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한국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모아 한국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을 7월 8일(목)부터 10월 10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김환기, <19-Ⅵ-71 #206>, 1971, 캔버스에 유채, 254×203cm, 개인소장 ©(재)환기재단·환기미술관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 고구려 6세기 말~7세기 전반(1930년 모사), 종이에 채색, 238×31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구려 고분벽화
실질적으로 한국회화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고구려 고분벽화는 그 상징성에 힘입어 20세기의 한국미술, 특히 회화에 큰 영감을 제공한 바 있다. 고대 동아시아 장의葬儀미술의 한 유형으로서 묘주墓主 생전 성세聲勢에 대한 기록과 사후 승천昇天 등을 목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4-7세기에 걸쳐 그려진 만큼 초기 회화의 발달상을 보여주는데, 특히 사신도四神圖로 대변되는 후기의 벽화는 정치한 형상과 역동적 표현을 통해 고대회화에서 이상적 사실주의의 성취를 반영하고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형성에는 중국 고분벽화의 영향이 적지 않았지만, 사신도의 경우 중국의 실례와 비교되지 않을 만큼 우수하다. 일제강점기에 발굴되어 그 존재가 알려지면서 큰 주목을 받았던 7세기경의 무덤인 강서대묘江西大墓 벽화의 사신도가 대표적 사례다. 윤희순尹喜淳(1902-1947)은 『조선미술사朝鮮美術史』에서 “고구려의 기상이 잘 표현되었다.”라고 평가하며, 사신도의 이미지를 여러 컷 수록한 바 있다. 이응로李應魯(1904-1989)의 경우 동양화의 현대성 추구를 위한 방법으로 ‘반추상’을 제시했는데, 그러한 방식이 반영된 역사적 사례로 강서대묘 사신도 가운데 <현무도玄武圖>를 꼽았다.
이종상의 1963년 작 <장비裝備>는 제재와 화풍 모든 면에서 풍속화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현대의 산업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원근법과 명암법의 적용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려 냈다. 화면 전반에 보이는 불균일한 선묘와 선염법은 전통적인 것으로 김홍도의 화풍과도 연결된다. 또한 당대의 현실을 그려 냈다는 점에서 오히려 김홍도의 풍속화에 가장 근접한 작품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고려 청자
10세기~11세기경 중국 도자기 기술의 집약인 청자의 수용을 통해 제작된 고려청자는 원산지인 중국으로부터도 비색翡色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높은 완성도를 자랑했다. <청자운학문매병靑磁雲鶴紋梅甁>에서 볼 수 있듯 고려청자는 공예품으로서의 기능, 조화와 비례가 뛰어난 기형, 아름다운 색상 등 그야말로 청출어람의 경지를 보여준다. 중국 당대唐代의 서예가 두몽竇蒙은 예술의 지극히 높은 경지를 ‘성聖’으로 지칭한 바 있다. 고려청자를 성이라는 아름다움의 범주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유다. 또한 고려청자 가운데 상당수는 불교적 용도와 불가분의 관계였다는 사실도 빼놓을 수 없다.
혜원 신윤복, <미인도>(복제본),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114×45.5cm,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혜원 신윤복과 미인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주 봐온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일까, 한국인의 DNA 속에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이 더 정답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일까.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1957년 전후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첫 해외 전시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사람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조선 시대 미술의 정수”, “국보 중의 국보”라며 한껏 추켜세웠는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세상에 알려진 지가 불과 6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미인도는 조선 시대에 즐겨 그려진 장르이기는 하나 유교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은밀히 감상되었고,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절하되었다. 인기 있는 그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 주목받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간송 전형필이 신윤복의 <미인도>를 구입해 전승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까치호랑이 그림의 주역인 호랑이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신령스럽고 친화적인 동물이다. 여기에는 민화 까치호랑이에서 호랑이가 해학적이고, 길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상징으로 작용한 면이 컸다. 까치호랑이는 화원들이 그린 궁중 양식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정교한 공필채색화로 그려졌는데, 이후 민화에서 사실성과 조형적 긴장이 이완되면서 디자인적 요소가 강화되는 단계로 나아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까치호랑이는 조자용이 인사동 인근에서 수집한 것으로 훗날 디자이너 김현에 의해 88서울올림픽의 ‘호돌이’ 마스코트로 디자인되었다.
[1] 국보, 보물 등 문화재 35점, 근현대미술 130여 점, 자료 80여 점 [2] 청자상감포도동자무늬주전자와 이중섭의 은지화, 분청사기인화문병과 김환기 <점화> [3] 백남준의 글로벌그루브, 신라금관 등 다양한 담론과 해석 선보여 *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연구자 44명 참여, 도록 발간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한국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모아 한국의 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을 7월 8일(목)부터 10월 10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박물관의 문화재와 미술관의 미술작품을 서로 마주하고 대응시킴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한국 미의 DNA를 찾고자 하였다. 특히 근대의 미학자인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등의 한국미론을 통해 한국의 대표 문화재 10점을 선정하고, 전통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지 바라보고자 하였다.
전시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이자 근현대 미술가들의 전통 인식에 이정표 역할을 해온 네 가지 키워드, ‘성(聖, Sacred and Ideal)’, ‘아(雅, Elegant and Simple)’,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 ‘화(和, Dynamic and Hybrid)’이다.
1부 ‘성(聖, Sacred and Ideal)’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이상주의적 미감이 근대 이후 우리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떤 형태로 발현되었는지를 살펴본다.‘성(聖)’이란 종교적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가치를 뜻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천상 세계에 대한 염원, 통일신라 시대 석굴암에 투영된 부처에 대한 믿음과 깨달음에 대한 갈망 등은 성스러운 종교 미술로서 ‘성(聖, Sacred)’이라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다.
한편 당대의 서예가 두몽(竇蒙)은 예술의 지극히 높은 경지를 ‘성(聖)’으로 지칭한 바 있다. 이는 고려청자의 완벽한 기형과 색상의 미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고려청자의 뛰어난 장식 기법과 도상들은 이중섭의 작품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자 자체의 매력과 발전 양상을 감상함과 동시에 이와 비교되는 이중섭의 작품들이 파격미 뿐만 아니라 전통미도 갖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각각의 예술이 발광체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비춰 주는 반사체가 되어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2부 ‘아(雅, Elegant and Simple)’에서는 해방 이후 화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고 국제 미술계와 교류하며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정형의 미감이라는 차원에서 추구되었던 한국의 졸박미(拙朴美)와 한국적 표현주의를 살펴본다. ‘아(雅)’란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세속적 지향과는 다른, 격조를 추구하는 심미적 취향을 말한다. 자연을 실견하고 거기에 동화되어 그려진 겸재의 진경산수화, 생각과 마음을 지적(知的)으로 그려 내려 한 추사의 문인화는 아(雅) 미학 추구의 결과들이다. 한편 ‘아(雅)’는 순수함이나 무(無)의 조형성과 연결되는데, 이것은 순백의 아무런 무늬가 없는 달항아리의 비완전성·비정형성과도 통한다. 이러한 문인화와 백자가 만들어 낸 전통론은 실제 1970~1980년대 한국의 단색조 추상 열풍과 백색담론으로 이어졌다는 측면에서도 주목을 요한다.
