크다. 백남준의 버라이어티, 플럭서스의 퍼포먼스, 대한민국 내로라 하는 대표작가들의 일상이 담긴 사진 등은 쉽게 구할 수 있는 자료가 아니다.

세 여자의 한사람으로 피사체가 된 아내 김홍희는 대한민국 미술사가와 큐레이터의 대모로 불린다. 그는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너, 독일 카셀도큐멘타 커미셔너, 쌈지스페이스 관장, 경기도립미술관장, 서울 시립미술관장 등을 거치며, 백남준, 비디오아트, 페미니즘, 플럭서스, 인포아트 등 20세기 혁명적인 미술 어젠다를 대한민국에 토착시킨 장본인이다. 무엇보다 대한민국에 작가 레지던시를 처음 도입해 미술계의 앙팡테리블을 찾아내고 지원하는 데 힘썼다. 그리고 그들이 마이스터로로 성장하는 여정에 함께 했다. 쌈지스페이스 거주작가를 통해 등단한 아티스트들의 면면은 현재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면면이 됐다. 강운, 고낙범, 박찬경, 박혜성, 데비한, 손봉채, 안상수, 오인환, 이주요, 이불, 이형구, 양혜규, 장영혜, 정연두, 함경아, 홍순명…등등 지면이 모자랄 정도.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의 홍대문화는 쌈지스페이스의 아방가르드가 주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본 여러 사진 중 딱 한 장을 골랐다. 백남준과 김홍희 그리고 그의 아들 딸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다. 물론 사진에 모습은 없지만, 사진을 찍고 있는 천호선도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 1980년대 초반일 것이다. 이 사진 한 장이 천호선/김홍희 가계의 문화 컨텍스트를 가장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 사진은 ‘천호선/김홍희’ 환상의 복식조가 백남준을 대한민국 현대 미술의 한 챕터에 기록되게 한 역사적 시점샷인데다가, 엄마의 뒤를 이어 미술계에 발을 들여 놓은 천민정(아티스트이자 MICA_매릴랜드 미술대학 최초 아시아인 학과장)의 마음 속에 아티스트의 스피릿이 자라고 있던 현장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전에 천민정 작가에게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삼촌, 뉴욕 살 때 매일 집에 아티스트들이 바글대고 있어서 난 이 세상 직업이 아티스트밖에 없는 줄 알았어요.” 천민정을 딸로 두고 있는 오늘의 주인공 천호선은 나의 존경하는 매형이고, 그의 아내 김홍희는 나의 자랑스런 누나다.

사진 저작권 ⓒ 천호선 80년대 한국에 왔을 때 백남준 모습

백남준은 독일에서 7년간 유학하면서 왜 그렇게 많은 것을 때려부셨나? 그 비싼 피아노를 도끼로 수도 없이 깨부셨다 그의 별명은 문화 테러리스트다 그 이유는 뭔가 그것은 아마도 유럽의 기존의 예술적 기반을 완전히 쓸어버리려고 한 것이리라. 유럽문화를 <제로포인트>로 돌려놓으려고 한 것이다.새로운 예술 쓰기 위한 터 잡기 아니면 터 다지기가 아닌가 싶다 아무도 가보지 않는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예술을 새로 열기위한 격한 몸짓이었을 것이다 물론 그 새로운 예술은 비디오아트다

이를 증명하는 에피소드가 있다 백남준 처음 독일유학을 뮌헨에서 했는데 그때 그 대학이 너무 보수적이라고 생각해 자유로운 대학인 프라이부르크 음대로 옮겼다 거기서 지도교수 포르크너 박사를 만났다 하루는 교수가 동양에서 온 젊은 청년에게 그동안 작곡한 작품을 보여달라고 하자 백남준은 악보대신 도끼를 꺼내 피아노를 내리치려고 하자 교수는 잠깐 하면서 자네는 내가 담당하기 힘드니 다른 선생을 찾아보라고 했단다. 그러면서 이 제자의 음악적 아이디어와 수행방식을 보고 <비상한 현상>이라는 말을 남겼단다

이런 백남준의 파괴행위를 불교적으로 해석하면 어느 정도 답이 나온다. 즉 '단(斷)'은 '각(깨달음)'이라는 진리다 모든 것을 부셔 버리고 제로로 만들 때 진정한 깨달음이 오고 거기에서 새로운 시작이 온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동양최초로 플럭서스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는 것은 큰 축복이었다 라고 상상이 된다. 물론 나는 이걸 보지 못했지만요 1993년 서울 플럭서스 페스티발 퍼포먼스 중 한 장면 사진저작권 천호선 오리지널은 여성이 완전 누드로 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는 아니였지요 이 퍼포먼스에 <이불>작가가 참가했네요

아래는 1885년 플럭서스 덴마크 공연 때 사진이네요 누드를 등장하는 것은 질서를 강조하면서 이 세상이 만들어 놓은 고체 같은 시스템과 고정관념과 터부를 깨는 일종이 사건으로서(something happens) 의 예술 즉 해프닝같은 것이겠지요. 해프닝이 없는 현대미술은 상상하기 힘들죠

<김홍희 선생이 백남준을 처음 만난 것은 뉴욕에서 80년도로 아는데 아래 사진은 1984년 사진이군요 'TV로댕'이 보이네요> 독일 '비스바덴미술관(1984.07.02~1984.12.08)'에서 열린 백남준 전을 보려온 김홍희·천호선 부부에게 백남준이 자신의 작품 'TV로댕'을 직접 설명해주는 모습. 가운데가 김홍희 전 서울시립미술관 관장. 남편 천호선 씨는 사진에 찍히지 않았다. ⓒ 천호선

사진 천호선

사진 저작권은 천호선 선생님 아래 사진은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백남준 회고전에서 백남준으로부터 사진을 받는 김홍희 관장 1982년 작년에 뉴욕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미술관은 바로 새로 이시간 휘트니미술관이었다. 미술관을 늦은 시간까지 열기도 하지만 옥상에 놀 때도 많고 분위기도 접근성이 좋았고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백남준의 가장 유명한 대표작도 2점 이상 봤다. 이때는 구 휘트니미술관이겠죠

사진 천호선

1995년 백남준 박영덕화랑에서 선보인 전자로봇(백남준은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첫 전시를 끝내고 전자공학을 더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운이 좋게 진공관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일본 전자공학자 '우치다 히데오'를 알게 되었고 또 그의 소개로 전자공학자 '슈야 아베 '도 만났다. 백남준과 아베 슈야 함께 이 로봇을 완성하다. 아베는 그후 백남준 전자작업설치 협업자가 되었다. 여기에 드는 제작비 $2400였는데 그 돈은 백남준의 형이 대다. 이 로봇은 그렇게 해서 1964년 태어나다) 퍼포먼스. 사진 저작권 천호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