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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전시행사소개

[중박] 조선 시대, 코로나인 '역병' 외 '단원'전

제중신편[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 300-400년 전 사람들의 전염병 극복 의지 2020년 5월 11일(월)~6월 21일(일) 장 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조선2실 전시품 : 『신찬벽온방』(보물 제1087호), 「등준시무과도상첩」 등 27건 등이 소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2020.5.6.~6.21.)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조선 시대 사람들은 전염병의 공포에 어떻게 대응해 나갔는지를 조명하여 코로나19로 혼란을 겪고 지금,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조선시대 왕가나 명문가 그밖에도 일반서민들 그 가족들이 돌림병으로 한 두 사람만 남고 거의 다 죽어나갈 때 안타까운 마음은 이루말 할 수 없는 참담한 고통을 주었을 것이다. 이런 역병이 지나가고나면 국가의 더욱 발전하고 훌륭한 의학서가 나와 전염병의 참상과 슬픔은 다 나쁜 것만은 아니었으나 나라전체의 고통은 컸을 것이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 왔는지 고문서를 통해서 알아보는 특별전이다. 조선 왕은 산수치수와 함께 백성의 역병 문제해결에 고심했을 것이다. 왕은 이 모든 것에 자기 탓을 하며 근신하고 제사를 지내기도 했죠>

[테마기획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조선을 습격한 역병 극복에 도전하다)> -300-400년 전 사람들의 전염병 극복 의지 2020년 5월 11일(월)~6월 21일(일)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조선2실 전시품 : 『신찬벽온방』(보물 제1087호), 「등준시무과도상첩」 등 27건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조선 시대 사람들은 전염병의 공포에 어떻게 대응해 나갔는지를 조명하여 코로나19로 혼란을 겪고 지금, 작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마련하였다.

<1부> ‘조선을 습격한 역병’

조선시대 유행했던 대표적인 전염병을 소개하고 역병에 희생된 사람들과 역병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두창痘瘡으로 죽은 아이들의 묘지명, 조선 중기의 예학자 정경세鄭經世(1563~1633)가 춘추관에서 근무하다 두창에 감염되어 죽은 아들을 기리며 쓴 제문祭文이 전염병의 참상과 슬픔을 전한다.

영조 대 노론의 대표 학자인 이재李縡(1680~1747)는 두창에 걸린 두 손자를 치료해 준 의원의 의로움과 뛰어난 의술에 감사하는 시를 남겼다. 1774년(영조 50) 제작된 《등준시무과도상첩》에는 김상옥, 전광훈, 유진하 등 세 사람의 초상화에 두창의 흉터가 확인된다. 수록된 18인 중 세 명에게 흉터가 있을 만큼 조선시대에 만연했던 두창의 위력을 짐작케 하는 동시에 역병을 이겨낸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조선 왕조 당시 관리 중 특별직 무과 시험에 합격자 사람들 프로필(초상) 화첩에는 그들의 얼굴의 마마 자국까지 그대로 그려져 있다

<2부> ‘역병 극복에 도전하다’

17세기 초 온역溫疫(티푸스성 감염병), 18세기 홍역 등 새로운 감염병의 출현에 대응한 조정의 노력을 조명한다. 『신찬벽온방』(보물 1087호, 허준박물관)은 1613년(광해군 5) 광해군의 명으로 허준이 편찬한 의서로, 1612년~1623년 조선 전역을 휩쓴 온역에 대응하는 지침서의 성격을 가진다. 허준은 이 책에서 전염병의 원인으로 자연의 운기의 변화와 함께 위로받지 못한 영혼[여귀厲鬼], 청결하지 못한 환경, 청렴하지 않은 정치 등을 꼽았다. 결국 전염병의 종식에는 통치자의 반성과 함께 공동체가 고통을 분담하여 대처하는 인술仁術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의학전문서 '제중신편'

『동의보감』 이후 변화와 발전된 의학 이론과 민간의 임상 경험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이를 새로운 표준의서로 제시하여 민간의료를 지원하고자 한 뜻이 담겨 있다. 흉년과 전염병으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긴급 구호 명령인 『자휼전칙』도 전염병의 공포를 약자에 대한 보호와 공동체 의식으로 극복하고자 역사의 지혜를 보여준다.