3부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에서는 서양미술과 조선 및 근현대 주류 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표현주의적이고 강렬한 미감이 추구되던 장식미(裝飾美)를 살펴본다. ‘속俗’이란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취향이나 문예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 시대 풍속화와 미인도, 민화는 이러한 미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적으로 김홍도의 풍속화와 신윤복의 미인도가 어떻게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전통으로 자리매김하였는지, 근대 이후 화가들에게 어떤 의미로 내재화되어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속’은 대중을 위한 불교를 추구했던 조선 시대 불교회화의 정신 및 미감과도 통한다. 조선 시대 감로도나 시왕도 등은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며 고달픈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면모들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도 계승되어 강렬한 채색화가 유행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마지막 4부 ‘화(和, Dynamic and Hybrid)’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하며 다양한 가치와 미감이 공존하고 역동적으로 변모하던 1990년대 이후 한국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본다. ‘화(和)’란 대립적인 두 극단의 우호적인 융합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전통 미학에서 ‘화(和)’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는 조화를 통해 통일에 이름을 뜻한다. 공존할 수 없고, 지향도 다른 것으로 여겨지던 고대의 문화재와 현대의 미술이지만 오히려 서로를 비추고 공존해야 함을 화(和)의 미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금관(보물 339호)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전통이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헌정 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이 수천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성聖·아雅·속俗·화和’의 미감 속에 조화롭게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연구자 44명이 참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문화재 10점을 중심으로 공동의 연구주제로 풀어낸 650페이지 분량의 도록이 발간된다. 전통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에 대한 근현대미술의 반응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연구한 48편의 칼럼과 논고를 통해 한국미술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보와 보물이 현대미술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보기 드문 전시”라며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펼쳐놓은 다채로운 미감의 한국미술을 감상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추가> 정리 중 국립현대미술관(MMCA, 관장 윤범모)은 한국 문화재와 근현대 미술을 한 자리에 모아 한국의 미를 새롭게 조명하는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을 7월 8일(목)부터 10월 10일(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개최한다.김인혜 근대미술팀장 TEL 02-2022-0617배원정 학예연구사 TEL 02-2022-0613
《DNA: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은 ‘한국의 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박물관의 문화재와 미술관의 미술작품을 서로 마주하고 대응시킴으로써, 시공을 초월한 한국 미의 DNA를 찾고자 하였다. 특히 근대의 미학자인 고유섭, 최순우, 김용준 등의 한국미론을 통해 한국의 대표 문화재 10점을 선정하고, 전통이 한국 근현대 미술에 미친 영향과 의미는 무엇인지 바라보고자 하였다.
전시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이자 근현대 미술가들의 전통 인식에 이정표 역할을 해온 네 가지 키워드, ‘성(聖, Sacred and Ideal)’, ‘아(雅, Elegant and Simple)’,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 ‘화(和, Dynamic and Hybrid)’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부 ‘성(聖, Sacred and Ideal)’에서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의 이상주의적 미감이 근대 이후 우리 미술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어떤 형태로 발현되었는지를 살펴본다.‘성(聖)’이란 종교적 성스러움과 숭고함의 가치를 뜻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천상 세계에 대한 염원, 통일신라 시대 석굴암에 투영된 부처에 대한 믿음과 깨달음에 대한 갈망 등은 성스러운 종교 미술로서 ‘성(聖, Sacred)’이라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다. 한편 당대의 서예가 두몽(竇蒙)은 예술의 지극히 높은 경지를 ‘성(聖)’으로 지칭한 바 있다. 이는 고려청자의 완벽한 기형과 색상의 미감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고려청자의 뛰어난 장식 기법과 도상들은 이중섭의 작품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청자 자체의 매력과 발전 양상을 감상함과 동시에 이와 비교되는 이중섭의 작품들이 파격미 뿐만 아니라 전통미도 갖고 있음을 확인함으로써 각각의 예술이 발광체이면서도 서로가 서로를 비춰 주는 반사체가 되어 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2부 ‘아(雅, Elegant and Simple)’에서는 해방 이후 화가들이 서구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 한국적 모더니즘을 추구하고 국제 미술계와 교류하며 한국미술의 정체성 찾기에 고군분투했던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정형의 미감이라는 차원에서 추구되었던 한국의 졸박미(拙朴美)와 한국적 표현주의를 살펴본다.‘아(雅)’란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세속적 지향과는 다른, 격조를 추구하는 심미적 취향을 말한다. 자연을 실견하고 거기에 동화되어 그려진 겸재의 진경산수화, 생각과 마음을 지적(知的)으로 그려 내려 한 추사의 문인화는 아(雅) 미학 추구의 결과들이다. 한편 ‘아(雅)’는 순수함이나 무(無)의 조형성과 연결되는데, 이것은 순백의 아무런 무늬가 없는 달항아리의 비완전성·비정형성과도 통한다. 이러한 문인화와 백자가 만들어 낸 전통론은 실제 1970~1980년대 한국의 단색조 추상 열풍과 백색담론으로 이어졌다는 측면에서도 주목을 요한다.
3부 ‘속(俗, Decorative and Worldly)’에서는 서양미술과 조선 및 근현대 주류 미술에 대한 반작용으로 표현주의적이고 강렬한 미감이 추구되던 장식미(裝飾美)를 살펴본다. ‘속俗’이란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라는 의미를 지니며, 누구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취향이나 문예 작품을 가리키기도 한다. 조선 시대 풍속화와 미인도, 민화는 이러한 미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대표적으로 김홍도의 풍속화와 신윤복의 미인도가 어떻게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전통으로 자리매김하였는지, 근대 이후 화가들에게 어떤 의미로 내재화되어 그들의 작품에 영향을 주었는지를 추적한다. 또한 ‘속’은 대중을 위한 불교를 추구했던 조선 시대 불교회화의 정신 및 미감과도 통한다. 조선 시대 감로도나 시왕도 등은 당대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반영하며 고달픈 삶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이러한 면모들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도 계승되어 강렬한 채색화가 유행하는 데 기반이 되었다.
