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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백남준, 94년 '인터넷'전까지 다양한 'TV'실험

[백남준 티브이 웨이브(Nam June Paik Art Center Nam June Paik TV Wave)' 전 백남준아트센터(관장 김성은)2020512()-202137일까지백남준 티브이 웨이브연다 <작성 중>

' 백남준아트센터 '

백남준아트센터에서 대해서 덧붙인다. '백남준이 사는 집'이라는 별칭이 붙은 백남준 아트센터 이런 미술관 드물다. 뉴욕, 파리, , 뮌헨, 쾰른, 런던 등에 가도 이런 미술관은 없다. 앞에서 보면 'TV화면'이고 위에서 보면 '피아노' 모양 백남준의 상징인 피아노와 TV를 매개로 한 건축물이다. 21세기 멀티미디어-인터미디어 혹은 인터넷 SNS 시대의 정신을 반영한다. 백남준 미술의 핵심어인 동서남북을 예상할 수 없는 랜덤 액세스 정신도 엿볼 수 있다.

기획: 김선영(백남준 학예연구사) 031-201-8552 미술관 교육: 조민화(백남준 학예연구사), 장효진(백남준 학예연구사)참여작가 : 백남준, 그레고리 배트콕, 데이비드 애트우드, 만프레드 몬트베, 아베 슈야, 알도 탐벨리니, 앨런 캐프로, 오토 피네, 올리비아 태판, 제임스 시라이트, 크래커(김화슬 김정훈), 토마스 태들록, 프레드 바직, 피터 무어 주최및주관 : 백남준아트센터, 경기문화재단 협찬 : 산돌구름

'소통과 참여'에 관심이 많았던 백남준 드디어 90년대 인터넷시대 열다

백남준의 큐레이팅 그 어는 전시보다 독창성에 요구되기도 한다. 같은 백남준 작품을 가지고 어떻게 큐레이팅을 하느냐에 따라 과객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다르게 반응할 수 있다. 새로운 동선 새로운 관점 새로운 해석으로 새로운 전시가 나올 수 있다. 이번 전시로 백남준의 TV실험세계가 생생하게 살아났다. 60년대 음악TV, 70년대 코뮌TV, 80년대 위성TV, 90년대 인터페이스 혹은 인터넷TV, 드디어 새로운 시대가 열렀다. 백남준은 TV를 처음에는 물리적 악기(장난감)로 봤고 그것을 30년 간 실험과 탐구를 통해 인터넷 악기(장난감)로 바꾸다,

1960년대 TV 파급력은 계산할 수 없다. 특히 비틀즈가 그랬다

백남준 I 'TV 쿠바 ' 1963. 이 작품은 참여 TV의 성격이 강하다

<1963년> 이번 전시에 디스플레이 전문 작가가 협업을 했다. 백남준은 현대예술에서 '참여'를 강조하면서 작품과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넘어 사회적이고 정치적 이슈에 까지 관심을 두었다. 그의 작품을 제대로 보고 나면 그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뀔 것이다. 1963년 작품 TV쿠바의 화면을 보면 일방적이지 받기는 하는 장면이 아니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효과를 낸다.

영국의 록밴드 비틀즈가 미국 TV에 첫 출연한 196429'에드 설리번 쇼'73백만 명이 시청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당시 미국 인구의 40%에 해당한다. 1960년대 영국 문화가 매스 미디어를 통해 미국에 유입되고, ‘반문화를 비롯해 사회문화적으로 큰 물결을 일으킨 현상을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의 침공)이라고 한다. 백남준은 이런 TV를 예술화한 것이다 지금은 BTS(방탄소년단)이 1964년 비틀즈 역할을 SNS 등을 대신하는 시대가 되었다. 우리가 세계의 일상을 침공하는 시대다. 그런 면에서 백남준과  BTS 통하는 면이 있다.