전연병이 지나간 후에 보다 진전된 의학전문서가 나오기도 했다 <제중신편>이 그 중 하나다 보도자료: 『제중신편』: 어의御醫 강명길康命吉(1737~1801)이 정조의 명을 받아 편찬한 종합의서이다. 조선후기 민간 의료가 확산되면서 성장한 약국과 의원들, 일반 양반들 모두에게 『동의보감』은 표준 의서로 받아들여졌다. 그런데 『동의보감』이 워낙 방대했기 때문에 이후 간행된 의서들은 대체로 두 가지 유형을 띄고 있었다.

첫째는 두과痘科, 소아과, 부인과 등 전문분야를 특화한 전문의서이고, 둘째는 『동의보감』의 요점만 발췌 정리하고 자신들의 경험방(經驗方)을 덧붙인 유형이다. 정조는 변화된 생활 조건과 질병 양상, 중국의 최신 이론, 수많은 민간경험방 등을 국가에서 체계적으로 수집·정리한 종합의서를 편찬하고자 했다. 강명길은 이러한 정조의 뜻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고 어의로서 전문성도 갖추고 있었다. 『제중신편』에는 관주도 의료 체계가 제 기능을 못하는 상황에서 실용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새로운 표준의서를 제시하여 민간 의료를 지원하고자 한 뜻이 담겨 있다.

 석조약사불

<3부> ‘신앙으로 치유를 빌다’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본다. 조선시대 내내 위협적이었던 두창은 질병 자체가 고귀한 신으로 받들어져 호구마마, 호구별성 등 무속의 신이 되었다. 괴질이 돌 때 역할을 한 <대신마누라도>(가회민화박물관), 전란과 역병 같은 국가적 재앙에서도 구원해 준다 여긴 석조약사불(국립대구박물관) 등이 선보인다.

전염병은 끔찍한 공포이기도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큰 변곡점이 되기도 했다. 지금보다 더 참혹했을 역병 속에서도 삶을 살아 낸, 그리고 그 공포를 적극적으로 함께 이겨내고자 했던 선조들의 의지를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에서 함께 느껴보시기 바란다.

<무속과 불교에서 신앙적 치료법> 의학적 방법은 아니나 마음에 안심을 주고 용기를 얻게 하는 무녀가 하는 치병굿도 있었죠. 불교에서는 치료전문 부처가 있었죠. 그가 바로 석조약사불(오른쪽)이죠.

신앙으로 치유를 빌다’에서는 전염병의 공포를 신앙으로 극복하고자 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본다. 조선시대 내내 위협적이었던 두창은 질병 자체가 고귀한 신으로 받들어져 호구마마, 호구별성 등 무속의 신이 되었다. 괴질이 돌 때 역할을 한 <대신마누라도>(가회민화박물관), 전란과 역병 같은 국가적 재앙에서도 구원해 준다 여긴 석조약사불(국립대구박물관) 등이 선보인다.

전시설명을 하는 '유새롬' 학예연구사.

[손뼉 치며 감탄하네: 김홍도의 풍속도첩] 단원 김홍도가 담아낸 조선 후기의 일상, 활력과 유쾌함을 담다 2020년 5월 6일(수)~2021년 5월 30일(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서화실 《단원풍속도첩》 중 <씨름>, <무동> 등 7점 박수근은 20세기의 단원이다 단원의 풍속화는 우리에게 영원한 보물이다. 앞으로 수도 없이 이 그림을 복사될 것이다.한국미의 진수인 신명과 풍류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코로나로 피곤한 심신을 이 풍속화를 보면서 풀어보면 어떨까 싶다

국립중앙박물관은 5월 6일 재개관을 기념하여 단원壇園 김홍도金弘道(1745~1806 이후)의 《단원풍속도첩》을 전시한다. 《단원풍속도첩》은 김홍도의 대표작으로, 잘 알려진 <씨름>, <무동>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작품은 국내외 주요전시에 출품 요청이 끊이지 않고 작품의 보존 때문에 한 번에 여러 점을 감상하기 어려웠는데, 이번 전시에서는 <씨름>, <무동>, <논갈이>, <활쏘기>, <노상 풍경>, <베짜기>, <그림 감상> 등 7점의 작품이 펼쳐진다.