마지막 4부 ‘화(和, Dynamic and Hybrid)’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추구하며 다양한 가치와 미감이 공존하고 역동적으로 변모하던 1990년대 이후 한국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본다. ‘화(和)’란 대립적인 두 극단의 우호적인 융합을 의미한다. 동아시아 전통 미학에서 ‘화(和)’는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는 조화를 통해 통일에 이름을 뜻한다. 공존할 수 없고, 지향도 다른 것으로 여겨지던 고대의 문화재와 현대의 미술이지만 오히려 서로를 비추고 공존해야 함을 화(和)의 미학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신라금관(보물 339호)에 영감을 받아 제작된 작품들은 현대미술의 흐름 속에서 전통이 어떤 방식과 내용으로 헌정 되는지를 보여준다.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이 수천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성聖·아雅·속俗·화和’의 미감 속에 조화롭게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전통미술과 근현대미술 연구자 44명이 참여, 한국미를 대표하는 문화재 10점을 중심으로 공동의 연구주제로 풀어낸 650페이지 분량의 도록이 발간된다. 전통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이에 대한 근현대미술의 반응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연구한 48편의 칼럼과 논고를 통해 한국미술 다시 읽기를 시도한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국보와 보물이 현대미술작품과 함께 전시되는 보기 드문 전시”라며 “관람객들이 전시장에 펼쳐놓은 다채로운 미감의 한국미술을 감상하며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한국미술의 어제와 오늘을 온전히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일반인 전화문의: 02-2022-060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대표번호)■ 전시개요
○ 전시제목: 국문 《DNA : 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영문 Dynamic & Alive Korean Art
○ 전시기간: 2021. 7. 8.(수) ~ 10. 10.(일) ○ 전시장소: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
○ 작 가: 강창규, 권순형, 권영우, 권진규, 길진섭, 김복진, 김정희, 김용진, 김용준, 김용조, 김익영, 김인숙, 김인승, 김찬식, 김한, 김홍도, 김호석, 김환기, 김희중, 김현, 도상봉, 류경채, 김기창, 남관, 민경갑, 박노수, 박대성, 박수근, 박서보, 박생광, 박이소, 박영숙, 박현기, 방혜자, 백남준, 서도호, 서세옥, 신윤복, 신영헌, 심경자, 손재형, 안동숙, 이건중, 이경모, 이남수, 이도영, 이수경, 이숙자, 이승택, 이신자, 이세득, 이종상, 이종우, 이준, 이중섭, 이종상, 이응노, 이철량, 이화자, 일섭, 임송희, 임옥상, 임응식, 오윤, 오세창, 오태학, 유영국, 유근형, 육명심, 윤동구, 윤명로, 윤형근, 장우성, 장욱진, 장운상, 조덕현, 조환, 전수천, 전혁림, 전형필, 정규, 정종여, 정선, 정직성, 정해조, 정현웅, 천경자, 최근배, 최계복, 최영림, 최종태, 하종현, 한석홍, 한익환, 황삼용, 황인기, 황종례 등 (총 97명, 가나다 순) ○ 전시작품/자료: 토기, 도자, 불상, 한국화, 유화, 사진, 공예, 서예, 조각, 미디어, 문화재 35점(국보물 포함) 및 근현대 작품 130여 점, 자료 80여 점 ○ 주 최: 국립현대미술관
상기 일정은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자세한 정보는 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http://www.mmca.g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붙 임] 1. 포스터 2. 전시 주제별 내용 및 주요 작품 이미지 3. 전시 전경 [붙 임] 2. 전시 주제별 내용 및 주요 작품 이미지
1. 성聖, 성스럽고 숭고하다 Sacred and Ideal
1920년대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현무도玄武圖>와 1990년대 이숙자李淑子(1942-)가 그린 <청룡도靑龍圖>는 기본적으로는 강서대묘 사신도의 모사도로서, 20세기 전반과 후반 고구려 고분벽화에 대한 지향을 반영하는 실물들이다. 원작 그대로의 모사인 1920년대 그림과 달리 이숙자의 경우 본인의 보리밭 시리즈를 연상시키는 풀 등을 하단에 그려 넣고 청룡의 묘사에 보다 정치한 채색과 묘사를 더함으로써 색다른 화면을 만들어 냈다. | |
권진규權鎭圭(1922-1973)의 경우 일본에서 출판된 고구려 고분벽화 서적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고분벽화에 보이는 여러 모티프들을 활용해 다양한 작품을 창작했다. 뾰족한 부리를 가진 새가 입을 크게 벌리고 소리를 지르고 있는 듯 한 형상의 테라코타 작품이다.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책에 실린 주작 이미지에서 머리 부분만을 떼어 조형화한 작품이다. | |
권진규, <해신海神>, 1963, 테라코타, 46(h)×20.5×61.5cm, 개인소장 | |
해방 이후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의 모티프나 벽화 제작 방법을 활용한 동양화 작가들이 등장했는데, 박노수의 <수렵도>에서는 모티프의 수용을 우선시한 모습으로 고분벽화에 표현된 수렵도를 연상시킨다. 특히 달리는 말 위에서 상체를 뒤로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안 사법射法은 무용총과 덕흥리 고분의 수렵 장면에 등장하는 사냥 방법이다. 인물들이 말을 타고 사냥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아이보리블랙 물감과 먹을 섞어 오로지 흑백의 대조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부각하는 목판화의 효과를 도입했다. 이 작품은 “고구려 분벽에서 보는 듯한 수렵도를 초묵일색焦墨一色으로 옮긴 듯 하다”는 평을 받았다. | |
박노수, <수렵도>, 1961, 종이에 채색, 217x191cm,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 |
<녹유귀면와>, 통일신라, 39×29.6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박생광, <창>, 1970년대 후반 추정, 종이에 수묵채색, 51×53cm, 주영갤러리 소장 |
박물관은 한국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공간이자 전통 계승의 요람으로서 전시된 유물들은 많은 근현대 작가들에게 고전에의 연구와 작품 창작에 있어 모티프가 되어주었다. 박생광의 <창>에 보이는 띠살문 아래 마루에 놓여있는 와전은 실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통일신라 시대 녹유귀면와와 유사한 모습으로 그가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유물을 보고 창작의 영감을 얻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박물관 스케치 여행을 통해 그는 <단청스케치>나 <유물>, <박산향로>, <불상> 등을 남겼는데, 훗날 그가 강한 오방색으로 민족적 색채를 구현하려 한 작품들은 이러한 연구와 준비 끝에 나올 수 있었을 것이다. | |
