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테이트 모던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백남준의 비디오 코뮌(Video Commune 1970)에 대한 글을 작성한 사람은 <Marina Isgro(아래 여성)>다. 그녀는 백남준을 제대로 이해하고 쓴 글이다. 알고 보니 그녀는 독립 학자이자 큐레이터이며, 2017–19 년 하버드미술관 백남준 전공 박사(연구원) 백남준 전문가군요. 어쩐지 글이 좋더라.
그녀는 백남준이 '글로벌 그루브와 비디오 공동시장'이라는 글에서 '미국인들이 TV 화면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아시아인 얼굴은 비참한 난민이나, 인상 험악한 수감자 또는 무시무시한 독재자 얼굴.'뿐이고. 반면 아시아 관객은 미국의 너무나 부유하고 잘 사는 중산층 백인 가정을 정기적으로 보여주기에 여기서 큰 정보 격차와 오해가 생긴다(미디어의 속임수)" 라는 백남준 글을 인용하면서 동서가 서로를 왜곡되고 오해하게 만들었는데 백남준 비디오 코뮌을 통해 이런 정보 부족과 왜곡을 해소시키려고 노력한 예술가라고 소개한다.
[나의 평] 백남준은 미국이 베트남에게 진 이유가 베트남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미국이 베트남을 잘 못 알고 과소평가하는 바람에 실수를 범했다 즉 오해했다는 소리다.그래서 인터넷 같은 매체가 필요하다는 소리겠죠 / Marina Isgro is an independent scholar and curator, and was the Nam June Paik Research Fellow at the Harvard Art Museums, 2017–19
[테이트 모던 백남준 전시 아카이브 자료] "1960 년대 말과 1970년대 초,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은 보스턴 공영 텔레비전 방송국 WGBH-TV에서 방송을 위한 초기 작품을 제작하다. 백남준이 참여형 텔레비전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Video Commune은 백남준 자신의 접근 방식에 중요한 변화를 반영하였다. 백남준의 글로벌 비디오 커뮤니티(이게 나중에 인터넷이 된다)의 출발점이다 1980 년대에 백남준은 국제 위성 TV에 많은 에너지를 집중했다. 그런 맥락에서 그는 잠시 소홀히 했던 민주적 양방향 방송 시스템의 꿈으로 돌아 왔다" -이 글을 쓴 사람의 이름은 <Marina Isgro>다. 그녀는 독립 학자이자 큐레이터이며, 2017–19 년 하버드미술관 백남준 연구원(백남준 전공 박사)이었다. 어쩐지 글이 좋더라.
여기 테이트 백남준 비디오 코뮌에 대한 콘텐츠가 길지만 고품격 정보다. [1] 백남준은 대중방송의 PD로 참여하면서 TV 채널 방송의 생태계를 제대로 경험하다. 대중예술을 높이 평가하다. 그래서 1984년 굿모닝 미스트 오웰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었다 [2] 비디오 코뮌(1970년작)은 바로 제1차 PRES INTERNET이다. 이때부터 인터넷 실험이 시작된다. 1969년 비디오편집기가 아베와 함께 발명했기에 이 작품이 가능했다. 이 편집기기 나오기 전에는 TV를 자석으로 왜곡시키거나 <전자오페라>에서 보듯 TV 모니터에 춤추는 듯한 전자 불꽃을 만드는 정도의 표현밖에 할 수 없었다.
https://www.tate.org.uk/…/t…/32/video-commune-nam-june-paik…
이 조정된 피아노를 연주하는 소리를 들으면 우리나라 가야금이나 사물놀이 혹은 판소리 풍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백남준은 독일의 작곡가 바그너가 창안한 '총체예술(Gesamtkunstwerk: Music for all senses 오감이 동시에 작동되는 종합예술)을 그의 첫 전시에서 조정된 피아노라는 작품을 통해 일종의 변종 작곡으로 만드려 한 것 같다
<참고>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8XcoJEBXm90&fbclid=IwAR3S_ybaFKo7BNeCpFcoaohOT2eA7rlwzgaYAZaYPQNAp22pTMS4FQBIol0
<참고> 유튜브: <이 작품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백남준 소장품이다. 이런 천재적 작가가 만든 작품은 모마에서도 관리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작품이 고장이 나면 Canal Street CTL CO에서 수리를 한다> “This work is either a conservation nightmare, or a conservation dream.” Hear MoMA media conservator, Glenn Wharton, describe the two-year restoration efforts of Nam June Paik “Untitled." Learn more how MoMA conservators preserve and protect the museum's collection: http://mo.ma/1XZq5iY
뉴욕에도 서울의 용산상가 같은 곳(Canal Street, NY)이 있다. 여기가 바로 그런 곳이다. 백남준 TV 작품 수리를 해주던 곳이었다. 지금도 미국 유명 미술관 백남준 작품이 고장이 나면 여기서 고친다. 백남준 조수를 7년간(1996-2003) 한 라파엘라 작가(우)의 안내로 이곳을 방문했다. 아래 보니 방문 날짜가 있네요. 2015년 6월 11일 백남준 아파트가 여기서 그리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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