이번 전시에서 백남준의 참여정신을 살리기 위해서 전시 디스플레이에서 관객을 유혹하기 개념이 들어갔다 대부분 백남준 작품은 1분 이상 보지 않는데 여기 방에 들어가면 적어도 10분 이상을 보게 된다. 사실 백남준 비디오 작품의 내용(contents)이 예상 외로 파격적이고 획기적이고 재미있다. 시대를 앞서간다. <어쨌든, 당신이 나의 TV를 보게 된다면, 제발 30분 이상 지켜보기 바란다.

아베 백남준 ' 비디오 신디사이저 ' 1969-2011

<1969년> 1963-19696년의 노력 끝에 신디사이저가 발명되는 그는 인터넷의 초기버전인 TV 코뮌을 1970년에 발표한다. 코뮌이라는 글로벌 커뮤니티(global community)를 말하는데 결국 지구촌 인류 공동체의 화합과 평화를 상징하는 말이리하. 그리고 19731인 미디어(유튜브와 SNS)를 예언했다. 그리고 1974년 인터넷 프로젝트(당시는 인터넷이라고 하지 않고 전자초고속도로 Electronic Superhighway)를 록펠러 재단에 제출 심사를 통과해 예술 지원금을 받았다.

지금 코로나 시대가 되다 보니 백남준의 이런 시공간에서 물리적 제약을 넘어서는 쌍방형 소통방식이 더욱 빛난다. 백남준은 일방적이고 독불 장군 같은 TV 일종의 미디어의 독재자를 교란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그래서 자석TV도 만들고 쿠바TV와 참여TV 등도 만들고 '매체는 매체다'라는 작품도 만들었다. 백남준은 그래서 일방향(one-way) 방식인 TV 안으로 들어가 그 뇌구조를 들어가 쌍방향(two-way) 방식으로 바꾸려 했다 그러다가 그것을 보다 가능하기 위해서 1969년 일본의 기술자 아베와 함께 비디오 신디사이저를 만들었다.

1971년 백남준 존 레논 오노요코 아벨 방송국에서 협업

<1971년 천재 순수예술가 백남준과 천재 대중예술가 존 레논과 방송국에서 만나 협업을 하다 백남준은 멀티미디어 다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예술에서 고급(High art)과 저급(Low art)의 경계를 허물고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이라는 2분법 타파하려고 했다. 이것은 플럭서스의 정신이기도 하고 바우하우스의 개념이기도 하다. 그래서 백남준은 존 레논 같은 비틀즈 맴버와도 가까이 지냈다. 지금으로 치면 BTS 같은 세계적 대중스타들과도 협업을 했다는 소리다>

백남준은 1964년 비틀즈의 미국 방송계 영국 문화 점령(British Invasion) 등을 보면서 <미국방송 40%를 영국 비틀즈가 점령> 그 누구보다 TV가 대중에게는 주는 영향을 얼마나 큰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백남준은 일방향 소통방식을 지양하고 어떻게 하든 쌍방형 TV 내용을 만들어보려고 방송 제작에 직접 뛰어들었다.이런 자신감을 가지게 된것은 바로 1969년 일본 기술자 아베와 함께 비디오신디이저를 발명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린 비틀즈의 맴버들을 직접 만나 방송 제작에 참여하다. <아래 사진> 상단은 1971년 오노요코 존 레논 아베와 함께 찍은 사진이고 하단은 백남준은 WNET 방송국에서 방송인들과 함께 비디오 신디이저를 가지고 다양한 방송실험을 해 보는 모습이다.

백남준 I 'TV 첼로' 2002 백남준아트센터 소장품

실제 달의 모습은 인류가 달에 착륙한 1969720일 텔레비전 생중계를 통해 처음으로 TV 화면에 담겼으며, 이는 20세기 방송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백남준은 토끼를 시청자 위치에 놓음으로써 상상 속 세상과 현실의 세상을 만나게 하는 텔레비전의 역할을 형상화했다.

1969년 신디사이저를 만드는 데는 1969년 미국에 인류가 처음 달에 도착하는 과학의 진보적 발전에 크게 자극 받은 것 같다. 백남준 1963년 쌍방형 소통방식 TV 방송을 시도했고 그것을 실제로 가능하게 하는 비디오 신비사이저인 아베와 함께 발명하게 되는데 그런 6년 간 과정이 마치 최전선에서 혈투를 벌이는 군인들처럼 그렇게 치열했다.