통일신라 석굴암 석굴암石窟庵 불상군은 불교의 위상이 높지 않던 조선 시대에 이미 “불상들이 살아 있는 듯이 열을 지어 서 있다.”라고 평가받을 정도로 전통시대에도 사실성을 어느 정도 인정받았으며, 근대기에는 안드레 에카르트에 의해 동양 최고의 예술로 주목받기도 했다. 석굴암은 8세기 중반 통일신라의 국제적 불교 지향의 산물로 건축 자체가 불교의 원류인 인도와 중앙아시아의 석굴사원을 인공석실人工石室로 체현한 것이다. 우수한 신체 비례와 해부학적 특징이 반영된 세부, 자연스럽고 힘이 넘치는 옷 주름, 조각 전반의 빼어난 입체감, 엄정하고 조화로운 얼굴 등 조각에서 이상적 사실주의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항마촉지인 자세를 취한 석굴암 본존불本尊佛에서 가감 없이 드러난다. 당시 동아시아는 사실적 조각 제작에서 정점을 찍었고 석굴암이 그러한 대표적 유물 가운데 하나가 되는 셈이다. 본 전시에서는 토함산을 떠날 수 없는 석굴암을 대신하여 근현대 시기 석굴암을 촬영한 사진에 주목한다. ‘문화재 사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진들은 석굴암 본존불이라는 하나의 피사체를 두고 작가의 주관적 관점과 표현 의지가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러한 사진들은 과연 문화재 사진일까, 문화재를 찍은 예술사진일까. 해방 이후 사진가들이 찍은 석굴암 사진은 이 두 가지 질문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교차하고 중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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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김재원 초대 관장이 발탁하여 박물관의 유물 사진을 전담 촬영했던 이건중의 문화재 사진을 최초로 공개한다. 박물관 공식사진가로서 유물에 접근이 용이했던 작가만의 고유한 시각과 접근법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신라 토기의 형태와 디테일을 충실히 재현해 고전적인 자료 사진을 찍으면서도, 사발과 불두, 백자를 클로즈업 샷으로 프레이밍하여 박물관 진열장을 벗어난 유물이 시대와 종류, 미술사적 양식 구분과 상관없이 또 다른 조형적 맥락을 직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한민족의 전통적인 물건”과 “영구히 남아야 할 우리것”을 기록하고 싶었고, 이러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필름에 담아” 오래 간직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건중의 문화재 사진을 통해 풍부한 디테일과 계조, 완벽한 프레이밍과 균일한 톤으로 유물을 시각화한 사진을 감상할 수 있다. | |
이건중, <백자와 불두>, 연도미상, 55× 49cm, 개인소장 | |
문화재 전문 사진가인 한석홍(1940-2015)은 석굴암 사진가로 불린다. 그는 석굴암이 갖고 있는 촬영 조건의 한계들을 극복해나가면서, 육안으로도 카메라로도 완전히 파악할 수 없었던 주실 내부 벽면에 조각된 신상들의 형태와 입체감을 사진으로 구현해냈다. 그의 석굴암 사진은 현재 문화재청에 기증되었고,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으로 보다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방식으로 석굴암의 미학에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20세기 후반 조명 기술 및 광학 재료의 발전으로 인한 광배와 천개석, 본존을 에워싼 신상들은 균일한 명도와 조도로 가시화될 수 있었다. 사진 속 석굴암은 비로소 40구의 불상과 보살상, 그리고 신중상이 동시에 등장하는 공간, 이들의 깨우침이 노래하는 불교의 코스몰로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를 이미지로 구현하는 것은 사진가의 능숙한 테크닉과 사진이다. | |
한석홍, <경주 석굴암 석굴 사진>, 1981, 1986, 2000,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한석홍 기증자료) | |
<금동여래입상>, 통일신라, 금동, 높이: 14.4cm, 대좌 높이: 3.6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김복진, <미륵불>, 1935(1999년 주조), 브론즈, 높이: 114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전시장에서 석굴암을 바라보는 김복진金復鎭(1901-1940)의 <미륵불彌勒佛> 역시 석굴암 본존불의 예와 같은 통일신라 불상을 범본으로 제작된 것이다. 그 직접적인 원형은 김복진이 공모로 제작한 김제 금산사金山寺의 미륵대불이다. 이 작품은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안압지 출토의 통일신라 <금동여래입상>과 비교했을 때 몸에 착 달라붙은 의복과 하반신에서 드러나는 와이(Y) 자 형태의 옷 주름과 신체 라인, 우수한 신체 비례와 조화라는 부분에서 일치하며 통일신라 불상의 계승적 측면을 지니고 있다. |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 고려, 높이: 19.7cm, 몸통지름: 2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중섭, <봄의 아동>, 1952-53, 종이에 연필, 유채, 32.6×49.6cm, 개인소장 |
<봄의 아동>에 보이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은 <청자상감 포도동자문 주전자>에 보이는 동자들의 문양을 평면적으로 펼쳐 놓은 듯한 구도와 청자의 음각 기법처럼 보이는 새긴 듯한 윤곽선 등에서 유사성을 발견할 수 있다. 이중섭의 작품에서 한국적 정서를 느끼는 까닭이 무엇인지 전통이 가진 DNA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 |
<분청사기 인화문 자라병>, 조선 15세기, 높이: 11.7cm, 몸통지름: 20.8cm, 가나문화재단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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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인화문 병> 표면의 인화문과 김환기의 점화는 공통적으로 구형의 반복을 통한 시각적 리듬을 만들어 낸다. 분청사기와 추상회화가 약 500년의 시대를 뛰어넘어 무수한 점들로 이루어진 정연함 속에서도 변화와 역동성이라는 조형적 아름다움을 공유하고 있다. | |
일월오봉도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역시 ‘성’의 미학을 제시해 주는 미술품이다. 해와 달, 다섯 개의 산, 물과 나무 등 절대성과 영원성의 상징을 통해 왕권을 은유하는 장식화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궁중회화 자체의 특징상 기술적으로 최고의 기량을 갖춘 화원畵員에 의해 제작된 것이기에 완성도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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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오봉도 삽병>, 19세기-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190×150cm(전체), 149×126.7cm(화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민경갑, <얼 95-2>, 1995, 종이에 채색, 210×57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일월오봉 삽병日月五峰揷屛>은 왕의 초상화인 어진御眞의 배치를 위한 한층 더 특수한 일월오봉도라고 할 수 있다. 민경갑閔庚甲(1933-2018)은 일월오봉도를 단순, 변형화시키고 여기에 추상성을 첨가하여 <얼 95-2>와 같은 작품을 만들어 냈다. 일월오봉도에서 볼 수 있는 색감과 조형성은 뜻밖에 유영국劉永國(1916-2002)에게서도 발견된다. |
2. 아雅, 맑고 바르며 우아하다 Elegant and Simple
추사 김정희와 문인화 김정희로 대표되는 조선 시대 문인화는 1930년대 문장文章 그룹의 ‘전통론’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해방 이후 수묵채색화단이 문인화를 지향하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오세창吳世昌(1864-1953)의 선구적 역할이 주목된다. 한용운韓龍雲(1879-1944)은 1916년 12월 『매일신보』에 「고서화古書畵의 삼일三日」이라는 칼럼을 5일 동안 연재한 바 있다. 여기에서 그는 당시 ‘전통’에 상당하는 용어로 ‘고서화’가 통용되고 있다는 점, 고서화가 국가와 그 역사 및 문화의 척도로서 민족정신과 통한다는 점, 오세창에 의해 편찬된 『근역서휘槿域書彙』와 『근역화휘槿域畵彙』, 『근역서화사槿域書畵史』가 이를 입증하는 객관적 자료임을 널리 설파했다. 이것은 1910년대 오세창에 의한 일련의 저술들이 일종의 미술사적 인식, 곧 ‘전통’ 정립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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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우가 김환기에게 보낸 연하장>, 18.2×26.8cm, 개인소장 | ||