현장의 활력을 고스란히 담아낸 풍속화

김홍도는 도화서 화원으로 활약하며 산수화, 화조화, 도석인물화 등 다양한 화목(畫目)의 그림을 제작했다. 그는 대부분의 장르에서 뛰어난 그림 실력을 보였는데 그 중 서민의 삶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린 풍속화로 널리 알려졌다.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姜世晃(1713~1791)은 “김홍도는 사람들이 날마다 하는 수천 가지의 일을 옮겨 그리길 잘했으니, 한번 붓을 대면 사람들이 다들 손뼉을 치면서 신기하다고 외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감탄을 자아냈다.

강세황의 말처럼 김홍도의 그림은 현장의 핵심을 꿰뚫었고 인물들의 희노애락을 재미있게 표현하여 당대에도 인기가 대단하였다. 김홍도는 서민의 생업 현장이나 놀이, 휴식, 길거리의 모습 등 평범한 일상사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냈다. 김홍도는 배경을 생략하고 주제에 집중한 구도를 사용했다. 또한 간결하고 힘있는 필선과 맑은 담채로 풍속 장면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서민들의 놀이문화를 그린 〈씨름〉과 〈무동〉은 명작으로 꼽힌다. 김홍도는 <씨름>에서 원형구도를 사용하여 중앙에 씨름꾼을 그리고, 주변에 구경꾼을 그려 넣었다. 바닥에 편안하게 앉아 관전하는 인물들의 배치와 저마다의 생생한 표정 덕분에 감상자도 마치 씨름을 직접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무동>에서는 악사들의 연주에 맞춰 춤을 주는 어린 아이의 춤사위에 저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조선 사람들은 놀 때뿐만 아니라 고된 일을 할 때에도 활기가 넘쳤다. <논갈이>에서는 두 명의 농부가 밝은 표정으로 겨우내 언 논바닥을 갈아엎고 있다(사진 3). 힘든 농사일이지만 쟁기를 끄는 소들의 활기찬 움직임이나 웃옷을 벗고 땀흘리는 일꾼의 모습은 노동 현장의 건강한 활력을 잘 전달한다.

인물간의 심리를 재치있게 포착하다

김홍도는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현장의 순간을 포착하면서 인물간의 심리도 놓치지 않았다. <노중풍경>은 길거리에서 부딪친 일행을 묘사한 그림으로, 매우 드문 소재이다(사진 4). 김홍도는 나귀를 타고 다니며 직접 본 조선의 풍정을 8폭 병풍에 담았는데 <행려풍속도병>(1778)에는 <노중풍경>과 유사한 장면이 포함되어있다. 섬세하게 산수와 인물을 그린 병풍 그림과는 달리, 화첩 그림에서는 배경 없이 주요 장면만을 간결하게 묘사하였다. 말을 탄 젊은 선비는 맞은편의 앳된 아낙을 부채 너머로 은근슬쩍 훔쳐보고 있고, 그의 시선을 느꼈는지 아낙은 부끄러운 듯 장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이들 사이의 미묘한 심리와는 관계없이, 중년의 가장은 아이와 닭이 든 짐을 메고 부지런히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활쏘기>에서도 인물간의 흥미로운 관계를 엿볼 수 있다(사진 6). 침착한 표정의 교관은 활쏘는 인물의 자세를 교정해주고 있고, 활시위를 당기는 이는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의 훈련과는 관계없이 오른편의 인물들은 화살과 활시위를 각각 점검하며 자신의 일에 몰두해있다.

왁자지껄한 조선의 삶을 그린 김홍도의 풍속화는 내년 5월까지 상설관 2층 서화실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일 년간 두 차례의 교체전시를 통해 총 19점의 그림을 볼 수 있으며, 단원풍속도첩의 매력을 정리한 영상도 함께 즐길 수 있다.(표1) 올 봄,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서로간 거리를 두었지만, 그 시간 동안에 삶의 의미와 인간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다시 문을 연 박물관에서 평범한 삶에 대한 김홍도의 애정어린 시선을 느껴보고 그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 [