백남준은 어떻게 하든 모든 수단을 동원해 쌍방향 방송의 실현과 그 가능성을 위해서 백방 노력하다. 미국의 공영 방송(WGBH, WNET 등등)과 협업을 시도하다. 백남준은 여러 문화권의 벽을 허물고 공간과 공간을 연결하는 전 지구적 쌍방향 소통과 화합을 꿈꿨던 백남준은 여러 방송국의 주파수를 다 맞춰보려고 했다. 8일 백남준이 이런 생각을 확장한 것이 바로 1984년 굿모닝 미스터오웰 작품이다.

'TV( 비디오 ) 코뮌 ' 1970

<1970년> TV 코뮌(공존) 그래서 백남준의 키워드는 바로 평화다. 즉 공존과 동서의 물화적 소통을 통한 전쟁방지와 평화 인류의 공존 이상적 공동체 즉 코뮌의 텔레토피아 Tele Commune Utopia 제국을 꿈꾼 것인가. 드디어 1970TV(비디오) 코뮌(초보적 인터넷)만들다 그리고 1973년 백남준은 '1인 미디어시대'를 예언하다. 1974년 전자초고속도로(Electronic Super highway) 초보적 인터넷에 더 발전된 인터넷 아이디어를 제시하다.

"전화는 점 대 점의 통신 시스템이다. 라디오, TV는 물고기 알처럼... 점 대 공간의 통신 시스템이다. 비디오 혁명의 최종 목표는 혼돈이나 방해 없는 공간 대 공간, 또는 영역 대 영역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백남준, '빙엄턴의 편지', 19721

물리적인 악기로서의 TV가 이제는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고 시간의 과거와 현대 미래를 조정하면서 장난감처럼 마음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그런 단계에 가까이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처음 만든 신시사이저과 고장이 난 아베가 한국에 와서 다시 만들 신디사이저를 선보인다. 고장 난 것과 새로 만든 것을 동시에 볼 수 있다. 1969'매체는 매체다'라는 작품도 발표하는데 이것은 나중에 1984년 각국 방송 채널과 채널을 연결시키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과 통한다.

'TV 부처 ' 1974

<1974> 결국 백남준의 예술 속에 담겨진 궁극적 유토피아는 TV부처와 TV 정원에 담겨 있다.

'TV 정원 ' 1974

동양과 서양이 싸우지 않고 공존하며 자연과 인간이 싸우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 것이다 물론 예술은 이런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절대 아니지만 그런 주제가 눈에 보이지 않는 메타포와 유머의 방식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높은 사상 혹은 철학과 함께 서양의 첨단의 하이테크 기술이 같이 가야만 인류가 발전하고 진보할 수 있다고 보다.

백남준 후손인 이이남 작가는 그에 대한 오마주로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극도로 단순화시켜 퍼포먼스 형식으로 간절하고 애틋한 헌정의 몸짓으로 담아내다. 백남준은 때로 삶에 허기진 우리에게 따뜻한 밥 한 그릇이 될 수도 있다.

백남준의 평생의 고민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바로 원활한 쌍방 소통과 적극적 민주 시민들 참여를 통한 인류의 공존이었다. What was Nam June Paik's lifetime concern? It is the coexistence of humanity.

이것을 과거에는 방송국에서만 영상제작과 편집이 가능했지만 이제는 누구나 TV화면을 1001가지로 즉석에서 바꿀 수 있다고 장담한 것이다. 백남준에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 방송국에서 직접 프로급 PD들과 일하면서 방송의 쌍방형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성을 타진하고 여러 가지 시험과 탐구를 계속해 나갔다.

쌍방 소통매체(Tele-Interactive Communication)을 구현하려 했다. 이것은 나중에 문화와 인종의 시공간을 벽을 허물고 전 지구적으로 쌍방소통과 화합을 꿈 꾼 것이다. 그런 것에 주파수를 맞추다. 지금 코로나 시대가 되니 백남준의 이런 물리적 장애를 넘어서는 쌍방형 소통방식이 더욱 빛을 보고 있다.