본 전시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료로 최순우가 김환기에게 보낸 연하장이 있다. 여기에는 김정희의 제자 허련許鍊(1809-1892)이 그린 김정희의 초상과 <불이선란도>의 이미지가 수록되어 있어 당시 미학자와 화가가 공유했던 김정희에 대한 애호와 이후 개진된 문인화 지속의 원인을 짐작하게 한다. 더구나 이 엽서의 소장자가 이른바 단색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인 윤형근(1928-2007)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 ||
조선 백자와 달항아리 백자는 조선 시대 도자 문화의 중심이었다. 조선 왕실과 사대부는 새하얀 백자를 공정하고 바른 그릇으로 인식하고 그들의 사상과 문화를 담았다. 정교하고 화려한 장식보다 다양한 일상에서 두루 쓸 수 있는 단정하고 견고한 형태를 취했다. 그중에서도 항아리는 일상에 필요한 물과 술을 비롯하여 각종 장과 젓갈을 담는 용기로 서민들에게까지 애용된 형태다. 이러한 백자가 문인화와 함께 만들어 낸 전통론은 실제 1970~1980년대 한국의 단색화 열풍 및 백색담론으로 이어졌기에 주목된다. 전통의 계승과 재해석이란 측면에서 백자 달항아리만큼 끊임없이 소환되고 재활용되는 사례도 드물다. 사실 달항아리라는 명칭마저 김환기에 의해 처음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을 만큼 현재적 맥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2011년부터 문화재청 또한 백자대호白磁大壺 대신 ‘백자 달항아리’라는 이름을 국가 지정문화재의 명칭으로 부르고 있다. 현재 7점의 달항아리가 국보와 보물로 지정돼 있으며 약 41~49센티미터 정도의 높이를 지닌다. 주로 조선 영조와 숙종 때 약 100년간 만들어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달항아리는 좋은 원료를 구하기 쉽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상황에서 크고 둥근 기형을 만들기 위해 무거운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백토를 구하여 수없이 실험하고 성형했던 결과물로, 조선 도자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던 높은 기술력의 산물이었기에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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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대호>, 조선, 높이 29.9cm, 몸통지름: 33.5cm, 개인소장(도상봉 구장) | 도상봉, <라일락>, 1975, 캔버스에 유채, 53×65.1cm, 개인소장 | |
도상봉都相鳳(1902-1977)은 라일락과 달항아리를 소재로 안정감 있는 구도와 차분하고 잔잔한 붓질로 우아하고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이후 달항아리는 특유의 미감에 의탁해 ‘민예적 성격의 백자대호’에서 세련된 가정에 잘 어울리는 ‘장식적 대중예술’로 그 이미지가 점차 변화·확장되며 부조나 흑색으로 표현되는 등 재료나 형식, 내용 면에서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번 전시에는 도상봉이 작품을 그리는 데 실제로 참조한 도자기들이 최초로 공개되어 실물의 회화화 과정을 살펴볼 수 있어 흥미롭다. | ||
겸재 정선과 진경산수 조선 후기를 풍미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는 20세기 회화에서도 끊임없는 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수많은 화가들이 정선과 그의 금강산 그림들을 의식하며 실경산수화를 그리고 작품을 일구어 갔다. 1980년대 이른바 수묵화운동의 범주에 있었던 화가들이 ‘진경’을 내세우며 도시 풍경화를 그리는 데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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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 <박연폭朴淵瀑>, 조선 18세기, 종이에 수묵, 119.5×52cm, 개인소장 | 윤형근, <청다색>, 1975-76, 마포에 유채, 120×187cm, 아모레퍼시픽미술관 소장 |
겸재 정선, <금강산도金剛山圖>, 조선 17세기, 비단에 수묵담채, 28×34cm,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 이철량, <도시 새벽>, 1986, 종이에 수묵, 91x181cm, 개인소장 |
1980년대 수묵화 운동의 일원인 이철량(1952- )은 <도시 새벽>에서 아파트를 마치 금강산 1만2천 봉우리처럼 묘사해 진경을 실현코자 하였다. 이처럼 풍경을 그리는 작가들에게 정선과 진경은 기억해야 할 전통이자 극복해야 할 대상임을 환기시키며, 전통이 현대미술에 미치는 다양한 스펙트라가 결코 피상적이거나 가볍지 않음을 확인시켜 준다. |
3. 속俗, 대중적이고 통속적이다 Decorative and Wordly
단원 김홍도와 풍속화 ‘국민화가’ 김홍도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림은 훈장님께 혼이 나 훌쩍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단원풍속도첩》의 <서당>과 같은 풍속화다. 풍속화는 18세기 조선의 사회경제적 안정과 서민 문화에 대한 관심의 확산 속에서 급격히 부상한 장르로서 백성들의 일상을 파악하기 위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김홍도는 바로 그러한 당시 풍속화의 중심에 있었던 화가였다. 활달한 붓질로 대상의 외모와 동세의 핵심을 포착하고 해학성을 더한 단원의 그림은 스승 강세황姜世晃의 찬사에서 볼 수 있듯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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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단원 김홍도, <경직풍속도 8폭 병풍>, 조선 18세기, 비단에 수묵채색, 140.2×,47× (8)cm, 한양대학교박물관 소장 | |
김홍도 전칭의 《경직풍속도 8폭 병풍》은 김홍도 풍속화의 제재와 양식을 충실히 따른 19세기의 작품이다. 작은 사이즈의 화첩인 《단원풍속도첩》의 각 화면에 산수풍경을 더하고 확대한 느낌을 줄 만큼 단원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 |
이종상, <장비>, 1963, 종이에 수묵담채, 290x20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
이종상의 1963년 작 <장비裝備>는 제재와 화풍 모든 면에서 풍속화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현대의 산업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원근법과 명암법의 적용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려 냈다. 화면 전반에 보이는 불균일한 선묘와 선염법은 전통적인 것으로 김홍도의 화풍과도 연결된다. 또한 당대의 현실을 그려 냈다는 점에서 오히려 김홍도의 풍속화에 가장 근접한 작품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
혜원 신윤복, <미인도>(복제본),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114×45.5cm,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x42.5cm, 개인소장 |