<1976-1977> 백남준의 반전사상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작품이 바로 1977년 작인 <과달카날 레퀴엠>이다. 비참한 세계 제 2차 대전 중 미국과 일본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수많은 시체가 쌓여진 곳에서 여기서 하이라이트는 바로 백남준 샬럿 무어먼이 이 군복을 입고 포복하는 장면이다.

그런 것들의 구성된 퍼포먼스 아트 형식의 비디오 작품이다. 그리고 이런 정신의 Action Music Performance Art 정신 메를로-퐁티가 말하는 "나는 나의 몸이다"와 같은 몸 철학과 통하는 구석이 있다. 백남준은 서구에서 나치가 등장한 것을 바로 몸의 정신을 상실하고 관념주의에 빠졌기 때문에 2차 세계 대전 같은 인류의 대학살이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다.

' 과달카날 레퀴엠 ' 1976

1976년 록펠러 재단의 지원으로 뉴욕 WNET 방송국의 ‘TV실험실상주작가로 있는 동안 백남준은 호주의 존 칼더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과달카날 섬에서 이 작품을 촬영하였다. 남서태평양 솔로몬제도 과달카날 섬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19428월부터 19432월까지 연합군과 일본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미국 케네디대통령이 현역 군인으로 참전한 곳이기도 하다. 과달카날 레퀴엠은 제2차 세계대전의 TV 아카이브 기록 영상과 전쟁의 흔적이 남은 현장에서 직접 촬영한 영상을 병치, 교차하며 보여준다.

내레이터이자 인터뷰어인 '샬럿 무어먼'은 미국과 일본의 참전 용사, 섬 주민들과 인터뷰를 하고, 섬의 곳곳에서 백남준과 함께 군복을 입고 첼로를 등에 맨 채 포복하거나 반으로 쪼개진 바이올린을 끄는 등 여러 전위적인 퍼포먼스를 벌였다. 백남준은 'WNET'에서 비디오 편집용 컴퓨터 시스템에 대한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1977년에 완성된 이 작품에서도 실험적인 합성 기법을 여러 가지 시도하였다. 한 시간 가량의 원본을 2835초로 재편집한 수정본이 1979'WNET'-채널 13에서 방영되었다. -<미술관 자료>

우선 뉴욕과 파리를 연결. 그러면서 "21세기는 198411일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백남준은 선언하다.

<1984> 백남준은 이렇게 기술과 예술을 합치고 거기에 한 가지 더 추가하다 그것을 바로 주술이다 즉 샤머니즘을 추가한 것이다. 생명력 넘치는 죽은 자와도 소통이 가능한 신기가 넘치고 신이 통하는 슈퍼 커뮤니케이션(Super communication) 놀라운 에너지를 가진 주술의 세계를 거기에 더한 것이다. 198411일 굿모닝 미스터오웰을 발표해 보다 10년 후에 나오게 되는 WWW 인터넷과 유사한 방식의 각 나라 방송 채널을 연결하는 인터페이스가 나오다.

백남준은 앞으로 대중예술이 순수예술 그 이상으로 사회적 영향력을 줄 거라고 예상했다. 프랑스 대철학자 '들뢰즈'가 대중영화를 평하고, 발터 벤야민의 복제술을 찬양하고 앤디워홀이 광고문화와 엔터네이터 문화를 예술화했지만 백남준은 그보다 더 나가면 나갔지 절대 뒤쳐지지 않는다. 앤드위홀의 먼로 작품이 많이 했지만 백남준 먼로를 주제로 작품도 그에 못지않다. 보이스는 모두가 예술가라고 했고 백남준은 대중예술마저 예술화한 장본인이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위계와 경계를 없애려 했다 1984'굿모닝 미스터 오웰' 콘텐츠 편집의 구성을 보면 반은 하이아트(고급예술) 반은 로우아트(대중예술)이다. 이런 정신은 바우하우스 정신에도 맞고 21세기 대중문화시대의 경향과도 맞는다. 대중문화의 요소들은 백남준의 작품이나 텍스트에 자주 등장한다.