속화俗畫로 구분되던 <미인도>는 1960년대 이후 생성된 한국미 담론 속에서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았으며, 1980년대 미술사 연구의 본격화와 함께 “조선의 미인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 “전통적인 한국의 미인상”, “회화사상 최고의 미녀”로 인정받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의 사녀도나 일본 에도 시대 우키요에의 여성과 비견되며 그 독자성과 우월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러한 신윤복의 미인도는 김홍도의 풍속화와 마찬가지로 우수한 전통으로 여겨지며 현대 작가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니코틴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안정에 든 순간을 담담하게 묘사한 자화상적 성격의 작품이다. 이처럼 전통 시대와 달리 현대에는 여성 작가들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 제도에 의해 억압되고 왜곡됐던 여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그림에 담았다. |
민화 민화는 한국미술사의 큰 맥락에서 ‘민간 회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는 구한말에 등장해 20세기 초까지 민간에서 그려진 그림을 일컫는다. 보통 민간의 화가들이 길상과 벽사의 내용을 담아 생활 공간을 장식하고 감상하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인식된다. 민화의 소재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흥행한 주제는 까치호랑이, 책거리, 십장생, 문자도 등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민화 가운데 일상 속에서 활발하게 응용되고 활용된 까치호랑이 그림과 문자도가 20세기 미술에 미친 영향에 주목했다. | |
<까치호랑이>, 조선 후기, 종이에 채색, 93×60cm, 가나문화재단 소장 | <제24회 88서울올림픽 포스터>, 호돌이 디자인: 김현, 1983, 84.1×59.4cm, 개인소장 |
까치호랑이 그림의 주역인 호랑이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신령스럽고 친화적인 동물이다. 여기에는 민화 까치호랑이에서 호랑이가 해학적이고, 길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상징으로 작용한 면이 컸다. 까치호랑이는 화원들이 그린 궁중 양식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정교한 공필채색화로 그려졌는데, 이후 민화에서 사실성과 조형적 긴장이 이완되면서 디자인적 요소가 강화되는 단계로 나아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까치호랑이는 조자용이 인사동 인근에서 수집한 것으로 훗날 디자이너 김현에 의해 88서울올림픽의 ‘호돌이’ 마스코트로 디자인되었다. |
단원 김홍도와 풍속화 ‘국민화가’ 김홍도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림은 훈장님께 혼이 나 훌쩍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단원풍속도첩》의 <서당>과 같은 풍속화다. 풍속화는 18세기 조선의 사회경제적 안정과 서민 문화에 대한 관심의 확산 속에서 급격히 부상한 장르로서 백성들의 일상을 파악하기 위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김홍도는 바로 그러한 당시 풍속화의 중심에 있었던 화가였다. 활달한 붓질로 대상의 외모와 동세의 핵심을 포착하고 해학성을 더한 단원의 그림은 스승 강세황姜世晃의 찬사에서 볼 수 있듯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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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단원 김홍도, <경직풍속도 8폭 병풍>, 조선 18세기, 비단에 수묵채색, 140.2×,47× (8)cm, 한양대학교박물관 소장 | |
김홍도 전칭의 《경직풍속도 8폭 병풍》은 김홍도 풍속화의 제재와 양식을 충실히 따른 19세기의 작품이다. 작은 사이즈의 화첩인 《단원풍속도첩》의 각 화면에 산수풍경을 더하고 확대한 느낌을 줄 만큼 단원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 |
이종상, <장비>, 1963, 종이에 수묵담채, 290x20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
혜원 신윤복과 미인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주 봐온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일까, 한국인의 DNA 속에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이 더 정답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일까.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1957년 전후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첫 해외 전시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사람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조선 시대 미술의 정수”, “국보 중의 국보”라며 한껏 추켜세웠는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세상에 알려진 지가 불과 6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미인도는 조선 시대에 즐겨 그려진 장르이기는 하나 유교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은밀히 감상되었고,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절하되었다. 인기 있는 그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 주목받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간송 전형필이 신윤복의 <미인도>를 구입해 전승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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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 신윤복, <미인도>(복제본), 18세기 후반, 비단에 채색, 114×45.5cm, 간송미술관 소장 ⓒ간송미술문화재단 |
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x42.5cm, 개인소장 |
속화俗畫로 구분되던 <미인도>는 1960년대 이후 생성된 한국미 담론 속에서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았으며, 1980년대 미술사 연구의 본격화와 함께 “조선의 미인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 “전통적인 한국의 미인상”, “회화사상 최고의 미녀”로 인정받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의 사녀도나 일본 에도 시대 우키요에의 여성과 비견되며 그 독자성과 우월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러한 신윤복의 미인도는 김홍도의 풍속화와 마찬가지로 우수한 전통으로 여겨지며 현대 작가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니코틴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안정에 든 순간을 담담하게 묘사한 자화상적 성격의 작품이다. 이처럼 전통 시대와 달리 현대에는 여성 작가들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 제도에 의해 억압되고 왜곡됐던 여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그림에 담았다. |
민화는 한국미술사의 큰 맥락에서 ‘민간 회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는 구한말에 등장해 20세기 초까지 민간에서 그려진 그림을 일컫는다. 보통 민간의 화가들이 길상과 벽사의 내용을 담아 생활 공간을 장식하고 감상하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인식된다. 민화의 소재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흥행한 주제는 까치호랑이, 책거리, 십장생, 문자도 등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민화 가운데 일상 속에서 활발하게 응용되고 활용된 까치호랑이 그림과 문자도가 20세기 미술에 미친 영향에 주목했다. | |