전자벽화 '매트릭스'

<1993년>년 베니스 작품 인류는 모두 다르지만 서로 하나가 되는 세상 에 대한 꿈의 형상화하다.

'데이비드 보위' 공연화면

1998년 백남준 위성아트 3찬인 <손에 손잡고>에 출현했고, 1994년 이후 데이비드 보위는 백남준 비디오 아트의 단골손님이 되었다. 그는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 1947-2016년 잉글랜드출신의 뮤지션, 싱어 송 라이터, 음악 프로듀서, 배우다. 글램 록의 선구자 대중음악 분야에서 50년간 세계적인 명성을 얻는다. 배우의 세계에 진출 해 수상 경력이 있는 멀티 아티스트로 알려져 있다. 1996'록의 전당'에 들어간다. '그래미 5회 수상(19회 노미네이트) NME 매거진 선정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아티스트'등 선정되기도 했다.

위성 오페라 ’ 3 부  ' 손과 손잡고 '

그의 위성 오페라’ 3부작에서는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팝 가수 같은 대중문화 예술가들이 위계나 구분 없이 한데 어우러졌다. 그 중 한 명인 '데이비드 보위'는 백남준의 1988년 작 '세계와 손과 손잡고'에 출연해 '성난 얼굴로 돌아보라'를 부르며 현대무용그룹 라라라 휴먼 스탭스와 함께 공연했다. 백남준은 여기에 라이브 비디오 합성 영상을 결합하여 방송되도록 하였다. 백남준은 1994년부터 보위를 주제로 한 몇 가지 캔버스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 회화 작품은 '손과 손잡고' 영상 속 보위의 스틸 이미지에 픽셀 색상표 같을 것을 결합시킴으로써 디지털 이미지처럼 보이도록 했다.

백남준, 가장 싸게 가장 빠르게 가장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방안 모색

동양과 서양이 서로의 장점과 미덕을 존중하면서 같이 상생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의 대안공동체를 찾을 수 있다. 음은 음이고 양은 양이 아니라 음이 양이고 양이 음이고 동양이 서양이고 서양이 동양이다. 이런 통합적 일원론에 근거한 복합적이면서도 통섭적인 퓨전(하이브리드)의 통합세계관을 여기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백남준 I '인터넷 드림' 1994

<1994년> 백남준 그의 작품에서 1994년 처음으로 인터넷 드림이라는 제목을 붙였군요 https://zkm.de/en/event/2004/12/nam-june-paik-internet-dream?fbclid=IwAR0qywG_24qowsmXARvLLTbXJspjoD7qXr2OLS4KDNJwF41GbDkb-IRJKZU

백남준  I ' 달에 사는 토끼 ' 1996

<1996> 백남준에게 TV가 있다면 보이스에게는 토끼가 있다. 토끼는 동물 중에서 가장 착하고 평화롭다. 요셉 보이스의 퍼포먼스 중, 금과 꿀을 칠한 얼굴을 하고 죽은 토끼를 품에 안고 "완고한 이성주의자로 무장한 인간보다 토끼가 더 잘 이해한다" 그는 어리석은 인간보다 토끼를 더 존중했다. 토끼를 이렇게 생각한 보이스에 대한 백남준의 오마주 작품이 있다 몰론 여기 토끼는 우리의 전설에서 온 것이다. 일종의 개념미술이다.

달과 TV를 정보 매체로 해석한 백남준의 여러 작품들 중 하나인 달에 사는 토끼 TV 모니터와 이를 바라보고 있는 토끼 나무조각으로 구성된다. '옥토끼'라고도 불리는 달에 사는 토끼 이야기는 불교의 전설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여러 신화, 설화에 등장한다. 한국 동요 반달의 가사 속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도 달나라 월계수 아래에서 방아를 찧고 있다는 옥토끼를 가리킨다. 백남준의 작품에서 토끼는 자신이 살고 있는 달의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다. 화면의 달 모양은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든 것이다. -미술관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