<까치호랑이>, 조선 후기, 종이에 채색, 93×60cm, 가나문화재단 소장 |
<제24회 88서울올림픽 포스터>, 호돌이 디자인: 김현, 1983, 84.1×59.4cm, 개인소장 |
까치호랑이 그림의 주역인 호랑이는 한국인의 정서 속에 신령스럽고 친화적인 동물이다. 여기에는 민화 까치호랑이에서 호랑이가 해학적이고, 길상의 의미를 지니며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는 상징으로 작용한 면이 컸다. 까치호랑이는 화원들이 그린 궁중 양식의 영향을 받아 비교적 정교한 공필채색화로 그려졌는데, 이후 민화에서 사실성과 조형적 긴장이 이완되면서 디자인적 요소가 강화되는 단계로 나아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까치호랑이는 조자용이 인사동 인근에서 수집한 것으로 훗날 디자이너 김현에 의해 88서울올림픽의 ‘호돌이’ 마스코트로 디자인되었다. |
단원 김홍도와 풍속화 ‘국민화가’ 김홍도를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그림은 훈장님께 혼이 나 훌쩍거리는 아이의 모습이 담긴 《단원풍속도첩》의 <서당>과 같은 풍속화다. 풍속화는 18세기 조선의 사회경제적 안정과 서민 문화에 대한 관심의 확산 속에서 급격히 부상한 장르로서 백성들의 일상을 파악하기 위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김홍도는 바로 그러한 당시 풍속화의 중심에 있었던 화가였다. 활달한 붓질로 대상의 외모와 동세의 핵심을 포착하고 해학성을 더한 단원의 그림은 스승 강세황姜世晃의 찬사에서 볼 수 있듯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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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단원 김홍도, <경직풍속도 8폭 병풍>, 조선 18세기, 비단에 수묵채색, 140.2×,47× (8)cm, 한양대학교박물관 소장 | |
김홍도 전칭의 《경직풍속도 8폭 병풍》은 김홍도 풍속화의 제재와 양식을 충실히 따른 19세기의 작품이다. 작은 사이즈의 화첩인 《단원풍속도첩》의 각 화면에 산수풍경을 더하고 확대한 느낌을 줄 만큼 단원 화풍을 잘 반영하고 있다. | |
이종상, <장비>, 1963, 종이에 수묵담채, 290x20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 |
이종상의 1963년 작 <장비裝備>는 제재와 화풍 모든 면에서 풍속화의 현대화를 추구했다. 현대의 산업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원근법과 명암법의 적용한 사실주의적 화풍으로 그려 냈다. 화면 전반에 보이는 불균일한 선묘와 선염법은 전통적인 것으로 김홍도의 화풍과도 연결된다. 또한 당대의 현실을 그려 냈다는 점에서 오히려 김홍도의 풍속화에 가장 근접한 작품으로도 평가할 수 있다. |
혜원 신윤복과 미인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보다 신윤복의 미인도가 더 좋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주 봐온 익숙한 그림이기 때문일까, 한국인의 DNA 속에 신윤복의 미인도 속 여인이 더 정답고 아름답게 보이기 때문일까.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는 1957년 전후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기획된 첫 해외 전시를 통해 처음 세상에 공개됐다. 당시 사람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조선 시대 미술의 정수”, “국보 중의 국보”라며 한껏 추켜세웠는데, 한국미술을 대표하는 신윤복의 미인도가 세상에 알려진 지가 불과 60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울 따름이다. 사실 미인도는 조선 시대에 즐겨 그려진 장르이기는 하나 유교적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은밀히 감상되었고, 그에 대한 평가 또한 절하되었다. 인기 있는 그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러내 주목받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간송 전형필이 신윤복의 <미인도>를 구입해 전승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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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자, <탱고가 흐르는 황혼>, 1978, 종이에 채색, 46.5x42.5cm, 개인소장 | |
속화俗畫로 구분되던 <미인도>는 1960년대 이후 생성된 한국미 담론 속에서 전통적인 한국 여성의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으로 주목받았으며, 1980년대 미술사 연구의 본격화와 함께 “조선의 미인도 가운데 최고의 걸작”, “전통적인 한국의 미인상”, “회화사상 최고의 미녀”로 인정받게 되었다. 중국 당나라의 사녀도나 일본 에도 시대 우키요에의 여성과 비견되며 그 독자성과 우월성이 부각되기도 했다. 이러한 신윤복의 미인도는 김홍도의 풍속화와 마찬가지로 우수한 전통으로 여겨지며 현대 작가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천경자의 <탱고가 흐르는 황혼>은 니코틴의 힘을 빌려 잠시나마 안정에 든 순간을 담담하게 묘사한 자화상적 성격의 작품이다. 이처럼 전통 시대와 달리 현대에는 여성 작가들이 남성 중심의 가부장 제도에 의해 억압되고 왜곡됐던 여성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그림에 담았다. |
민화 민화는 한국미술사의 큰 맥락에서 ‘민간 회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구체적으로는 구한말에 등장해 20세기 초까지 민간에서 그려진 그림을 일컫는다. 보통 민간의 화가들이 길상과 벽사의 내용을 담아 생활 공간을 장식하고 감상하기 위해 그린 그림으로 인식된다. 민화의 소재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흥행한 주제는 까치호랑이, 책거리, 십장생, 문자도 등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다양한 민화 가운데 일상 속에서 활발하게 응용되고 활용된 까치호랑이 그림과 문자도가 20세기 미술에 미친 영향에 주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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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88서울올림픽 포스터>, 호돌이 디자인: 김현, 1983, 84.1×59.4cm, 개인소장 | |
4. 화和, 조화로움으로 통일에 이르다 Dynamic and Hybrid
권진규, <불상>, 1971, 목조, 높이: 45cm, 개인소장/권진규, <그리스도의 십자가>, 1970, 건칠, 높이: 141cm, 개인소장
권진규의 <불상>은 7세기 국보 제83호 금동미륵보살반가상과 원주 출토 고려 시대 철불좌상을 모델로 한다. 삼산형 보관과 얼굴, 상반신의 신체 표현은 금동미륵보살반가상을 닮았고, 의습과 수인, 결가부좌 자세 등을 원주출토 철불좌상을 닮아 있다. 하지만 세부 표현을 보면 두 상과는 조금 다르게 표현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의습의 표현 중에서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로 내려오는 부채꼴의 의습 표현은 과감하게 생략했고, 왼손의 수인도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원주 출토 철불좌상과는 다르다. 최소한의 표현으로 작가가 원하는 존상을 표현한 것이다. 넓게 표현된 철불의 어깨도 실제 인물처럼 표현했으며, 접힌 의습의 표현도 거의 하지 않고 사선으로만 연출했다. 전체적으로 철불에 비해 표현은 더 간결해지고 신체 비례는 보다 현실적인 모습이 되었다. 마주하고 있는 권진규의 또 다른 작품 <그리스도 십자가>는 교회의 의뢰로 제작했다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모습이 너무나도 비통한 탓인지 거부된 작품이다. 건칠로 제작된 이 작품은 종교적 숭고함과 동시에 일반대중에게 감동을 줘야 하는 종교미술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준다.
변모하는 한국미술의 달라진 시대성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준 작가로 백남준白南準(1932-2006)을 빼놓을 수 없다. 1951년부터 일본ㆍ독일ㆍ미국에서 거주하던 그는 사실 한국인이라기보다 세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술가였다. 오랜 기간 외국에 살면서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이었고, 텔레비전을 이용한 비디오아트(Video Art)라는 새로운 예술 형식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도 ‘동양’과 ‘서양’이란 이분법적 구분에서 자유로운 새로운 매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백남준의 의도는 <반야심경>이 문짝에 새겨진 서구의 문명 텔레비전 수납장 안에 브라운관을 빼내고 동양사상의 결정체인 불상을 넣어 감상자로 하여금 이를 마주하게 함으로써 드러난다.
<경주 남산 약수곡 석불좌상 불두>, 높이: 50cm, 너비: 35cm,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소장
<석불좌상편>, 신라, 61(h)×,41.8× 67.7cm,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2020년 경주 남산 약수곡에서 발굴된 통일신라 시대의 불두佛頭는 깨진 불상으로서 이미 폐불廢佛이 된 것이지만, 법신法身이 없음으로 인해 부처의 얼굴에만 더 집중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파편화된 불두를 바라보자면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들지만, 역설적으로 자비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 더 숭고하게 느껴진다. 목이 잘리면 죽어야 하는데,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과 다르지 않다. 법신이 없다고 해서 불성이 소멸되는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김환기나 정규鄭圭(1923-1971) 등 많은 근현대 화가들이 불두에 깊은 영감을 받았다.
반대로 불두의 반대편에 위치한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석불 좌상의 경우 머리가 없고 법신만 남아 있는 불완전한 형태다. 이 때문에 오히려 불성佛性으로부터 벗어나 조각 자체의 조형미에 집중하게 된다. 이처럼 폐불은 폭력의 흔적이고, 완전하지 않은 파편화된 미술의 흔적이지만, 현대에 와서 주는 미학적 의미는 완전히 다르게 해석되기도 한다.
<서봉총금관(보물 제339호)>, 신라, 금, 옥, 높이: 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수경, <달빛왕관_신라금관 그림자>, 2021, 유리부표, 황동, 철, 24K 금박, 나무 3D프린트 조각, 진주, 유리, 자개, 131.7(h)×65×66.4cm, 개인소장, 촬영: 양이언 ⓒYeesookyung |
신라금관은 해방 이후 한국의 문화를 소개하는 거의 대부분의 책자의 표지를 장식할 정도로 한국의 대표 문화재였다. 이번에 전시되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물 330호 서봉총 금관은 다른 신라의 금관과 마찬가지로 관테에 3개의 세움 장식과 2개의 사슴뿔 모양 장식이 부착되어 있다. 하지만 안쪽에 모자 형태의 내관을 만들고 그 위에 세 가지의 나뭇가지와 세 마리의 봉황을 장식한 요소는 다른 금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봉총 금관만의 특징이다. 왜 서봉총에만 봉황 장식이 있는 걸까. 서봉총의 주인은 왕족이거나 높은 계급의 여성으로 추정되는데 금관은 시조묘始祖廟 제사와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반짝이는 금은 태양, 즉 하늘을 의미하고 서봉총 금관에 장식된 나무, 사슴뿔, 새는 모두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매개체로 인식되었다. 삼국 시대 신라의 금관은 고대인들의 천상의 개념, 나아가 인간이 천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표상이었다. 금관의 발굴은 예술가들에게 특별한 영감을 주었다. 이수경은 <달빛왕관_신라금관 그림자>(2021)를 통해 신라금관을 오마주한 공예품을 창작했다. 흑운모를 비롯한 원석으로 거칠게 장식한 표면은 마치 검은 동굴을 연상케 하며 신라금관이 지니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보게끔 하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다. 신라인들의 섬세한 공예 기술을 재현하듯 작가가 생각하는 가장 한국적인 여인상과 삼국 시대 벽화에 등장하는 각종 장식적 요소들은 세밀하고 섬세하게 조각·조성되었다. 이수경은 황금의 나라라 지칭되었던 신라 금속 공예의 기술, 모계사회로서의 국가적 성격, 고대 미술의 신화성을 현대의 미감, 시각과 융합적 관점으로 풀어낸 것으로 화和의 지향을 반영하고 있다. |
조덕현, <오마주 2021-Ⅱ>, 2021, 특수 한지에 UV출력, 연필, 350x830cm, 개인소장 |
조덕현의 <오마주 2021-Ⅱ>는 약 100년 전 과거 한국인들의 모습을 가로 830센티미터, 높이 350센티미터의 거대 화면에 재구성한 그림이다. 이미 사라진 수백 명의 실존 인물들을 소환, 역동적으로 현재와 대면토록 하고 시공을 뛰어넘는 삶의 진실에 대해 묻는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일제강점기 유리건판에 근거하여 약 1,000장의 사진들 가운데 함경도에서부터 제주도에 이르는 다양한 지역의 인물들을 고르게 선별,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전체가 모인 듯한 성비(性比)로 균형을 맞춰 배열했다. 한국미라는 개념이 만들어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김재원, 오세창, 전형필, 고유섭, 최순우, 진홍섭, 황수영, 김원용, 최완수 등을 비롯해 한석홍, 나혜석, 윤이상, 백남준 등의 예술가들도 포함시켰다. 작품은 암울한 시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한국의 전통과 현대는 유구하게 지속되는 삶 속에 형형하게 살아 있다. 지금까지 한국미의 탐색에 있어 긍정적인 결과, 부정적인 결과 모두 우리의 ‘업業’이자 ‘인연’의 결과임을 말해 주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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